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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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昌德宮 賓廳 / 匪躬堂
창덕궁의 빈청이다. 숙장문의 동남쪽에 있다.
빈청은 삼정승[1] 과 정 2품 이상의 고위 관료 및 비변사 당상관들이 평상시에, 아니면 임금을 뵙기 전에 잠시 머물면서 회의하던 곳이었다.
그러니까 '''특정 건물의 고유한 이름이 아니다.''' 당연히 다른 궁궐에도 빈청들이 있었다. 그러나 다 사라지고 오직 창덕궁 빈청만 지금까지 있다.
《궁궐지》에서는 이곳을 '비궁당(匪躬堂)'으로 소개하였으나 《동궐도》와 《동궐도형》에는 이름 없이 그냥 빈청으로 나온다. 일단, 이 문서 이름은 일반적으로 아는 '창덕궁 빈청'으로 하였다.
‘비궁(匪躬)’의 뜻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국가에 충성을 다한다'로, 《주역》에서 유래한 말이다. 국가를 이끌어가는 관료들이 나랏일을 의논하는 곳의 이름으로 알맞다.
2. 역사
《성종실록》의 이 기사에서 달성군 서거정이 이 건물에 대해 쓴 ‘비궁당기(匪躬堂記)’를 언급한다. 이로 보아 최소 성종 시기에는 존재한 듯 하다.
확실한 기록이 없어 자세하게 모르나 임진왜란 때 불타고 광해군 시기에 창덕궁을 중건할 때 같이 복구한 것으로 보인다.
1865년(고종 2년)에 당시 섭정 중이던 흥선대원군의 명령으로 비변사가 폐지됨에 따라 비었다. 그 후 대한제국의 순종황제가 창덕궁으로 이어한 뒤 일제가 자동차를 보관하는 어차고(御車庫)로 바꾸었다. 변형 시기는 정확히 모르나 1908년(융희 2년) 제작된 《동궐도형》에 빈청으로 나오는 것을 보아 그 이후에 바뀐 듯하다.
순종 승하 후에는 벽면마다 유리창이 설치된 자동차 전시실로 변했다. 내부에는 초헌, 연(輦)과 여(轝) 같은 가마와 순종과 순정효황후가 탔던 승용차인 1918년식 캐딜락(미국 GM사 제작) 및 1914년식 다임러(영국 다임러사 제작)가 보관 · 전시되어 있었다. 2007년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자동차들이 옮겨진 뒤 빈 공간으로 남았다.
그리고 2010년 5월에 카페가 들어섰다. 이름은 ‘동궐마루’. 커피와 다과, 기념품을 판매한다.
문화재청이 영업을 허가한 이유는 관람객 편의시설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제가 차고로 전락시킨 것을, 하라는 복원은 안하고 카페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2010년과 2012년, 2014년의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가 불거졌다. 그 때마다 당시 문화재청장들이 원형대로 복원하겠다고 말했지만 전혀 지키지 않았다. 그리고 2020년 현재까지 영업한다.#
3. 구조
- 정면 5칸, 측면 3칸의 1층[2] 목조 건물이다. 네모난 돌 기둥을 놓고 그 위에 사각 목조기둥을 세웠다. 지붕은 팔작과 맞배 형태가 섞였으며, 처마는 홑처마에 공포는 초익공식이다. 다만, 양쪽 가장자리 칸은 아예 공포가 없는 민도리 양식으로 되어있다. 용마루와 내림마루는 기와로 마감하였다. 그 위에 취두와 용두, 잡상은 두지 않았다. 단청은 모루단청[3] 으로 칠해 절제되면서도 화려한 느낌을 주었다. 각 칸의 가장자리 부분에는 낙양각을 설치하였다.
- 조선 후기에 그린 《동궐도》를 보면 담과 문을 둘러 영역을 구분한 모습이었다. 말기에 그린 《동궐도형》을 보면 양 가장자리 칸이 온돌방이고, 가운데의 3칸은 대청이었다. 그리고 앞면과 뒷면의 가장자리 부분은 툇간으로 두었다.
4. 여담
- 빈청에 있던 온돌을 숙종이 없애버렸다는 일화가 있다. 추운 날씨에 따뜻한 구들장에 앉아 왕을 비판하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 그래도 후대에 그린 《동궐도형》에 온돌방이 있는 것을 보아 없앴더라도 바로 복구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