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용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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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 인물, 표정 모든 것이 완벽한,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에 길이 남을 한 컷'''
1. 개요
2. 상세
2.1. 이을용은 왜 거칠게 반응했나?
3. 을용타가 경기에 영향을 끼친 것
4. 필수요소 을용타
5. 이을용이 말하는 을용타
6. 여담
7. 관련 문서

'''乙容打'''

1. 개요


2003년 12월 7일, 일본 사이타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대회 대한민국중국의 국가대표 경기 도중 이을용이 자신의 발목을 걷어차 쿵후축구를 하던 중국선수 리이[1]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때려 레드카드를 받아 퇴장 당한 일을 말한다. 좁게 말하면 때렸던 행위만을 말한다. 위의 사진은 가격 직후 찍은 것이다.
어원은 보통은 당사자인 이을용의 을용과 打(칠 타)의 합성어로 알려져 있으나 인조이재팬 유저들이 쓰던 은어에서 유래하였다는 설도 있다.
연음법칙 때문에 흔히 을'''룡'''타라는 표현으로도 인식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을용의 용은 龍(용 룡)자가 아니라 容(얼굴 용)자라 이는 잘못된 표기다.

2. 상세



한국을 상대로 이기려고 기를 쓰던 중국은 전반전 내내 심상치 않은 충돌을 계속 벌였다. 그러나 한국은 전반 종료 직전 얻은 코너킥 찬스에서 이을용이 찬 크로스유상철이 헤딩으로 집어넣으면서 선제골을 기록했다.
전반전에서 얻은 점수를 유지하기 위해 공을 빙빙 돌리고 중국 쪽이 계속 공격적인 플레이로 나오자, 한국은 침대축구를 시작해 시간을 점점 끌기 시작한다.
침대축구의 도발에 더욱 거친 플레이로 보답하기 시작한 중국은 백태클도 불사하며 전반전보다 더 강하게 나오기 시작한다. 이미 전반에 안정환리웨이펑의 충돌까지 있던 상황이어서 양 팀의 신경은 더욱 곤두서 있었다. 영상을 자세히 보면, 리웨이펑이 먼저 이을용을 강하게 밀치면서 거칠게 싸움을 거는 장면이 나온다.
후반 14분쯤에, 이을용이 공을 잡았을 때 중국의 리이와 몸싸움을 벌이던 도중, 리이가 이을용의 오른발 발목을 걷어차고 이에 분노한 이을용은 순간적으로 발목을 걷어찬 선수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때렸다. 리이는 곧바로 쓰러지고 타 선수들이 싸우든 말든 누워있다가 들것에 실려서 나갔는데 심판에게 어필하기 위해 중국 선수가 '''할리우드 액션'''을 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순간의 충격으로 넘어질 순 있어도 장시간 못 일어나고 실려갈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2.1. 이을용은 왜 거칠게 반응했나?


이을용은 과거 발목 부상으로 당시 소속팀이었던 부천 SK에서 퇴물 소리를 들으며 고생을 한 적이 있다. 이 경기에서 이을용은 전반전에 한국이 올린 득점의 어시스트를 하였다. 그래서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중국 선수들의 거친 견제를 받아 신경이 곤두서 있었고, 그렇게 쌓인 스트레스트라우마인 발목을 건드리면서 폭발한 것이다.
사실 팀에 꼭 필요한 존재는 '''투사''', 속칭 싸움닭이나 미친개 타입의 선수다. 그런 선수가 있는 팀은 음으로 양으로 자신들의 페이스를 유지하기 용이하다. 이러한 국가대표팀의 투사 스타일의 선수는 이후 이을용 외에도 김남일, 이천수가 있었고, 2010년대에는 기성용, 그 이후에는 황희찬으로 이어지게 되며 세계적으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레전드 에릭 칸토나 , 별명부터가 "네덜란드 싸움닭"이었던 에드가 다비즈 등이 있다. 거기다가 이을용은 컨테이너 박스에서 전기장판을 켜면서 잠을 잤던 눈물겨운 시절을 겪는 등 많은 역경과 굴곡을 겪으며 어렵게 축구를 했던 선수다. 이런 선수들이 이른바 싸움닭 스타일이 되는 경우가 많다.[2]
이 날 중국은 실력차를 메우기 위해 일부러 거친 플레이를 펼치며 대표팀의 페이스를 흩어놓는 전술을 들고 나왔고, 이는 축구판에서 대단히 흔하고 상식적인 방법이었다. 그런데 문제점은 중국이 한국의 멤버들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상술했듯 원래 이을용은 부천 SK 시절 니폼니시 감독에게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공을 세련되게 차는 거지, 똥이 더럽다고 피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당시 한국 대표팀에는 이을용 못지 않은 터프가이 유상철도 같이 있었다.

3. 을용타가 경기에 영향을 끼친 것


결론부터 말하자면 별다른 영향을 끼친 것은 없었다.
일단 이후 상황을 보면 손바닥으로 뒤통수 한 대 맞은걸로 쓰러져서 일어날 생각이 없던 리이는 계속 침대축구를 시전하다가 실려 나갔다. 하지만 발목을 걷어찬 것은 주심이 똑똑히 봤기 때문에 옐로우 카드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레드카드를 뽑았으나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나서 퇴장을 못시키고 수습을 하던 심판은 정리가 된 뒤 다시 레드카드를 이을용에게 확실히 보여주면서 그를 내보냈다. "한판 뜨자!"란 분위기를 내며 모두 뛰쳐나와 싸우던 양팀 선수들은 따로 카드를 받거나 하지는 않았다.
비록 이을용이 퇴장을 당했지만 경기는 중국 쪽으로 기울지 않았고, 오히려 수적 열세로 인해 분노한 한국이 더욱 단단하게 뭉치면서 중국은 자연스럽게 수적 우위를 살리지 못하는 패턴에 빠져버렸다. 한국은 안정적으로 공을 돌리며 남은 시간을 충분히 활용했고 결국 1대 0으로 이겼다. 물론 우주방어만 한 게 아니라 안정환의 슛이 골대를 맞고 나가는 등 추가득점 찬스도 있었다.

4. 필수요소 을용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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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을용의 분노에 찬 얼굴과 상대를 내려다 보는 근엄한 포즈, 그리고 쓰러진 중국 선수 리이와 뒤에서 경악한 표정으로 뛰어오는 또 다른 중국 선수 양천(杨晨)[3][4]의 절묘한 구도가 합성 갤러리에서 수많은 패러디를 낳았다. 이 패러디의 절정은 호베르투 카를로스찬조출연한 짤방으로 절묘하면서도 리얼리티도 뛰어나다. 물론 시간이 많이 지난 요즘은 더 많은 떡밥이 쏟아지는 상태라 별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사실 북두신권이었는데 일부러 힘조절 했었다는 카더라도 있었다.
  • Canon 광고에 등장하는 을용타
[캐논 파워샷 G7 X Mark II] 안정환의 파워무비! episode 2. 을용타

  • [5]
  • 2018년 5월 황선홍 FC 서울 감독의 사퇴로 이을용이 감독대행이 되었는데 하필 첫 홈 경기가 바로 어린이날 슈퍼매치. 이에 골닷컴에서 슈퍼매치 기념 을용타 포스터를 제작했다.[6] 당시 슈퍼매치를 앞두고 만든 포스터가 마치 수원과 서울의 화합을 뜻하는 그런 의미를 담고 있어서 양 팀 팬들은 '우리가 아무리 전북을 같이 욕해도 우리의 사이가 좋은 건 절대 아니다.' 라고 반발이 심했기 때문.[7]
  • 을용타가 대중화된지 약 3년 후, 2006 독일 월드컵에서 브라질과 일본의 경기에 벤치에서 대기하고 있던 호베르투 카를루스가 벤치 앞에 옆으로 누워서 경기를 보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이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카를루스 병장'이라는 짤방이 탄생되었고, 이 짤을 을용타랑 합성한 짤도 있다. 말년병장 문서 참고.

5. 이을용이 말하는 을용타


이 일에 대해 이을용 본인은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한 것에 대해서 자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다. 2년 뒤인 2005년, 이을용은 을용타에 대해 '''"순간적인 흥분을 참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라는 말을 하였으며 다양한 패러디에 대해선 '''"사람들이 즐겼다면 그걸로 됐다."'''는 말을 남겼다. 강원 FC가 창단했을 때는 인터뷰에서 '''"잘못이며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하기도 했다.
이 사건 때문에 이을용이 '''찍혀서''' 잠시 대표팀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아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당시 조 본프레레 감독은 빠르고 강한 스타일의 선수를 선호했는데, 이을용은 이미 30줄을 넘긴 터라 '주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중용하지 않았다. 다만, 본프레레가 짤린 이후 아드보카트호에서는 많이 뽑혔으며 2006 독일 월드컵에도 출전했다.
2011년, 이을용은 선수 생활 은퇴를 앞두고 당시를 회고하며 '''"온 국민에게 큰 웃음을 준 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2011년 10월 23일, 이을용의 은퇴 경기에서 강원 FC 선수들은 결승골을 넣은 후 을용타 세리머니를 했다. 시전자는 김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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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용타 문서는 위키백과에도 올라와있다. 그것도 영어 위키와 중국어 위키와 같이. 그리고 중국어 위키의 문서명은 乙容打로 올라와 있다. 중국어 위키에는 한국인의 반중감정과 연관지어 서술하며 간도 문제와 동북공정까지 끼워서 써놨다.

6. 여담


  • 본인 자쳬와는 관련이 없지만 2019년 AFC U-17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vs 멕시코와의 경기가 치러지기전 라인업 소개를 SBS 캐스터인 배성재가 맡았는데 이태석이 있자 그는 을용타의 아들 이태석이라고 소개했다. #
  • 조원희 유튜브에 출연하고 나서 말하길, 당시 경기가 끝나고 난 뒤 라커룸에서 만나 서로 사과하고 받아줬다고 한다.

7. 관련 문서



[1] 李毅. 당시 소속팀은 선전 FC. 2010년에 은퇴하였다.[2] 싸움닭이 있는 팀은 상대팀의 저질 플레이나 반칙성 플레이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싸움닭의 성질머리에 말려들어 제대로 참교육 당할 수 있기 때문. 거기다 싸움닭 본인이 팀을 장악하는 리더십까지 뛰어나다면 그야말로 조직력의 극한을 맛볼 수 있다.[3] 한 때 독일 분데스리가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FC 장크트 파울리에서 뛰었고(당시 소속팀은 리이와 같은 선전 FC), 2000 AFC 아시안컵 레바논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도 출전했던 선수이다.[4] 리이의 정면 사진을 구하기가 힘들거나 귀찮았는지 가끔 양천이 리이인 것처럼 나온 합성물도 있었다. 예로 들면 양천이 킥을 맞고 쓰러지면서 뒤통수를 감싸쥔 리이로 변하는 식.[5] 주로 타임라인 배틀에서 볼 수 있다. 밑에 사진에서 쓰러져있는 캐릭터는 문 나이트.[6] 첫 경기는 경남 FC와의 원정경기였다.[7] 2016년 전북 현대 모터스 심판매수 사건 당시 슈퍼매치 경기에서 서로 전북의 매수행위를 비판한 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