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인

 


1. 개요
2. 오해 및 편견
2.1. 방글라데시인은 피부색이 모두 짙다
2.2. 방글라데시는 행복도가 가장 높다
3. 한국 내 방글라데시인의 높은 성범죄
4. 관련 인물
5. 관련 문서


1. 개요


방글라데시민족 측면에서는 전 국민의 98%가 벵골족인 사실상 단일민족국가다. 인도가 분할되는 과정에서 다른 지방의 무슬림들이(특히 비하르 주 출신의 비하리인) 소수 이주해 오긴 했지만 벵갈 지역이 워낙 벵골인의 인구가 많아서 비율은 얼마 안 됐고,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때 다른 민족의 무슬림들은 파키스탄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1.1. 벵골족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주 민족으로 비옥한 갠지스 강 유역 평원 지대에서 벼농사 소출이 많았던 관계로 오늘날 방글라데시 내 벵골인 인구는 1억 명이 넘는다. 인도 서벵골에 주로 거주하는 벵골인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므로 동족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방글라데시에 해당하는 갠지스강 하류 삼각주 지역은 중세까지는 밀림이었으나, 밀림이 개간되는 과정에서 새로 인도문화권으로 편입되던 부족들이 힌두교 대신 이슬람교로 개종하면서[1] 방글라데시 동부의 벵골인들은 무슬림이 되었다.

1.1.1. 로힝야족


2017년 9월 들어 일명 '인종 청소 학살'으로 크게 논란이 되고 있는 미얀마의 로힝야족 또한 뿌리는 미얀마 계통이 아닌 방글라데시와 같은 벵골 계통이다.[2] 로힝야족의 정확한 기원은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얀마 전체를 식민지배하던 영국이 미얀마인들이 식민지배에 저항하면서 미얀마 개발이 힘들어지자 인도인들을 대거 이주시켰는데, 마니푸르, 아삼 주의 힌두 브라만은 주로 공무원을, 시크교도는 군인으로, 벵골인 무슬림들은 벼농사 플렌테이션을 개간할 농부로 정착하였다. 종종 인도계 무슬림들이 우월한 입지와 재력을 바탕으로 미얀마 현지 여자를 첩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미얀마 민족주의자들과 승려들이 이를 갈았다고. 오늘날 미얀마의 최대도시로 성장한 양곤시는 영국에 의해 개발될 당시 아예 초창기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인도인이었다. 2차 대전 전후로 인도계 미얀마인 중 눈치 빠른 사람들은 재산을 정리한 후 인도로 도피했지만, 벵골인 농민들은 미얀마에 있는 농토를 두고 동파키스탄으로 굳이 돌아가봐야 할 게 없었다. 미얀마 독립 당시 초창기에는 이들의 영향력을 절대 무시할 수 없었고, 꽤 오랫동안 미얀마의 기득권층으로 군림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네 윈이 주도하는 사회주의 정권이 출범하면서, 한큐에 모든 기득권을 잃고 몰락하면서 오늘날처럼 하층민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이런 역사적 연원으로 인해, 미얀마 영토에서 살아가고 있는 로힝야족[3]들은 미얀마인들과는 말도 안 통하고, 오히려 방글라데시와는 말이 통한다. 또한 로힝야족은 거의 대부분이 이슬람교를 믿어서 더욱 방글라데시와 연관성이 깊다. 하지만 방글라데시 정부 측은 "이들은 17세기부터 미얀마 지역에 거주해왔기 때문에 미얀마인이다."라는 이유를 내세워 이들의 방글라데시 유입을 막으려는 편이다.[4] 그리고 방글라데시는 세계에서도 손에 꼽는 인구 초 포화 국가인 것도 방글라데시 정부가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5] 무엇보다 로힝야족 스스로도 자신들을 방글라데시 및 인도의 벵골인들과 조상만 같은 별개의 민족으로 여기고 있으며, 로힝야족이 로힝야어를 표기할 때 사용하는 문자 또한 방글라데시 및 인도에서 벵골어 표기에 쓰이는 동부 나가리 문자가 아니라 아랍 문자이다 보니 로힝야족의 문화는 방글라데시 현지 문화와 비교해서 이질감이 전혀 없다고 보기는 힘들다.

1.2. 비하르인


비하르 출신의 비하리인은 원래는 주로 벵골어 대신 힌디어우르두어를 사용하던 사람들이다. 비하리어가 따로 있기는 한데 비하리어는 힌디어의 방언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직전에 100만여 명이 살고 있었으나, 동파키스탄 시기 상당수가 파키스탄 편에 섰다가 미움을 샀던 문제로 독립 이후 파키스탄으로 이주하였고, 이 가운데 15만 명은 피난을 갔다가 난민촌에 살면서 파키스탄 국적도 방글라데시 국적도 얻지 못한 무국적 상태에 있다가 2009년에 대법원 판결에 의해 국적을 부여받았다. 그 결과로 지금은 동부에 거주하는 불교소수민족 원주민들인 줌머인들이 비하리인보다 많아졌다.

1.3. 줌머족


나머지 2% 중에 소수의 불교를 믿는 줌머인이 있다. 줌머인이라는 단어가 단일 민족을 지칭하는 건 아니고 치타공 주[6]의 산악지대 근처에 거주하는 상좌부 불교를 믿는 여러 민족들을 지칭하는데, 이 가운데는 벵골인과 외양이 흡사한 경우도 있으나 티베트-버마계 황인이 좀 더 많은 편이다.[7] 본래 화전민이던 이들은 개발의 혜택에서 소외되는 것은 물론 방글라데시 정부에게 상당한 탄압을 당하고 있다. 국내에도 방글라데시 국적인 난민들 중에서 줌머인이 꽤 있다. #

1.4. 무하지르


파키스탄 독립 당시 지금의 방글라데시인 동파키스탄으로 이주한 비벵골계·비펀자브계 인도아리아인 무슬림의 후손들이며, 특히 우르두어가 모어인 무슬림 힌두인이 많았다. 이들은 동파키스탄의 벵골 문화를 탄압한 것 때문에 방글라데시 독립 이후 파키스탄으로 망명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그나마 남은 방글라데시 무하지르의 후손들도 방글라데시의 벵골인들에게 압제자의 후손으로 멸시당하는 경우가 많다.

1.5. 펀자브인


무굴 제국, 인도 제국, 동파키스탄 시절에 지금의 파키스탄이나 인도 북동부에서 이주해온 펀자브인의 후손이다. 크게 무슬림과 시크교도로 나누어진다. 무슬림 펀자브인의 경우 무하지르와 마찬가지로 조상 대에 동파키스탄의 벵골 문화를 탄압하는 일에 동참했기 때문에 방글라데시의 벵골인들에게 압제자의 후손으로 멸시당하는 경우가 많다. 시크교도 펀자브인은 조상이 지금의 방글라데시 땅에 주둔하던 인도 제국 시크교도 군인이었던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인도 제국 해체 이후 인도 본토로 이주하기도 했지만 그대로 방글라데시에 남기도 했으며 후자의 경우 아예 종교만 시크교인 채 벵골인에 동화되기도 했다.

1.6. 버마족


미얀마와의 국경지대에 사는 미얀마계 방글라데시인이며, 조상이 지금의 미얀마 땅에서 이주해온 케이스다. 미얀마 본토의 버마족 및 방글라데시의 줌머족처럼 상좌부 불교를 믿는 경우가 많지만 조상이 미얀마 독립 이후 무슬림 탄압을 피해 방글라데시로 망명한 무슬림 버마족[8]인 경우에는 방글라데시의 주류 종교인 이슬람교를 믿기도 한다.

1.7. 파르시


조로아스터교를 신봉하는 파르시도 거주하는데, 이들은 인도의 파르시에 비하면 사회적 지위가 낮은 편이다.

1.8. 유대인


인도계 유대인이나 영국계 유대인(인도 제국 시절)이 지금의 방글라데시 땅으로 이주하여 종교만 빼고 벵골화된 케이스다.

2. 오해 및 편견



2.1. 방글라데시인은 피부색이 모두 짙다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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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이 생각하는 방글라데시인'''
'''피부색이 밝은 방글라데시인'''
벵골인 중에 상위 카스트 출신과 조상이 파슈툰 계열인 경우 또는 줌머족은 그렇지 않다. 엄연히 벵골인은 언어를 기준으로 한 민족 분류이고, 벵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중에 파키스탄 사람처럼 생긴 경우, 남인도 타밀족처럼 생긴 경우 혹은 줌머족처럼 동아시아계처럼 생긴 경우가 모두 나타난다.
방글라데시는 인도 아대륙에서 극동이기 때문에 남부의 타밀족처럼 피부색이 짙은 흑백혼혈이 다수인 것은 사실이지만 벵골어와 벵골인들의 직계 기원은 기원전 500년경 무렵 갠지스 강 일대에 정착한 인도아리아인이다. 갠지스강 일대의 원주민과 혼혈하지 않은 사람은 피부색이 밝은 편이다.[9] 그래서 중앙아시아인이나 캅카스 지역의 일부 캅카스 주민들과 서아시아인, 마그레브의 북아프리카인들 못지않게 밝은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2.2. 방글라데시는 행복도가 가장 높다


7차 교육과정 전통 윤리 교과서에서 물질이 행복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예시로 출판된 적이 있었다. 심지어 이원복 교수의 저서 세계사 산책에도 나왔다.
그러나 이는 모두 낭설로 판명되었다. 오히려 90년대 당시 행복도 조사의 기준이 애매해서 생긴 문제로, UN에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오히려 최하위권에 속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 현지 중산층이나 교민에게 물어보면 저런 조사결과에 대해서 어이없어한다고. 그들은 '행복지수가 아니라 체념지수가 높다는 게 맞는 표현이지요' 라고 한다. NEF의 행복지수 조사에 따르면 30에서 40위 정도로 평가받으며 삶의 만족도는 세계 104위라고 한다.


3. 한국 내 방글라데시인의 높은 성범죄


재한 외국인 체류 인원 18위쯤 된다.
한국 내 방글라데시인의 성범죄율은 상당히 높다. 과거 같은 나라 사람이었던 파키스탄인도 한국에서 성범죄율이 상당히 높다.
범죄율이 한국인에 비해, 강간 및 유사강간 3.2배, 강제추행 2.79배, 방화는 10.1배이다.
성범죄 대부분은 남성이 저지르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에 체류하는 방글라데시인은 대부분 남성인데 성비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범죄율이 높은 것이다"라는 반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미얀마와 비교해보면 반박의 설득력은 떨어진다.
2015년, 한국에 체류한 외국인들의 성비는[10] 방글라데시 94:6, 미얀마 97:3 이었다.[11] 2015년 국적별 체류 외국인 성비[12]
한국 내에서 미얀마인은 남자성비가 방글라데시인보다 높았다.
하지만 성범죄율은 방글라데시인보다 낮았고 성범죄율 순위권에조차 들지않았다.
즉, 한국에 체류하는 방글라데시인은 남자 비율이 높아서 성범죄율이 높은 것이 아니다.
실제로 방글라데시인이 국내에서 성범죄를 굉장히 많이 저질렀기 때문에 이들의 성범죄율이 높은 것이다.
아래의 사진은 한국 내에서 강력범죄율이 높은 국적을 순서대로 나타낸 표이다.
[image]
자료 출처: 2015년 IOM이민정책연구원에서 발행한 "체류외국인 범죄에 대한 진실과 오해"#
다만 NGO에서 6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방글라데시 국내의 성범죄율 자체는 인도네시아 및 캄보디아보다는 '''덜''' 심각한 것으로 나온다.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3091114443917073&outlink=1&ref=%3A%2F%2F


4. 관련 인물



5. 관련 문서


[1] 외지인이 새로 힌두교로 개종하는 경우는 정복 왕조 출신이 아닌 이상 수드라로 편입된다.[2] 로힝야족의 역사가 그리 긴 편이 아니다. '로힝야'라는 민족명도 20세기 이후에나 생겨난 말로, 억지에 가까운 기록에 등장하는 정체불명의 단어를 대충 끌어다 쓴 것에 불과하다. 이들의 기원은 벵골계 민족들의 한 부류인 치타공인과 같은 민족이며, 사촌뻘이 아닌 완전히 동일한 민족이다. 다만 언어적인 측면에서 약간의 방언 수준의 차이가 있을 뿐이고, 문화적으로는 거의 차이가 없다.[3] 이들은 미얀마에서 살지만, 국적상으로 미얀마인은 아니다. 미얀마의 국적 정책 때문인데, 자세한 내용은 로힝야 문서 참고.[4] 앞서도 언급했듯이 로힝야족은 19세기에나 미얀마에 유입되기 시작한 이들이고, 미얀마에 완전히 정착하게 된 건 20세기의 일이다.[5] #[6]버마의 아라칸에 속해있던 지역으로 벵갈 술탄국에 정복되었다가 무굴 제국, 인도 제국 그리고 동파키스탄과 현 방글라데시령이 되었다.[7] 줌머인들이 사용하는 언어들은 중국티베트어족에 속한다.[8] 주로 미얀마로 이주한 무슬림 이민족이 언어, 문화, 혈통적으로 미얀마화되면서 종교만 그대로 이슬람교인 상태가 된 케이스다. 중화권후이족과도 비슷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9] 사실 방글라데시를 비롯해 인도나 네팔 같은 남아시아 국가들의 영화배우나 연예인의 모습을 보면 대개 피부색이 밝다. 그 이유는 이 지역이 전통적으로 피부색이 짙은 사람을 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10] 남:녀[11] 표본인원은 충분함[12] 첨부되어 있는 2.zip 다운로드 → "국적_지역 및 연령별 체류외국인 현황" 클릭 후 압축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