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이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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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설명
3. 특징
4. 벌레먹은 경우
5. 송이버섯과의 비교


1. 개요


사마귀버섯목 능이버섯과 능이버섯속의 식용 버섯.

2. 설명


향이 매우 진해서 향이(향버섯)이라고도 부른다. 본래 이름은 웅이(熊茸)며 방언으로는 능이(能耳)라고 한다고 19세기 중엽의 문헌인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기록되었는데, 능(能)도 곰이라는 뜻이 있으므로 결국 우리말로 곰버섯이였던 버섯이 한자식으로 웅이 또는 능이로 불리다가 능이로 정착한 듯하다.
티베트산 능이버섯이 특히 유명한데 많이 나기 때문에 생각보다 저렴하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건버섯 100 g에 가격이 2-3만 원 정도인데, 생버섯 10을 말리면 무게는 1이 되므로 물에 불리면 생각보다 양이 꽤 많다.

3. 특징


능이버섯 역시 송이버섯만큼은 아니지만 야생에서 꽤나 구하기 어려운 버섯이며, 국내에서는 생장 환경[1]의 기후, 습도, 온도가 유기적으로 맞아야 자랄 수 있기 때문에 재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능이버섯은 향이 매우 독특하며, 식감도 다소 강한 편이다. 능이 버섯의 향과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말리지 않은 능이 버섯을 소금물에 데친 뒤 찢어서 한 번 더 살짝 데치는 것이(일명 능이버섯 회) 좋다. 하지만 이렇게 먹으면 한 번에 많은 양을 먹게 되므로 대부분 탕이나 국의 형태로 먹는데, 능이버섯으로 국물을 내면 검은빛 국물이 나온다. 능이버섯의 향이 상당히 강하기 때문에 국물에 소량만 넣어도 능이버섯의 향이 국물에 깊게 배어든다.
능이버섯은 가을에만 채취할 수 있기 때문에 생으로 된 능이버섯은 제한된 기간 동안 그것도 산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것[2]이 보통이다. 생 능이버섯은 급속 냉동하거나 말려서 보관한다.
또한 능이버섯은 식용 버섯이지만, 생으로 먹을 경우에는 미량의 독소로 인해서 현기증이나 안면 홍조 등의 증상이 올 수 있으니 어린이나 노인들은 생식해서는 안된다. 독버섯인 화경솥밭버섯과도 비슷하므로 주의. 다만, 화경솥밭버섯은 느타리처럼 점 무늬가 없다.

4. 벌레먹은 경우


능이버섯은 버섯의 식육 안에 벌레가 없이 깨끗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렇기에 능이버섯 생회를 먹다가 구더기나 굼벵이가 나올 수 있다. 말린 능이버섯을 사용할 때, 하얀 알같은 것이 바로 구더기이다.
침착하게 제거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당황해서 손발이 떨린다면 생회로 먹는 건 포기하든지 하자. 물론 베어 그릴스 같은 강심장을 가지고 있다면 그냥 먹어도 되겠지만 구더기가 누구의 자식인지를 떠올린다면...

5. 송이버섯과의 비교


2010년대 들어 '본래 한국에서는 일(一)능이, 이(二)표고, 삼(三)송이라 하여 능이버섯을 최고로 쳤고 능이버섯이 고급식재료의 대명사였지만, 일제강점기를 계기로 능이버섯은 급속히 듣보가 되고 한국의 전통과는 달리 일본 식문화의 영항으로 송이버섯을 1급으로 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갑자기 널리 유포되었다. 이것은 낭설을 넘어 역사왜곡에 가까운 이야기이다. 도리어 저 헛소리야말로 일제강점기 때 퍼진 낭설이라 할 수 있다. 1931년에 동아일보 요리국에 요리법에 비로소 인용문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
먼저 송이버섯삼국사기 기록에 신라 성덕왕에게 진상했다고 나온다. 조선시대에도 영조가 "송이, 생전복, 새끼 , 고추장[3]은 4가지 별미라, 이것들 덕분에 잘 먹었다."라고 말하며 지극히 아끼던 음식이었다. 이렇듯 송이버섯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대대로 왕에게 진상하던 귀한 식품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송이버섯은 지역별 대표적인 진상품으로 기록되었고, 한술 더 떠 토산품으로는 드물게 중국 사신에게까지 선물하던 물품으로 "송이버섯을 선물하는 것은 최고의 정성"이라고까지 했으니 말 다했다. 세종 13년(1431) 8월 26일자 세종실록 기록에는 명나라 황제(선덕제)에게 송이를 진상했더니 매우 좋아했다더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거의 산삼급 대접을 받았던 셈.
왕실뿐 아니라 양반층이나 일반 백성들에게서도 사랑받던 물품으로, 13세기 고려시대 귀족이자 문신인 이인로파한집에서 "송이를 바친 사람이 있었다."며 "소나무와 함께하고 복령의 향기를 가졌다."라고 평하였다. 즉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선물하던 귀한 물품이었다.
14세기 고려시대 목은 이색동국이상국집에서 '예전 사람들은 신선이 되겠다며 불로초를 찾아다녔는데, 신선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은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송이버섯을 먹는 것'이라는 시를 남기며 극찬하고, 목은집에는 벗으로부터 송이버섯을 선물받고 "보내준 송이를 가지고 스님을 찾아가서 고상히 즐기겠다"고 기뻐하며 대단히 감사해하던 기록을 남겼을 정도로 뜻깊은 선물로 귀한 대접을 받던 물품이었다.
이러한 송이 사랑은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져 서거정(徐居正·1420~1488)은 문집 사가집(四佳集)에서 '팔월(음력)이면 버섯 꽃이 눈처럼 환하게 피어라, 씹노라면 좋은 맛이 담박하고도 농후하네.'라고 송이를 예찬하는 시를 남기기도 했고, 유몽인어우야담에서 우리나라의 진기한 음식으로 묘향산금강산의 송이버섯구이를 꼽았다.
동의보감에까지 '송이는 맛이 매우 향미하고, 송기(松氣)가 있다. 나무에서 나는 버섯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평을 받는 등 명실상부한 으뜸 대우를 받던 버섯이었다. 이렇게 사랑받다 보니 요리방법도 다양하게 발달하여 조선시대 최초의 한글 음식조리서 음식디미방에는 만두, 대구(어류) 껍질 느르미, 잡채 등 다양한 양반가 요리에 송이버섯을 사용하는 조리법이 나온다.
반면 능이버섯은 왕조 실록이나 귀족, 양반들의 문집은 고사하고 동의보감 같은 의학서는커녕 임원경제지 같은 백과사전이나 증보산림경제 같은 농사요결서에도, 음식디미방, 규합총서 같은 음식조리서에조차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진상품이나 귀한 선물 대접은 고사하고 약용식물이나 식재료로 여기지조차 않았던 것이다. 삼국시대에부터 대대로 왕실진상품이었다고 기록된 송이버섯과 달리 처음 기록에 등장하는 것조차 19세기 중엽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가 처음이다. 여기에도 '웅이(능이)는 먹을 수 있는 버섯'이라고만 등장하지 요즘 홍보하는 대로 고급식재료의 대명사로 쓰였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이렇게 능이버섯이 먹을 수 있는 버섯이라는 다소 뜬금없는 내용이 굳이 들어간 이유는 바로 과거 독버섯의 감별법으로 통했던 당나라 『본초습유(本草拾遺)』의 '밤에 빛을 내는 버섯, 화려하면서 벌레가 없는 버섯, 삶아도 익지 않는 버섯, 삶아서 사람에게 비치어 그림자가 없는 것, 위에 털이 있고 밑에는 무늬가 없는 것, 위로 말리고 적색인 것은 유독하여 사람을 죽인다.'는 내용에서 능이버섯은 '위에 털이 있고 밑에 무늬가 없는 것'과 '위로 말리고 적색인 것'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독버섯으로 의심하여 오랜 세월 먹어볼 생각을 못 했던 듯하다. 19세기 중엽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잠깐 등장했던 능이버섯은 다시 문헌에서 자취를 감춰 1950년대에 한국에서 산출되는 다양한 버섯을 기록한 한국산균류목록이나 원색한국버섯도감에도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이 낭설이 너무나 유명해진 나머지, 몇몇 인터넷에서 전문가를 자칭하는 사람들이나 심지어는 방송에서까지 능이버섯을 소개할 때는 항상 이 낭설을 필수적으로 첨언할 정도가 되었다. 정보를 어지간하게 걸러듣는 사람이 아닌 이상 '일 능이, 이 표고, 삼 송이'라는 음식관련 고서에 나오는 그럴듯해 보이는 고어로 생각하여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한편 표고버섯도 왕실 진상품으로 고급 버섯이었으나, 소나무숲이 아닌 참나무, 밤나무, 떡갈나무 등 흔하고 다양한 활엽수림에서 자라며 조선시대에도 이미 인공재배가 가능하였던 관계로 송이버섯보다는 훨씬 흔했다.
뭐, 그래도 송이 산지같이 일부 지역에선 송이보다 귀한 버섯으로 쳐주기도 한다.

[1] 본래 고산지대에서 광범위하게 자생하는 종이다. 때문에 수입산 능이버섯 중에는 중국산이 많은데, 여기서 중국은 티벳 지방을 의미한다.[2] 널리 알려지지도 않아서 생능이를 일반 소매점에서 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말린 능이버섯은 약재로 취급되어 일부 약재상에서 구할 수 있지만, 이 역시 흔하지 않다. 대부분의 능이버섯은 개인간 거래로 유통된다. 따라서 가격 역시 제각각. 그 외 산림조합 공판장에서 거래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으며 평균 시세도 볼 수 있다 링크 [3] 전복은 양식이 가능한 지금도 고급 식재료인데, 추운 겨울 바다 물질로만 채취 가능했던 예전에는 그야말로 최고급 식재료였다. 더군다나 저장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말린 전복도 아닌 생전복이라면... 또한 일일히 사냥으로 잡아야 하는 성체 꿩도 구하기 힘든 판에, 초여름에만 구할 수 있고 불 숲에 숨어있어 여간 발견하기 어려운 새끼 꿩은.... 한편 고추장은 영조 24년(1748) 즈음에 궁궐 반찬이 된 듯한데, 영조가 고추장 등을 언급하여 승정원일기에 기록된 영조 44년(1768)은 겨우 20년 뒤이다. 고추장이 문헌에 등장하는 것도 경종 즉위년(1720)에 편찬된 소문사설이라는 책이 처음이니, 소수의 기술 보유자만이 제조할 수 있었던 귀한 식재료로서 떨어진 식욕을 상승시키는 준 약재 대접을 받았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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