필리스티아
[clearfix]
1. 개요
고대 가나안 지역 서부 지중해 연안(현대 가자 지구 일대)과 그곳에 살았던 민족을 가리킨다. '필리스티아'라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 '팔라이스티네(Παλαιστίνη)'에서 파생된 라틴어 단어 '팔라이스티나(Palaestina)'에서 왔다.
2. 민족
[image]
바다 민족 중 하나로 원래 크레타와 아나톨리아 일대에 살던 인도유럽어족 구사자들이 이주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관련하여 나중에 필리스티아인들의 유전자를 검사해본 결과로는, 남유럽인들, 특히 그리스인들과 동계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 때문에 필리스티아어는 그리스어와 동계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1] . 때문에 필리스티아인들은 아프리카아시아어족 언어를 사용하는 주위 민족들과는 다르게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필리스티아인들은 가자, 아슈켈론, 가트, 아슈도드, 에크론의 다섯 개 도시를 중심으로 한 연맹 국가를 이루었다. 이들 역시 다른 가나안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다곤#s-1, 이슈타르, 바알 등 메소포타미아 신들을 섬겼다. 이는 전근대시대의 유이민들의 특징으로, 현지인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 현지의 문화나 종교를 받아들인 결과다[2] .
3. 성경 속 묘사 및 역사
창세기부터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민족 중 하나로, 고대 이스라엘인들에게 철천지 원수나 다름없었다.
3.1. 창세기
창세기에서는 아브라함이 필리스티아 도시 그랄의 군주인 아비멜렉[3] 과 언약을 맺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비멜렉이 자신의 아내 사라에게 반하자, 아브라함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사라를 자신의 누이로 속이고 결혼에 동의했다. 야훼는 사라와 결혼하려는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 그 결혼을 막으니,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불평하며 배상금을 주었다. (창세기 20장)
후에 아비멜렉과 그의 군사령관 비골은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자고 아브라함을 찾아왔다.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종들이 자신의 우물을 빼앗은 것을 책망하며, 조약을 받아들였다. 브엘세바에서 조약을 맺은 후 아비멜렉과 비골은 필리스티아 땅으로 돌아갔다. (창세기 21장 22-34절)
후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사악 대에 아비멜렉에게 아내를 뺏길뻔한 사건과 우물로 인한 분쟁이 또 일어난다. (창세기 26장)[4]
3.2. 출애굽기/여호수아
일찍이 철기 시대에 돌입하여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했다. 그때문에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으로 가기 위해 필리스티아 땅이 아닌 다른 길로 우회해야 했다. 신명기에서는 필리스티아의 주요 방백인 가자의 기원을 갑돌(크레테)로 설명한다. 본래 가자에는 아위 인들이 살고 있었으나 갑돌에서 온 갑돌 인들이 아위 인들을 정복하고 그 땅에 거주했다는 것이다. (이는 현대 학계에서 필리스티아인의 근원을 남유럽인으로 추정하는 것과도 비교해볼 만하다.)
여호수아 시대부터는 이스라엘의 정복 목표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들의 전투력은 건재하여 이스라엘은 끝끝내 필리스티아를 정복하지 못하였다.
3.3. 판관기
판관기부터는 필리스티아가 본격적인 적대 세력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그중 삼손과 데릴라 이야기가 유명하다.
3.4. 사무엘기/열왕기
필리스티아는 이스라엘 왕국과 전쟁 중 엘리 대제사장의 두 아들을 죽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성하게 생각하여 전쟁터에 들고 온 언약궤를 빼앗아갔다. 그러나 야훼의 천벌과 언약궤를 지키는 간수들의 부주의로 인해 오히려 수많은 희생이 생겼다.
사울이 새로 이스라엘의 왕이 된 이후로도 한동안 승기를 타고 있었지만,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트린 통에 다시 야라레메카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사무엘상 17장)
다윗이 사울 왕에게 위협을 받아 망명을 오자 당연히 필리스티아의 많은 장수들이 이에 반발했다. (사무엘상 29장)
다윗이 없는 동안에 필리스티아는 이스라엘과 전투에서 승리했다. 이 전투에서 사울 왕은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살해 버리고, 요나단을 비롯한 사울의 아들들도 필리스티아에게 죽임을 당했다. (사무엘상 24장)
사울이 죽은 후 왕위에 오른 다윗에게 참패를 당해 세력이 약화되었다. (사무엘하 5장 17-25절, 21장 15-22절)
솔로몬 시대에는 이스라엘 왕국에 조공을 바쳤다. (열왕기상 4장 21절)
이스라엘 왕국은 이후 분열된 유다 왕국과 함께 필리스티아를 견제하였다. 후대의 많은 선지자들과 예언서들이 필리스티아에 대한 야훼의 징벌과 멸망을 이야기하였다.
이후 필리스티아의 주요 도시들은 아시리아, 고대 이집트#s-1.7 등의 강대국들의 공격을 받았으며, 남유다 왕국 및 다른 고대 중동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신바빌로니아 제국에 흡수되었다.
3.5. 고대 로마
로마 제국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유대인들의 반란에 분노하여, 유다이아 속주의 이름을 필리스티아에서 딴 '팔레스티나'(Palæstina)로 바꾸었다.
4. 현대 팔레스타인과의 관계
필리스티아는 '팔레스타인'의 어원이 되었다. 현대 팔레스타인의 어원인데다가 고대 이스라엘과 대치한만큼 팔레스타인인들한테 재조명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바다 민족 계통의 고대 필리스티아인과 팔레스타인인의 일파인 현대 팔레스타인인과의 관계는 비교적 희박하다.[5] 하지만 필리스티아 사람들이 갑자기 다 소멸된 것은 아니고 일단 이스라엘과 통혼이 잦았으며, 팔레스타인인들도 유전적으로 본다면 동유럽이나 미국에 살고있는 유대인들보다 더 원래 혈통의 유대인에 근접한 만큼 유전적으로 어느 정도 관계가 있다고는 할 수 있다.
5. 기타
고대 그리스에서 이민족들을 바바리안#s-1으로 부르던 것과 일맥상통하게 philistine은 '속물', '교양없는 사람'이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1] 대표적인 증거가 되는 단어로는 골리앗이 있다.[2] 필리스티아인 이외에는 9세기 경에 카르파티아 산맥 일대를 정복했던 헝가리인들의 사례가 있다. 당시의 서유럽인들이 가톨릭을 믿고있던 걸 따라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것이다. 또한 필리스티아의 경우 이외에도 그리스인들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이집트와 힌두스탄 정복으로 인해 이집트와 인도 아대륙 북부에 대거 이주한 뒤로, 각각 현지인들의 영향으로 이집트 신화나 불교로 개종한 바 있다.[3] אבימלך. "내 아버지(아비)는 왕(멜레크)"이라는 뜻이다. 아들인 이사악 때에도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파라오나 '벤하닷'(아람 군주의 칭호, 하다드 신의 아들이란 뜻이다)과 같은 군주의 칭호로 보기도 한다.[4] 이것은 사실 아브라함 대에 한번 일어난 사건을 창세기 정리 과정에서 혼동이 일어나 이사악 때에도 일어난 것으로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다.[5] 오히려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의 히브리인'이야말로 셈어계 근친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