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앙

 

1. 조조의 장남
2. 조위의 장수
2.1. 미디어 믹스
3. 춘추시대 진나라의 인물


1. 조조의 장남



曹昻
(178년 이전 ~ 197년)
후한 말의 군벌인 조조의 장남으로 는 자수(子脩).
조조의 측실 유부인#s-2 소생으로 청하공주와 동복남매이다. 양모는 정부인.

1.1. 생애


생모 유부인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조조의 정실이었던 정부인이 대신 거두어 키운다. 정부인은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모자지간의 사이는 친어머니와 친아들처럼 매우 돈독했다. 정실이었던 정부인이 밀어주고 있었기 때문에 서장자에서 적장자가 되어 일찌감치 후계자로 낙점이 되었다.
연도는 알 수 없으나 20세에 효렴으로 천거되었다. 이후 197년에 조조는 자신의 세력권 바로 아래 지역인 완에 장제의 조카 장수가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사실에 불안감을 느껴, 대군을 이끌고 장수를 압박하여 결국 장수의 항복을 받아낸 후 그의 근거지인 완성에 무혈입성한다. 하지만 호색한인 조조가 장수의 삼촌 장제의 미망인을 데려와 품고 지내자 장수가 한을 품었는데 이를 보고 조조가 먼저 장수를 공격하려는 병크를 터트리고 이에 장수가 모사 가후의 책략을 받아들여 군기가 해이해진 조조군을 기습한다.
불의의 기습으로 조조는 오른팔에 화살을 맞고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렸는데 조앙이 아버지에게 말을 넘겨주고 자신은 뒤에 남았다가 목숨을 잃었다. 세어에 의하면 이미 부상을 입고 말을 탈 수 없게 된 상황에서 말을 바쳐 아버지를 살렸다고 한다. 이때 조조를 곁에서 호위하던 전위와 조조의 조카 조안민도 함께 목숨을 잃었다.
조앙은 아들이 없었으므로 이복동생인 번왕공 조균의 아들 조완이 양자로 들어가 후사를 이었다.

1.2. 사후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가 조앙과 조안민의 죽음보다 전위의 죽음을 더 애통해하는 모습을 보여 아들보다 훌륭한 장군의 죽음을 더 애석해하는 모습을 보이지만[1] 실제로는 조앙과 조안민의 죽음 또한 조조를 비롯한 조가에게는 '''평생에 씻지 못할 회한으로 남았다'''.[2] 위서에 의하면 몸져 누운채 임종을 기다리던 조조는 다른 일은 마음에 걸릴 것이 없지만 정씨의 일만은 후회된다며 죽어서 조앙을 볼 면목이 없다고 "만약에 사람이 죽어서 영혼이라는 것이 있어서, 내 아들 조앙이 '내 어머니는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해야할지 모르겠다"며 한탄했다고 한다.
조앙의 죽음으로 정부인은 조조를 떠나는데 자세한 내용은 정부인 문서 참조.
장수전에 주석으로 딸린 《위략》의 기록에 따르면, 장수가 조조에게 투항한 후 조비는 잔치를 열 때마다 장수를 초대해 '''"내 형을 죽여놓고 무슨 면목으로 나를 쳐다보는가?"'''하며 추궁했다. 이런 일이 수차례 반복되자 견디지 못한 장수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수전 본전에는 단순히 오환을 정벌하러 가다가 사망했다고 나오며 자살에 대한 언급은 없다. 자살이 아니더라도 심적으로 피폐해진 상황에서 원정에 나섰다 병을 얻어 사망했을 수도 있다.
장수의 아들 장천은 후일 위풍의 반란에 연루되어 조비에게 처형당했는데 위풍의 난은 기록이 워낙 부족해서 장천이 정말 반란에 가담했는지 여부를 알 수 없다, 그래서 상기한 위략의 기록과 연결지어 장수로는 부족해 그 아들까지 죽인 게 아닌가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펴는 사람도 있다. 그럴 듯 하기는 한게 조비가 쪼잔함과 사이코기질로 유명한데다가 형 조앙에 대한 애정을 꽤나 엿볼 수 있으니. 게다가 위략에서 조비가 장수를 괴롭히고도 제재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없으니 조조가 장수의 투항을 받아주고 관직까지 줬지만 실상은 그 역시 장수를 아니꼽게 여겨서 조비의 행동을 묵인했을 거다.
위 건국 후 조앙은 풍도왕(豊悼王)으로 추존되었으나, 뒷날 풍민왕(豊愍王)으로 시호가 변경되었다. 그래서 진수정사 삼국지에서 조앙의 열전 제목은 <풍민왕앙전>이다. 悼(슬퍼할, 애도할 도) 나 愍(딱할 민) 모두 애도와 동정의 의미를 내포한 시호다.[3]

1.3. 평가


국내에 삼국지가 연의 중심으로만 알려질 당시만 하더라도 전위에 가려져서 아버지를 위해 목숨을 버렸음에도 주목받지 못한 비운의 캐릭터 정도였다. 허나 이후 국내의 삼국지의 팬이 많아지고 인터넷 커뮤니티 등이 활발해지면서 여러 관련 자료를 접할 수 있게 되고, 인물에 대한 분석, 토론이 활기를 띄면서 재평가받고 있다.
특히 조비의 성격 크리가 부각되면서 만약 인간미가 넘치고 효심이 깊은 조앙이 살아남아서 아버지 조조 사후 조조의 뒤를 잇거나 조비가 아니라 조앙이 왕위에 올랐다면 한나라의 충신으로 남거나 선양을 받았어도 잘 다스리지 않았을까 하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곤 한다.[4]
무엇보다도 매력적인 포인트는 바로 조앙이 가진 큰 강점이 조위의 고질적인 약점이었던 '''후계자로서의 정통성'''이라는 점이다. 이 부족한 정통성 문제는 동생과의 경쟁을 거쳐 즉위 3년전에야 공인된 조비, 조비 사망 직전에야 태자로 책봉된 조예, 아예 출신이 불분명한 조방까지 조씨 모든 황제들이 공유하는 취약점이었다. 조모와 조환이야 사마씨가 꼭두각시 노릇 시키려고 옹립한 황제라 말할 것도 없다.
우선 이는 조조 사후 차기 후계자의 계승에서 어마어마한 안정성을 부여해주는데, 일단 실제로 일어난 후계 선정 과정을 살펴보면 '어차피 조비의 정통성이 강한 것도 아닌데 조식이 안 될 것도 없지 않느냐'가 조씨의 후계 문제의 시작점이었다. [5] 그런데 조앙이 요절하지 않았다면 이 문제는 애초부터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우선 장자라는 정통성이 있는데다가, 나이부터가 다른 아우들과 10살 이상 차이가 난다. 즉 조비, 조식, 조창 등이 세력 내에서 이제 좀 활동을 시작할 때 쯤이면 이미 조앙의 기반은 충분히 단단히 다져지고도 남을 시간이다. 게다가 조앙의 양모인 정씨가 그대로 정실부인 자리에 남아 있었을테니, 조비 이하 변씨의 자식들은 서자로 떨어지므로 정통성 측면에서도 비교가 안 된다. 때문에 조비 본인도 만약 조앙이 살아있었다면 당연히 (지금 자기가 앉아있는) 황제의 자리에 앉았을 것이라고 인정했다.[6] 이는 물론 어느정도 립서비스성 목적이 있겠지만, 실제로 현실이 그러하다. 조앙이 살아남아있었다면 조조가 정신이 훼까닥하거나 조앙이 말도 안 되는 실책을 저지르지 않는 이상 조조의 다른 자식들은 뒷공작은 할 수 있을지언정 후계자의 자리를 넘보는 행동을 공적으로는 감히 행할 수가 없게 된다.
보여주지 못한 능력에 의문부호가 붙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정통성이 확고하면 개인의 능력은 다음 문제이다. 당장 조비만 하더라도 조식이 술버릇으로 인한 행실 문제로 점수가 깎이면서 장자인 조비가 무난하게 뽑히게 되었는데 정작 그 조비도 행실 쪽으로는 영 좋지 않은 소리 듣는 양반이다. 결국 양쪽 다 인성 부분에서 점수 깎인 상황이고 능력적으로는 조식이 더 인정받음에도 불구하고 조비는 장자라는 명분 하나로 후계자에 오르게 된다. 이렇게, 정통성이 확실하기만 하다면 부족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후계자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조앙은 조조가 일개 지방군벌일 때 낙점된 후계자라 살아남기만 했다면 20년 넘게 후계자로 있으며 수업을 받고 공적을 쌓았을테니 권위와 기반이 무척 튼튼했을 것이고 이러한 튼튼한 기반은 실제 역사와 다르게 조조 사후 세력의 정치 안정성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조비는 제위 오르기 3년 전인 217년에야 장자라는 명분으로 후계자로 낙점받은 탓에 권위가 부족해 호족들에게 많은 양보를 해 환심을 사 지지를 얻어야 했고, 반대로 호족을 견제해 줄 만한 세력인 황족은 조비에게 있어서는 언제든지 지도자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경계 대상이었다. 때문에 황족을 먼저 견제하느라 결과적으로 호족으로부터 황실을 보위할 방어막을 얕게 만들었는데, 조앙이 조조의 뒤를 이었다면 그럴 필요성이 없어진다. 즉 아버지인 조조가 자신의 혈족인 조씨-하후씨 가문의 인재들을 신뢰하고 요직을 맡겨 세력을 안정적으로 꾸린 것 처럼, 조앙 또한 조비-조창-조식이 보여주었던 그 재능들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으며 혈족이 아닌 신하들에게는 많은 양보를 할 필요가 없게 된다. 결국 너무나도 확고한 지도자로써의 지위 덕에 조조세력의 뛰어난 인재풀을 그대로 활용하기 쉬워지게 된다.
능력적인 부분에서도 비록 조앙의 능력에 대한 기술은 없다지만, 조조의 2세들과 3세들의 대다수의 능력이 뛰어났음은 수도 없이 많이 알 수 있는데다가 조조가 초창기 군벌일 때부터 군에 종사한 점에서 조앙 또한 뛰어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의 능력은 갖추었을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으로 문인으로서의 재능만이 많이 알려진 조식이지만 그도 대국적인 측면에서 나라의 정세를 분석한 적이 있고, 그대로 맞아 떨어진 일화가 남겨져 있을 정도. 가깝지만 왕위에 정통성이 약한 왕족들을 나라의 인재로 잘 활용하여 성공한 경우는 월남 진 왕조진흥도, 고려의천 등 적지 않다.
정 조앙의 대국적 통찰 능력과 내부 정치 능력이 영 못미덥다면 손책이 손권에게 주유, 장소를 믿으라 당부하고, 유비가 유선에게 제갈량을 따르라 당부한 것처럼 믿을만한 보좌관을 미리 준비하면 될 일이다. 말하였듯 조앙이 살아만 있다면 실제 역사상 후계자 계승 작업은 수십년을 넘게 된다. 조조 입장에서 이 정도 준비는 그다지 어려울 것도 없다. 실제로도 조조는 자기 자식들에게 인재들을 붙여두었고 그들을 관리했었기 때문에 조앙이 살아만 있었다면 그에 걸맞는 보좌진 준비는 분명 했을 것이다. 당장 조식이 대국적으로 뛰어난 식견을 보여준 일화가 있고 전쟁에 있어서는 조창이 뛰어난 사령관이었으며 조앙이 살아있었다면 이들은 서자의 위치였을 것이니 조비와는 다르게 이들을 안심하고 쓸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인성적인 측면에서도 자기 아버지를 위해 목숨을 바친 모습을 보여준 만큼, 적어도 조비보다는 문제가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결국 조앙 본인의 군주로써의 능력과는 별개로 후계자 정통성이라는 조위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완벽히 커버할 수 있는 입장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게다가 애초에 조비의 능력적, 인성적 평가가 썩 좋지만은 않은 점에서, 만약 조앙이 후계를 이었다면 개인적으로도 조비의 압도적 상위호환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때문에 최근 들어 과대평가된 조조를 비판할 때 이런 후계자를 과부랑 오입질하다 허무하게 죽게 만들었다며 조조의 아킬레스건으로서 주로 언급된다.

1.4. 미디어 믹스



1.4.1. 삼국지 시리즈


[image]
삼국지 10, 11
[image]
삼국지 12,13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 능력치는 통솔력, 매력만 70대 중반인 B급 무장. 동생들과 비교하면 안습하지만 기록의 반영으로 의리는 동생들에 비해서 상당히 높다. 다만 조조로 플레이할 경우에는 어차피 자식으로 배반할 일이 없고 타 세력으로 플레이 할때는 등용도 잘 안되고 능력치가 평범해 굳이 쓸 이유도 없는지라 의리치 높은게 달리 도움이 되진 않는다.
조조의 장남이라서 후계자이긴 하지만 수명이 짧게 설정되어 있기에 조조보다 오래 살아서 조조군 세력을 물려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수명 설정을 가상으로 해놓거나, 조조가 전사하거나 처형되어 단명하는 경우에나 희귀하게 조앙군을 볼 수 있다.
삼국지 3에서의 능력치는 육지 58 / 수지 19 / 무력 60 / 지력 54 / 정치 50 / 매력 67 이다. 전투나 내정쪽으로는 잉여자원이긴 한데 그나마 매력을 요구하는 인재 등용이나 주민 선정등에는 쓸만하다. 평시에는 밀정으로 보내서 정보원으로 활용하면 좋다.
삼국지 5에서의 능력치는 무력 67/지력 52/ 정치 43/매력 74이며 특기는 혼란, 수습, 고무, 복병, 화시, 속공이다. 기본 진형은 추행, 어린. 능력치만 보면 군사담당 외에 어디 쓸 곳이 없는 수준이지만 진형과 특기가 조조군에 맞게 속공형이라 전투에 내보내면 의외로 다른 주력장수들과 함께 최전선에서 활약한다. 189년 시나리오의 경우 진형 때문에 발이 느린 악진, 이전보다 빠르게 전투에 뛰어들 수 있는 조앙이 더 빨리 성장하는 걸 볼 수 있다. 초반에 할당할 병력이 없다면 일찌감치 수행을 보내서 무기를 구해 부족한 무력을 보강하거나 용명, 경험등을 쌓는 것도 좋다.
삼국지 9에서는 통솔력 72/무력 60/지력 65/정치력 73. 분전, 기사, 배반, 고무를 가지고 있다. 궁기병 병법이 있고 궁합이 25이기 때문에 하후연, 조순, 조휴와 함께 궁기병 부대를 구성하면 50% 연쇄보너스로 공성전에서 강력한 성능을 발휘한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4/무력 62/지력 68/정치력 74/매력 77로 조조군 소속인지라 조금 미묘. 치안 셔틀로는 쓸 만하다. 하지만 이벤트 씬에서 "'''후계자는 또 만들면 되지만 조맹덕은 천하에 단 한 분 뿐이십니다"'''라는 간지폭풍의 명대사를 날렸다. 전체적으로 특기는 치안, 화시, 진정, 고무, 저지, 기합, 간첩. 총 7개다.
삼국지 11의 특기는 혈로이다.
삼국지 12의 일러스트는 위기에 처한 조조에게 말을 바치는 장면. 전법은 기병계가 많은 소속답게 기군병격.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4/무력 67/지력 69/정치력 68. 특기는 순찰 1, 신속 5. 전수특기는 신속으로 전법은 전진강화. 재미있는 것은 시나리오1에서 조조 거병 이벤트때 자동으로 조조군으로 임관하게 되는데 가장 빨리 볼 수 있는 연도가 186년이라 이럴 경우 12살에 임관하게 된다. 물론 직접 플레이는 190년 반동탁연합 시나리오부터 가능하며, 조조 거병이벤트를 보지 않는다면 189년에 초에서 재야장수로 나오거나 조조가 다른 세력에 있다면 그 세력으로 임관하게 된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74, 무력 65, 지력 66, 정치 68, 매력 77로 전작에 비해 무력이 2, 지력이 3 하락했다. 개성은 일심, 혈로, 주의는 아버지와 같은 패도, 정책은 군제개혁 Lv 4, 진형은 방원, 학익, 전법은 철벽, 교란, 저지, 친애무장은 전위, 조안민, 혐오무장은 없다.

1.4.2. 영걸전 시리즈


삼국지 조조전에서는 장수토벌전에서만 등장한다. 조조에게 도망가라고 말한 후 바로 호거아에게 죽어서 에디터 없이는 능력치와 열전을 확인할 수 없다.

1.4.3. 진삼국무쌍 시리즈


진삼국무쌍 시리즈에서는 클론무장으로 나오다가 말다가 한다. 삼국지 연의 줄거리에 가장 충실하게 따른 6편에서는 완성전에서 전위와 함께 전사를 한다. 먼저 전사하고 뒤에 전위가 전사하는 씬이고 그리고 조조의 사망 때 언급 되려나 했더니 부하가 언급되어서 안습...
7편에서도 완성전에 등장한다. 조앙과 조안민을 구하지 못하면 전위는 여기서 클리어 후 사망하며 하비 전투로 넘어가며, 구출에 성공하면 전위가 생존하며 관도 전투로 직행한다.

1.4.4. 창천항로


창천항로에서는 정말 멋지게 나온다. 최고의 명장면이라면 조조에게 자기 말을 주고 등에 화살을 맞자 마지막 힘을 쥐어 짜서 '''"조앙 자수가 아버지 조조 맹덕에게 지시한다! 내 말을 타고 빨리 적진을 빠져나가라!"'''라고 외치는 장면. 조조가 눈물을 흘리게 하는 몇 안 되는 캐릭터 중 하나. 여담이지만 아버지 조조나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눈 아래의 무늬?흉터가 없다. 조조, 조비, 조창, 조식, 금향공주, 조절, 조예는 이 특징이 있고 조앙, 조헌, 조화 등은 없다. 원작 17권에 등장한 어린 자식들중에서도 있는 아이가 있고 없는 아이가 있는데 도대체 기준이 어떻게 된거지 이거(...) 참고로 조조의 친부인 조숭도 없었다.
등장 자체는 짧은 편이지만 그 안에 하늘의 별을 읽는 능력(천운), 말이 두명을 태울 수 없음을 생각하고 추씨를 바로 베는 단호함, 첫 출전이자 조조를 살리기 위한 싸움에서 바로 천명을 깨닫고 무쌍을 찍는 등 조조 찬양물이라 불리는 창천항로의 조조 아들 다운 능력들을 보여준다. 조조 또한 조앙에게 천명을 물려줄 생각을 하고 있었으며, 자신 대신 조앙이 죽자 눈물을 흘리며 '왜 자신을 살렸느냐, 하늘이여'라며 슬퍼한다.
조앙 사후 한동안 조조가 멍한 상태로 정무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정부인을 대표로 조조의 첩들이 조조와의 동침을 거부하는 등 주변에서의 평가 또한 좋았던 듯.

1.4.5. 화봉요원


화봉요원에서는 첫 등장때부터 훈련을 지휘하는 모습[7]을 보여주며, 조조의 후계자로서 하후돈을 비롯한 장수들에게 인정을 받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조조가 누군가에게 낚여 장수군 한복판에 포위되었을때 말을 타고 나타나 '제 말을 타고 빨리 벗어나십시오!'를 외친다. 그러나 조안민이 나오지 않는 대신 그처럼 허무하게 목에 화살을 맞고 사망한다. 전위의 죽음을 더 슬퍼했다는 그간의 삼국지 매체들의 서술과는 달리, 조조가 ''''나를 이어야 할 후계자가 이렇게 죽으면 어떡하냐!''''고 절규하는 부분이 애처롭다.

1.4.6. 삼국지톡


조앙(삼국지톡) 문서 참조.

1.4.7. 기타


소설 비열한 성자 조조에서는 예주의 황건적 토벌 때 군영에 종사하면서 조안민과 함께 정탐을 해서 갈피 서쪽에 있는 군영이 황건적의 군사가 아닌 것을 확인했고 조조, 조안민과 함께 출병했다. 장수와의 전투에서 절영을 타고 있다가 조조가 위험에 빠져 탈출할 때 조조를 말 위로 올려놓고 채찍을 들어 말의 엉덩이를 힘껏 내리쳐 조조를 탈출시켰으며, 조앙은 온 몸에 화살을 맞고 물 속으로 가라앉은 채로 사망했다.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에서는 그 묘사가 매우 절절하다. 삼국지연의의 묘사처럼 조앙이 조조를 탈출시키고 자신은 죽는 묘사는 동일하나, 아들을 죽음을 지켜보던 조조는 주먹으로 자신의 머리를 내려치며 후회하고는 쓰러진 아들의 시신을 말안장에 싣고 달아난다.
신삼국에서는 장수와 조조의 싸움이 생략되어 언급만 된다. 조조가 사망하는 에피소드에서 조조가 자신의 아들들 중 누구를 후사로 세울지를 이야기할 때, '나의 장남 조앙은 오래 전 완성 전투에서 불행히 요절했고'라고 언급한다.
대군사 사마의에서는 사마의와의 대화 도중 조비의 회상으로 짤막하게 언급이 된다. 조비가 사마의에게 "내 큰 형님 조앙은 완성 전투에서 날 안고 화살속을 뛰어다니다가, 나를 말에 태우자마자 화살을 맞고 돌아가셨소. '어서 도망쳐'라고 하신게 마지막 말이었소. 아버지께선 그 이후로 오랫동안 형님을 그리워하셨는데, 난 내가 형님과 처지가 바뀌었으면 좋겠소. 그럼 아버지께서는 날 그리워하시고, 형님께선 수월하게 세자로 책봉되실 테니 이렇게 조씨 가문의 형제들이 남과 같은 사이가 되진 않았겠지."라고 말하며 조앙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낸다.
삼국기밀에선 한술 더 떠서 조앙을 죽게 한 것이 변씨 부인이 장수을 뒤에서 조종해 죽게 만들었다는 충격적인 설정이 덧붙었다. 덕분에 형의 죽음을 목도한 정신적 충격과, 형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부담감으로 인해 조비는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심신이 피폐해지게 된다.
삼국전투기에서는 아버지 조조의 패러디를 이어받아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의 캐스발 렘 다이쿤으로 등장한다. 완 전투 (2)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했다. 작 중 등장한 조조의 아들들 중에서는 가장 인간미가 있다고 묘사된다. 장수가 항복한 이후, 조안민과 서류를 정리하며 가후의 일처리 솜씨에 함께 감탄하기도 한다.[8] 이후 장수가 반란을 일으키고 조안민을 사살하자 창문을 깨고 도망친다. 이후 등장이 없다가 조조가 육수 앞에서 강을 건널 수단이 없어 위기에 처했을 때 재등장. 조조에게 고무오리 튜브(...)를 넘겨서 강을 건널 수 있게 도운 뒤, 조앙 자신은 장수군의 화살들을 맞고 사망한다.
완 전투 편의 에필로그라 할 수 있는 완 전투 (9)편에서는 혼령이 되어 다시 등장. 펑펑 우는 조조를 위로하며 라면 아버지를 잘 보좌할 수 있을 것이라며 위로의 말을 건네지만 조조가 전위의 죽음만 슬퍼하고 자신은 그냥 넘겨버리자 왠지 손해본 듯한 기분이라며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인다.

2. 조위의 장수


趙昂
(? ~ 219년?)
삼국시대 위나라의 장수로 자는 위략에는 위장(偉章), 열녀전에는 위장(偉璋)이라 되어있다.
왕이의 남편, 조월조영의 아버지.
옹주 천수군 사람으로 양부가 어렸을 때 양부, 윤봉과 함께 이름을 날렸다고 하며, 강도령을 지내고 마초가 농상의 군현들을 공격하면서 농상의 군현들 대부분의 호응을 받다가 기성을 함락하여 위강을 살해하자 양부가 마초를 무찌르려고 하자 강은, 윤봉, 요경, 이준, 왕령 등과 모의해 마초를 토벌할 약속을 했다고 한다.
적자 조월(趙月)이 인질로 마초에게 끌려갔기 때문에 아들의 안부가 걱정되어 머뭇거렸지만 아내인 왕이가 재촉하자 계책을 실행해 마초를 쫓아냈다가 30일간 기성에서 왕이와 함께 마초의 공격을 수비했다. 물론 조월은 마초가 패배하고 달아날 때 화풀이로 참살되었다. 이 공적으로 익주자사가 되었다.
이후의 행적은 알려진 게 없다. 다만 훗날 한중 전투에서 유비의 공격을 받아 익주자사인 조옹(趙顒)이 죽었다. 그런데 조앙이 익주자사가 된 사실과 시경에서 옹(顒)과 앙(昻)은 서로 통하는 글자[9]로 나왔기 때문에 유비가 죽인 조옹은 조앙과 동일인물로 보이는데 이것이 사실일 경우 조앙은 219년에 죽었다는 얘기가 된다.
삼국지연의에서 거의 행적은 동일하지만 강서 수하의 교위로 마초에 의해 아내 왕이를 제외한 가족이 모두 마초에게 몰살당했다고 나온다.

2.1. 미디어 믹스


[image]
삼국지 14 일러스트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3에서 등장하는데 지력이나 정치가 딸리지만 무력, 육전, 해전이 70대, 매력은 80대로 무장으로서는 준수한 수준이다.
이후로 쭉 등장하지 않았다가 삼국지 14에서 오랫만에 복귀했는데 능력치는 통솔 61, 무력 63, 지력 52, 정치 68, 매력 60이며 일러스트는 오른손을 이마에 대고 있다. 개성은 산전, 주의는 왕도, 정책은 묵수연구 Lv 2, 진형은 방원, 장사, 전법은 연노, 매성, 친애무장은 강서, 양부, 왕이, 위강, 혐오무장은 마초다. 생년은 176년, 몰년은 219년까지 되어있다.
진삼국무쌍 시리즈에서는 4탄 맹장전 기성전투에서 마초를 욕하는 클론 무장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때는 왕이가 없었고 정작 왕이가 추가된 이후 작품에는 기성전투 자체가 나오지 않고 있다.
삼국전투기에서는 만화 권법소년 한주먹의 등장인물인 아빠로 패러디되었다. 원본과는 달리 이쪽은 실눈 캐릭터. 기 전투 (5)편의 타이틀 컷을 차지하기도 했다.
기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마초가 기성의 관원들을 살려 놓기로 결정하면서 살아남았다. 이후 양부에게서 하후연이 지원을 온다는 소식을 듣고 양부와 함께 기성 내부에서 호응하기로 했지만 방덕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통에 1차 호응은 실패로 끝났다. 이 와중에 분위기를 못 읽고 기성을 접수하겠다고 말하려는 양부의 입을 막고 기성을 지키자고 말하려 했다며 빠른 임기응변으로 양부를 살린 건 덤.
이후 대책을 아내 왕이와 상의했고, 이에 왕이의 작전에 따라 마초와 친해지며 그의 심복이 되었다. 한편, 양부가 아내의 장례를 핑계로 역성에서 군사를 빌려오겠다는 계획을 듣고 하후연도 잡지 못한 마초를 어떻게 잡을 것이냐고 물었고, 양부가 잡지 않는다고 말하자 그럼 뭐냐고 되물었으며 이에 왕이가 양부는 미끼가 될 생각인 거라고 대신 답해 줬다. 양부가 미끼가 되는 동안 자신들이 내부에서 난을 일으킨다는 계획인 것임을 파악하고 방덕이 있는 이상 그게 되겠냐며 반론하지만, 왕이에게 마초군 내부 깊숙히 들어간 건 지금같은 상황을 위해서였다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왕이의 예측대로 마초는 하후연과 양부가 움직이자 방덕에게 양부와 강서를 맡기고 자신이 하후연을 상대하기로 한 뒤 조앙만을 기성에 남기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좋았지만 방덕이 조앙을 신뢰하지 못했기에 마초는 조앙의 아들인 조월과 같이 출정하게 되었으며, 계획대로 난을 일으켰다가는 조월이 죽을 것임은 불 보듯 뻔했기 때문에 왕이에게 울면서 그 사실을 전달했다. 그러나 왕이가 조앙의 뺨을 치며 일갈하자 정신줄을 잡고 계획대로 작전을 시행하기로 했다.
이후 마초와 방덕이 모두 출진하자 기성을 간단히 접수하였고 처자식의 수급을 보고 당황한 마초에게 인과응보라고 담담히 말하였다. 기 전투 편 이후로는 등장이 없다.

3. 춘추시대 진나라의 인물


조간자 문서 참조.

[1] 조조빠 성향이 강한 이문열은 평역 삼국지에서 이 부분에 대해 다룰 때 조조가 아들과 조카, 부하를 버리고 달아난 건 눈부신 냉철함이라고 포장하면서 조조가 살아남으면 복수라도 해주지만 조앙이 혼자 살아봤자 복수는 고사하고 자기 한몸 간수하기도 버거울거라는 이야기를 적었다. 조앙에게는 실로 모욕적인 고인능욕 발언이다. 심지어 이후에 조조는 복수는 커녕 용서를 했다(...) 그후 조조의 후계자인 조비가 이 원한을 잊지 못하고, 장수는 죽이지 못했을 지언정 그 대가 끊기게 했으니, 나름 복수를 해줬다고는 볼 수 있지만...[2] 아버지로써의 정이 아니더라도 남아있던 자식들에 비하면 조앙이 나았음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3] 한국사에서는 사도세자공민왕이 각각 '도'와 '민'이 들어간 시호를 받았다.[4] 거기다, 조비 역시 완성 전투에 '''10살 때''' 종군했다 간신히 살아남았다는 정사의 기록을 보면 어린 시절 겪은 형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로 인한 ptsd로 성격이 삐뚤어졌을 가능성도 있고, 조앙이 만약 끝까지 살았더라면 조비가 지금처럼 냉혹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5] 조비의 소년기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아버지의 위세만 믿고 방약무인해 아버지인 조조의 정치적 입장을 다분히 곤란하게 만들 정도로 충동적인 성향이 강한데 이런 성품의 문제는 나이가 들어서도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반면에 동생들인 조창과 조식은 각기 특출난 무재와 문재를 선보여 조조의 총애를 받았다. 오히려 기록을 살피면 조조의 입장에서는 조비를 걸림돌 정도로 여기는 듯한 일화가 많고 조비를 옹호하는 신료들은 하나같이 장유유서와 후계구도의 안정을 어필했지 조비의 재능이나 장점을 언급한적이 없다. [6] 다만 이는 먼저 죽은 형을 예우함으로써 조비 자신도 겸양과 정통성을 잘 안다고 강조하려는 의도가 강하다. 조선의 세조도 형 문종 사후에 쭉 문종을 찬양하고 문종이 오래 살았으면 자기도 쿠데타 안 일으켰을거란 식으로 말하고 다녔다. 사실 양쪽 다 반절은 진심일 수 있다. 조비는 조앙에 대한 애정을 다른 방식으로도 드러낸 적이 있어서 조식과 경쟁할 때와는 다르게 심적 부담을 더 크게 느꼈을 수 있고, 조앙의 정통성이 강력하다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도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 세조도 문종 사후에야 뒷통수를 쳤지, 생전에는 자기 형님더러 제갈량도 비할 수 없이 뛰어나다고 아부할 정도로 일단 우애가 장난이 아니었다. 단종이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위험천만한 군사 반란을 시도해볼 생각이라도 가능했던 것이지 문종이 오래 살아 단종의 권력도 안정적으로 확보된다면 세조는 쿠데타를 꿈도 꾸지 못 했을 가능성이 높다.[7] 장수 토벌은 명목상이었고 조조군의 대규모 훈련으로 각색된다.[8] 조안민이 자기를 조조의 후계자로써 팍팍 밀어주겠다고 하자 자신에게는 부담된다며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그래도 조앙 쪽에서 조안민을 형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등 관계는 좋은 것으로 묘사된다.[9] 엄숙할 옹(顒)자와 밝을 앙(昻)자는 둘 다 크다, 높다라는 뜻이 있다. 조조의 아들 조앙의 이름과 동일한 한자를 쓰기 때문에 피휘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