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타나베 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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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출신의 배우이다. 영어권 관객에겐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의 쿠리바야시 타다미치나 라스트 사무라이의 가츠모토 모리츠구 같은 비극적 영웅 캐릭터를 맡은 배우로 알려져 있다. 라스트 사무라이의 역할로 아카데미 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즉 최종 5명의 후보에 들었단 것. 그밖에도 인셉션에서 항공사를 통째로 인수한 사이토 등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들에 출연했다.
2. 생애
1959년 10월 21일 니가타현 우오누마시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학교 선생이었고 아버지는 서예를 가르쳤다. 니가타 현립 코이데 고등학교를 나왔으며 밴드에서 트럼펫을 불었다. 1978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도쿄에 있는 음악학교인 무사시노 예술대학(소설가 무라카미 류가 중퇴한 곳)에 진학하려고 했다. 그러나 정식으로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 켄이 중학교에 다닐 때 아버지가 파산해서 학비가 없어 포기했다.
1983년 일반인 여성과 결혼했으나 2년 간의 중재 끝에 2005년에 이혼하였다. 그리고 배우 미나미 카호(南 果歩)와 동년 12월 3일에 결혼하였다. 사생활에 신경을 쓰는지 언론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영화 '사유리의 뉴욕' 시사회 때 AP가 찍은 것을 빼면 공표 전까지 거의 기록이 없다.
와타나베는 츠지 히토나리(辻 仁成)[1] 와 미나미 카호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입양해 로스앤젤레스에서 살다가 일본으로 거처를 옮겼다. 결혼식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2010년에 결혼 5주년을 기념하며 로스앤젤레스에서 식을 올렸다. 와타나베에겐 첫 번째 부인의 자식이 둘 있다. 장남인 와타나베 다이는 배우이며 장녀인 안 또한 배우 겸 모델이다. 2008년 다이가 자식을 낳는 바람에 켄은 48세에 할아버지가 됐다.
1989년에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지만 곧 회복했다. 2006년 자서전 <누구(誰)?>에서 "병세는 나아졌지만 치료는 여전히 받고 있다"고 밝혔다. 2011년 3월 13일 도호쿠 대지진 때 영어로 유튜브에 희생자들을 돕고 기금을 모금할 것을 요청하는 동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그 과정에 개인 사이트를 열기도 했다.
2017년 3월, '''21살 연하녀와 불륜 사실이 밝혀지면서 일본이 발칵 뒤집혀졌다'''. 하지만 일본 매스컴에서는 일본을 대표하는 헐리우드 스타이자 거물 배우임을 고려하여 쉬쉬하는 중. 이대로 조용히 묻힐 분위기다.하지만 2018년 NHK대하드라마 세고돈에 나온다고 하자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는것을 보면 이미지가 좋은 편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1#2
결국 2018년 5월 17일 자로 아내 미나미 카호와의 이혼 소식이 현지 언론에 발표됐다.
3. 가족
- 장남 와타나베 다이(渡辺 大): 첫 번째 부인이 낳은 아들이다. 직업은 배우로 아내와 자식 둘이 있다. 키는 18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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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녀 안(杏): 오빠 다이와 마찬가지로 첫 번째 부인이 낳은 딸이다. 직업은 배우 겸 모델. 174cm의 장신이다. 그냥 안(杏)이라고 줄여서 쓴다. 영어로 Anne이라고 표기. 히가시데 마사히로와 2015년 1월 1일 혼인신고를 했다. 즉 와타나베는 히가시데 마사히로의 장인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와타나베 켄이 전 부인과 이혼하는 과정에서 부녀간에 사이가 틀어지면서 현재는 연락을 하지 않는 듯 하다. 히가시데 마사히로도 불륜으로 인해 2020년 8월 1일 공식적으로 안과 이혼했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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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배우 경력
1978년에 와타나베는 도쿄에 가서 연기 경력을 쌓았다. 도쿄 기반의 극단 엔(박로미가 있는 곳)에서 연기를 시작했다. 니나가와 유키오의 연출로 <시모다니 만년거리 이야기(下谷万年町物語)>란 연극에 기용되었다. 해당 연극에서 지명도를 얻었으며 1982년에는 <알려지지 않은 반란(未知なる反乱)>이란 TV 드라마에 출연하였다. 1984년엔 <맥아더의 아이들(瀬戸内少年野球団)>이란 영화로 영화배우로도 데뷔하였다. 이 영화는 GHQ 시대를 일본의 오지인 세토나이해 사람들 시선에서 그려낸 영화이다. 1987년엔 NHK 대하드라마 독안룡 마사무네(独眼竜 正宗)에서 주인공 다테 마사무네 역을 맡아 유명해졌다. 그 뒤로 역사극 오다 노부나가나 <추신구라(忠臣蔵)> 등의 TV 사극과 영화 <막말순정전(幕末純情伝)> 등에 출연하였다.
1989년에 가도카와 하루키의 <하늘과 땅과(天と地と)>를 촬영하던 중에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고, 화학치료를 받은 뒤 돌아왔으나 1991년에 재발하였다. 그 후 건강을 추스르다가 1998년 야쿠쇼 코지와 1998년작인 <키즈나(絆 -きずな-)>에 출연하였고 일본 아카데미 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2000년에는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라는 의외의 작품에 출연하였고 2002년에 그는 극단 엔을 퇴직했으며 케이대시 에이전시로 옮겼다. 영화 <천년의 사랑(先年の恋)>으로 다시 일본 아카데미 주연상에 후보가 되었다. 2006년에 드디어 <내일의 기억>으로 아카데미 상을 받았다.
2007년 알츠하이머에 걸린 중년 남성의 이야기인 내일의 기억(明日の記憶)에 출연했다. 2009년에는 토다 에리카와 함께 <지지 않는 태양(沈まぬ太陽)>에서 주연을 맡았는데 상영시간이 무려 202분. 1960년대에 일본항공이 인명사고 터뜨리고 그럴 때 노동조합 임원인 인물을 다룬 이야기이다. 이 작품으로 일본 아카데미 주연상을 다시 한번 수상했다.
그러나 사실 일본인이 아닌 이상 일본 내의 경력은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주로 할리우드 영화로 전세계에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할리우드가 아닌 저예산 짝퉁 액션물에서도 종종 나오곤 했는데 한국에선 지옥의 묵시록 2 라는 엉터리 제목으로 비디오가 나온 바 있던 Commando Invasion(1986년 작)라는 필리핀과 미국 합작 액션영화에서 악역으로 나온 것을 비롯하여 이런 장르에서도 제법 나온 바 있다. 그러다 2010년 인셉션 출연 이후로 북미에서 인지도가 엄청나게 올라갔으며, 사나다 히로유키와 함께 북미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일본 배우이다.
국내에서는 유해무가 전담 성우.
한신 타이거스의 팬이라 2014년 일본시리즈 당시 고시엔구장에 직관을 오기도 했다.(#)
4.1. 영화
※ 주연은 볼드 처리
4.2. 드라마
※ 주연은 볼드 처리
5. 외부 링크
위키백과 영어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