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정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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郭正出
1937년 5월 21일 ~ 2019년 7월 11일
대한민국의 언론인, 기업인, 정치인이다. 본관은 현풍(玄風), 종교는 불교다.
1937년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에서 태어났다.# 부민초등학교, 경남중학교, 경남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중학생, 고등학생 시절 야구부에 속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이후 중앙일보 정치부 및 사회부 기자, 제일제당 도쿄지점장, 새한미디어 대표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서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한국당 서석재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정의당 내에서 쓴소리를 잘 하는 국회의원으로 각인되었다. 1983년부터 1985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상공위원회 간사를 역임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서구-사하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역시 신한민주당 서석재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소선거구제로 선거법이 변경되자 이전까지 두 번 동반 당선된 상대인 통일민주당 서석재 국회의원과 맞붙는 것을 피하려고 사하구 선거구 출마를 희망하였다. 그러나 민주정의당 수뇌부에서는 서석재와 맞붙는 것을 선호하였고 이 와중에 서석재는 사하구 선거구를 선택하였다. 결국 곽정출은 민주정의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서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하였다. 이후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영삼이 지역구를 양보하고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출마함에 따라 민주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김영삼 정권이 출범하자 민주계의 독주를 비판하였다. 그리고 역사바로세우기도 비판하였다.
그러나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공천을 받지 못하자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부산광역시 서구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김영삼의 가신인 신한국당 홍인길 후보에 밀려 패하였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다시 이회창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신한국당에 입당하였다. 그 해 말 홍인길 국회의원이 한보그룹 비리 건으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자 이듬해인 1998년 재보궐선거가 치러졌다. 해당 재보궐선거에서 정문화에게 한나라당 공천에서 밀리자 역시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부산광역시 사하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박종웅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삼성그룹에 몸담고 있을때 이병철회장의 총애가 대단했다고 한다.#
郭正出
1937년 5월 21일 ~ 2019년 7월 11일
1. 개요
대한민국의 언론인, 기업인, 정치인이다. 본관은 현풍(玄風), 종교는 불교다.
2. 생애
1937년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에서 태어났다.# 부민초등학교, 경남중학교, 경남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중학생, 고등학생 시절 야구부에 속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이후 중앙일보 정치부 및 사회부 기자, 제일제당 도쿄지점장, 새한미디어 대표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서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한국당 서석재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정의당 내에서 쓴소리를 잘 하는 국회의원으로 각인되었다. 1983년부터 1985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상공위원회 간사를 역임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서구-사하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역시 신한민주당 서석재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소선거구제로 선거법이 변경되자 이전까지 두 번 동반 당선된 상대인 통일민주당 서석재 국회의원과 맞붙는 것을 피하려고 사하구 선거구 출마를 희망하였다. 그러나 민주정의당 수뇌부에서는 서석재와 맞붙는 것을 선호하였고 이 와중에 서석재는 사하구 선거구를 선택하였다. 결국 곽정출은 민주정의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서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하였다. 이후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영삼이 지역구를 양보하고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출마함에 따라 민주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김영삼 정권이 출범하자 민주계의 독주를 비판하였다. 그리고 역사바로세우기도 비판하였다.
그러나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공천을 받지 못하자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부산광역시 서구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김영삼의 가신인 신한국당 홍인길 후보에 밀려 패하였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다시 이회창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신한국당에 입당하였다. 그 해 말 홍인길 국회의원이 한보그룹 비리 건으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자 이듬해인 1998년 재보궐선거가 치러졌다. 해당 재보궐선거에서 정문화에게 한나라당 공천에서 밀리자 역시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부산광역시 사하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박종웅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3.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4. 여담
삼성그룹에 몸담고 있을때 이병철회장의 총애가 대단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