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카사쿠 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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深作欣二
1930년 7월 3일 ~ 2003년 1월 12일
일본의 영화 감독. 이바라키현 미토시 출신. 아내는 여배우 출신의 나카하라 사나에. 아들은 마찬가지로 영화감독인 후카사쿠 켄타.
대한민국에서는 배틀로얄의 감독으로만 알려졌지만 정작 일본에서는 배틀로얄이 아니라 야쿠자 영화로 더 유명하다. 일본위키에 의하면 SF 영화나 문예 영화도 만들었다.
영화 제작에 의욕적인 인물로 의리없는 전쟁 촬영 때는 메가폰으로 지시를 내리면 항상 '''가라!''','''해라!''','''죽어라'''를 외쳤다고 한다. 심야까지 촬영이 길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을 거느리고 술을 마시러 갔다가 이튿날 아침에 또 촬영에 들어가는 생활을 몇 달 동안 했다. 충분히 잠을 잘 수 없었던 배우들은 창백한 얼굴을 숨기기 위해 차가운 수건을 대거나 다크서클을 숨기기 위해 선글라스를 썼다. 아침에 약하고 밤이 되면 상태가 좋고 촬영이 매일 심야까지 계속 돼서 후카사쿠 조 = 심야작업 조를 가리킨다. 2003년 전립선암으로 사망했는데 전립선암에 걸렸을 당시 성기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항암제 투여를 스스로 거절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후카사쿠 킨지의 영화에서는 영화 장난감 빼고는 '''사람이 죽는다(...)'''. 다만 후카사쿠 킨지 자신은 전쟁을 겪어서 폭력을 반대한다고 하는데 그러하고 모든 영화가 허무하게 끝나는 건 아니다. 후카사쿠 킨지는실록영화에 입문한건 당시 일본 B급 영화계는 실록영화가 대세였기 때문이었다. 실록 영화는 실화에 기반한 야쿠자 영화를 이르는 말인데 임협영화라고도 한다. 일본에서 '''실록'''하면, '''조선왕조실록'''이 아니라 야쿠자 이야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일본 영화계는 1950년대에 시대극 붐이 일어났다. 그러나 구로사와 아키라감독과 미후네 토시로 주연의 요짐보와 츠바키 산주로가 흥행하면서 일본 시대극은 변신을 한다. 그전의 시대극은 로닌도 서민도 야쿠자도 짙은 화장을 했다. 칼로 베어도 피나 베이는 소리도 나오지 않는 가부키풍 이었지만 이제는 그로테스크 시대극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던중 츠루타 코지의 인생극장[1] 가 대박나고 1964년에는 본격 야쿠자 영화 바쿠토가 나와서 야쿠자 영화는 흥행의 시대가 된것이다. 물론 그 때 쇼와잔협전도 나오긴했다.
그러던중 질과 양에서 높은 수준인 토에이 야쿠자 영화가 다른 영화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인생극장 시리즈, 쇼와잔협전, 일본협객전등이 나오기 시작했다. 예술영화 감독으로 재조명중인 이시이 테루오도 야쿠자 영화를 만들었다고... 이런 야쿠자 영화는 전공투들에게도 인기를 얻어서, 하루의 운동이 끝나면 영화관으로 직행했다. 그 당시에는 TV, 특히 컬러TV가 많이 보급되지 않아서 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보급은 되긴 되었는데 가난한 자취생, 노동자, 건달, 한량들은 살 길이 없었다(...)
사회가 혼란스럽자 정보를 갈구하던 대중들은 주간지의 옐로우 저널리즘덕에 자극적인 걸 접할수있게 되자 야쿠자 영화는 힘을 잃었다. 하지만 야쿠자 영화의 금자탑인 의리없는 전쟁이 대박나자 현실을 각색한 야쿠자 영화가 인기를 끌고 후카사쿠 킨지는 감독으로써의 주가가 올라갔다. 높은 관객에도 불구하고 야쿠자를 미화해서 비난받는 등 사회적 지위가 낮고 영화계에서도 무시를 당하던 야쿠자 영화였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허무주의적인 베이스의 의리없는 전쟁은 각계로 절찬되어 영화 작품상을 수상하고 스가와라 분타도 주연 남우상을 수상한다. 그러나 비디오의 보급으로 야쿠자 영화는 추락하고 비디오 영화의 시대가 열린다.
그의 영화는 야쿠자 영화들이 많은데 주인공들 대부분이 허무하게 죽는다(...). 사실 당시 심의가 영화 속 야쿠자들은 죽거나 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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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계전생 1981년작.
야마다 후타로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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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클락 타워 3의 이벤트 무비 감독도 맡았다. 이것도 유작에 해당한다.
深作欣二
1930년 7월 3일 ~ 2003년 1월 12일
1. 소개
일본의 영화 감독. 이바라키현 미토시 출신. 아내는 여배우 출신의 나카하라 사나에. 아들은 마찬가지로 영화감독인 후카사쿠 켄타.
대한민국에서는 배틀로얄의 감독으로만 알려졌지만 정작 일본에서는 배틀로얄이 아니라 야쿠자 영화로 더 유명하다. 일본위키에 의하면 SF 영화나 문예 영화도 만들었다.
영화 제작에 의욕적인 인물로 의리없는 전쟁 촬영 때는 메가폰으로 지시를 내리면 항상 '''가라!''','''해라!''','''죽어라'''를 외쳤다고 한다. 심야까지 촬영이 길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을 거느리고 술을 마시러 갔다가 이튿날 아침에 또 촬영에 들어가는 생활을 몇 달 동안 했다. 충분히 잠을 잘 수 없었던 배우들은 창백한 얼굴을 숨기기 위해 차가운 수건을 대거나 다크서클을 숨기기 위해 선글라스를 썼다. 아침에 약하고 밤이 되면 상태가 좋고 촬영이 매일 심야까지 계속 돼서 후카사쿠 조 = 심야작업 조를 가리킨다. 2003년 전립선암으로 사망했는데 전립선암에 걸렸을 당시 성기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항암제 투여를 스스로 거절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2. 후카사쿠 킨지와 영화
후카사쿠 킨지의 영화에서는 영화 장난감 빼고는 '''사람이 죽는다(...)'''. 다만 후카사쿠 킨지 자신은 전쟁을 겪어서 폭력을 반대한다고 하는데 그러하고 모든 영화가 허무하게 끝나는 건 아니다. 후카사쿠 킨지는실록영화에 입문한건 당시 일본 B급 영화계는 실록영화가 대세였기 때문이었다. 실록 영화는 실화에 기반한 야쿠자 영화를 이르는 말인데 임협영화라고도 한다. 일본에서 '''실록'''하면, '''조선왕조실록'''이 아니라 야쿠자 이야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일본 영화계는 1950년대에 시대극 붐이 일어났다. 그러나 구로사와 아키라감독과 미후네 토시로 주연의 요짐보와 츠바키 산주로가 흥행하면서 일본 시대극은 변신을 한다. 그전의 시대극은 로닌도 서민도 야쿠자도 짙은 화장을 했다. 칼로 베어도 피나 베이는 소리도 나오지 않는 가부키풍 이었지만 이제는 그로테스크 시대극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던중 츠루타 코지의 인생극장[1] 가 대박나고 1964년에는 본격 야쿠자 영화 바쿠토가 나와서 야쿠자 영화는 흥행의 시대가 된것이다. 물론 그 때 쇼와잔협전도 나오긴했다.
그러던중 질과 양에서 높은 수준인 토에이 야쿠자 영화가 다른 영화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인생극장 시리즈, 쇼와잔협전, 일본협객전등이 나오기 시작했다. 예술영화 감독으로 재조명중인 이시이 테루오도 야쿠자 영화를 만들었다고... 이런 야쿠자 영화는 전공투들에게도 인기를 얻어서, 하루의 운동이 끝나면 영화관으로 직행했다. 그 당시에는 TV, 특히 컬러TV가 많이 보급되지 않아서 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보급은 되긴 되었는데 가난한 자취생, 노동자, 건달, 한량들은 살 길이 없었다(...)
사회가 혼란스럽자 정보를 갈구하던 대중들은 주간지의 옐로우 저널리즘덕에 자극적인 걸 접할수있게 되자 야쿠자 영화는 힘을 잃었다. 하지만 야쿠자 영화의 금자탑인 의리없는 전쟁이 대박나자 현실을 각색한 야쿠자 영화가 인기를 끌고 후카사쿠 킨지는 감독으로써의 주가가 올라갔다. 높은 관객에도 불구하고 야쿠자를 미화해서 비난받는 등 사회적 지위가 낮고 영화계에서도 무시를 당하던 야쿠자 영화였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허무주의적인 베이스의 의리없는 전쟁은 각계로 절찬되어 영화 작품상을 수상하고 스가와라 분타도 주연 남우상을 수상한다. 그러나 비디오의 보급으로 야쿠자 영화는 추락하고 비디오 영화의 시대가 열린다.
3. 영화들
그의 영화는 야쿠자 영화들이 많은데 주인공들 대부분이 허무하게 죽는다(...). 사실 당시 심의가 영화 속 야쿠자들은 죽거나 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 검은 도마뱀, 흑장미의 관. 1968~1969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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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 슬라임 1969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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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라 도라 도라 1970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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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도외인부대(박도:바쿠토는 도박하는 야쿠자를 의미함) 1971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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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부끼는 군기 아래에서 1972년작.
후카사쿠 킨지의 반전 사상이 잘 드러나 있는 영화. 남편이 뉴기니 전선에서 애매하게 사망 처리가 되어서 전몰자 보상을 못 받게된 미망인이 남편의 전우들을 만나 남편의 생전의 행적과 남편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더듬어가는 내용인데, 상관의 구타, 식인, 포로 학대, 약탈 행위 등 당시 막장이던 일본군의 행태를 다루고 있다. 심지어 PTSD에 시달리는 군인도 다루고 있으며, 자위대의 팽창에 우려를 보내는 내용도 담고 있다.
[image]- 사람 베는 불량배-광견 삼형제 1972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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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리없는 전쟁 1973~1974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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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리의 무덤 1975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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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쿠리쿠 대리전쟁 1977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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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베르만 형사 1977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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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로부터의 메세지 1978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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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의 날 1980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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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계전생 1981년작.
야마다 후타로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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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틀로얄 2000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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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틀로얄 2 - 레퀴엠 2003작.
4. 그 외
게임 클락 타워 3의 이벤트 무비 감독도 맡았다. 이것도 유작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