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사무라이

 


'''라스트 사무라이''' (2003)
''The Last Samurai''

'''감독'''
<colbgcolor=white,#191919>에드워드 즈윅
'''제작'''
마셜 허스코비츠, 톰 크루즈 외 4명
'''각본'''
에드워드 즈윅, 마셜 허스코비츠, 존 로건
'''출연'''
톰 크루즈, 티모시 스폴, 와타나베 켄
'''음악'''
한스 짐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개봉일'''
[image] 2003년 11월 20일
[image] 2003년 12월 5일
'''상영 시간'''
154분
'''제작비'''
1억 4000만 달러
'''북미 박스오피스'''
$111,127,263 (2004년 4월 8일)
'''월드 박스오피스'''
$454,627,263 (최종)
'''국내 상영 등급'''
15세 관람가
'''해외 상영 등급'''
[image] [image]
1. 개요
2. 줄거리
3. 등장인물
4. 평가
4.1. 고증
4.1.1. 군신 관계 묘사
4.1.2. 선악 묘사
4.1.3. 재래식 무기 고집?
4.1.4. 그 외
4.2. 국내
4.3. 해외
4.4. 기타
5. 제작 비화
6. 이야깃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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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76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조연상, 미술상, 의상상, 음향상 후보작'''
2003년 개봉한 미국, 뉴질랜드, 일본 합작 영화.
일본 정부군의 초빙 교관이던 미 육군 장교가 사무라이 신분의 반란군에게 동화되어 그들의 혼을 존중하고 그들과 함께 싸운다는 내용이다.
영화의 전체적인 만듦새는 굉장히 좋은 편이나,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 와패니즘이 듬뿍 들어간 영화로서, 서양 와패니즈 영화를 꼽으라면 게이샤의 추억과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영화다.
한국에서는 SBS에서 더빙해 방영했다.

2. 줄거리



미국 독립 100주년을 맞는 1876년. 남북전쟁인디언 전쟁에서 최고의 지휘관으로 무공을 세웠지만, 현재는 알콜 중독자인 예비역 육군 대위 네이든 알그렌(톰 크루즈)은 무기상에게 고용되어 윈체스터의 소총을 팔기 위해 자신의 무용담을 관중들에게 강의하는 신세다. 그의 마음 속은 인디언 학살에 대한 심한 죄책감과 전쟁의 참상으로 인한 고통으로 멍들어 있었다.[1] 그런 그에게 옛 상관이던 벤자민 배글리 대령(토니 골드윈)이 연락해와 일본의 개화파 관료인 오무라(하라다 마사토)를 소개한다. 오무라는 알그렌에게 월당 500달러의 봉급을 조건으로 사무라이로 구성된 반란군 토벌을 위한 메이지 정부 정부군의 교관 겸 고문관이 되어 줄 것을 요청하고 알그렌은 수락한다. 요코하마에 내려 일본의 수도인 도쿄로 향한 알그렌은 일본에서 활동하는 영국인 신문기자 사이먼 그레이엄(티모시 스폴)과 만나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곧 황궁에서 배글리와 함께 그레이엄의 안내에 따라 메이지 덴노와 만남을 가진다. 천황은 유례없이 옥좌에서 내려와 직접 환영을 해준다.
그러나 훈련을 받기로 한 정부군은 한세대 전의 머스킷으로 무장한데다가 총은 쏴본 적도 없는 오합지졸이었고[2], 설상가상으로 훈련을 다 끝내지 못한 상황에서 하세가와 장군의 지휘하에 반란군 토벌에 긴급 투입된다. 출병한 정부군은 안개가 자욱한 새벽에 전투지가 될 숲에 도착하고, 알그렌 대위는 상관인 배글리 대령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같이 군사 고문으로 온 옛 부하 제브 겐트 상사(빌리 코넬리)와 함께 선두에 선다. 전투는 알그렌의 예상대로 정부군의 패배로 끝난다. 첫 실전에 우왕좌왕하던 정부군은 장궁과 일본도, 창 등 전통적인 무기로 무장한 반군에게 일방적으로 몰살당하고, 알그렌 대위는 일본인 장교에게 퇴각 명령을 내리고 자신은 리볼버세이버로 저항하다 부상을 당하며, 겐트 상사는 갖고 있던 라이플로 저항하다 전사한다. 갑작스럽게 돌진해온 적의 말에게 부딪혀 자신의 말과 함께 쓰러진 알그렌 대위는 다시 일어나 반군과 무쌍을 찍고 고군분투 끝에 자신을 찌르려는 사무라이를 창으로 찔려 죽인다. 이를 지켜보던 반군의 수장인 카츠모토 모리츠구 영주(와타나베 켄)는 이에 감명받아 알그렌을 생포할 것을 명하고, 이에 따라 알그렌은 포로가 된다. 카츠모토는 알그렌을 알그렌이 죽인 붉은 갑옷의 사무라이 히로타로의 집에 머물게 한다.
카츠모토의 영지에 도착한 알그렌은 점차 사무라이의 문화에 동화해가고 그곳에서 자신이 죽인 사무라이의 아내 타카(코유키)를 동경한다. 처음에 그리 탐탁치 않게 생각한 사무라이들도 자신들의 말과 습관, 검술 등을 열심히 습득하려는 그에게 서서히 동질감을 느끼고 사무라이의 아내 타카도 점차 알그렌에게 정을 느낀다.[3] 이후 개화파가 보낸 닌자들의 습격을 함께 막아내면서 카츠모토와 알그렌과의 관계는 더 친밀해진다.
계절이 바뀌어 눈이 녹고 길이 트이자 알그렌은 내각 회의에 참석하려는 카츠모토와 함께 수도로 간다. 알그렌은 그곳에서 배글리 대령을 다시 만나고, 정부군이 더 이상 오합지졸이 아닌 신식 소총신식 대포, 그리고 개틀링 기관총으로 무장한 정예군이 되었음을 알게 된다. 한편 카츠모토는 본래 천황의 스승이기도 하여 천황을 만나 사무라이 정신으로 대표되는 전통을 지킬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폐도령을 빌미로 카츠모토는 오무라에 의해 연금되고, 알그렌 대위 역시 자객들에 의해 살해될 위기에 처하나 그동안 사무라이들에게 배운 검술로 살아남는다. 이후 알그렌은 카츠모토의 아들인 노부타다(고야마다 신)와 그레이엄의 도움으로 카츠모토를 구출하지만 이 과정에서 노부타다가 죽는다.
영지로 돌아간 둘은 최후의 전투를 준비하고 그레이엄은 사무라이들의 모습을 사진 등을 통해 기록으로 남긴다. 알그렌은 타카의 청을 받아들여 자신이 죽였던 그 사무라이의 갑옷을 입고 사무라이들과 함께 출병한다.
오무라와 배글리 대령이 이끄는 정부군이 도착하고, 그레이엄은 언덕 위에서 사무라이들과 정부군의 전투를 지켜본다. 초반에 '''1000명의''' 정부군은 대포로 압도하나, '''500명의''' 반군의 함정에 걸려 백병전에 휘말리고, 많은 사상자를 내고 본진으로 퇴각한다. 그러나 반군의 타격도 매우 컸고, 카츠모토와 알그렌 역시 부상을 당한다. 둘은 자신들의 패배를 직감하고 생존한 반군들을 재정비하여 최후의 기병 돌격을 가한다. 후발대 '''1000명의''' 제국군의 포격과 일제 사격에 많은 사무라이들이 쓰러져 갔고, 알그렌은 자신이 가진 일본도를 던져 제국군을 지휘하며 리볼버를 사격하던 배글리 대령을 무찌른다. 그러나 방어선을 돌파한 남은 몇십 명의 사무라이들은 개틀링 기관총들의 집중 사격으로 전부 장렬히 전사하고 카츠모토와 알그렌 역시 추가 공격으로 쓰러진다. 이를 지켜보던 일본인 장교는 오무라의 명령에 불복하여 사격중지 명령을 내린다. 심각한 부상을 당해 카츠모토는 같이 쓰러진 알그렌에게 천황에게 전해주려던 검을 대신 전해줄 것과 자신의 할복을 도와줄 것을 청한다. 알그렌은 그의 할복을 도와주고 정부군은 이 광경을 지켜보며 일본인 장교를 따라 카츠모토를 향해 절을 하며 애도를 표한다.
이후 반군을 토벌한 오무라와 덴노는 미국 대사를 만나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려 하지만 알그렌이 나타나 카츠모토가 전해주려던 검을 천황에게 바친다. 오무라의 만류에도 천황은 옥좌에서 내려와 검을 받고, '우리가 누구인지 잊어선 안된다'며 불평등 조약을 무효화시킨다.
그레이엄의 나레이션에서 '이후 미국인의 행방은 알 수 없으며 소문에는 본국으로 돌아갔다거나 부상 때문에 죽었다라고 하더라'고 말하며 끝에 '미국인은 영원한 평화를 얻었다'라며 남은 사람들이 생계를 일구고 있는 영지로 알그렌이 돌아와 타카와 서로 마주보는 장면으로 끝난다.

3. 등장인물


  • 벤자민 배글리 (토니 골드윈)
  • 오무라 (하라다 마사토)

4. 평가



4.1. 고증


라스트 사무라이의 배경은 1876년이며, 각종 영화 소개를 보면 서남전쟁을 배경으로 하며, 대체로 개혁을 하려는 메이지 정부군과 정통을 지키려는 사무라이들의 대결로 나와 있다. 그러나 서남전쟁은 1877년에 일어난 일이고, 메이지 정부의 두 기둥인 조슈번과 사쓰마번이 조선을 어떻게 정벌할까 방법론 차이에 대한 갈등으로 벌어진 내전이지 '정통을 지키려는 사무라이'와는 1%도 관계 없다.
오히려 10년 전인 1868년~1869년에 있었던 무진전쟁이 라스트 사무라이 스토리와 조금 관련이 있다. 이 전쟁은 천황을 등에 업고 정권을 차지하려는 조슈번-사쓰마번 연합과 아직도 막부에 충성하는 세력간의 전쟁이다.(이미 쇼군은 독단적으로 천황에게 정권을 넘기고 튀어 막부에 충성하는 세력들을 벙찌게 만듦. 대정봉환 참조) 조슈-사쓰마번은 서양식 양복에 서양총, 막부 직할군은 프랑스식 군복에 스펜서 소총을 들어 양쪽 다 근대화된 군대였다. 이 전투 초기만 해도 막부군 휘하의 일종의 치안대인 미마와리구미는 발도돌격 하다 조슈번-사쓰마번 연합의 총구 앞에 궤멸하기도 하였고, 막부에 충성하는 동일본의 지방 제번 중에서는 아직도 조총을 사용하기도 했으니, 굳이 따지자면 이쪽이 연관성이 있다.
즉, 할리우드 측에서는 어디서 서남전쟁이라는 단어를 듣고 와서 그 명칭을 사용하는지 모르겠지만, 서남전쟁과는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점이 맞지 않는다. 하지만 무진전쟁을 배경으로 하기엔 서양식 군복을 입은 채 상투를 틀고 다녀야 하고, 천황은 치마 같은 구닥다리 옷을 입고 있어야 해서 뽀대가 안 난다.[4]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사무라이 우두머리라는 설정도 좀 웃기지만, 이 정도는 이야기의 진행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무라이가 천황에 충성하고 메이지 정부가 천황을 가지고 논다는 식의 설정[5]은, 일본의 역사를 초급 수준으로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아마 어이가 없을 것이다.
절제된 듯 복종하는 듯 보이지만 어딘가 헤픈 거 같기도 한 일본 여자의 이미지도 이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영화가 꼭 사실에 기반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는 영화에 대한 평가 기준의 일부일 뿐 전체인 것은 아니며, 그냥 재미로 놓고 보자면 나름 잘 만든 영화라고 할 수 있다.

4.1.1. 군신 관계 묘사


일본의 역사에서 막부의 쇼군은 이름만 왕이 아닐 뿐 실권은 왕이나 다름 없었으며, 쇼군들에 짓눌려 천황은 오랫동안 실권 없는 종교의 대상이자 얼굴마담일 뿐이었다. 이렇게 힘 없는 천황을 대정봉환(大政奉還) 이후,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중앙집권의 일본으로 만든 세력은 바로 영화 속의 오무라 같은 사람들이었지 결코 사무라이가 천황에게 충성을 하지는 않았다.
네이버 영화 소개를 보면 '황제와 국가에 목숨 바쳐 충성해온 사무라이의 마지막 지도자 카츠모토(켄 와타나베)'이라고 나와있는데, 어디까지나 사무라이들은 쇼군이나 다이묘에게 충성을 바쳐 왔고, 이를 뒤엎고 천황에게 권력을 넘겨 주려고 한 것이 바로 오무라 같은 신진 세력이다.
즉, 어느 쪽이 천황에게 충성하는 세력인지 사실 관계가 반대로 나와 있다.
추가로, 네이버 영화 소개에는 '신 문물에 매료된 일본 제국의 젊은 황제가 신식 군대 조련을 위해 알그렌을 초빙하면서 두 사람은 운명적인 조우를 하였다.'고 되어 있지만, 신식 군대 조련을 위해 프랑스인 교관(톰 크루즈의 모델)을 불러 들인 곳은 막부측이며, 그래서 반정부군(구막부군)은 프랑스 군복을 입고 싸운 것이다.
차라리 서브 주인공인 카츠모토 모리츠구를 사이고 다카모리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가 아니라 교토 출신인 완전한 가공의 사무라이로 설정했다면 천황에게 충성하는 내용이 훨씬 설득력 있게 그려졌을 것이다. 자신의 주군에게 충성했을 뿐인 전근대 일본의 사무라이들 중에서도 교토의 사무라이들만큼은 천황에게 충성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카츠모토가 일으킨 반란 또한 서남전쟁이 모티브인 전쟁이 아니라 그냥 권력을 잃은 사무라이 잔존 세력의 마지막 결사 항전 정도로만 묘사하는 게 나았을 것이다. 주군이 누구인지를 떠나 당시의 기득권 세력이었던 사무라이들은 영지를 잃는 등의 각종 불이익에 대해 엄청난 불만을 품었기 때문이다.

4.1.2. 선악 묘사


네이든 알그렌의 모티브는 무진전쟁(보신戊辰 1868~69)에 참전한 프랑스인 교관 쥘 브뤼네(Jules Brunet). 카츠모토 모리츠구의 모티브는 서남전쟁(세이난西南 1877)을 일으킨 사이고 다카모리다.
사실 서남전쟁은 사이고 다카모리와 오쿠보 도시미치[6], 두 거물이 벌인 정쟁이 관료 출신 전면 개혁파와 하급 무사 출신 부분 개혁파 간의 충돌로까지 이어져 끝내 '''내란'''으로 번진 것일 뿐, 영화처럼 반란군 측이 특별히 더 도덕적 정당성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4.1.3. 재래식 무기 고집?


이미 10년 전인 무진전쟁 때부터 '''조슈-사쓰마군(정부군)이든 막부육군(반정부군)이든 둘 다 근대적인 서구식 총기로 무장하고 싸웠다'''. 총포로 무장한 신식 군대와 전통적인 도검과 활만을 가진 구식 무사의 눈물겨운 격돌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일본은 이로부터''' 3백년 전'''인 1590년대 임진왜란 때 이미 조총으로 조선을 유린한 국가이다.[7] 임진왜란 몇십 년 전인 전국시대부터 사무라이들은 조총을 대량으로 사용하는 근대화된 전투를 벌였다.
영화의 배경에서도 10년 전인 무진전쟁을 보자면 천황을 등에 업은 정부군에서도 주력인 조슈, 사쓰마만 근대화된 양복에 스나이더 후장식 소총으로 무장했을 뿐이지, 이후 참가한 제번들은 그냥 창칼로 무장하였다. 오히려 반정부군, 즉 구막부군은 프랑스식 군복에 스펜서 총기류로 무장하였고, 극히 드문 사례이기는 하지만 구막부를 지지하는 번 중 나가오카번은 자체적으로 구입한 개틀링 기관총으로 정부군측을 작살낸 경우도 있었다.
아무리 칼이 사무라이의 혼이니 어쩌니 해도, 막상 붙어 보면 최신 서양 총기 앞에 죽어 나가는 것을 똑똑히 보았는데 끝까지 창칼만 고집하는 바보는 없었다.
졸지에 반정부군으로 몰리게 된 막부 육군은 이미 1856년에 강무소를 세워 사무라이 자제들에게 서양식 군제 훈련을 켰다. 지휘관은 무능하고, 병사들은 기초 체력조차 부족해서 그렇지 무장과 피복은 서양 군대 뺨쳤다.
사실 창칼을 고집하는 사무라이는 초반에 다 죽어버렸으며, 총포류를 적극적으로 쓰는 사무라이 중에서도 조총과 구식 화포에 만족했던 이들은 마찬가지로 초반에 거의 전멸했다. 무진전쟁의 첫 전투가 교토 인근 도바-후시미에서 벌어졌는데 가장 선봉에 서서 발도 돌격 한 것은 산천 초목을 부르르 떨게 하던 신센구미미마와리구미였다. 물론 이들은 시작하자마자 조슈-사쓰마군의 총구 앞에서 궤멸하였다. 이후 조슈-사쓰마군과 구막부군은 그냥 서로 서양식 총기로 싸웠다. 신센구미 자체가 사무라이가 아닌, 검술을 익힌 평민들의 자식들이 한자리 차지하기 위해 모인 낭인 연합으로 이미 시대에 뒤떨어져도 한참 뒤떨어진 조직이었다.[8]
하물며 무진전쟁으로부터 10년이 지난 서남전쟁에서 '전통을 지키려는 사무라이들이 창칼만 들고, 정부군 개틀링 기관총 앞으로 돌격했다?' 그런 건 없었다. 어디까지나 서남전쟁은 무진전쟁에서 승리하여 정권을 차지한 두 축인 조슈번과 사쓰마 번이, 언제 조선을 정벌할까 하는 시기적 차이에 의한 내전일 뿐이었다.
영화상으로도 사무라이들 쪽이 그다지 명분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데 일단 오무라가 부정부패한 관료라는 것은 오로지 카츠모토의 언급이나 나중에 메이지 덴노의 재산 반환하라는 일갈에서 간접적으로만 접할 수 있어 개화파가 딱히 나쁘다라는 인상 자체가 적고 사무라이들 세력은 이미 흑선내항으로 왕정 복고가 이루어진 일본에서 총쓰는 것도 거부하고 칼과 활만 고집한다. 당시 망해가던 조선이나 고작 반란군 무리에 불과한 태평천국조차 군대는 조총으로 무장하고 있었으므로 오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나 냉정하게 보면 이들이 이겨서 헤이안 시대스러운 전통을 되찾으면 일본에는 오히려 해악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굳이 사무라이들의 재래식 무기 사용을 강조할 거면, 사무라이들이 원거리전에서는 총포류 사용을 마다하지 않되 총탄, 포탄, 화약이 다 떨어졌거나 일본 정부군의 격렬한 공격으로 총포류를 잃어버리고 재래식 무기만 겨우 갖춘 채 도망쳤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재래식 무기를 쓰는 걸로 나오는 게 나았을 것이다.

4.1.4. 그 외


이처럼 역사적 고증은 사실상 무시하거나 모호하게 처리하고[9] 단지 시대적 배경으로만 사용하였기에 이 영화는 사극이 아닌 '''시대극'''이라 보는 것이 옳다. 일본 개화기라는 소재를 이용해 '''세계화에 대한 회의주의'''라는 주제 의식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감독의 의도대로 그 주제 의식의 표출은 상당히 설득력있고 성공적이었다. 즉, '''사극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인지하고 감상한다면 나름 괜찮은 영화'''라는 얘기.

4.2. 국내


정한론을 주장한 걸로 한국에 유명한 인물인 '사이고 다카모리'를 미화했다는 점 때문에 국내에서는 비판이 되기도 했다.
막부 말기 무사로 조직된 경찰인 신선조조차 치안 유지 활동이 아닌 전장에 참여할 때는 총들고 싸운 판에, 사무라이 정신 외치며 전통적인 삶의 양식을 지키려 싸웠던 세력은 실제로는 없었다. 한편, 사이고 다카모리는 정한론을 주장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헛소리가 존재하는데, 그를 정한론자로 보는 것이 주류 학설이다. 심지어 사이고 다카모리가 가고시마현의 지역 위인인 일본에서조차도!
사실 소재를 떠나고 봐서도 거의 모든 장면이 장르 클리셰로 점철되어 있는지라 의외성이 없어서 '예상을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전개'라는 평도 많았고 볼만하다는 평가도 많았다.

4.3. 해외


메타크리틱과 로튼 토마토같은 크리틱 리뷰에서는 평작 정도의 취급을 받았으나 IMDB를 포함한 관객 반응은 그보다 훨씬 좋은 편이다. 로저 이버트는 3.5점(4점 만점)을 주면서 본작의 영상미, 각본, 연기 등을 극찬하였다.
본작을 비판하는 반응은 엄청난 고증 오류와 오리엔탈리즘 그리고 고귀한 야만인(noble savage)이나 백인 구원자(white savior)같은 클리셰가 뒤범벅된 점을 비판한다. 반면 본작을 긍정하는 측은 수려하고 고전적인 영상미, 서구 문명에 비판적인 주제 의식을 칭찬하는 편이다. 제국주의 시절부터 이어져 온 백인 구원자 클리셰는 대개 서구의 '문명적인' 백인이 제3세계의 '야만적인' 유색 인종을 정신과 물질 양 측으로 교화하는 것에 비하여, 본작의 주인공은 오히려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의 트라우마로 서구 문명에 깊은 회의를 가진 결과, 동아시아 원주민의 가치관에 감화된다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
일본 내에서는 다수의 영화제에서 수상을 한 것에서 보듯, 일반적으로는 호평이 압도적이다. 물론 엄청난 고증 오류 때문에 개그 소재로 삼는 경우가 종종 있으나 그 정도가 그리 심하지는 않다. 어차피 일본 내 역사 관련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도 이런 수준의 고증 오류와 판타지스러움은 별로 드문 케이스가 아니기 때문. 다만 본작의 천황이 유약하게 묘사되었기[10] 때문에 우익들은 싫어하는 편이다.
흥행은 1억 4000만 달러를 투입하여 월드와이드 4억 60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등 꽤 성공한 편이다.
북미 흥행은 1.1억달러 정도로 본전도 못건졌으나 해외에서 3.5억달러를 벌어들였는데, 일본을 배경으로 하며 동시에 노린 작품 답게 그 중 1.3억달러가 일본 내 수입일 정도로 일본 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결국 이 영화는 일본 내에서 가장 성공한 영화 중 하나로 기록되었고, 주연 톰 크루즈는 일본 내에서 컬트적인 숭배 대상이 되었다.

4.4. 기타


영상미도 상당히 뛰어난 작품인데, 후반부의 전투 이후 사무라이들의 시신 위로 벚꽃이 흩날리는 장면은 이 영화를 비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한스 짐머의 배경 음악도 수준급이다. 영화보다 OST를 사고 싶어지는 묘한 영화. 링크

5. 제작 비화


  • 영화에 등장하는 사찰은 엔교지. 반란군측 진영이나 마지막 대규모 전투씬은 캐나다에서 촬영했다. DVD에 수록된 코멘터리에서 감독은 자기 입으로 '일본에는 사실 이렇게 생긴 산이 없죠. 가본 분은 어색하실 겁니다.'라고 말했다. 근데 사실 천과 지 같은 일본 영화도 캐나다에서 촬영한거 생각하면 별 문제 없을 듯. 후지산의 모습은 뉴질랜드 타라나키산으로 대신 촬영했고, 당시 일본의 시가지는 대체로 CG로 재현했다.
  • 본래 전투 장면의 엑스트라로, 좀 더 싼 임금으로 고용할 수 있고 남성 대다수가 군대에서 훈련을 받는 한국인들을 고용하려고 했다. 그러나 톰 크루즈와 각본가가 "일본인이 아니면 일본인의 정신을 담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투씬의 엑스트라는 전원 일본 태생 일본인이 맡게 되었다. 한편으론 이것이 신의 한수가 된 것이 한국인이 출연했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11]
  • 톰 크루즈는 이 영화 촬영 후 일본 정부에서 훈장을 수여받았다고 한다.
  • 원래는 주인공에 스티븐 시걸이 내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일본과도 깊은 인연이 있는 인물이긴 하지만, 결국 톰 크루즈에게 배역을 빼앗기면서 꽤나 툴툴거렸던 것 같다.
  • 오무라 역의 하라다 마사토는 원래 영화 감독[12]이고 이 영화에는 일본측 촬영 스탭으로 참가했다. 그런데 오무라 역에 적합한 '대단히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가지고 있는 뚱뚱한 배우'를 찾기 힘들어서 영어를 잘하는 그가 오무라 역도 하게 되었다.

6. 이야깃거리


마지막 전투 직전에 영화 300(영화)의 배경이 된 테르모필레 전투가 살짝 언급된다. 또한 마지막 전투 장면은 구로사와 아키라란(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에서 토탈 워: 쇼군2의 DLC 콘텐츠인 토탈 워: 쇼군2/사무라이의 몰락을 내놓았는데 마지막 전투씬의 오마주라는 말이 있다. 정확히는 배경이 서남전쟁이 아닌 무진전쟁.
제작진들도 이 영화를 많이 의식했는지, 인터뷰 당시에 라스트 사무라이의 한 장면을 쓰기도 했다. 물론 '''톰 크루즈=낫 리얼'''이라는 말과 함께 했다.

자, 제군, 개틀링 머신건을 소개합니다. 회전식 총열과 크랭크식 자동 장전 시스템으로 분당 200발을 발사하죠. 그 명성 드높은 발명가, 리차드 J. 개틀링 박사에 의해 고안된 이 포는 장전 시간 없이 지속적인 화력을 지원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당신의 무기고에 개틀링 건을 마련해 놓는다면, 단 4명으로 이루어진 팀 하나가 숙련된 80명의 라이플병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습니다. 전비를 줄이면서도 군의 효율을 높일 수 있죠. 이것이 바로 미국의 독창성과 창의성의 산물, 개틀링 건입니다. '''자, 여러분. 사인 할 준비 되셨습니까?'''[13]

실제로 해당 게임으로 19세기 군대와 일본 사무라이 군대의 대전을 재현할 수 있는데, 물론 게임이라 몇 가지 문제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접근을 허용하지 않으면 신식군의 압승으로 끝난다.




영화의 명장면들
2011년 영국에서 8살 소년이 이 영화의 자살 장면을 따라하다가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9P3yKGir5vo 라스트 사무라이를 보고 감명받아 작곡한 듯한 느낌의 노래도 있다.

[1] 이 때문에 박람회에서 술에 취한 채 소총으로 원래의 표적이 아닌 일반 물건들을 향해 쏘는 기행을 보이기도 한다. 근데 그게 한발도 빗나가지 않았다는게 굉장한 점.[2] 참고로 이 시기 메이지 정부는 1874년 국민개병제를 실행하여 일본 육군의 주력 무기는 후장식 스나이더 소총이었다. 영화의 모델인 프랑스 육군 장교가 10년 전인 1860년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케이오 2년의 군제 개혁에 참여한 인물이라 막부육군전장식 소총을 사용하는 것처럼 그려졌지만 당연히 고증 오류. 다음해인 1877년 일어난 세이난 전쟁에서도 일본 육군의 주력 무기는 스나이더 소총이었다.[3] 처음 마을에 왔을 땐 신발을 벗지 않고 집안에 들어간다든가 제대로 씻질 않아 몸에서 풍기는 악취 때문에 타카를 비롯한 가족들이 눈살을 찌뿌릴 정도였지만, 이후 온천에서 목욕하는 습관을 들이고, 간단한 회화도 필사적으로 익혀 타카의 아들들과도 소통하고, 어깨 너머로 배운 검술도 점차 능숙해지며 나중엔 마을 최고의 실력자인 우지오(사나다 히로유키)도 놀랄 정도로 급성장한다.[4] 작중에서도 시대에 뒤떨어진 구식 무사인 카츠모토와 회담할때는 이런 뽀대 안나는 구닥다리 옷을 입고, 미국인 주인공과 회견할때만 근대식 제복을 입는다.[5] 전자의 경우 후술할 내용처럼 교토의 사무라이들 한정으로나 그나마 말이 되며, 후자의 경우 메이지 정부가 메이지 덴노를 이용하여 권력을 휘둘렀고 메이지 덴노 본인도 전제군주가 되고 싶어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지만 그걸 감안해도 실제보다 과장된 측면이 있다.[6] 영화에서는 사이고에서 모티브를 따온 카츠모토가 튼실하고 키 큰 체형, 오쿠보에서 모티브를 따온 오무라가 뚱뚱보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로 사이고의 체형이 뚱뚱했으며 오쿠보는 날씬했다. 1876년 시점에는 오쿠보는 내무성의 내무경으로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정권의 최고 위치에 있었다. 일개 미군 대위 출신의 교관을 직접 만나서 스카웃하는 위치가 아니었다. 즉, 오무라는 오쿠보가 아니다. 그나마 모티브가 된 인물이라면 무진전쟁에서 대활약을 펼친 조슈 번의 전략의 귀재라고 불리운 오무라 마스지로를 연상할 수 있다.[7] 물론 조총의 경우는 원거리전 한정이고, 근접전에서는 일본도나 장창 같은 냉병기로 조선을 유린했다.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도 단지 상대적으로 조총의 사용이 많았을 뿐 의외로 조선군 못지않게 궁술에도 많이 의존했다. 애초에 한국 사극에서의 묘사와 달리 조총은 근현대식 소총과 같은 효율성이 없는 전형적인 전근대식 원거리 무기다. 자세한 건 조총 문서 참고.[8] 이후 신센구미의 잔존 세력은 홋카이도까지 도망쳐, 그냥 평범하게 소총 들고 정부군과 싸웠다.[9] 특히 '''닌자'''가 나오는 부분도 있다. 영화 제작 때 높으신 분들이 일본을 배경으로 하니까 반드시 닌자가 나와야 한다는 그야말로 와패니즈적인 이유로. 굳이 닌자를 등장시킬 거면 봉건제의 붕괴로 인해 사무라이들처럼 실업자로 전락한 닌자들을 일본 제국 윗선이 실업 문제 해결을 가장한 이이제이의 차원에서 이용하는 식의 좀 더 세세한 묘사가 나와야 했을 것이다.[10] 다만 본작의 배경이 되는 시대의 실제 일본 천황이 누구였는지를 생각하면, 오히려 유약하게 묘사하는 게 맞는 고증이다.[11] 물론 영미권 본토(특히 미국과 캐나다)의 동아시아계 주민들을 고용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며 그랬으면 동아시아의 영화 팬들이 "헐리우드 영화니까 뭐..."라고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동아시아 본토인들을 고용하는 것에 비하면 임금이 많이 비싸졌을 것이다.[12] 일본 패망 하루전세키가하라(2017) 등을 연출한 중견 감독이다.[13] 56초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