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준(1986)

 


'''前 스타크래프트 1, 2 프로게이머'''
'''現 아프리카 TV BJ, 유튜버'''
<colbgcolor=#fa5858> '''닉네임'''
투신박성준
'''이름'''
박성준(朴聖俊)
'''영문 이름'''
Park Sung-Jun
'''생년월일'''
1986년 12월 18일 (37세)
'''신체'''
178cm, 125kg, O형
'''출신지'''
인천광역시
'''거주지'''
서울특별시 동작구
'''종교'''
불교
'''본관'''
밀양 박씨
'''소속'''
'''POS / Egosys POS / MBC GAME HERO'''
SKT T1
STX SouL
StarTale
Longzhu Gaming
'''가족 관계'''
아버지, 어머니[1]
'''병역'''
육군 제20기계화보병사단 병장 만기 전역
(2013.10.23~2015.7.22)
'''종족'''
[image]'''저그'''
'''부종족'''
[image]테란
'''ID'''
'''July'''
July[z-zone]
스타테일안심이(GSL 출전 아이디는 July)
'''경력 상금'''
$230,735.90 USD (₩259,532,000)[2]
'''데뷔'''
2002년 9월 POS(舊 MBC GAME HERO) 입단
'''별명'''
'''투신(鬪神)''', 투돈(鬪豚), 안심
'''링크'''

1. 주요 기록
1.1. 스타크래프트 : 브루드 워
1.1.1. 개인 단위
1.1.2. 팀 단위
1.1.3. 전적
1.2. 스타크래프트 2
2. 개요
3. 스타크래프트 1 활동
3.1. 데뷔 초기와 투신의 탄생
3.3. 웨이버 공시 사태와 슬럼프
3.4. STX SouL로의 이적과 골든마우스 달성
4. 플레이 스타일
4.1. 트레이드마크
4.2. 테란전
4.3. 프로토스전
4.4. 저그전
4.5. 명경기
5.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로서 첫 걸음과 StarTale의 창단
6. 스타크래프트 2 활동/2010년
7. 스타크래프트 2 활동/2011년
8. 스타크래프트 2 활동/2012년/프로게이머 생명 황혼기
9. 콩두컴퍼니 크루 및 BJ로서의 활동
10. League of Legends Longzhu Gaming 코치로서 활동
11. 다시 BJ로서의 활동
12. 특이사항
12.2. 온게임넷 측의 찬밥 대우
12.3. 그 외의 고난과 푸대접
13.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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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기록


> 개인 리그 우승, 준우승 총합 상금 : 1억 1천만원 + $ 10,000

1.1. 스타크래프트 : 브루드 워






1.1.1. 개인 단위



1.1.2. 팀 단위


  • 2005년 SKY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 개인전 다승왕(이고시스 POS) - 강민, 송병구, 박지호, 김준영, 오영종과 함께 공동 수상.
  • 2005년 제1회 KeSPA Cup 3위(POS)
  • 2006년 SKY 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 준우승(MBC GAME HERO)
  • 2007년 SKY 프로리그 2006 후기리그 우승, 결승전 MVP(MBC GAME HERO)
  • 2007년 SKY 프로리그 2006 통합 챔피언전 우승(MBC GAME HERO)
  • 2007년 제2회 KeSPA Cup 우승(MBC GAME HERO)
  • 2008년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 4위(STX SouL)
  • 2008년 경남-STX컵 마스터즈 2008 우승(STX SouL)
  • 2009년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6강 플레이오프(STX SouL)
  • 2009년 경남-STX컵 마스터즈 2009 준우승(STX SouL)
  • 2010년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09-10 4위(STX SouL)
  • 2010년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3위(STX SouL)
  • 2010년 경남-STX컵 마스터즈 2010 준우승(STX SouL)

1.1.3. 전적


'''박성준의 스타1 양대 개인리그 A매치 통산 전적'''
방송사
온게임넷 A매치 총 전적
MBC게임 A매치 총 전적
'''양대 개인리그 합산 전적'''
vs 테란
84전 41승 43패 (48.8%)
35전 16승 19패 (45.7%)
119전 57승 62패 (47.9%)
vs 저그
37전 22승 15패 (59.5%)
23전 11승 12패 (47.8%)
60전 33승 27패 (55.0%)
vs 프로토스
49전 35승 14패 (71.4%)
36전 18승 18패 (50.0%)
85전 53승 32패 (62.4%)
총 전적
170전 98승 72패 (57.6%)
94전 45승 49패 (47.9%)
264전 143승 121패 (54.2%)

1.2. 스타크래프트 2



2. 개요


엄청난 컨트롤과 전투능력으로 투신(鬪神), '''프로토스의 재앙'''이라고 불렸던 저그 프로게이머.
이름도 같은데 주 종족도 같은 '삼성 팀 박성준'과 구분짓는 'P성준(엠성준)'으로 불렸다.[3] 삼성준 은퇴 뒤에는 박성준 하면 대개 이 선수를 일컫는다.
방송에서 최초[4] 뮤짤을 선보이기도 했다. 물론, 뮤짤을 뮤탈 부대와 다른유닛과 묶어서 현재의 형태로 굳어지게 해 '대중화' 시킨 건 서경종이다. 박성준이 쓴 뮤탈뭉치기는 미네랄에 뮤탈을 찍으면 뭉치는 방식을 이용한 건데, 원하는 형태로 컨트롤하기가 훨씬 어렵고 까다롭다.
2010년부터 2011년에 이르기까지, 스타크래프트 방송과 스타크래프트2 방송에 동시에 참여하고 있는 유일한 프로게이머이기도 했다. 신애와 밤샐기세.scx이긴 하지만, 이윤열 기록 말살 등 KeSPA와 스타2 판의 대립 형세를 보면 특이한 경우는 맞다.
밑에 있는 내용은 박성준이 갖고 있는 브루드 워 케스파 기록이다.
  • 온게임넷 스타리그 저그 최초 골든마우스#s-1 수상자 - 2번째는 이제동.
  • 온게임넷 스타리그 저그 최초 우승자 - 스타리그 기준 저그 최초로 테란을 꺾고 우승한 저그이기도 하다.
  • 온게임넷 스타리그 역대 최고 커리어 보유자 - 박성준은 온게임넷 스타리그 3회 우승/2회 준우승을 이뤘으며 박성준의 뒤로 3회 우승/1회 준우승의 성적을 거둔 이윤열, 이제동, 이영호가 위치해 있다.
  • 역대 최연소 로얄로더 기록 보유자 - 질레트 스타리그 우승 당시 박성준은 만 17세 7개월.
  • 역대 저그 다승 3위 - 역대 저그 다승 1위 이제동 574승, 2위 홍진호 520승, 3위 박성준 389승.
  • 역대 저프전 승률 1위 - 100전 이상 플레이 한 프로게이머 기준이며, 공식전 전적 77승 36패로 68.1%를 기록. 2위 이제동은 108승 53패로 67.1%를 기록. 현재는 모든 기록이 말소된 역시 한때는 를 자랑하던 시절도 있었으나, 이 역시 100전 이상 플레이 하지 못한 기록인데다 이미 모두 말소되어 0승 0패에 불과하고, 조용호 역시 43승 25패로 63.8%를 기록, 홍진호는 165승 110패로 60.0%를 기록해 투신의 저프전이 그야말로 후덜덜한 수준이었음을 알 수 있다.
  • 3종족 포함 케스파 대 프로토스전 승률 2위 - 100경기 이상 플레이한 프로게이머 기준. 이제동이 박성준보다 경기수가 더 많지만 백분율로만 순위를 매기면 저프전 역대 1위 박성준 공식 전적 77승 36패로 승률 68.1% 기록해 3종족 통합 전체 2위. 테프전 역대 1위 이영호 공식 전적 119승 53패로 승률 69.2% 기록해, 3종족 통합 대 프로토스전 1위 기록. 프프전 역대 1위 김택용 공식전적 100승 57패로 승률 63.7% 기록해 3종족 통합 전체 5위. 이경민의 경우 프프전 공식전적 46승 26패로 승률 63.9%를 기록하며 김택용보다 우수한 모습을 보였지만 100경기 이상 플레이하지는 못했기때문에 제외. 참고로 3종족 통합 대 프로토스전 3위는 이제동 저프전 67.1%, 4위 정명훈 테프전 65.9%.

3. 스타크래프트 1 활동



3.1. 데뷔 초기와 투신의 탄생


본래 테란이 주 종족이었다고 한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단축키도 안 썼다'고 하니 그렇게 잘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클릭질만으로도 찍어눌렀을수도.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가서, 당시 학생이던 박성준은 POS팀의 숙소에 놀러오다 하태기의 권유로 프로게이머가 되었고, 이후 서형석 코치의 조언에 따라 주종족을 저그로 전향하였다. 당시 저그 최고의 신의 왼손으로 꼽히던 저그의 조용호보다도 빠른 손을 가지고 있었다.[5] 당시 POS는 리그 최하위권 팀이었고, 팀의 생존을 위해 하태기와 서형석 코치는 박성준의 육성에 모든 역량을 쏟아붓는다. 박성준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프로게이머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걸었다.
이 전략은 보기좋게 성공해서 질레트 스타리그에서 임요환을 챌린지 리그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질레트 스타리그로얄로더로 대파란을 일으키며 결승까지 진출한다. 16강에서는 당시 온게임넷 스타리그 피씨방 예선부터 올라온 최후의 아마추어 게이머 한동욱을 상대로 4드론을 선택하며[6], 저프전 승률 70%를 바라보던 전태규노스탤지아에서 캐관광 보내버리는 등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고, 8강에서는 퍼펙트테란 서지훈을 상대로 2:1 승리를 거두며 4강에 올랐다. 그야말로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7]
하지만 박성준의 결승 진출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4강 상대는 최연성. 이 시절 최연성은 이미 MSL 2회 연속 우승을 차지한 괴물이었으며, 최연성이 질레트배 로얄로더를 달성하는 것은 당연해보였다. 그도 그럴것이 4강전 직후까지 최연성은 비공식전 포함 도합 저그전 '''25연승''' [8], '''45승 2패''' [9]로 저그를 씹고 뜯고 디져트 수준으로 압살해왔다. 당시 최연성은 특유의 거만한 인터뷰[10]로 '''저그는 내 라이벌이 될 수 없다!'''고 말했을 정도였으며, 이미 TG삼보배 MSL에서 홍진호는 최연성에게 셧아웃 패배를 당했다. 그뿐만 아니라 3주전 Spris MSL 2004 8강에서 박성준은 이미 최연성에게 완패한 일도 있었다. 상대전적 '''0:6'''의 열세였다.
그러던 중 박성준은 iTV 랭킹전 결승과 질레트 스타리그 4강, 두 주요 무대에서 최연성을 만나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당시 iTV 랭킹전은 리그 진행 방식이 독특했는데, 16명 선수가 4개 조로 듀얼 토너먼트 방식으로 경기하고, 각 조의 1 ~ 4위를 정한다음 그 순위대로 다시 조를 편성하여 토너먼트를 진행해 여기서 1 ~ 16위의 순위를 매긴다. 그 다음 16위 - 15위, 그 승자가 14위와 경기... 하는 방식이었다(여기까지 1라운드). 그리고 다시 한번 연승전 방식의 경기를 진행(이것이 2라운드)해 1 - 2위가 결승전을 하는 방식이었다.
문제는 이 1라운드에서 '''첫 본선 진출자'''인 박성준이 1위[11]를 먹었고, 최연성은 9위로 시작해 7명을 '''올킬'''하고 1라운드 결승까지 오른 것이었다.
6월 30일 열린 iTV 7차 랭킹전 1라운드 결승은 녹화 방송이었는데[12], 여기에서 박성준은 1세트에서는 7드론 저글링 이후 빠른 럴커로 한번 털고, 2세트는 중앙 교전 압승 후 뮤탈컨과 럴커 조이기로 디텍터가 스캔 하나뿐이던 테란을 완전히 보내버렸다.
녹방 경기의 결과가 뜨자 대다수 팬들은 광분하였다. '''최연성이 스타리그에 집중한거다!'''와 같은 반응이 대부분일 정도.
그러나 질레트 스타리그 4강전에서 박성준은 5경기 연속 저글링 러커로 최연성을 공격하며 3:2 승리했다. 이 경기에서 박성준은 5경기 내내 화끈한 공세를 퍼부었다. 뚫으면 이기는 거고, 못 뚫으면 쿨GG를 치는 바람에 최연성은 5경기 내내 방어만 하다 끝났다. 그래서 최연성이 이긴 경기도 이긴 것 같지 않다 하여 속칭 "5:0" 관광으로 회자된다.
그렇게 진출한 결승전, 박정석을 상대로 '''저그 역사상 최초의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하며 '임요환 없는 온게임넷 스타리그도 흥행시킬 수 있다!'는 온게임넷 스타리그 중흥기의 서막을 알림과 동시에 조진락을 이을 새로운 저그의 선두주자로 나서게 되었다. 때마침 2004년 7월 1일을 기점으로 서울의 버스 환승체계가 많이 바뀐탓에, '''버스기사가 교통대란에 정신을 놨다'''는 식의 반응도 많았다. 이때 엄재경은 완성형 저그로 박성준을 밀며 폭풍+목동의 '''폭동저그'''를 밀었으나 반응이 안좋아 묻혔고, 이후 커뮤니티에서는 박성준에게 전투의 신, '''투신(鬪神)'''이라는 별명을 선물한다. 이후 세월이 흘러 박성준이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로서 전향을 앞두었던 2010년 온게임넷 드리머 박성준 편에 출연했던 박성준은 황제, 천재, 괴물, 영웅 등 모든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의 별명 중 자신의 별명인 투신이 가장 멋있다고 자부심을 표시하며 자신에게 이처럼 훌륭한 선물을 주신 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였다. 박성준의 공격적인 성향과 잘 어울리는 별명이기 때문.
더불어 투신이 된 박성준은 2004년 8월 중순에 열린 최연성과의 iTV 최종결승전에서 소떼를 몰고다닌 끝에 마지막 경기에서는 입구를 제대로 안 막고[13] 테크를 올리던 테란 본진을 노업 저글링으로 털며 승리한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최연성은 "더 이상 할말이 없습니다."하며 눈물을 보였다고 하는데 VOD가 없어서 확인할 길이 없다.
마지막 4차전 경기 영상.
종합하면 당시 신인이었던 박성준은 2004년 한해동안 최연성을 12번 만나 총 9번을 이겼다.[14] 그것도 부상과 고령화로 인한 최연성의 기량 하락 시기가 아닌, 괴물 포스를 보여주고 후대에 본좌급 기량으로 인정받는 '''최정상의 자리에서'''. 이후 최연성이 So1 스타리그 8강전에서 박성준을 이겼고,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 결승전에서 박성준을 3:0으로 완파하며 우승한 것을 포함해 두 번의 우승을 더 차지하기는 했지만 5:0 참패 이전 수준의 포스를 다시는 회복할 수 없었으며 최연성이 박성준을 상대로 승리했던 스타리그 당시에는 테란맵에 대한 비판 또한 제기되었던지라 박성준은 최전성기 시절 최연성의 괴물 포스에 흠집을 낸 유일한 프로게이머라 할 수 있다. 박성준의 기세는 게임 외적으로도 나타나게 되어 조지명식에서도 이어졌었는데 지명권을 먼저 가지고 있던 다른 선수가 먼저 최연성을 지목하여 자신이 최연성을 지목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게 아쉽다고 조지명식 생방송 도중 발언하는 등 당시 괴물 포스를 자랑하던 최연성에게 대부분 프로게이머들이 표현하기 힘든 자신감을 줄곧 표출하고는 하였다.
박성준 질레트 스타리그 하이라이트 영상. 듀얼부터 결승까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이 놀라운 실력과 역사상 최연소 스타리그 우승 및 로열 로더 등극을 포함한 신 기록 달성에도 불구하고 질레트 우승 직후 박성준을 축하하는 이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팬들의 반응은 '''저그 첫 우승은 홍진호였어야 했다'''는 것이었다. 커뮤니티는 박성준이 잘했다기보다는 결승전에서 박정석의 전략 미스를 아쉬워했으니, 지금으로 치면 리그 브레이커인 셈이다.
그럼에도 박성준은 좋은 기량으로 삼신전의 한 축을 담당하며 박태민, 이윤열과 함께 스타판을 갈라먹었다. KT-KTF 프리미어 리그에서는 이윤열을 상대로 4강에서 '''드론링'''을 선보이며 승리하고 결승전에서는 박태민을 꺾으며 우승했으나, 아이옵스 스타리그에서 이윤열에게 0 : 3으로 패배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대회 EVER 스타리그 2005에서 16강에서 전상욱, 8강에서 변형태, 4강에서 서지훈을 만나는 등, 테란을 피해 우승한 저그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서인지, 주야장천 테란만 만나 승리하고 결승전에서 그 당시 강력한 기세를 보였던 이병민과 만난다. 5경기 이병민의 선팩 조이기에 대항해 시대를 4, 5단계정도 뛰어넘은 미칠듯한 뮤탈리스크 컨트롤[15]로 막아내며 온게임넷 기준 '''저그 최초로 테란 상대 우승'''을 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당골왕 MSL에서 박태민이 이윤열을 꺾었기 때문에 박성준의 우승은 빛이 바랬다. 더구나 우주닷컴 MSL에서는 이재훈에게 0:2로 허무하게 패하면서 같은 날 박용욱에게 패한 박태민과 함께 서바이버 리그로 강등당해버렸다.
이 경기 직후 그의 팬들은 박성준을 '''박본좌'''라고 불렀으나 이후 테막화 증세가 심각해졌다.[16]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에서도 결승에 오르긴 했으나 결승에 오르는 과정에서 죄다 프로토스만 만났으며[17], 결국 결승전에서는 맵 순서가 바뀌는 불운까지 겹치며 마찬가지로 토스전이 망가졌지만 저그전, 테란전만 주야장천 하고 올라온 최연성에게 0 : 3으로 참패했다. 이때까지의 스타리그 성적을 종합하면, 데뷔무대인 질레트 스타리그부터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까지의 6번의 스타리그 기간 동안 박성준은 무려 4회의 결승 진출을 이뤄내어 최전성기를 누렸다.
프로리그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는데, 당시 POS 팀의 몇 안 되는 믿을맨으로 개인전뿐만 아니라 마이크로 컨트롤을 기반으로 한 팀플 실력도 독보적이었기 때문에, 하루 4경기 출장(2005 전기리그 vs SKT T1)을 하거나[18], 박지호와 둘이 나와 하루 경기를 끝내는 등[19] '''2005년에서만 50경기 이상'''을 출전시킨 혹사 논란은 지금도 인구에 회자될만큼 뜨거운 주제였다[20]. 2007년 이후에는 주5일제에 경기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한 시즌에만 20, 30경기 나오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당시에는 누가봐도 혹사였다. 단기혹사로 치면 단연 넘사벽. 이후 프로게임단들의 사정이 나아지면서 프로리그 2006년 시즌부터는 팀플이 한 경기로 줄었고 개인전과 팀플레이의 겹치기 출장이 금지되어(에이스 결정전에만 중복출장 가능), 박성준의 2005년같은 혹사 사례는 프로리그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당시는 대기업 스폰 체제가 확실하게 자리잡은 상황도 아니었고 팀 사정이 어려운 영세한 팀들이 많았기 때문에 소수의 에이스 위주로 돌아가는 팀이 많았다. POS, KOR, GO 등등... 이때 고생했던 선수중 유명한 선수가 전태규, 박성준, 오영종, 서지훈 등이다. 거의 팀을 먹여살렸다고 볼수있을정도로... 소수의 에이스 육성에 모든 역량을 기울여 우승자를 탄생시키고, 네임드를 앞세워 기업 스폰서를 유치하는 식이었다. 동양시절 임요환이 밟은 길을 많은 팀들이 따라간 셈이었고, 박성준이 이끌던 POS도 그 중 하나였다.
최고의 활약을 선보인 덕분에 박성준은 이윤열, 박태민, 최연성 등 강력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2005년 '대한민국 게임대상 e스포츠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EVER 스타리그 2005를 우승하고 당시 저그 전력 강화를 꿈꾸던 SKT T1으로 이적설이 그 해 하반기부터 흘러나왔고, 박성준 본인은 가고 싶지만 감독이 잡고 있다더라, 이적료로 몇억을 요구한다더라 하는 '''근거없는''' 소문만이 떠돌았다. 때마침 2005년 초 POS시절 박성준을 투신으로 만들었던 서형석 코치가 T1 코치로 스카웃되면서 유독 T1 선수들에게 많이 지는등, T1에 관련된 우울한 소문이 많이 나왔다.

3.2. 프로리그 우승


POS가 MBC GAME에 인수되며 MBC GAME HERO가 창단되었고, 그토록 고대하던 스폰서를 잡았음에도 정작 박성준의 개인성적은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21] 서바이버에서 이학주에게 졸전끝에 패배, MSL에서 탈락하고 2006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1에서도 처참한 경기력으로 24강 탈락을 하면서 데뷔후 처음 양대리그 8강을 못밟고 광탈하는 신세가 된다. 그래도 프로리그 전기리그에서 그럭저럭 제역할을 해주면서(준 PO, PO에서는 모두 이겼다. 하지만 광안리에서...) 당시 MBC GAME HERO의 돌풍으로 불리웠던 박성준 - 박지호 - 염보성을 '''박지성''' 트리오로 부르기도 했다.
후반기에 들어서도 MSL은 아예 못 뚫고 스타리그도 빌빌대면서 16강이나 오락가락하는, 그저 손만 빠른[22] 잉여선수가 될 뻔했으나 2006년 SKY 프로리그 후기리그 결승에서 서지훈 상대로 압승을 거두면서 결승전 MVP를 수상했고[23] 이후 벌어진 SKT T1과의 통합 챔피언전에서 최연성을 저글링만으로 끝내버리면서 팀의 우승에 기여하게 된다.
2005년 e스포츠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고 신드롬으로 불렸던 시기보다는 투신의 포스는 하락한 상태였지만 중요한 순간에 꼭 필요로 하는 승리를 거두면서 2006년 MBC GAME HERO 돌풍에 일조했던 해였으며 박성준 개인으로서는 WCG 2006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투신의 투혼이 살아있음을 증명한 해였다.

3.3. 웨이버 공시 사태와 슬럼프


프로리그와 개인리그 시즌이 끝나고, 당시 스폰서가 없던 여러 팀들(SouL, GO, KOR, POS)이 스폰서십을 체결하고 선수들과 계약을 맺으면서 슬슬 연봉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다.[24]
때마침 2006년 4월 POS를 인수한 MBC GAME HERO는 주전 선수들과 2007년 3월까지 계약이 된 상태였었다. 하지만 마케팅 및 홍보 목적이었던 다른 통신사나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팀과는 달리 MBC게임이 POS를 인수해 재창단한 목적은 온게임넷이 KOR을 인수해 온게임넷 스파키즈를 창단한 것과 같이 협회 내에서의 입지와 발언권 강화를 노린 것이었다는 한계가 있었고, 어차피 게임 방송에서 직접 운영하는 게임단이니 마케팅, 홍보 효과가 딱히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기대 수익 자체가 낮았던 데다 MBC와는 별개의 법인인 MBC PLUS에서 내려오는 지원금도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중소기업에서 운영을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문제는 이렇게 부실한 스폰서를 가진 팀이 2006년 프로리그 전기리그 준우승, 2006년 프로리그 후기리그 우승, 2006년 그랜드 파이널 우승을 해버렸으며 김택용곰TV MSL 시즌1에서 3.3 혁명을 완성하며 박성준에 이은 개인리그 우승자를 배출하게 되면서 팀 우승의 주역이자 주축 선수로 성장한 박성준, 박지호, 염보성, 김택용, 서경종, 이재호 등 주축 선수들의 연봉 인상이 기대되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선수들의 연봉인상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MBC게임 프런트는 시즌 종료 후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최소 중박 이상의 연봉 인상을 기대하고 있던 선수들 대부분에게 연봉동결을 선언하고, 프로리그 후기 리그 결승전 MVP 수상자이자 과거 POS 시절부터 팀을 이끌어 온 박성준의 연봉마저 반토막을 내버리게 된다.[25] 프런트 측의 이와 같은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한 박성준은 결국 MBC게임 히어로 측에 웨이버 공시를 신청하게 된다.
웨이버 공시는 말이 쉬워서 그렇지 공시를 한 기간동안 계약 의사를 밝히는 팀이 없을 경우 박성준은 '''1년간 프로게이머 자격정지'''를 당하는, 사실상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PGR21, 스갤 등지에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선수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글이 빗발치듯 쏟아졌으나, 십수년이 지나 스타 1이 저문지 한참 되었어도 그리핀 사건 등이 터지는 것을 보면 그대로다. 케스파가 괜히 까이는 것이 아니다.
후에 김정민의 스팀팩에 출연한 박성준은 웨이버 공시 당시 상황에 대해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 놓여졌기 때문에 그와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자신은 하태기 감독이나 그 외 관계자들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웨이버 공시 사태가 한창 진행 중이던 당시 하태기 감독을 만났었던 아버지가 특히나 많이 속상해하셨었다고 언급하였다. POS 시절 박성준이 문자 그대로 다른 팀원들을 먹여살렸던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상황이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개인리그에서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어려웠던 시절에 GO팀을 홀로 이끌었었던 서지훈의 억대 연봉을 팀 감독이 자신의 연봉을 희생하면서까지 지켜줬던 점과 비교되며 MBC 게임 히어로의 결정은 많은 게임팬들에게 실망을 주었다.
그 여파 때문인지, 당시 있었던 듀얼 토너먼트에서 박성준은 광탈하면서 온게임넷 스타리그 연속 진출 기록을 9번으로 끝내게 된다[26]. 이 기록은 당시 임요환이 보유 중이던 연속 진출 기록과 타이가 되는 상황이었으며 단 한번만 더 연속으로 진출하는데 성공했다면 박성준이 단독으로 최장 연속 진출 기록을 보유하게 될 수 있는 상황이었는지라 박성준 본인도 매우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웨이버 공시 기간 만료를 이틀 앞두고 벌어진 곰TV MSL 시즌2 32강에서, 박성준은 그 절륜한 컨트롤과 프로토스전 공격력으로 최연성이승훈, 이윤열이 있는 조를 뚫고 16강에 가게 된다. 좋지 않은 환경에 처한 박성준에게 많은 팬들이 환호를 보낸 시기였다.
그 후 SKT T1으로 이적했던 서형석 코치의 도움으로 SKT T1으로 2007년 5월 21일 이적했고, 그 이후엔 MSL 8강에 올랐으나 2007 신한은행 전기 프로리그에서는 그다지 나오지 않았으며 성적이 이래저래 저조해지면서 슬럼프 상태에 들어갔다. 참고로 이때 '''박성준+최연성'''이라는 명품 팀플조합이 나온 바가 있다.
후반기에는 다시 스타리그MSL에 모두 진출, 양대리거가 되었으나 모두 저조한 경기력으로 16강에서 탈락하고, 프로리그 부진과 더불어 침체기에 들어간다. 또한 자신의 SKT T1 이적을 추진했었던 서형석 코치가 팀을 떠나게 되어 팀내 입지가 더욱 줄어들었다.

3.4. STX SouL로의 이적과 골든마우스 달성


2008년 4월, STX SouL로 이적했다. 1년전 SKT T1으로 이적했었던 시기와 달리 STX Soul로 이적할 때 평가는 '''먹튀가 이적해봐야 어디 가겠냐'''였으며 스타팬들의 기대치도 많이 낮아진 상태였지만 김은동 감독은 박성준이 스타리그에서 우승할 수 있다고 했으며, 일부 팬들도 스타리그에 진출한 테란들의 수준을 볼 때[27] 박성준이 우승할 수 있다고 점치고 있었다. 박성준 영입 전 STX SouL의 저그 전력이 과거 무스폰팀 시절 저그 명가라는 별명을 얻은 시기와는 다르게 유난히 취약했기에 김은동 감독은 박성준 영입을 통해 프로리그에서 다른 팀들에게 노출되어 있는 약점을 커버하고 팀내 신예 저그 프로게이머들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고자 박성준을 영입한듯하다.
결국 박성준은 Ever 스타리그 2008 16강에서 4저그조를 2승 1패로 뚫고, 8강에서 영원한 한끼 식사 안기효를, 4강에서 손찬웅을 꺾으며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 상대는 도재욱. 참고로 이때 모든 프로게임단 감독은 박성준의 우승을 점쳤고, 모든 해설진들은 도재욱의 우승을 점쳤다.(...) 근데 사실 이 결승전 현장에는 프로게이머 출신인 방송인 장진수도 참관했었는데 이 때 장진수는 박성준의 '''3:0''' 압승을 예상하였다. 하지만 다른 온게임넷 해설위원들은 과거의 저프전과는 달라졌다고 오히려 이런 예상을 한 장진수에게 핀잔을 줄 정도였다.(.....).[28] 결국 2008년 7월 12일 기나긴 슬럼프를 극복하고 EVER 스타리그 2008 결승에서 도재욱을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3 : 0으로 침몰시키면서 '''3회 우승과 동시에 골든마우스를 따내는 데 성공했다.'''[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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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승으로 저그 최초 골든 마우스를 수상했고, 타 종족 포함시 이윤열에 이어 두 번째 골든마우스를 수상하게 되었다. 또한 이 우승은 STX Soul 프랜차이즈 역사상 소속 선수의 개인 리그 최초 우승 기록이기도 하다.
특히 결승전 2경기에서 나온 '드론 밀치기' 플레이의 경우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전 역사를 통틀어 가장 기억에 강하게 남는 플레이 중 하나로써 회자되고 있다.
재기와 함께 3번째 우승을 차지한 박성준이지만 비판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까들이 가장 자주 쓰는 떡밥은 테란전이 약하다는 것. 최연성과의 다전제는 Itv 최종 결승 이후 줄곧 패했다.[30] 다만 이후 세트경기에서는 박성준이 이기기도 하였다.[31] 3번째 우승의 경우는 실제로 16강전 이후에 테란을 만난 일이 없다.
그러나 이제동의 5해처리 히드라의 등장 이후에서 김명운3해처리 히드라의 등장 이전인 2008년은 저그:프로토스가 비교적 가장 차이가 좁았던 시절이며, 송병구, 김구현, 윤용태 등의 프로토스는 저그전 승률이 70%가 넘을 정도로 프로토스가 할만했던 시절이다. 물론 앞마당 노가스로 저프전에서 저그가 좋은 화랑도 등이 포함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박성준의 우승을 무시할 것은 못된다. 바로 다음 대회만 해도 육룡 모두가 개인리그 4강에 안착했고, 프로토스 양대 우승이라는 사태가 발생한 것만 보아도[32] 당시의 프로토스의 위상이 가장 드높은 시기였다.
심지어 포모스의 예상 기사에서는 저프전임에도 토스가 이긴다는 예상이 만장일치로 나왔다. 다만 이는 온게임넷 해설진들의 예상이며, 스팀팩의 저주김캐리의 저주, 그리고 골든마우스를 주기를 싫어하는 온게임넷의 의중이 반영되었다는 논란까지 있어 이 예상이 신뢰성이 있었는지는 의문. 하지만 테란:프로토스의 균형이 토스 쪽으로 기울었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넘사벽인 그의 토스전 실력 때문임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어쨌거나 이전의 두 번의 스타리그 우승때는, 당대의 내로라하는 테란들을 잡고 우승했다.
이 점이 비판 받아 마땅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논란이 있었지만 일단 본인은 상당히 신경쓰고 있었는지 인크루트 스타리그 조 지명식에서 2008년 최강의 테란이라 불리는 이영호를 자신의 조로 불러들여 한 판 승부를 벌였다. 결과는 패배.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시즌 4라운드 기준으로 대 프로토스전 전승(9승 무패)으로 프로토스의 악몽으로 떠오르고 있었으며, 3라운드 위너스 리그 당시 STX SouL 상대로 프로토스 카드를 꺼리게 만드는 주역이었다.
2009년 1월 있었던 바투 스타리그 36강에서는 박대경을 2 : 0으로 눌러버리고 16강에 진출했다. 이걸로 통산 13번째 16강 진출... 하지만 16강에서 qkraudtn김택용에게 패배. 광탈이 거의 확정될 뻔했으나 2월 18일에 송병구를 멋지게 잡아내고 2월 20일에 김택용이 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어 송병구, 와 함께 3자 재경기가 성사되었는데, 재재경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송병구에게 패배. 송병구가 먼저 2승을 거두면서 탈락하고 말았다.
이후 개인사정으로 팀에서 잠시 떨어져 숙소 생활을 한듯 하며, 그 때문인지 저프전 절대강자이자 STX Soul 팀의 주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프로리그 출전을 못했었다. 그러다가 6월 7일 곰TV클래식에서 김구현을 2 : 1 로 꺾으며 건재함을 과시. 조병세까지 꺾으며 곰TV 클래식 4강에 진출하였으나 이영호와 대결해 3 : 0으로 패해 탈락.
2009년 10월 17일 있었던 MSL 서바이버 S2에서 와 박세정을 잡으며 MSL 본선에 진출하였다. 하지만 12월 3일 NATE MSL에서 김대엽에게 '''프로토스'''에게만 두번 지며 광탈했다. 09-10 시즌 프로리그 출전이 없었고, 김은동 감독은 출전을 위해 조금 더 실력을 다듬고 있다고 했지만... 팬들은 속이 탔다.
하지만, 세월이 많이 지난 2010년 1월 19일의 복수용달 5회에서 '괴물' 최연성을 상대로 2:0 으로 승리하였고 그 덕분에 최연성에게 자신을 등에 업고 "박성준은 본좌다"라고 외치는 굴욕을 선사하였다. 한편 최연성은 이날 방송에서 질레트 스타리그 5:0 참패 당시 자신의 심리적 상태를 언급하였는데 첫 경기부터 예상치도 못한 빌드와 저글링 러쉬에 철저하게 제압당해 경기 내내 박성준과의 대결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혀 본진 벙커 확장과 수비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고 고백하였다. 비록 현역 프로게이머와 플레잉 코치의 대결이라 저평가받기는 했지만... 같은 시기 NATE MSL 결승전 덕분에 임이박동론도 일어났다.
그러나 2010년 2월 5일, 대한항공 스타리그 예선에서 를 만나 차마 눈 뜨고 보기힘든 '''콩탈'''을 작렬시키며 탈락.
2010년 2월 18일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 박상우를 잡은 후 차명환에게 패했지만 오메킴을 잡고 MSL 진출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만우절에 진행된 MSL 32강전에서 티원저그 중 하나였던 박재혁을 잡아내고 승자전에 진출했으나 한창 기세충천한 전태양저저전 최강자 이제동을 만나 연속으로 털리면서 탈락하고 말았다.
게다가 프로리그 4월 로스터에서도 말소되었고, 6월 10일과 11일, 각각 MSL 예선과 대한항공 스타리그 예선에서 탈락했다. 안습.
이 시점 이후 신애와 밤샐기세.scx를 비롯한 방송 활동을 시작했고, 은퇴도 가까워 보였다. 그리고 스타크래프트2로 전향했다.
6월 18일 이후 공익 근무로 인해 강민이 사라진 신애와 밤샐기세.scx에 출연했었다. 처음에는 게스트로만 출연하였지만 뛰어난 입담과 투신 특유의 공격적인 플레이가 시청자들과 온게임넷 관계자들의 호평을 받아 정규패널로 활약하게 되었다. 그러던 도중 2010년 7월 27일 스타크래프트 2 자유의 날개가 전 세계적으로 출시되었고 이 당시 박성준은 STX Soul과의 계약이 종료되어갈 무렵이었기 때문에 방송인의 길과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전향 두 가지 중에 고민했지만 결국 아버지의 권유와 최고의 프로게이머가 되기 위하여 여전히 남아있는 본인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고 이후 프로게이머 훈련 및 대회참가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신애와 밤샐기세.scx에서 자진해서 하차하였다.
7월 14일 신애와 밤샐기세.scx에서 유저투표로 인해서 팬더 코스프레를 하고 방송을 했다. 팬더 분장의 힘 덕분인지 방송당일 참가한 모든 경기에서 전승을 기록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후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박성준이 2011년 GSL 결승전에 올랐을 당시에 신애와 밤샐기세.scx 출연진 및 스태프분들이 단체로 응원을 와주었다고 한다.

4. 플레이 스타일


처음부터 저그 유저가 아니었던 탓인지 당시 저그들과는 달리 '''컨트롤에 집중하는''' 게이머였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저그들 중에 컨트롤에 집중하는 저그는 드물었다. 물론 저저전으로 간다면야 뛰어난 컨트롤을 보이기야 했지만, 그보다도 저그 게이머들의 마인드는 컨트롤 할 시간에 물량을 더 뽑고 확장을 더 한다는 마인드가 강했다. 박성준이 데뷔했을 당시에는 타 종족을 상대로 근거리 유닛이 주가 되는 (저글링+뮤탈) 저그는 컨트롤에서 오는 이득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고, 해처리에서 모든 유닛이 나온다는 저그라는 종족 특성상 어느 점을 넘어서는 순간 저그는 컨트롤이 필요가 없어진다. 그런 걸 하지 않아도 회전력과 물량을 바탕으로 이겨 버리니까.
하지만 박성준은 빠른 손을 바탕으로 전투에 의한, 전투를 위한 경기를 많이 만든다. 그래서인지 경기 자체가 박진감 넘치는 즐거움을 많이 주는 편이다. 박성준에 의해 저글링, 히드라, 뮤탈, 러커 등 저그의 모든 유닛이 한단계씩 진화했으며, 심지어 벙커링을 막는 드론 컨트롤 또한 박성준에 의해 극적으로 진화했다.[33] 벙커링을 막는 드론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던지 삼연벙을 위시로 난무하던 벙커링이 이후 올인이 아닌 운영형 벙커링(후 더블)이 정립될 때까지 약 1년 가량은 사장됐을 정도다.
특히 박성준의 뮤탈 컨트롤은 스타판을 몇년은 앞선 컨트롤이었다. 서경종이 오버로드 뭉치기를 발견하기 이전에도 어마어마한 APM을 앞세운 '''미네랄 뭉치기'''로[34] 지금의 뮤탈리스크 뭉치기에 필적하는 컨트롤을 자랑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뮤탈을 뭉쳐서 테란의 SCV를 적극적으로 솎아내거나 병력을 몰살시킬 수 있다'는 개념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뮤탈을 뭉쳐서 컨트롤하는 저그 유저는 있었고, 뮤탈 사거리를 활용해 아콘까지 잡아내는 플레이를 조용호가 선보이기도 했지만, 박성준은 적극적으로 뮤탈의 화력을 집중해서 병력을 잡아낸다는 개념을 제시했고 이는 당대에는 매우 신선한 것이었다. 서경종의 뮤탈리스크 뭉치기의 발견은 테란들의 뮤탈 내성을 강화시켜 박성준의 상대적인 기량 감소에 영향을 미친 바도 없잖아 있을 정도다.[35]
그 외에도 러커로 전진-저글링으로 퇴로 차단-러커 버로우-스커지가 날아오며 베슬 격추 등의 저글링-러커의 전투 구도 역시 박성준에 의해 제시되었다. 이에 비견되는 충격은 스타크래프트 2에서 링링을 우회해서 소소히 이득을 보고 상성상 우위인 화염차를 저글링으로 쌈싸먹으며 테란을 말 그대로 압살했던 이승현 정도였다.
그러나 박성준이 오로지 컨트롤에만 의존한 것은 아니다. 박성준의 정찰력은 당대 최고 수준으로, 어떤 종족전이던 어떻게든 저글링을 밀어넣으면서 정보 수집에 힘썼다. 박성준의 올인이나 공격 타이밍이 더더욱 강력하게 먹힌 것도 이러한 정보 수집으로 인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박성준을 컨트롤 저그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온전치 않다. 박성준의 운영은 자원 우위를 바로 병력 우위로 풀어내는데, 이 방식은 동시대의 저그들이 자원 우위를 테크 우위로 전환하던 것과 비교해 완전히 다른 방향이었다. 박성준의 운영 방향 자체가 많은 병력을 확보하는 쪽에 치중되어 있었으며, 이 병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컨트롤에 집중하는 것은 자연스런 흐름이었다. 자원 우위를 병력 우위로 바로 풀어내는 박성준식 운영이 비록 테란전은 압도적인 컨트롤 능력을 선보이는 선에 그쳐 본좌급 테란을 꺾고 우승하는데는 실패했지만,[36] '''프로토스전에서는 이것이 스타판 말기까지 매우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약점은 경기 자체가 너무 정형화되어 있다는 것. 초반의 정찰력을 제외하면 오로지 전투만으로 승부를 보았기 때문에 판짜기가 약했고[37] 타이밍도 홍진호의 유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경기가 정형화되어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해 드론 뽑는 타이밍이 한정되어 있다는 뜻이며, 이는 타이밍을 자유자재로 만들어내는 이윤열에게 약한 결과로 나타났다.[38] 또한 전성기 이후에는 멀티태스킹에서 약점을 보였다. 결국 테란들이 박성준에게 내성이 생기고 스타일이 파악되자 EVER 스타리그 2005 이후 다시는 테란전 정상급으로 올라오지 못했다.
자존심이 강한 것도 양날의 검이었는데, 3해처리 운영이 정석이 된 시절에도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며 2해처리를 사용하기도 하는 등 트렌드를 따라가려는 노력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프로토스전에서야 이 부분이 강자로 남는 원동력으로 작용했지만, 테란전에서는 분명한 약점이었다.

4.1. 트레이드마크


그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한다면 저글링 러커로 대표되는 한방 병력 전투, 뭉치기도 없던 시절 어마어마한 APM만으로 뭉쳐서 뮤탈짤짤이, 엄청난 물량이 있다.
  • 저글링 : 기존 인식은 발빠르고 숫자는 많지만 체력이 약해서 러커 버로우하는 동안 버텨주는 유닛, 보조 딜러에 불과하던 유닛이었다.[39] 박성준은 몸빵 센 러커가 대신 맞아주는동안 저글링들이 많이 살아서 퇴로를 차단하고 싸먹는 전투방법을 통해 저글링도 핵심 딜러로 써먹으면 전투 시 컨트롤로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는 후대 게이머들에게 영향을 주어 뮤링으로 중반 진출한 바이오닉을 싸먹는 컨트롤법으로 발전. 항상 저글링 찔러넣으면서 상대 테크 확인하고 정찰하는 것도 그의 장기.
  • 뮤탈 : 시대를 앞선 뮤짤. 오버로드나 라바로 뮤탈을 뭉치는 테크닉이 없던 시절, 오로지 피지컬로만 뮤짤을 선보였다. 빠른 손 속도로 뮤탈을 돌리면서 미네랄 찍어서 뭉치고 때리는 식.
  • 히드라, 러커 : 그의 한방 전투를 대표하는 유닛.

4.2. 테란전


2004년에는 최연성, 임요환, 전상욱, 서지훈, 이병민 등 강력한 테란들을 모조리 다이기며 테란전 최강자로 떠올랐으나 이윤열만은 넘지 못했다.[40]
선팩 조이기 및 SCV 잡는 뮤탈짤짤이, 저글링 러커, 벙커링 막는 드론 등 적지않은 부분에서 박성준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전상욱이 가까우면 벙커링 멀면 더블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2004년은 SCV와 마린을 동반하여 저그의 제 2 해처리 앞에 벙커를 짓는 초반 공격에 저그들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던 때였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삼연벙. 이 때 임요환의 연습상대가 박성준이었던 것으로 이후에 알려졌는데, 처음에는 임요환의 벙커링을 당해낼 방법이 없었으나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나중에는 50대 50 정도로 승률이 올라갔다고 한다. 이 때 임요환은 호랑이 새끼를 키운 셈이 되었고, 한동안 박성준은 컨트롤로 벙커링을 막아낼 수 있는 유일한 저그였다. 다음 영상은 박성준의 벙커링 파훼 장면을 모아놓은 것으로, 임요환 서지훈 이윤열의 벙커링을 막아내고 승리하는 경기들이다.#
그러나 이후 스타일 파악 및 다른 저그들이 박성준급의 컨트롤을 습득하게 됨에 따라 테란에게 내성이 생기면서 박성준의 테란전은 매우 하락하게 된다. 다만 2008년 이후로는 의외로 다양한 유닛을 사용하며 2003~2005년 저그들이 프로토스전을 하듯이 테란전을 구사했는데, 이게 의외로 괜찮은 성적을 올리기도 했다. 특히 메카닉 테란 부흥기에는 다수 히드라리스크를 선호하는 박성준식 운영이 제대로 먹히며 테란전이 은근 회복세를 보이기도 했다.[41]

4.3. 프로토스전


데뷔 초의 토스전은 5할 정도였으나, 2005년 이후 6~70%를 왔다갔다하다 최종 68.1%를 기록했으며, 이는 저그의 대 토스전 승률 '''1위''' 기록이다. '''이제동조차도 67.1%로 박성준의 승률보다 낮다.'''[42] 특히 5전제에서 매우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은퇴할 때까지 케스파 공인 리그에서 상대한 프로토스와의 5전제에서[43]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고, 5경기까지 간 적도 한 번도 없다.''' 실로 프로토스의 재앙 수준이라고 할만하다.
박성준은 저프전에서 프로토스가 태생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불안한 심리를 잘 이용했다. 초반의 프로토스는 정찰력과 허리 역할을 해줄 드라군의 부실한 성능 때문에 수동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으며, 재수 없으면 확 밀려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44] 사실 전성기가 지난 후 박성준의 컨트롤은 다른 저그들과 비교해서 독보적이라 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멀티태스킹이 좋은 편도 아니었다. 그러나 박성준의 강점은 '''자신이 준비해온 빌드가 아니더라도 토스가 빈틈을 보이면 망설임 없이 히드라나 저글링을 찍어내 쇼부를 걸 수 있는 배짱'''에 있었다.[45] 이 때문에 상대하는 프로토스 게이머들은 박성준의 운영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며 평소보다 더 많은 캐논을 지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고, 경기 전부터 심리적으로 우위에 서 있었다. 2007년 박성준의 대 토스전 경기를 보면 아직 현대 저프전의 개념화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은 시기였음에도 박성준은 이미 초반 저글링-히드라 압박과 드론 펌핑으로 이어지는 운영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5전제에서는 판짜기까지 곁들여졌기 때문에 프로토스의 빌드나 최적화, 멀탯, 운영이 훌륭하다 할지라도 판이 말리면서 훅 가버리는 경우가 흔했다.
박성준의 대표적인 경기로는 도재욱을 완벽히 제압한 EVER 스타리그 2008의 결승전이 있다.
  • 1경기는 5드론을 시도했고 5드론 자체는 도재욱이 비교적 잘 막았으나, 계속 저글링을 찍어내서 보낸 것이 아니라 딱 6저글링만 보낸 이후 더 이상 저글링을 소모하지 않고 허를 찔러 드론을 쭉쭉 뽑으며 테크에 집중했다. 도재욱은 혹시 올 지 모르는 저글링을 막으려고 질럿을 상당수 뽑아 저글링 러시에 대비하고 있었는데, 왜 안 오지? 하고 있을 타이밍에 날아온 뮤탈에 의해 바로 게임이 끝났다. 이 때도 박성준의 색다른 판단을 볼 수 있는데, 프로브가 모두 앞마당으로 빠지자 해설진은 앞마당에서 가서 프로브를 잡아야 한다고 설레발을 쳤지만, 박성준은 막 올라가기 시작한 스타게이트 건물을 뮤탈로 때려부쉈다.
  • 2경기는 서로 무난하게 출발했고 박성준의 빌드 상성이 좋지 않았으나, 오버로드가 드라군에게 잡히는 타이밍에 원래 2질럿 1드라군으로 입구를 막고 있어야 할 토스가 1질럿 1드라군만 나와있고 질럿이 뒤늦게 찍힌 걸 보고 "초반에 자원 먹으려고 배를 쨌구나" 하는 판단 하에 즉시 오버로드 시야를 통해 드론을 미네랄에 찍어 저글링과 드론으로 입구 돌파를 시도하여 깔끔하게 성공하였다. 토스는 캐논, 질럿, 프로브로 수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여기에서도 박성준은 무리해서 병력을 잡으려고 하지 않고 병력이 느리게 움직이는 허점을 노려 지속적으로 파일런, 포지와 게이트웨이를 집중 공격했다. 마지막에 도재욱은 미네랄과 넥서스 사이에 캐논을 올리며 결사 항전 의지를 다졌지만, 박성준은 저글링으로 프로브를 쉽게 잡을 수 있을 상황이었음에도 의외로 넥서스를 부숴서 게임을 터뜨렸다. 프로브가 다 죽어서 GG를 쳤을 상황과 비교해보면 더 큰 심리적 충격을 주기 위한 방법으로, 박성준의 판짜기 능력을 보여주는 예라고도 할 수 있다. 도재욱은 이 경기 이후 멘붕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 3경기 안드로메다는 서로 무난한 운영전이었고 심지어 도재욱이 크게 나쁘지 않은 상태[46]로 시작했는데도 잔뜩 움츠러들어 박성준이 대놓고 배를 째는 것도 건드리지 못했고, 결국 도재욱은 박성준의 확장을 막지 못하고 패배했다.[47] 특히 후반부에 십수 마리의 울트라리스크에게 토스가 둘러싸이는 모습이 나왔을 때 해설진까지 절규할 정도. 이 그림은 결국 1, 2경기에서 박성준의 극단적인 쇼부에 프로토스가 말려버렸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한때 박성준은 초반 저글링 러쉬로 토스를 견제하면서 뮤탈짤짤이땡히드라로 마무리하는 것을 매우 잘 했다. 그래서 박성준의 토스전은 20분 이내에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장기전에 약하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토스가 방어적으로 나올려고 앞마당 근처에 필요 이상으로 캐논 꽃밭 공사를 해 놓으면 박성준은 빠르게 다른 자원지대를 다수 가져가면서 뮤탈짤짤이땡히드라 병력 생산으로 토스를 압박하는 플레이를 주로 펼쳤던 편.
김택용이 의 레어 트라이던트 중심 3해처리 레어를 3:0으로 떡실신을 시켜버린 후, 러커/뮤탈 이지선다나 땡히드라 등의 심리전과 테크니컬한 운영을 중심으로 하던 저그의 운영은 김택용의 비수류 앞에 무너지게 되었고, 한동안 저프전에서 토막 저그들이 양산된 적이 있었다. 이때 EVER 스타리그 2008에 올라온 박성준은 슬럼프 시절에도 꾸준히 지켜왔던 자신의 스타일, 히드라 중심의 거점 중심 운영으로 드래프트 세대들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자신의 건재함을 알린다. 이런 식의 운영 방식은 워낙 독특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다른 저그 게이머들이 이걸 따라하려다 피를 많이 봤다. 공격성을 주체하지 못해 쇼부를 치다가 막히고 처참하게 무너진 한상봉이나, 히드라를 너무 많이 뽑았는데 별 피해를 주지 못하고 테크가 늦어지는 바람에 하이템플러를 동반한 진출 타이밍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인 데뷔 초의 이제동이 대표적이었다. 이러한 박성준의 히드라는 운영이 가다듬어진 네오 사우론 저그를 거쳐 '개드라'로 진화하여 많은 프로토스 게이머들의 치를 떨게 만들었다. 당시 정상급 저그라고 보기는 어려웠음에도 저프전 최강자 김택용을 무너트린 조일장이나 이영한이 대표적이다.
승률부터 압도적인 만큼 대다수의 프로토스 게이머를 상대전적으로 압도하는 편이다.[48] 저그전 최강 프로토스로 꼽히는 김택용과의 맞대결 또한 숱한 떡밥 중 하나. 이 둘의 맞대결은 공식전 3:3 호각세를 이루긴 했으나 다전제는 한 차례도 없었다. 맞대결 양상은 주로 박성준이 초중반부 전투력으로 김택용의 진영을 밀어버리며 끝나거나 이를 버텨낸 김택용이 멀티태스킹 싸움으로 끌고 가서 이기는 식이었다.[49] 팀내 연습을 할 때는 대체로 박성준이 우세했다고 한다. 그러나 중반부터 중앙 힘싸움 중심의 저그전을 펼치는 송병구에게는 총 상대전적 6승 7패를 찍으며 예상 외로 고전했다. 심지어 송병구가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던 07년도 이후의 전적은 박성준의 열세다.[50]
박성준의 토스전에 대한 평가의 흐름을 본다면, 데뷔 초에는 최연성을 꺾어버린 테란전이 더욱 주목받았으며, 그 이후 이어진 삼신전의 시대는 토스 암울기였기 때문에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에서는 8강 안기효, 4강 박지호를 상대하며 토스전만으로 결승전에 올라갔으나, 이후 '프로토스의 재앙'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던 마주작의 인지도와 포스에 가려 크게 주목받지 못한 편이었다. 바로 윗 문단에서 설명했듯, 개인리그 3전제에서 의외로 일격을 당한 것도 평가를 많이 깎아먹었다. 오히려 박성준 토스전에 대한 평가가 크게 올라간 것은 EVER 스타리그 2008이었는데, 이 리그에서 전성기가 지난 박성준이 프로토스만 줄줄이 꺾고 우승했기 때문이다. 특히 2008년은 소위 말하는 육룡 시대였다. 이 시절 프로토스의 위용을 살펴보면 윤용태는 3전제에서 이제동을 격파했고, 송병구의 연간 저그전 승률이 무려 76.5%에 달했으며, [51] 도재욱은 찬레기를 상대로 앞마당 노가스맵을 끼고 역스윕을 해냈다. 그런 와중에 전성기도 한참 지난 박성준이 프로토스 황금기에 떡하니 등장해 압도적인 스코어로 우승을 차지하는 모습은 임팩트가 클 수밖에 없었다. 특히 2경기의 드론 밀치기는 전략 자체도 충격적이었지만, 경기를 관람하고 있던 김택용조차 놀라서 입을 떡 벌리고 있는 장면과 코치로서 바라보던 박용욱이 얼굴을 찡그리는 장면이 경기 외적으로 큰 인상을 남겼다.
박성준식 대 토스전 히드라 운영 'Hydra Circle'에 관한 글. 1 2 3

4.4. 저그전


의외로 저저전 승률이 공식전 5할이 안될만큼 저조한 편이다. 그러나 저막으로 꼽히지 않는 것은 슬럼프 시절에 깎아먹는 승률이 대부분이고, 컨디션이 좋을 때는 저저도 잘하는 편이었기 때문. WCG 예선에서 이제동을 2:0으로 꺾기도 했다.
박성준 이전까지만 해도 7-9기의 뮤탈리스크 타이밍을 노리는 스커지 테러가 가능했지만, 박성준은 뮤탈 컨트롤로 이 타이밍을 지워버렸다. 결국 이후 저저전에서 온리 저글링-스커지 조합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
양박으로 묶이던 박태민과 맞붙은 2차 프리미어 리그 결승전은 박성준 저저전의 백미. 5경기 모두 박태민의 판짜기에 말려든 후 순수 전투력만으로 3판을 따내며 3:2로 우승을 차지했다.

4.5. 명경기


동일종족 연속 출전 금지 조항 때문에 랜덤 테란으로 출전한 경기. 당시 불꽃테란으로 이름을 날렸던 변길섭은 공1업을 하고 스팀 먹인 뒤에 체력을 채우고 메딕부터 넣어서 먼저 맞게 한 다음 성큰을 일점사하는 불꽃 테란을 구사했는데 박성준은 오히려 방1업을 한 후 스팀 먹이자마자 어택땅으로[52] 조용호의 성큰 8개를 뚫어버렸다. 변길섭의 불꽃테란은 파이어뱃을 반드시 1-2기 섞어 몸빵+저글링 지우기 용으로 사용했고, 성큰에 맞는 마린을 메딕으로 강제치료하는 등 세세한 컨트롤을 했지만, 박성준은 방업의 힘을 보여주며 그냥 어택땅에 가깝게 뚫어버렸다. 조용호의 팀 동료가 변길섭인 걸 생각하면 또 아이러니.
정말 저그의 물량을 제대로 보여준 무시무시한 경기. 유닛의 90%가 동시에 움직였다고 한다. 일명 미니맵 관광. 확실히 안기효가 스톰과 리버, 아콘을 써가면서 막기는 막는데 병력을 막으면 저글링과 히드라 ,울트라가 또다시 몰려온다. 16분 25초부터
드론이 셋밖에 안 남은 상황에서 뮤탈 컨트롤로 스커지의 자폭을 모조리 저지하고 기어이 역전승을 따냈다.
이윤열이 벙커링을 시도해 해처리가 파괴될 상황에 놓이자 드론을 바깥쪽에 빼놓고는 갓 생산된 저글링 6기와 함께 이윤열의 본진에 역으로 러시를 가서 털어버렸다. 벙커링을 들어왔던 SCV와 마린은 본진에서 새로 생산된 저글링 6기로 무난하게 막고 승리.
리버에 드론 절반과 앞마당까지 털리고, 본진 드랍은 막히고, 자원은 다 떨어져 가는 상황에 리버 견제가 또 들어오는데 그걸 막기는커녕 자원을 쥐어짜내 마지막 공격을 갔고 그 한방으로 경기를 뒤집었다.[53]
선팩 조이기에 당해 제대로 틀어막힌 상황에 뮤탈 컨트롤만으로 조이기 병력을 싸그리 잡아냈다. 더 놀라운건 그당시 뮤탈뭉치기 컨트롤이 아닌, 일일이 수작업으로 클릭해서 잡아낸것이다. 박성준의 피지컬이 그당시 얼마나 극강이었나를 보여주는 경기다.
파이어뱃을 두려워하지 않는 저글링의 맹공이 일품. 다만 경기는 공격을 끝내 막아낸 최연성이 승리했다. 최연성은 수비에 일가견이 있는 선수중 하나다.
러시 한 번만 막으면 김택용의 필승인 상황에서 히드라러커 한방에 그대로 경기를 끝내버렸다.

5.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로서 첫 걸음과 StarTale의 창단


스타크래프트 2 Prime 클랜에 가입하였으며, 사용하는 아이디는 FantaPrime. 팀 내에서 연습하는 건지, 밖으로 나온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연습을 상당히 열심히 하는 것 으로 보였다. 참고로 클베 때부터 기사도 연승전에 여러 번 얼굴을 보이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이 때는 익명을 사용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전직 프로게이머인 것 같다는 추측만 무성할 뿐 설마 현직 프로게이머인 투신일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온게임넷 드리머 박성준 편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개인적인 전향인 듯 보이고, STX Soul과의 계약이 만료된 상태이며 곧 기자회견을 가질 것이라 했다. 다만 본인의 성격상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로서의 전환이 스타크래프트 1 프로게이머로서 은퇴와 작별은 의미하지 않는다고 언급하여 여전히 스타크래프트 1에 대해 남아있는 애정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 1 프로게이머로서 자부심을 표현하기도 했다.
2010년 9월 10일 공식적으로 스타크래프트 2 전향을 선언했다.# 이는 이른바 레전드급 스타 1 프로게이머 중에는 처음으로 공식발표한 것으로서 박성준의 뒤를 이어 2010년 9월 이윤열, 10월 임요환, 그 후 홍진호, 이제동 등 스타 1 레전드 프로게이머들이 스타 2 프로게이머 전향을 선언하여 올드팬들에게 기대감과 아쉬움을 동시에 선사하였다.
그리고 9월 15일, 전 팬택EX 감독대행이자 위메이드 폭스 수석코치였던 원종욱 씨와 심소명, 견신 김성제, 팀플의 달인 이창훈, 나도현, 박웅진 등과 함께 StarTale 이라는 팀을 결성하기로 공식 발표. #다섯번째 스타2 게임팀이며, 약칭은 ST라고 한다.
참고로 동시기 전향한 임요환, 이윤열 등 스타크래프트 레전드 중에 최고 커리어를 올렸다. 준우승 1회, 4강 1회.

6. 스타크래프트 2 활동/2010년


Sony Ericsson GSL 오픈 시즌 2 예선에 참가해 임요환과 함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었으나, 1세트는 불멸자 + 역장, 2세트는 3차관에 이은 공허 찌르기에 무너지며 예선 탈락.[54]. 참고로 상대방의 아이디가 '''GayBar'''였다고 한다.
Sony Ericsson GSL 오픈 시즌 3에는 드디어 본선진출에 성공했다. 64강에서 프로토스 안정민을 만나 2:0으로 승리. 여전한 투신 스타일과 여전한 토스전 실력을 보여줬다. 32강에서 테란 한이석을 만나서 2:0으로 승리하고 16강 진출. 2경기는 운영으로 상대 테란을 멀리 멀리 보내버렸다. 정규리그 코드 S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8강에 진출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16강 상대로 장민철을 만나 2대1 패배를 당해 코드 A로 배정되었다. 후에 인터뷰에서 이때의 패배가 충격이 컸고, 장민철에게 복수의 칼날을 갈아왔다고 밝혔다.

7. 스타크래프트 2 활동/2011년



7.1. Sony Ericsson GSL Jan.


지난 시즌 장민철에게 뼈아픈 패배를 당해 코드 A에서부터 시작했으나 파죽지세로 8강까지 진출하여 승격/강등전 출전권을 따냈다. 승격/강등전에서 첫 경기를 한준에게 내주며 불안하게 출발하지만 이어진 박서용과의 경기를 승리하며 코드 S를 확보했다.

7.2. 2세대 인텔 코어 GSL Mar.


조 지명식에서 결국 복수를 위해 장민철을 선택, A조를 죽음의 조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다시 장민철에겐 압도적으로 패배해버렸다. 하지만 전시즌 우승자로 테란원탑이라 불리던 정종현을 상대로 일벌레 대신 병력을 생산해 역공으로 승리를 얻는등 매우 공격적인 스타일로 2승을 거두어 투신이라는 닉네임을 팬들의 가슴에 다시 한번 새기며 16강에 진출하였고 코드S 자리를 확보했다.
2011년 3월 3일에는 한규종을 꺾고 8강에 진출했으며, 8강에서 과거 자신을 결승에서 3:0으로 처참하게 짓밟은 적이 있는 이윤열을 상대. 3:2로 이기고 4강에 진출했다. 인터뷰에서 그래서인지 '빨간 머리로 돌아가 볼까'하는 언급을 하기도 했다.
당연하지만 8강에 이어 4강에서 유일한 저그. 나머지 셋은 다 프로토스다. 저프전 밸런스가 안드로메다로 간다고 평가받는 지금 시점에서 박성준이 결승에 올라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4강에선 이정환을 상대로 3:1로 압살하고 결승에 진출했다. 결국 프프전 결승은 하늘나라로.. 또한 장민철에 대한 복수의 기회를 다시 얻었다.
하지만 복수의 기회는 허망하게 날아가고... 결국 4:1로 패배했다.
강력한 공격으로 상대를 몰아치던 이제껏 모습과는 달리 아쉬운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 공격하기도 전에 장민철에게 무난히 압살당하기 일쑤. 운도 따르지 않아 장민철이 암흑 기사 테크를 올릴 때 대군주를 적절한 순간에 밀어넣었지만 정작 시야가 닿기 바로 직전에 대군주 방향을 꺾어 '장님저그'라는 비아냥마저 들었다.
박성준은 평소의 스타일과는 다르게 자원을 많이 먹고 운영을 가는 빌드를 준비해왔는데, 그것이 장민철이 준비해 온 찌르기와는 완벽히 잡아 먹히는 빌드였던 것, 박성준도 인터뷰에서 장민철 같은 스타일은 생각해오지 않았다고 답했다.

7.3. LG 시네마 3D GSL 월드 챔피언쉽 서울


친선 팀리그에서 한국 대표팀의 6번째 주자로 나와 내리 4연승을 거두며 한국팀의 역전승에 크게 기여했다.
본선 경기 16강전에서는 또 다시 이윤열을 만나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며 8강에 진출.

7.4. LG 시네마 3D GSL May.


코드S 32강에선 박서용, 송준혁, 크리스 로렌저와 같은 H조가 되었다. 1세트 박서용과의 대결은 불불러쉬를 막으면서 뮤탈을 준비해 이기고, 3세트 크리스와 대결은 박성준이 크리스에게 밀리던 상황이 갑자기 엘리전으로 변하자 몰래멀티가 있었던 박성준이 가까스로 이겼다.
16강에선 저번 시즌 4강전의 복수를 당했다. 심슨토스와 대결은 전략 싸움(1세트)도 운영 싸움(3세트)도 버거웠다. 16강 진출 후 인터뷰에서 1.3.3 패치는 프로토스는 좋아지지만 저그에겐 아무 의미 없다며 저그로서 마음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아직 박성준은 저프전이 버거워 보인다.

7.5. LG 시네마 3D 슈퍼 토너먼트


64강전에서 SlayerS의 신예 저그 황도형에게 2:1로 패배. 첫 세트는 황도형의 잘 짜여진 깜짝 뮤탈리스크 빌드에 말리며 역전을 노리고 한 방 병력이 진출했지만 벌어진 일꾼 격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량을 어찌하지 못하고 패배. 감시 군주가 둥지탑을 볼 수 있었지만 보지 못한 것이 컸다.
2세트는 저글링 맹독 올인이 막혔지만 다시 한 번 병력을 짜내 휘몰아치는 투신 스타일로 승리를 거뒀다. 3세트는 둘 다 극도로 조심스러운 선 산란못 빌드를 꺼내들었는데, 부화장을 가져가지 않고 바퀴와 저글링을 짜내 러시를 간 황도형의 병력을 피해를 입으면서도 가까스로 막아냈지만 그 사이 일꾼 격차가 너무 크게 벌어졌다. 승리를 위한 타이밍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과감하게 공격을 나갔지만 일꾼까지 동원한 황도형에게 이번에는 박성준의 병력이 막혔다. 그 뒤 벌어지는 물량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배.
전체적으로 박성준이 못했다기보다는 황도형이 준비를 잘 해왔다고 하는 편이 맞겠지만, 확실히 팬들이 투신에게 기대한 모습과 성적은 아니었다.

7.6. 기타 대회


북미 스타리그 시즌 1 (NASL) 조별 리그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며 일찌감치 조 1위를 확정지었다. 최종 성적은 7승 2패. 미국에서 열리는 본선행 티켓을 얻었다. 4강에서 이호준에게 1:3으로 패했고, Sen에게 1:3으로 패하며 4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MLG 콜럼버스에서는 다른 한국 선수들과는 달리 시드를 받지 못했다. 따라서 256강의 예선부터 치르게 되었는데 이 예선을 결국 뚫고 본선에 오르는데 성공했다. 본선 조별 리그에서는 문성원에게 1패하며 4승 1패로 조 2위를 기록하며 패자조로 내려가게 되었다. 패자조에서 장재호에게 0대2로 패하며 탈락. 한국 선수중 가장 먼저 탈락했다.
드림핵 서머 2011 조별 리그에서 5전 전승을 거두며 본선에 진출. 16강에서 폴란드의 프로토스 MaNa를 2대1로 꺾었고, 8강에서 Sen을 2대1로 꺾고 4강에 진출했다. 4강에서 크리스 로렌저에게 0대2로 패하며 탈락.

8. 스타크래프트 2 활동/2012년/프로게이머 생명 황혼기


폼이 떨어지고 각종 대회에서 성적이 나빠져서 점점 모습을 보기 어려워지더니 엄청나게 활성화됐던 위키 항목도 어느 순간 거짓말 같이 멈췄다. 2011년까지는 각종 자잘한 대회까지 꼼꼼하게 작성이 되었지만 2012년에 들어선 직후부터 작성이 완전히 끊겼다. 결국 2012년 여름에 GSL 예선에서 탈락한 뒤로 2012년 10월 자로 306보충대로 입대를 해 버렸다. 그러나 귀가조치. 2013년에는 홍진호, 이윤열과 함께 Dota 2 프로모션 이벤트에 초청받아 홍보를 하는 모습이 알려지기도 했다. 그 뒤 2013년 하반기에 훈련소에 재입소하여 PC 행정업무와는 관계없고 한달에 한번 이상 행군을 하는 20사단 포병대대에 배치되어서 근무하게 되었다. 2014년 1월에는 군에서 행군을 하는 사진이 공개되었다.
군 복무 중에 헌병대에 두 번이나 왔다갔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밝힐 수 없지만 일반 병사가 헌병대에 무슨 목적으로 왔을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본인이 방송 당시엔 이 질문을 밝히기를 꺼렸으나 2017년 8윌 26일 '강민의 그때 그샏기들 박성준편'에 출연해서 직접 밝히기를 일병 시절 본인이 근무하고있던 부대에 훈련을 왔던 예비군들이 밤에 술을[55] 마시면서 본인을 좋아한다고 같이 술 한잔 하기를 권했다고 한다. 모르는 사이인 예비군이 술을 권한거라 기분이 좀 그랬지만 한잔만 하고 자러 갔다고 한다. 그런데 박성준이 술을 마시는걸 봤던 어떤 한 예비군이 박성준을 국방부에 민원을 올렸고 몇일 뒤에 국방부 중령이 이 사실을 확인 차 박성준이 복무하던 부대를 방문했다. 박성준은 이 사실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였고 하필이면 세월호 사건으로 나라가 어수선했던지라 더더욱 그러하였다.
결국 자신을 포함하여 병사 7명이 영창을 갔고 장교 1명[56]은 징계를 받았다고 한다. 그것도 만창 15일을 갔다왔다고 한다. 박성준 본인 군 생활의 흑역사이지만 전체적인 군 생활으로 보았을때 포상도 많이 받는 등, 나름 군 생활을 잘 마무리한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이윤열을 옆에 두고도 IOPS 스타리그 결승 3차전 vs 이윤열 전(...)이나 KT-KTF 프리미어 리그 4강 이윤열전(...)등 상술된 본인의 명경기들을 다시 보며 즐거워하기도 했다.

9. 콩두컴퍼니 크루 및 BJ로서의 활동


2015년 7월 20일에 군제대를 했고 전역 후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로서 복귀와 LOL 코치로서의 전향 등 미래 진로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하다가 MBC 게임 히어로 출신 서경종과 김택용의 권유로 인해 콩두컴퍼니 소속 크루로서 인터넷 개인방송을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이에 대해 처음 권유 받았을 당시 박성준은 인터넷 개인방송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후 마리텔의 흥행과 스타 프로게이머 출신 BJ들의 개인방송 활약을 지켜보며 이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곧이어 7월 25일에는 아프리카 복면스타왕이라는 프로그램의 마지막화에 이승원해설, 이윤열과 함께 출연했다.
2015년 8월 5일 동시대에 활동하다가 은퇴한 다른 프로게이머들처럼 콩두컴퍼니 소속 아프리카TV의 프로게이머 BJ로서 데뷔했으며 김택용, 김재훈, 염보성 등과 함께 MBC GAME 출신 라인을 이루게 되었다. 역시 주력 게임은 스타크래프트1. 스2 선수로의 복귀는 생각이 없는 듯. 김택용의 말로는 채팅창에서 별풍은 기가 막히게 찾아 낸다고 하며 역시 돈을 밝히는 엠겜 출신 답다고 하였다. 스1 실력은 아직까진 다소 부족한 상황이고 최근 트렌드와는 동떨어진 구식 운영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도 현역 시절 명성 그대로 클래식한 공격형 저그의 모습은 나름대로 신선한 편. 여담으로 후덕한 외모 때문에 파오후 라든지 김정은, 수령님, 북괴저그 등등으로 불리고 있다..
2015년 8월 9일 블리자드의 온라인 팀전 게임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슈퍼리그 개막전에 임성춘, 박용욱, 장민철, 민찬기와 함께 브루드 워 프로게이머 출신 선수들로 구성된 '드렁큰 스타' 팀의 일원으로서 출전하여 김대기, 이형주, 장건우, 장민성 등 워크래프트, LOL 프로게이머 출신 선수들로 구성된 '적절한 사람들' 팀과 히어로즈 슈퍼 리그의 개막을 축하하는 이벤트 경기를 펼쳤다. 결과는 박성준이 속한 '드렁큰 스타' 팀의 승리.
2015년 10월 17일에 VANT36.5 대국민 스타리그 예선을 통과하면서 최고령으로 본선에 진출했다. 기량이 전보다 떨어지는 상태인지라 탈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KT 전프로인 김태영 등을 이기면서 본선 합류에 성공해 노장의 투혼을 보여주었다.
2015년 10월 22일 KCM 레전드 매치 초청전에서 이윤열을 상대로 2:1 승리를 거두었다. 이윤열의 경우 아프리카 tv 개인 방송을 하면서 레더에서 아마추어를 상대로 패배하기도 하는 등 전성기 시절 포스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여전히 보여주고 있다. 2015년 12월 3일에는 다시 초청받은 KCM 레전드 매치에서 또다른 올드 프로게이머인 전태규를 2:0으로 제압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5년 11월 12일 VANT36.5 대국민 스타리그 듀얼 토너먼트를 뚫고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후배이자 MBC소속인 김재훈에게 1패를 했으나 아마추어 출신인 심대성, 김재현을 이기면서 자신의 실력이 여전히 건재함을 재확인하였다. 인터뷰에서는 16강 진출자 중에서 현재 가장 실력이 낮다고 했지만 조만간 실력 향상을 꾀한다고 하기에 향후 행보가 기대된다. 하지만 16강에서 김명운김정우에게 패해 탈락이 확정되었다. 아직까지는 전성기 기량이 돌아오지 않은 모습. 이후 VANT 36.5 대국민 스타리그 16강 마지막 경기에서 CJ 엔투스 출신의 유영진을 상대로 승리하는 모습을 보이며 비 공식적으로 본인의 마지막 스타리그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였다.
2016년 2월 1일 방송 이후로 아프리카TV 개인 방송을 일시 중단하였다.

10. League of Legends Longzhu Gaming 코치로서 활동


군 제대 직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역 후 League of Legends 코치가 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던 박성준은 콩두컴퍼니와 크루로서의 계약 해지 후 2016년 7월 현재 Longzhu Gaming의 코치로서 활동하고 있다.
이로써 박성준이 e스포츠 업계에 복귀하게 된 것은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로서 활약하던 2012년 이후 약 4년만. 스갤을 비롯한 스타 관련 주요 커뮤니티에서는 e스포츠 업계를 장기간 동안 떠나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박성준의 화려한 커리어와 네임밸류가 뒷받침되었기에 LOL 코치로서 데뷔할 수 있었던 것으로 높게 평가하고 있다.
2017년 롤챔스 스프링 로스터에서 이름이 빠진 것으로 보아, 팀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11. 다시 BJ로서의 활동


2017년 7월 27일에 박정석의 아프리카 tv 방송에서 박정석과 스타 대결을 했다. 결과는 무난히 패배... 8월중에 아프리카 tv 방송을 다시 시작한다고 한다.
2017년 8월 2일, 나도현의 아프리카 tv 방송에 합방해서 시청자들과 팀 플레이 컨텐츠를 했다.
2017년 8월 25일, 아프리카 tv 방송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플레이는 아직은 좀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 변형태와 스폰빵을 2번 했는데 2번 다 패배... 하지만 기뉴다와 스폰 대결에선 압도하면서 승리.
ASL 시즌4 예선에 참가하여 서울 예선에서는 결승전까지 올라갔으나 김정우에게 패배하면서 탈락하였고, 이후 대구 및 부산 예선에서도 탈락하였다. 부산 예선에서는 8강에서 오메킴(김승현)에게 패배...
아프리카 tv 개인 방송을 재개하면서 과거 POS 시절이나 엠겜 시절의 썰을 풀기도 한다. 단, 팀에 대한 민감한 이야기나 당시 감독 및 코치들에 대한 이야기는 팬들이 물어봐도 답을 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과거 이고시스의 스폰 행태라던지[57] 억울한 일이 많았을텐데도 언급을 꺼리는건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는 듯.[58][59]
2017년 10월 5일, '''트위치 하이라이트 게시판'''이 개설되었다.
2017년 10월 7일, 몸무게가 세 자릿수라고 하였다. 또한, 방송 중에 컴퓨터가 고장이 나서 (후일담에 따르면 블루스크린이었다고 한다.) 방송 도중 박성준 선수의 아버님께서 오셔서 고쳐주셨다.
2017년 10월 초를 기준으로 아프리카TV, 트위치 및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개인 방송을 동시 송출하고 있다. 멘탈도 좋아서 어그로가 있어도 웃으며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
2018년 5월, 방송을 접는다는 게시글이 개인 방송국에 올라왔다.
그런데 그로부터 2년 3개월후인 2020년 9월 8일경에 방송에 다시 복귀한다는 공지를 올렸다! 10월 9일 오후 7시 복귀 방송 예정이며 근황 등을 얘기할 예정.
10/9 복귀 방송에서 밝힌 바로는 쉬는 동안 코인, 지인 사업 참여 등 여러가지 일을 했으나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며 온라인 포커 업체와 1년 계약을 맺어 주 3회는 포커방송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전과 같은 스타 실력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라 얘기하며 방송 시 주 1회 정도만 스타를 하고 플레이도 선수들과의 스폰빵보다는 예능위주로 할 예정이라고 언급하였다. 안하는 동안 스타 실력은 많이 줄어들어 실력이 된다면 메이저급 BJ들과 방송을 하겠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하며 김택용이 본인과 합방을 제안했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래더점수는 2300점 정도로 보인다.

12. 특이사항


질레트 스타리그에서 메이저 대회에 데뷔한 이해 2008~2009년의 바투 스타리그에 이르는 기간 동안 '''단 한 시즌도''' 피씨방을 기록한 적이 없'''었'''다. 무려 '''16시즌, 5년'''에 걸친 대기록이었는데, 2009년 5월 22일 금요일에 벌어진 박카스 스타리그 2009 36강에서 김정우에게 허무하게 패배하며 결국 메이저 데뷔 5년만에 양대 피씨방 탈락 리거가 되었다. 그래도 이 기록은 브루드 워 기준으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된 연속 시즌 메이저 리거 기록이다.
2004년 2~3월에 걸쳐 온게임넷 스타리그, MSL, iTV 랭킹전, 프리미어 리그 예선이 거의 동시에 치러졌는데, 시드를 받든 예선을 뚫든 '''4개 대회를 모두 진출한 선수'''가 '''최연성, 김정민, 그리고 박성준 이렇게 세명 뿐'''이었다. 최연성과 김정민은 이때 MSL과 프리미어 리그 시드를 받았다.
데뷔 이후 EVER 스타리그 2005 때까지는 저그 중 최고의 경기력, 특히 최고의 테란전을 자랑했었고 케스파 랭킹 1위 또한 그의 것이었다. 스갤에서는 당시 '박본좌'라 부르며 그를 칭송했지만 2005년 하반기 이후 테란전에서 상당히 저조한 성적을 보이면서 박본좌란 칭호는 사라졌고, 본좌라는 단어는 약 2006년 하반기에나 돼서야 이 무지막지한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마본좌란 칭호를 획득하여 지금의 의미로 정착되었다. 원래 본좌는 일종의 별명이었던 것.
STX SouL과 계약했을 당시 '양대 개인 리그 피씨방 예선까지 떨어지게 되면 깔끔하게 은퇴하겠다' 라고 했는데 그가 STX 입단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하고 실력이 떨어지더니 결국에는 한쪽 리그가 올라가면 한쪽 리그에서 떨어지는 식으로 끝까지 살아남아(...) 은퇴가 늦어진 것.
MBC게임 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엠막이기도 하다. MSL 최고 기록은 Spris MSL 패자 4강 1차, 당신은 골프왕 MSL 패자 4강 1차, 곰TV MSL 시즌2 8강이다. 심지어 MSL의 8강 세트 전적만 합산하면 '''8전 1승 7패'''라는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였다.
MBC GAME HERO 선수들이 증언한 바에 의하면, 2005년 한참 잘 나가던 시절에 대기업 팀에서 오퍼가 왔고, 특히 KT에서는 연봉으로 무려 1억 5천만 원을 제시했다고 한다. 팀 구성원들도 대부분 가라고 했지만 자기가 나가면 팀이 공중 분해될 거라는 생각에 박성준은 끝까지 의리를 지켰다고 한다. 그런데 가까스로 MBC GAME을 스폰서로 잡고 2006년 팀 우승에 공헌했음에도 2007년 연봉 협상에서 오히려 제시한 금액은 줄어들었고, 그로 인해 웨이버 공시를 선언했다고 한다.
본래 테란 게이머였기 때문에 상기한 랜덤 테란 조용호전 외에도 프로리그 팀플레이#s-2 경기에 가끔 테란으로 출장하기도 했다. 박성준의 소년가장 시절 POS는 저그 게이머의 수가 가장 많은 팀이었기 때문에, 박성준이 테란으로 후배 저그 김동현이나 정영철 등과 페어를 짜 출장하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었다.
한 인터뷰에서 유닛들이 자신의 의도대로 만족스럽게 움직일 때까지 거의 2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러한 공격적이고 화려한 초중반 피지컬의 백미는 데뷔 시즌 대 테란전 저글링+러커 플레이라고 할 수 있다.
후에 MBC 게임 출신 선수들이 방송에서 박성준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성격이 상당한 독불장군에 고집스럽고 까탈스러운 성격 때문에 팀 내에서도 겉도는 이미지였고, 당시 방송국 관계자와 감독들에게 다 찍힌 상태였다고 했다. 한편 박성준 본인이 직접 말하기를 고집스럽고 독불장군인 건 맞으나 까탈스러운 건 아니라 말했다. 누구의 평가가 맞든지 간에, 어쨌든 자존심이 굉장히 강한 성격이었던 것만큼은 팩트인 것 같다. 플레이스타일을 바꾸는데 보수적이었고, 김성제와의 경기에서 나온 해처리 버그를 '고의가 아니냐'고 주장한 PGR21의 커뮤니티 글은 이야기만 나오면 아직도 '그걸 고의로 할 리가 있냐'고 민감하게 반응할 정도로 자존심이 대단했다.
민찬기 같은 경우는 당시 나이도 어리고 게임할 때 빼고는 그렇게 문제가 없었고 다른 팀원들과 지내는데 큰 말이 없었지만 박성준의 경우는 팀에서도 고참인데다 에이스 자리까지 맡고 있었으니 밑에 후배 선수들 입장에서는 많이 어려운 존재였고 박성준보다 나이가 많은 박지호도 박성준의 성격 때문에 그냥 서먹서먹한 사이였다고 말하였다고. 김택용그분 빼고는 염보성, 박지호 등 다 친하게 지냈으나 박성준은 어려워한듯.[60] 지금도 방송에서 언급할 일이 있을 때 성준이 형이라고 안 하고 투신 박성준이라고만 한다.[61] 가족같은 분위기의 MBC 게임 선수들의 분위기를 보면 박성준은 혼자 독고다이하는 타입이여서 많이 연락하는 선수들이 없다고 언급했다마는 박성준이 직접 말하기를, 아직도 후배들과 친하게 지낸다고 한다. 서먹서먹하면 왜 이재호가 자신을 도와주냐고 말했다. 다만, 박지호와는 연락 안 한 지가 무려 7년이 넘었다고... 그래서 만나면 어색하다고 한다.
리얼스토리 프로게이머 POS편을 보면 군기반장 역할을 한 것 같다. 이는 STX 선수들도 언급했는데, 박성준은 숙소 생활에서 유일한게 혼자 독방을 사용했으며, 감독과 코치들도 터치하기 어려운 존재였다고 하였다... 만 이건 강민 방송에서 박성준이 직접 부정했다. 독방을 쓴 이유를 직접 말했는데, '''코를 너무 심하게 골아서였다'''고 한다(...).
개인 방송을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클랜에 가입하였던 시기가 '''7월'''이었기 때문에 아이디를 '''July'''라고 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박성준이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차지한 3번의 우승 중 2번은 7월에 결승전이 있었다. 첫 우승은 7월에서 하루가 지난 8월 1일이다.
20사단 중에서도 사단 포병여단 78 포병대대 출신이라고 한다. 출처.
비만이고 고혈압이다. 그 때문에 계단을 오르다가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간 적이 있다.

12.1. 조인성준?


박성준의 비인기 원인으로 지목 받는 점은 역시 외모. 특히 비만이다. 기사에 의하면 스트레스를 폭식으로 해결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가 슬럼프 기간에 들어서면 후덕해지고, '''기량이 올라올 때'''는 살이 도로 '''빠지는 모습'''을 보인다. 남성 팬들이나 박성준의 팬이 아닌 스덕들 조차도 박성준에게 살 빼면 인기가 오를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박성준의 비인기에 영향을 미친 것이 몸무게임을 부정할 수 없다.
살만 빼면 조인성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른바 '''조인성준'''. 오죽하면 박성준이 식탐만 없었어도 스타판 역사가 바뀌었을거라는 이야기가 있었을까(...).

12.2. 온게임넷 측의 찬밥 대우


온게임넷 스타리그 오프닝은 매번 보는 사람들을 설레게 만드는 연출을 자랑하고 평범한 외모의 선수 조차 간지나게 탈바꿈시켜버리는 매력까지 있다. 이 오프닝의 최고 수혜자는 박정석이 대표적인데 반면에, 온게임넷 스타리그 오프닝에서 버린 선수가 바로 박성준이라는 것이 문제다. 유난히 박성준의 경우 온게임넷 스타리그 오프닝에서는 대대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는데, 첫번째 우승때는 탑블레이드 시늉에 두번째로 우승할 때에는 마우스가 불에 타는 2초 간지 장면 후 묻어가 버리고(그나마도 다른 저그 선수들과 단체 샷이었다.) 세번째 우승때는 36강 오프닝에서는 레전드 특집이었는데도 등장 조차 못하다가 16강 오프닝때 맨 처음 정지 화상 나오고 끝났다. 그 외에 출연한 오프닝에서도 단체 샷에 묻어가거나, 짧게 후다닥 지나가는게 대부분이었다. 성질있는 사람 같았더라면 욕이 나올정도로 박성준은 오프닝에서 대접을 못 받았다.[62]
또한 온게임넷 스타리그 3회 우승을 달성할 때에도 골든 마우스가 결승 당일날까지 제작이 늦어져서 이윤열의 것을 빌려다 촬영에 썼으며, 다음 시즌 조 지명식까지 박성준이 직접적으로 불만을 토로할 정도로 지급이 늦었다. '금값이 비쌌다'니 뭐니 실드치지만 '임요환이 3회 우승을 했다면 제작이 늦어졌을까?'하는 의문을 가져본다면 박성준이 얼마나 개무시당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박성준은 근 2년간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터줏대감이었다. 질레트 스타리그부터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까지 '''우승-8강-준우승-우승-8강-준우승'''의 성적을 거두었음에도 이런 식으로 대우하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 없는 처사. So1 스타리그 2005 결승전 때에는 '황제의 귀환과 가을의 전설'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있지만, 그 이면에는 8강에 진출한 유일한 저그가 박성준 하나였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홍진호가 몰락한 이후 박성준은 오랜 기간동안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저그의 희망이었다.
그리고 티빙 스타리그 오프닝에서 e스포츠를 시원하게 말아먹은 까지 나왔는데도 정작 박성준 본인은 나오지 못했었다. 이후 문제의 동영상은 삭제되고 이후 오프닝에서 잠깐 얼굴을 비췄지만, 박성준이 온게임넷에서 얼마나 대접을 못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온게임넷에서 박성준은 qkrtjdwns이다.
그러나 박성준은 그 특유의 공격적이고 화끈한 플레이 스타일과 자신의 성격상, 저그라는 종족의 열혈 빠나 매니아 층에서의 인기는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비교하자면 이후 세대의 송병구와 비슷한 성향의 팬덤을 보유하고 있었던 셈이다. 비교 대상을 최고의 인기게이머가 아닌, 아예 열혈 빠나 매니아 층조차 없고 우승해도 경기 재미없게 한다고 까이는 게이머들로 잡는다면, 박성준을 비인기 게이머로 단정하기는 힘들 것이다. 애초에 박성준이 결승까지 진출한 리그들은 흥하면 흥했지, 망한 적까지는 없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사실 이러한 푸대접의 원인은 위에도 서술되어 있듯이 팀동료들의 증언에서 어느정도 보이는데 자존심 강하고 독불장군 스타일의 성격이 어느정도 독이 됐다고 볼 수 있다. 방송관계자들과 감독들에게 찍혔다는 증언이 있고 골마까지 받은 선수가 스타판에서 해설이나 코치직등을 거치지 못하고 결국 롤쪽으로 코치를 간걸 보면 당시 미운털이 꽤나 박힌거 같다.
다만 온게임넷의 푸대접에 대한 위로가 될지는 몰라도, 온게임넷의 엄재경 해설만큼은 박성준을 미칠듯이 좋아한다(...) '''투신'''이라는 간지나는 별명을 붙여준 사람도 엄재경 해설이었다. 원래부터 포장으로 유명한 엄재경이라지만, 박성준을 포장할 때 만큼은 그 포장이 극에 달해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물론 이것은 박성준의 플레이 스타일이 엄재경해설이 좋아하는 플레이 스타일과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지만.
MBC GAME에서는 애초에 대우를 받을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했기 때문에 논외다. 3회 우승, 2회 준우승을 기록했던 온게임넷 스타리그와는 달리 MSL에서는 4강 이상의 성적을 낸 적이 없는 엠막이기 때문.
그러던 온게임넷이 박성준이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로 전향하고 나서인 2012년 6월 26일 티빙 스타리그 2012 8강 3회차 경기와 함께 박성준이 질레트 스타리그를 처음으로 우승했을 당시의 결승전 상대인 ‘영웅’ 박정석과의 레전드 매치를 주선했다. 박성준 본인 역시 레전드 매치에 초대된 점에 대해 감격한 모습을 보였으며 경기의 승패를 떠나 이번 초청 자체가 자신이 레전드임을 의미한다는 사실이 기뻐서 흔쾌히 참가하게 되었다고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온게임넷 스타리그가 종료되어 이 레전드 매치는 비공식적으로 박성준의 마지막 온게임넷 스타리그 경기가 되었다.
하지만 본인은 2017년 아프리카TV 복귀 후, 온게임넷에 전혀 섭섭하지 않으며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방송 복귀 후에 보여주는 성향을 봐도 억울한 일이 있거나 자신이 피해를 입었던 과거가 있더라고 꾹꾹 참는 성향. 웬만해선 언급을 꺼리는 성격에다 과거 MBC게임 썰을 이야기하는 염보성을 타박하기도 하는걸 보면 애써 좋게 생각하는거 같긴 하다. 실제로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자 오프닝 촬영 때에 박성준에 대한 허접한 연출이라던지 골든 마우스 늑장지급 이 두가지만 봐도 명백한 온게임넷의 홀대가 맞다.

12.3. 그 외의 고난과 푸대접


초창기 질레트 스타리그 우승 과정에서 임요환, 서지훈, 최연성, 박정석을 격파해 이들의 팬을 적으로 돌렸고 저그의 첫우승이란 이유로 홍진호의 팬덤까지 적으로 돌렸다.[63] 이 시점부터 박성준의 고난은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뚱뚱한 외모와 몇몇 인터뷰 "감독님이랑 안심먹으러 가기로 했어요."로 인해 투돈, 안심 등등의 이른바 까이는 별명을 얻게 된다.[64][65] 나중에 박성준이 모 구내 식당에서 이상한 머리띠를 착용한 채 쟁반을 들고 있는 짤방이 나돌아서 그 별명이 더욱 굳어졌다.
팀 자체가 워낙 어려웠고 간혹 스타리그 본선에 나가도 상위 라운드로 진출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66] 상금자체도 타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설상가상 2003년 출범한 프로리그도 참가 못하고, 팀리그도 대뜸 '''이상한 괴물한테 역올킬을 당하는 바람에''' 진출이 좌절되었다. 이렇게 팀 단위 리그도 2004년 SKY 프로리그 전까지는 전부 불참. 2002년 팀이 생긴 이래 편하게 생활한 적은 한 순간도 없었고, 라면만 먹다가 장염에 걸려 입원할 정도로 팀 상태가 안좋았다.
2005년은 아예 아버지의 카드까지 팀의 운영비로 사용했다. 월마다 400씩 까였다고 한다. '''케스파 랭킹 1위가 연봉 10원도 못 받고 상금만으로 간신히 살아가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MBC GAME HERO가 2006년 돌풍을 일으킨데는 박성준의 이러한 희생이 밑바탕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며, 2007년에 웨이버 공시 당시 팬들이 분노한 것도 이러한 이유였다.
박성준의 막강한 프로토스전은 많은 프로토스팬들을 안티로 만들기도 하였다. 질레트 스타리그, EVER 스타리그 2008 결승에서 박정석, 도재욱에게 압승을 거둔 것을 비롯해 애리조나에서 강민, 루나에서 박정석에게 각각 똥개 관광, 신호등 관광을 달성한 것, 라이드 오브 발키리즈에서 안기효에게 보여준 미니 맵 관광 등 박성준의 저프전은 박성준의 일방적인 관광이라는 느낌이 강했고 많은 프로토스 팬들이 안티로 변하는 결과가 되어버렸다.
2006년 서바이버 김성제전에서 해처리버그[67]가 났었는데, 당시 임요환의 팀 소속 프로게이머 + 팬 많은 프로게이머(최연성, 서지훈, 이윤열, 박태민, 박정석 등등)꺾고 우승한 + 살찐 + 비인기팀의 + 저그(당시만해도 프징징이었으니...)라는 점 때문에 PGR21에서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글 제목이 대놓고 ''''100% 몰수패로 처리해야 합니다''''였을 정도다. 그러나 절대 해처리 랠리를 안 찍었다는 박성준의 해명글이 올라오고 난 뒤 그 안티들은 데꿀멍.
정확히 하자면 당시 김성제가 전진 게이트 후 운영이라는 꽤 괜찮은 전략을 들고 왔었는데 그걸 제대로 맞고 김성제에게 승기가 많이 기운 상황에서 해처리 버그가 일어났다. 승기가 많이 기울었기 때문에 김성제 측에서는 재경기보다 우세승을 원했고 박성준 측에서는 할 만했다 해서 재경기를 원했던 상황에서 얼마간의 항의 결과 결국 재경기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근데 진행된 재경기에서 김성제는 똑같은 전진 게이트 후 운영으로 박성준을 꺾고 올라간다.
강민과의 방송에서 박성준이 직접 밝힌 바로는 김성제의 빌드를 알고 있었음에도 일부러 버그 나기 전과 똑같은 빌드로 플레이했다고 한다.
물론 당시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 MSL에 가려면 당일날 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조용호를 이겨야 했는데 맵도 똑같아서 같은전략 사용하다가 김성제는 떨어졌다.
그 밖에도 온게임넷 측에서 대놓고 '''박성준이 너무 잘해서 저그가 죽어나가요!'''라고 할만큼 박성준이 꾸역꾸역 결승에 진출하고 우승을 차지하자 '''대놓고 맵으로 죽여버렸다'''.[68] 박성준이 인기 게이머였다면 이런 일도 없었겠지.[69] SO1 스타리그에선 이 때문에 리그에서 가장 수가 많았던 저그 게이머들이 박성준을 제외하고 16강에서 모두 광탈했다. 그리고 본인도 8강에서 탈락.

이 박성준의 묘한 인기 탓인지 스타크래프트2 게이머로서 항목은 GSL 오픈시즌이 3번 열릴 동안 그다지 수정되지 않았다. 문제는 2011년 3월에 있었던 2세대 인텔 코어 GSL Mar. 항목의 갱신도 코드S 4강 갈 정도인데도 늦었다는 점.
정리하자면 엄재경의 포장에도 불구하고 박성준이 방송국과 팬들에게 안습 대우를 받게 된 것은 본인의 부피(...)와 POS라는 작은 팀의 팬덤에서 실드를 쳐줄 빠들도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그리고 박성준이 격파하며 적으로 돌린 게이머의 팬들이 매우 많았기 때문이라 볼 수 있겠다. 어지간한 게이머의 팬들은 박성준을 싫어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정리하자면, 어디까지나 팬의 입장에서 쓴 것이니, 진지하게 보지는 말자.
  • 임요환 : 듀얼에서 이기고 임요환의 온게임넷 스타리그 연속 진출 기록을 저지했다. 이는 임요환의 데뷔 후 첫 온게임넷 스타리그 진출 실패이다.
  • 홍진호 : 홍진호가 실력 부진으로 인해 우승과 멀어지는 사이 저그 최초의 우승을 달성했다.
  • 박정석 : 질레트 배 결승전에서 3:1로 격파했다.
  • 최연성 : 최연성의 첫 온게임넷 스타리그4강에서 우승을 막았으며, 그 경기 내용도 최연성 게이머 인생에서 손에 꼽힐 정도의 관광 경기였다.[70]
  • 서지훈 : 질레트 8강, EVER 2005 4강 등 자신이 우승한 대회에서 항상 서지훈을 제물로 삼았다.
  • 강민 : 이른바 애리조나 똥개 관광으로 강민을 제압했다.
  • 토스빠 : 여러 번 프로토스를 관광보내서 토스빠들이 매우 싫어했다. 특히 저그 중에 땡히드라 말고는 아무도 안쓰던 히드라리스크를 힘싸움에 적극 활용하며 개드라로 만든 게 박성준.
쉽게 말하면 사대천왕 중에 박성준에게 거의 패배한 적이 없는 이윤열의 팬들을 제외한 모든 팬덤[71], 그리고 사대천왕 다음 수준의 굵직한 팬덤들을 모두 적으로 돌렸다. 물론 이걸 꺾고 실력만으로 자신을 증명한 박성준이 온당 재평가받아야 정상이지만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의 경계를 오가는 스타판의 특성상(...) 박성준은 빠와 안티의 비중이 급격히 차이가 났다. 게다가 이 박성준의 업적도 이후 마빡이에 의해 무시당했다. 정말 이만한 안습의 역사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관계자에게 까이던 이윤열도 결국 골든마우스 딴 후로는 대접을 받았는데 정말, 다시 또 안습이다.[72]
특유의 스타일과 꾸준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인기선수들과의 상관 관계와 외모적인 문제로 푸대접을 가장 많이 받은 게이머라고 볼 수 있다. 사실 박성준의 체형이 조금만 달랐어도 새로운 팬덤을 모아 기존 팬덤의 반발에도 충분히 대항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팬들도 항상 박성준에게 다이어트를 종용해서 박성준 역시 마음먹고 다이어트에 돌입한 일이 있었으나 성적 하락만 남겼다. 데뷔 이전에 주니어 야구선수였다고 하는데 운동을 그만두며 줄어든 활동량과 식습관 등의 영향을 받은 듯. '''인기없는 박성준의 호조가 리그를 망친다''' 등의 막말들에 관해 선수 본인도 무척 위축된 모습을 보이며, 대회장에 들어서면 항상 관중수를 먼저 체크하는 버릇이 들었다고 한다.[73]
가장 안습인 것은, 사실 여기서 박성준 본인 잘못이 '''전혀''' 없다는 점. 수준 낮은[74] 팬덤과 공정성을 상실했던 관계자들의 핍박(?)으로 인한 것들이었기에, 지금 다시 봐도 안타까운 점이 많은 게이머이며, 동시에 당시 스타판 수준을 적나라하게 까발려주는 흑역사의 산 주인공이라고도 볼 수 있다.[75][76]
'''그럼에도''' 박성준에게는 투신이라는 간지나는 별명이 있다. '''신'''이라는 별명을 최초로 선물받은 프로게이머가 바로 박성준이다. 특유의 플레이 스타일로 인해 매니아층과 남성 팬들이 매우 많으며, 남성팬의 응원 소리가 여성팬들을 압도하는 몇 안 되는 게이머이기도 하다. 오랜 푸대접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성적을 내며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게이머이니, 그의 업적을 결코 낮게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 그의 인기가 없는 편이라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경력과 실력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다'''는 뜻이다. 박성준도 남부럽지 않은 '''스타급 플레이어이자 흥행 카드'''다. 특히 골든 마우스를 차지했던 EVER 스타리그 2008의 경우 박성준이 결승에 올라왔기 때문에 그만큼이나 흥행할 수 있던 것이다. 또한 Kespa E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홍진호, 조용호와 함께 당당히 헌액된 인물로, 이것만 봐도 박성준이 스타판에서 가진 인기나 위치가 결코 낮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위의 EVER 스타리그 2008 우승 이후의 골든 마우스 미지급의 경우에도 알 수 있듯이 박성준이 오만가지 푸대접과 고난을 겪었지만, 2006년의 MBC GAME 히어로의 약진을 이끈 선봉장이었다. 또한 자신과 함께한 최연성, 이윤열, 박정석 등등의 올드 게이머 세대들이 실력 부진으로 몰락하여 개인 리그에 올라가지도 못했을 때 4강, 결승에 오르며 건재함을 과시하였다. 박성준은 송병구, 김택용보다 훨씬 경력이 오래된 올드 게이머였지만 왠지 올드 기믹이 묻히는 감도 있었다.

13. 관련 항목



'''삼신전'''
박성준
박태민
이윤열
'''임이박동'''
임요환
이윤열
'''박성준'''
이제동
'''변태준'''
변은종
박태민
'''박성준'''

[1] 아버지이혼했으며, 무녀독남 외동아들이다. 그러나 아버지와는 계속 연락하면서 지내는 듯 하다.[2] July 경력 상금.[3] 재미있게도 SKT T1 시절에는 삼성 박성준의 동생인 박재혁과 팀 동료로 있었다. 여담이지만, 이들과 본관#s-1이 같다.[4] 가끔 최연성과 싸웠을 때에 쓴 게 최초라고 하는데, 링크 건 동영상이 최초다.[5] APM 300대 후반~400 초반. 요즘에야 뮤짤도 해야하고 멀티 태스킹이 일반화된 시대이기에 김정우이제동은 이보다 더 빠른 속도를 보여주기도 하지만(참고로 박재혁은 700~800도 찍는다.) 당시에는 박성준만의 전유물이었다.[6] 이 경기에 관한 에피소드로 이러한 이야기도 있다. 박성준이 "이기는 경기를 할까요? 재밌는 경기를 할까요?"하자 하태기가 "이기는 경기를 해라."라고 했고 결과적으로 4드론을 선택해서 승리했다. 참고로 당시 레퀴엠은 러쉬거리가 워낙 가까워서 저테전에서 저그가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7] 무엇보다 이 Gillette 스타리그 2004에서는 저그가 박성준, 박태민, 변은종 이 세 선수만 진출했을 정도로 역대 스타리그 중에서 가장 저그가 적었던 대회 중 하나였고, 이 세 선수 모두 듀얼을 거치면서 올라오게 되었다. 실제로 변태준이라는 단어도 이 세 선수만 스타리그 본선 무대에 진출한 저그 플레이어들이었기 때문에 서로 묶여서 탄생한 단어였다. 하지만 박태민, 변은종은 결국 아쉽게 16강 조별리그에서 탈락을 하게 되고, 반대편 MSL에서는 지난시즌인 하나포스 센게임 MSL에 이어 Spris MSL에서도 두 대회 연속으로 저그가 단 한 명도 4위 이내에 입상하지 못하고, 박성준 혼자서만 스타리그에서 파죽지세의 기세로 4강까지 진출하니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이라는 표현은 결코 과장된 것이라 보긴 힘들다.[8] 케스파 연승 기록 역대 1위[9] 당장에 3.3혁명 이전 2006 시즌 마레기의 토스전이 21승 3패로 '프로토스의 재앙' 소리를 들었고, 최연성의 저그전은 패는 적고 승수는 2배 많은 상황이었다. [10] 경기외적으로 도발하고 거만한 태도를 유지하였다.[11] 꺾은 상대가 심소명, 이재훈, 조용호, 박정석 등이었다.[12] 방송은 7월 8일. 때문에 7월 2일 열린 질레트 스타리그보다 나중에 했다는 오해를 하는 경우가 있다.[13] 다만 이 때 맵에 대해서는, 해당 맵 외국인 제작자가 인터뷰를 통해 사과했다고 한다.[14] 요즘과 비교하자면 왠 저그 신인이 전성기의 이영호를 꺾고 우승한 충격이랄까...[15] 뮤탈 뭉치기 테크닉도 없던 시절이다![16] 다만 이건 맵의 영향도 크다. 박성준 우승 직후 안그래도 3해처리 강제맵이라 빡센 포르테는 네오 포르테로 진화하여 본진 미네랄 10덩이로 저그에게 불리해졌고, 알 포인트라는 새로운 3해처리 강제맵이 추가되었다. 815는 앞마당에 가스가 없어서 저그에게 불리했다. 그리고 박성준은 2해처리 기반의 저그였다. 참고로 이 리그에선 박성준뿐만 아니라 홍진호, 조용호, 이주영 등 저그 유저들이 16강에서 포르테알 포인트에서 테란에게 짓밟히고 815에서 프로토스에게 얻어터진다.[17] 이는 결승전까지 테란전 감각이 엉망이 되는데 일조한다[18] 2005년 전기 후기 프로리그는 5세트 경기중 2세트와 4세트가 팀플 경기였다. 팀플 페어를 다르게 짜면 중복되지 않는 엔트리로 처리되었기 때문에(이를테면 2세트 박성준 - 박지호, 4세트 박성준 - 문준희가 출장한다면 겹치기 출전이 아니라고 보는 식), 개인전 한 경기 + 팀플 두 경기 + 중복출장이 허용되는 에이스 결정전까지 총 네 경기를 출장할 수 있었다. 당시 많은 팀들이 수적으로 부족한 엔트리를 꾸리고 있었으나 2005년의 박성준처럼 한 선수에게 많은 경기를 출장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19] 1세트 박성준 승, 2세트 박성준/박지호 팀플 승, 3세트 박지호 승... 이런식으로 [20] 당시 총 프로리그 경기가 팀당 10경기였다.[21] POS팀을 먹여살린 공신임에도 불구하고 대우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최고의 대우를 받은 GO(CJ)의 서지훈과 대조되는 부분.[22] 지금도 돌아다니는 최고 APM 818 캡쳐 스크린샷이 이당시 나왔다.[23] 이 승리와 더불어 다음날 벌어진 서바이버에서는 박대만오영종을 연파하며 MSL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24] esFORCE의 윤용태의 연봉 600만원이 이때 나왔다.[25] 훗날 히어로 소속 선수들의 개인방송에서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POS 시절 팀 운영금이 부족해서 박성준이 '''아버지 몰래 카드를 긁다가 걸려서 무릎을 꿇었던 적이 있다고 한다.'''[26] 한때 최장 기록이었으나 현재 송병구에 의해 깨진 상태. 박성준의 기록이 16강 리그 시스템 시절이라고 송병구의 기록을 폄하할 지도 모르겠으나 송병구는 36강 시스템 개편 이후에도 16강을 못간 적이 없다.[27] 정명훈 등장 전이며, 이영호도 이 시절에는 중요한 고비마다 저그에게 발목을 잡히던 시기였다.[28] 이후 엄재경 해설에 말에 따르면 속으로는 박성준의 승리를 예상 했지만 모두가 박성준의 승을 예상하면 관객들이 기대를 안 할거 같아 흥행을 위해 포장한 거였다고 .[29] 스타리그, MSL 통틀어 결승에서 저그 최초로 셧아웃 우승을 기록하였다. 1년 뒤 박카스 스타리그 2009에서 이제동이 를 셧아웃 시키며 우승했지만 동족전이었고 타 종족전에서는 박성준의 우승이 유일한 스윕 우승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30] WCG 결승전,신한05 스타리그 결승전[31] 곰tv 32강 , SKY06프로리그 그랜드파이널 5경기등[32]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 '''송병구''', 도재욱, Clubday Online MSL 2008: '''김택용''', 허영무, 윤용태, 김구현[33] 삼연벙 당시 임요환의 연습 파트너가 박성준이었다. 훗날 박성준의 증언에 의하면 연습 과정에서 벙커링으로부터 파생되는 테란의 전략은 죄다 경험해봤다고....[34] 이는 다른 의미로도 더 대단한 것이, 유닛 복수 지정이 12기까지밖에 안 되는 스타1의 특성상 12기 중 한 기를 오버로드로 채워넣으면 화력적인 면에서도 순수 뮤탈 12기가 뭉친 것보다 떨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당시 테란들의 뮤탈 내성이 떨어졌던 점까지 시너지로 작용하면서 더더욱 충공깽일 수밖에 없었다.[35] 아이러니한 것은, 서경종이 처음으로 뮤탈 뭉치기를 발견했을 때 박성준은 그거 구리다면서 사용을 만류했었다. 본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대회에서 그걸 너가 할 수 있을 거 같냐? 언제 오버로드 끌어다 부대지정하고 또 풀고 다른 거 지정하고 그럼?"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그런데 다들 했고, 본인도 그렇게 됐다고 한다.[36] 물론 박성준의 컨트롤 혁명 그 자체만으로도 테란전에서 높게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37] 이는 테란전 얘기다. 프로토스전 판짜기는 전투력 하나만으로도 프로토스들이 다들 쫄아서 위축된 플레이를 했었기 때문에 알아서 판짜기가 가능했으며 5전제에서 2점을 내 준 적 조차 없었다.[38] 동시기에 전성기를 맞이한 박태민이 특유의 판짜기로 이윤열과는 명승부를 펼친 반면 최연성에게는 참패했던 모습과 대조되는 부분.[39] 당시 저그에게는 생산력이 중요했기 때문에, 저그유저들은 어택땅 찍어놓고 생산에 집중해서, 나중에 충원되는 병력으로 적 한방병력을 정리하는 그런 개념이었지만 박성준은 컨트롤을 통해 한방 병력 교전에서 승리하고 찍어누르면서 전략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데 능했다. 특히 바이오닉을 상대할 때 러커는 몸빵이고 메인 딜링은 저글링으로 한다는 역발상을 사실상 처음으로 써먹은 저그가 박성준.[40] KTF Fimm 프리미어리그 리그 챔피언쉽에서 이윤열을 2 : 0으로 깔끔하게 완파한 적이 있다. 근데 그 2경기를 제외한 공식전 경기에서 다 졌다.[41] 저그전 메카닉 테란의 문제점을 보면 알겠지만...초중반 동안 수세에 몰려 있어야 한다는 점이 저그전 프로토스랑 모양이 똑같았고, 이는 레이트 메카닉이 개발되기 전 까지 해결되지 못했다.[42] 물론 박성준의 경기 수가 이제동보다 적긴 하다.[43] 조용호는 우주닷컴 MSL 패자 결승에서 박정석에게 2:3으로 패한 경험이 있고, 은 뭐 말할 필요도 없이 곰TV MSL 시즌1 결승전에서 김택용에게 0:3으로 패하는 '''3.3 혁명'''을 경험하였다. 이제동은 초창기긴 하지만 2007 1st 스타챌린지 결승전에서 안기효에게 1:3으로 패하였다.[44] 스타 초창기 프로토스 프로게이머가 공방 저그에게 땡히드라를 당해서 졌다는 이야기가 자주 떠돌았으며, 실제로 어느 이벤트전에서는 박정석이 랜덤토스가 나오고도 임요환 랜덤저그의 땡히드라에 밀려버린 경기가 있었다.[45] EVER 스타리그 2008의 결승전 2경기 트로이 맵에서의 경기가 가장 좋은 예로 들 수 있다. 원래 다른 빌드를 준비했었는데 '''실수'''로 도재욱의 본진에 찔러넣어둔 오버로드를 늦게 빼는 바람에 살릴 수 없게 되자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죽을 거 더 보고 죽자"''' 하고 도망가던 오버로드를 다시 찔러넣어 시야를 밝혔고, 이를 통해 드론 밀치기+저글링 난입이 먹히겠다는 즉흥적인 계산 하에 시도했으며 그것도 아주 끄트머리에 나온 걸 겨우 클릭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신이 짜온 플레이까지 버리고 바로 도박수를 걸어대는 저그가 프로토스 입장에서 얼마나 무섭겠는가?[46] 9발업에서 초반에 저글링을 8기나 찍었는데도 일꾼 피해가 3기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이 3기는 난입을 막던 프로브를 잡은 것.[47] 가장 큰 원인은 계속해서 커세어가 끊겨버린 것. 1스타게이트에서 꾸준히 커세어를 모아야 했는데 어설프게 견제를 갔다가 스커지에 계속해서 잡히는 바람에 박성준은 무난하게 타 스타팅 멀티와 앞마당, 3룡이를 죄다 먹을 수 있었고, 겨우 커세어가 다수 쌓여 리버와 함께 나갈 즈음엔 이미 다수 뮤탈+스커지를 갖춘 박성준에게 제공권을 뺏어올 수가 없었다.[48] 의외로 개인리그에서 약했던 상대가 저막으로 유명했던 이재훈. MSL과 WCG 대표 선발전에서 두 번이나 2:0 패배를 당했다.[49] 사실 전성기 시절 김택용을 상대로 유일하게 밀리지 않을 것 같은 저그 플레이어들은 박성준과 함께 심소명이 꼽혔다. 실제로 심소명은 2전밖에 안 되지만 '''두 번 다 이겼다!'''[50] 사실 송병구에게도 공식전만 따지면 '''5승 2패'''로 크게 앞선다. WCG 예선 포함 비공식전에서 단 1승밖에 챙기지 못했던 점이 크다.[51] 사실 2008년은 김택용의 연간 저그전 승률이 5할대로 가장 낮았던 시기다.[52] 영상을 보면 성큰 일점사가 아니다. 조용호가 성큰을 이쁘게 1자로 지어놔서 일점사의 효용이 없다고 판단한 모양.[53] 이것과 비슷한게 바로 2012 티빙 스타리그 허영무vs김명운 4세트 경기다. 종족만 다를뿐, 마지막 쥐어짜낸 올인러시를 허영무가 성공시켜서 승리를 거두었다.[54] 상대방의 경기 소감을 보려면 http://www.playxp.com/sc2/bbs/view.php?article_id=2170572 참조[55] 군대 특성상 주류 반입 당연히 금지다!! 아마도 생수병에 몰래 소주를 넣어서 물인 것처럼 위장시켜 반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사람을 통제를 하는걸 좋아하는 헬조선 군대에서만 음주가 금지다. 미군의 경우 모두 술을 마실 자유가 있을뿐더러 실전환경에 배치된 군인들 경우 43.2%가 상습적으로 스트레스성 폭음을 해서 문제점이 되고있다.[56] 아마 당직 근무를 하던 간부로 추정된다.[57] 당시 디시인사이드 스타크래프트 갤러리의 한 유동이 분노의 글을 남기며 이고시스와 임창수를 열나게 디스하며 사기스폰이라고 폭로하기도 했는데 당시엔 전혀 기사화되지 않은 상황이라 유언비어 퍼뜨리지 말라며 타박을 들었지만 그뒤로 바로 이고시스 철수가 현실화되고 무스폰 상태에서 숙소도 열악한데로 옮기고 최악의 조건에서 선수단이 버텨냈다. 리얼스토리 프로개이머 POS편에서 그 장면이 나온다.[58] 강민의 유튜브 방송에 출연했을 당시 본인은 안 좋은 내용의 썰을 푸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이 있을 듯.[59] 과거 염보성이 MBC시절 썰을 풀때 박성준에게 전화로 "MBC 시절 얘기를 했다" 고 얘기하자 "뭘 그런걸 얘기하냐"라는 투로 답한거 보면 과거의 안좋은 얘기를 밝히고 싶지 않아하는 성격인 듯 하다.[60] 김택용이 연봉협상을 적극적으로 시작할 때 시기가 박성준 연봉이 반토막날 때라서 미안한 것도 있는 듯.[61] 위에서 합방 제의도 했다는 측면에서 나름 생각해주는듯[62] 그나마 멋있게 나온 장면이라면 역대 최고의 오프닝 중의 하나로 평가받는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 오프닝에서 홍진호와 마주서서 서로를 노려보는 모습 정도다.[63] 아이러니한게 서지훈은 박성준과 친한 사이였고 같이 연습도 자주 했었다. 홍진호는 박성준 본인이 최고로 꼽았던 저그 게이머였으며 박성준의 플레이 스타일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저그가 홍진호다.[64] 사실 안심스테이크라는 별명의 유래는 질레트배 16강 한동욱과의 경기에서 한 팬이 치어풀로 '안심스테이크 먹으러 가자.' 라는 걸 만들어서 화제가 되었다. 그 날 박성준도 5드론으로 한동욱을 이기며 3전 전승으로 8강에 진출했고 그 대회 우승까지 했다.[65] 다만 안심은 팬들도 많이 쓴다. 박성준의 스타2 아이디도 '스타테일안심이'다.[66] 도진광, 임정호, 이운재 등.[67] 1.15버전에서, 저그가 건설중인 해처리에 랠리 포인트를 지정했다가 해처리를 취소하면 강제 종료되는 오류. 이로 인해 각종 리그에서 재경기도 많이 나왔었다. 프로게이머가 블리자드에 찾아가서 알리는 등의 활발한(그러나 왠지 안습한, 케스파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수정 요청으로 해결되었다.[68] 라이드 오브 발키리즈는 테란전은 상성수준으로 승률이 나오고 토스전은 오히려 저그가 압살이어서 할만했지만 알포인트, 네오포르테, 815에서의 저그는 테란에겐 압살당하고 프로토스를 상대로도 동률 혹은 낮은 승률을 당하는 암흑기었다.[69] 다만 기본적으로 저저전, 테테전이 워낙 재미없는 동족전인지라 이 동족전이 결승경기가 되면 그 어떤 스타플레이어가 올라와도 흥행이 힘들기 때문에 저그에 대한 맵견제는 은근히 있어왔다. 당장 MSL에서의 2개의 저저전 결승,, 그리고 박카스 스타리그 2009가 망한 이유를 떠올려 본다면 납득할 수 있을듯.[70] 하지만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 결승에서 둘은 다시 만나 최연성이 3:0으로 우승을 거뒀다.[71] 박성준이 이윤열에게 인간상성 수준으로 약했던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되기도 했는데, 다른 정상급 선수들의 팬들이 박성준을 폄하하는 와중에 이윤열 팬들은 박성준을 까지 않았고, 오히려 박성준을 두번째로 좋아하던 이윤열 팬들도 많았다.[72] 하지만 최연성을 저지한건 나름 쾌거다. 최연성의 그당시 포스를 생각하면 정말 이기기 힘든 상대를 이긴거니깐. 2003년 후반부터 2004년 사이의 최연성은 정말 적수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연성의 그 당시 포스만 보면 2010년 이영호와 비슷했다. 차이라고 한다면 이영호 상대로 해볼만한 게이머가 이제동, 김정우, 그리고 다전제에서 2번 이긴 김준영이 있으니...그당시 이제동이나 김정우처럼 정말 최연성 상대로 해볼만한 게이머를 떠올리라고 한다면 크게 생각이 나질 않은것도 있다.[73] 야구도 구자욱 같은 선수들은 인기가 많은 편이다. 기성용이나 이승우는 논란이 있어도 인기많은게 얼빠가 많기 때문이다. 박성준은 딱 골프의 박인비같은 포지션이라고 봐도 무방하다.[74] 수준 낮다는 이야기는 함부로 할 것이 아니지만, 외모와 그다지 관련이 없는 프로게이머에게 외모드립을 남발하고 본인이 좋아하는 선수나 종족을 이겼다는 이유로 비상식적인 안티짓을 하는 건 수준이 낮아도 한참 낮은 게 맞다.[75] 박정석, 서지훈은 이것과 다르게 정말 외모의 수혜를 많이 입은 선수다. 오프닝에서도 거의 메인으로 나오니깐. 물론 당연히 실력과 성적이 어느정도 받춰줬기 때문에 있다. 스타리그 우승자 출신에 꾸준한 성적이 있으니깐. 거기에 팀도 나름 팬덤이 강한 팀이었고. 또 다른 예로 민찬기가 잘생겼어도 푸쉬를 덜받은 이유는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지나친 신경질도 있고.[76] 박성준은 최연성처럼 도발하거나 거만한 모습을 보이는 선수가 아니었으며 강도경처럼 게임 외적으로 논란을 일으킨 적도 없다. 혹은 박태민처럼 접속 드럽게 늦게하고 막판 인사를 쌩까거나 하는 선수도 아니다. 예전 김택용과의 바투 스타리그에서 게임을 지고 good game을 풀로 쳤다. 그만큼 상대를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박성준은 굉장히 게임 로그인이 광속으로 유명한 선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