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 콘서트

 


2000년 10월, 보라매공원(H.O.T.) 편
1. 소개
2. 상세
3. 논란
4. 역대 출연자 목록


1. 소개


2000년 9월 24일부터 2003년 1월 12일까지 방송되었던 문화방송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전 코너[1]로 목표인원수와 도시를 지정해 코너에서 콘서트를 하는 가수가 해당하는 도시를 찾아가 1시간동안 홍보차를 타고 길거리 홍보만 하며 다른 홍보요원은 하루동안 홍보를 할 수 있다.
그 다음 콘서트장에 인원이 모이기 전에 콘서트를 하는 가수는 무대 앞에서 안대를 쓰고 있으며 그 다음에 가수는 안대를 벗고 목표 인원수가 나오는 무대 뒤편의 전광판과 콘서트 관중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 다음 콘서트 무대에 도착한 인원수(보통 5천명)가 목표치를 넘겼는지에 따라 공연 여부가 결정된다.[2]

2. 상세


2001년부터 장소는 당일날 아침에 추첨으로 정했는데, 듀크는 예외적으로 추첨 없이 바로 안양시로 결정됐다. 이유는 당시 유일한 실패 장소가 안양이었고, 듀크가 '성패를 예상하기 가장 어려운 가수'로 꼽혔기 때문. 결과는 '''5024'''명이 참석하면서 가장 아슬아슬하게 콘서트를 열었던 주인공이 되었다.
다섯번째 출연자인 가수/배우/사업가강현수에게는 흑역사이기도 한데[3], 앞선 출연자들인 조성모, 핑클, H.O.T., god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진다는 점을 감안해서 예외적으로 24시간 동안의 길거리 홍보가 주어졌으나, 게릴라콘서트 최초 실패를 계기로 가수 일과 배우 일이 꼬였기 때문이다.[4] 그 밖에도 가수 중에서는 주영훈[5], 클릭비[6], 최진영, 강수지, 김현철&윤상[7], 가 게릴라 콘서트 개최에 실패한 흑역사가 있다.[8] 의 경우는 2011년 입대 전 코엑스 앞에서 무료 콘서트를 개최해 데뷔 초기 게릴라 콘서트에서의 굴욕(?)을 말끔하게 씻어냈다.
일밤의 게릴라 콘서트는 단 7번을 제외하고 공연에 성공할 정도로 성공률은 굉장히 높았다.[9]
S.E.S.는 2001년과 2002년에 한번씩 총 2번이나 개최했는데[10], 두 번 모두 성공. 심지어 두번째 공연은 지하철에서만 모집할 수 있다는 페널티에도 불구하고 성공했다. 참고로 S.E.S.의 첫번째 공연 편은 당시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해서 지금도 S.E.S.하면 게릴라 콘서트부터 떠올리는 사람도 많다.
그 중에서 가장 최대로 관객이 모인 경우는 2001년 12월 23일 수원시에서 열린 god 공연의 18,521명이라고 한다. 참고로, 진행 장소는 수원월드컵경기장. 이 당시에는 god의 '촛불하나', '니가 있어야 할 곳' 같은 노래 등으로 god가 엄청나게 인기가 많았던 시절이라 태극기 지참자[11]만 관객수로 인정되는 도전이었는데도 목표인원인 16,000명을 넘길 정도였고 2000년 해운대에서 개최할 때도 11,406명의 관객을 모은 적이 있었다.[12] 그 외에도 당시 리즈 시절이었던 장나라도 혼자서 17,502명이라는 수치를 찍었다.
젊은 세대에게 '숲튽훈'으로 유명한 김장훈도 두 번 모두 성공했다. 한 번은 서경석, 이윤석과 함께 11522명을 동원했으며, 혼자 나온 2002년 1월 27일 방영분(구미대교에서 진행)에서도 13748명이라는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특히 게릴라 콘서트를 하는 가수들이 공연하기에 가장 힘든 지역으로 대전광역시를 꼽는데, 여기는 전통적으로 묵직한 양반 정서를 가지고 있는 동네라서 사람들이 웬만해선 잘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역시 최종 보스는 단연 '''울릉도'''로, 게릴라 콘서트 역대 최악의 지역으로 꼽힌다. 이 지역을 뽑은 가수는 김현정이 유일하며, '''총 인구 9,000명 중 2,000명'''을 모집해야 했는데[13]... '''목표보다 106명이 더 와서 성공'''했다.
참고로, 게릴라 콘서트에서 출연자가 안대를 풀 때 나오는 음악은 Steve Raiman의 Songbird이며 후에 에르칸 아키의 forever is not enough로 바뀌었다.
일밤의 게릴라 콘서트는 현재는 종영된지 꽤 됐지만, 형식만큼은 살아남아서 본가인 MBC무한도전에서 게릴라 콘서트를 하기도 하는 등 콘서트의 형태로 자리잡았다. 다만, 프로 자체는 부활이 어려운 게 예전과 달리 SNS인터넷이 널리 보급되어 금방 소문이 퍼지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어지간히 인지도가 떨어지지 않고서야 실패하기가 힘든 형태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토토가2 - 젝스키스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게릴라 콘서트 형식으로 컴백 콘서트를 하기로 했지만, '''엠바고를 무시한 노윤정 기자에 의해 컴백 사실이 탄로나는 바람에''' '하나마나 공연'으로 컨셉을 변경했으며, 마지막 무대는 원래 예정되었던 상암 경기장에서 진행했고, 안대와 헤드셋까지 착용. 결과는 '''5808명'''으로 게릴라 콘서트의 기준 관객수를 넘겼다.[14] 또 다른 예로 해당 프로의 단발성 정신적 후속작(?) IZ*ONE CHU - 비밀친구에서 IZ*ONE이 게릴라 콘서트를 성공했으며 또 다른 단발성 후속작인 JTBC 막나가쇼 역시 이경규, 요요미고속도로 휴게소라는 공연 장소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SNS 입소문을 통해 흥행(?)에 성공했다.
당시 YB가 새삼 주목받았던 계기가 된 프로그램이다. 무명 시절이 길었지만 잔뼈가 꽤나 굵었던 팀으로, 당시 인기가 폭발적으로 많았던건 아니었지만 지상파 활동은 꾸준히 하던 팀이었다. 밴드는 밴드다워야 한다는 이유로 홍보 도중 차로 이동하면서도 공연을 하게끔 큰 트레일러 카 안에 시설을 마련해주었으며, MC였던 코미디언 김진수는 '이 때가 본인이 진행해오던 때 중 가장 인상깊었다'고 회고했다.
제작진은 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주었으며 관객수 공개전 '''우리는 실패해도 마음속으로 웁니다'''란 말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자극했고 목표달성으로 이어진 공연 후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그리고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이 개최되었을 때 오필승코리아로 대박을 쳤다.

3. 논란


한 때 이 프로그램은 일본예능 프로그램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았는데,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게릴라 콘서트’는 전에 보이지 않던 PD 모습까지 나오는 것이 닛테레의 <전파소년>[15]을 옮겼고, 진행 방법은 물론 제목까지 비슷한 ‘소코가시리타이(그것이 알고 싶다)’는 아직도 계속 방송하고 있다는 증언이었다.[16]
사실 위의 표절 문제보다 더 논란이 된 부분은 게릴라 콘서트의 콘서트 진행 정보가 은밀히 새나간다는 의혹이 잦았다는 점이며, 제작진에서는 끝까지 부인했지만 상당 부분은 사실로 드러났다. 일례로 원주시에서 개최된 jtL의 콘서트의 경우, 주로 여중생 내지 여고생을 중심으로 하는 팬간의 정보 공유로 인하여 콘서트 개최 며칠 전에 이미 공연에 관한 정보가 모두 퍼진 실례가 있었고, 장나라의 콘서트는 인구 24만의 중소도시인 목포시에서 1만 7천 명을 동원했는데, 이는 MBC 지역국인 목포MBC에서 MBC 채널에 오늘 게릴라 콘서트 한다고 자막을 띄워준 덕택이다.
이 외에도 서울특별시 여의도에서 치러졌던 박진영 편 때도 MBC에서는 자막을 띄워준 바 있다. 대전에서도 룰라가 게릴라 콘서트를 한다고 MBC에서 자막을 띄워 주었다. 또한, 진행 과정에서 지나치게 억지감동을 조장하는 등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비판도 많았다.
한편 가수가 아닌 이영자를 위해 게릴라 콘서트를 연 것도 논란이 됐는데, 당시 그녀는 지방 흡입 건으로 반은퇴 상태였기에 더욱 파장이 컸다.[17] 하지만 방송 당시 분위기는 감동의 물결로, 함께 했던 최화정은 이제 영자의 봄날이 다시 돌아오는것 같다며 눈물을 짓기도... 그럼에도 그녀의 복귀는 쉽지 않았고, 2007년무릎팍도사 출연으로 탄력을 받다가 후에 허언 논란으로 다시 지지부진, 현장토크쇼 TAXI안녕하세요를 진행하면서 완전하게 지상파로 복귀할 수 있었고,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4. 역대 출연자 목록


역대 출연자 목록 위키백과를 참조.

[1] 위키백과에선 성시경 편이 마지막으로 나왔으나, 2003년 3월에 안재욱창원시에서 게릴라콘서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2] 예외적으로 신승훈 편과 코요태 편에서는 30분 간 밀폐된 홍보차를 타고 임의로 정하는 3곳에서 10분 씩 홍보, 나머지 30분은 자유홍보를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3] 장소는 안양 중앙공원.[4] 이후 V.One이라는 이름으로 재데뷔해 재기에 성공했다.[5] 히든 싱어의 반복되는 오리지널 가수의 우승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게릴라 콘서트가 계속해서 성공하다가 자기 때 실패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모창자가 우승할 거라고 이야기했으며 히든 싱어2 2회 만에 모창자 우승자가 나왔다.[6] 꽤 많은 인원인 7,552명이 왔으나 클릭비가 정한 목표 인원이 만명이었기 때문이다.[7] 강수지에 이어 2주 연속 실패.[8] 비는 원래 목표였던 5천명에서 1천명이 오른 6천명으로 목표를 설정했는데, 결과는 5367명이 나와 공연 취소.[9] 태진아 첫번째 편은 폭설로 인해 공연이 취소되었는데, 당시 부산광역시는 무려 49년만의 대 폭설이 나던 날이었다. 그 뒤 2001년 8월 29일에 다시 도전해서 게릴라 콘서트 개최에 성공했다. 참고로, 위키백과 목록에서는 일부가 빠져 있는 등 좀 부실하기 때문에 아주 정확하지는 않다.[10] 두번 다 대구광역시에서 도전했다.[11] 당시 많은 god 초중고생 팬들이 게릴라 콘서트 소식 듣자마자 도덕책 첫페이지에 있는 태극기를 뜯어갔다는 후담이 있다.[12] 참고로, 도전 인원과 컨셉 모두 이들이 스스로 정한 거다.[13] 홍보 당시 울릉순환로 일부 구간의 공사가 중단되어 중간에 배를 타고 이동했을 정도였다고 한다.[14] 게릴라 콘서트 형식을 절충했지만 엄연히 하나마나 공연이었기 때문에 인원 수에 관계 없이 공연은 했을 것으로 보이며, SNS로만 홍보가 진행됐기 때문인지 방송에선 관객 수를 비공개했다. 특히 SNS로 공연 불과 6시간 전 당일 홍보에, 평일 저녁에 콘서트가 열렸다는 걸 감안하면 해체 16년이 지난 젝스키스의 팬덤의 화력이 아직 식지 않았음을 증명한다.[15] 1998년도에 방영했던 《현상생활! 나스비의 방》으로 유명하다. 더 가관인건 '''24시간 내내 온라인 스트리밍을 하고 그걸 한국에서도 시전, 방청객이 있는 스튜디오에 세트를 해체해 몰카까지 했다!''' 만약 한국이였다면 PD가 중징계받고 방송국은 끝장났다(...)[16] 참조.[17] 큰 논란은 아니었지만, 이영자는 본업이 가수가 아니어서 노래를 부르기가 애매해 가수 포지션과 듀엣 공연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