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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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 Mathematik ist die Königin der Wissenschaften, und die Arithmetik ist die Königin der Mathematik.'''
1. 개요
독일의 수학자. 수학사에서 이 사람을 빼놓고서는 수학 이야기를 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수학 분야에서 업적을 남긴 위대한 수학자이다.''' 대수학, 정수론, 해석학, 기하학 등 여러 수학 분야뿐만 아니라, 통계학, 물리학, 천문학, 전자기학에도 기여했다.
2. 상세
철저한 성격으로도 유명하다. 내용이 완벽하게 정리되기 전에는 절대 발표를 하지 않아서, 누군가가 최초로 발견해서 발표했는데 알고보니 가우스의 노트 한쪽에 이미 끄적여져 있었다든가 하는 일화가 많다. 참고로 이 내용은 분량이 노트 19페이지밖에 안 되는데 하도 내용이 암호처럼 적혀있어 아직도 완벽하게 해독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사후에 그가 남긴 자료를 분석하던 학자는 '그의 연구가 제때 발표되었다면 수학 역사가 50년은 앞당겨졌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런 가우스도 풀지못한 난제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이다. 해당 문제는 알다시피 20세기가 되어서야 증명되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논란이 있는데 알려지기로는 주변에서 이 페르마가 제시한 난제를 가우스라면 풀 수 있을 것이라며 도전할 것을 권하자 "그런 문제는 나도 수십 개는 만들 수 있다."면서 거절했다. 이러한 태도로 인해 가우스가 이미 주변 몰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도전했다가 실패하자 저런 반응을 보인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실제로 소피 제르맹이 편지를 보낼때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언급하면 아예 답변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다른 추측으로는 문제의 난이도가 너무 높은 걸 알고 회피했다는 견해가 있다. 이 경우 가우스의 천재성을 고려해볼 때 당시의 수학적 도구로는 증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눈치챘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저 문제는 현대수학의 최신 이론을 바탕으로 증명되었다. 해서 오늘날의 학계에선 대체로 그 당시의 수학적 도구로는 애초에 증명이 불가능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닐스 헨리크 아벨이 가우스에게 자신의 논문을 보냈는데, 당시의 가우스는 이미 너무 유명해서 사방에서 젊은 학도들의 수많은 논문들이 밀려들고 있었기에, 자기 연구나 대학 교수 일로 바뻤던 가우스는 읽지도 않고 그대로 쓰레기통에 집어 넣어버렸다.
이후 아벨은 계속해서 찢어질 듯한 가난에 시달리다 베를린 대학에서 교수로 임용되었다는 편지가 오기 이틀 전 결핵으로 숨졌으니 참으로 안습... 물론 가우스 말고도 다른 수학자들도 인정하지 않았다가 아우구스트 레오폴트 크렐레가 비로소 인정하여 그의 노력으로 베를린 대학교수로 임용된 거였지만. 사실 가난에 시달린 점도 있지만 어릴적부터 몸이 약하고 잔병에 시달리던 신체적인 문제도 많았다.
가우스는 그 밖에 에바리스트 갈루아의 논문도 읽지도 않고 버려 나중에 비난을 들었지만 위에 서술하듯이 많은 논문을 보고 하두 개차반이 많아 보는 게 쓸데없는 것이라고 여겨 그랬다고 변명했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아벨과 갈루아의 논문을 읽어보고 가우스나 많은 다른 수학자들도 뒤늦게 '왜 읽어보지 않았던 건가!' 라며 두고두고 후회했다. 그래서 가우스는 이전과 달리 오는 논문을 무조건 버리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한 마디 더 하자면 가우스는 갈루아의 논문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진짜 몇 안 되는 천재 중 하나였다. 코시 같은 대가도 갈루아 논문을 읽고 "이거 설명도 제대로 없고[3] 너무 뭣같이 써서 도저히 못 알아처먹겠다"면서 GG친 거 보면[4]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 지 알 수 있다.
3. 생애
불과 5살쯤에 자기 아버지가 직원들의 월급 계산을 다 끝마쳤을 때 아버지는 틀렸고, 자신의 답이 맞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훗날 가우스는 "나는 글을 배우기 전부터 이미 계산을 할 줄 알고 있었다."라는 농담까지 하였다. 그리고 유명한 일화로 학교 선생님이 낸 "1부터 100까지의 숫자를 모두 더하면?"이라는 문제를 뚝딱 해치운 것이 있다.[5]
많은 천재들이 인정받지 못하고 불우하게 살다 요절한 것과 달리 가우스는 생전에 이미 위대한 수학자로 이름을 날리며 학문적, 사회적 성취를 모두 누렸으나, 개인적인 삶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랜 시간 괴팅겐 대학교의 천문학과 교수로 재직했지만 직업적인 열정은 없었으며 종종 지인들과 나눈 서신에서 가르치는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고는 했다. 첫 아내인 요하나 오스토프 사이에 2남 1녀를 두었으나 아내는 셋째 출산 후 곧 사망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린 막내 아들 루트비히마저 세상을 떠났다.
미나 발데크와의 재혼에서 역시 2남 1녀를 얻었지만 두 아들들과의 사이는 소원했고[6] 아내 미나가 오랜 투병 끝에 사망한 후 77세에 사망하기까지 24년간의 생애를 홀몸으로 살았다.
사망하기 얼마 전에는 손자에게 자신의 삶이 불행했다는 고백의 글을 남겼고, 이 글을 받아 본 손자마저 가우스 사후에 젊은 나이로 삶을 마감했다. 이후 가우스는 괴팅겐대의 자신의 교수실의 의자에 앉은 채 심근경색으로 생을 마감했다.
4. 주요 업적
가우스의 업적은 너무나도 많아서 하나하나 다 나열하다가는 끝이 없으나, 아마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대수학의 기본정리'''의 증명일 것이다. 사실 최초로 증명했다고 하기에는 논란이 조금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네이버캐스트-대수학의 기본 정리를 참고하자. 상술한 수열의 합 공식도 어릴 때 만들어냈으며, 정 17각형이 작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19세의 나이에 발견했다.
놀랍게도 외계인의 존재를 믿어 다른 별에 생물이 살 것이라고 자신했기에 지구에서 거대한 횃불을 신호로 그들과 대화를 나눠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 지인들이 설마? 라고 하자 그는 저 많은 별을 빈 채로 쓸데없이 창조했다면 신은 역사상 최악의 수학적 낭비를 하는 것이라면서 반드시 무언가 살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죽고 160여년이 지난 2018년, MIT는 우주에 조명을 설치하여 외계인과 대화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4.1. 정17각형 작도의 증명
19세 때, 정17각형이 작도 가능한 다각형임을 증명하였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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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스가 실제로 정17각형의 작도법을 찾아낸 것은 아니다. 단지 작도 가능하다는 사실만을 증명했을 뿐이며 실제 작도법이 나온 것은 이로부터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이다. 가우스가 증명한 것은 아래의 식이다.
$$16 \cos({2 \pi \over 17}) = - 1 + \sqrt {17} + \sqrt {34 - 2 \sqrt {17}} + 2 \sqrt {17 + 3 \sqrt {17} - \sqrt {34 - 2 \sqrt {17}} - 2 \sqrt {34 + 2 \sqrt {17}}} $$
야코프 베르누이가 묘비에 로그 나선을 새긴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묘비에 정17각형을 새겨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요청은 사람들이 원과 혼동할 것을 우려하여 받아들여지지 않고 17개의 점으로 된 별을 대신 조각하였다. 맨 위의 사진에 나온 우표에 프린트되었으니 나름 해피엔딩.
같은 방법으로 정257각형, 정65537각형 또한 작도가 가능하다는 사실도 입증했다. 특이한 것은 이들은 모두 페르마 소수이다.
4.2. 소수 정리
가우스는 동시대의 수학자인 아드리앵 마리 르장드르[10] 와 함께 소수에 대해 연구를 하던 중, 이것이 자연로그와 연관성이 있다는 추측을 처음으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가우스는 이를 수학적으로 증명하지는 못하였고, 이후 후대의 수학자들이 이 문제에 몰입하여 마침내 이 추측이 사실임을 증명해냈다. 자세한 내용은 소수 정리 문서 참조.$$\displaystyle \lim_{x \to \infty}\frac{\pi(x)}{\left(\dfrac x{\ln x}\right)} = 1$$[8]
[9]
참고로 이 정리는 가우스가 가장 아끼던 제자가 제시한 21세기의 수학 난제로 이어졌다.
4.3. 그의 이름을 딴 것들
- 가우스 함수 : 가우스 함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개념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아마도 아래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 가우스 소거법(Gaussian elimination)
연립 1차 방정식의 기본적인 해법. 미지수를 하나씩 소거해 가서 어느 미지수를 결정하고, 그것을 반대로 대입해 가서 전 미지수를 구한다.
- 가우스 적분 - 위 정규분포의 확률값을 계산하기 위한 적분.
- 가우스 사상
곡면위의 한 점에서의 단위법선벡터를 평행이동시켜서 곡면에서 단위구면에의 사상을 정의할 수 있다. 이를 가우스사상 또는 구면사상이라고 한다.
- 가우스 미터
'복소정수'라고도 하며, 두 정수 a, b 에 대해서 $$a + bi , (i^2 = -1)$$로 표현되는 수를 의미한다.
폐곡면을 통과하는 전기 선속이 폐곡면 속의 알짜 전하량에 비례한다는 법칙이다. 맥스웰 방정식 가운데 하나다.
- 가우스 정리(Gauss's Theorem)
- 가우스의 빼어난 정리(Gauss's Theorema Egregium)
곡면의 가우스 곡률(Gaussian curvature)은 제일기본계수(First Fundamental Form)와 그들의 편도함수에만 의존한다. 즉, 가우스 곡률은 등거리변환(isometry)에 의해 변하지 않는다.
- 가우스상
- 가우스의 평균값 정리(Gauss's Mean Value Theorem)
함수 $$f$$가 닫힌 원 $$\left|z-z_{0}\right|\leq r$$에서 해석적(Analytic)이라고 하면, $$f(z_{0})=\displaystyle{\frac{1}{2\pi}}\int_{0}^{2\pi}f(z_{0}+re^{i\theta})d\theta$$이다. 코시 적분 공식에서 유도된다.
직접 이름 붙은 것만 이 정도고, 실제로 기여한 것은 수없이 많다. 이과로 대학에 입학할 경우 가우스의 이름을 심심하면 전공서에서 볼 수 있다.4.3.1.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그 이름이 붙은 것
- 가우스[11] - 덴마
- 가우스 그룹 - 회사국가시대, 트라우마#s-3, 가우스전자
- 가우스 대령 - 암스#s-2
- 가우스 마그네츠 - 록맨 에그제 2
- 가우스 병기
- 가우스전자 - 가우스전자
- Warframe - 가우스
5. 주요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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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술에 관한 연구): 정수론과 대수학에 대해 다루는 책으로, 가우스의 모든 저서와 논문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는 저서이다. 실제로, 이 책 하나 때문에 당대의 수학자들이 모두 대수학과 정수론 분야로 관심을 기울였고, 아벨이나 디리클레 등의 수학자들에게도 큰 영감을 주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이 저서를 출판할 때 가우스의 나이가 겨우 24세였다는 점이다.
6. 관련 문서
[1] 밀레니엄 문제 중의 하나인 리만 가설을 제시한 사람이다.[2] 오른쪽 그림은 자와 컴퍼스만으로 17각형을 작도한 것을 의미.[3] 갈루아가 살아 생전 인정받지 못한 게 개차반 같은 성격과 더불어 이런 설명도 없이 "나는 아는데 너는 왜 모르냐? 알아서 봐라"라는 태도를 취한 점이었다. 누구에게나 이래서 대학 면접에서도 탈락하고 다른 선배나 수학자들에게도 건방지다며 인정받지 못한 원인이 되었다.[4] 다만 코시 같은 경우에는 갈루아를 인정했다는 주장도 있으며 갈루아 문서에 나오듯이 여러가지 설이 전해질 뿐이다.[5] 등차수열의 합을 이용했다. 그러한 원리를 먼저 고안한 것은 아니지만 그 나이에 그것을 해냈다는 것이 대단하다.[6] 아들한테 "너희들은 수학하지 마라. 어차피 나를 뛰어넘지 못할테니"라고 하는 아빠였으니... 대신 이건 아들들이 수학자의 삶을 택한다면 매번 자기와 비교될 것 같기 때문에 걱정하는 뜻으로 이랬다는 설도 있다.[7] 기하학에서 작도 가능하다는 것은 눈금 없는 자와 컴퍼스만을 가지고 도형을 그릴 수 있다는 뜻이다.[8] $$\pi(x)$$는 소수 계량 함수이다. $$x$$보다 작거나 같은 소수의 개수를 뜻한다.[9] 요즘은 $$\dfrac x{\ln x}$$ 대신 로그 적분 함수 $$\displaystyle \mathrm{li}(x) = \int_0^x \frac{{\rm d}t}{\ln t}$$를 쓴다.[10] 르장드르 함수의 그 르장드르다.[11] 라이벌인 공자의 이름을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인 공자에서 따왓듯이 서양에서 다양한 수학 분야에 엄청난 업적을 남겼기 때문에 그에게서 이름을 따온 걸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