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선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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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이름
3.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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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전 터
선원전 복원 조감도

1. 소개


德壽宮 璿源殿
덕수궁의 선원전이다. 선원전은 역대 들의 어진[1]을 모시고 제사 지내던 진전(眞殿)이다. 쉽게 말해 종묘궁궐 밖에 있는,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사당이라면, 선원전은 궁궐 안에 있는 왕실의 사당이었다.
덕수궁 서북쪽, 지금의 구세군회관과 덕수초등학교 맞은 편에 있었다.

2. 이름


'선원(璿源)’ 뜻은 '왕실의 유구한 뿌리'로, 《구당서》의 〈열전 - 공의태자 소〉에서 유래했다. 글자 뜻을 그대로 풀면 ‘아름다운 옥(璿)의 뿌리(源)’로, 왕실에 비유하여 ‘구슬의 근원’, 또는 ‘구슬같은 뿌리’란 의미로 사용한 듯 하다.#[2][4]

3. 역사


1896년(건양 원년) 2월, 아관파천으로 고종경복궁을 떠났다. 고종은 러시아공사관에서 환궁할 곳을 경복궁이 아닌 경운궁[5]으로 정했다. 그런데 경운궁은 애초 임진왜란선조가 머물 곳이 없어 월산대군[6]과 그 주변 민가 몇 채를 아우른 임시 이었기에 인조 때 거의 대부분의 건물을 원 주인에게 돌려준 상태였다. 따라서 그런 경운궁에 머물려면 대공사가 필요했고 이에 따라 1896년부터 경운궁 공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1년 뒤 1897년(건양 2년) 2월 고종이 환궁할 당시에도 공사는 계속 진행 중이었고, 특히 중요한 건물 중 하나인, 진전 선원전 역시 완공을 못했다. 어진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 당시 이미 경복궁 선원전에서 경운궁즉조당으로 옮겨와 모셨는데, 즉조당은 너무 좁은데다 다른 용도로 써야 해서 고종이 빨리 지으라고 조령을 내려 그 해 4월 경에 공사를 끝냈다. 그리고 태조, 숙종, 영조, 정조, 순조, 익종, 헌종의 어진을 봉안했다. 이 때 위치는 포덕문 안쪽, 그러니까 지금의 태평로 큰 길의 일부와 덕수궁 연못 언저리에 있었다.#
그러나 1900년(광무 4년) 화재로 선원전 건물과 안에 모신 어진이 전부 불탔다.# 1년 뒤 복구했는데 원래 자리에 다시 짓지 않고 경운궁 서북쪽에 있는 영성문(永成門) 안쪽의 수어청 자리에 새로 건립했으며 어진은 각 지방에 흩어진 그림을 모사[7]하여 봉안했다. 그래서 선원전 영역을 속칭 ‘영성문 대궐(永成門 大闕)’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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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전 영역의 정문이 된 영성문. 순명효황후(당시 황태자비)의 국장사진이다.
일제강점기 이후에도 이곳에서 꾸준히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1919년 고종승하한 이후 일제가 1921년에 덕수궁(경운궁)의 선원전을 옮겨다 창덕궁 서북쪽 옛 대보단 자리에 짓고 새로운 선원전으로 사용하게 하면서 덕수궁의 선원전 영역은 비었다.
부지는 조선저축은행, 경성일보사 소유로 넘어갔다. 해방 이후에는 경기여자고등학교가 들어섰다가 주한미국대사관에서 소유했다. 2003년 6월 미국대사관 기숙사 건립을 위해 문화재 지표조사를 하던 도중 덕수궁 선원전 터를 확인했다. 선원전 터를 용산 미군기지 내 부지와 맞교환하기로 합의하여 2011년 다시 한국이 소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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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전 터에 들어선 조선저축은행 중역 사택
이후 미국 대사관저와 선원전 부지 사이에 경계벽을 설치했다. 2017년에는 선원전 터 내에 아관파천 당시 고종이 걸었던 것으로 보이는[8] '고종의 길'을 완공하여 일반에 개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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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 길
문화재청은 2038년까지 3단계에 걸쳐 선원전(璿源殿)과 빈전인 흥덕전, 혼전인 흥복전 등 주요 전각과 부속 건물(54동), 궁장(宮牆) 등을 복원할 계획을 수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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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선원전 복원계획

[1] 御眞. 임금초상화.[2] 그래서 조선시대 왕실 족보 이름도 《선원록(璿源錄)》, 《선원계보(璿源系譜)》이다.[3] 여기서 말하는 왕실 역사의 시작은, 추존되어 엄연히 조선시대 당시 법적으로 임금이었던 목조 이안사부터를 말한다.[4] 또한 전주 이씨 가문에서 계통을 분류할 때 선원선계(왕실 역사 시작 이전[3]), 선원세계(왕통), 선원파계(왕자, 왕자군에서 갈라진 계통)로 나눈다.[5] 지금의 덕수궁.[6] 성종의 형.[7] 摹寫. 베껴 그리다.[8] 이건 좀 논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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