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급 전함

 


'''이세급 전함'''
이세
휴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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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勢型戦艦'''
1. 제원
2. 개요
3. 급박한 탄생
4. 원판 불변
5. 일본식 마개조 근대화공사
5.1. 발단
5.2. 1921년
5.3. 1924년
5.4. 1926년에서 1928년
5.5. 1935년 8월 1일에서 1937년 3월 23일
6. 항공전함으로 개장
7. 항공전함의 허와 실
8. 준비도 안 된 실전투입
9. 처량한 마지막
10. 매체에서의 등장


1. 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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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급 전함 2차 개장 전
이세급 전함 2차 개장 후[1]
구분
건조
근대화
항공전함
기준배수량
29,900t
36,000t
35,350t
만재배수량
32,062t
40,169t
38,682t
전장
208.16m
215.08m
219.62m
전폭
28.7m
33.83m
유지
홀수
8.7m
9.21m
9.03m
보일러
석탄,중유혼용 보일러 24기
로호함본식 중유보일러 8기
유지
터빈
브라운 커티스식 직결터빈 2기
함본식 기어터빈 4기
유지
추진축
4축추진
유지
유지
연료탑재량
석탄 4,600t, 중유 1,411t
중유 5,313t
유지(함재기용 연료는 불명)
속도
23knot
25.31knot
25.4knot
출력
45,000hp
80,825hp
유지
항속거리
14knot로 9,680해리
16knot로 7,802해리
16knot로 9,500해리
주포
41식 14인치 (356mm) 45구경 2연장포탑 6기
유지
주포탑을 2기 철거해서 4기만 유지
부포
41식 140mm 단장 20기
41식 140mm 단장 16기
완전철거
어뢰
533mm 수중발사관 6기
완전철거
철거상태 유지
대공포
76mm 40구경 단장 4기
127mm 2연장 4기
127mm 2연장 8기
기관포
없음
25mm 2연장 10기
25mm 3연장 31기+25mm 단장 11기
특수무장
없음
없음
120mm 28연장 로켓포 6기
레이더
없음
없음
2호1식 항공기탐지용 1기, 2호2식 수상함탐지용 2기
캐터펄트
없음
1기
2기
비행갑판 길이
없음
없음
60m
비행갑판 너비
없음
없음
30m
함재기
없음
수상기 3기
수상기와 폭격기등 22기
승무원
1,360명
1,385명
1,463명
현측장갑
305mm
유지
유지
갑판장갑
55+30mm
135mm
유지(비행갑판지역 제외)
주포전면장갑
305mm
유지
유지
함교장갑
305mm
유지
유지
기공
1915년 5월 10일 고베 가와사키 조선소
진수
1916년 11월 12일
완공
1917년 12월 15일
근대화
1935년 8월 1일 ~ 1937년 2월 23일
항공전함
1943년 2월 23일 ~ 1943년 8월 23일
격침
1945년 7월 28일 구레 군항 공습 당시

2. 개요


일본 제국 해군의 전함 '''이세급 전함(伊勢型戦艦)'''.

3. 급박한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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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의 일본 해군은 나름대로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의 제작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영국 해군으로부터 공고급 순양전함의 설계와 제작을 의뢰한 일본은 영국에서 직접 건조한 1번함 공고 이후로는 일본 내 조선소에서 자체적으로 건조해내는 성과를 이루었다. 설계도와 기술을 통째로 넘겨받는 등, 영일동맹으로 영국의 엄청난 협조를 받았기에 있을 수 있었던 결과였으나, 상대적으로 기술력이 떨어지던 일본으로써는 상당히 고무적인 성과였다. 그리고 공고급을 라이센스 제작하며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건조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배수량 30,000톤의 전함 후소(扶桑)를 건조해내기까지 한다.
그러나 직접 자국에서 기술을 개발하는 국가와, 그저 해외의 기술을 '''도입할 뿐인''' 국가의 차이는 컸다. 후소가 취역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중방어 방식을 채용한 미국의 네바다급(Nevada) 전함[2]이 나오자 당장 주장갑이 현측 전체를 두르는 방식인 방어구조가 구식으로 전락해버렸다. 게다가 구식 설계라는 점을 감안해도 현측장갑도 영국은 현측주장갑이 13인치, 미국은 현측주장갑이 13.5인치를 확보한 데 비해 약 1.5인치 정도 얇아 확실한 우위를 확보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다시 영국이 새로이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리벤지급 전함[3], 미국이 펜실베이니아급(Pennsylvania) 전함[4]을 1916년에 건조하였고, 점점 양국 주력함의 스펙 차이는 크게 벌어졌다.
당장 돈도 딸려서 이미 예정된 후소급 3, 4번함을 추가로 건조하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이는 1913년 말에 터진 빅커스-지멘스 스캔들로 인해 해군 측이 해군 출신 야마모토 곤베를 내세워서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따낸 건함예산이 전부 취소된 탓이 컸다. 게다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후소 자체가 성능이 떨어지니 미치지 않고서는 건조계획이 그대로 될 리가 없는 법이다.
결국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건조까지 시간이 생기면서 후소급 3,4번함으로 예정된 설계를 대폭적으로 개량하기로 하고, 설계자로는 일 저지른 녀석이 수습한다고 후소의 설계자인 해군중장 곤도 모토기(近藤 基樹) 남작이 맡기로 하였으나...

4. 원판 불변


아무리 설계자가 영국의 그리니치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내에서는 함선설계의 권위자였다지만, 당장 영국이나 미국의 최첨단 설계를 직접 설계도를 보거나 실물을 뜯어 보지도 않고 눈으로만 보고 설계사상을 파악해서 재현해내기는 매우 어려웠으며, 러일전쟁영일동맹도 반쯤은 의미가 없어서 공고급 순양전함처럼 영국으로 부터의 설계/기술 제공과 라이센스는 꿈도 못꿀 지경이였다. 그리고 어찌저찌 해당 설계를 카피해냈다고 하더라도 일본의 열악한 자체 기술력으로는 발달한 기술을 지닌 선진국의 기술 도입이나 협조 없이는 설계도가 있어도 제대로 만들어내기 어려웠다.
결국 현실적인 한계로 완전히 새로운 설계를 만들어낼 수는 없었으며, 이미 만들어져 있는 후소급 전함의 설계를 기반으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일단 후소와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 전장의 길이를 보다 연장하여 속도를 증가시켰다.
  • 포격전의 사통체제와 데미지 컨트롤의 조절을 위해 6기의 2연장 주포를 모두 3조로 나누어서 배치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계단식으로 배치된 전방의 1, 2번 주포탑, 사령탑을 포함한 조타함교. 제1연돌과 그보다 약간 낮은 제2연돌, 후방으로 향한 3, 4번 주포와 다시 1층의 관측소를 가진 삼각장(三脚檣). 후부함교와 역시 후방으로 향한 5, 6번 주포를 배치하는 형태다.
  • 주포탑의 전면장갑도 305mm로 증가, 갑판장갑도 합계 85mm로 증가했다.
  • 부포를 위력보다는 속사능력과 급탄의 용이함이 더 우수한 5.5인치 포로 교체했는데, 이는 당시 일본인의 체격문제로 6인치 포탄의 인력장전이 힘든데다가 프랑스에서 조선학 공부를 하고 돌아온 조선관의 건의가 먹힌 결과다.
  • 터빈을 브라운 커티스식을 채택하여 그 당시 전함으로서는 준수한 23노트를 달성했다.
일단 주포 배치는 뉴욕급(New York) 전함의 이전형태인 와이오밍급 전함(Wyoming)에서, 부포(副砲)는 프랑스의 쿠르베급 전함(Courbet)을 참고하는 등 나름대로 외부의 설계를 받아들여서 성능이 향상되었지만, 후소급을 기반으로 한 설계가 발목을 잡았다. 당장 주포가 후소와 같은 1908년형 45구경 14인치 포인데다가 수량도 동일하므로 물리적인 화력강화가 안된데다가 방어구획의 배치도 피탄시의 방어(Sprinter defense)를 강화해 중량이 후소 기준으로 약 1,000톤이 넘어갈 정도로 강화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술부족으로 인해 주포의 3연장화를 달성하지 못했으므로 2연장 주포탑을 유지함으로서 '''주포탑을 6기나 탑재했다는 근본적인 문제점은 해결되지 않았다.''' 따라서 장갑강화효과가 상대적으로 매우 미흡하므로 실질적인 방어력은 후소급보다 조금 개선된 수준이다. 게다가 부포의 포탄당 중량감소로 인하여 후소와 동일한 부포수량을 갖추게 되면 나타날 함내 부포사격탄량 부족이라는 화력약화를 막으려고 단장포 20문으로 포문을 늘리고 3, 4번 주포도 계단식이 되어 무게균형을 위해 최상부 갑판을 3번 주포까지만 연장하는 단축형 선수루형 선체가 되자, 반대급부로 사람이 들어가 잘 공간인 거주구획을 넣을 곳이 부족해졌다.
결국 부포의 포곽중 일부도 거주구획에 포함시켜 범선시대 전열함이나 하던 엽기를 저질렀다. 이 행위가 왜 엽기인가 하면 일단 무기와 탄약 틈에서 잠을 자야 하는 수병들의 고충도 만만치 않은데다가 과거 전열함 시대와는 달리 긴급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유사시 즉시 사격하기 위한 즉응탄과 기타 관련시설이 밀집해 있으므로 잠자다가 누군가 실수라도 하면 바로 발포가 이루어지거나 유폭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결국 '''거주성'''은 당시 세계에서도 거주성이 지랄맞기로 악명높았던 연합함대의 함선 가운데서도 당당히 수석의 영예를 차지했다고 한다.
어찌되었든 후소보다는 그럭저럭 조금이나마 나아졌으므로 1917년 12월 15일에 이세가 준공되었고, 곧 이어 자매함인 휴가가 준공됨으로서 나가토가 등장하는 1920년 이전까지 일본에서 가장 거대한 함으로 그 이름을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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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일본식 마개조 근대화공사



5.1. 발단


하지만 세계에서 단 7척이라는 자칭 '영광의 빅 세븐'[5]나가토급 전함이 태어나자 당장 이세의 14인치 주포가 초라해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덤으로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이 발효되자 당분간 더 이상 새로운 전함을 건조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기존 전함들을 개장해서 현실의 전투에 걸맞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으며, 이미 조약이 체결되기도 전에 이미 기존 전함들을 버리기에는 경제적 문제가 컸으므로 최소한의 개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던 상태였다. 그래서 이세급에게도 16인치 주포를 부여하자는 의견이 나왔으나 속사능력과 효율성 및, 이세의 주포탑 바벳에 16인치 주포탑이 올라갈 수 없으므로 바벳까지 다 교체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여 일단 주포는 보류하는 것으로 1920년대에 일단 소규모 개장공사가 추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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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1921년


  • 주포의 앙각을 25도에서 30도로 올려 장거리 타격능력을 늘렸다. 일단 구식전함이면 국가를 가리지 않고 대부분 실시하는 개장으로, 앙각을 고각도로 늘리면 42~3도까지는 계속 사정거리가 증가한다.[6]

5.3. 1924년


  • 전장(前檣)상부에는 방위반조준장치(方位盤照準裝置)를 추가했다. 영일동맹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1차대전까지도 영국해군이 드레이어 테이블이나 폴렌 조준장치를 만들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상태였다. 이런 조치로 인해 일제사격협차의 효율성이 증대되었다.
  • 신호항(信號桁)을 연장했다.
  • 항해함교-주간전투함교-야간전투함교를 일체화했다.
  • 삼각장의 양현에 76mm 단장 대공포를 전후 2기 - 합계 4기를 장비해서 최소한의 대공능력을 확보했다.
  • 1번, 6번 주포를 제외한 4기의 주포에 측거의(測距儀 - 마이크로미터)를 장비했다.
  • 사격지휘소, 야간해전을 위한 탐조등과 추적지휘장치를 설치했다.
  • 연돌도 매연으로 인한 금속의 부식과 전투시 악재 방지를 위해 제1연돌에 숟가락 모양의 매연방지기구가 장착된다. 사실 제1연돌이 함교와 너무 가까워서 평시에도연기때문에 앞이 안보이는 사태가 자주 발생했다.
  • 정찰을 위해 5번 주포 상부에 수상기를 탑재한다.

5.4. 1926년에서 1928년


  • 전방함교를 방어력 강화의 노장(櫓檣)형식으로 교체했다.
  • 함재기를 2기로 늘렸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과 더불어 런던 해군 군축조약이 추가로 체결됨으로서 해군의 휴일이라는 거함거포주의자에게는 비극의 시대, 납세자들에게는 황금시대가 찾아왔다. 물론 조약에 따라 더 이상의 전함건조가 금지된 상황이었지만 어디서나 꽁수는 있는 법. 이세급과 다른 전함들은 1930년대에 들어 다시 대대적인 근대화 개장작업을 받는다.

5.5. 1935년 8월 1일에서 1937년 3월 23일


  • 주포와 부포의 앙각(仰角)을 43도로 대폭 증대했다. 사실상 이세의 주포로 낼 수 있는 최대사거리를 확보한다.
  • 어뢰발사관을 철거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함이 어뢰를 보유해봤자 별로 쓸모가 없는데다가 오히려 주포탄이 명중하면 유폭이나 일어나는 위험한 무장이라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에 이루어진 조치다.
  • 포탑외부와 상부의 장갑두께증가, 현측장갑의 두께를 더욱 확대, 장갑배치를 수평방어능력 및 대 어뢰방어능력이 향샹되도록 했다. 이로 인해 장갑중량은 12,644톤으로 대폭 증대한다.
  • 사통기구를 개선 및, 대형화하여 함교 측거의를 길이 10.5m로 증가시켰다. 육안과 같은 가시광선을 이용하는 광학기구를 사용할 때는 측거의가 크면 클수록 성능이 좋아진다. 물론 제대로 만들었을 때의 이야기다.
  • 76mm 단장 대공포를 127mm 연장 대공포로 교체해서 함교 좌우에 2기씩 배치해서 대공능력을 강화했다.
  • 40mm 연장기관포 2기를 후방 함교의 좌우에 1기씩, 7.7mm 단장기관총 3기를 추가했다.
  • 보일러를 이전의 석탄-중유 혼용에서 중유 보일러 8기로 교체해서 효율성을 높였다.
  • 4축추진 함본식 올 기어드 터빈 4기를 장비. 앞서의 보일러 교체와 함께 주동력장치가 완전히 신형으로 교체되었으므로 속도도 25Knot까지 낼 수 있었다.
  • 제1연돌이 삭제되고 제2연돌을 대형으로 교체해 매연으로 인한 문제점은 크게 감소했다.
  • 제1연돌이 있던 자리에는 함재정(艦載艇)이 배치된다.
    • 선체의 함미도 6m를 연장해서 고속항행에 도움을 준다.
거의 환골탈태의 수준이지만, 이것도 끝이 아니었으니...

6. 항공전함으로 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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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장 공사라고 읽고 마개조라고 보는 것을 통해 장갑증대, 속도향상, 대공능력증대를 이룩하였으므로 이세는 상당히 쓸만해졌으나, 일본 해군의 병폐인 함대결전사상의 집착으로 인해 주력 전함들이 일본 본토나 트럭섬에서 뭉기적거리는 동안 미국에서는 16인치 함포를 장착한 신형전함 등이 속속 등장하여 마치 서서히 녹이 스는 것처럼 점차 일선에서 뛸 능력을 상실하는 중 큰 사건이 벌어지니...
1942년 5월, 주포사격 훈련 도중에 자매함인 휴가의 제5번 주포탑 내부에 배치된 화약이 내부폭발을 일으켜 다수의 사상자가 생기는 사고가 발생했다. 일단 폭발한 부위의 주포탑을 철거하고 25mm 3연장 기관포 4기를 설치하였다.[7] 그 때 이미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거에 4척의 을 상실한 일본 해군은 비교적 오래된 후소급과 이세급 4척의 항모로 개장할 계획을 검토중이었고, 일단 후소급이 유력한 후보로 올랐으나 사고로 주포탑을 손실하고 일본 본토로 돌아온 이세급이 먼저 실행대상이 되었다. 이는 개장을 위한 기존 시설 철거시에도 비용과 시간이 덜 들어가리라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계획은 한 척에 54기 정도의 함재기를 탑재하는 완전한 정규항공모함으로 개장될 예정이었지만 항공전력의 시급한 확충과 자재절약, 그리고 일설에는 전함파 장성들이 “못 내준다!”고 반항하는 관계로 현실과의 타협을 본 결과 아래와 같이 개조되었다.
  • 5, 6번 주포와 부포를 철거하고 주포의 바벳을 격납고로 개조했다.
  • 길이 60m, 너비 30m의 항공갑판과 캐터펄트, 항공기 운반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
  • 레이더를 추가하고 대공장비를 증설했다.
  • 함재기는 주로 폭격기종류로 총계 22기를 장비한다.
포탑을 살리느라 갑판이 충분히 길지 못해 일반 함재기를 탑재해 일반 경항모처럼 운용할 수 없다. 죽도 밥도 아니게 되었다.

7. 항공전함의 허와 실


물론 항공모함과 전함의 혼종항공전함은 다른 국가들도 관심을 가지고 생각해 본 일이지만, 이를 실제 실현한 것은 일본군이 만든 이세와 휴가밖에 없다. 게다가 후소급의 항모개조 계획은 자재 및 시간문제로 수상기모함 및 민간선, 순양함을 경항공모함으로 급히 개조하는 선으로 일단락되어 취소되었다.
일단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항공전함 비스무리한 배가 있기야 했다. 퓨리어스가 그 주인공이지만, 이 배는 항공모함이라는 함종이 아예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 만들어진 배여서 현대 항모의 상식과는 여러모로 괴리된 물건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항공모함에 전함 주포를 달면 안 된다는 상식조차도 없던 시절에 나온 물건이고, 퓨리어스가 온갖 삽질을 한 덕에 항공모함의 상식이 갖춰진 것이다. 그래서 이 배는 항공모함일 수밖에 없고 영문 위키피디아 퓨리어스에서도 항공모함으로 기재되어 있다. 게다가 함 앞에만 비행갑판을 깐 상태에서도 함재기의 이착함이 가능했으니 이세급과는 비교가 불가능하고, 착함 사고가 난 후에는 함 후방의 18인치 단장포도 떼어버리고 비행갑판을 깔아버렸다.
그리고 다른 나라가 항공전함을 만들지 않은 건 이유가 있었다. 항공전함이라는 함종 자체에 문제가 크기 때문이다.
  • 전함으로 쓰려니 화력이 줄어든데다가 비행갑판과 함재기, 연료와 탄약을 중장갑으로 지킬 수 없어 피탄시 쉽게 폭발과 화재가 발생하는 등 약점투성이다.
  • 항공모함으로 쓰려니 좁은 비행갑판에서는 함재기를 이함시키는 것도 번거로운데다가 착함은 짧은 비행갑판과 거대하고 높은 기존 함교로 인해 불가능하다.
여기에 이세급 항공전함이 고유로 가진 문제점이 추가된다.
  • 후방 마스트를 그대로 항공모함용 함교로 개조하는 바람에 3,4번 주포탑의 사격각도는 여전히 매우 제한되어 쓸모가 적을 뿐 아니라, 비행갑판의 길이가 대폭 축소되는 원인을 제공하였다. 차라리 3,4번 주포탑까지 제거한 후 기존의 함교를 항공모함 겸용으로 개수하였다면 조금 더 쓸만했겠지만, 해당 방안은 이미 항공전함으로 개수시 나온 3개 방안에서 공사시간및 자재가 최종 채택된 방안보다 엄청 들어가는 데 비해 여전히 함재기의 착함이 불가능하다는 것등 최종 채택된 방안보다 항공기 운용능력이 그렇게 좋아지지 않는 어쩡쩡한 방안으로 결정된지 오래였다.
  • 좁은 비행갑판 및 기술력 부족으로 미국식의 증기력을 이용한 캐터펄트를 사용할 수 없어, 1식 2호 화약식 비행기 사출기라고 불리는 화약식 캐터펄트를 사용해야 하는데, 5분만에 22기의 함재기를 모두 사출가능하지만, 사용시마다 큰 충격이 가해지므로 가뜩이나 돈도 자재도 없는데 레일을 출격때마다 갈아주어야 한다.
  • 전투기를 배치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어서 함재기는 수상 정찰기 겸 급강하폭격기인 E16A 즈이운(瑞雲)과 함상폭격기인 D4Y 스이세이(彗星)로 한정되었고, 둘다 이함은 가능하지만 착함의 경우에는 즈이운은 바다에 착륙해서 크레인으로 회수, 스이세이는[8] 가까운 아군 비행장으로 가거나 바다에 불시착후 조종사만 구한다는 얼빠진 방식으로 운영될 예정이었다.[9]
게다가 이렇게 되면 함재기 회수때마다 단정과 크레인까지 동원하는 매우 번거롭고 시간을 많이 잡아먹으며 위험한 작업을 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일본 해군의 입장은 어차피 전투가 벌어지면 함재기 숫자가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즉 애초에 함재기의 소모가 다대할 것을 예상하고 함재기 회수책을 불성실하게 만들었다는 뜻인데... 그 함재기(특히 스이세이)가 살아서 돌아오면 멀쩡한 함재기를 바다에 처박아야 한다.[10]
  • 함재기의 보충도 매우 어렵다. 즈이운은 수상기니까 기지에서 날아와서 이세급 바로 옆의 바다에 착수하면 크레인으로 끌어올릴 수 있지만, 스이세이는 바다에 착수할 수 없으므로 보충을 받으려면 항구에 입항한 후 스이세이를 크레인으로 실어야 한다.
  • 그나마 함재기 조달도 어려웠다. 즈이운은 수상기치고는 성능이 좋지만 양산시기인 1944년에는 이미 일본에 정밀한 기체를 제작할 능력이 사라졌고, 스이세이도 당장 육상에서 사용할 기체도 없던데다가[11], 결정적으로 그 좁은 비행갑판에서 이함을 할 조종사가 없다는 삼중고를 겪는다.
원판부터가 배치시기를 감안해도 영 좋지 못했던 판국인데, 취역하고 몇십년이 지나 퇴물에 가까워진 것을 어떻게든 실전에 써먹겠답시고 애매한 개조를 한 덕분에 전함으로서도, 항공모함으로서도 이도저도 아닌 애물단지가 탄생해버리게 된 것이다.

8. 준비도 안 된 실전투입


마침내 이세는 자매함인 휴가와 함께 '''함재기 없는 항공전함'''으로 실전에 투입된다. 일단 제3함대 제4항공전대에 들어가 승무원에게 함재기 운영의 정비 및 훈련를 시키면서 함재기를 기다리지만, 훈련이 끝난 상황에는 함재기로 쓸 기체가 대만 항공전에 투입되어 모두 격추당하는 안습한 상황이 발생하였다.
그리하여 레이테 해전의 엔가노 곶 해전에서도 역시 함재기 1기도 싣지 못하고 그냥 전함으로서 출동하였다. 당연히 미국 해군의 항공폭탄과 항공어뢰 맛을 보게 되었으나, 개량된 방공무장과 레이더, 사통기구의 덕택으로 다수의 미군 항공기를 대공화망으로 쫒아내는 데에 성공하는 한 편 마츠다 치아키(松田 千秋)중장이 만든 회피술을 이용해 사상자도 적었고 함의 피해도 이세가 약간의 파손을 입는 선에서 그쳐 무사히 돌아 올 수 있었다.[12]

9. 처량한 마지막


레이테 해전 이후 함재기를 구할 희망이 영영 사라진 이세와 휴가는 그 맷집을 살려 격납고를 창고로 개조, 동남아에 아직 남아있는 자원을 일본 본토로 가져오는 북(北)호작전의 주역으로 활용되었다. 이 작전에서는 싱가포르에서 일본까지의 항로를 중국 연안에 거의 붙어서 몰래 전진하는 방식을 사용해서 성공을 거두었다. 이 북호 작전으로 가져온 각종 자원, 특히 석유는 태평양 전쟁 때 일본이 해외에서 들여온 사실상 마지막 자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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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본 본토로 돌아온 후에는 연료 부족으로 본토의 구레항에 짱박히는 신세가 된다. 이렇게 되자 대공화기는 다 뜯어내 육상진지로 이동시키고 주포만 남아 해안포로 사용되던 가운데 구레 군항 공습이 벌어지자 3식탄을 발사하면서 최대한 항전했으나 결국 격침, 착저하여 패전을 맞이한 후 고철로 스크랩되었다.
종합하자면 태생과 개념의 한계로 인해 들인 돈과 시간, 자재가 허공으로 날아간 아까운 전함이라고 보면 된다.
참고로 2번함인 휴우가의 함명은 현재 해상자위대 소속의 호위함인 휴우가급에 계승되었고 휴우가급 2번함에는 이세라는 함명이 붙여졌다. 그런데 이 녀석도 구축함이라 하기에도 항공모함이라 하기에도 뭔가 애매한 녀석이다. 자세한 건 해당 항목을 참고.

10. 매체에서의 등장


  • 네이비필드 일본트리에 등장한다. 전함버전이 1937로 등장하고 항공전함 버전이 1943으로 등장한다. 후자는 보통 변세(변태이세)라고 부른다. 이중 특히 변세는 플레이어에게 고레벨 수병이 있고 피지컬이 된다면 대단히 괴악하게 운용할 수 있는 만능 함선이었다. 분류가 항모 판정인데 8문으로 전함포를 날려대고 부포탑에서 산뢰를 쏟아내고 전투기를 뽑아서 적군의 시야를 밝히는 정찰기를 떨굴수 있었다. 물론 이 모든게 제한적인 조건이 다 맞아떨어져야 가능했지만... 2010년 이후 변세도 전함판정으로 변했다.
  • 전함소녀에서 자매가 모두 등장한다. 마치 건물을 짊어지고 있는 듯한 디자인의 장비가 눈에 띄는데 일러레의 자작설정에 의하면 자매가 신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엔가노 곶 전투에서 무사히 철퇴한 일화를 반영해서 자매 모두 적 함재기를 약화시키는 디버프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
  • 월드 오브 워쉽 블리츠에서 한정 이벤트로 얻을수있는 7티어 프리미엄 전함으로 등장한다. 전함 형태가아닌 개장후의 항공전함형태[13]로 등장하며 항공모함처럼 폭격기를 보낼수도있고 전함처럼 포를 쏘며 싸울수있다. 성능은 원본과 같이 애매한데 주포는 후소의 것을 가져와서 동티어 대비 약하고 집탄이 좋지 않아 전함으로써의 화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항공기의 경우 전투기, 뇌격기없이 3기 1편대의 폭격기 편대가 2개 존재하는데 딜량은 저 두 편대를 한 적군함에게 집중해야 다른 항공모함의 폭격기편대 하나의 딜량이 나오며 화재율도 낮다. 이는 항공모함이 없는게임에서 한 팀에만 이세가 있다면 그팀이 일방적으로 항공기를 이용한 원거리 스팟및 공격지원을 받을수있어 적절히 너프시킨 것이긴 하나, 이 때문에 이세 자체가 애매한 군함이 되었다.[14] 외관은 특이하게 생겨서 이쁘다는 평
  • 워쉽 플릿 커맨드에서 이세가 3등급의 전함으로 등장한다. 14인치 연장포를 6개나 달고 있어 높은 화력을 보여준다. 일본 전함답게 빠른 속도를 자랑한다.
  • 워 썬더에서 "Hot Tracks" 업데이트로 등장했다. 게임상의 유일한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이다.

[1] http://www.j-ships.com/JSIseClass.html[2] 2번함 오클라호마의 운명을 생각하면......[3] R급이라고도 불리는데 행보 보면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로 안습하다. 참고로 2번함 로열 소버린이 소련에 랜드리스되어 소련에서는 아르항겔스크급이라고 부른다.[4] 자매함인 애리조나는 1941년 진주만 공습에서 아카기소류에서 출격한 D3A 발과 B5N 케이트의 폭탄으로 인한 주포탑 유폭으로 격침된다. 주포탑에 적의 폭탄 한 발 맞으면 '''격침당하는 건 순식간이다.''' 그러나 이건 떨어진 폭탄이 16인치 철갑탄을 개조한 물건이었다는 점은 감안하고 볼 문제다. 일반적으로 주포탑의 장갑은 전함의 모든 부위를 통틀어 가장 두껍기 때문에 경량 폭탄으로는 유의미한 타격을 주기 어렵다.[5] 듣고보면 틀린 말까지는 아니지만 일본에서만 사용한 말이다.[6] --진공이라면 45도 각도로 발사하는게 가장 멀리 날아가지만, 대기 중에서는 항력(drag)의 존재로 인해서 포탄이 약간 뜨는 경향이 있어서 42~43도가 적정선이다. 45도보다 약간 낮게 쏴야 멀리 날아가는 이유는 공기저항때문에 탄이 날아갈수록 낙각이 커지기때문이다. 기온, 기압, 습도에 의한 차이도 있다.[7] [image][8] 이놈은 최고속도가 제로전투기 21형을 넘는 550km/h다. 그런데 비행갑판 길이는 고작 60m이므로 착함 불가능이다.[9] 이런 방식은 영국이 독일군의 U보트에 시달릴 때 시도된 적이 있지만, 조종사의 희생을 크게 하는 얼빠진 방식이므로 호위항공모함이 나온 후에는 사장되었다.[10] 물론 항모와 함께 작전중일 경우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미귀환기가 발생했을 항모에 착함한다는 선택지도 있을 법 하지만 항모간 항공대 이동도 극도로 꺼렸던 일본 해군이 그렇게 했을지는 의문.[11] 엔진 트러블로 인해 D4Y3을 만들어야 했다. D4Y1과 D4Y2가 재고가 많았지만 수냉식답게 정비가 어렵고 손이 많이 갔다.[12] 이 때 이세는 좌회전만 계속했고, 휴가는 우회전만 계속해서 심리적인 효과도 있었다.[13] 클래스는 전함이라 항공모함이 없는 판에도 항공지원이 가능하다. [14] 유저들은 주포탑 4개짜리 후소라 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