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무

 


'''이름'''
임채무(林采茂)
'''출생'''
1949년 9월 2일 (75세)
전라남도 함평군 손불면
'''신체'''
172cm
'''병역'''
[image] '''대한민국 해병대''' 병장 만기전역 (228기)
'''가족'''
성우 박인숙 (1956년~2015년), 아들 임여문,딸 임고운
'''학력'''
서라벌고등학교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 학사[1]
'''데뷔'''
1973년 MBC 6기 공채 탤런트
'''경력'''
2012.04 한국폴리텍4대학 청주캠퍼스 홍보대사
'''종교'''
개신교
'''소속사'''
스타휴엔터테인먼트
1. 개요
2. 생애
3. 주요 출연작
3.1. 드라마
3.2. 영화
4. CF
5. 음반
6. 수상 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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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배우이며, 두리랜드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후자를 통해 마음부족함 없이 하고싶은 일을 하고 있는 삶을 살고 있다.

2. 생애


원래는 해병대 제대 후[2] 70년대 중반 데뷔하여 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드라마(주로 MBC)에서 선 굵은 배역을 자주 맡은 연기파 배우로 중장년층에게 알려져 있다. 70년대 중반까지 TV 드라마계의 남자배우 투톱이던 노주현[3], 한진희의 미남역할 주인공 독점을 임채무가 이어받아 80년대에는 그의 전성기을 맞이하며, 본인만의 자리를 차지하며 영역을 늘렸었다.[4] 맡은 역할 이미지가 젠틀맨 이미지로 겹치면서도 각자 조금은 다른데, 노주현은 잘생기고 부드러워보이는 신사지만 때로 터프하고 호쾌한 이미지, 한진희는 큰키의 훤칠하고 부드러운 멋쟁이 꽃미남 이미지, 임채무는 중후하고 우수에 찬 남성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셋 다 외모도 시대상과 어울리지만, '''중후한 목소리'''가 애정 연기와 잘 어울려, 여성 시청자에게 엄청 인기를 끌었다.
수많은 미녀스타들이나 인기 배우들과 연기했으나, 그들보다 임채무의 인기가 더 많았다. 꽃미남과는 아니지만 멜로 드라마에서의 중후한 표정 및 목소리 연기, 그로 인한 이미지 때문에 20대 후반부터 40대 후반까지 폭넓은 여성시청자의 인기를 차지했다. 말하자면 '''80년대의 레전드급 임팩트 배우 중 하나'''.[5] 70년대 후반까지 즉, 언론 통폐합 이전에는 TV 드라마는 TBC가 KBS,MBC에 비해서 압도적이었는데, 그 TBC의 간판 남주 투톱이 노주현, 한진희였으며, KBS에는 서인석, 이영하, MBC에는 이정길, 박근형의 투톱시대였다.[6] 당시 드라마, 예능에서는 워낙 민방 TBC의 위상이 높았기 때문에[7] 아직까지 대중들에게 70년대 최고스타는 노주현, 한진희 라는 공식이 통용되는 것. 군 제대 후 늦깍이로 얼굴을 알렸던 임채무는 80년대 컬러TV시대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스타덤에 오르기 시작했으며. MBC에서 이전 선배들 이정길, 박근형의 바통을 이어받아, 84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당대 최고 인기작가 김수현의 '''사랑과 진실'''[8]의 주연을 맡는 등 MBC 드라마 최고 스타의 자리에 오른다. 단, 거의 30대에 인기를 얻었기 때문에 위에 서술한 다른 배우들보다 주연배우로서의 전성기가 길지는 못했다. 그리고 드라마가 아닌 영화쪽 커리어 면에서도 노주현, 한진희는 물론 이영하, 박근형에 비해서도 좀 많이 밀린다.[9] 다만 80년대는 한국 영화에 대한 대중들의 주목도가 드라마보다 높지 않던 시절이고, 80년대 민영방송도 TBC는 사라지고, SBS는 생기기 이전으로 MBC가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드라마 왕국으로 불리던 시절로서, 김수현 작가의 작품도 90년대는 가족 드라마인데 비해 80년대에는 정통 멜로드라마로 필력이 정점인 시기의 작품에 출연했기 때문에 임팩트가 강했다. 예능에서 구수한 입담을 푸는 지금의 모습으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채시라와 멜로 연기를 한 작품도 있다. 당시 가십지에서 키스신을 어떻게 찍었는지 자세히 써낸 기사도 있을 정도. 입술에 테이프를 붙이고 찍었다고.. 최근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듯.
아내는 박인숙 성우.[10]
해병대 228기로 군 복무를 했으며, 진짜사나이 해병대편의 나레이션을 맡았다. 황금어장 출연 당시, 본인의 해병대 생활에 대해 스스로 방송에서 진술한 바에 따르면, 지금과 비교도 안 되게 똥군기가 심하던 시절이라 그런지 선임한테 그렇게 많이 맞았다고 하는데, 하루는 가장 자신을 지독하게 괴롭히던 선임이 휴가를 가게 되자 복수하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전날밤 해병대 전통대로 본인이 선임 군복을 빨고 각잡는 다림질을 할때, 일부러 군복 바지의 엉덩이 부분이 얇아지도록 미리 준비한 돌로 몰래 그 부분을 열심히 갈았다고 한다. 다음날, 선임이 부대에서 나가 가까운 버스터미널에서 고향가는 버스에 타고 자리에 앉자마자 '''빡''' 소리와 함께 엉덩이 부분이 완전히 터졌고 결국 민간인들 많은 곳에서 개망신을 당하게 되었다고는 하는데, 분노에 가득차 씩씩대며 바지를 갈아입기 위해 부대로 돌아온 선임한테 평소보다 더 죽도록 맞았다고 한다. 맞는 중에도 임채무 본인은 복수에 성공한 게 좋았다고...

젊은 세대에게 알려진 대표작(?)은 2006년 초 돼지바 광고. 싱크로 높은 모레노 심판[11] 코스프레로 인터넷 스타로 떠올랐으며, 이를 계기로 그해 중순부터 MBC 예능 프로그램인 황금어장의 원년 멤버로 출연하며 예능에 잠시 몸을 담기도 했다.
사실 그리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그보다 이전인 90년대에도 종종 심야 예능[12] 프로그램에 나와서 꽁트연기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당시 나름 유명했던 건 KBS 꽁트에서 카바레 사장님 역할로 나와, 당시 쓰던 닉네임 '채무림'[13]으로 불리며 개그우먼 김지선 같은 코미디언들과 함께 연기했던 것이다.
소녀시대 효연전현무를 실수로 임채무라고 불렀다고 한다.
노래도 잘 해서 2016년 6월 14일 현재 무려 13장의 음반을 발매했다고 한다.[14] 임채무가 부른 MBC 주말연속극 '사랑과 진실'의 주제곡 '사랑했던 순간'[15]은 1984년 발표된 곡임에도 아직도 부르는 사람들이 꽤 있다. 2015년 '''천생 연분'''이라는 노래를 발표했었다.

3. 주요 출연작



3.1. 드라마



3.2. 영화



4. CF


연도
회사
제품
기타
1984
농심
심순애

1984
농심
안성탕면

2006
롯데푸드
돼지바
2002년 한일 월드컵 모레노 심판 역
2016
롯데렌터
롯데렌터카
차사장 역
2017
광주 남문장례식장
광주 남문장례식장

2018
현대자동차그룹
기프트카
임진각 평화랜드에서 촬영됨. [17]

5. 음반


연도
음반
2015
천생 연분

6. 수상 내역


'''수상 연도'''
'''시상식'''
'''부문'''
'''작품'''
1984년
MBC 연기대상
남자 우수상
사랑과 진실
1985년
남자 최우수상
사랑과 진실, 아빠 우리 아빠
1995년
한국연예협회선정 선행연예인 문화체육부장관 표창장
2001년
한국연예협회선정 선행연예인 국무총리 표창장
2004년
한국연예협회선정 선행연예인 대통령 표창장
2006년
대한민국 광고대상 모델상
2006년
MBC 방송연예대상
특별상
황금어장
2007년
SBS 연기대상
연속극부문 남자 연기상
황금신부
2010년
MBC 연기대상
중견배우 부문 황금연기상
살맛 납니다

7. 두리랜드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두리랜드라는 테마파크를 운영 중이나 빚이 수백억 원이다. 두리랜드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정말로 대인배. 놀이공원 사장님이 되고 싶었다는 그의 어릴 적 꿈으로 시작한 사업이었다고 하는데 수년간 계속 적자임에도 포기하지 않고 운영하고 있으며, 연기 스케줄이 없을때면 항상 두리랜드에서 놀이기구 방송을 하거나, 팬들에게 사진을 찍어주고 사인을 해 주는 일을 지속한다고 한다.[18] 놀이기구 임대업자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기도 하였으나 1심은 원고패소, 2심은 원고의 항소 기각으로 끝났다고 한다.[19]
[1] 영화배우 이영하와 68학번 동기이다.[2] 기수는 228기였다.[3] 60년대 후반까지는 미남 주인공 역할은 노주현 원탑이었다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군대를 갔다 올 때쯤에 한진희가 등장하고 원톱의 자리는 내려놓게 된다.[4] 물론 그들보다 선배였던 노주현은 "아무리 한진희, 임채무 걔네가 잘 나갔어도 나한테는 안 됐지"라고 방송에서 너스레를 떤 적도 있으나, 그도 사실 그들의 커리어를 인정해온 편이다.[5] 물론 먼저 그 자리를 차지했던 노주현, 한진희에 비하면 당대에도 커리어가 살짝은 밀리는 감이 있지만, 최소한 당대 다른 남자배우들은 압도할만한 인기와 경력을 쌓았다.[6] 당시에는 방송사별로 전속 탤런트제도가 있었다.[7] 그 TBC 드라마의 위엄이랄 수 있는 것이 흔히 7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로 꼽히는 정윤희, 장미희, 유지인 3인은 영화와 드라마 양쪽 모두에서 스타였지만, 드라마의 경우 3명 모두 TBC에서만 활동했다. 영화가 아닌 드라마 여자 탤런트 경우 KBS의 한혜숙, MBC의 김자옥, 김영애가 51년생 동갑내기로 70년대 브라운관의 트로이카로 불리기도 했다.[8] 대박난 드라마를 일컬어 '죽은 시체도 벌떡 일어나 텔레비젼 앞에 앉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 드라마로부터 시작되었다.[9] 이영하만 해도 KBS 커리어보다 영화쪽 주연 커리어가 화려하다. 오히려 70년대 후반 영화쪽에서 떠서 KBS도 특채로 들어간다.[10] 2015년 사별[11]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이탈리아전의 그 심판 맞다.[12] 물론 그때는 예능이라고 안 부르고 오락프로그램이라고 불렀지만..[13] 임채무를 미국식으로 성과 이름을 바꿔 부르고, 임을 림이라고 한 것이다.[14] 당시 80년대에 낸 앨범들은 반응이 굉장히 좋아서 주변에서 음반으로 큰 돈을 벌었을 거라 생각하는데, 음반사 사장은 앨범 덕에 빚을 다 청산했지만, 정작 임채무 본인은 술 한잔 얻어 먹고 말았다고 한다.[15] 원래 곡 제목은 '사랑했던 순간'인데, 드라마 제목인 '사랑과 진실'로 아는 경우가 많다[16] 이건희 회장을 모델로 한다. 배우 본인의 연구로 특유과 표정과 불편한 거동을 재현해 내어 호평을 받았다.[17] CF에서 나온 범퍼카의 모형이나 주변 지형을 봤을때 평화랜드라고 유추가 가능하다.[18] 관련기사 [19]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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