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고등학교
1. 개요
전라남도 목포시 용당동에 위치한 고등학교다. 1942년에 개교했으며 2019년 학생수는 525명 교사수는 55명이다. 2011년에 자율형 공립고등학교로 지정됐으며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가 있다. 한때 학년당 9학급까지 개설했지만 학생수 감소로 학년당 7학급만 현재 운영하고 있다.
2. 역사
- 1942.04.20 목포중학교 개교(5년제 10학급)
- 1950.06.22 목포고등학교 개교(학제 개편) 총 12학급 인가(초대교장 조정두 선생 취임)
- 1963.09.14 현 교사로 이전
- 1968.12.04 24학급 인가
- 1972.12.04 학년당 12학급 총 36학급 인가
- 1979.03.01 부속 방송통신고등학교 인가
- 1980.03.01 고등학교 평준화 제도 실시
- 1987.05.10 다목적 강당(잠룡관) 준공
- 1989.09.20 본관 교사 (24교실) 개축 준공
- 1990.03.01 고등학교 평준화 제도 해제
- 1993.01.20 후관교사 (24교실), 별관(8교실) 개축 준공
- 1993.02.26 학생 생활관 (잠룡학사) 준공
- 1993.03.01 학년당 10학급 총 30학급 인가
- 1994.05.21 도서관(잠룡도서관 1,748m2) 준공
- 1997.02.25 우정학사(868m2). 잠룡유도관(462m2) 준공
- 1999.02.06 전교생 급식시설 준공
- 2003.11.03 급식실 및 다목적강당 준공
- 2005.03.01 고등학교 평준화 제도 실시
- 2011.03.01 자율형 공립고 전환
- 2019.02.14 제68회 졸업식(209명, 졸업생 누계 28,723명)
3. 교지 및 시설
구도심에 있는 오래된 학교인 만큼 넓은 1만평이 넘는 넓은 교지를 자랑한다. 2010년 남악에서 개교한 남악고 3개가 들어가고도 남는 사이즈라 서울에 있는 경기대학교 서울 캠퍼스 등 작은 대학보다도 큰 편. 인근에 목상고등학교 역시 비슷한 크기의 교지를 가지고 있다. 어째서인지 부지가 인접한 청호중학교는 이 학교에 좋은 땅 다 뺏기고 구석에 기형적으로 자리잡고 있다.[2]
또한 넓은 부지에 본관, 후관, 별관, 등 3개의 교실동과 우정학사와 잠룡학사 등 2개의 기숙사 잠룡도서관 체육관인 잠룡관과 급식실이 있는 다목적관 유도관 등 다양한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연혁에 나와 있든 3학년 교실과 메인 교무실 등 시설이 있는 본관 89년에 주로 1,2학년이 쓰는 후관 및 특별실 위주의 별관은 93년에 지어졌다. 즉, 학생들이 주로 생활하는 공간은 8~90년데의 상당히 낡은 건물을 그대로 쓰는 셈인데, 의외로 건물 내부의 시설들은 동문들의 힘으로 이래저래 지원을 잘 받아서 나름 신식으로 잘 갖춰져 있다. 2003년에는 천장형 시스템 냉, 난방 시설이 들어왔고[3] 2004년 겨울에는 후관 교실의 낡은 출입문이 교체 되는 등 내부는 현대식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 급식실 및 신 유도관 등이 있는 건물은 기존 조립식 건물 형태의 급식실을 개축하여 2004년 공사 준공되었다. 또한 본관 앞 진입로 쪽에 3층 규모의 대형 도서관이 있는데, 도서관 건물 3층에는 극장식 좌석을 갖춘 대형 시청각실이 있어서 졸업식, 입시 설명회 등 학년 단위의 행사가 있을 때는 이곳에서 진행한다. 다만 전교생이 다 들어갈 정도의 규모는 아니라서 전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는 잠룡관이나 운동장에서 진행된다. 2층에는 장서시를 갖춘 열람실이 있다.
2001년까지 사서 교사가 없었으며, 도서관은 도서부 학생들에 의해 자율적으로 운영되었다. 당연히 장서는 낡고 오래된 것 뿐이어서 사실상 이용자가 거의 없었다. 2002년 사서 교사가 생기면서 도서관이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으나, 2층 장서 공간은 2층의 일부만 사용하였고, 그나마도 절반은 책상만 놓인 일반열람실이었다. 1, 2층 유휴공간을 도서관 일반열람실처럼 활용하였고, 한 때 전교조의 반발로 야자를 제한하던 시절에는 이곳에 학년단위로 모여서, 야자를 하던 시절도 있었다. 2층 열람실 공간은 2004년에 장서실 공간이 2층 전체로 확대되면서 없어졌고, 1층 공간 남는 공간은 2005년 첨단강의실이 들어왔다. 그전까지는 1층과 2층의 자투리 공간을 동아리실로 활용하였다.
다른학교에서 보기 힘들게 기숙사 건물이 2개나 있다. 이는 비평준화 시절 무안[4] , 신안, 진도, 완도, 강진, 영암, 해남 등등 곳곳에서 유학생이 몰려들었기 때문인데, 그래서 이때의 기숙사는 외부에서 온 유학생 위주로 배정되었으나, 성적에 제한을 두어서 성적이 떨어져 기숙사에서 쫒겨나 하숙을 하는 학생도 있었을 정도이고 역시 짱짱한 동문들의 힘으로 에어컨 등 시설을 초반부터 갖추고 있어서 2000년대 초반 포항공과대학교에 진학한 선배가 와서 우리 학교 기숙사에도 없는 에어컨이 방마다 달렸다고 감탄하고 가기도 하였다.[5] 농어촌 특별 전형이 활성화 되고 특히 평준화 이후에는 유학생들이 목포고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방이 남게 되어 목포 지역 학생 위주로 운영하고 있고, 방도 4인실에서 3인실로 개조하게 되었다.
교지가 위치한 용당동 부지는 한 때 구도심과 북항 하당 등의 중간에 절묘하게 위치한 나름 괜찮은 위치였으나, 90년대~2000년대에 하당신도심이 조성되고 또 2000년대~2010년대 남악신도시가 조성되면서 하당, 남악등에서 통학하기 불편한 학교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2000년대 초중반 때까지는 비평준화 시기라 공부 잘 하는 학교 빨로 버텼으나, 평준화 이후에는 학교의 위치 또한 우수학생 유치에 장애 요인이 되고 있다. 옆동네의 목상고는 옥암지구로 이전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니... 1번, 6번, 10번, 20번, 33번[6] , 60번, [7] , 150번, 900번 등 다양한 노선이 지나가기 때문에 하당, 남악, 구도심, 북항 등등 각지로의 대중교통 접근성은 양호한 편이다. 목포라는 도시가 대중교통 분담율이 낮은 것이 문제이지.. 2호 광장과 가까운 편이라서 비평준화 시절 무안, 몽탄, 일로, 청계 등등 각 지에서 유학생이 들어오던 시절에는 2호광장까지 걸어가서 무안방면 좌석버스를 타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자꾸 짱짱한 동문들이 학교에 기념비, 기념식수, 분수대, 등나무 의자 등을 기증하여서 학교 이곳 저곳에 이런 동문들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물들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과거의 영광에 비하면 입결은 처참한 수준...
4. 이모저모
역사가 오래된 학교이다 보니 학교출신 정치인이나 유명인이 많이 있는편이며 전남지역에서 국회의원을 배출한 학교 TOP3에 들어가기도 한다. 행사를 많이 가지는 학교로써 블로그에도 자주 올라오며 동문회의 규모가 제법크다. 아무래도 개교한지도 꽤 오래된 학교이고 호남지역 정치인이나 기업가등 높으신 분들 중에 이 목포고 출신이 많다보니 동문회의 모임도 꽤 활발한 편이다. 평준화 이후에는 우수 학생의 목포고 진학 기피로 인하여 지금은 사실상 공고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평가도 나올 정도.
이 학교의 수련회는 상당히 빡세게 하는 편으로 매년 학교 홈페이지에 사진이 올라오곤 한다. 2000년 ~ 2008년까지의 학교 체육복 하복상의의 디자인이 아스트랄한걸로 유명했는데 몸판색이 학년별로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으로 나눠지고 어깨 소매 형태는 대각선 라그랑 봉제선에 어깨부분에 검은색 테이프 처리가 되어 있고 반팔시보리와 목에리의 색은 검은색에 브이넥, 카라넥이 조화된 간편한 디자인이었지만 문제는 브이넥이 파여진 정도가 워낙 넓고 길어서 좀 민망할 정도였다는 거다. 거기에 몸판 소재가 얇고 신축성이 좀 있었다보니 더더욱 목쪽이 넓게 파여보이고 수련회에서 그 하복체육복을 입고 수영을 하면 몸안이 다비치고 안그래도 넓고 깊게 파진 목부분은 더욱 깊게 파여서 쇄골이 다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 거기에 왼쪽 가슴엔 한자로 '''木高''' 라고 세로로 촌스럽게 씌어져 있었다. 그래도 졸업생 입장에선 나름대로 기억에 남는 체육복으로 유명했었다. 2015년 기준으로 하복 체육복은 모두 디자인이 교체되어서 지금은 볼수 없다. 물론 바뀐 하복 체육복도 기본적으로 형태가 크게 다르진 않다.
위에서 언급된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은 전통적으로 학년별로 돌아가면서 쓰게 되는데, 올해의 3학년이 빨간색, 2학년이 노란색, 1학년이 초록색이라면 그 다음해에는 빨간색을 쓰던 3학년이 졸업하고, 3학년이 노란색, 2학년이 초록색, 그리고 새로 들어오는 1학년이 다시 빨간색을 쓰는 식으로 학교 체육복, 명찰 배경색, 뱃지 등에 모두 적용되었다. 밖에 나가 졸업한 동문을 만나서 기수를 물어보다보면 이 색깔 이야기가 안 빠지고 등장한다. "XX회시나요?" "우와, 나랑 같은 빨간색이네?"와 같은 식으로. 이런 식으로 3n회는 초록색, 3n+1회는 빨간색, 3n+2회는 노란색을 쓰게 되어 있다.
2001년 입학생 까지만 해도 명찰 쓰이는 이름이 한자였다. 결국 선생님들도 애들 이름을 읽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와서 한글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비평준화 시절에는 목포의 중학생들이 모두 선망하는 학교였으며, 해당년도 목포고 합격자수로 중학교 서열을 매기기도 했다.[8] 고3이 되면, 순천고등학교와 서울대 합격자 수로 비교를 하기도 했다. 고입선발고사 당시 불합격생은 영암군의 낭주고등학교, 함평군의 함평학다리고등학교 등으로 진학해서 졸업하거나 고등학교 재수를 택해 목포고등학교 교복을 입기도 했다.
"잠룡"이란 말이 학교에서 많이 쓰인다. 잠룡인, 잠룡관(체육관), 잠룡도서관, 잠룡학사(기숙사), 잠룡제(축제) 등.
2002년 신승남 검찰총장(목중 13회·목고 11회 졸업생)이 광주지검 목포지청 초도순시 차 목포에 왔다가 모교에 들렀는데 방문을 앞두고 고3까지 동원하여 학교 진입로 물청소에다가 화단에 꽃까지 심는 등 난리를 떨어서 고3 수험생들의 불만이 많았다.
여름방학 때도 자율학습을 실시했는데 1반부터 끝반까지 모두 참여하는 M리그를 학생들끼리 개최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학급끼리 대결해 승패를 매겼는데 선생들이 M리그를 방해하고자 일부러 자가용을 몰고 운동장을 빙빙 도는 등의 추태도 있었다.
5. 출신 인물
- 강성만
- 강성현(정치인)
- 고길호
- 김인곤 - 정치인
- 김장곤 - 정치인
- 김종수(가수)
- 김철주
- 김충식(1954)
- 남진
- 민영삼 - 정당인
- 민형배
- 박경민
- 박병윤
- 박영순 - 전 구리시장
- 박우량
- 박현출
- 박홍률
- 배종호 - 전 KBS기자, 정당인
- 부좌현 - 정치인
- 서기호 - 전 판사, 정치인
- 손정수 - 전 농촌진흥청장
- 신승남 - 전 검찰총장
- 안형환 - 전 KBS기자, 18대 국회의원 역임 정치인
- 유선호 - 정치인
- 이길호
- 이윤석 - 연예인 이윤석과 동명이인의 정치인
- 이정국(1963)
- 임인철 - 전 전라남도 정무부지사.
- 전석홍 - 전 국가보훈처장.
- 정시채 - 전 농림부 장관
- 정영식(정치인)
- 정종득
- 조상기(정치인) - 전 정치인, 언론인.
- 조승형 -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 천정배 - 정치인
- 최대집 - 의사, 대한의사협회 회장
- 최인훈 - 소설가
- 최영철 - 전 통일원 부총리겸 장관, 전 체신부 장관
- 한화갑 - 정치인
- 홍성담 - 미술가
- 김현호 - 前 장기하와 얼굴들드러머
- 이성출 - 前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육군 대장) 목고 18회, 육사 30기
- 이성식 - 前 해군군수사령관(해군 소장) 목고 21회, 해사 30기 [9]
- 오건석 - 前 해군3함대사령관(해군 소장) 목고 17회, 해사 27기
- 박재복 - 前 공군사관학교장(공군 중장) 목고 24회, 공사 29기
- 김정수 - 현 제2작전사령관(육군 대장) 목고 30회, 육사 42기
- 모종화 - 前 1군단장(육군 중장) 목고 25회, 육사 36기
- 최재석 - 前 육군 법무감(육군 준장) 목고 30회, 고려대 법대 졸업, 군법무관 8기
- 박화진 - 前 육군2군수지원사령관(육군 준장) 목고 25회, 육사 37기
[1] 문태고등학교에서는 박지원,천용택을 배출했다.[2] 청호중은 2018년도에 용해동 부지로 이사했다.[3] 이전에는 3학년 교실에 한해 일반 에어컨이 놓아져 있었다. 동문들이 기증했다는 소문도 있다.[4] 무안읍, 청계면, 일로읍, 몽탄면 등등[5] 적어도 2003년까지 기숙사 방에는 천장형 선풍기 1대가 전부였다.[6] 61번의 대체노선이다.[7] 폐지되었다.[8] 청호중 - 목포제일중 - 목포유달중 순으로 입학생이 많았으나 1984년생이 입학한 2000학년도는 목포제일중이 청호중을 처음으로 앞섰다. 사립학교의 경우 장학금 혜택을 내세워 같은 재단의 중학생을 같은 재단 내 고등학교(예, 홍일중-홍일고)로 스카우트를 시도했으며 그래도 목고 진학을 고집하거나 스카우트를 받아들이거나 두 가지였다.[9] 이성출 장군의 친동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