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호

 


'''한주호
Han Joo Ho
'''
'''출생'''
1958년 9월 8일
'''사망'''
2010년 3월 30일 (향년 51세)
'''복무'''
[image] 대한민국 해군
'''기간'''
1975년 ~ 2010년
'''임관'''
준사관후보생 41기[1]
'''최종 계급'''
준위[2]
'''최종 보직'''
해군 UDT 교관
'''주요 보직'''
해군특수전전단 교육훈련반장
해군 특수전전단 특임대대 지원반장
'''자녀'''
1남[3] 1녀[4]
1. 소개
2. 생애
3. 순직
4. 상훈
5. 경력
6. 사망 관련 논란
7. 여담

'''(장비 부족과 반복된 잠수로) 몸에 상당히 무리가 가는 것이 사실이지만 자식 같은 애들이 물 아래 있어 잠수를 하지 않을 수 없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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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피격 사건 구조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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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대한민국 해군군인이며 해군 UDT/SEAL 준사관이었다. 종교불교이며, 법명은 해륜이다.

2. 생애


[image]
1975년 2월, 해군하사로 입대하고 25년간 부사관으로 복무한 후 준사관후보생 과정을 지원하여 준위로 임관하였으며, 이듬해부터 35년간 줄곧 특수전전단에 근무했다. 한 준위는 교육훈련대에서 18년간 교관경력을 비롯해 특공대 팀장, 교육훈련반장, 특임대대 지원반장 등을 거쳤고, 2000년 준위로 임관했다. 또한 지난 2002년 8월 KBS에서 UDT요원이 되기 위한 48기 훈련생도들의 훈련과정을 생생히 담아 보도한 수요기획 "지옥에서 살아오라!"에서 훈련교관으로 등장하기도 했다.[6] 2009년 3월에는 청해부대 소속으로 소말리아파병되기도 했다. 당시 파병 장병 중 최고령이었다. 당시 한 준위는 '''"군인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기본임무"''' 라며 "나라가 여러모로 어려운데 이번 파병이 국민 모두에게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밝힌 '참 군인'이었다.해군지 2009년 03·04월호, 33페이지 참조.
2000년에는 부산광역시 태종대 앞바다에 유실된 M16 도약지뢰와 대전차지뢰를 폭파해체한 바가 있다. #
군에 입대한 계기는 집안이 가난해서이다. 부사관 복무 조건으로 고등학교를 군장학생으로 마쳤고 장기복무에 합격한 후 준사관후보생으로 임관한 것.

3. 순직


2010년 3월 27일 천안함 피격사건 하루 뒤의 새벽 백령도로 급히 파견됐다. 한주호 준위는 출동 명령이 없었지만, '아들과도 같은 이들이 바다 속에 있다.' 라는 통화와 함께 자발적으로 구조작전에 참여하였고, 그는 30일 함수 부분에서 탐색구조작업을 펼치다 잠수병으로 실신해 미 해군 구난함 USS 살보(Salvour) 함의 체임버(Chamber·감압실)에서 치료를 받다가 오후 5시쯤 순직했다. 이때가 향년 51세. 그는 함장실에 실내 진입을 위한 인도용 밧줄을 설치하는 팀에 속해 있었다.
그는 아끼던 후배와의 전화에서 '오늘 무조건 객실 전부를 탐색해 후배들을 구해줘야 겠어' '가족들이 애태우고 있다, 빨리 구조해야해, 책임지고 해낼 거야' 등 희생정신과 군인정신을 보여주었고, 영웅이라는 칭호도 부족할 만큼 진정한 군인과 선배로서의 모습을 모여주었다. 처음에는 보국훈장 '광복장'만이 추서되었지만 한 준위의 그동안의 군인으로서의 업적과 공로에 비해 부족한 예우라는 여론의 질타가 이어졌고[7],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무공훈장 수여 검토 후에 충무무공훈장이 추서되었다. 그의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 제3 장교묘역에 안장되었고, 그 희생은 국정 교과서에 수록되었다.

영결식 당시의 영상이다. 당시 운구행렬이 해군 특전대원들에 가로막히는 돌발상황이 발생하였는데 이는 '''한주호 준위를 이대로 그냥 보낼 수는 없다'''는 전우들의 뜻이었고, 이들 선후배 UDT전우들이 군가 《사나이 UDT》를 목메어 부르며 그의 영전에 바쳤다. 그리고 한주호 준위가 풋내기 시절이었을 때 고참이었을 퇴역노병들까지 모두 목놓아 군가를 불렀다. 이 한 장면만으로도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 독기서린 특수부대원들이 눈물을 쏟아낸다는 것만으로도 고인이 살아생전에 얼마나 덕을 쌓았는지 알 수 있다. 군가를 다 마친 뒤 운구행렬은 대전현충원으로 이동했다.
한주호 준위는 동료들과의 통화에서 '오늘(2010년 3월 30일)안으로 모든 실종자들을 책임지고 구조해내겠다.'고 말하고 구조 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이 통화내용은 결국 유언이 되고 말았다.
아들과의 마지막 통화에서 고 한주호 준위는 '많이 춥고 힘들지만 아빠는 끝까지 계속 할꺼야' 라며 의지를 다졌다고 한다.
한주호 준위는 주위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인격으로, 임무에 있어서는 강인한 책임감으로 무장된 아주 훌륭한 군인이었다고 한다.

4. 상훈




5. 경력


참고로, 아덴만 여명 작전 당시 UDT/SEAL 대원들이 삼호주얼리호에 승선하기 위해 사용한 사다리는 한주호 준위가 만든 것이라고 한다.

6. 사망 관련 논란


한주호 준위의 사망장소에 대해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데, 천안함 함수에서 작업 중 사망한 것이라는 정부 발표의 구체적 자료나 증언들이 서로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해도, 국방부 백서, 함수 구조 책임자였던 권영대 UDT대대장의 증언이 다 달랐던 것이다. 이에 따라 정확한 사고지점에 대해서도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링크 KBS가 보도했던 제3의 부표지점 설에 대해서도 정확한 확인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주호 준위가 제대로 된 장비를 장착하고 구조작업에 나섰더라면 숨을 거두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논란이 되고 있다. 실제로 한주호 준위가 사망 당시 사용하던 장비는 시가 30만 원짜리 장비로서 80년대에 사용하던 장비였는데 만약 한주호 준위가 200만 원짜리 최신장비를 사용했더라면 이렇게 순직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한 준위의 순직을 계기로 해군을 무작정 욕하던 목소리가 쏙 들어갔다. 당시 이들은 초인적인 인내력을 발휘해 각종 안전 기준을 넘는 상태에서 기를 쓰고 탐색 및 구조 작업을 하고 있었으며 바다 상태도 SSU 못잖은 잠수 전문가들인 미합중국 해군 잠수사들이 작업이 금지되어 있는 기준이라며 잠수를 거부할 정도로 험했다. 이는 음모론을 신봉해 이를 증명하겠다며 자원하여 잠수했다가 실려간(...) 민간인 다이버도 증언했으나, 악질 음모론자들은 심심하다는 이유로 흥미나 끌려고 그 다이버가 해군에 매수됐다는 전혀 근거도 없는 억지 주장만 반복했다. 그러다가 한 준위가 순직하자, 그때서야 겁이 났는지 난데없이 해군이 사람을 혹사했다고 태도를 바꾸고 난 몰라요 하며 다시 억지만 부리다가,''' "여론을 그따위로 조장해 UDT 대원들이 혹사당하도록 부추겨 한주호 준위를 죽인 완전히 미친놈들이 뭘 잘했다고 떠드느냐?", "한주호 준위는 너희들이 억지를 부려서 죽게 했다. 이제 속 시원하냐?! 왜 말이 없어! 턱이 빠졌냐!? 입이 박살났냐!? 당장 진심으로 사과하고 자수하고 진짜 얼굴 공개하고 사죄해라!!! 이 진짜 미치광이 비겁자들아!!!" "북한이나 중국 일본에게 뇌물받고 대한민국을 망치려고 이러냐! 이 진짜 매국노들아!!!"와 같은 비난을 받고 조용히 숨어서 기어들어갔고 비겁하고 더러운 양심을 악마에게 팔아버린 인간들 답게 아무말도 안했다. 음모론자들 외에도 천안함 전사자 유가족들 또한 현장 상황도 모르면서 감정만 앞세우며 해군이 작업을 게을리한다고 닥달하고 있었는데, 이후 한주호 준위의 유가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했고 얼마후 더 이상의 희생자가 나오는게 할수 없다고 수색을 중단해 달라고 해군에 요청했다. '''
유가족들은, 물론 가족이 실종되어 애타는 마음에 바다의 상황에 완전히 무식해서 냉정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건 초기에 출입 절차를 무시하고 2함대에 들어오려 하다 이를 제지한 해군 헌병들에게 '''진짜 미친 유가족들이 욕설을 퍼붓고''', 상황 설명을 하고 나가는 함장의 승용차와 2함대에서 임시로 설치한 천막을 색이 검어[8] 죽은 사람이라 여겨진다는 이유로 불법으로 파손하고 억지부리며 욕질만 하는 등의 정당한 법까지 무시하는 진짜로 솝좁고 미친 행동들을 골라서 하면서 여론의 반응이 대단히 좋지 않았고 엄청나게 비판받고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유가족 측이 현장 상황도 전혀 모르면서 무리한 구조작업을 요구하여 결국 억울한 희생자를 냈다는 비판까지 들었고 한 준위가 순직하자 그제서야 죽을죄를 지었다고 빨리도 사과한다.
SSU가 아니라 UDT이자 고령자인 한주호준위가 잠수하게된 상황에 대해서는 여러말들이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특수부대 갤러리에서는 SSU, UDT 출신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가끔 말싸움을 하기도 한다. SSU 측 사람들은 실제적으로 마지막까지 일한 건 우리인데 한주호 준위 사고로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UDT에게 돌아가 본인들이 소외되었다고 주장하고 UDT 측 사람들은 당시 잠수가능자 지원 할 당시 잠수를 거부하여 지원자 조사하던 해군본부 측 장교에게 쌍욕까지 듣는 굴욕을 당해놓고 이제와서 무슨 소리 하냐고 주장한다 [9]
한미연합사령부 사령관이었던 미 육군대장 월터 샤프 장군이 조문 후 유가족에게 개인적으로 조의금을 건넸는데, 몇몇 음모론자들이 이를 두고 "미 해군 잠수함과 충돌 후 사망한 자국 군인들의 시신을 인양하다 죽은 대가로 미군이 준 돈"이라는 황당한 음모론을 전개하다 다굴을 맞았고, 몇몇은 형사 처벌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국군장병이 순직, 전사할 경우 1계급을 특진을 추서하게 되는데 한나라당에서 한주호 준위소위 특진을 제안하겠다는 발언을 해서 비난을 받았다. 같은 위관이지만 소위는 장교 계급이고 준위는 그 아래 준/부사관 계급에 속해있기 때문. 다만, 준위라는 계급의 상징성을 생각하면 소위추서는 1계급 특진 자체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만큼 논란이 될 여지가 있을지언정, 절차상으로 물어보는 것 자체는 당연하다. 이 문제는 유가족들이 이를 사양하여 일단락되었다.[10]

7. 여담


그를 추모하는 동상[11][12]이 해군교육사령부 정문에 진해만을 바라보는 위치에 세워져있어 매해 3월 30일 추모식을 거행한다.

UDT 53차 출신이자 현재는 군튜버로 활동하고 있는 에이전트 H도 살아생전 그가 나라와 UDT 후배들을 위해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셨던 분이며 그 과정속에서 순직하였다고 회고하고 있다.

[1] 본래는 군장학생 하사 출신이다. 하사에서 준위로 임관하면 군번이 새로 나온다.[2] 여당에서 특진을 고려했지만 유족들이 거부했다.[3] 한상기[4] 한태경[5] 한주호 준위는 천안함 피격 당시 경험 많은 베테랑으로서, 경험이 적은 후배들의 사고를 염려하여, 본인이 살신성인하여 보다 많은 다이빙을 자진하였다.[6] 8년 후 한주호 준위가 순직하면서 추모 차원에서 재방송되기도 했는데, 2020년 가짜사나이의 흥행으로 유튜브에 업로드 되었다. #1 #2[7] 징계 없이 정년 퇴임하는 공무원에게도 주어지는 수준의 훈장이다.[8] 군용 천막의 겉에 입히는 방수포가 고무재질이라 검은색이기 때문이다. 육군은 위장을 위해 국방색을 칠하지만, 해군은 딱히 위장막을 칠 일이 없으므로 비용절감을 위해 별도 도장공정은 거치지 않고 마감 처리를 한다. 그 때문에 색이 검었던 것. 딱히 정치적인 의도나 미신적인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9] 당시 잠수여건이 워낙 악조건이어서 잠수자의 안전상 잠수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퍼져가는 음모론과 유가족들의 압박으로 잠수를 강행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해군은 SSU, UDT 대원들을 모아놓고 지원자를 받았다고한다 하지만 구조전문부대인 SSU가 아닌 UDT측에서만 소수의 지원자가 나와서 지원자 중 한 명인 한주호 준위가 잠수에 투입 되었고 반복적인 잠수 끝에... 이 때문에 당시 지원자를 조사하던 해군본부 측 영관급 장교가 노발대발하여 말 그대로 육두문자를 퍼부었다고하며 이는 당시 국방부장관이었던 김태영 장관의 발언을 통해서도 유추 가능하다 다만 한준위 사고 이후를 기점으로 잠수를 하겠다는 인원들이 많이 늘었다고한다.[10] 게다가 당시 아들이 육군 중위로 있었던 만큼 입장이 난처하기도 하다. 준사관이면 실제 계급체계를 떠나 의식상으론 웬만한 위관,영관급 장교보다 더 비중있는 위치기에 아무리 특진이라도 소위면 좀......[11] 모교인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 정문 앞에도 있으며, 포항시 남구 송도동 동빈내항에 정박된 포항급 초계함 포항함의 함수에도 있다.[12] K201을 단 K2 소총을 든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