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전투비행단
강하고! 활기차게!
'''제18전투비행단가'''
(1절)
동해의 붉은태양 솟아오르고
창공의 기수들이 세운 터전에
오늘도 솟구친다 태극의 은익
겨레위해 바친 몸 승리의 투지
날으라 하늘 높이 적진을 향해
우리의 강릉기지 승리의 비행단
(2절)
장엄한 대관령에 정기를 받아
영공의 용사들이 지켜온 전통
오늘도 날개친다 무적의 용사
젊음의 끓는피로 뭉쳐진 비행단
보아라 무쇠같은 힘이 솟는다
우리의 강릉기지 승리의 비행단
1. 개요
강원도 강릉시에 위치해 있는 대한민국 공군의 전투비행단. 원래 강릉공항과 함께 하던 곳이였으나 승객감소와 신공항 건설로 강릉공항은 폐쇄하고 전투비행단만이 비행장을 쓰고 있다. 죽변 비상활주로를 이 비행단에서 관리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이 처음 군공항으로 만들었고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9월 28일, 공군 첫 전투비행부대로 창설.
별칭은 '''동성대'''.
6.25 전쟁 중 F-51 무스탕 전투기로 최초의 단독 출격 작전을 완수하고 승호리 철교폭파 작전, 평양 대폭격 작전 등 8500여 회의 빛나는 전과를 올렸으며 전투기 조종사들의 상징이 된 빨간마후라의 고향으로 불린다. 유서 깊은 곳이라 그런지 신념의 조인 노즈아트기가 부대 정문 들어서면서부터 입장하는 사람들을 반기고 있고, 역대 기지에서 운용되었던 기체들도 부대 내에서 전시중이다.
2. 부대연혁[출처]
- 1951년 9월 28일 제1전투비행단 예하 제10전투비행전대 전개(경남 사천→강릉)
- 1951년 10월 11일 대한민국 공군 단독 출격 개시
- 1953년 2월 15일 제10전투비행단 승격
- 1954년 10월 26일 제10전투비행단 수원 이동, 기지경비 위한 강릉기지대 주둔
- 1967년 ~ 1974년 제18전투비행단 창설 위한 비행장 확장 건설(동진계획)
- 1977년 6월 1일 제18전투비행단 창설
- 1986년 8월 25일 제1전투비행단 예하 제105전투비행대대, 제18전투비행단으로 예속
- 1987년 4월 28일 제1전투비행단 예하 제112전투비행대대, 제18전투비행단으로 예속
- 1994년 8월 10일 제16전투비행단 예하 제205전투비행대대, 제18전투비행단으로 예속
- 2013년 8월 6일 제205전투비행대대 13만 시간 무사고 기록 수립(35년 11개월)
- 2015년 11월 30일 제205전투비행대대 해체
- 2019년 10월 10일 제112전투비행대대 7만 시간 무사고 기록 수립(22년 11개월)
3. 예하 부서
- 항공작전전대
- 운항관제대
- 기상대대
- 제105전투비행대대
- 제112전투비행대대
- 항공정비전대
- 항공기정비대대
- 부품정비대대
- 장비정비대대
- 기지방호전대
- 군사경찰대대
- 공병대대
- 대공방어대
- 화생방지원대
- 작전지원전대
- 정보통신대대
- 수송대대
- 복지대대
- 보급대대
- 항공의무대대
3.1. 비행대대 소개
북한과 가까운 지리적 특성 때문에 2개 대대 모두 스크램블 출격 시간이 제일 빠른 F-5 기종을 운용중이다. 미국에서 직도입한 F-5E/F와 대한항공에서 라이센스 생산한 KF-5E/F를 같이 운용 중인데[1] 미국에서 직도입한 기체의 비율이 횔씬 높다.
2015년부로 205대대가 해편되어 TO가 줄어들었고[2] 병사/부사관들이 다른 곳으로 보직이동을 많이 하게 되었다.
해당 대대 해편 후 105대대와 112대대만 운영되고 있다.[3]
다른 비행단의 F-5는 비행대대 마크를 동체 왼쪽 쌍두호랑이에 도색해놓은 반면, 18비 소속 기체들은 수직미익에 비행대대 마크를 큼지막하게 도색했으며 정작 부대 마크는 도색하지 않았다는 것이 특징이다.
4. 부대마크설명
5. 파입부대
2여단 예하 5xx포대 및 국군지휘통신사령부 예하 통신반. 공군군수사령부 예하 수송지원반, 군사안보지원부대가 있다.
6. 복무환경
6.1. 작고 아담한(?) 공군기지
한국전쟁 중에 탄생한 기지라는 역사가 있어서인지 다른 기지보다 활주로나 규모가 상당히 작다. 20비에 비하면 엄청나게 큰 장점이다!
6.2. 교통지옥에서 천상계로
특기학교에서 이곳을 1지망으로 쓰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십중팔구 1. 집이 영동지방이거나 2. 애초에 자기집 근처 꿀부대 못 갈 성적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막상 와보면 모두들 그럭저럭 잘 지내는 걸 보면 역시 군대는 위치가 아니라 특기, 그리고 선임과 간부의 성향이 중요하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물론 18비 와서 생활은 만족하는 사람이어도 '''휴가 나갈 때마다 현자타임이 오겠지만...'''
단 강릉에 KTX가 개통된 뒤로는 옛 이야기. 실제로 1, 2지망 병사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일부 서울 지역은 17비보다 서울에 더 빨리 갈 수 있다! 18년 기준 일요일 제외 매일 출영자/귀영자 버스가 강릉역과 강릉고속버스터미널 및 옆에 붙어 있는 강릉시외버스터미널에서 휴가자/귀영자를 지원한다.
다만 서울 사는 사람들에게나 엄청난 이득이지, 경기권에 살면 얘기가 좀 달라지는데 예를들어 성남이나 용인에 사는 사람이면 성남터미널 (야탑역) 혹은 용인터미널로 고속버스를 타고 가는게 차라리 낫다. 청량리역에서 분당선 한참 타고 가느니 그냥 버스가 속 편하기 때문. 집이 평택시, 오산시라면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젠 청량리<->천안 급행전철이 뚫렸다.''' 이들은 차라리 19비나 17비를 가는게 낫다.
물론 집이 영동지방이 아닌 이상 여길 1지망으로 쓰는 병사는 대부분 TO가 괴랄하게 떠서 집 근처 못가는 수도권 장병들인 경우. 간혹 일부러 집에서 멀리 가고 싶다고(...) 쓰는 사람들도 있는데 실제 사례로 부산[4] 에서 온 사람도 있으며 더 극단적인 사례로 집이 '''해남'''인 사람도 실제로 있다!!! 이 병사들의 애환을 인식하였는지 모 단장 시절 신청 시 오후에 있는 대구 및 김해 방면 정기공수를 병사 휴가지원에 활용할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단 기상 악화로 공수 취소시 탈 수 없다.
6.3. 생활, 복지시설 등
작은 공군기지이고 일제강점기 시절 지어진 기지이다 보니 타 비행단에 비해 복지지설이 적다. 전국에 있는 모든 공군 비행단들을 통틀어서 가장 규모가 작은만큼 편의시설 또한 육군부대에 비하면야 당연히 좋은 편이긴 하나, 타 공군 비행단에 비해서는 상당히 열악하고, 안습한 것이 현실. 생활관의 시설은 준수한 편. 부대 인원 자체가 많지 않아서 그런 듯 하다. 물론 작은 게 큰 것보단 낫다.
큰 지역은 일출관과 동진관 구역이며 기지 곳곳에 산재생활관이 있다.
일출관 구역의 병사식당 옆에는 생활관이 있으며 앞에 컨테이너에 헬스장 및 노래방이 마련되어 있다. 병사 부대시설로는 B.X,와 같은 건물에 도서관 및 양품점, 군장점이 있다. 주말에는 간부식당,치킨집[5] 도 이용할 수 있다. 비행단인만큼 교회, 법당, 성당이 모두 영내에 존재하며 수요 저녁 및 일요일 종교참석을 위한 버스가 별도 운행한다. 또한 관사 지역 내 체육관에서 당구, 다트, 라켓볼, 배드민턴, 탁구, 헬스 등을 할 수 있다. 동진관 근처에는 간이 B.X와 일출관 구역 하위호환 노래방, 헬스장이 존재한다.
바다를 접하고 있으며 여름엔 해안을 개방해서 장병들이 '''해수욕을 즐기게끔 한다.''' 그리고 병사 중에서 해수욕 안전요원을 차출하고 위로휴가를 준다. 여기에 뽑히게 되면 6전대에 파견가서 안전요원 교육을 받고 오는데 여름 내내 원래 사무실이 아닌 이곳으로 출근하게 된다. 해파리도 잡는데 해파리가 뜨면 이용 전면중단에 안전요원 전원 출동해서 해파리를 잡는데 기본 열댓마리씩은 잡힌다.
그러나 앞서 서술한 편의 시설 즉, 체력 단련 시설, 오락시설, 병사와 간부식당을 제외한 음식물을 판매하는 시설등은 타 비행단에 비해서는 그리 좋지 못한 편이다. 17비를 예로 들면 면회객들은 물론 장병들도 이용할 수 있는 편의시설에 배스킨라빈스, 던킨도너츠와 실내수영장이 존재한다. 심지어 맘스터치가 있는 부대도 있다!
특히나 장병들의 의류에 오바로크를 부착해 주는 군장점의 운영은 모든 장병들이 매우 저평가하고 있다. 오바로크 자체가 사실 직접 바느질해서 부착을 할 수 있음에도 군장점을 이용하는 이유가 직접하기 귀찮기도 하고 예쁘게 잘 부착돼서 그런 것인데 군장점은 그걸 재봉틀을 써서 해주는 주제에 가성비가 말이 안나오는 수준이다. 그래서 약복 계급장 같은 경우는 손바로크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전역이 다가와서 전역복을 맞추어야 할 말년들의 경우는 다른 치장용 마크나 계급장등을 오바로크하는 것 외에 그냥 기본적으로 계급장, 이름표, 특기마크, 예비군 마크, 공군마크만 고정부착하고, 거기에 예비군모자까지 더하면 2만 5천원이 훌쩍 넘어가는 말이 안나오는 수준이다. 거기에 그냥 예비군 마크만 붙인 전역모가 아닌, 이것저것 옵션을 붙인[6] 경우는 5만원대로 훌쩍 뛴다. 돈 아깝다고 예비군 마크 하나만 오바로크 치고 나머지는 찍찍이 그대로 나가기도 한다.
7. 기후
강릉의 기후는 매우 변화무쌍하다. 어떨땐 대구보다 더운 여름도 있고 어떨땐 광주, 사천보다 따뜻한 겨울도 있다.
7.1. 겨울
'''의외로 눈은 별로 오지 않는다!'''
흔히 강릉하면 "거기 춥고 눈 많이 오는 동네잖아요! 안가요 안가!" 하는 경우가 많은데, 천만의 말씀이다. 강릉 18비는 중부 지방 비행단 중 겨울에 가장 따뜻한 비행단이다. 남쪽지방의 사천, 광주와 겨울 기온이 비슷하다
2014년 폭설의 임팩트가 너무 강해 강릉=눈 많이 옴=제설지옥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절대다수겠지만, 사실 2014년 이후로 제대로 된 눈이 온 적은 적다. 왜냐하면 대관령이 구름을 막기 때문에 영서지방보다 눈이 적게 오기 때문이다.[7] 때문에 눈이 와도 저 멀리 보이는 대관령은 눈이 소복히 쌓였는데, 정작 비행단 안에는 눈 씻고 찾아봐도 눈이 안보이는 기현상이 자주 일어난다.
기온은 해안가이기 때문에 온화한 편이다. 기온은 내륙 지방인 원주 8비가 겨울에 훨씬 춥고, 언덕과 산에 둘러싸여 있어서[8] 여름에는 제초지옥[9] 과 더위지옥으로도 변한다. 여름엔 강릉이 더 시원하고[10] , 겨울엔 강릉이 더 따뜻하다고 보면 된다. 둘의 기온이 비슷한 날은 있어도 강릉이 더 추운 날은 5월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 5월은 왜냐고? 강릉은 이상하게도 4월보다 5월 초가 더 기온이 낮다.
진짜 눈지옥은 20비다. 20비와 18비의 강설 유형은 확연히 다른데, 18비는 한번 내리면 대박인데 비해[11] 눈이 자주 오지는 않지만, 20비는 정반대로 많이 오지는 않는데 '''자주''' 내린다. 심할 때는 열흘 가까이 새벽만 되면 눈이 온다. 그래서 기상 특기들은 겨울이 되면 전국의 기상 상황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모니터를 볼 때마다 강릉과 서산, 군산에 있는 동기들을 불쌍하게 여긴다.
제설 작업의 경우에는 대한민국 공군에만 존재하는 초강력 제설장비가 있긴 하지만 이건 라인 지역에서만 사용가능 하니 나머지는 병사 몫이다. 추가로 활주로 얼음 깨는 기동제설을 하게 된다면... 게다가 제설장비가 눈을 옆으로 퍼뜨려서 어차피 그것도 다 치워야 하고.
1990년 2월 1.3m 최고 적설
2014년 2월에는 강릉에 100cm가 넘는 폭설이 왔다. 심지어 건물도 다섯 채나 무너져 내렸다! 이 당시 아침식사 후~자기 전까지 병, 부사관, 장교, 군무원 할것 없이 제설에 동참했고[12] , 시설대대의 로더 운전병이나 제설본부 간부들은 밤에도 자는 시간 쪼개가면서 활주로 제설을 했고,[13] 보급대대에서는 부러진 눈삽 수백 개를 교체해 줬다는ㅡ 일화가 있다.
이 제설작전 때 겨울왕국이 한창 뜰 때여서 Let it go 와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과 각종 노래를 기지방송으로 틀어주었다. 또한 사기진작용으로 복지대대에서 어묵국과 주전부리를 제공하였으며, 대대 혹은 중대에 따라 고생하는 장병들을 위해 막걸리를 나눠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강릉의 제설이 힘든 이유는 바다와 매우 근접해 있어 습한 눈이 온다. 이 말은즉슨 쌓이는 속도가 굉장히 빨라 눈이 오는 즉시 치워야 한다는 것이며 눈이 올 때부터 그칠 때까지 치워야 하기 때문이다.그래서 땅 뿐 아니라 건물의 처마 등에 쌓인 눈도 계속 치워줘야 한다.
강릉의 눈은 늦겨울에 많이 온다. 1월 말~3월 초 사이가 집중 제설기간이다.
하지만 지구온난화가 심해진건지, 17년에 18비를 전역한 사람 말을 들어보면, 최근 몇년간 겨울에는 눈이 위의 글 정도로는 많이 오지는 않았다고 한다. 특히 17년 말~18년 초에는 눈이 거의 안와서 '''강원도 부대인데도 제설을 안했다!!!'''
18년 말~19년 초에는 눈이 좀 왔지만 대부분 SE-88로 해결되고 직접 눈삽 들고 나간 일은 2~3번 뿐이었다.
7.2. 여름
매년 극과 극을 달린다.
2018년 폭염 때 타 비행단은 37도, 38도를 웃돌 때 이곳은 33도 정도를 찍었다. 사실 바닷가라 습도가 높아서 어차피 덥긴 매한가지지만... 다만 최저기온이 31도에 달하는 초열대야가 발생한 적은 있지만 어차피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놓고 자기에 열대야 때문에 잠 설친 사람은 없다.
반면 2019년에는 대구와 비등할 정도로 높은 기온을 기록했지만 2018년에 비해 폭염 기간은 훨씬 짧았다.
또한 18비만의 강점이 있다. 면적이 좁아서 제초 면적도 좁다. [14]
라인 지역 수초는 2018년을 마지막으로 하지 않는다. 물론 2020년 여름에 부활할 가능성은 있다...[15]
8. 동원 훈련
서울특별시, 경기도 및 강원도 지역 예비역들이 주로 가게 되는데,[16] 강릉이라는 위치로 인해 대부분의 18비 동원훈련 대상자들은 절망한다. 강원도 교통의 최종병기 '''강릉선 KTX'''[17] 개통 이후에는 가는 데 문제가 없지만 개통 이전에는...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입소날엔 강릉시외버스터미널, 강릉역에서 동원병력 수송버스를 운행하며, 서울특별시, 경기도 거주자들이 많다보니 퇴소날엔 동서울터미널로 바로 가는 버스를 준비해 놓는다. 이 덕에 기존 시간보다 3~40분 정도 더 빠르게 도착할 수 있다. 단, 현금으로 버스비를 받으니 부대 바깥 ATM에서 미리 돈을 뽑고 올 것을 권한다.
숙소는 대공방어대 뒷편 호국관으로 총 3층의 건물이고, 2층엔 전자레인지도 있고 1층 화장실에는 비데도 있다. 외관부터 지은 지 얼마 안된 게 바로 느껴지고 내부 역시 깨끗하며 방은 8인 정원으로 일반 병 생활관보다 살짝 크다.[18] 군필이라면 누구나 왜 깨끗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현역 차출 청소 사역이다. 하지만 퇴소식 직전에 예비역들이 청소를 해야 한다.
3일 간의 프로그램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빡빡하다.[19] 일과를 마무리할 즈음인 저녁 식사 후엔 자연스럽게 숙소 앞에 있는 족구장에서 예비역 VS 현역 훈육관의 족구 경기가 펼쳐지기도 했다.
동원훈련을 하면 호국관 건너편의 병사식당에서 밥을 먹게 되는데, 밥이 맛있다. 기수 잘 걸리면 닭튀김, 전복삼계탕(전복은 복불복으로 자율 배식 이거나 정량 배식일 수 있다.), 스파게티, 불고기 등이 나오는 환상적인 식사를 할 수도 있다. 심지어 2019년에는 햄치즈버거에 계란프라이가 들어간 메뉴가 나왔다! 단, 동진복지타운 1층 BX는 간이BX라 물건이 빨리 떨어지니 유의할 것. 그래서 예비군 훈련기간엔 동진BX뿐 아니라 통생지역(정식 명칭은 동성회관이다) BX에도 예비군이 많이 보인다.
9. 사건사고
9.1. 전투기 추락 사고
9.1.1. F-5 동해 추락 사고
1996년 11월 105대대 소속 F-5 전투기가 야간비행 귀환중 동해 앞바다에 추락하여 조종사인 문상학 대위가 순직한 사고. 주변 해군부대와 연계한 수색작전이 벌어졌으나 기름띠만 찾았을 뿐 조종사와 기체 모두 인양하지 못하였다. 문상학 대위는 소령으로 추서되었고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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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2. F-5 선자령 추락 사고
2010년 3월 2일 105대대 소속의 F-5 전투기 2대가 공중 전투 기동훈련 중 강원 평창군 선자령 정상에서 추락해 105전투비행대대 대대장 외 2명이 순직한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원인은 당시 안 좋았던 기상상황이 꼽히고 있다.#
9.1.3. F-5 동해 추락 사고
2010년 6월 18일 금요일 105대대 소속의 F-5전투기가 훈련 종료후 기지 복귀 중 추락하여 105대대장 외 1명이 순직한 사고다. 주요 사고 원인은 역시 해무와 같은 기상상황이 꼽히고 있다. 또 함께 당시 비상탈출을 시도하였지만 모두 사망했다는 점에서 낙후된 F-5의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2010년 3월 2일의 사고 이후 재개된 훈련에서 다시 일어난 전투기 추락 사고로 105비행대대는 3달만에 대대장이 모두 사망하게 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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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자연재해
9.2.1. 태풍 루사 침수 사건
2002년 9월 초 한반도에 왔었던 태풍 루사로 인해서 기지가 물에 잠긴 적이 있었다.[20] 당시 기지 기상대에서 관측한 총 강우량이 무려 '''930mm'''를 넘었으니... 이 때 F-5 10여대를 제외하고 전부 피해를 입어 각지로 보내서 정비를 받아야 했고 기지 복구에 엄청난 시간과 인력이 소모되었다.[21]
이는 18전비 인력만으로는 도저히 복구할 엄두가 안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복구 초기 육군부대의 지원을 받기도 했고, 이후엔 거의 모든 공군 부대에서 인원을 차출하여 공수기로 실어 나른 다음, 체육관에서 재우며 복구작업에 투입하여 겨우 복구할 수 있었다. 당시 F-5 전투기 역시 침수되었기 때문에 타 부대 F-5 정비 특기 부사관들을 차출해 F-5를 모두 분해하여 오버홀 정비 후 조립하였다고 한다. 당시 사진을 보면 기지 내 모든 건물이 물에 잠겨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예전 행정 서류를 정리하던 중 유난히 물에 젖었다 마른 서류들을 점검해 보니 2002년 그쯤의 서류였다는 증언도 있다. 그리고 당시에 공군군수사령부 뿐만 아니라 각 비행단의 군수전대[22] 에 있는 모든 군용물품 재고들은 18비에 전해졌는데, 당시에 전역하던 병 기수들은 전역시 새 전투복이 아닌 기존 전투복에 예비군 마크를 달고 나와야 했다. 실제로 제1전투비행단의 부대동정 사진은 2002년 것까지도 안 지워지고 남아있는데 당시 단장이 친히 강릉으로 보낼 공수기 물품들을 점검하는 사진이 있다. 2019년 현재도 인트라넷에서 확인가능하다.
당시 태풍으로 강릉으로 연결되는 도로와 철도가 모두 유실된 상태라 수송기로 실전도 아닌데 저공비행으로 긴급물자를 투입하고 그 마져도 빨리 복구하기 위해서 인근에 군인이란 군인은 다모아서 활주로에 일렬로 서서 빗자루로 흙먼지를 다 쓸어내어 도로,철도보다 활주로를 먼저 살려 냈다.
당시 18비에 외곽펜스는 돌담벼락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정문에 있는 월호평동은 그로 인해 바다를 끼고 있는 18비 쪽으로 물이 안내려가 더 큰 피해를 입었다. 그 뒤로 전부 철조망 펜스로 바뀌었다.
이 사건의 영향이 얼마나 컸으면 현재도 폭우가 내리면 항공기가 서단으로 대피한다.[23]
9.2.2. 태풍 미탁 침수 사건
위의 루사때만큼 파급이 크지는 않았지만 이 태풍은 2019년 10월 2일, 18비를 제대로 때리고 갔다. 기지 내 하천들이 범람하고 곳곳이 침수되어 일부 생활관은 아예 식당에 가지 못해 전투식량이 배급되기도 하였다.
특히 라인 구역의 피해가 심각했는데 '''라인 안 전체가 발목높이 이상 물이 찼다.''' 심지어 운항관제대 앞에선 팔뚝만한 물고기가 헤엄치거나 죽어있는 것도 발견되었다. 그나마 물이 빠지는 속도는 빨라 이틀 안에 활주로는 복구되었다. 물론 라인 내 사무실과 이글루 안에는 온통 흙과 부유물 투성이. 소방차와 제독차, SE-88까지 동원하여 10월 4일경 그럭저럭 복구되었다. [24]
9.2.3. 태풍 하이선 침수 사건
위의 미탁 때와 비슷한 규모의 피해를 입었다. 기지 내 하천이 범람해 도로가 침수되었다
9.3. 군기 관련 등 인재
9.3.1. 구타, 가혹행위 은폐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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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말~ 2017년 4월까지 약 8개월간 대공방어대 간부가 소속 병사들에게 장기간에 걸쳐 반복적인 구타, 가혹행위, 성희롱, 갑질등을 벌였으며. 이에 피해병사들이 8개월동안 4차례에 걸쳐 신고를 하였으나 당시 비행단장이 이 사실을 보고 받았음에도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시키지 않고 가해자에게 주의조치만을 한 사건.
더욱 어이 없는 것은 이 주의 후 3개월의 유예기간을 준 뒤 또 다시 그 대공방어대 간부에게 가혹행위를 저지르면 처벌하겠다는 황당한 조치를 내려 2차 피해를 유발하였고, 심지어 부대 감찰부서에서는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병사들을 협박하여 가해자가 마음놓고 피해자들에게 보복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였다는 것이다.''' 심지어 당시 병사를 위해 철저히 업무를 집행했어야 했던 감찰과장은 책임을 지지 않았는지 2020년 현재 무사히 중령이 되어 있다.
이후 피해병사들은 부대에서 일이 처리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고 군인권센터에 피해 상담을 진행하였다. 심지어 이때까지도 피해자들은 가해자와 분리되지도 않고 계속 피해를 입으며 두려움속에 생활했었다. 자세한 사건의 경과는 군 인권센터 성명 및 보도자료에 자세히 나와있으니 참조바람
이후 2018년 들어 단장이 교체되었으며 2020년 들어 새로운 단장이 보임 하였다.
10. 출신 인물
11. 여담
부사관들이 전근 없이 오랫동안 근무한 사람들이 많다 보니 이곳에서 명예퇴직하는 사람도 많다. 다른 비행단에서 오는 중사 이상급의 사람들은 진급을 위해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기존의 사람들은 매우 꺼려한다. 반면 군무원의 경우 서로 탈출하려고 하는데, 그 이유는 굳이 인프라가 부족한 강릉시에 있을 이유가 없어서이다. 서산시 다음으로 강릉 비행단이 기피 지역이며, 기존에 있던 군무원들은 대부분 진급 또는 인사교류로 빠져나가며, 대신 타 비행단의 진급자(기존에 있는 군무원보다 급수가 한 단계 낮음)나 신입 9급이 그 자리를 채운다.
18비와 철조망 하나를 사이에 두고 23사단 예하 모 육군부대 주둔지가 위치해 있다. 시설이나 여건을 비교해 보자면 가히 남한과 북한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 어쨌건 인접해 있다는 인연 때문인지 육군 쪽이 18비로 종교행사를 오며,[26] 18비 BX와 식당에서 육군 장병들을 볼 수도 있고[27] 이하의 F-5 추락사고 때에도 23사단 측 장교들이 조문을 하러 오기도 했었다.
[출처] A B 월간공군 2020년 1월호[1] 항공기 앞이 까만색이면 미국 거, 흰색이면 제공호다.[2] 라인 특기 병사들이라면 활주로 너머 저 이글루들은 대체 왜 있나 궁금해한 경험이 있을텐데, 과거 205대대의 유물이다. 근데 아예 안쓰는 건 아니고 안쓰는 짐이나 항공기를 임시로 갖다두거나 타 부대(예컨대 블랙이글스) 비행기 등등이 필요시 임시 주박하기도 한다.[3] 205대대는 13만 시간 무사고 비행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4] 부산은 7번 국도 연선이라 그나마 낫다. 강릉터미널에서 4 ~ 6시간이면 부산에 도착하는데, 포항 경유 여부에 따라 차이가 난다.[5] 관사 단지에 있는데, 2018년 8월부로 영업을 종료했다가 2019년 1월 새로 입점했다.[6] 날개를 붙이기도 하고 중대원 이름들을 오바로크로 박아넣기도 한다. [7] 한반도 기후 특성상 눈구름은 북서쪽에서 몰려오지, 동해에서 몰려오지 않는다.[8] 원주 자체가 분지지형이다.[9] 실제로 8비는 여름에 언덕, 산 등을 제초하느라 병사들이 죽어난다. [10] 다만 해안가기에 습도는 높다.[11] 그마저도 요즘은 그렇게 제대로 내리지도 않고 수도권처럼 적당히 내린다. 물론 언제 다시 2014년의 대폭설이 재림할지 아무도 장담을 못해서 문제지...[12] 중간에 3m나 넘게 내린 눈에 오래된 무기고 건물 천장이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내리는 대참사가 발생했다.[13] SE-88 돌리면 끝이 아니라 그 이후의 잔설도 치워야 하고, SE-88이 못 들어가는 곳은 모두 사람이 직접 작업해야 한다.[14] 최근에는 외부사람들이 와서 제초한다[15] 19년에 라인수초 작업 했다. 죽은 물고기가 둥둥 떠다닌다[16] 강원도 지역 인원이 적다 보니 사실상 서울특별시, 경기도 지역 거주자들이 대다수이다. 원주의 8비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17] 특히, KTX 내에서는 와이파이도 빵빵하게 터지니 앱 업그레이드 미리 하고 갈 것을 권한다.[18] TV도 있긴 한데 공중파만 나와서 일과중 휴식시간이나 대기시간엔 TV 안 보고 자거나 책을 읽는다.[19] 다만 차수마다 운영하는 소속이 다르기 때문에 편차는 존재한다.[20] 당시에 상당히 심각한 재해 사고였다. 공군본부에서 각 비행단에 '''모든 연락수단을 동원해 18비에 있는 동료들에게 대피할 것을 전하라'''는 명령이 떨어질 정도였다. 루사 이전에는 부대벽이 지금의 철조망 형태가 아니라 돌담이었는데 그 돌담때문에 침수피해가 더 심해졌기 때문에 루사 이후 돌담을 허물고 지금의 철조망으로 된 것. 비행장 소음은 루사 이전보다 커졌지만 태풍 매미 때 침수가 확실히 덜해졌기에 인근 주민들도 어느 정도는 감내하는 분위기다.[21] 물이 제거되자 온 비행단을 각종 부유물 뿐만 아니라 진흙더미들이 뒤덮고 있는 형국이었다.[22] 당시엔 보급대대와 정비대대들을 합쳐 군수전대 소속으로 묶었지만 현재는 보급대대는 작전지원전대, 정비대대들은 항공정비전대로 갈라졌다.[23] 서쪽이 고지대, 동쪽이 저지대다. 생각해보면 당연한게, 부대가 동해 바닷가에 있다.[24] 참고로 이때 위로휴가는 소방차, 제독차 운용인력 등 극소수에게만 주어졌고 대다수 인원은 그냥 가점 몇점으로 퉁치고 입 싹 씻었다. 물론 당시 화지대와 소방중대가 위로휴가를 받을만큼 고생한거야 맞지만, 나머지 인원이라고 가점으로 퉁쳐도 되잖아? 라고 할만큼 고생을 안한 건 아니었다.[25] [image][26] 특히 가톨릭. 군종 신부는 수가 적어 육군 기준 사단급 이상에만 있기 때문에, 18비를 담당하는 군종신부가 강릉 일대의 몇몇 육군 부대를 돌아다니면서 미사를 집전한다. 이러한 부대들의 경우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큰 행사가 있을 때는 육군 버스를 이용하여 18비 성당으로 가서 미사를 치르고 그 곳에서 주는 밥이나 간식 등을 먹고 부대로 돌아오기도 한다.[27] 99% 강릉 통신소 소속 장병일 것이다. 23사단 병사는 올 일이 사실상 없다.바로 이웃부대인 23사단 ㅎㅅㄷ대대에도 이미 종교시설이 갖춰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