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네덜란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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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네덜란드'''
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이전
2.2. 20세기
2.3. 21세기
3. 대사관
4. 대한민국에서 가는 방법
5. 문화 교류
6. 관련 문서


1. 개요


대한민국네덜란드의 관계. 네덜란드6.25 전쟁에 UN군의 일원으로 참전했다. 당연히 대한민국 정부는 휴전 후 네덜란드를 최우선 수교 대상국으로 지정했다. 1949년 대한민국 정부 승인, 1961년 수교했으며 이후로 꽤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이전


한국과 수교전에 헨드릭 하멜조선에 표류한 적이 있어서 조선에서의 경험담을 담은 하멜표류기를 발행했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얀 야너스 벨테브레가 조선에 표류한 뒤에 귀화해서 박연이 되었다.
조선 측에서는 홀란드를 음차한 화란(和蘭), 하란(荷蘭) 혹은 남만(南蠻)으로 불렸으며 외교문서나 실학자들 저서에는 주로 아란타(阿蘭陀)로 기록되어있다.[1]
대한제국 시절까지는 유럽권이지만 1905년 을사조약 이후까지 스페인과 함께 대한제국과는 영구 미수교국으로 남았다.
다만 실록이나 승정원일기[2]기록을 보면 네덜란드는 스페인과 함께 조선의 차기 수교국으로 고려되고 있었으나 이후 동학농민운동을미사변, 아관파천 등 혼란한 정세로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

2.2. 20세기


6.25 전쟁중 유엔군 교전국으로서 참전한 적이 있다. 이 때 4,748명의 네덜란드인 병사들이 한국에 파병되었고 강원도 등지(원주, 횡성, 인제 등)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122명이 사망하였고 3명이 실종되었다.[3] 참전 후 4,748명의 네덜란드 병사 중 3명[4]에게 '빌럼 군사훈장(Militaire Willems-Orde)'이 수여되었으며, 이 중 J. Anemaet 대위에겐 당시 네덜란드 국왕인 율리아나 여왕이 직접 '기사 십자훈장(Ridderkruis)'을 수여했다. 한국전쟁에 파병되기 전의 네덜란드 병사들. 그 외에 네덜란드의 6.25 전쟁 참전에 대한 내용을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이 곳을 참고하자.
정부 수립 이후 1961년에 정식으로 국교를 맺었다.
대한민국에게 꽤 친숙한 유럽 국가한국인들은 네덜란드에 대해 호감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근대사에 있어서 다른 서양 열강들과 달리 한국에 해악을 끼친 일도 없고[5] 딱히 충돌할 일도 없었다. 오히려 근대 이전 헨드릭 하멜이나 얀 야너스 벨테브레의 사례로 한국인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오는 데다가 헤이그 특사 파견 등으로 익숙하기도 하다. 1988 서울 올림픽 당시 개회식에서 한국어로 '''네덜란드 서울에 오다'''라는 문구를 새긴 양산을 들고 입장하기도 했다.[6]

2.3. 21세기


하지만 결정적으로 가까워진 것은 2002년 거스 히딩크 감독과 함께한 2002년 한일 월드컵. 히딩크 감독은 한국인들에게 있어 푸른 눈의 영웅으로 받아들여졌고 자연스레 히딩크의 조국 네덜란드에 대해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 네덜란드도 이때 한국에 많은 관심과 호기심을 보였다.
이 때 네덜란드가 예선에서 떨어지면서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출전할 수 없게 되었는데 히딩크 감독이 한국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서 활약하고 있으니 많은 네덜란드 국민들이 한국을 열성적으로 응원해 주었고 네덜란드 주요 언론에서도 히딩크에 초점을 맞춘 감이 없지 않았지만 한국 대표팀에 대해서 많은 기사를 내보냈다. 월드컵이 끝나고 네덜란드가 다시 월드컵에 출전하면서 관심이 잠잠해지기는 했지만 교류가 늘어나게 되었다. 옆나라 프랑스를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애매한 시선과 대비하면[7] 네덜란드에 대한 한국인들의 태도가 상당히 돋보인다. 20년 가까이 경과한 시점에서도, 여전히 네덜란드라고 하면 히딩크의 나라임을 상기하면서 호감을 표하는 한국인이 적잖을 정도. 히딩크 이후에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조 본프레레, 딕 아드보카트, 핌 베어벡, [8] 등 네덜란드인 감독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갔다.
네덜란드에도 대한민국처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있는데 대한민국과 네덜란드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함께 일본의 위안부 만행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인 일도 있었다. 2018년에 6.25 전쟁에 참전했던 네덜란드 참전 용사들이 당시 전사한 카투사 전우들의 이름을 찾아 나섰다.[9]
부산항만공사는 로테르담에 물류센터를 세운다고 밝혔다.[10] 론 눌케스 네덜란드 방위산업협회 회장은 주한 네덜란드대사관을 통해 대표적인 네덜란드 방위산업 기업들을 소개하고 한국과 네덜란드와의 방위산업 협력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한국과 네덜란드의 민족성을 언급했다.[11] 그리고 네덜란드 방산업체들이 2019년 10월에 한국의 ADEX에 참가할 것이라고 밝혔다.[12] 키움투자자산운융은 암스테르담에 있는 오피스 빌딩 퀸즈타워에 680억원을 투자했다.[13] 한국과 네덜란드의 제1차 경제공동위 회의가 9월 24일에 헤이그에서 개최되었다.[14]
한국 교민들도 네덜란드에 거주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인 입양아들도 네덜란드에 거주하고 있다.
코트라는 독일네덜란드에서 한국 화장품 브랜드 홍보를 위한 K뷰티 인 유럽 2019 행사를 잇따라 개최했다고 밝혔다.#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은 12월 1일까지 네덜란드와 독일 기업을 대상으로 현지 투자유치설명회를 연다고 밝혔다.#
부산항만공사는 삼성SDS와 로테르담 물류센터 운영계약을 체결했다.#
LS전선이 네덜란드에서 1,342억9천만원 규모의 해저케이블 공급사업을 수주했다.#
대우조선해양이 네덜란드 로테르담항과 손잡고 미래 먹거리인 스마트기술 확보에 나설 예정이다.#
미국과 네덜란드 기업 3곳이 충남 아산에 생산공장을 신·증축하기로 합의했다.#
주한네덜란드대사관에서 10월 13일부터 22일까지 네덜란드기업청과 공동으로 온·오프라인 동시 '한-네덜란드 수소 산업 교류 위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민연금공단은 네덜란드의 공적연금 운용공사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호주와 포르투갈 지역 사업에 공동투자하는 등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3. 대사관


대한민국은 헤이그에, 네덜란드는 서울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

4. 대한민국에서 가는 방법


대한민국에서 네덜란드까지는 인천국제공항 -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공항 직항이 있고 비행 시간은 약 12시간이다. 대한항공KLM 네덜란드 항공코드셰어(공동운항)한다. 그리고 한국인 관광객들도 네덜란드로 오는 경우가 많다.

5. 문화 교류


2012년부터 주 네덜란드 대사관의 주도 하에 2012년부터 한국 바로 알리기 작업을 시작해 네덜란드 교과서에 대한민국을 소개하는 부분을 따로 만들게 되는 쾌거를 이룩했다. 헨드릭 하멜의 고향인 호리험 시의 17개 학교에서는 2013년 9월부터 아예 대한민국에 대해 따로 수업을 편성했다. 거스 히딩크 감독까지 섭외했다.[15] 한류와는 전혀 거리가 먼 그야말로 청정지역(?) 가운데 하나였으나 방탄소년단이 2018년 하반기에 갖는 월드투어 가운데 유럽 지역 중 한 곳으로 추가되어 서서히 열기가 오르기 시작하고 있기도 하다.[16] 2014년 11월 3일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이 네덜란드 국왕으로서는 1961년 수교한 이후 처음으로 대한민국을 국빈 방문하기도 했다.
2015년에 네덜란드 호린험시에서 하멜 기념관이 개관한 이후 한국의 전통 문화를 소개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17] 2019년 4월 26일에 레이던 대학교 한국어학과에서는 한국어말하기대회를 개최했다.[18] CJ제일제당은 2019년안에 네덜란드의 뉴트레코에 동물사료사업부문을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19]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미슐랭 3스타 셰프가 제주도의 작은 식당을 찾아 요리비법을 공유했다.[20]
한국 내에서도 한국외대 네덜란드어학과가 설치되어 있고, 네덜란드어 책도 한국 내에서 발매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드물게 네덜란드어 어학연수를 하는 경우도 있는 편이다. 레이던 대학교는 한국학과가 설립되어 있다.
개신교 계통의 유학생들이 많이 가는 나라이며, 이들에 의해 국내에 네덜란드어 강습이 진행되기도 한다. 주로 보수적인 계통의 교단(예장합동, 고신, 합신 등) 소속 목회자들이 많이 나가는 편이며, 2000년대 이후 조금 더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주로 선택하는 지역은 깜뻔.
전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훌륭한 자전거 인프라가 구축되어있다보니 세계 각지에서 네덜란드의 자전거 인프라를 벤치마킹하여 도입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성공한 사례는 일본센다이시가 있다. 센다이시 역시 보도 옆에 자전거 전용 도로가 있으며[21] 자전거 전용 신호등까지 도입하기 시작했다.
서울특별시에서도 2020년부터 비슷한 자전거 인프라를 구축한다고 밝혔다. 네덜란드의 자전거 인프라를 벤치마킹했는지 불명이지만, 내용으로 미뤄보아 네덜란드의 인프라와 매우 흡사하다.
국악 그룹 타고의 코리안 드럼이 2020년 2월 28일까지 네덜란드 22개 도시에서 공연된다고 에이투비즈가 밝혔다.#
한국교류재단은 네덜란드 스테델릭미술관에서 백남준 작가 회고전을 연다고 밝혔다.#

6. 관련 문서


[1] 가령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라던가.[2] 고종 30년 계사 5월 4일[3] 현재 공개되어있는 정보에 따르면 북한에 포로로 잡혀간 경우는 없는 듯 하다.[4] Den Ouden 사령관, J. Anemaet 대위, J.F. Ketting Olivier 병사[5]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유럽 열강들이 아관파천 이후 대한제국의 많은 이권을 강탈한 것에 상당히 대비되는 면모다. 물론 당시 네덜란드가 상당히 쇠퇴해 한국에 간섭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심지어 제2차 세계 대전 때는 본토는 독일 국방군에게, 지배국은 일본군에게 공격받아 네덜란드라는 국가 자체가 잠깐 동안 멸망하는 경험까지 겪었다.[6] 링크된 동영상 39분 47초부터[7] 병인양요외규장각 도서 약탈, 개고기 식용 비하 등. 그러나 6.25 전쟁 당시 몽클라르 휘하의 군대가 대한민국을 지원해준 적도 있고... 아무튼 복잡미묘한 시선이다.[8] 허정무는 선수시절 PSV 아인트호벤에서 80~83시즌을 뛰었던 경력이 있다.[9] #[10] #[11] #[12] #[13] #[14] #[15] #[16] 참고로 암스테르담 공연은 1일 공연이라 네덜란드 방탄팬들이 너무 짧다고 불만이 많았다.[17] #[18] #[19] #[20] #[21] 우리나라의 자전거 도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다. 애초에 일본은 자전거인구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