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금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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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양산시의 남서쪽에 위치한 읍. 지리적으로는 북쪽의 오봉산이 원동면 화제리와, 양산천이 북쪽에서부터 양산시 중부동 → 남부동 → 동면 석산리 → 금산리 → 가산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서쪽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김해시 대동면과 마주보고 있다. 유일하게 산이나 물로 가로막히지 않은 곳이 황산로를 통해 연결되는 교동.
물금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勿(말다 물)에 禁(금하다 금).''' 해석하면 '''금하지 마라.''' 삼국시대 때 신라와 금관가야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6][7] 국경을 접하던 곳이라 관리들의 검색(탐문)이 심하여 강을 건너는 두 나라 사람들이 매우 불편한 까닭에 이 지역만은 서로를 '금하지 말자' 는 뜻이라는 설이 있다.[8][9] 물론 저 물(勿)자가 발음을 적은 이두 표기로서 "물"(水)을 말할 가능성도 있다. 왜냐하면 한국 지명들의 상당수가 소리를 적은 이두표기의 잔재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2. 인구
엄청난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양산신도시 2-1단계사업 준공인 2006년부터 매년 12월 기준 인구를 보면 다음과 같다.
통계 자료가 보여주는 것처럼 2014년 이후 매년 10% 이상의 높은 인구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11년에 잠시 주춤한건 양산신도시 2-3단계 사업과 3-4단계 사업간의 분양시기 차이 때문이다. 현재 양산시 내에서 웅상과 시내의 인구도 넘어선 상태다. 또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읍이면서 비수도권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는 읍인 동시에, 수도권 3대장인 진접, 화도, 오포를 제외하고 인구 9만명을 넘긴 비수도권 최초의 읍이기도 하다. #관련 기사 그리고 저 기사가 난지 세 달 뒤인 2017년 7월 인구통계에서 화도읍을 제외한 두 읍의 인구를 능가해버려 읍 인구 전국 2위가 되었다.[10][11] 2017년 9월 22일 기준으로 인구수 10만명을 돌파했다.
인구수 9만을 기준으로 그 이후 인구 증가치를 보면 경이로울 정도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는데 월평균 1,583명, 즉 1,600명에 가까운 인구가 매월 늘어난 셈이다.
'''18년 5월 인구통계에서 화도읍 인구 마저 능가해버려 읍 인구 전국 1위가 되었다.''' 이 기세로 가면 '''장유면 시즌2'''를 찍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물금읍의 아파트단지가 완공되고 개발이 모두 완료되는 시점에는 인구 수를 150,000명 정도로 내다보고 있다.
2.1. 인구 증가에 의한 분동 논의
물금신도시와 증산신도시의 개발이 진행되면서 읍 자체만으로도 10만에 이르는 과대읍이 되어 수많은 주민들의 민원이 물금읍사무소 하나에 집중되는 등 분동의 가능성 또한 점쳐지지고 있지만, 시에서는 분동에는 소극적이다.##[12]
2020년 초부터 분동에 대한 여론의 반응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인구수에 비해 행정처리능력과 공공시설이 태부족하다는 의견과 함께 분동을 추진해야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일부 주민들의 읍 행정구역으로서 받는 각종 농어촌 혜택과 주민세 감면 혜택을 잃게 되는 부정적인 의견이 있다. 우선 단기적으로 전자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읍장을 서기관으로 임명하는 행정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분동에 대한 안건은 양산시의회에서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양산시가 분동되면 정치권에서도 일부 영향이 있을 수 있다. 물금읍 분동으로 인해 선거구가 개편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물금지역은 양산시 갑 선거구에 해당하는데 해당 선거구는 국민의힘 윤영석의원이 3선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어나가고 있다. 반면 양주동과 웅상지역을 포함하는 양산시 을 선거구는 더불어민주당 김두관의원이 맡고 있다. 보다시피 양산시는 여야가 매우 치열한 지역이라 선거구가 분리된다면 분명히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도시 지역인 동면 석산리, 금산리, 가산리도 물금읍과 함께 분동이 될 가능성이 있다.
3. 관할 행정구역
3.1. 물금리
읍 서쪽에 위치한 리. 물금(勿禁)이라는 이름에 대해 가장 타당한 설은 이 지역이 당시 황산강으로 불렸던 낙동강을 기준으로 가락국(현 김해시)와의 접경지대였던 사실을 기원으로 하고 있으며 당시 국경을 넘나드는 이들에 대한 수색이 심해 오가는 이들은 물론 병사들도 고생이 심하여 서로 "금하지 말 것을" 논의한 데에서 온 이름이라는 것이다. 한편 낙동강 하류 지역으로 수해가 심했던 이 지역에 "물이 넘치지 말 것을" 기원하여 지은 이름이 현재의 표기로 고착화되었다는 설도 있다. 마찬가지로 황산강에 인접하여 황산진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적도 있으며 물금읍 전체를 ㄱ자로 가로지르는 황산로의 이름은 여기서 따왔다.
예로부터 물금역을 끼고 발전을 거듭하였고 지금도 물금읍사무소가 있는 물금읍의 행정적 중심지이지만 위치상으로 물금읍의 최서단에 치우쳐 있다는 점 때문에 부산 도시철도 2호선의 혜택을 받지 못했고 양산신도시 개발에서 범어리, 가촌리, 증산리에 밀려 지역 중심지 역할은 잃어버린 상태다.
어쨌든 양산신도시가 조성되면서 양산시를 방문한 사람들에게는 이질감이 크게 드는 곳임에는 틀림없다. 불과 0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물금읍 자체가 시골이었는데 양산신도시 개발과정에서 이곳만이 배척되어 과거의 향수를 간직이라도 하는 것 마냥 시간이 멈춰버린 상태니... 그래도 여기서 살았거나 근처 물금초등학교나 물금동아중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에게는 해가 거듭될수록 예전 시골의 모습이 바뀌어감에 시원섭섭함을 느낀다고 한다.
경부선 물금역, 강민호 야구장, 황산문화체육공원이 위치해 있다.
3.2. 범어리
전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법정리로, 물금읍의 북동부에 위치해있으며, 그 면적이 매우 넓어 읍 전체 면적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새실천을 경계로 하여, 자연마을과 택지조성지대가 발전하여 이루어진 작은오봉산 기슭의 구시가지와 그 아래로 펼쳐진 "메기들"이라 불렸던 평지 지대의 신시가지로 구성되어있다. 범어(凡魚)라는 지역 이름은 조선초부터 이어져온 것으로, 1922년 본격적인 관개공사가 이뤄지기 전 늪지대였던 메기들에 물고기의 수효가 많았던 사실에서 따온 이름으로 추측되고 있다. 양산천을 따라 물금읍 전체를 가로지르는 메기로의 이름은 여기서 따왔다. 평지 지대는 관개 이후 농지로 이용되다가, 2016년 현재는 양산신도시 개발 계획이 실행됨에 따라 지반침하 공사를 거쳐 속속들이 도시화되고 있다. 이는 물론 다른 리에 포함된 평지 지대도 마찬가지.
양산교육지원청, 양산워터파크, 양산경찰서, 양산소방서 등 읍뿐만 아니라 시의 주요 시설들이 신도시 개발에 호응해 이전해왔으며, 양산부산대학교병원과 부산대 양산캠퍼스 또한 범어리에 위치해있다. 양산신도시로서는 양주동 다음으로 개발이 이루어진 곳으로 물금읍 전체에서 가장 먼저 개발이 이루어졌으며, 이에 따라 2018년 현재 범어고와 물금고가 모두 이 곳에 위치해 있고 물금읍사무소 출장소가 설치되어 있는 등 물금읍의 실질적 중심지라고 할 수 있겠다. 부산 도시철도 2호선 부산대양산캠퍼스역이 위치해있으며, 동면 석산리에 소재한 남양산역 또한 사실상 범어리 권역[13] 에 위치해 있다.
여담으로 전국의 법정리 중 가장 인구가 많다.[14] 범어리 인구만 해도 기장읍 전체 인구와 거의 비슷하며 자치구인 부산광역시 중구 전체 인구보다 더욱 많다(!!). 참고로 법정리 인구 2등은 범어리 바로 밑에 위치한 가촌리(48,220명).[15]
3.3. 증산리
물금읍의 남부에 위치해있다. 증산(甑山)이라는 이름은 물금리와 증산리를 남북으로 가르는 산인 증산(甑山)에서 따온 것으로, 연결된 산맥이 없이 혼자 들판에 떡하니 솟아 있는 그 모습이 시루와 같다고 하여 시루 증(甑)자를 사용하였다. 기존에 증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온 곳은 이 증산 바로 아래에 조성된 북서쪽의 증산상리와 거기서 낙동강을 따라 살짝 남동쪽에 조성된 남평마을을 가리킨다. 양산신도시로 개발중인 구역은 이 두 마을과는 북쪽으로 떨어진 부산 지하철 2호선 증산역을 중심으로 하는 곳으로, 구역상 범어리/가촌리와 사실상 연담화되어있다.
한편 양산천과 맞닿은 동쪽에는 한국복합물류 양산터미널과 양산화물선 양산화물역이 위치해있으며, 이 곳을 통해 중앙고속도로지선 물금IC로 진입할 수 있다. 신도시와 연계된 남물금IC가 개통예정이다.
3.4. 가촌리
지역이 물금읍 중앙을 관통하고 있다. 서쪽에는 과거 구시가지들로 이루어졌고 동쪽에는 벌판이였다가 최근 개발되고 있다. 원래 가촌리의 명칭은 가자방(加資坊)이었다고 한다. 마을의 형성 시기는 신라시대 이전으로 볼 수 있다. 현 송담서원 서북쪽 당산나무가 있는 통정곡에 사람들이 처음 살기 시작하였으며, 고려 말기에는 분성배씨·문화유씨·부여백씨·밀양박씨·동래정씨·파평윤씨 등이 정착하여 살았다.
현재 가촌리의 경우 가촌본리와 신도시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가촌본리 지역은 말 그대로 신도시 조성 전 가촌리의 중심지역이며 신도시 개발구역에 포함되지 않는 곳이다. 양산시립도서관, 양산국민체육센터가 있으며 물금 동일스위트, 물금 코오롱하늘채, 물금 한신 더휴 아파트, CGV 양산물금 등이 속해있다.
가촌리의 신도시 지역의 경우 물금택지개발예정지구 3단계 구역의 반 이상을 포함하고 있으며 3단계 지구에서 가장 많은 아파트 단지가 주소를 두고 있다. 증산역 앞 라피에스타 상가까지 가촌리에 포함된다. 보통 이 지역은 증산신도시라고 불리는데, 정작 증산리에 주소를 두고 있는 아파트 단지는 하나도 없다.
그에 따라 가촌이라는 지명은 주로 가촌본리를 말할 때 사용된다.
4. 역사
출처:물금읍사무소 누리집
황산이라는 지명으로 삼국사기 초반 기록에서부터 여러 번 등장한다.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초기 신라와 가야간에 많은 다툼이 있었으며 신라가 낙동강 유역을 장악한 후에도 경주에서 낙동강으로 가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조선대에는 한때 현 부산광역시 북구와 강서구 대저 지역, 심지어 낙동강을 따라 을숙도까지(...) 영역이 뻗어있던 곳이 당시 양산군이다. 현재 양산시의 남서쪽에 위치한 물금읍이 상서(上西)라는 이름을 받았던 것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당시 두 지역의 이름은 각각 좌이면과 대저면. 상서에 대응되는 하서(下西)면은 바로 오봉산 너머 북쪽에 있는 원동면인데, 조선시대에는 하서면이라고 불렸다.
1983년에는 교리, 유산리, 어곡리가 양산읍에 편입되어 현재의 영역으로 축소됐다.
5. 교통
5.1. 버스
기존에 물금리 물금읍내를 종점으로 하던 버스들이 일괄적으로 증산역 바로 옆의 증산공영차로지로 연장되어 버스교통이 매우 편리해졌다.
5.2. 철도
경부선 물금역[16] 이 있고, 부산2호선 증산역, 부산대양산캠퍼스역, 남양산역이 있으며, 화물역으로는 양산화물역이 있다. 도시철도의 경우 물금읍 중심지가 아닌 양산천 끄트머리를 기준으로 통과하기에 물금읍에서 이용하기 상당히 불편하다.
6. 학교
6.1. 초등학교
• 물금초등학교
• 서남초등학교
• 범어초등학교
• 오봉초등학교
• 황산초등학교
• 성산초등학교
• 신주초등학교
• 증산초등학교
• 가남초등학교
• 가양초등학교
• 가촌초등학교
계속해서 나날히 증가하는 물금읍 인구에 맞게 초등학교가 여럿 신설되었고 계속 신설 중에 있다.• 서남초등학교
• 범어초등학교
• 오봉초등학교
• 황산초등학교
• 성산초등학교
• 신주초등학교
• 증산초등학교
• 가남초등학교
• 가양초등학교
• 가촌초등학교
6.2. 중학교
• 범어중학교
• 신주중학교
• 물금동아중학교 - 2000년대 초반에 동아제2중학교에서 물금동아중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 물금중학교 - 2018년 3월 1일 첫 개교. 물금신도시 정중앙에 위치해 있다. 형제 학교로 범어리에 물금고등학교가 위치해 있고 정작 옆에 위치한 학교는 신주중학교다.
'''인구 11만이 넘어가는 지역에 중학교가 네 곳 뿐'''이다. 그마저 물금중학교가 2018년 최근에 개교한 이전에는 단 세 개의 중학교로 물금읍 관내 중학생들을 모두 담당해야만 했었으며 2000년대 이전까지는 물금읍 관내 중학교가 물금동아중학교 단 하나 뿐이었다. 따라서 네 곳 모두 과밀 현상이 상당 수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중학교를 신설해달라는 학부모들의 요구가 끊이질 않는다.• 신주중학교
• 물금동아중학교 - 2000년대 초반에 동아제2중학교에서 물금동아중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 물금중학교 - 2018년 3월 1일 첫 개교. 물금신도시 정중앙에 위치해 있다. 형제 학교로 범어리에 물금고등학교가 위치해 있고 정작 옆에 위치한 학교는 신주중학교다.
6.3. 고등학교
'''인구 11만이 훌쩍 넘어가는 지역에 일반계 고등학교가 단 둘 뿐'''이다. 그마저도 둘 다 2000년대 후반에 개교한 학교이며 그 이전까지는 물금읍에 고등학교가 하나도 없어서 양산천을 넘어 양산 본시가지로 통학해야만 했었다.[17]
또한 물금읍 중앙이 아닌 둘 다 범어리에 위치해 있어서 물금역 인근이나 증산역 연선에서 통학하는데 많은 애로사항이 발생하고 있다.[18]
때문에 두 학교 모두 전교생 숫자가 1,000명을 아득히 넘어선다. 본의아니게 과밀 현상이 발생하여 뺑뺑이 지망에 탈락하게 된다면 양산천을 건너 양산신도시 관내에 위치한 고등학교로 통학하는 학생들도 상당히 많은 관계로 증산리나 가촌리 일대에 새로운 일반계 고등학교를 신설해달라는 요구가 쇄도하고 있다.[19]
6.4. 대학
• 부산대학교 양산캠퍼스 - 첨단산학단지가 이 곳에 건설 중이다.
7. 기타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망한 장소인 양산부산대학교병원이 이곳에 있다.
- 원동으로 넘어가려면 오봉산을 넘어가야하는데, 이 오봉산에는 양산 8경 중 하나인 임경대가 있다. 나중에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촬영지로도 알려지기도 했으며, 훗날 차태현이 1박 2일에 출연하게된 후에 가장 먼저 가보고 싶었던 곳으로 오봉산 임경대를 제안하기도 했다.
- 대구부산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부산에서 밀양 삼랑진까지 자가용으로 가장 빠르게 가려면 물금읍과 원동면을 관통하는 원동로를 반드시 거쳐서 가야했다.
- 신도시개발 이후 아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단기간에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진 지역으로 꼽힌다.
[1] 62행정리 901반[2] 경기도 남양주시 퇴계원읍,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과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에 이어, 대한민국에서 면적이 네번째로 좁은 읍이다.[3] 2020년 12월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4] 전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읍이다. 원래 읍면동 합쳐 1위였으나 2019년 7월 1일부터 신설되는 부천시 신중동이 읍면동 인구 1위를 탈환하게 된다.[5] 전국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읍이였으나 2019년 10월 승격된 퇴계원읍이 거의 10,000명에 육박하는 인구밀도를 가지고 있어 1위를 내주었다.[6]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신라와 가야가 대치하던 대부분 기간 동안 낙동강이 아니라 약간 더 동쪽에 위치한 양산천을 경계로 동쪽은 신라, 서쪽은 가야로 국경을 이루고 있었다. 나중에 금관 가야 세력이 약해지면서 낙동강을 경계로 국경선이 서쪽으로 이동하였다.[7] 대가야는 백제의 압박에 대응하기 위하여 522년 신라 공주를 왕비로 맞이하여 혼인동맹을 맺었다. 신라는 대가야와 혼인동맹을 맺어 대가야와 맞닿아있는 서쪽 국경에 대한 부담을 덜고, 524년 남쪽의 금관가야에 힘을 집중해서 공략하기 시작했다. 532년 결국 금관가야(가락국)는 신라에 합병되고 말았다. 금관가야와 신라의 국경이 양산천에서 낙동강으로 옮겨진 시기도 대가야와 신라의 혼인동맹 즈음으로 생각되고 있다.[8] 이 설에 따르자면, 지금의 물금 일대가 고대 신라와 가야 사이의 자유무역지대였을 수도 있다. 실제로 양산에는 당시 신라 세력과 가야 세력이 공존했음을 시사하는 유적들이 나오고있다.[9] 물금역에서 1km 남짓 북쪽에 물금광산이라는 철광석 광산이 위치한다. 금관가야와 신라가 이 물금광산을 놓고 다투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물금광산에 매장된 철광석이 얼마나 많았던지, 현대에 들어 1980년대까지도 최고의 철광산으로 명성을 떨쳤다. 거의 2천년 가까운 세월동안 광산의 명맥이 면면히 이어져왔던 것. 1980년대 이후 채산성이 악화되면서 물금광산은 폐광되었다.[10] 사실 9만명 넘긴 이후 읍 인구 2위로 등극하는데 세 달밖에 안 걸렸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 인구가 아직도 완성된 것이 아니며 지금도 공사중인 아파트가 많이 있다.[11] 과밀읍이라고 언급된 곳이라도 그래도 읍내를 벗어나면 농촌도 간간히 보이지만 물금읍은 거의 100% 도시화된 지역이라 과밀읍 중에서도 과밀하다.[12] 화도읍은 분동 해봤자 소용없는 곳이 많은데 비해 물금은 녹지가 거의 없는 완전한 신도시 지역이라 할 이유는 있다.[13] 실제로 남양산역은 양산천 기준 서쪽(= 물금 땅)에 위치해 있음에도 기이하게 동면에 위치해있다 (..)[14] 참고로 법정동까지 범위를 넓히면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이 제일 많다.[15] 2018년 4월을 기준으로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42,401명)를 제쳤다.[16] 무궁화호, ITX-새마을, 남도해양열차가 미필수 정차한다.[17] 범어고등학교가 개교 당시에는 특성화고등학교로 개교 예정이었으나 학부모들의 엄청난 반발을 받고 일반계 고등학교로 개교되었다.[18] 증산공영차고지 착발 노선들을 이용해야 하는데 몇몇 노선들을 제외하면 증산리와 가촌리를 거치지 않는데다 배차간격마저 매우 길다.[19] 심한 경우 가촌리와 증산리 일대에 거주하는 남학생이 북부동에 위치한 양산고등학교까지 통학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여학생은 교동에 위치한 양산여자고등학교까지 가기도 한다.[20] 두 사진 모두 물금 오봉산에서 찍은 것으로 맞은편에 있는 산은 금정산 장군봉과 고당봉이다.[21] 뭔가 공동주택 부분 인구와 세대수가 바뀐것 같다;;[22] 부산대 의대가 양산신도시로 들어온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데, 부산대가 양산신도시 중앙에 위치해있는데다가 쓸데없이 땅을 사들여서 가운데 부분만 아무것도 지은 것 없이 휑하게 남아있기때문이다. 물론 부산대가 무리하게 다른 학과들을 양산으로 이전하려다 틀어지면서 생긴 병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