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클럽
1. 야구의 기록
야구에서 한 타자가 한 시즌에 20홈런&20도루를 하는 것. 20홈런(호타), 20도루(준족)을 모두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호타준족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기록이다.
미국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와 일본프로야구에서는 20-20 클럽은 따로 취급하지 않는데, 30홈런-30도루를 달성한 30-30 클럽부터 챙겨주고 20에 관련된 기록은 2루타, 3루타, 홈런을 20개씩 치는 20-20-20 클럽이나,[1] 거기에 더해 도루 20개까지 달성한 20-20-20-20 클럽을 특별하게 쳐주고 있다. 다만 그 수가 너무나 방대한 나머지 20-20 클럽을 따로 만들어 관리하지만 않을 뿐, 20홈런-20도루를 기록한 시즌을 별도로 구분하는 것으로 의미를 부여하긴 한다.
원래 한국야구에서도 미국과 일본을 따라 20-20을 대단치 않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팀당 120경기로 늘어난 1989년부터 김성한을 시작으로 1990년대 장종훈, 이호성, 이순철, 송구홍, 이정훈 등 야구계에서 20-20 달성자들이 많아지고 일부 선수의 경우 아쉽게 30-30을 코 앞에서 놓치게 되자 당시 야구계와 언론에서 '미국, 일본과 달리 경기수가 적은 한국야구에서 20-20은 30-30과 마찬가지로 세우기 힘든 기록' 이라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으며, 이 주장이 나름대로 당위성과 설득력을 가졌기 때문에 많은 지지를 받았고 결국 1990년대 이후 한국야구계에서는 20-20을 특별한 기록으로 다루기 시작하였다.
이후 10개 구단으로 리그가 확장되며 144경기로 경기 수가 늘어나 일본보다 1경기 더 하게 되었지만 20-20을 특별하게 여기는 풍조는 아직 남아 있다. 과거와 달리 타자들의 분업화로 인해 도루를 하는 타자와 홈런을 치는 타자가 나뉘게 되며 경기수가 늘어났어도 20-20기록이 가치가 없어질 만큼 기록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지는 않게 된 이유도 있어 아직 KBO에서 20-20은 특별한 기록으로 여겨지고 있다. 실제로 144경기 체제에서도 매년 2~3명 정도의 가입자가 나오고 있어, 이전과 거의 비슷한 가입자 수를 기록하고 있다.
다만 포수는 예외. 발이 느린 선수가 주로 맡고, 체력 부담이 가장 큰 포지션의 특성상 다른 포지션보다 타격 성적의 부담이 많기 때문에 포수 출신의 20-20은 상당히 가치가 높다. 그 예로 메이저리그의 이반 로드리게스가[2] 포수 최초 20-20을 달성하여 MVP를 수상한 바있다. 20-20을 기록한 포수는 전 세계로 확장해봐도 이반 로드리게스, 박경완 단 두 명밖에 없는 대기록이다.
1.1. KBO 리그 20-20 달성자 목록
- '기록' 란의 빨간 글씨는 그 선수가 당해 해당 부문에서 1위를 기록했음을 뜻한다.
1.2. 이야깃거리
박재홍은 보면 알겠지만 1996년부터 1998년까지 '''3년 연속 20-20'''을 달성했다. 그 중 두 번은 30-30이었다. 게다가 1996년의 30-30은 세계 최초로 신인이 데뷔 시즌에 이룩한 30-30이다.[7] 이 기록을 2번째로 달성한 선수는 2012년의 마이크 트라웃. 무려 30홈런-49도루이다. 그리고 박경완의 2001년 20-20은 1999년 메이저리그의 이반 로드리게스 이후 '''포수로서 세계 두 번째로 이룩한 20-20''' 클럽이다.
롯데 자이언츠, 두산 베어스(OB시절 포함)의 경우 원년(1982년) 창단한 팀들인데도 불구하고 뒤늦게 20-20 달성 선수가 나왔다. 2015년 짐 아두치가 롯데 자이언츠 선수로는 처음으로 20-20 달성했고, 2017년 박건우가 OB-두산 베어스 구단 최초로 20-20을 달성한 선수가 되었다.[8]
2009년엔 추신수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한국인 선수는 물론 동양인 선수로는 최초로 20-20 달성했고, 이듬해엔 2010년에도 20-20을 달성했다. 이는 동양인 선수 최초. 단, 위에 서술한대로 20-20에 대해 취급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으므로 한국언론에서 추신수의 20-20 달성에 대해 언론에서 대서특필하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여기는 반응이 있었다.
20-20에 대한 우스개소리로 과거 어떤 코치가 20-20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던 적이 있다. 최태원이 현역 초반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활약하던 시절 빠른 발로 20도루는 맘만 먹으면 언제든 노릴 수 있던 기량이라 본인이 홈런만 좀 어떻게 하면 20-20은 매년 달성했을텐데 라는 푸념을 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코치가 "20-20이 별거냐. 1년에 홈런 1개식 20년을 치면 그게 20-20이지."라는 드립으로 선수단과 기자단을 박장대소로 몰아넣은 적이 있었다. 실제로 최태원은 그 시즌까지 매해 홈런 1개를 기록하고 있었다.
참고로 최태원의 통산 홈런 수는 24개.
2019년에는 2011시즌 이후 8년만에 달성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김하성은 홈런 1개가 부족해서 실패하였고, 제라드 호잉은 홈런 2개를 남겨두고 부상으로 시즌아웃이 되는 바람에 안타깝게 실패하고 말았다.
2. 축구의 기록
현역 기간 동안 특정 리그에서 20골과 20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것. FA컵, 리그컵 등의 컵 대회나 챔피언스 리그같은 국제 클럽 대항전의 기록은 제외한 정규시즌 리그의 기록만을 기준으로 한다.
사실 이 정도만 해도 한국 프로축구에서는 상당히 대우받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1983년 프로2팀과 실업 3팀 밖에 되지 않은 작은 리그로 출범해서 경기수도 적고, 풀 리그제도 아니었다.
- 한국 축구인기의 핵심은 국가대표 경기고 리그는 그 인기에 붙어가는 형국이므로, 스타 선수들은 늘 국가대표 경기로 인해 리그경기 결장이 많았다. 또 보통은 어떤 형식이든 국방의 의무로 2년 정도는 활약이 힘들었다.
- 외국인 선수 제도가 정착되면서 대부분의 축구리그에서는 외국인선수가 공격포인트를 담당하는 전술 트렌드.[9]
일단 이 기록을 달성하면 팀의 핵심 선수로 여겨도 무방하며, 거의 팀의 공격을 책임진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렇듯 보통은 몇 시즌에 걸쳐 달성하는 20-20을 '''한 시즌만에 달성'''하는 경우도 있다. 선수와 리그의 수준차가 지나치게 클 경우 발생하는 일로, 대부분 듣도 보도 못한 리그의 듣도 보도 못한 팀의 듣도 보도 못한 선수 같은 경우이다. 이런 변방 리그는 워낙 기상천외한 기록이 튀어나오는 곳이라 잘 쳐주질 않는다. 애초에 어느 스포츠나 기록의 가치는 그 리그의 가치에 비례한다.
그러나 EPL이나 라리가같은 세계적인 최상위 리그에서 단일시즌 20-20을 기록하여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경우가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티에리 앙리와 리오넬 메시.[11] 앙리는 아스날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2002-03시즌에 '''24골 20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메시는 프리메라리가 2019-20 시즌 레알 바야돌리드戦에서 20번째 어시를 기록함으로써 20-20 클럽에 가입하였다. 리그 최종 기록은 '''25골 21어시스트.'''#
메시의 기록이 놀라운 점은 어시 규정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라리가에서 달성한 기록이기 때문. EPL은 PK 유도, 골대 맞고 나온 공 리바운드 등이 어시스트로 인정되지만[12] , 라리가는 이러한 것들을 공식적으로는 어시스트로 간주하지 않는다. 또한 어시스트 기준 역시 EPL은 패스 후 슈팅을 제외한 3터치 이내의 골이지만, 라리가는 슈팅을 제외한 '''1터치'''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 메시는 2019-20 시즌에 20-20을 달성하는 데에 성공했다. 또한 앙리는 전성기로 불리는 만 26세에 성공했지만 메시는 대부분의 축구선수들이 황혼기를 보내는 '''만 33세'''에 성공했다.
3. 농구의 기록
한 경기에서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블록 슛, 스틸 중 두 가지를 20개 이상 하는 것이다. 영어로는 '더블-더블'(10-10)의 두 배라고 '더블 더블-더블'이라 한다. 프로 경기 기준으로 주로 득점과 리바운드에서 20-20이 나오는데 흔한 기록은 아니며 득점과 어시스트 조합으로는 아주 가끔 나온다.
4. 관련 문서
[1] 단, 한국의 경우 20-20-20의 한 요소인 시즌 3루타 20개를 충족시킨 선수가 아직 없다. 1위가 2014년 서건창이 기록한 17개, 2위가 1992년 이종운이 기록한 14개로, 30-30은 그나마 소수 있지만 20-20-20은 사실상 불가능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실정.[2] 35홈런 25도루로 30-30도 노려볼 법 한 기록이었다. 도루의 경우 25개를 성공하는 동안 12개를 실패하는 등 억지로 뛴 부분도 산재함.[3] 첫 달성이지만, 당시에는 야구 전문지인 <주간야구> 외에는 이 기록에 주목하는 이들이 드물었다.[4] 놀랍게도 프로 1년차에 달성한 기록이다.[5] 부상 때문에 96경기만 출장하고도 달성했다.[6] 6명으로 최다. 대표적 타고투저 시즌이다.[7] 여담으로 박재홍은 이 기록에서 독보적이다보니 누적 200홈런 200도루를 동시에 기록했다. 홈런은 300개, 도루는 267개라서 300-300까지는 아쉽게도 기록하지 못했다. 200홈런-200도루를 기록한 또다른 이는 박용택이며 이쪽은 200홈런-300도루를 기록하였다.이양준혁도 351-193, 이종범도 194-510으로 부족하며 이 둘이 그나마 어느쪽이든 10개 이내로 부족하여 근사치인 수준. 다만 이종범은 NPB기록을 포함하면 221-563으로 달성했다. 이렇게 놓고보면 박재홍의 누적 200-200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수있을듯 하다..[8] 2016 시즌 박건우가 20-20에 도전했는데 홈런은 20개로 충족했으나 도루는 3개가 부족했다.[9] 2011년 기준, 최고의 공격포인트 제조기라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나 리오넬 메시같은 경우만 봐도 이들은 해당 리그에서는 엄연히 외국인 선수다. 물론 메시는 스페인 국적을 취득하였지만, 이전의 앙리나 베르캄프같은 전설의 무패우승을 일군 선수들도 역시 엄밀히는 외국인 선수로 분류할 수 있다. 한국프로축구만의 트렌드는 아닌 셈.[10] 한국프로축구의 기록은 6강 및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K리그 챔피언결정전 모두 정규리그의 연장선으로 본다. 즉, 강팀에서도 주목받는 공격포인트 제조기가 아닌 이상에야 이 기록을 단축하기는 어려운 셈.[11] 라울 곤잘레스도 달성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05-06 시즌부터 제대로 어시스트를 기록했기 때문에 확인하기 어렵다.[12] 다만 이후 EPL에서도 앞선 내용들은 적용되지 않게 룰을 새로 규정하면서 이전 시즌 기록도 소급 적용시켰다. 이로 인해 18어시로 도움왕을 차지한 적이 있던 호날두의 경우에는 8어시로 줄어들었으나 앙리의 경우엔 20어시 그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