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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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2010년(괄호안은 1971~2000년) 기준 10월~4월 서울 월평균기온 평년값, 월평균 최고기온 평균 평년값, 월평균 최저기온 평균 평년값.[1]
10월: 14.8(14.4)°C, 19.8(19.7)°C, 10.3(9.8)°C
11월: 7.2(6.9)°C, 11.6(11.5)°C, 3.2(2.9)°C
12월: 0.4(0.2)°C, 4.3(4.2)°C, -3.2(-3.4)°C
1월: -2.4(-2.5)°C, 1.5(1.6)°C, -5.9(-6.1)°C
2월: 0.4(-0.3)°C, 4.7(4.1)°C, -3.4(-4.1)°C
3월: 5.7(5.2)°C, 10.4(10.2)°C, 1.6(1.1)°C
4월: 12.5(12.1)°C, 17.8(17.6)°C, 7.8(7.3)°C
또한, 1904년 4월 이전에는 한반도 어느 곳에서도 공식적인 기상관측이 이뤄지지 않았다. '''1904년 4월 이전의 관측기록들은 전부 비공식이다.'''[2] 이것을 감안하고 읽을 것.
※ 한국 역대 한파 목록 작성에 유용한 참고 자료
  1. 기상자료개방포털:종관기상관측[3][4]
2. 기상자료개방포털:해관기상관측자료[5][6]
3. 대한민국 통계청:광복이전통계,월평균기온[7]
4. 대한민국 통계청:광복이전통계,월별 최저기온 기록[8]
5. 1883년부터 동북아시아 지역 일기도를 볼 수 있는 곳. 아마도 일본에서 관측하는 것으로 추정된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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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19세기 이전


양력 기준으로 작성.
  • 1399년 1월 - 음력 1398년 12월 3일(양력 1399년 1월 10일)에 날씨가 지극히 추우므로 죄가 가벼운 죄수는 상태를 보아서 풀어주었다고 한다.

2.2. 19세기


  • 1884년 11월~12월 한파: 한파/대한민국 외 문서에서 1884~1885 겨울 일본의 한파 항목을 보고 한반도는 얼마나 추웠을지 궁금하지 않았는가? 다행히 한반도에서 1884~1903년 사이에 관측한 부산과 인천, 원산, 그리고 1887~1890년에 관측된 서울 "비공식" 관측기록이 남아있다! 한반도의 근대적인 공식 기상관측의 시작은 1904년 4월 8일 목포[10] 에서 처음 시작되었지만, 그 이전에도 개화기 일제세력에 의해 부산,인천 등의 해관에서 비공식적으로 관측을 해왔다. 한반도 기상학의 역사를 다루는 한 블로그에 따르면 1884년 11월 부산의 월평균기온은 7.8°C 로 1917년 11월과 같고, 오로지 1912년 11월의 7.4°C 만이 이보다 낮을정도로 추웠다. 12월은 더 심해서 1884년 12월 부산의 월 평균기온은 0.2°C 다. 참고로 1904년 공식 기상관측이래 가장 낮은 부산의 12월 평균이 1944년 12월의 0.8°C 다. 즉, 기상관측이래 역대 가장 낮은 12월 공식 월평균기온보다도 1884년 12월이 낮다. 이렇게해서 서울의 평균기온까지 대략적으로 추정해보면, 역대 가장 낮은 1917년 12월, 1944년 12월(공동 기록)이 -5.7°C 였으므로 1884년 12월은 -6°C 이하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우연찮게도 이 시점에 갑신정변의 삼일천하가 벌어졌다. 의외로 부산의 1885년 1월은 1.4°C 로 12월보다 높아 그리 추운 1월은 아니었던 듯하다.[11] 부산은 1885년 4월도 10.8°C 로 역대최저 2위이고[12], 1885년 5월도 15.6°C 로 상당히 낮은 이상 저온을 나타낸 것으로 보아, 겨울추위가 봄까지도 이상 저온의 형태로 계속 이어진듯하다. 인천의 경우 1884년 11월의 평균기온이 1.7°C 인데, 1904년 기상관측 시작 이래 공식 최저기록인 1912년 11월 2.4°C 보다 0.7°C 나 더 낮다.[13] 1912년 11월 서울이 1.4°C 였음을 생각해볼때, 인천이 이정도면 서울은 11월 평균기온이 1912년 11월보다 낮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심하면 1981~2010년 12월보다도 낮았을 것으로 추정된다.[14]
  • 1891년 11월 ~ 1892년 2월 한파: 11월임에도 불구하고, 기상청의 한파 일수[15]를 충족시키는 엄청난 추위가 찾아왔다. 한반도 기상학의 역사를 다루는 블로그에 따르면, 10월 24일 "처음 서리가 내렸다." 라는 기록을 시작으로, 11월 24일 -6°C, 11월 25일 -9°C, 11월 26일 -11.5°C, 11월 27일 -13.5°C[16] 를 기록했다. 그 다음 기록은 28일이 아닌 29일에 나오는데[17] "-9°C. 추위가 많이 풀렸다." 라는 흠좀무[18]한 멘트가 등장한다. 현대의 서울 겨울은 겨울 전체 최저기온조차도 -13.5°C 보다 높은 겨울이 널렸는데[19] 11월에 저런 기록이 나왔다는것은 현대의 관점에서는 놀라운 일이다.[20] 기상자료개방포털 해관기상자료를 살펴보면 1891년 11월 27일 인천도 -10.3℃ 까지 떨어진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과 달리 역대 최악의 수준은 아니지만 이 역시 꽤 기록적인 수치이다.
1891~1892년 겨울은 12월, 1월, 2월 모두 강한 한파가 존재하나 특이한 점은 각각 한파가 1달 간격으로 떨어져있다는 것이다. 상술했던 11월의 비정상적 한파는 그저 그 해 겨울의 전주곡에 불과했던것 같다. 기상자료개방포털 해관기상관측자료에 의하면 인천은 12월 16일 최저기온 -15.0℃, 12월 18일 -15.5℃ 까지 떨어지는등 12월 중순치고는 매우 강력한 한파가 찾아온다. 그 뒤로 한파는 사라지고 크리스마스와 따뜻한 연말이 지속된다. 1월이 되어도 1월 초순은 별 추위가 없었다. 1월 중순이 되자 분위기가 바뀌게 되는데, 인천이 최저기온 1월 13일 -10.5℃, 1월 14일 -10.0℃, 1월 16일 -10.0℃ 로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1월 18일 -11.6℃, 1월 19일 -15.5℃, 1월 20일 -14.5℃, 1월 21일 -15.5℃, 1월 22일 -11.4℃ 등으로 추운 날씨가 이어진다. 그 뒤로 심각한 추위는 없다가 2월 중순이 돼서야 뜬금없이 그 해 겨울 중 가장 강한 한파가 찾아오는데 인천의 최저기온이 2월 11일 -16.4℃ 를 기록했으며 2월 13일에 잠시 나아진후 다시 추워져 2월 15일 -12.4℃, 2월 16일 -16.6℃ 로 겨울 내 최저기온을 기록하게 된다. 인천이 2월 16일이라는 날짜에 -16.6℃ 을 보인 것은 매우 기록적인 수치이다. 2월 중순 중후반에 저정도로 기온이 떨어진적이 1904년 공식 기상관측이래 전무하다. 시기를 고려할때 비정상적인 한파라고 말할 수 있겠다.
  • 1892년 12월 ~ 1893년 2월 한파: 앞서 세계의 한파 문단에서 서술했듯이 이 겨울은 관측사상 가장 강한 라니냐가 있었던 해인데, 한반도 기상학의 역사를 다루는 블로그에 따르면, 서양의 선교사인 뮈텔주교의 일기에 서울의 최저기온 기록이 12월 28번, 1월 26번, 2월 27번으로 거의 매일 최저기온을 기록했다. 뮈텔주교가 특히 추웠던 날에 집중적으로 최저기온을 기록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거의 한달 매일을 기록했다는 것인데, 이와 같은 횟수는 역대 겨울 중에 가장 많다. 다만 1893년 1월 인천의 월평균기온 -5.5 °C 기록으로 동시기 다른 년도보다는 확연히 낮았으나 기록적인 수준까지는 아닌데[21] 1893년 1월의 베이징 월평균기온 -8.1 °C로 역대 최하위, 일본 도쿄에서도 1893년 1월 26일 최저기온 -7.1 °C를 기록했다는 것을 보면[22] 당연히 두 지역 사이에 위치해 있어 지리적으로 크게 멀지 않은 서울에서도 엄청난 한파가 있었을 것이 분명한데 기록상으로는 그다지 기록적인 수준은 아니니 정말 의문스러운 겨울이 아닐 수 없다.[24]
  • 1895년 1월 ~ 2월 한파: 밑에서 후술할 1897년 1월~2월과 비슷한 느낌을 가진 겨울로, 추위가 매우 길게 이어지고 추위강도도 기록적이었던 겨울이다. 기상자료개방포털 해관기상관측자료에는 상세하게 일별 기온이 나와있다. 인천을 살펴보면, 1895년 1월에는 극단적인 한파까지는 없었다. 다만 1월내 -10℃ 이하 일수가 무려 18일에 달하고, 1월 29일에 최저기온 -14.5℃ 를 기록하는등 굉장히 추웠다. 피크는 2월에 이뤄졌다. 인천의 최저기온은 1월 31일에 -3.5℃ 까지 잠시 오른 기온이 바로 급하강, 2월 1일 -9.5℃, 2월 2일 -18.5℃[25], 2월 3일에도 -18.5℃ 를 기록하는등 공식 2월 역대 최저보다 낮은 수준의 기록적인 한파가 닥친다. 북한 동해안에 위치한 원산의 최저기온도 2월 2일 -18℃, 최고기온 -10.0℃ 를 기록하더니 2월 3일 최저기온 -19.0℃ 를 기록하며 마찬가지로 2월 역대 최저수준에 근접하게 된다[26]. 2월 중순에 접어들자 한파는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그러나, 하순을 앞두고 다시 찾아와 인천 기준 최저기온이 2월 19일 -12.5℃, 2월 20일 -12.0℃, 2월 21일 -16.0℃ 을 기록한다. 굵은 글씨 처리한 이유는 해당 온도가 인천 역대 2월 하순 최저기온보다 훨씬 낮기(...) 때문. 1981년 2월 26일 -14.4℃ 가 인천 1904년 공식 기상관측 이후 2월 하순 최저기록이다. 인천이 이정도면 서울은 2월 하순에 -17℃ ~ -18℃ 까지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1907년 공식적인 기상 관측이래 2월 하순 역대 최저기온인 1981년 2월 26일 -15.6℃ 를 가볍게 넘었을듯. 2월 전체 기온 경신을 노린것도 모자라 2월 하순 기록까지 혼자 싹쓸이 해버리는 대단한 2월이다. 원산도 2월 21일 최저기온 -17.0℃, 최고기온 -10.0℃ 로 2월 말의 한파라고는 믿기 힘든 수준. 추위는 2월 25일까지 인천 -11.5℃ 를 기록하며 이어졌고 3월이 다되어서야 풀렸다. 그러나, 한파가 가신 이후에도 한기의 영향을 자주 받아 3월 18일에 인천 최저기온 -7.5℃ 까지 떨어지는등 강한 꽃샘추위가 찾아왔다.
서울의 경우에는 해관기상관측자료에는 없지만 역사적 사료를 통해 당시의 한파를 일부 추정할 수 있다. 한반도 기상학의 역사를 다루는 블로그에 따르면, 서양의 선교사인 뮈텔주교의 일기에 1895년 2월 2일 서울의 최저기온이 -22°C 에 달했다고 쓰여있다고 한다. 서울의 2월 역대 최저기온은 공식 기록으로는 1910년 2월 2일, 1913년 2월 9일의 -19.6 °C이다. 만일 저게 사실이라면 기상관측이래 역대 2월 최저기온보다 2°C 이상 압도적으로 낮은 셈이다.
  • 1897년 1월 ~ 2월 한파: 2017~2018 겨울 상위호환 겨울이다.[27] 장기간 매우 추운 날씨가 이어졌다. 특히 2월에 이어진 한파는 시기상 2월에는 장기한파가 이어지기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파 지속기간이 이례적으로 길었다. 워낙 장기간 추웠던 탓에 공식기록이었다면 1947년 2월을 넘어 역대 2월 평균기온 최저 1위를 차지할정도로 대단히 추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우선, 1월초~1월 중순 중반까지는 큰 추위가 없이 평범한 겨울이었다. 그러나, 인천 기준 1월 18일 갑자기 최저기온 -15.0℃, 한낮 -9.4℃ 로 곤두박질 치더니 1월 19일 최저기온 -18.0℃, 최고기온도 -10.6℃ 에 머무는 초강력 한파로 변모한다. 대한인 1월 20일에도 최저기온 -17.0℃ 인 것으로 보아 어지간히도 추웠을듯. 부산도 1월 19일 최저기온이 -10.6℃, 동해안에 위치한 원산조차 1월 18일 최저기온 -20.0℃ 최고기온도 -13.0℃ 로 엄청나게 추웠다.
-10℃ 안팎의 추운 날씨는 1월 25일까지 이어지다가 월말에 완전히 사라지는듯 하였으나, 입춘이 되자마자 거짓말처럼 다시 추워져서 인천 기준 최저기온이 2월 3일 -13.5℃, 2월 4일 -14.0℃, 2월 5일 -15.0℃, 2월 6일 -16.0℃ , 2월 7일 -17.0℃ 까지 떨어져 절정을 기록한다. 이는 2월임을 고려할때 굉장히 추운 것으로, 만약 이것이 공식기록이었으면 인천 2월 역대 최저기온 공동 4위에 해당하는 매우 낮은 값이다.[28] 그 후, 최저기온이 2월 8일 -11.0℃ 까지 오르면서 추위가 조금씩 나아졌다....가 아니고 다시 한기가 강하게 몰려와 2월 9일 -12.0℃, 2월10일 -13.5℃, 2월 11일 -16.5℃ 로 2차 절정을 맞이한다. 2월 13일 까지 -10℃ 이하의 추운 날씨는 계속되었고, 2월 14일 부터는 -10℃ 이하의 날씨는 물러났으나 2월 17일 -9.5℃ 를 기록하는등 추운 날씨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원산도 2월 5일 최저기온 -19.0℃, 최고기온 -12.0℃, 2월 6일에 다시 최저기온 -20.0℃ 를 찍으며 가히 기록적인 한파임을 입증하였다.[29] 이렇게까지 2월에 길게 한파가 이어지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2월 3일~2월 13일 인천이 11일 연속 -10℃ 이하를 기록했다. 인천이 이렇게 장기간 -10℃ 이하를 기록한 것은 기상관측사상 2월 내에서는 전무하며 연 전체로 확대해도 1963년 1월 11일~1963년 1월 26일 16일 연속 -10℃ 이하를 기록한 것과 함께 유일하다. 그리고 이 이상 저온의 영향은 4월까지 이어져 다른 해에 비해 4월 평균기온이 유달리 낮게 기록되었다.[30]
  • 1900년 1월 ~ 2월 한파: 한반도 기상학의 역사를 다루는 블로그에 따르면 인천의 1900년 1월 평균기온이 -6.1 °C에 달했다고 한다. 이는 역대 최하위는 아니고[31] 현재도 하위 10위이지만 그래도 동시기 다른 년도들보다는 매우 낮은 기록이다. 원산도 동시기 월평균기온 -6.2 °C로 낮은 편이었다. 부산도 0.7°C로 기록되었다. 1899년 12월은 저 블로그에서도 그렇고 기상청 해관자료에서도 그렇고 그렇게 심한 한파의 기록을 찾아볼 수가 없으나 새해부터 영하 두자릿수를 밑도는 강력 한파가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해관기상관측자료를 볼 때, 인천의 월평균기온은 고작 -6.1 °C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거의 한달동안 영하 두자릿수의 날씨가 지속되어 1월 한달동안 -10°C 이하 일수가 20일에 달하고 1월 초(9일까지)는 인천조차 아예 최저기온 영하 두자릿수로 도배되어 있다.[32] 이는 그 유명한 1917년 1월 초, 1922년 1월 초순도 깨지 못하였다.[33]
거기에 1월 중순, 하순도 19~23일에 기온이 잠시 오른 것을 제외하면 추위가 계속 지속되었고 24~27일은 해당 겨울에서 가장 추위가 극한에 달해 인천의 최저기온이 1월 24일 -10.0°C, 1월 25일 -15.0°C, 1월 26일 -17.5 °C, 1월 27일 -15.0°C 를 기록했다고 나와있다. 1월 26일은 특히 부산이 대박인데 무려 -13.3°C 의 최저기온을 기록했다고 한다. 그 악명높은 1917년 1월(-12.7°C), 1923년 1월(-12.5°C), 1931년 1월(-12.4°C), 2011년 1월(-12.8°C)보다 낮다. 오로지 1915년 1월 13일 -14.0°C 만이 이를 능가한다!
즉 위의 기록들로 어림잡아 보자면 인천 기준 -7 °C 정도의 1월 평균기온을 기록했을법한데 기록상으로는 -6.1 °C에 그치니 아마 기록에서 오점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증거를 가지고 판단하여 서울의 1900년 1월 월평균기온은 최소 1922년 1월처럼 -7.8 °C에 준하거나[34]오히려 더 낮아 -8.0 °C 이하를 기록할 법 하다. 그러나 1963년 1월을 능가하는 영하 두자리 수의 평균기온이 나왔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35] 또한 1900년 1월이 1922년 1월 한파와 정말 비슷해보이는 점이 있는데, 원산에서도 비슷하게 인천보다 살짝 낮았고 베이징도 1922년 1월과 월평균기온이 같은 점을 보아 짐작하였을 때 한반도 이북에 한기가 편중되어 있다는 점이 큰 것으로 보인다. 정작 부산의 1900년 1월 평균기온 0.7 °C는 1922년보다 높다.[36]
해관기상관측자료를 보았을 때 2월도 1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한파가 꽤 지속되었다. 인천 기준 최저기온 2월 1일 -10.5°C, 2월 4일 -13.0°C, 2월 5일 -13.0°C, 2월 6일 -15.5°C, 2월 7일 -11.5°C 등 장기적인 -10°C 이하는 여전했고 그 이후 좀 나아졌지만 2월 16일에도 -10.8°C 을 기록하는등 춥긴 추웠다. 대략 2월 25~26일까지 추위가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3월 들어 인천의 최저기온도 영상권을 회복하며 겨울이 끝났다.

2.3. 20세기


  • 1901년 2월 초순~중순 한파: 1901년 1월은 큰 추위가 없이 평범했다. 하지만 2월이 되자마자 강력한 입춘 한파가 찾아온다. 인천은 2월 1일 아침 최저 -9.5℃, 한낮에도 -5℃ 에 머물더니 2월 2일 아침 최저 -16.5℃, 한낮 -9.4℃ 에 머무르는 등 강력한 한파가 찾아온다. 다음날인 2월 3일에도 -15.0℃ 에 머물며 매우 추웠다. 인천이 이정도니 서울은 -17℃ ~ -18℃ 안팎이었을듯. 부산도 2일 아침 최저 -9.4℃, 한낮 -3.9℃ 에 머물러서 추위가 매서웠다. 추위는 5일까지 이어지다가 풀렸는데 그 이후에도 이따금씩 추위가 찾아와 2월 12일 다시 수은주가 -12.0℃ 까지 곤두박칠 치는등 2월 중순치고는 꽤 추웠다.

  • 1904년 1월 한파: 한반도 기상학의 역사를 다루는 블로거에 의하면, 뮈텔주교의 일기에 서울의 날씨가 쓰여있다. 일기에는 1월 23일 -22°C, 1월 24일 -23°C, 1월 25일 -22°C 라고 쓰여있다고 한다. 다만, 아쉽게도 그는 일기에 정수만 표시하고 소숫점을 표기하지 않아 정확한 수치까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대략적인 비교에 만족해야한다. 어쨌든 이것이 만일 공식 기록이었다면 다시 봐도 정말 1927년 12월 31일의 -23.1°C 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낮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3일 연속으로 -22°C 이하를 기록한 것 역시 1907년 공식 기상관측이래에는 전무했던 일이다. "한반도의 기상관측이 조금만 더 빨랐으면 기록적인 측면에서 대단 기록이 많았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들게 되는 대목이다.[37]
  • 1907년 12월~1908년 4월 한파: 서울은 기상관측 시작부터 한파겨울을 맞이했다. 12월과 1월은 따뜻했다 추워졌다의 반복이었다. 12월 중하순에는 한파가 가장 심해서 서울은 23일 -20.1°C로 영하 20도를 넘겼다. 1월은 역시나 3일정도 추워져 최저기온 영하 두 자릿수를 기록하다 4일정도 따뜻해졌다 하는 전형적인 삼한사온의 패턴을 보였다. 하지만 2월은 삼한사온의 형식에서 벗어나 계속 한파가 이어졌다... 최저기온이 대부분 영하 두 자리수로 이어지는 한파의 모습을 보였으며 평균기온도 -4°C로 (전년도) 12월과 1월의 평균기온보다 더 낮은 기현상이 벌어졌다.[38] 2월의 기록적인 한파는 하순에 들어 점차 약해지기 시작했지만 3월에도 서울 평균기온이 2.9°C를 기록해 평년보다 낮은 기온을 보여주었다. 4월도 영하의 기온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평균기온도 10.1°C로 평년보다 낮은 편이었다.[39]
  • 1910년 1월 30일~1910년 2월 2일 한파: 1909년 12월은 매우 추웠지만 1910년 1월은 전반적으로 따뜻 했으나 1월말~2월초에 심한 한파가 찾아온다. 서울은 1월 30일 아침 6시 -11.8°C 를 기록하더니 해가 뜨고 오히려 기온이 더 떨어져 오후 2시 -15.5°C[40], 오후 10시 -18.2°C 까지 떨어지더니 31일 아침 최저기온 -19.9°C 를 기록했다. 인천도 1월30일 -17.8°C[41], 1월 31일 -18.7°C 로 1931년, 1915년, 1917년, 1923년에 이은 역대 8위를 기록했다. 부산조차도 1월 31일 아침최저 -11.9°C 까지 떨어졌다.
2월 1일은 아침최저 서울이 -17.8°C, 인천 -17.3°C 로 나아지는듯 했으나 추가로 한기가 낮에 또 몰려와서 각각 낮 최고기온 -11.5°C, -11.9°C 를 기록하고 2월2일 아침 최저기온 서울 -19.6°C, 인천 -18.0°C 를 기록했다. 2월 2일 서울의 아침 최저는 1913년 2월 9일과 함께 2월 최저기온 역대 1위이다. 인천의 경우도 1913년 2월 9일 -18.4°C 다음으로 2월 최저기온 역대 2위이다.
  • 1910년 11월~1911년 4월 한파: 11월부터 기온이 낮아지기 시작해 12월이 시작되었다. 서울은 12월 한달 동안 최저기온이 -5°C 이상으로 올라간 적이 3일 정도에 불과했다. 결국 12월 평균기온이 -4.6°C로 평년보다 상당히 낮은 기온을 기록했고 다음해 1월까지 이어졌다. 12월 31일~1월 2일에 큰 한파가 오고 서울은 2일 최저기온이 -19.7°C로 -20°C에 가까웠다. 그 다음부턴 12월과 비슷한 기온을 보이다 역시나 1월 11일부터 또 한파가 시작되어 서울은 13일에 가장 낮아서 -21.5°C로 -20°C를 넘겼다. 이후 한파의 영향으로 -10°C를 밑도는 추위가 계속되다 1월 말에 기온이 크게 올랐다. 하지만 2, 3월에는 일제감정기 치고는 평년수준을 기록했다(평균기온 기준으로 -1.1°C, 4°C) 그리고 4월에는 심한 저온현상이 이어져서 19일에 눈이 내리고[42] 20일에 0.3°C를 기록하였고 평균기온도 9.4°C로 네 번째로 낮았다. 그리고 이 해부터 1913년까지는 연평균기온이 매우 낮아서 여름에도 선선했다.[43]
  • 1912년 9월~1913년 3월 한파: 영하 20도 이상의 한파 기록은 없었지만 서울은 9월부터 이어져온 엄청난 이상 저온 현상으로 10월 초중순부터 영하로 떨어지며[44] 11월 16일 최저기온이 거의 -10°C 정도를 기록하여 그 조짐을 보였다.[45] 12월~1월이야 말할 것도 없고 역시나 최저기온 -18°C에서 -19°C 정도의 큰 한파가 찾아왔다. 이후 한파는 2월이 되어 더 심해져서 2월 9일에 서울은 아침 최저기온 -19.6°C, 낮 최고기온 -12.1°C, 일 평균기온 -15.9°C[46] 1910년 2월과 함께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2월 역대 최저기온을 기록했고 최고기온과 일평균기온은 아예 압도적으로 낮은 역대 1위로 등극한다. 3월에서도 중부지방은 영하 두 자릿수를 기록한 날도 있을 만큼 충분히 기록적이었다. 4월 들어 기온이 크게 올라 봄에 접어들어 겨울이 끝났지만 완연한 봄이라고 하기에는 평년보다 낮았으며, 이후 연말까지 심한 이상 저온 현상으로 인해 1913년 서울의 연평균기온 10˚C로 역대 최저 3위를 기록했다.
  • 1915년 1월 중순~3월 초 한파: 1월 12일~1월 15일 사이에 발생한, 한반도에서 근대적 기상관측 시작 이래 가장 강한 단일 한파이다. 인천, 강릉, 대구, 부산, 서울, 목포 등 당시에 기상관측소가 있던 곳은 대부분 최저순위권에 이름을 올렸을 정도이다. 기상자료개방포털에서 당시 기온을 시간대별로 확인 가능하다. 1914~1915 겨울은 일제강점기 치고는 따뜻한 겨울이었지만[47] 1월 중순만 유독 한파의 강도가 심했다. 즉 엄청나게 강하지만 짧은, 짧고 굵은 한파가 지나간 셈. 1915년 1월 중순 한파의 극점은 전국이 모두 1월 13일이었다. 우선 서울의 기록을 살펴보자. 서울은 12일에 전날인 11일 최저기온 -3.1℃에서 무려 18℃ 가량 떨어진 -20.9℃를 기록했다.[48] 게다가 이 기온은 정황상 아침이 아니라 12일 23시~24시 사이경에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위 링크에서 12일의 기온분포를 시간별로 보면 2시 -4.6°C, 6시 -8.0°C 로 하강했는데, 기온 하강이 해가 뜬 이후에도 여전히 엄청난 속도로 지속되어 한낮인데도 기온이 올라가기는 커녕 오히려 3~5 °C 이상 하강하며 10시 -11.5°C, 14시 -15.0°C[49], 18시 -17.3°C, 22시 -20.7°C 까지 떨어졌다. 그리고 기온 하강이 거의 없어서 다음날인 1월 13일 아침 최저기온 -21.3°C 를 기록했다. 보통 다음날 아침이 -21~-22°C 로 기록적으로 추워도 전날 22시~24시 사이 기온은 아직 -16~-18°C 대에 머무는데 1월 12일은 22시에 이미 -20.7°C 까지 떨어진점이 인상적이다. 1월 13일 서울은 낮 기온도 거의 오르지 못해 낮 최고기온조차 -16.3°C 에 머물렀다.[50] 결국 서울의 1915년 1월 13일의 일 평균기온이 -19.2°C를 기록하여 지금까지도 역대 최저 1위이다. 서울은 다음날인 1월 14일도 아침 최저기온 -21.3°C, 낮 최고기온 -13.8°C 에 그치고 일평균기온도 -18.0°C 로 역대 3위를 기록했다.[51] 인천의 경우도 1월 12일 일최저기온 -20.6°C[52][53]를 기록한다. 1월 13일에는 아침 최저기온 -20.9°C, 낮 최고기온 -15.9°C, 일평균기온 -18.7°C 로 인천지역의 아침 최저기온 역대 2위[54], 일평균기온 역대 1위를 한번에 경신한다. 1월 14일도 아침 최저기온 -20.6°C[55], 낮 최고 -12.5°C, 일평균기온 -16.9°C 로 여전히 극단적으로 추웠다. 이 한파가 놀라운 점은 태백산맥의 영향으로 겨울에 상대적으로 따뜻한 강릉조차 1월 13일 아침 최저기온 -20.2°C 까지 떨어졌다는 것이다. 당연히 강릉 관측사상 역대 최저기온 1위이다. 어지간하면 아무리 추워도 -15°C 아래로 잘 안떨어지는 대구도 1월13일 아침 최저기온 -18.6°C[56], 낮 최고기온 -11.3°C, 일평균기온 -14.9°C[57] 를 기록한다. 따뜻한 도시의 대명사인 부산조차도 1월13일 아침 최저기온 -14.0℃, 낮 최고기온 -8.2°C를 기록해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부산의 역대 최저기온 1위,가장 낮은 최고기온 1위를 달성했다. 이후 15일까지 서울은 -20℃ 아래의 기온을 기록하며 엄청난 추위를 보였으나 16일부터 크게 따뜻해지며 다시 평년 수준으로 돌아갔다. 이후 진짜 한파는 거의 끝났지만 이후에도 평년보다 조금 낮았으며 2월 초순에 잠시 -15℃ 정도의 한파가 있었다.[58][59] 참고로 일본기상청에서 확인해본결과 이 한파 당시에 세워진 역대 순위권 기록이 꽤 있는것으로 보아 일본에게도 1915년 1월 한파는 기록적인 한파였던 것으로 보인다. 나가사키의 예시. 1월14일의 아침 최저, 낮 최고가 모두 낮은쪽으로 상위 1위에 랭크되어 있다. 또한 기온이 급격히 하강하는 것이 후술할 1916년 12월 25~26일, 1931년 1월 10~11일을 닮았다. 그리고 현대로 따져보자면 2015~2016년 겨울에 가장 가깝다. [61]
한편 3월을 하루 앞둔 1915년 2월 28일에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서울의 경우 아침 최저기온이 -13.7 °C, 낮최고기온이 -11.6 °C[62]로 일평균기온이 -13.0 °C를 기록했다. 강릉의 경우 일평균기온이 -11.8 °C를 기록했다. 3월을 하루 앞에 두고 이런 날씨를 기록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며 계절을 고려할때 동년 1월 13일 한파와 강도가 비슷하거나 더 심해 보인다. 이후 3월 1일에는 더 낮아져서 최저기온 -14.1 °C로 현재까지 깨지지 않는 3월 역대 최저기온을 경신했다. 남은 3~4월에도 이상 저온이 기승을 부리면서 추운 날씨는 길게 이어졌다.
  • 1916년 12월 25일 ~1917년 2월 초 한파: 1904년 한반도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1월 평균기온이 가장 낮은 겨울중 하나이다.[63] 1월로는 1936년, 1963년 1월과 함께 서울에서 가장 추웠던 1월로 기록되었다.[64] 1916년 12월 중순까지는 아직 한파가 찾아오지 않아 비교적으로 온화한 편이었다.[65][66] 그러나 크리스마스가 되자마자 최저기온이 약 14°C 가량 떨어지며 갑작스런 한파가 찾아왔다. 크리스마스 낮에는 -4~5 °C 정도였으나 저녁 6시부터 서울의 기온이 -9.7 °C로 점점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밤 10시에는 -14.3 °C까지 떨어지고 이후 26일 새벽 2시 -16.9 °C, 오전 6시 -18.5 °C, 오전 10시 -17.2 °C를 기록한다. 결국 1916년 12월 26일 서울은 아침최저 -19.0°C,[67] 낮 최고기온도 -12.5°C[68] 를 기록, 일평균기온은 -16.1°C 로 산출되어 12월 역대최저치였다. 같은 날 인천은 아침최저 -18.6°C 낮 최고기온도 -12.4°C 일평균기온은 -15.9°C 로 산출, 아침최저기온과 일평균기온 12월 역대최저치를 경신했다. 한파는 2월 하순까지 강약을 반복하며 무려 46일가량 계속되었다. 한파기간동안 총 4번의 기온극점이 있었는데 12월 26일, 1월 4일~1월 5일, 1월 8일~1월 10일, 1월 21일~1월 24일이다. 특히 1월 8일에는 서울 -20.4°C, 인천 -19.5°C, 강릉 -17.0°C, 대구 -16.3°C, 부산 -12.7°C 등으로 많은 지역이 최저기온 극값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서울은 1월 22일에 가장 낮아서 -21.1°C를 기록했다. 1월 평균기온도 서울 -9.0°C (역대 최저 2위), 인천 -8.0°C (역대 최저 1위), 대구 -5.1°C (역대 최저 1위), 부산 -1.5°C (역대 최저 3위) 등으로 모든 지점에서 최저 1~3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게다가 3월 말까지도 최저기온이 빈번이 영하로 떨어지기도 하는 등 1931년 까지는 아니지만 무시못할 꽃샘추위가 찾아왔다. 이후 1917년 서울 등 중부지방은 평년보다 낮은 이상 저온 현상이 계속된다. 역시나 북한은 더 추워서 대한민국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917년 1월 평양의 월평균기온이 -12.1°C, 최저기온은 무려 -28.5°C를 경신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외에도 평안북도 운산군에서는 12월 26일 -37.6°C, 황해북도 신계군에서는 1월 22일 -31.4°C를 기록했다는 정보가 남아있다.[69] 중강진은 12월 -35.2 °C의 기록이 남아있고[70] 다음해 1917년 1월에는 무려 -39.5°C까지 떨어졌다는 기록이 있다.[71] 또한 중강진의 1917년 1월 월 평균기온이 -23.3°C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72] 더군다나 1917년 1월 한파는 한파 강도도 상상초월이었지만 지속적이기까지 해서 서울도 -10 °C 이상으로 최저기온이 거의 오르지 못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중강진의 최저기온을 추측해보면 아마 1월 한달동안 최저기온이 -20 °C 이상 올라가는 것도 손에 꼽을 초강력 한파가 기승을 부렸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위 자료는 기습 한파가 찾아왔던 1916년 12월 26일 낮 12시 시간의 일기도이다. 매우 길게 남쪽으로 뻗어있는 시베리아 고기압을 볼 수 있으며 희미한 기온선을 자세히 보면 서울과 개성, 황해도 해안 지방은 -10°C에서 -15°C 사이에 위치해있고 평양원산 등 그보다 북쪽에 있는 지역은 -15°C에서 -20°C 사이에 해당되고 일부 압록강, 두만강 라인에 속하는 지역들은 무려 낮기온조차 -20°C에서 -25°C 이상 오르지 않는 매우 강한 한파가 기승을 부렸다는 것을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또한 낮 12시에 기록된 것을 보면 이 기온 기준선은 최저기온 기준이 아닌 낮 기온 기준일 가능성이 높다.[73]
  • 1917년 12월 중순~1918년 1월 한파: 1916년 4월부터 이어진 강한 라니냐로 인한 이상 저온의 여파로 2년 연속 한파겨울을 맞이했다. 이 해 12월~이듬해 1월은 북미와 마찬가지로 한반도도 기록적인 한파에 시달렸다. 12월 초중순까지는 평년과 비슷한 기온을 기록했으나, 15일 이후 -10도에서 -20°C 안팎의 한파가 들이닥쳤다. 서울은 12월 15일부터 1월 9일까지 거의 한달 정도인 25일가량 단 한 차례도 낮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크리스마스 이후 한파는 절정에 달했다. 12월 26일 서울의 낮 최고기온은 -12.3°C, 인천은 -12.7°C[74]를 기록했고, 12월 27일 최저기온 서울 -20.4°C(12월 역대 3위)[75] 인천 -17.9°C(12월 역대 2위), 대구 -15.2°C(12월 역대 1위), 부산 -12.0°C(12월 역대 1위) 까지 떨어졌다.[76]월평균기온도 서울 -5.7°C[77], 인천 -5°C, 대구 -2.2°를 기록하여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역대 12월 최저치를 기록했다.[78] 이듬해 1월초에도 한파는 이어져서 1918년 1월 3일에는 서울의 아침 최저기온이 -21.8°C 를 기록했다. 한파는 라니냐가 풀릴 쯤인 2월이 되자마자 풀려서 전 년도처럼 심한 꽃샘추위가 오지는 않았다. 다만 2월 중순에는 1월의 휴유증인지는 몰라도 반짝 한파가 있었지만 2월 말에 최고기온이 크게 오르며 3월에 들어서며 겨울이 끝났다.[79][80] 또한 한파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12월 15일부터 1월 14일 31일간의 평균을 내보면 무려 -9.3 °C로 후술할 1963년 1월보다도 낮고 역대 최저이다. 즉 이 한파가 보름 정도 일찍 왔으면 서울 12월 평균이 공동 하위 1위인 1944년 12월을 아예 압도적으로 제치고 평균 -9도 이하를 기록해 어지간한 1월보다도 훨씬 추운 12월이 될 것이며 영원히 기록을 재경신하기 힘들 것으로 보여진다. 심지어 한파기간인 12월 15일~1월 9일까지의 평균은 무려 -10.2 °C로 아예 영하 두자릿수를 넘는다. 실제로 크리스마스부터 1월 9일까지 1231~0101 연말연초를 제외하고 일평균기온이 영하 두자릿수로 아예 도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아무리 1월이 추웠던 1917년, 1936년, 1963년 등등도 깨지지 않는 기록이다.[81]
  • 1918년 12월 ~ 1919년 2월 한파: 1916~1917~1918보다는 따뜻하지만 그래도 상당히 추웠다. 12월은 당시 치고는 조금 따뜻하긴 했지만 1월에는 매우 추워졌고, 2월 들어 서울에서 -18.3°C의 기온을 보이면서 앞서 서술한 두 한파와 다른 양상을 보여주었다. (서울은) -20°C 이상의 기록은 없었으나 한파가 오면 -15°C 이하를 기록하는 등 12월부터 2월까지 안 넣기에는 애매한 정도이자[82] 평년보다 다소 추운 겨울이였다.[83]
  • 1919년 12월 ~ 1920년 2월 한파: 12월 중순부터 시작된 한파가 3월까지 지속되며 4년 연속 한파가 찾아왔다. 12월 30일 서울은 -19.3도를 기록하며 다음해 1920년 1월에 들어서도 여전히 한파의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았다. 서울의 1월 최저기온 기록은 4일 -22.3°C로 그야말로 엄청난 기록을 보여주었다.[84] 1월 하순이 되어서도 한파는 잘 풀리지 않고 여전히 -10°C에서 -19°C의 한파가 기승을 부렸으며, 1월 말에 잠시 크게 따뜻해졌지만 다시 2월에 들어 추워졌다. 2월 11일 서울의 최저기온 기록은 -18.5°C로 1월 못지 않은(기온을 기록했다. 12월에서 2월까지 빠짐없이 추웠으며, 그야말로 삼한사온의 정석을 보여주었다. 3월에 들어 기온이 점차 온화해졌지만 2000년대 이후 3월 치고는 꽤 낮았다.[86][87] 현재의 북한지역은 남한보다 더 심해서 대한민국 통계청에 따르면 평양은 1920년 1월 최저기온 기록이 무려 -28.5°C 로 1917년 1월과 함께 1월 역대 최저이다!
  • 1922년 1월 한파: 크리스마스 즈음에 잠시 반짝 한파가 지나간 이후로 큰 한파 없이 12월을 마무리했지만, 1월 2일에 역시나 한파가 기승을 부렸으며, 이 한파는 2월 초순까지 이어졌다. 서울은 최저기온이 영하 두 자릿수를 기록하지 않은 날이 5일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갔고 월평균기온이 -7.8℃로 1945년 1월과 함께 역대 1월 평균기온 최저 5위를 달성했다. 15일처럼 잠시 크게 따뜻한 때도 있었으나 곧바로 1월 중하순에 가장 심한 한파가 몰려온다. 북한의 가장 추운 지역으로 잘 알려진 중강군은 11월부터 -20 °C를 넘는 기록을 세우더니 1월 18일에는 -41.6°C를 기록할 만큼 심했으며, 서울은 20일 -21°C를 기록했다. 대한민국 통계청 기온자료에 따르면 평양은 1월 평균기온이 -13.6°C 로 압도적으로 낮아 관측이래 지금까지 깨지지 않는 월평균 최저 1위를 기록했고[88] 아침 최저기온 기록도 -27.8°C 에 달했다. 1월이 거의 빠짐없이 한파로 뒤덮혔으며, 이러한 기록적 한파는 2월 초중순까지 이어지다가 점차 물러갔다.[89] 하지만 추위가 완전히 물러가지는 않아서 3월 말에서 4월 초까지의 꽃샘추위 뒤끝이 심했다. 특히 서울은 3월 23일~24일경에[90] 최심적설량 31cm으로 2010년 1월 4일 25.8cm보다 5.2cm나 많은 폭설이 내렸다.[91] 출처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인천은 더 심해서 무려 43.8cm 라는, 수도권에서 볼 수 있는 수치라고는 믿을 수 없는 값을 3월 하순에 재현한다. 이는 당연히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압도적인 폭설 기록이다. 폭설 다음날인 25일에 서울이 -10.2°C 까지 하강, 춘분 이후 관측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영하 두 자릿수를 기록하였다. 그래도 다행히 4월 중순에 들어서 기온이 올라가며 추위는 풀렸다. 또한 중강진의 1922년 1월 월평균기온 -26.6℃의 믿기지 않는 기록을 보여주며 역대 최하위를 기록했고[92] 중국 하얼빈시에서도 엄청난 추위가 찾아와 월평균기온이 -27.6 ℃1898년 기상관측사상[93] 1월 역대 최저 평균기온으로 남아있다. 평양과 중강진, 하얼빈 셋 다 1월 평균 역대 최저 1위를 동시에 기록한걸 보면 한기의 중심이 북한과 만주쪽에 엄청나게 강하게 형성된듯 하다. 그 영향이 한기중심인 가장자리인 서울도 강하게 미쳐서 서울도 월평균 -7.8°C 의 만만치 않은 값이 나온것이고. 의외로 남부 지방은 1922년 1월의 평균기온, 아침 최저기온 기록 모두 그렇게까지 낮지 않은것을 보면 한기가 한반도 이북에 편중되어 있었다는 점이 더욱 확실해진다.[94] 일본은 도쿄의 1월 평균기온이 0.6℃로 1885년 1월과 함께 역대 최하위를 기록하였고, 1월 22일에는 최저기온이 -8.1℃로 기록되었다. 삿포로에선 1월 평균 -10.2℃로 1876년 관측 이래 가장 추운 1월로 기록되었다. 일별로 들어가면, 1월 17일에 -27.0℃, 다음날에도 -26.8℃를 기록하였다.[95]
  • 1922년 11월 ~ 1923년 4월 한파, 폭설: 월별 평균기록으로 보면 특별하지 않지만 일별로 상세하게 따지면 꽤나 흥미로운 기록이 많은 겨울이다. 1920년대 내에서도 상당히 추웠던 겨울로, 11월부터 때 이른 추위가 기승을 부르며 시작되었다. 11월 2일 -1.0℃ 를 기록하며 일찍이 시작된 추위는 중순인 11월 20일에 최저기온 -8.4℃, 최고기온 -0.6℃ 로 거의 한겨울 날씨를 보이면서 기세를 더해갔다. 하순에도 22일을 제외하면 아침 최저기온이 전부 영하권을 기록하면서 결국 26일 최저기온 -8.8℃, 최고기온 -4.3℃ 을 기록, 다음날인 27일 -11.6℃ 를 기록하면서 11월 극점을 찍는다.[96] 이렇게 하여 산출된 11월 평균기온도 3.5°C로 낮은 편이었다.[97] 시간이 흘러 12월 초에 들어서는 그나마 따뜻한 편이었으나 12월 중순부터 다시 추워지기 시작해 12월 13일 -11.1℃ 를 기록한다. 12월 18일 -12.8℃, 12월 19일 -14.7℃, 12월 20일 -15.7℃ 등 겨울이 깊어질수록 점점 계단식으로 추워지는 매우 교과서적인 추위 패턴이 유지된다. 한편 12월 15일에는 최저기온 -9.0℃, 최고기온 -3.8℃ 에 5.9mm 의 강수가 있는것으로 보아 빼박 폭설이 내렸을 것으로 보인다. 이정도로 낮은 기온이면 수상당량비도 커서[98] 10cm 에 가까운 폭설이 쏟아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12월 26일까지 -10℃ 미만의 추운 날씨가 이어지다가 27일 이후 조금 따뜻해지나 싶더니... 12월 31일 이후 다시 추워져 역대 최악의 신정 한파가 시작된다.1923년 1월 1일 당시 기온을 시간별로 보자면 02:00 -12.5℃, 06:00 -14.3℃ 10:00 -14.7℃, 14:00 -13.9℃[99], 18:00 -16.3℃[100], 22:00 -17.7℃, 새벽 24:00 전에 벌써 -18.4℃ 를 기록하며 마무리했고 다음날인 1월 2일 02:00 -18.2℃, 06:00 -19.7℃ 를 기록한다. 종합적으로 1월 2일 최저기온은 -20.4℃ 에 달했고 최고기온은 -12.0℃ 에 머물러 일 평균기온은 -16.1℃ 로 추산되었다[101]. 다른 지역의 한파는 상대적으로 서울보다 더 기록적이었다. 보통 한파시 서울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따뜻한 인천도 서울과 기온 차이가 크지 않아 최저기온이 -19.4℃ 에 달해 지금까지도 최상위권의 한파이고[102], 강릉 최저기온 -16.6℃, 대구 최저기온 -16.1℃ 최고기온 -9.1℃[103], 부산 최저기온 -12.5℃[104] 등 전국이 순위권 안에 드는 초강력 한파였다. 서울은 3일에도 -19.7℃ 를 기록하고 1월 중순까지도 최저기온이 -10℃ 를 전후하였다. 중순에는 또 한번 한파가 심해져 17일에 최저기온 -20.0℃를 기록하며 영하 20도 이하로 다시 내려갔다. 특히 1월 19일에는 여름이 덥다는 대구광역시조차 -20.2℃의 기온이 관측되어 10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대구의 역대 최저 기온이다.[106] 이렇게까지 대구의 기온이 극단적으로 떨어진 이유는 한파 직전에 닥친 폭설의 영향으로 보인다. 지면에 가득히 쌓인 눈이 햇빛을 반사시키는 등 알베도를 강화시켜 기온을 더욱 극단적으로 내렸다는 원리. 실제로 1월 15일 대구에는 33.5mm 의 강수량이 기록되어있는데 같은 날 기온자료를 살펴보면 최저기온 -3.9℃, 최고기온 1.6℃, 일 평균기온 -2.0℃ 이다. 즉, 저 강수량이 모두 눈으로 내렸을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태. 위 자료들에 근거하여 최소 25~30cm 이상의 대폭설[107][108] 이 쏟아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렇게 쌓인 엄청난 양의 눈은 잘 녹지도 않는다. 때마침 찾아온 강한 한기와 함께 시너지를 내어 기온을 극단적으로 끌어내려 대구의 기온을 16일 -13.5℃, 17일 -15.3℃, 18일 -19.6℃, 19일 -20.2℃ 까지 내린것이다. 그러다가 또 21일이 지나면서 갑자기 따뜻한 기온을 보였다.[109] 서울의 1월 평균기온은 -5.8℃ 로 기록적인 축에는 못 들지만 당시 치고도 추운편. 풀렸던 추위는 2월 들어 다시 기를 폈다. 한파의 강도는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최저기온이 영하 두 자릿수를 기록한 날이 많았다. 2월 중순에는 꽤나 따뜻했으나 한파는 아직 완전히 물러가지 않았고 2월 말에 또 다시 찾아왔다. 26일에는 서울의 최저기온이 -13.9℃, 27일에는 -13.5℃ 를 보이며 3월을 코 앞에 둔 시기치고는 꽤나 지나친 추위였다. 2월 말~3월에는 기온이 올라가서 평범한 3월을 맞이했지만 3월 말부터 다시 떨어져 4월에는 꽃샘추위를 기록하며 다시 기온이 낮아졌다. 꽃샘추위로 인해 4월 20일에는 최저기온이 -1.3℃로 영하권이었으며, 4월 평균기온도 9.3℃로 역대 세 번째로 낮았다.[112]
  • 1926년 12월 ~ 1927년 2월 한파: 12월 초부터 강력한 한파가 찾아와 서울은 9일 -16.9°C를 기록했고 월평균기온도 -4°C로 일제강점기 시대를 감안해서라도 평년보다 2~3도 낮았다. 이후 1927년 1월은 갑자기 크게 따뜻해져서 1월 6일 소한에 서울 최고기온 11.7°C를 기록하면서 엄청난 대비를 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1월 중순에는 다시 평년 수준으로 돌아갔고 15일에는 폭설로 추정되는 날씨를 보였다.[113] 18일부터 기온이 10°C 이상 떨어지며 가장 강한 한파가 찾아와 22일에는 서울 최저기온 -17.7°C를 기록했다. 이 한파는 1월 말까지 계속 이어지다 2월에 들어서자마자 누그러지는 듯 보였으나 7일~14일에 서울 영하 10~14°C의 한파가 있었고 2월 28일에도 끝까지 한파가 기승을 부리며 서울은 28일 -13.3°C를 기록했다.[114] 지금까지 서울 위주로만 서술해서 상대적으로 다른 년도들에 비해 한파의 강도가 조금 뒤쳐지는거 같지만 사실 이 단락이 만들어진 데에는 이유가 있다. 북한 평안북도, 자강도 지역이 유래없이 추웠기 때문이다. 아래 기록들은 모두 비공식 자료인만큼 공신력이 조금 부족하나 강계시는 23일 -42.4°C를 기록해 현재까지도 한반도 역대 2위로 낮은 기온이며[115] 풍산군 19일 -41.5°C, 갑산군 19일 -41°C, 삼수군 22일 -41°C로 한반도 한파의 한계라고 할 수 있는 -40°C보다 아래의 기온을 기록한 지역도 몇 있었으며 이는 후술할 역대 기록들도 쉽게 미치지 못하는 역대 최하위 기온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외에도 평양이 -25.5°C 를 기록했으며 창성군은 22일 -34.2°C, 그나마 좀 이름이 알려진 의주군조차 22일 -32°C로 여러모로 평안북도 지방에서는 역대 최악의 한파라고 불릴 만하다.야쿠츠크 -50°C 기록 심지어 상하이까지도 혹한으로 피해를 입었다. 12월 9일 한파의 원인 또한 평안북도 신의주시압록강을 맞대고 있는 중국 단둥시에는 1927년 1월 월평균기온이 -11.0 °C를 기록하였다(...)[116]
  • 1927년 12월 ~ 1928년 2월 한파: 12월 중순까지는 평년과 비슷한 기온을 기록하였으나, 18일부터 추위가 시작되어 영하 10도를 전후한 기온을 기록하며 추위가 27~28일 (서울에) 19.5cm라는 폭설이 내린 이후로 들어 더욱 심해졌다. 서울은 29일에 최저기온이 이미 -20.9°C로 영하 20도를 넘겼으며, 특히 1927년 말일인 31일에는 93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서울의 공식 최저기온인 -23.1°C를 기록하기도 했다.[117]당시 기사 당시 기사 2 부산, 김해 지방에는 많은 눈이 내리고 낙동강까지 얼었다. 이후 영하 15도를 밑도는 추위가 1월 8일까지 계속되었으며, 중부지방에서 영하 20도를 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 매서운 추위를 보였으나 9일부터 크게 따뜻해지며 평년기온을 유지하거나 조금 낮은 수준의 기온을 기록하였다.[118] 하지만 2월에는 다시 추워지며 겨울다운 기온을 보였으나(영하 10도 전후로), 전의 12월 29일 ~ 1월 8일의 아성을 이기지는 못하고 2월 22일부터 서서히 따뜻해지며 3월이 되자마자 겨울이 끝났....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것이 한강은 전년 크리스마스에 얼었던 것이 4월 4일에야 그제야 해빙을 기록하면서 역대 가장 늦은 한강 해빙일을 기록했다.
  • 1931년 1월~4월 한파: 전년도 11월은 이상 저온이 발생했지만 12월과 1월 초순은 따뜻한 편이었으나 1월 9일부터 급속도로 1915년 1월 급의 기록적인 한파가 들이닥쳤다. 서울은 전날 8일보다 -13°C 떨어진 -14.2°C를 기록했고, 1월 10~11일경에는 더욱 심해진다. 기상자료개방포털에 따르면 1월 10일 서울은 최저기온 -21.9°C, 일최고기온 -13.0°C(낮 최고기온이 아님) 를 기록했는데[119] 시간대별로는 2시 -17.7°C , 6시 -20.0°C, 10시 -19.3°C, 14시 -17.1°C[120] , 오후 6시 -18.9°C, 오후 10시 -19.7°C 를 기록한다. 특히 다음날인 1월 11일 서울에서는 아침 최저기온 -22.5°C를 기록해 역대 서울의 공식 1월 최저기온 1위, 연 전체로 확대해도 2위로 남게 되었다.[121] 낮 최고기온도 -14.7°C 로 가히 놀라운 수준. 역시나 인천도 1월 11일 아침 최저기온이 -21.0°C 까지 떨어졌는데 이는 지금까지 깨지지않는 부동의 인천 관측사상 역대최저 1위 기록이다! 이 한파는 4월까지 이어져서 유래없는 꽃샘추위가 발생했다. 2월 8일에 서울 최저기온이 -17.8°C 를 기록하고 3월에도 영하 두 자릿수를 기록하기도 했으며[122], 4월 6일에는 최고기온마저 고작 3.7°C밖에 오르지 못 했다. 3월에도 첫날을 제외[123]하면 이보다 낮은 최고기온을 기록한 날이 없어서[124] 더욱 특이하다. 4월 하순부터 날씨가 제대로 풀리기 시작했으나, 중순까지 이어졌던 이상 저온의 여파가 아주 컸던 탓에 4월의 평균기온이 8.8°C로 기록되어 지금까지도 역대 최하위로 남아있다.[125][126][127]
  • 1931년 ~ 1932년: 엄청난 한파를 보여줬던 1931년 1월과는 정반대의 의미로 기록적이었는데, 한파는 12월 중순, 1월 초중순, 2월 중순에만 몇 차례 오고 그마저도 서울 기준 최저 -14˚C 정도로 큰 한파가 찾아왔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128] 게다가 1월 6일, 소한 무렵에 서울 최고기온 14.4˚C를 달성하며 1월 이상 고온 현상이 많이 일어나는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서울 1월 최고기온을 달성했다.[129] 하지만 한파가 아예 없었던 것이 아니라서 12월 13일에는 기온이 가장 낮아 서울 최저기온 -14.7˚C를 기록했다.[130][132][133] [135]#
  • 1933년 1~3월 한파: 12월은 일제 시대 치고는 따뜻했고 1981~2010년 평년과 비슷했으며 가끔 중부지방 영하 -10도의 추위가 찾아오는 정도에 그쳤지만 1월 11일부터 급속도로 추워지더니 3월 중순까지 한파가 기승을 부렸다. 1월 13일에는 한반도 사상 공식 최저기온인 -43.6 °C가 이 때 중강진에서 기록되었다.[136] 신의주, 라선특별시 등은 -22°C ~ 23°C 사이를 기록하고 평양은 -20°C를 기록했다. 마찬가지로 서울에서도 한파의 영향으로 -18.2°C가 기록되었다.당시 기사 1933년의 한파는 3월까지도 지속되어 유래없는 꽃샘추위가 발생하였다. 1933년 3월 7일에도 중강진이 -32℃, 나선 -16°C, 신의주 -21°C, 평양 -17°C, 원산과 서울은 -12℃를 기록하였고, 심지어 제주도(-1℃)까지 영하에 머물렀다.당시 기사정리하자면, 1월 중순부터 시작된 최장 한파가 3월까지 이어졌으며, 중부지방은 영하 10도에서 18도 안팎의 한파가 지속되었고, 2~3월에는 며칠간 좀 나아지긴 하였으나 여전히 추웠다. 3월 20일경부터 서서히 봄으로 접어들었으며, 반대로 이전의 한파를 비웃기라도 하듯 4월에는 이상 고온이 일어났다.[137][138]
  • 1934년 1~3월 한파: 전년도 못지않게 한파가 지속되어 추웠던 겨울이다. 1933년 12월은 전반적으로 따뜻했으나 12월 말부터 시작된 한파가 그대로 3월까지 지속되어 혹독했다. 1월에는 서울의 최고기온이 고작 2.8°C였으며, 최저기온은 1월 12일에 기록된 -18.7°C이다. 1월 한 달간 중부지방이 영하 10도에서 15도 정도의 날씨를 꾸준히 기록하였으며 그 결과 서울 평균기온이 -8.3℃로 역대 최저 4위를 기록했다. 다만 1917년이나 1936년처럼 -20°C 이하를 찍은적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1963년 1월 처럼 낮 최고기온이 극단적으로 낮은것도 아닌지라 딱히 내세울게 굉장히 애매한 포지션의 겨울이다. 그저 애매하게 -10~-15°C 최저기온만 이어졌을뿐. 부산은 1월 24일에 -9.9°C를 기록하고 대구는 28일에 -14.6°C를 기록, 인천은 25일에 -16°C의 최저기온을 기록하였다. 2~3월 들어서 서서히 한파의 기세가 약해졌으나, 여전히 최저기온이 영하권이었다. 3월 하순부터 서서히 영상으로 올라가며 봄날씨를 보이며 겨울이 끝났다.
  • 1934년 12월 한파: 11월 말부터 추워져서 서울 등 중부지방이 12월 초부터 영하 7도에서 9도 사이를 연일 기록하여 기상관측사상 제일 빠른 한강 결빙을 기록하였다.(12월 4일) 이 한파는 12월 중순에 들어 서서히 약해져서 12월 중순~3월은 대부분 평년보다 높은 정도의 기온[139]을 기록하였으나, 몇 번의 반짝 한파가 있었다.
  • 1935년 12월~1936년 4월 한파: 12~2월 겨울 평균기온이 위에서 상술한 1916년 12월 ~ 1917년 2월 겨울보다도 낮다. 기상관측사상 한파의 규모가 후술할 1944~1945년과 함께 가장 컸던 겨울이다. 서울의 월평균기온은 12월 -3.9°C[140], 1월 -8.8°C[141], 2월 -4.4°C 기록하여 겨울평균기온이 -5.7°C 였다. 현대에는 겨울평균기온이 -3°C 밑으로 내려가는 것 조차 지난 30년간 단 한번도 없다는 걸[142]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대단한 수치이다. 3월 월평균기온도 관측이래 유일한 영하인 -0.2°C 였다.[143] 서울은 1월 한달동안 최저기온이 -10°C 위로 올라간 날이 단 3일(2일, 25일, 28일)밖에 되지 않았으며, 한파가 극에 달한 1월 17일~18일에는 최저기온이 각각 -20.1°C, -19.7°C를 기록하고 최고기온도 -12°C에 그쳐 매서운 추위를 보여주었다. 당시 기사[144] 이러한 추위는 2월과 3월에도 지속되어, 3월 2일에는 서울의 최저기온이 -13.7°C를 기록하기도 했다. 2월 29일 함흥에서는 -21°C를 기록했다. 한파로 인한 동사자도 많았다. 심지어 4월에도 종종 영하권 기온을 보이면서 1931년 이후 두 번째로 추웠다[145] 다행히 5월이 되자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었지만 이 한파의 여파로 1936년 여름은 서늘하고 이상 저온을 보였다. 결국 서울 연평균기온이 1947년에 이어 9.8˚C로 1917년과 함께 최저 2위를 기록했다.[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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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를 보면 유럽 지역에 비교적 고온이 일어났다는 사실과 달리 중앙아시아, 동북아시아 지역이 강한 한파를 보였는데 몽골 일대랑 북시베리아는 아예 시퍼렇게 변했다. 여러모로 얼마나 기록적인 한파였는지 보여주는 셈이다.
  • 1937년 12월 ~ 1938년 2월 한파: 1935~1936년 겨울의 하위호환 격으로 한파가 찾아왔다. 서울의 월평균기온 12월 -3.9°C, 1월 -6.3°C, 2월 -3.3°C로 겨울평균기온이 -4.5°C로 -4°C 이하를 기록했다. 1월 27일에는 기온이 가장 낮아 서울 최저기온 -19°C를 기록했다. 이후 3월은 몇 번의 꽃샘추위를 제외하면 대부분 평년 수준이었고 4월도 그다지 큰 꽃샘추위 없이 지나갔다.
  • 1939년 11월 ~ 1940년 3월 한파: 그해 여름엔 "20세기2018년 폭염"이란 타이틀을 붙여도 될 정도로 1994년과 함께 어마어마한 폭염기록을 보였고 10월까지 늦더위가 매우 강했으나 11월 중순부터 최저 영하의 날씨가 기록되는 등 이른 추위가 기록되었고, 이후 한동안 가을 날씨가 계속되다가 25일부터 기온이 떨어져 26일에 최고/최저 -3.3°C/-10.2°C를 기록하였다.[147] 이 강추위로 본격적인 겨울 날씨로 돌입, 12월 중순까지 최저 -11~13°C를 기록한 날도 있었다. 그러다 20일부터 이듬해 1월 2일까지 날씨가 풀렸지만, 3일에 낮기온이 영하를 기록하면서 따뜻한 날씨가 끊겼다. 그래도 4일부터 다시 날씨가 따뜻해졌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아 다시 한파가 찾아와 9일 최고기온 -10.5°C, 10일에는 최저기온 -17.7°C로 연중 가장 낮은 기온을 기록했다. 12~13일에 날씨가 다시 풀리는 듯 싶었지만, 14일부터 다시 영하로 떨어지면서 장장 한달에 가까운 지옥문이 열렸다. 그로 인해 1940년 1월 서울의 월평균기온은 -7.4°C 로 역대 8위에 달했다.[148] 2월 8일의 -13.9°C를 끝으로 영하 10도 이하의 한파에서 벗어났지만, 또 3월 3일까지 한달에 가까운 시간 동안 영하의 날씨가 이어졌다. 그 뒤 본격적으로 날씨가 따뜻했지나 했지만, 중순에 다시 영하 7도라는 꽃샘추위가 찾아왔다. 22일에 -4.6°C를 기록한 것을 끝으로 강력한 꽃샘추위는 끝났다. 다만 이 여파로 평균기온이 3.7°C를 기록했다. 다만 당시 치고는 살짝 낮은 것이다.[149]
  • 1941년 1월 중순 ~ 2월 한파: 1940년 12월부터 1941년 1월 중순까지는 평년보다 따뜻한 날씨를 주로 보이다 약 13일부터 추워지기 시작해 한파가 강약을 반복하며 -5°C에서 -18°C까지 반복되었다. 1월 말에는 더욱 심해져서 31일 서울은 -20.4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후 한파는 따뜻했다 추워졌다 패턴의 반복으로 2월 중순까지 계속되다 20일 들어 점차 기온이 올라갔다.[150]
  • 1942년 1월 한파: 12월은 평년보다 따뜻했지만 1월이 되자 큰 대비를 보이면서 서울 평균기온 -6.4°C를 기록했다.
  • 1943년 1월~2월 한파: 1월 5일 서울 최저기온은 -15°C 정도였으나 이상하게 광주광역시만 유난히 온도가 낮게 기록되어 -19.4°C로 역대 최하위를 기록했다.[151] 이후 12일에도 한기가 다시 남하하여 대구 -14.9°C, 부산은 -12.4°C로 후술할 1963년 1월 한파 당시 1월 16일과 온도가 같아 공동 5위, 인천은 13일 -16°C를 기록했고 서울은 (12일) -18.6°C를 기록했다. 단 1943년 여름은 더웠다.
  • 1944년 12월~1945년 3월 한파: "일제강점기 마지막 겨울"이라는 타이틀답게(?) 서울 기준 겨울 평균기온이 -6.1°C로 역대 가장 낮은 겨울 평균기온을 기록했다. 서울의 12, 1, 2월 평균기온은 각각 -5.7°C, -7.8°C, -4.9°C였으며, 12월은 1917년과 함께 역대 12월 평균기온 최저 1위를 달성했고, 1월도 앞서 서술한 1922년 1월과 평균기온이 같았다. 1935~1936년과 함께 한파의 규모가 제일 컸다. -6.1°C 겨울철 최저기온이랑 3~4월 평균기온은 1936년이 더 낮았다. $(document).ready(function(){ $(\"#rfn-153\").bind(\"contextmenu\",function(e){ $(\"#Modalrfn-153\").attr(\"style\", \"display: block;\"); return false; }); $(\"#Modalrfn-153\").on(\"click\", function(){ $(\"#Modalrfn-153\").attr(\"style\", \"display: none;\"); }); $(\"#rfn-153\").bind(\"touchend\", function(){ $(\"#Modalrfn-153\").attr(\"style\", \"display: block;\"); }); $(\"#Modalrfn-153\").bind(\"touchstart\", function(){ $(\"#Modalrfn-153\").attr(\"style\", \"display: none;\"); }); }); [153] 1944~1945 겨울의 최저기온은 -19.1°C이며, 1935~1936 겨울은 -20.1°C이다. 그리고 1936년 3,4월 평균기온은 각각 -0.2°C, 9.1°C를 기록했고, 1945년 3,4월은 각각 2.3°C, 11°C를 기록했다.">[154] 그나마 -20°C 이상의 기록은 없었다는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1944년 12월은 최저기온이 대부분 -9°C에서 -15°C 가량을 기록하고 한파가 풀리지 않아 다음해 1월까지 이어졌다. 1월에 들어 한파가 서서히 풀리나 싶더니 1월 하순에 다시 한파가 몰려와 27일 서울 최저기온 -19.1°C를 기록했다. 2월도 마찬가지로 비슷한 흐름으로 최저기온 -7°C에서 -15°C의 한파가 끝내 풀리지 않으면서 1935~1936년과 함께 역대 가장 한파가 오래 지속된 겨울로 남게 되었다. 3월의 평균기온도 2.3°C로 역대 최하위인 1936년의 -0.2°C까지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꽃샘추위가 심했으며, 이러한 추위는 4월 중순부터 기온이 올라가며 점차 풀렸 다.[155][156]
  • 1946년 12월~1947년 3월 한파: 11월은 어느정도 따뜻했지만 하순부터 기온이 내려가며 12월이 시작되었다. 이후 눈에 띄는 한파는 8일부터 시작되어 강약을 반복한 채 중부지방 영하 10도 이상의 추위가 계속되었다. 12일에는 한강도 얼어서 이른 결빙을 기록했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26일에 갑자기 따뜻해졌다가 27일부터 다시 추워져서 29일에는 서울 -17°C, 인천 -12.2°C, 부산 -7°C, 광주 -10.8°C 등의 매서운 추위를 보였다. 30~31일간 풀리면서 다음달 1월은 평년과 비슷한 기온을 보이다가 1월 하순에 또 한파가 지나갔다. 28일에 서울 -15.1°C, 인천 -12.8°C를 기록하고 남부지방도 영하 10도를 조금 웃도는 날씨를 보였다. 이 한파는 또 오래 지속되어 2월에 더 심해졌다. 2월 3일에는 서울 -17°C, 인천 -15.2°C, 부산 -10.8°C, 광주 -10.4°C, 대구 -13.1°C의 혹한으로 2월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이후 중부지방은 최저기온 영하 10도 이상의 추위가 꾸준히 지속되다가 약해지며 23일 들어 기온을 회복하였지만 3월 4일에 서울이 -10.6°C, 대구가 -7.2°C를 기록하는 등 매우 변덕스러웠다가 3월 하순부터 기온을 회복하여 영상으로 올라가며 겨울이 끝나갔다.[157] 겨울은 끝났지만 이후 쌀쌀한 날씨가 계속되고 이상 저온 현상을 보여 서울 연평균기온 9.6˚C로 역대 최하위를 기록했다.
  • 1949년 12월 (말)~1950년 1월 (초) 한파: 이 기간을 제외하면 2019~2020년과 비교가 가능할 정도의수준의 따뜻한 겨울 중 하나였으나 이때 한정 강한 한파가 기승을 부렸다.[158] 12월 하순부터 서울 최저기온이 영하 두 자릿수를 기록하더니, 31일~1일간 잠시 따뜻해지나 싶더니 더욱 강한 한파가 닥쳤다. 1월 7일 서울의 최저기온이 -18°C를 기록하여 (서울의) 1949~1950 겨울 최저기온을 기록했다. 이후 1월 중순 들어 크게 따뜻해져서 1월 17일 서울의 최고기온이 10.1°C로 엄청난 대비를 보였다. 또 1월치고 믿기지 않는 많은 비가 내려 지금까지도 서울의 강수량 96.9mm로 역대 1월 강수량 1위로 남아있고 1월 30일에는 서울에 (일최다강수량) 51.9mm의 폭우가 내렸다.[159] 물론 1월 하순들어 고온현상이 해소되고 2월은 평년보다 살짝 따뜻한 수준에 가까웠지만 3월 12일경의 꽃샘추위를 뒤로하고 겨울이 사실상 끝났다.[160]
  • 1956년 12월~1957년 3월 한파: 11월 중순부터 평년보다 상당히 낮은 기온을 보였다. 이 때의 겨울은 좀 특이한 편에 속했는데, 12월과 2월 평균기온이 1월보다 낮게 기록되었다. 12월 4일부터 서서히 추워지더니 8일부터 26일까지 -10°C에서 -15°C를 밑도는 한파가 풀리지 않고 지속되어 결국 서울에서 -5.2°C라는 평년보다 매우 낮은 편의 평균기온 기록을 달성하였다. 그래도 27일부터 서서히 따뜻해지면서 1월 한 달간은 12월처럼 한파가 지속되지 않고 평년 정도의 기온을 보이며 2월 초까지 지속되었으나, 9일부터 추위가 다시 시작되었으며 서울은 최저기온이 전날 -3.8°C에서 -14°C로 뚝 떨어졌다. 추위가 가장 심했던 11일에는 서울의 기온이 -17.3°C를 기록하였고, 영하 10도 아래로 잘 안 내려가는 부산도 -10.8°C를 기록하였다. 이후 전체적으로 한파가 점점 나아지긴 하였으나, 상당히 오래 지속되어서 결국 서울의 2,3월 평균기온은 각각 -4.3°C, 0°C를 기록하였다. 결국 4월이 되어서야 최저기온 비로소 영상권으로 올라가며 겨울이 마무리되었다.
  • 1958년 1월 한파: 서울 기준으로 1950년대 가장 낮은 월평균을 기록한 1월이다. 그 수치는 -6.0°C이고 최저기온도 심하게 낮지 않아 별로 기록적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우나 2째주의 고온을 제외하면 1963년급의 추위와 맞먹으며 최고기온이 유난히 낮은것이 특징이다. 1958년 1월의 특징은 한파도 한파지만 그 어느해보다도 중부지방에 눈이 정말 많이 내렸다는 것이다. 서울은 1월 1일 시작부터 5cm 의 많은 눈이 내리더니 기온이 급하강, 1월3일 아침 최저 -17.4°C, 낮 최고기온 -8.8°C 의 1차로 제법 강한 추위를 겪는다. 1월 5일 까지 -10°C 안팎의 추위가 이어지며 1월 6일부터 낮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며 추위는 풀린다. 1월 12일까지는 평년보다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며 추위가 없는듯 했으나 1월 13일 갑자기 9.8cm 의 폭설이 쏟아지고 이 폭설은 1월 14일 2.4cm, 1월 15일 5.5cm 로 3일 내내 총 17.7cm 의 눈이 쏟아지며 이어진다. 결국 기압골 후면으로 강한 한기가 남하하는 조건이 형성되어 15일 낮부터 급격히 기온이 떨어져 2차 대한파가 찾아온다.1월15일 최저기온 -17.2°C[161], 1월16일 최저기온 -18.2°C, 최고기온 -12.6°C, 일 평균기온은 -15.7°C, 1월 17일 최저기온 -17.5°C, 최고기온 -10.4°C, 1월18일 최저기온 -17.4°C, 최고기온 -8.1°C 의 강한 한파가 몰아친다. 특히 1월 16일 최고기온 -12.6°C 는 광복 이후 역대 3위의 낮은 최고기온 기록이다. 낮 최고기온이 계속 이렇게 낮은 이유는 한파 직전 계속 폭설이 내려서 알베도[162]가 커졌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계속 아침 최저기온 -10°C 안팎 낮에도 영하권의 추위가 이어지다가 1월 20일 2.4cm, 1월 21일 9.1cm, 이틀 간 총 11.5cm 의 폭설이 쏟아진다. 폭설 이후 기온이 급하강 1월 22일 최저 -15.1°C, 1월 23일 최저 -17.8°C, 낮 최고기온 -11.7°C, 일평균기온 -15.1°C, 1월24일 최저 -18.0°C 로 3차 대한파가 찾아온다. 이 한파는 쉽게 안풀려서 2월1일까지 -10°C 이하의 추위가 계속 이어진다. 즉, 1월 15일 찾아온 2차 대한파가 3차 대한파와 연결되어[163] 약 20일 가까이 추위가 이어진것. 따라서 장기한파로 인해 1950년대중 가장 낮은 월평균 -6.0°C 기록한 것이고. 특이사항으로 이 당시 한파가 주목받을 점은 보통 이정도 장기적으로 추우면 대륙고기압의 영향이 너무 쎄서 지배적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서울은 눈이 자주 내리지 않고 극도로 건조하다.[164] 그런데 1958년1월은 일별 신적설량 합계가 한달간 무려 60.4cm[165][166] 에 달하고 대설일수[168]도 5일, 단순 적설 일수도 10일에 달했다. 특히 26일의 18.9cm 는 관측사상 1월 역대 3위에 해당하는 값이다.[169] 2010년대 중반 이후 서울에 폭설 내리는것이 희귀해진 상황에서, 1958년 1월 같은 겨울이 다시오면 겨울 기상 매니아들과 눈을 보면 신나하는 아이들에게는 천국(?)일듯 하다. 운전하는 사람들에게는 지옥이 따로 없는 겨울이겠지만. 이 영향인지 3~4월 꽃샘추위가 심각했지만 5월부터 기온이 압도적으로 크게 높아져서 6월은 7~8월보다 극값이 높은 폭염이 찾아오기도 했다.[170]
  • 1959년 1월 한파: 1958년 12월은 평년보다 매우 높은 초이상 고온 현상을 보이며 서울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3.6˚C나 높은 4.0˚C를 기록했고 -3.2˚C 아래로 떨어지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 오히려 11월 20일 -3.3˚C의 기온이 관측되어 12월 최저기온이 11월 최저기온보다 높은 기현상이 벌어졌다(!). 하지만 1월이 시작하자마자 기온이 낮아져서 1월 5일 서울 최저기온 -19.8˚C,[171] 최고기온조차 -13.1˚C, 특히 극단적으로 낮은 낮기온으로 인해 일평균기온 -16.4℃[172]로 엄청난 대비를 보여줬다.#[173] 이후 중순에 들어서 기온이 조금 높아지는듯 보였으나 17일을 전후하여 기온이 다시 낮아지기 시작해 17일 서울 최저기온 -18˚C, 최고기온 -11.7˚C를 기록했다. 이후 1월 하순들어 크게 따뜻해져서 2월은 거의 3월과 다름없는 기온을 보이고 항상 딸려오는 3~4월 꽃샘추위도 없었으며, 사실상 겨울이 끝났다. 서울의 1월 평균기온은 -5.1˚C로 1958년 12월의 4˚C보다 9.1˚C 낮아서 큰 대비를 보였으나 이후 2~4월에는 큰 추위가 없었다.

  • 1962년 12월 30일 ~ 1963년 2월 한파: 1962년 12월 29일까지는 평년보다 높은 고온이었으나[174], 12월 30일에 최고기온11°C 이상 급락 및 중부지방에 폭설이 내리면서 급변, 1월 평균기온이 서울 -9.2°C[175], 부산 -2.2°C[176], 대구 -4.9°C 등에 이르렀다. 서울과 부산은 지금까지도 월평균 역대 최저치이다. 부산의 최저기온이 1월 15일에 -12.4°C 까지 내려갔으며, 한파는 1월 23일에 한파가 극에 달해 서울의 아침 최저기온 -18.4°C, 낮 최고기온 -12.1°C, 일평균기온 -15.5℃ 를 기록했다. 그 다음날인 24일도 아침 최저기온 -18.0°C, 낮 최고기온 -10.6°C, 일평균기온 -14.6℃ 로 거의 비슷한 추위가 이어졌다. 서울이 이정도니 강원도는 얼마나 추웠을까? 1963년 1월 23일자 동아일보에 따르면 23일 아침 설악산 향로봉에서는 무려 -31.5°C , 강원 화천군 대성산에서는 -30°C 라는 엄청난 기온이 기록되었다.라는 기온이 기록되었으며 특히나 최고기온조차 낮았기 때문에 서울은 -20°C 이상으로 내려가지 않아도 역대 가장 낮은 1월 평균기온을 기록했다. 최고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간 날이 1월에서 고작 4일뿐이였으며, 11~28일에는 아예 최저기온 영하 두자릿수로 도배(...)되어있다.[177] 서울은 하필 이 시기에 연탄이 귀해져서 부족한 연탄으로 잊지 못할 겨울을 보냈다. 2월도 꽤나 추운 편이었으나 하순 들어 기온이 올라갔다. 그로 인해 3월은 당시 치고 이상 고온을 보였다. 1월 15일 기사 1월 24일 기사
  • 1964년 2월 한파: (전년) 12월과 1월은 반짝 한파가 가끔 찾아왔을 뿐 평년보다 따뜻한 편이었다. 하지만 2월 6~10일 내린 눈으로 인해 11일 들어 본격적인 한파가 기승을 부렸다. 설날인 2월 13일 서울은 -16.2°C 의 기온을 기록하였으며 이날은 기상관측사상 겨울에 한강이 제일 늦게 얼었다. 이 기록적인 2월 한파는 25일 들어 서서히 물러나갔으나 3월 초에는 다소 온화했으나 3월 15일과 19일에 많은 눈이 내려 중~하순에는 다소 강한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려 3.5도로 다음해 보다는 아니지만 다소 추운 편이었다. 그러나 3월 29일부터 기온이 올라 4월은 이상 고온을 보였다.
  • 1965년 1월 한파: 1964년 12월은 전반적으로 큰 추위가 없이 포근했다가 1월 11일경 갑자기 혹한이 찾아온다. 11일 서울은 "아침 최저기온" -16.0°C 를 기록하고, 낮에도 기온이 거의 오르지 못해 오후 3시 기온 -13.2°C 를 기록한다. 그리고 해가 지면서 기온이 빠르게 하강, 밤 12시가 다 되어서 -16.5°C 를 기록하여 아침에 기록된 최저기온을 밤에 재경신한다. 다음날인 12일 서울은 최저기온 -18.1°C, 최고기온 -11.2°C, 일평균기온 -15.3°C 를 기록했다. 이렇게 보면 특별한게 없는거 같지만 이 단락이 만들어진 이유는 강원도 산지 때문이다. 설악산 향로봉과 대성산이 -33°C 라는 매우 기록적인 수치를 기록했기 때문. 물론 열거한 산악지역들의 기록은 비공식이지만 비공식일지라도 1981년 1월 5일 대한민국 공식 최저기온인 -32.6°C 보다 낮다는건 대단한일이다. 서울의 1월 평균기온은 -4.2°C로 평년보다 조금 낮았다.

  • 1965년 12월~1966년 2월 한파: 12월 중순까지는 평년 정도의 기온을 기록했으나, 15일부터 기온이 곤두박질하더니 17일에는 서울의 최저기온이 -18.2°C를 기록하는 등 이례적인 12월 한파가 찾아왔다. 이후 한파의 여파로 낮은 기온을 보이다가 1월에 들어서 평년의 기온을 회복하는 듯 싶었으나 17일부터 추워지더니 20일에는 서울 -18°C, 인천 -17.2°C, 부산 -10.8°C, 광주 -11°C 등의 12월 못지않은 추위가 찾아오고 오래 지속된 편이었지만 31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크게 따뜻해졌다. 이후 2월은 따뜻했다 추워졌다의 반복으로 점차 기온이 평년 수준을 회복하였지만 2월 23일에 서울 -13.6°C를 기록하는 등 변덕스러운 편이였다.[178][179]
  • 1966년 11월~1967년 2월 한파: 작년에 이어서 한파겨울을 맞이했으며 작년보다 한파가 지속되어[180] 좀 더 추웠다. 11월 말부터 기온이 추워지더니 12월 1일부터 -12.5°C의 최저기온을 기록하며 12월을 시작했다가 다시 기온이 상승하여 평년 수준을 유지했다. 이후 크리스마스 이브날인 24일부터 다시 추워지며 27일에는 서울 -15.2°C, 대구 -11.8°C, 광주 -9.8°C, 부산 -9.9°C등의 12월 한파가 1월까지 조금 누그러진 채 지속되었다. 1월 14일부터 다시 추워지며 1월 16일에 서울 -18.4°C, 인천 -17.8°C, 부산 -12.2°C, 대구 -15.4°C, 광주 -12.1°C를 기록하며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다. 18일부터 한파가 풀리며 2월까지 크게 따뜻해졌지만 2월 셋째주에는 꽤 낮은 기온을 기록했다. (영하 10도 전후로) 하지만 20일부터 기온이 올라서 어느정도 봄날씨로 접어들었다.[181]
  • 1967년 12월 ~ 1968년 2월 한파: 서울의 12,1,2월 평균기온은 각각 -4.9°C, -4°C, -4.4°C를 기록하여 겨울 평균기온(12~2월 평균)이 -4.4°C 로 -4°C를 넘었다. 이는 1946년~1947년 겨울의 -4.5℃ 이래 해방 이후 2번째로 추운 겨울이고, 6.25 전쟁 이후로는 역대 가장 추운 겨울인것이다. 또한 1928년에 이어 역대 두번째로 늦은 한강 해빙일(3월 28일)을 기록했다. 12월이 이례적으로 추웠던 겨울이므로 12월 위주로 조명해보겠다. 서울은 12월 초순부터 -10°C 를 넘다들며 추웠는데 특히 12월 8일에는 -14.5°C 를 기록했다. 12월 중순에는 추위가 약간 누그러졌지만 눈이 잦게 내렸다. 특히 12월 14일 서울에는 하루 동안 12.2cm 의 폭설이 쏟아졌다. 12월 하순에는 추위가 정점에 달했는데 상당히 기록적이었다. 특히 서울의 12월 하순 평균기온으로는 -9.1 °C로 어지간한 일제강점기 한파보다도 훨씬 낮고 역대 최저 2위에 속하는 값이다.[182] 12월 20~21일에 접어들자 한기가 와서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으며 한파가 누그러들기는 커녕 오히려 크리스마스 이후 더욱 추워지더니 27일 최저기온 -10.8°C, 28일 최저기온 -14.8°C, 최고기온 -9.0°C, 29일 최저기온 -17.0°C, 최고기온 -10.6°C, 30일 최저기온 -17.4°C에 달해 1967년~1968년 겨울 최저기온을 달성했다. 인천도 -16.3°C, 춘천은 무려 -21.7°C 까지 떨어지며 현재까지도 춘천 12월 역대 최저기온 기록으로 남아있다. 1월 이후로는 그렇게 극단적인 한파는 없었으나 서울 기준 1월 15일 -15.1°C 를 기록하는등 상당히 추운 날씨는 여전히 나타났고 추위가 얇고 길게 이어져 1,2월도 월 평균기온이 -4°C 이하를 기록하게 된다. 해당 겨울이 기록적인 한파는 적어서 왜 굵은 글씨 처리했는지 의아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별 기록이 아닌 월 평균기온 관점으로 해석하면 당위성이 충분해진다. 서울 기준 12~2월 평균기온이 모두 -4°C 이하를 기록한 겨울은 1944년~1945년 겨울[183]과 이 겨울이 유일(!)하다는 점에서 해당 겨울의 한파가 얼마나 끈질기게 멈추지 않고 이어졌는지 알 수 있다. 1935년~1936년 겨울조차도 12월은 -3.9°C 로 아쉽게(?) 3달 연속 -4°C 이하를 기록하는데 실패한다. 겨울내내 멈추지 않고 월평균 -4°C 이하를 기록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184] 또한 겨울 평균기온 -4.4°C 라는 기록은 각종 넘사벽 추위가 넘쳐나는 일제시대 기록까지 다 합쳐도 역대 6위에 해당하는 기록으로 일제치고도 굉장히 추운 편이다.
  • 1968년 12월 31일~1969년 2월 한파 및 폭설: 1968년 12월에는 이상 고온으로 서울의 평균기온이 3.1˚C일 만큼 온화하였다.#[187] 하지만 1월이 되자마자 한파가 와서 서울의 1월 평균기온은 -3.5˚C를 기록했다.[188] 최저기온은 1월 3일의 -15.2˚C이고 2월에도 한파의 기조가 이어져서 마찬가지로 서울 평균기온 -2.7˚C를 기록하고 최저기온도 -15.9˚C로 1월보다 더 낮았다. 눈 또한 이례적으로 많이 내렸는데, 서울의 계절합계깊이신적설량이 1980년~1981년의 88.5cm을 압도적으로 누르고 102.2cm을 기록하여 1위를 차지했다. 특히 1월 28일에는 서울에 엄청난 폭설이 내려 최심신적설량 25.6cm으로 2010년 1월 초의 25.8cm에 거의 근접한 기록을 보였다.[189] 대전광역시에서는 2월 6일 -19.0˚C로 기상관측을 시작하자마자[190] 역대 최하위 기온을 갖게 되었다. 같은날 수원시에서는 -25.8˚C를 기록, 이도 현재까지 역대 최하위 기온이다. 청주시에서는 2월 6일 무려 -26.4˚C로 강원도 산간지역으로 따져도 최하위권인 기온을 기록하였다.
  • 1970년 1월 ~ 3월 한파: 해방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서울 기온이 영하 20도를 기록했다.[191]. 2월 초순에도 한파가 있었으나, 서서히 풀려가기...만 했으면 3월까지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다. 2월 말부터 다시 추워지기 시작하여 3월 26일까지 겨울 수준의 기온을 보였다. 결국 2월과 3월의 평균 기온이 별 차이가 없거나 3월이 2월보다 더 낮은 기현상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 [1970년 11월 ~ 1971년 3월 한파 - 이미 11월 중순부터 부분적으로 -4˚C로 내려가는 등 한파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11월 30일에 -11.9˚C로 역대 11월 최저 기온 1위를 찍었고, 12월 말에 본격적인 한파가 시작되었다. 1월 중순에는 날씨가 풀릴 것 처럼 보였으나 곧 다시 한파가 찾아왔다. 2월에도 중순과 하순에 걸쳐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다가, 3월 5일~14일에 한파가 또다시 찾아왔는데, 그 중 6일에 최고 -4˚C, 7일에는 최저 -11.6˚C를 기록하기도 했다. 15일 이후로는 큰 한파 없이 끝났다. 날짜만 보면 몇달 내내 한파가 판친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 중간마다 최저 기온마저 영상으로 오르는 날도 있는 등 한파와 거리가 먼 애매한 날씨가 제법 있었다.
  • 1973년 12월 ~ 1974년 2월 한파 - 각 월말마다 강력한 한파가 찾아왔다. 12월 24일에는 전국적으로 일평균기온이 매우 낮으며 여러 지역에서 12월 일평균기온 최저기록이 나왔다.[192] 원주는 최저 -26.8°C, 일평균 -20.4°C를 기록했다. 1월 24일에는 서울이 -15.5°C까지 내려갔으며 2월 하반기 한파도 거센데 서울이 2월 26일에 -14.0°C까지 내려갔다.
  • 1976년 12월 (25일) ~ 1977년 2월 (22일), 3월 (3일~5일) 한파 - 크리스마스 낮까지만 하더라도 그다지 춥지 날씨를 보였는데, 밤부터 기온이 돌연 13도 이상 떨어지더니, 다음 날에는 최고 기온마저 전일 대비 15도 이상 떨어진 -10도를 기록하며 갑작스레 한파가 시작되었다.[193] 12월 27일에는 서울 최저기온이 -18.5°C를 기록할 정도였다. 대관령은 1977년 1월에 한파가 절정에 달했는데, 1월 25일의 최고기온 1.2°C 빼고 전부 영하를 기록할 정도였다.[194] 특히 한파 막바지인 2월 중순이 제일 기세가 강력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때 대관령 -21.7°C, 원주 -21.5˚C, 서울 -16.8˚C, 대전 -14.6˚C, 대구 -13.8˚C, 광주 -12.6˚C를 기록했다. 이 한파는 2월 22일까지 이어졌다가 곧 기온이 크게 올랐고, 3월 3일과 5일의 반짝 한파를 끝으로 1976년 12월~1977년 2월 한파는 끝이 났다.
  • 1979년 11월, 1980년 1월~2월 한파: 다음 겨울 못지 않게 기록이 의외로 많은 겨울으로, 11월 초에는 날씨가 따뜻했지만 중순부터 기온이 급하락, 무려 11월 14일-11.1 °C로 평년보다 약 13~16도 이상 낮은 초이상 저온을 보였다. 이 기록은 11월 중순 역대 최저기온으로 2위인 1912년 11월의 -9.9 °C보다 1.2도나 차이나는 일제강점기에도 기록하지 못했던 압도적인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195] 이후 날씨가 풀리는듯 싶었으나 하순까지 다소 추운 날씨를 기록하며 12월로 이어졌다. 이 압도적인 초이상 저온의 영향으로 서울 평균기온 5.7 °C로 11월치고 꽤 낮았다.[196] 이후 12월은 중순까지 별 추위 없이 고온현상으로 평균기온 1.4 °C2019년 12월과 같았으나 해를 넘기며 1월 5일부터 1월 22일까지 한파가 지속되었다. 1월 17일에 -15.9 °C의 극값을 기록하며 상당히 낮았고 이후 1월 26일부터 기온이 크게 오르며 3일 연속으로 최고 8 °C 이상을 기록해 2018년 1월 중순처럼 따뜻한 날씨가 이어졌다. 월초에도 5일까지 큰 추위 없이 따뜻했던 관계로 1월 평균기온은 -3.7 °C로 장기한파 치고 높았다. 하지만 2018년처럼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면 그 뒤에는 기록적 한파가 있는 법, 29일부터 급속도로 낮아지더니 31일에는 -15.4 °C로 다시 추워졌으며 이후 2월 중순까지 후술할 1984년의 상위호환 같은 날씨가 이어진다. 특히 2월 1일부터 -14 °C가 기록되었고 이후 6~8일에 최저 -14 °C 이하의 날씨가 3일 연속 이어졌다. 7일에는 -14.5 °C까지 떨어져 2월의 최저극값을 기록했다. 또한 다른 날에도 최저기온이 연속으로 영하 두 자릿수 이하였고 높아도 -9 °C대인 기온 경향으로 서울 2월 상순 평균기온이 -8.8 °C로 역대 최저 1위이며 일제강점기의 장기한파를 압도한다.[197] 중순에도 후술할 1984년보다도 다소 추운 날씨가 이어지며 영하 10도 이하인 날이 기록되었지만 하순에는 영상 10도 까지 올라가는 등 따뜻해지며 3월로 들어서며 겨울이 끝났다. 이로써 서울 2월 평균기온 -3.1 °C로 매우 낮았으며[198] 이후 3월과 11월을 제외하고 1980년에는 지속적인 이상 저온[199]을 보이며 거의 1910년대~1920년대 수준으로 연평균이 매우 낮았다.
  • 1980년 12월 ~ 1981년 1월, 2월[200] 한파: 11월은 따뜻한 편이었으나 12월이 되어 큰 추위가 찾아왔다. 이미 서울의 평균기온이 -3.8°C 로 평년보다 상당히 낮았다. 12월 말 들어 크리스마스 전후로 눈이 내리고[201] 한파가 더욱 심해져 29일에는 서울 최저기온 -16.2°C를 기록했다. 새해부터 폭설이 온 다음# 1월 5일 경기도 양평군에서 대한민국 기상관측 사상 공식 최저기온인 -32.6℃가 관측되기도 했다.[202][203][204] [205] 또한 이때 양평의 월평균기온이 -13.5℃로 대한민국 기상관측사상 가장 낮았고, 최고기온 평균조차 -3.4℃, 최저기온 평균은 무려 -22.8℃라는 무시무시한 수치가 기록되었다. 그 해 1월 양평의 최저 기온이 31일 중 무려 22일이 최저기온이 -20도 이하였고, 새해부터 폭설이 내려 그에 따른 반사율로 1,2,3일에 걸쳐 최저기온이 하루 지날 때마다 대략 10도씩 강하하더니 3~6일간 -30도 이하의 최저기온이 연일 관측되었다.[206] [207] 그 외에도 충주 -28.5℃, 홍천 -28.1℃, 원주 -27.6℃ 등 중부 내륙 지역에서 역대 최저 기온이 기록되었다. 한파로 인한 동파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혹한의 시기에 방영된 컬러방송 2월 25일~28일에도 엄청난 한파가 몰아닥쳤고, 일교차가 컸던 1월 한파와 달리 낮에도 기온이 크게 오르지 않았으며, 남부 지방도 여기서 자유롭지 않았고, 최저기온 -10℃ 이하를 기록한 곳이 많았다. 서울 등 수도권은 2월 중순을 제외하면 전년 12월~2월까지 빠짐없이 추웠다.[209] 그리고 일교차때문에 묻히지만 서울 기준 1963년, 2011년 1월처럼 평년보다 높은 날이 단 하루도 없이 31일 내내 저온 도배였다. 수도권도 2월 25일~28일간의 한파에 영향을 받아 26일 서울 -15.6℃까지 떨어지고 제주도마저 -4℃로 떨어졌다.당시 기사[210]
  • 1983년 12월 ~ 1984년 2월 한파 - 11월 17일부터 -6.0 °C를 기록하는 등 떡잎이 남달랐지만 이후 다시 올랐다. 이후 별다른 추위없이 평년 수준이나 고온이 이어지다가 12월 14일부터 점점 추워지더니 23일부터 영하 10도 이하인 날이 잦았다. 또한 크리스마스에 -13.5 °C를 기록하며 12월 극값이 되었다. 이후 1984년 2월 중순까지 한파가 이어졌다. 특이하게도 1984년 1월은 최저극값이 -13.6 °C로 평범하지만 월 내내 영하 8도에서 13도 사이를 연속으로 기록한 점에서 특이하다. 그리고 2월이 시작하자마자 오히려 한파가 가장 강해져서 서울에서 3일 -15.0 °C를 기록하고 이후 영하 10도 이하의 장기한파가 계속 이어지며 6일에는 -15.1 °C로 극값을 재경신하면서 2월치고 매우 낮았다. 특히 서울의 2월 상순 평균기온이 -8.2 °C로 하위 3위이며 2위인 1945년을 제외하고 일제강점기 한파를 압도하는 기록이다.[211] 중순부터는 한파가 풀리기 시작했지만 2018년 2월처럼 여전히 다소 추운 날씨가 계속되었으며 하순부터 기온이 올라가나 했더니 오히려 월말에도 영하 8도의 한파가 닥쳤다. 이런 장기한파 경향 때문에 서울의 1월 평균기온이 -5.9˚C, 2월 평균기온이 -3.5˚C로 매우 낮았다. 그리고 이 한파는 3월까지도 다소 추운 날씨로 이어졌다. 비록 이 겨울은 최저기온이 별로 기록적인 편이 아니지만 한파의 지속강도는 1935~1936년, 1944~1945년 겨울 수준으로 매우 강한 축에 속했다. 물론 1936년, 1945년, 1963년 수준으로 월 내내 영하 두자릿수를 기록하고 극값도 영하 18도 이하로 매우 낮지는 않아서 감히 덤벼들만한 겨울은 아니긴 하다(...)
  • 1984년 12월 하순~1985년 2월 한파 - 2010~2011년 겨울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겨울으로, 이보다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전년도처럼 장기한파가 꽤 길게 이어진 겨울 중 하나이다. 11월은 따뜻했지만 월말에는 꽤 추웠으며, 12월에는 별다른 추위없이 20일까지 지루한 고온이 이어지는듯 했으나[212] 21일부터 29일까지 낮 최고기온이 영하권을 지속적으로 기록했고 최저기온도 연속으로 영하 두자릿수를 기록한 날이 많았기 때문에 12월 평균기온이 -0.9 °C로 살짝 낮았다.[213] 이후 1985년 1월까지 평년 수준에 머무는듯 했으나 곧바로 다시 추워지며 1월 한달동안 장기한파가 시작된다. 특히나 1월 중순에는 추위가 가장 강해 13~17일 연속으로 영하 12도 아래였고, 1월 14일에 최저기온 -16.7 °C로 가장 한파가 강했다. 이후 1월 하순에도 여전히 한파의 기세는 가시지 않았고, 1월 말에는 오히려 강해져서 1월 30일에 -16.3 °C를 기록하여 장기한파의 위엄을 보여주었다. 특히 낮 최고기온도 낮은 편이었는데, 거의 한달 내내 영하였던 2011년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영상의 기온을 기록한 날이 그닥 많지 않았으며, 높아도 2~3도권이었다. 이렇게 해서 서울의 1월 평균기온은 전년도와 같은 -5.9 °C를 기록하였다. 이후 2월에는 갑자기 기온이 크게 올라서 1월 31일과 2월 1일의 최저기온 차가 10도 가까이 벌어졌다. 다만 중순부터 다시 추워졌고, 사실상 봄에 가까운 2월 하순인 21~23일에 영하 10도 이하인 날이 연속으로 기록되며 강한 뒤끝을 보여주었다. 이후 2월 말로 향하며 날씨가 그럭저럭 풀렸지만 3월 초중순까지 꽃샘추위가 잦았다. 2월 평균은 -0.3 °C로 평년과 비슷했다.
  • 1985년 11월 ~ 1986년 2월 한파 - 2017~2018년 겨울의 상위호환 겨울으로, 진행양상도 비슷한 특징을 보여준다. 1985년 11월 초는 최저기온이 10 °C 이상인 고온이 있었으나 10일부터 기온이 크게 떨어지면서 겨울에 돌입했다. 12일에 최저기온 -3.0 °C를 기록했으며, 20~22일에는 다시 기온이 올라가는듯 보였으나 또다시 급락하여 11월 29일에는 -4.6 °C를 기록했다. 이로써 1985년 11월 평균기온은 5.6 °C2017년 11월과 같았다. 이후 12월 초까지 애매하게 낮다가 중순부터 강한 한파가 지속되는데, 12월 10일에 -13.6 °C, 관악산에서는 -17.4 °C의 기록을 보여 12월의 최저극값을 기록했다. 한파는 풀리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해져서 12월 중순동안 낮 최고기온도 영하권을 맴돌았고 14~18일에는 다시 한기가 몰려와 16일 -13.4 °C로 다시 영하 13도 아래를 보였으며 이 기간동안 연속으로 최저기온이 영하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중순의 강한 한파로 인해 서울의 12월 중순 평균기온이 -6.8 °C로 기상관측 역사상 하위 4위를 기록했다. 하순에도 다소 추웠으나 월말로 갈수록 점점 최저기온이 높아졌다.[214] 하지만 1월부터 다시 급락하며 4일부터 6일까지 3일 연속으로 영하 16도 이하를 기록하였고 5일 서울의 최저기온 -19.2˚C[215], 최고기온조차 -13.6℃를 기록했다. 특히 대관령의 최고기온이 -19.1℃으로 역대 가장 낮은 최고기온을 기록했다.[216] 이 시기에 관악산 기상자료도 있는데, 1월 5일 최저기온이 -22.8 °C, 4일부터 6일까지 연속으로 영하 20도 이하, 3일과 7일을 제외하고 영하 14도 이하는 가볍게 넘는 정신나간 기록을 보여준다. 그리고 서울 공식 기상자료에도 3일과 7일을 제외하고 영하 11도는 가볍게 넘는 최저기온으로 인해 서울 1월 상순 평균기온이 -9.6 °C를 기록해 사실상 큰형님이나 다름없는 압도적인 기록을 가진 1917년 -11.5 °C , 1918년 -10.8 °C 다음으로 하위 3위에 속하는 값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해를 끝으로 서울이 영하 19도 아래로 떨어지는 극단적인 한파는 찾아오지 않고 있으며 수원도 이 해 1월 6일의 -20.1℃를 끝으로 영하 20도 이하의 기온이 찾아오지 않고 있다.[217] 이 혹한은 1월 15일부터 풀려서 이상 고온을 보였으나, 1월 하순에도 영하 11도 정도의 반짝한파가 존재했다. 서울의 평균기온은 -5.4 °C를 기록하여 84년과 85년 1월보다는 높았으나 1월 초의 엄청난 한파가 지속되었을 경우에는 진짜로 일제강점기 날고기는 한파를 압도하는 월평균 기록을 세웠을 수도 있다.[218] 이후 2월 초에는 영하 8~12도의 장기한파가 기승을 부렸으며, 중순에는 날씨가 풀렸지만 그닥 고온이 아니었고 사실상 봄이나 다름없는 2월 하순에는 오히려 한파가 강해져서(...) 2월 27일-9.2 °C를 기록해 강한 뒤끝을 보였으나 3월 3일부터 풀리며 겨울이 끝났다. 서울의 2월 평균기온 기록은 -3.3 °C1980년1984년의 중간에 속하지만 2월치고 매우 낮은 수준의 월평균을 기록했다. 이후 1986년 한 해 동안 1936년을 연상케 하는 이상 저온 경향을 보인다.[219]
  • 1990년 1월 한파 및 폭설: 강원도 강릉에서 최고적설량인 138.1cm가 기록되었다. 제주도 성산에서는 1월 23일에 최저기온 -7.0˚C를 기록, 제주도 한정으로 역대 최저기온 1위이다. 서울에서도 1990년대에는 한파가 적고 비교적 따뜻한 경향을 보이지만 1990년 1월에는 -17.1 °C까지 떨어진 강한 한파를 기록했다. 다만 다음달에는 다시 이상 고온이 찾아왔다.
  • 1991년 2월 21일 ~ 24일 한파 - 23일 전라북도 장수군에서 -25.8℃로 전국 최저기온을 기록하였고, 서울 기준 22일 최고기온 -8.4℃, 23일 최저기온 -15℃를 기록했다.
  • 1993년~1994년: 이상 고온이 있었던 겨울이지만 한파가 없지는 않았다. 12월 중순에 몇번 한파가 찾아와서 12월 중순인 16일에 서울 최저기온이 -11.2℃까지 떨어졌다. 몇번의 반짝추위가 있어서 12월은 평년 수준이였다. 1월은 이상 고온을 보여서 서울 평균기온 -0.9℃였으나 한파가 없는것은 아니였다. 대한 무렵에 최저기온 영하 10℃를 밑도는 한파가 약 5일정도 찾아왔다. 2월에도 설날에 한파가 찾아왔다. 다만 따뜻한 날이 많은 1993~1994년 겨울은 따뜻했으나 3월에는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려서 이상 저온이 찾아왔다. 그러나 4월에는 초이상고온이 찾아왔으며 1994년 폭염으로 이어졌다.
  • 1996년 11월 30일 ~ 12월 3일 한파: 11월 30일부터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더니만 12월에는 첫날부터 강력한 한파가 나타났다. 서울의 경우 11월 30일에 -8.0℃를 기록했으며 12월 1일에는 -10.5°C를 기록했다. 장수군의 경우 12월 1일에 -21.0℃, 12월 2일에 -22.1℃를 세웠다. 하루만 더 빨랐다면 많은 지역에서 11월 역대 최저기온을 달성했을 것이다.[220]
  • 1998년 1월 한파: 이상 고온인 1월이나 갑작스럽게 한파가 와서 26일 -15.4°C를 기록했다.

2.4. 21세기


  • 2001년 1월 한파: 이례적으로 큰 한파는 없던 1980년대 후반, 1990년대[221], 2000년과 달리 서울은 21세기 시작부터 2021년 1월과 함께 21세기 역대 가장 낮은 기온을 기록했고 이 기록은 2021년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222] 철원은 1주일 동안 최저 기온이 영하 20도 아래였다. 1월 15일 서울 최저기온 -18.6˚C, 최고기온 -12.4˚C, 철원 최고기온 -13.7˚C, 1월 16일 철원 최저기온 -29.2˚C[223]로 각각 1월 최저치를 기록하였다. 서울 외곽에 있는 김포공항에서는 15일 무려 -23.5°C로 1927년 12월 31일에 기록한 역대 서울 최저기온 -23.1°C보다 낮은 기온을 보이기도 했다. 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잘 안 내려가는 부산도 1월 15일 최저기온 -10.3˚C를 기록했다. 기상청 관계자에 따르면 16일에 비공식적으로(AWS)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에서 -33.0˚C까지 내려간 적이 있다고 한다.[224] 이는 1981년 1월 5일에 기록된 대한민국 역대 공식 최저기온인 양평의 -32.6˚C보다 낮은 수치이다.# 안흥 뿐만이 아니라 평창군 봉평면에서도 -32.3℃를 기록했고, 경기 연천군 신서면에서도 역시 -31.5℃를 찍는 등 영하 30도를 밑도는 비공식 기록들이 쏟아졌다. [225] 서울은 2월 중순에 눈도 많이 내려 최심신적설량 23.8cm으로 2010년, 1969년 다음의 기록을 세웠다. 어찌보면 당연한 거겠지만, 북한도 엄청난 한파가 몰아닥쳐서, 수도 평양은 12일과 16일 -26.5℃로 1973년 관측사상 가장 낮은 기온을 기록하였고[226], 신의주시도 12일 -25℃( 정확히는 -24.9˚C) 가량의 기온을 기록하였다. 그 밖에도 15일 강계시 -32.7℃ 사리원시는 -24℃ (정확히는 -23.9℃), 안주시는 12일 -26.7℃, 청진시는 14일 -19.2℃, 북한의 가장 추운 지역으로 손꼽히는 중강진, 삼지연시, 장진군에서는 영하 35~36도의 강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개성시는 자료가 잘려서 잘 볼 수 없지만 12일 -20.5℃를 기록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 해 1월 중순은 2020년 다음으로 역대 최고의 이상 고온에 폭우까지 내렸다.
  • 2001년 12월 ~ 2002년 1월 (초) 한파: 이상 고온이 심한 2001~2002 겨울이지만 겨울 시작은 의외로 추웠다. 10월은 이상 고온이 심하였지만 11월부터 기온이 조금씩 내려갔다.[227] 12월이 되자 강하지는 않지만 추위가 길게 이어졌다.[228] 결국 12월은 평년보다 조금 낮았다. 그리고 연말과 연초에 한파가 찾아와서 한강이 얼어붙어서 나름대로 춥긴 추운 겨울이였고 1월 3일에 한파일수를 기록했다. 그러나 1월 9일 낮부터 기온이 꽤 올라서 1월 중순에는 초이상고온이 왔다. 이후에도 계속 평년 수준을 웃도는 등 4월까지 이상 고온이 심하였다.
  • 2002년 11월, 2003년 1월 4~6일, 28~30일 한파: 10월부터 기온이 서울 12.8도, 전국 12.8도로 평년보다 낮았다. 서울은 10월 말에 영하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1월에 아예 절정을 찍었는데, 서울 평균 4.0도, 전국 4.8도로 평년보다 약 3도 가량이나 낮았고 아예 대놓고 기상학적 겨울 날씨를 보였다. 이 해 첫눈은 11월 8일에 내리는 등 평년보다 매우 빨리 내렸으며, 월 전체가 초겨울 날씨를 보였다. 그러나 12월에는 기온이 오히려 올라 2002~2003년 겨울은 포근한 겨울이었으나 1월은 한파가 있다 보니 평년과 비슷했다. 1월 5일에 -15.5°C까지 떨어졌다. 이후 소한 이후로는 대체로 포근했으나 1월 말에 한파가 와서 1월 29일에 -13.9°C까지 떨어졌다.
  • 2004년 1월 21일 ~ 1월 23일, 3월 1~7일 한파: 2003년 11월~2004년 1월 중순 이상 고온으로 한강 첫 얼음이 평년보다 10일, 전년보다 17일 늦은 1월 23일에 관측되었다. 1월 22일에 -16.7°C까지 떨어진 나름 2017~2018급의 강한 한파였으나[229] 한파의 기간이 짧다보니 서울 평균기온은 -1.5°C로 평년보다 높았다. 3월 5일에는 충청, 강원, 경북 일부 지역에 큰 눈이 내렸는데 특히 대전, 청주가 피해가 심했다. 경부고속도로가 30시간정도 마비될 정도이며 헬리콥터로 비상식량, 구호물품을 공수받는 상황이었으니 심각하다. 대전은 3월 5일 하루동안 49.0cm의 폭설이 내렸으며 3월 5일 일강수량으로도 69.8mm가 나오는 어마어마한 폭설이었다.[230] 청주는 3월 5일 하루동안 32.0cm의 폭설이 내렸으며 일강수량으로도 57.0mm가 나왔다.[231] 폭설로 인한 알베도로 3월 7일 대전은 -7.1°C, 청주는 -9.0°C를 기록했다.
  • 2005년 2월 ~3월 한파: 2004년 11~12월은 역대급 초이상고온을 기록했고 2005년 1월은 평년 수준을 유지했으나 2월에도 그 기온을 유지해 2~3월동안 평년보다 상당히 낮았고 눈이 거의 없는 부산 지역에 3월 5~6일 이틀동안 37.2cm라는 기네스북 급의 엄청난 눈이 내렸다. 부산은 도로가 마비됐으며 동해안 지역이 폭설이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 2005년 12월 한파: 1980년 12월 이후 25년만의 12월 한강 결빙을 기록했으며[232], 서울의 12월 평균기온은 -3.9°C로 1907년 12월, 1935년 12월, 1937년 12월과 같은 평균기온을 기록했다. 전국 평균 기온도 -2.2°C, 평균 최고 기온 3.0°C, 평균 최저 기온 -7.0°C로, 역대 12월 각 수치 최저 1위를 찍었다. 또한 호남 지역에서는 큰 폭설이 내렸다. 하지만 그 다음 달인 2006년 1월은 기온이 크게 올라 평균 기온이 오히려 2005년 12월보다 매우 높았다. 2006년 3월 13일에 부산이 -6.5°C를 기록한 후 한파는 끝났다.
  • 2006년 12월 28~30일 한파: 2006~2007년 겨울은 2019~2020년 겨울처럼 이상 고온을 보였으나 12월에는 한파가 있긴 했다. 12월 29일에 서울에서 -12.3°C를 기록해서 한파일수를 기록했다. 그러다가 바로 풀려 한강이 얼지는 않았다.
  • 2008년 12월 5~7일 한파: 2008년 12월은 전반적으로 포근하고 이상 고온이 찾아왔던 달이지만 12월 4일에 눈이 온뒤 기습한파가 왔다. 특히 12월 6일에는 -13.1°C까지 떨어졌다. 6일만 더 빨랐다면 기상 관측 최초로 11월 한파일수가 기록될 뻔 했다. 이후 8일부터 기온이 크게 올라 곧바로 이상 고온이 다시 찾아왔다.
  • 2009년 12월 ~ 2010년 1월 한파: 2005년 1월~2009년 1월의 이상 고온을 뒤로 하고 6년 만에 1월에 강한 한파가 찾아왔다.[233][234] 이 해 겨울을 기점으로 겨울이 추워지면서 연교차가 특히 더 커졌으며 북극한파라는 개념이 처음 생겼을 정도로 추웠다. 2009년 11월부터 음의 북극진동이 크게 일어나고 변종 엘니뇨 현상, 엘니뇨 모도키 현상과 시베리아 고기압이 예년보다 크게 확장하기 시작한데다 남서쪽에서 유입되는 따뜻하고 습한 수증기까지 겹쳐 엄청난 양의 폭설과 함께 한파가 찾아왔다. 또한 11월 초부터 영하로 떨어지는 등 초이상 고온이 일어난 11월 4~10일을 제외하고 추웠으며, 12월 역시 일부를 제외하고 추웠다. 그리고 평소에 폭설을 볼 수 없는 중부지방에도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235] 폭설 이후 한파가 더욱 심해져서, 서울 외곽에 있는 김포공항의 기온이 6일 -22.6°C로 앞서 서술한 1931년 1월 11일의 -22.5°C보다도 낮았다. 다음날인 7일과 14일에도 김포공항의 기온은 영하 20도를 밑돌았다.같은 날에는 철원이 비록 비공식이긴 하지만 -30.5˚C를 찍기도 하였다.[236] 그 후 2월에는 기온은 평범했으나 10~14일에 강원영동에 50cm가 넘는 폭설이 내렸고, 그 밖의 지역도 많은 눈이 내려 교통에 큰 불편이 있었다. 그러다가 2월 마지막주에 초이상 고온이 왔으나[237] 그러나 3월이 되자 기온이 내려가서 3~4월에는 어마어마한 꽃샘추위가 찾아와 3월 하순까지 서울에 적설량이 기록되었고,[238] 4월이 되자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었지만 일부를 제외하고는 3월 날씨를 보였고 4월 말에 강원도 대관령에 눈보라가 치는 등 이상기후가 이어졌다. 결국 2010년 4월은 2010년대 중 가장 심한 꽃샘추위가 찾아와 역대 5번째로 낮은 4월 평균기온을 기록하였다(서울 기준)[239] 결국 2010년 봄은 4월 초에 시작되었지만[240] 평년보다 매우 낮았다. 5월은 이상 고온과 이상 저온이 번갈아 있었으며 초~중반에는 비슷하거나 조금 높았고 하순부터는 6월 1일까지 이상 저온을 보이다 갑자기 더워져 이후에는 평년 이상의 날씨를 보인다. 요약하자면 4월에는 거의 소빙하기급 날씨를 보인 셈.
  • 2010년 12월 23일 ~ 2011년 1월, 2월 12~14일 한파: 2010년 크리스마스 즈음을 시작으로 1월 31일까지 계속되었다. 의심의 여지없이 2000년대 이후 가장 추운 겨울 중 하나로, 너무 추워서 이 때 '29한2온' 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진 것은 유명하다. 주 원인은 음의 북극 진동으로 인한 상층 한기가 오랫동안 한반도에 머물러 있었던 것인데 이 달 평균 기온은 서울이 -7.2℃신의주의 평년 기온인 -6.6℃보다 더 낮은 값을 기록했다.[241][242] 서울은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간 시간이 1월 전체 744시간 중의(24시간 x 31일) 48분에 불과했으며, 최저기온이 영하 10도 이하인 날이 20일에 달했다. 특히 한파의 고장인 대관령의 월 평균기온-11.2˚C를 기록했고 월 최고기온 평균조차 -5.9˚C를 기록했다(...) 부산도 흔치 않게 1월 중 단 하루도 최저기온이 영하를 벗어난 날이 없었다. 1월 16일 최저기온은 서울 -17.8˚C, 대구 -13.1˚C, 철원은 -27˚C, 춘천은 -23˚C까지 내려갔다. 심지어 부산은 무려 -12.8°C로 앞서 서술한 1915년 1월 13일의 -14˚C 이후 96년 만의 한파로 기록되었다. 또 2010년 12월 30일~2010년 12월 31일 호남지방에도 전라도 지역 평균 20cm 이상을 넘는 수준의 엄청난 폭설이 쏟아졌다.[243] 이렇듯 거의 40일 가까이 이어진 최장 한파는 2월 1일이 되어 한강도 녹으면서 거짓말처럼 풀렸다. 다만 2월 12일~15일경에는 다시 추워졌으나 전반적으로 그 혹독했던 1월에 비해 기온이 많이 올랐으며, 평년보다 조금 높았다. [245] 하지만 전년도처럼 봄철 저온현상이 심하여서 3월~4월 사이에 강력한 꽃샘추위가 찾아왔다. 따뜻한 부산도 3월에 최저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 몇 있었으며, 4월에도 최저기온이 10˚C를 넘기는 날이 많지 않았다. 서울은 4월 29일까지 최저기온이 단 한번도 10도를 넘기지 못했다. 한편 4월 마지막 날에는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강력한 폭풍우가 쏟아졌는데, 매우 많은 낙뢰가 관측되었고 바람도 거칠게 불어댔다. 서울에는 2002년 이후 처음으로 4월 호우주의보가 내려졌다. 4월까지 평년보다 매우 낮아서 일제강점기급 날씨를 보인 셈.
  • 2011년 12월 (중순)~2012년 2월 한파: 그해 여름 폭염이 적었던 대신 가을부터 늦더위가 찾아오며[246] 이상 고온 현상을 보이며 평년보다 매우 높았다.[247] 이후 2011년 12월은 평년보다 조금 낮았으며 2012년 1월은 평년과 비슷한 기온을 기록했다. 한파라고 할 만한 날씨는 두달 다 존재하긴 했으나 심하지는 않고 기간도 짧았으며 특히 2010~2011년 겨울의 한파가 심해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1월 31일 기록적 폭설이 쏟아진 이후 2월이 되자마자 기습 한파가 찾아왔다. 2월 1일 서울 아침 최저기온은 -15.8˚C까지 급강하했고 낮 기온도 영하 8.1도에 그쳤으며, 특히 2월 2일에는 서울 기준으로 아침 최저기온이 -17.1˚C까지 곤두박질쳐서 -17.3°C를 기록한 1957년 2월 11일 이후 55년 만에 2월에 영하 17도 미만으로 떨어졌고 낮 기온마저 -9.5˚C까지 오르는 데 그쳐 1957년 2월 10일 최고기온이 -10.3˚C를 기록한 이래 55년만에 2월 중 가장 추운 오후로 기록되고 말았다. 서울 외곽에 있는 김포공항의 기온은 같은 날 영하 20도를 밑돌았다(-20.2°C). 부산도 당일 아침 최저기온이 -9.9˚C까지 떨어져서 1974년 -10.5˚C 이후로 38년만에 가장 추운 2월로 기록되었다. 뿐만 아니라 당일 철원 -24.6˚C, 대관령 및 봉화 -23˚C, 제천 -23.8˚C, 심지어 제주도까지 -2.8˚C로 전국적으로 기록적인 최강 한파가 기승을 부렸다. 다음날(2월 3일)도 마찬가지로 서울 -14.5˚C, 철원 -24.2˚C, 대관령 -20.2˚C, 제천 -25.9˚C, 심지어 제주 -1.3˚C로 전국적으로 기록적인 한파가 이어졌다. 특히, 경북 봉화군에서는 야간대기복사냉각 효과까지 더해져 무려 -27.7˚C까지 기온이 매우 크게 떨어져서 봉화군의 역대 최저기온 기록을 찍었다. 이 수치는 2001년[248] 이후 남한의 가장 낮은 공식 최저기온이기도 하다.이 기록적인 2월 한파는 입춘인 4일 누그러지며 물러갔다. 하지만 지난 해(2011년) 9월부터 강수량이 심각하게 적었던 탓에 봄 가뭄이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3월에도 이상 저온이 지속되었고 4월 초에는 강한 꽃샘추위가 찾아왔는데, 3월 31일부터 서울 최저기온이 0도 안팎으로 크게 떨어졌으며, 꽃샘추위가 찾아온 가운데 4월 2~3일 동안 폭탄저기압이 우리나라를 통과하면서 전국적으로 소형 태풍급 강풍이 일어났고, 서울에 4월 눈이 쏟아졌다. 강수량도 많았으며, 강원산간 지역은 대설특보가 내려지는 등 4월 첫째 주 동안은 다시 겨울로 컴백한 듯한 꽃샘추위가 이어졌다. 이후에도 4월 동안 서울에서는 평년보다는 기온이 상당히 낮은 편이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는 평년보나 다소 높은 날씨를 보였다. 심지어 일부 지역은 30도를 넘겼다. 게다가 다음 달인 5월에는 아예 여름이 시작되어, 이 해 봄도 2010년만큼은 아니지만 매우 짧았다.
  • 2012년 11월 ~ 2013년 2월 한파: 2017~2018년 겨울[249]과 함께 2010년대 겨울 평균 기온이 기록적으로 낮다. 2012년 9~10월은 비가 많은 것 빼고는 기온 등이 대체로 평범했더니 11월 초부터 시작된 이상 저온 현상이 겨울이 되자 더 심해져 12월 초부터 최저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를 기록하더니, 길게 이어진 한파는 강약을 반복하며 2월 초까지 계속되었다. 서울의 12월 평균기온은 -4.1˚C,[250] 인천 -3.7˚C였고, 전국의 12월 평균 기온은 -1.7˚C로 2005년에 이어 두번째로 낮았다. 특히 1월 3일에 서울 -16.4˚C까지 떨어졌으며, 외곽의 김포공항에서는 3일과 4일 영하 20도 아래를 기록하기도 했다.[251] 특히 서석(홍천)에서는 AWS에서 비공식적으로 -29.5℃를 기록했다. 심지어 1월 4일에 대관령의 최저 기온은 -26.8˚C, 자동기상관측장비(AWS)에 기록된 용평의 최저기온은 -29.5˚C였다. 다행히도 1월 말에는 기온이 잠깐 올라 겨울비도 왔지만, 2월에 다시 추워졌다. 눈 또한 많이 내렸던 겨울로 회자되는데, 2012년 겨울 첫눈은 11월 13일에 내려 비교적 일찍 내렸고, 12월 초부터 매우 많은 눈이 내렸다. 12월 5일에 한랭종관저기압의 영향으로 중부지방에 10cm에 가까운 폭설이 내렸고, 12월 7일에는 충청권을 중심으로 또 폭설이 내렸다. 하필이면 이 날이 금요일이었던지라 교통에 많은 불편을 초래했다. 주말 동안에는 시베리아발 북서풍으로 인한 한파가 찾아오며 눈/비가 얼어 완전한 빙판이 되었다. 그리고 12월 28일 남해상으로 저기압이 통과하는 가운데 한기가 내려오면서 대구 12.5cm로 60년 만의 폭설이 내렸으며, 2월 3~4일 서울에는 16.5cm라는 15년 만의 입춘 폭설이 내렸다. 6일 입춘 폭설이 그친 직후 7일부터 설 연휴 내내 한파가 기승을 부렸다. 특히, 8일에는 서울 -15.8˚C까지 곤두박질치며 전년도 2월에 이어 또 한 번 2월 최강 한파가 기승을 부렸으며, 설 연휴 마지막 날(11일) 까지 영하 10도 안팎의 한파가 기승을 부렸다. 입춘 폭설과 설 직전의 최강 한파는 성층권 돌연 승온의 영향이라고 한다. [252] 여담으로 3월에는 롤러코스터 같은 날씨가 나타났는데, 3월 9일에 전주시에서 무려 28˚C(!!)를 기록하고 서울이 24°C, 전국이 25°C 안팎을 기록하는 등 5월 중하순에나 볼 법한 날씨가 나타났다. 그러나 다음날 기온이 대폭 하락하면서 이상 저온 수준의 추위가 찾아왔다. 초여름 기온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다시 싸늘해졌다가 다시 더워지는 등 날씨가 정말 변덕스러웠다. 이후 4월은 이상 저온 현상을 보였다.[253] 이처럼 3~4월의 이상저온은 4년째 이어졌으나 5월은 이상 고온이 찾아왔다.
  • 2013년 11월 27일~29일 한파: 27~29일에는 한겨울을 연상케 하는 강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28일에는 서울의 실제 기온이 하루종일 영하권에 머물러서 한겨울 최고 평균기온보다 낮았다. 중순에도 초겨울 추위가 나타나면서 11월 평균기온은 평년보다 낮았다. 또한 2014년 3월보다도 기온이 낮았다. 이는 2017년 11월과 2018년 3월처럼 11월이 3월보다 기온이 낮은 케이스로 분류된다. 2012년, 2017년 11월과 더불어 평년 기온이 많이 낮았다. 하지만 엄청난 한파가 찾아온 2017~2018년과는 다르게 2013~2014 겨울은 별로 이렇다할 한파는 없었다. 다만 12월 중하순에 일찍 추위가 찾아와서 한강도 일찍 결빙해서 2년 연속 12월 결빙을 했다. 그러나 2014년 1월에는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이상고온이였다. 다음 해에도 이와 비슷했으며, 2019년 1월에도 마찬가지였다.
  • 2014년 12월~2015년 3월 (12일): 2014년 11월 30일만 하더라도 영상 10˚C를 넘나들던 따스한 가을 날씨가 12월 1일이 되는 순간 최저기온이 전날 7.2˚C에서 -7.2 ˚C, 즉 10˚C 이상 수직하강하며 싸늘한 겨울 날씨로 바뀌었다.[254][255] 아침까지만 해도 5~10˚C 근처의 평범한 가을 아침 기온이었지만 한낮이 되자 도리어 아침보다 기온이 떨어지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이 해 12월 중순은 서울이 -13˚C에 영서 지방, 산간 지방이 -20˚C 이하로 떨어지는 때이른 혹한의 날씨가 덮쳤고 중부 지방이 3주간 시베리아로 변해버리는 기염을 토했다. 한편 계속된 대륙고기압의 확장으로 인해 충청 및 호남지방은 강한 해기차 대류운으로 인하여 12월 동안 눈이 매우 잦았다. 충청이나 호남 대설 소식을 뉴스에서 귀 아프게 들을 수 있었다. 2005년 12월보다는 훨씬 못하지만 많은 눈이 내렸다. 안 그래도 2014년 한 해 동안 저주라도 내린 듯 여러 사건이 많이 터졌는데, 혹한의 추위로 피날레를 지었다는 말이 농담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따라서 따뜻한 11월과 달리 12월은 매우 추워서 서울은 전달보다 무려 12도나 하강했다. 12월 말부터는 차츰 누그러져서 평년에 가까워졌고 세밑 한파가 없었지만 1월 1~3일에는 한파가 있어서 2012~2013, 2013~2014 겨울처럼 12월 결빙은 아니지만 그래도 평년보다는 빨리 얼었다. 그러나 1월 4일부터 이상 고온이 찾아와 그 이후 정작 소한, 대한이 밀집한 이듬해 1월이나 2월은 12월만큼 춥지 않고 비교적 따스한 겨울 날씨가 이어졌고,[256] 2019년만큼은 아니지만 대기 정체로 인해 미세먼지 또한 심했다.[257] 하지만 2~3월에는 추운 날도 있었는데, 2월 7일 밤부터 쌀쌀해지기 시작하여 8일과 9일 이틀 동안 서울의 최저기온이 -10˚C를 밑도는 등 전국적으로 기습 한파가 이어졌다. 하지만 오래 가지는 않았고 9일 오후에 0˚C 안팎까지 오르며 점차 풀렸다. 이후 완연한 봄날씨를 보이는듯 싶었으나 시간이 흘러 3월 둘째 주에 접어들면서 또다시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다. 특히 10일 아침 서울 최저 기온이 -6.9˚C로 전날 최저기온에 비해 10˚C 이상 하강하며 전날 밤 2006년 이후 9년만에 3월 한파특보가 발령되었다. 서울을 포함한 중부지방은 물론 남부지방 곳곳으로도 한파특보가 발령되었고, 당일 최고기온도 서울 기준으로 1˚C에 머물렀으며 체감온도는 하루 종일 영하권을 맴도는 등 한겨울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이후 이 추위는 12일까지 이어지다가 13일부터 평년 수준을 회복했다가 16~21일은 이상 고온 현상이 나타났다.
2015년 11월에 이상 고온을 보이다가 26일에 급락해서 28일까지 영하 3~7도의 겨울 날씨를 보였으나 11월 29일부터 최저기온이 영상으로 올라 이상 고온을 다시 보였다. 12월에도 지구온난화가 많이 진척된 탓인지 기어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고 눈 대신 비만 가끔씩 오는 겨울이 찾아왔다. 예전같으면 제주도나 남해안 끝자락에서나 볼 법한 날씨가 이상고온 현상으로 대한민국 전체에서 나타난 것. 미국 동부에서도 비슷한 이상 고온 현상이 지속되면서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고, 12월인데 벚꽃이 피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해가 2016년으로 바뀌고 그동안 이어져 온 엘니뇨 현상이 약화되자, 북극권에 있던 한기가 순식간에 중위도 지역으로 남하하여 그동안의 고온현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급속도로 한파가 찾아왔다. 1월 23일 수도권 전역에 한파경보가 내려졌고, 특히 서울은 24일 아침 최저 기온이 영하 18˚C를 기록해 아예 15년 만에 최저기온 기록을 경신해 버렸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겨울에 가장 따뜻하다는 제주도에도 닥친 한파는 24일 아침 제주시의 아침기온을 -5.8˚C[258]까지 끌어내려 1931년 1월 10일의 -5.7˚C를 누르고 제주지역 기상관측 93년 사상 1월 역대 최저기온을 경신하였다. 한편 전라도 지방과 제주도에는 기록적인 폭설이 쏟아졌고, 이 때문에 제주도를 오가는 비행편이 모두 결항되어 여행객들이 고립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어서, 미국 동부에는 제주도와 마찬가지로 폭설이 쏟아졌고, 대만 등지에서는 혹한으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2016년 한파 및 폭설 사태 문서 참조.
  • 2016년 11월 (일부)[259], 12월 (23일) ~ 2017년 3월 (8일)
2016년~2017년은 전반적으로 따뜻한 겨울이었다. 12월에도 전국 낮 기온이 7~13˚C 정도 올라가는 늦가을 기온을 보여주고 있으며 추위는 잠깐 찾아갔다가 다시 가을 기온을 보여주고 있다. 비 또한 겨울비답지 않게 강수량이 많아진 편.[260] 한파도 유의미하게 찾아오지 않아 평년보다 높은 기온으로 따뜻한 겨울을 맞고[261][262]예년보다 1월 중순부터 바로 봄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았는데 이번 겨울이 따뜻했던 이유가 베링 해 부근의 따뜻한 상층 고기압의 영향이었는데 이 고기압이 가자 찬 대륙고기압의 영향으로 서울 영하 두 자릿수 정도의 한파와 이상 고온이 찾아오는 삼한사온이 찾아와 2월 중순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평년보다 살짝 추울 뿐 2012~2013이나 2017~2018 겨울에 비하면 한파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의 날씨이다. 결국 12~1월 겨울의 평균기온은 평년보다 높았고, 2월은 평년 수준이였으며 실제로 저 해의 겨울은 포근했다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 2017년 11월 (15일) ~ 2018년 2월 (8일) 한파: 전년도(2016~2017)의 겨울과는 대비되게 지나치게 추운 겨울로 기록적 한파가 기승을 부린 해다. 8~9월에는 평범했으나 9월 말부터 오히려 기온이 올라 10월에는 이상 고온으로 서울 평균기온이 2019년 10월과 같고 추울때는 상당히 추웠으나 반짝 추위에 그쳤고 10월 28일까지 25도를 찍는 등 이상 고온이 심했다. 그러나 10월 30일부터 강원도 일부 지역에 혹한의 서막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삼한사온이 지속되다가 11월 15일부터 바로 영하권의 장기한파가 시작되었다. 11월 19일에는 서울이 -6.6°C[263] 찍어 2020년 1월보다도 더 추웠으며, 이 시기부터의 11월 평균기온은 2002년 11월 또는 그 이하의 편차가 나타났다. 11월 28일과 12월 3일을 제외하면 장기한파가 한 달 이상 지속되었다. 전국적으로 12월 초부터 한파의 절정이 찾아왔다. 12월 초반에는 서울 -5~10°C 일부지역 -15°C의 한파가 계속 이어졌다. 12월 중순에는 서울이 -8~-13°C 일부에서는 -20℃를 넘나드는 기록을 1주일 연속적으로 찍었다. 2017년 12월 15일 기상청한강이 공식 결빙되었다고 발표했으며, 1946년 12월 12일 이후 71년 만에 가장 빠른 것이라고 한다. 2018년 1월 2일 기상청 홈페이지에 올라온 통계에 따르면 2017년 1월부터 10월까지는 기상학적으로 통계자료에 쓰는 평년치에 비해 비슷하거나 높은 수치를 유지했으나 11월부터 -0.8 ℃의 편차가 뜨기 시작하여 12월에는 -1.7 ℃로 일부지역에서는 통계상 최저기온의 극점을 갱신하는 등 이는 추위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는 지표이다.[264] 서울의 경우 2.3도 낮아 2015년~2020년 간 가장 낮은 편차를 기록했다.[265] 특히 북한의 평안남도 지방은 유독 기온이 낮았다. 평년보다 3 ℃ 이상 낮아서 신의주시의 최저기온보다 평양의 최저기온이 더 낮았다. 12월 13일에는 평양 최저기온 -18.5 ℃, 안주시 최저기온 -21.4 ℃, 양덕군 -26.0 ℃의 기온이 관측되었다. 평안북도 지역인 구성시, 신의주시, 삭주군의 동시기 최저기온과 비교해봐도 오히려 평안남도 쪽이 더 낮으며 1월도 아닌 12월에 이와 같은 기온이 관측된 것은 매우 낮은 것이다. 서울도 12~13일, 즉 중순부터 연속 한파일수가 기록되었다. 이후에도 21일까지 춥다가 22일부터 풀려서 23~24일에는 이상 고온이 있었고 12월 25~27일에 반짝 한파가 있었지만 28일 이후 한파가 차츰 누그러져서[266] 1월 8일까지 평년 수준으로 영하 두자리수의 한파는 없었다. 하지만 1월 9일부터 찬 공기가 내려오면서 10일부터는 다시 영하 두자리수의 한파가 왔고 9~12일 사이 전국적으로 혹한과 폭설이 동시에 찾아왔다. 1월 11일 전북 임실28cm의 폭설이 쏟아졌으며, 1월 12일 서울 아침 최저기온이 -15.3℃까지 떨어졌다. 또한 1월 12일 속초는 -14.1℃로 1월 중순 역대 두 번째, 천안은 무려 -20.6℃로 15년 만에 최저기온을 기록하였다. [267] 그러다가 1월 13일 낮부터 추위가 풀려 14일부터 18일까지는 평년 기온을 크게 웃돌았으며[268] 19~22일에는 기온이 내려갔으나 평년보다 따뜻한 날씨를 보이다가 1월 22일에 눈 온후 갑작스러운 큰 한파가 닥쳐 1월 23일 서울2년 만에 한파경보가 내려졌다. 1월 24일 서울 낮 최고기온이 -10.5℃를 기록했으며, 이는 7년 만에 가장 추운 것이라고 한다. 급기야 1월 26일 서울 아침 최저기온이 -17.8℃를 기록하면서 절정을 찍었다. 서울 북쪽의 파주시에서는 1월 24일 최고기온-12.1℃를 기록하는가 하면 27일에는 최저기온이 무려 -23.5 ℃ 라는 경이적인 기록이 나왔다. 비공식 기온이지만 강원도 홍천군 내면에서는 -28.4℃, 몇 주 뒤 동계올림픽이 열린 평창군 봉평면에선 -27.6℃가 기록되었고,[269]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에서는 -27.3℃가 기록되었다. 2주 전 한파와 달리, 울릉도를 제외하면 교과서적인, 극단적으로 건조한 추위를 보여주고 있으며[270] 이로 인해 화성 산란계 농장에서는 고병원성 AI가 검출되었으며, 심각한 가뭄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와중에 남극에서 막 귀국한 남극 극지연구원이 "한국이 남극보다 더 춥다. 남극 보내줘." 라고 올린 트윗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271][272]이후 2월 9일부터 한파는 차츰 누그러졌으나 여전히 추웠다. 다행히 14일부터 평년~평년 이상 기온을 회복했으나 이른 봄 날씨는 나타나지 않았고 3월이 되자 바로 떨어졌다. 그러나 2018년 3월 3일부터는 평년보다 훨씬 높은 초이상 고온 현상을 보여줌으로[273] 역대 가장 따뜻한 3월로 기록되었다(...)[275] 여담으로 동시기인 2017년 말부터 서서히 등장한 롱패딩이 한파를 만나면서 더욱 널리 퍼지는 계기가 되었다.
  • 2018년 12월 (5일)[276] ~ 2019년 2월 (19일)[277][278]: 12월 초에는 따뜻했지만 2018년 12월 5일에 기온이 급락했으며 6일에 다시 오르나 싶더니 7~10일에 -10도 안팎의 한파가 찾아왔고, 13일 오후부터 또 다시 작은 한파가 찾아왔다가 16일부터 누그러졌다. 그리고 12월 19~22일에는 이상 고온이 찾아왔다. 23일부터 다시 기온이 떨어졌지만 25일에 평년 이상으로 올랐다. 이후 26일 밤부터 기온이 큰 폭으로 떨어져 27~31일은 그 해 가장 강한 한파가 찾아왔으며 한강도 얼었다.[279][280][281] 12월은 몇 번 강한 한파가 오는 등 기온이 평년과 비슷하거나 낮은 편이었으나 1월은 시베리아 고기압이 제대로 확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상 고온 현상은 3월 11일까지 이어졌다.[282] 그리고 2019년으로 해가 바뀌자 대기 정체가 심하고 풍속이 1.7m/s로 관측 사상 가장 느려서 기상의 변화가 거의 없었으며, 그 결과로 최악의 중국발 미세먼지와 함께 1월 내내 맑은 날씨가 이어졌다. 매우 건조했고 한파도 2018년 12월보다 적어서 울릉도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이 사막 같은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같은 시기 해양성 기후인 일본, 유럽, 북미 지역은 폭설, 눈보라를 맞으면서 대륙성 기후인 한국, 중국과 교과서적인 대조를 보여줬다. 무엇보다 1월 동안 서울 기준 -6°C 정도의 평년 최저기온을 반짝추위라고 용어를 남발하다보니, 반짝 추위가 2~3일마다 한 번씩 오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게다가 영하 6도 정도의 기온을 '한파'라고 부르는 기사도 나타났다. 그리고 1월 22일자 뉴스. 대관령은 국내에서 적설량으로는 울릉도와 쌍벽을 이루는 곳인데 눈은 하나도 없고 황토빛 땅만 드러나 있다. 올 겨울 가뭄이 얼마나 심하고 적설량이 얼마나 적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서울은 2019년 1월 강수량 0mm를 기록하여 1907년 기상관측 사상 잊지 못할 기록이 나왔다. 그리고 1월 31일, 서울의 1월 적설량 0cm가 확정지어졌을 때 남해를 통과하는 저기압으로 인해 부산에 0.2cm라는 눈이 관측되었다. 서울보다 부산의 적설량이 더 많아진 것이다. 1월 한정으로 부산이 서울 적설량을 뛰어넘은 것은 기상 관측 사상 최초 기록이다. 이런 패턴이 계속 이어질 경우 영남이 적설량으로 전라도와 중부지방을 뛰어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 밖에도 광주 및 목포는 1월 31일에 눈이 내려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늦은 첫눈을 기록했다. 2월 초~중순이 되자 기온은 대체로 평범했으며 비,눈도 평년 수준으로 내렸다. 2월 1일에 서울은 2019년 첫 강수를 기록했고 2월 3일에 들어서 드디어 지긋지긋한 건조함을 끝내 줄 단비가 내렸다. 설날 연휴에 내린 비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비를 반가워했다. 특히 서울은 전년도 12월 17일 이후46일만에 강수량이 기록되었다. 그리고 2월 15일, 서울은 2.4 cm 가량의 눈이 내리면서 12월 16일 이후 61일 만에 적설량이 관측되었다. 2월 19일에도 충청, 남부지방에 많은 겨울비가 내리고 서울에는 3.3 cm 가량의 눈이 내렸다.[283] 이렇듯 상대적으로 따뜻하고 눈을 보기 힘든 겨울인데, 2월 20일경부터는 대놓고 봄으로 넘어가는 듯한 고온 현상이 나타났다. 겨울의 길이까지 짧은 것이다. 2월 23일에는 서울이 14.5°C 까지 오르며 평년보다 7~8°C 가까이 높은 고온 현상이 나타났다. 2월 26일 기준, 사실상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왔다. 3월 초에는 이상고온으로 서울 평균기온이 역대 가장 높았고 11~17°C까지 올랐다. 그리고 이 이상 고온 현상은 3월 11일까지 이어지다가 3월 12일에 꽃샘추위가 오며 해소되었지만 3월 중하순에도 몇번씩 이상 고온이 찾아왔다. 특히 26~27일은 4~5월에 준하는 이상 고온이 찾아왔다. 그러나 3월 29일 밤부터 비가 오면서 이상 저온이 찾아왔다. 이후 4월은 6년만에 평년보다 낮아 저온 현상을 보였다.[284][285] 그러나 3월 서울 평균기온은 7.1°C로 이상 고온을 보였다.
  • 2019년 ~ 2020년[286]: 아주 온화했던 겨울이지만 수능일과 11월 중하순 일부, 12월 5~6일에 한파가 찾아왔다. 그리고 12월 중하순은 11월 초중순에 필할 정도로 이상 고온이 심했지만 2019년 마지막 날과 2020년 새해 첫날에 다시 한파가 찾아왔다. 그러나 이는 반짝 현상에 그친 것에 불과하다. 2일부터 다시 이상 고온 현상이 나타나 서울 기준 오히려 12월보다 따뜻했다.[287] 한파는 찾아왔다가 금세 이상 고온 현상으로 돌아갔고 그조차도 심하지 않았으며[288] 때문에 이때는 코로나가 거의 없을 때인데도 불구하고 각종 겨울 행사가 미뤄지거나 심지어 취소되었다. 그러나 1달 내내 한파 없이 비가 많이 내리는 이상 고온이었던 1월과 달리 2월이 되자마자 기온이 내려가더니[289] 입춘 전날인 2월 3일부터 한파가 몰아쳤다. 2월 2~4일[290] 눈이 온 뒤에 더 추워지며, 대관령의 일최저기온이 -18.6 ℃를 기록하였으며, 5일에는 -18.9 ℃, 6일에는 기온이 더 떨어져 -24.0 ℃, 철원도 -17.7 ℃, 태백은 -17.1 ℃를 기록하였다. 7일 아침까지 한파가 이어지다가 낮부터 평년수준을 되찾았다. 다만 한파의 후유증으로 서울은 2월 10일 새벽까지 24시 전후에 눈 날림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10일부터 이상 고온이 일어났다.[291] 그리고 16~18일에는 전국 대부분이 해기차로 인해 많은 눈이 내리고 추워져서 17일 서울 최고기온 -4°C, 18일 서울 최저기온 -8°C, 천안 -13°C까지 내려가 다시 평년보다 낮아졌다. 다만 19일에는 평년기온을 회복했고, 20일에는 다시 이상 고온이 찾아왔다. 비도 많이 내렸지만 눈은 적었다. 2019년 12월은 발해만이 잦아서 비가 자주 내렸고 1월은 발해만보다 남쪽 저기압이 잦아서 남부지방은 비가 잦았으나 서울 등 중부지방은 비,눈 온 날은 많지는 않고 일조시간도 많은 편이었으나 1월 6~8일에 비가 많아서 강수량이 많았으며 2월은 저기압이 잦아서 강수량과 강수일수 둘다 많았다. 3월에도 강원도와 경기북부를 중심으로 비가 잦았으나 그 밖의 지역은 대체로 건조했으며 3월 10일을 끝으로 비가 뚜렷이 오지 않았고 4월 역시 매우 건조해서 비가 온 날이 적었다. 2019년 3월, 2020년 3~4월 등의 경우 봄인 만큼 기압차가 커서 대기는 불안정했지만 일부 지역의 소낙성 강수를 제외하면 비는 잘 오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상 3월 초 일부[292]를 제외하고는 겨울이 끝났다고 본다. 역시나 3월도 이상 고온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2018년 3월에 이은 전국 평균기온 2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3월에도 안 왔던 추위가 4월에 와서 이상 저온 현상을 보이며 약 1년 가까이 이어져온 고온현상이[293]막을 내렸다.[294][295]
  • 2020년 11월 (23일)~2021년 2월 (23일)[296]
초기 예측[펼치기 / 접기]
매우 따뜻했던 2019~2020년 겨울과는 달리 2020~2021년 겨울은 평년보다 추울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이 많다. 가장 큰 근거가 라니냐 현상인데, 10월 31일 기준 동태평양 수온 편차가 평년보다 1.6 °C까지 낮아졌으며 11~12월에 이보다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높아서 이와 같이 예측하고 있다. 물론 라니냐라고 다 한파겨울은 아니지만[323] 실제로 2010년대 가장 강한 한파가 발생했던 년도[324]는 대부분 라니냐를 보여서 마냥 무시할 수는 없다.[325] 그리고 참고할 점이 하나 있는데, 3개월 전망은 신뢰도가 워낙 낮은 편이다.[326] YTN에서는 2012년 이후 북극 빙하 면적이 가장 적다는 점을 근거로 들며 한파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적어도 2019년 12월 ~ 2020년 2월만큼의 겨울철 초이상 고온 현상은 없을걸로 보인다. 그리고 10월 들어 시베리아 적설이 갑자기 꽤 늘어났고 북극 빙하 면적도 기록적 고온으로 인해 매우 적으며, 라니냐도 편차가 -1.5℃ 이하를 달려가고 있어서 점차 한파에 유리한 조건이 형성되고 있긴 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한반도 한파의 직접적인 영향을 결정하는건 우랄 블로킹이 큰 역할을 하므로 결국 한기축이 한반도를 향하지 않는 이상 아예 블로킹이 거의 없었던 2019~2020년만큼은 아니겠지만 2018~2019년 겨울처럼 춥지 않은 겨울이 될 가능성도 있다. 12월에는 30 50 20으로 비슷할 것으로 전망하는데, 낮을 가능성이 30으로 높을 가능성보다 살짝 더 많아서 아직 실망하기에도 이르다.
매우 따뜻했던 2019~2020년 겨울과는 달리 2020~2021년 겨울은 평년보다 추울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이 많다. 가장 큰 근거가 라니냐 현상인데, 10월 31일 기준 동태평양 수온 편차가 평년보다 1.6 °C까지 낮아졌으며 11~12월에 이보다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높아서 이와 같이 예측하고 있다. 물론 라니냐라고 다 한파겨울은 아니지만[297] 실제로 2010년대 가장 강한 한파가 발생했던 년도[298]는 대부분 라니냐를 보여서 마냥 무시할 수는 없다.[299] 그리고 참고할 점이 하나 있는데, 3개월 전망은 신뢰도가 워낙 낮은 편이다.[300] YTN에서는 2012년 이후 북극 빙하 면적이 가장 적다는 점을 근거로 들며 한파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적어도 2019년 12월 ~ 2020년 2월만큼의 겨울철 초이상 고온 현상은 없을걸로 보인다. 그리고 10월 들어 시베리아 적설이 갑자기 꽤 늘어났고 북극 빙하 면적도 기록적 고온으로 인해 매우 적으며, 라니냐도 편차가 -1.5℃ 이하를 달려가고 있어서 점차 한파에 유리한 조건이 형성되고 있긴 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한반도 한파의 직접적인 영향을 결정하는건 우랄 블로킹이 큰 역할을 하므로 결국 한기축이 한반도를 향하지 않는 이상 아예 블로킹이 거의 없었던 2019~2020년만큼은 아니겠지만 2018~2019년 겨울처럼 춥지 않은 겨울이 될 가능성도 있다. 12월에는 30 50 20으로 비슷할 것으로 전망하는데, 낮을 가능성이 30으로 높을 가능성보다 살짝 더 많아서 아직 실망하기에도 이르다.}}}
11월 중순에는 초이상 고온이 있었지만 20일 들어 찬 공기가 본격적으로 확장해 추위가 찾아오며 평년보다 조금 낮은 수준으로 돌아갔다.(9월부터 12월까지 지속) 어지간히도 영하권으로 내려가지 않던 서울도 20일 들어서는 영하권으로 내려갔다. 이후 23~24일에 또 한번 추위가 찾아오긴 했지만 큰 한파는 아니고 23일 -1.5 °C로 평년보다 조금만 낮았으나 이를 기점으로 겨울 추위가 시작되었다. 이후 28일부터 최저 -2~4 °C 의 기온을 기록하며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28일에는 최고기온만 2.8°C로 낮았으나 29일부터 최저 기온도 낮아서 11월 29일부터 12월 1일까지 3일 연속 서울의 최저기온은 -3.6 °C를 기록했다. 일평균기온 역시 28~30일 3일연속 영하권이었다. 대관령은 12월이 되자 한파일수를 기록했다. 이후 4일에 다시 추위가 와서 서울 -4.6°C, 대전 -4.0°C, 철원 -9.8°C까지 떨어졌으며 한파고장 대관령은 -14°C까지 떨어졌다. 8~9일에도 약간 추워서 서울 -4.1°C, 대전 -5.2°C, 수원 -6.4°C까지 떨어졌다 10~11일에 잠시 올랐다. 여태까지는 추위가 잦기는 했으나 서울 기준 -5°C 이하의 겨울다운 추위는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상반기와 11월의 이상 고온 때문에 추위가 심했다고 느끼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다가 13일 해기차로 인해 눈이 온 뒤 크게 하강하기 시작했다. 서울은 13일 낮 기온이 1°C에 불과했고 밤에는 -6°C까지 떨어졌다. 12월 3째주에는 1주일간 서울 최저기온이 -10도 안팎의 추위가 왔는데 세부적으로는 14일에 서울 -10°C를 기록했고 낮에도 -5°C였으며 전남, 경남, 제주를 제외하면 낮 기온 마저 영하였다. 15일에는 예보와 달리 더 떨어져 -11.1°C를 기록했고, 홍천군 서석면에서는 비공식적으로 -24.7℃가 관측되었다.[301] 그 밖의 대전도 -10.9°C까지 떨어졌다. 그렇다 쳐도 12월 중순에 이러는 것은 한파가 꽤 강하다는 것이다. 16일에도 전날과 비슷한 양상을 보여줬으며 서울 기온 -11.2°C를 기록했다. 서울의 일평균기온도 15~16일 이틀 연속 -8.3°C이다. 한파의 절정인 17일 아침에는 서울 -11.1°C, 수원 -11.5°C, 파주 -17.4°C, 춘천 -18.0°C[302] 등을 보이고 충청북도 제천시에서는 -20.3°C를 기록하여 한반도 공식 최저기온이 올 겨울에 최초 -20도를 기록했다. 그러나 낮에는 남서풍이 불면서 일교차가 10~20°C로 매우 크게 올라 영상의 기온을 보여 바로 평년 수준을 회복했으나 18일부터 찬 공기가 다시 남하해 19일에 다시 반짝 한파가 찾아와서 -10°C를 기록했다. 그러다가 21일부터 차츰 누그러져서 22일 이후 이상 고온 수준으로 따뜻해졌다. 이후 강도는 더 세져 28일에 전국적으로 9~17°C를 기록해 절정을 찍었다. 그러다가 29일에 남부지방을 통과하는 저기압으로 남부지방에 많은 눈이 내리고 수도권은 복사냉각과 한기로 기온이 매우 급락하면서 강한 한파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30일 아침 서울의 기온은 2018년 이후 2년만에 한파일수 조건에 충족한[303] -12.4 °C를 기록했고 최고기온도 -6.2°C[304]로 12월 14일 이후로 연중 가장 낮은 최고기온을 또 한차례 갱신하였다. 인천은 30일 낮 최고기온이 서울보다도 더 낮은 -9.1°C 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1976년 12월 26일 -9.8°C 이후 44년만에 가장 낮은 12월 낮 최고기온이었다. 이후 30일 23시경, 다음날인 31일 새벽에도 서울은 -12.9 °C를 기록하여 전날보다 살짝 강한 한파가 왔다. 그 밖의 인천 -11.6°C, 수원 -12.6°C, 대전 -13.2°C, 청주 -13.7°C, 춘천 -15.9°C 등으로 중부지방 대부분이 한파일수를 기록했다. 결국 2020년 12월 평균기온은 같은해 1~2월보다 낮게 나올 것으로 보였고, 실제로도 서울 기준 월평균 기온은 -0.4°C로 기록되어[305] 1993년, 1940년, 2013년 12월에 이어 49위로 랭크되었다. 사실 2019년 12월을 능가하는 고온이 찾아오지 않는 이상 2020년 12월은 1월보다 낮다는 것이 확실하며 무려 서울은 2.0°C, 전국은 2.1°C나 낮았다.
그리고 이 추위는 2021년 1월로 해가 바뀌면서 풀리지 않고 더 심해졌다. 1월 1일 낮부터 잠시 약해진 추위는 1월 2일부터 다시 시작되어 1월 4일 오전까지 지속되었고 4일 오후에 또 잠시 약해졌다가 5일 오전에 약한 기압골이 통과한 후 기온이 다시 하강했으며 이후 1월 10일까지 강추위가 주욱 이어지는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1월 6일에는 예상보다 복사냉각이 강해 서울이 -12°C까지 떨어졌다. 1월 7일에는 서울이 최저기온 -16.5°C를 기록했으며[306] 낮 최고기온도 -11.5°C를 기록했는데 이는 2010년대 이후 가장 낮은 낮 최고기온 기록이다. [307] 인천은 더더욱 기록적이어서 낮 최고기온이 -12.1°C 를 기록하여 1931년 1월 11일 -12.5°C 이후 90년만에 가장 낮았다.[308] 그 이외의 지역도 7일 낮기온이 극단적으로 낮았는데, 이를 정리한 글이 있다.링크
그리고 8일, 가히 21세기 최악의 한파라고 불리울만한 이번 추위가 절정에 달했다.[309] 추위가 절정에 달한 8일 아침 서울의 기온은 2001년 1월 15일과 같은 -18.6 °C까지 곤두박질쳤다. 서울 중심부에 가까운 종로구 송월동 공식관측소가 이정도라는 것이고, 서울 내 AWS 기록은 더 충격적이어서 관악구 남현동 -23.9°C(!)[310] 를 기록하였다. 이것은 2001년 1월 15일 김포공항(강서구) AWS -23.5°C, 2018년 1월 26일 같은 관측소인 관악 남현 AWS -23.5°C 기록보다 낮은 것으로 비공식이지만 서울 공식 관측소의 역대 최저기온인 1927년 12월 31일 -23.1°C 보다 낮고, 2000년대 서울 내 최저기록이다! 또한 은평 AWS -22.6°C, 노원 AWS -21.1°C 등 서울 외곽부는 -20°C 아래를 보인곳들이 더 있었다. 그 밖의 중부지방 기록을 살펴보면 이천 -21.2°C, 수원 -18.4°C, 인천 -17.5°C[311], 파주 -21.7°C, 동두천 -20.2°C, 춘천 -21.9°C, 강릉 -15.1°C, 천안 -19.3°C[312], 제천 -20.4°C까지 떨어졌다. 또한 한파가 오기 전에 전국적으로 엄청난 폭설이 있었는데 이에 따라 반사율으로 남부지방도 기온이 매우 크게 떨어졌고 특히 눈이 지금껏 가장 많이 내린 호남지방에서는 기상관측 역사에 기록이 남을만한 한파를 보인곳이 많았다. 광주의 경우 8일 -13.5 °C를 기록하여 1971년 이후 50년만의 최저기온을 보였고, 화순군 북면에서는 185m로 고지대도 아니지만 전라남도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22.6°C로 영하 20도 이하 를 기록했으며 [313] 부산광역시조차 -12.2 °C의 기온을 보이고 있다.
그 밖에 남부지방에서 기록적인 값을 보인곳이 많아 일일히 나열하기가 힘들정도인데 전라북도 장수군에서 -24.1 °C[314] 서울의 역대 최저극값인 -23.1 °C보다도 더 낮은 최저극값을 기록했으며 전라남도 해남군-17.1 °C 로 역대 극값인 1977년 2월의 -14.5°C 를 압도적으로 경신해버렸다. 전라북도 전주시는 -16.5°C 를 기록했는데 이는 60년만의 최저기록이며 역대 최저 3위이지만[315] 2015년 7월 1일에 관측소가 옮겼기에 실질적으로 1918년 기상관측 시작이래 최강 한파라 말할 수 있다. 구 관측소 기준으로는 무려 2021년 1월 8일에 -18.1°C를 찍었다.[316] 8일 일평균기온도 신 관측소가 -12.4°C, 구 관측소가 -13.2°C 에 달했다. 구 관측소 기준 1923년 1월 2일 -12.7°C 보다 낮고 1931년 1월 10일 -13.3°C 이후 일평균기온이 90년만에 최저이자 역대 2위였다. 전북 군산도 -16.8°C 를 기록, 1968년 기상관측 시작이래 최저기온인 2018년 1월 27일 -15.0°C 를 역시나 압도적으로 경신한다. 한겨울에도 따뜻하기로 유명한 전남 목포시도 -12.8°C 를 기록하여 1931년 1월 11일 이후 90년만에 최저기록을 다시 썼다.[317]
경상도의 경우 전라도 보다는 상대적으로 기록의 강도가 덜했지만 역시나 매우 추웠다. 경상북도 의성은 -21.6°C, 경상남도 거창은 -17.4°C, 대구광역시가 -13.6°C[318], 그리고 진주시도 -15.4°C를 기록했다. 또한 충청도에서도 한파는 매우 기록적이어서 대전광역시가 -17.5°C 를 기록해 2001년 1월 15일의 기록보다 0.1°C 낮았고 1973년 12월 이후 48년만에 가장 낮은 기록이자, 1969년 기상관측 시작이래 역대 최저 4위에 이름을 올린다. 그리고 한파는 12일까지 길게도 이어져 서울 기준 9일 최저 -16.6°C, 10일 최저 -12.8°C, 11일 최저 -9.6°C, 12일 최저 -9.3°C 로 -10°C 안팎의 날씨가 이어졌다. 하지만, 13일부터 단 하루만에 완전히 상황이 반전되어 13일 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8.3°C 를 기록하며 3월 초순에 해당하는 기온을 보였다. 중부지방과 남부지방의 차이가 거의 없는 이번 한파의 특성상 전국 평균기온이 매우 낮게 나올 것으로 보인다. 전국 1월 상순 평균기온은 거의 최하위권에 속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은 결국 1월 상순 평균기온 -8.1°C 를 기록하며, 21세기 가장 낮은 1월 상순 기온인 2013년 1월과 타이기록을 세웠으며 이보다 낮은 값을 찾기 위해서는 35년전인 1986년 1월 상순 평균기온인 -9.6°C 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기상청의 2021년 1월 둘째주 평균기온 분석자료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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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수 있듯이, 전국이 가장 낮은 편차 index 를 의미하는 짙은 파란색으로 도배되어 있다. 전국 평균기온 평년 편차가 -6.0°C 에 달하고 심지어 서울,인천을 비롯한 수도권은 -6.5°C 선 이내에 들어와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한파가 비교적 약했던 4~6일까지 포함한 것이므로, 한파가 절정에 달한 7~10일만 따지면 훨씬 낮았을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한편, ECMWF기준 도쿄마저 최저 -6°C로 예보되어 있어 도쿄가 평상시 서울 날씨를 보일 예정이었다.[319] 이 때 한강 결빙도 되었으며, 서해안에서는 해기차가 동반되어 많은 눈이 내렸다. 이 기간 이후로도 북극 진동지수가 지속적으로 음(-)을 띄고 있으나 12일 이후 한파가 물러나서 13~15일은 고온현상이 와서 전국적으로 6~16°C, 서울도 7~10°C까지 올랐다가 이후 내려가서 1월 17~19일은 한파가 왔으나 서울 기준 최저 -11°C 최고 -1°C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고 1월 20~25일에는 작년 1월급의 상당한 고온현상을 보여서 서울 최저기온 영상, 최고기온 7~14도를 보였으며 22일과 23일 서울 최저기온 5°C안팎, 남부지방은 5~10°C를 보이고 최고기온도 20~22일 4~12°C를 보였고 23~25일은 최저기온도 높으나 최고기온이 극단적으로 높아서 서울이 13.9°C까지 오르는 등 엄청난 이상 고온을 보였다. 26일~27일에도 GFS,ECMWF 를 비롯하여 평년보다 높은 경향을 모의하는 모델들이 많았고 실제로 27일까지 이상 고온을 보였으며 31일에 다시 이상 고온이 찾아와서 2021년 1월은 평년과 비슷했으며 2011년 1월보다 4~5°C정도 높았다. 2021년 1월의 서울 월평균기온은 -2.4°C로 1981~2010 평균과 완전히 같고 그 밖의 인천 -2.1°C, 대전 -1.0°C 등으로 평균기온이 평년과 정확히 같았다. 일부 지역은 조금 낮은 곳도 있으나 오히려 평년보다 높은 지역도 다소 있었다. 서울 평균기온 순위도 32위로 12월보다 꽤 높은 순위이다. 그나마 28일에 눈이 온 뒤 기온이 하강하여 -9.7℃ 기록, 29일에는 최저 -11.6℃, 최고 -4.9℃로 추위를 보였고, 30일에도 예측과 달리 -8℃까지 떨어지고 최고기온은 평년보다 높은 5℃였으나 예보(-5/7)보다 상당히 낮아서 이 정도였고 만약 이때도 예보보다 높았다면 평년보다 좀 더 높았을 것이다. 뭐 그래도 눈 만큼은 2019, 2020년 1월과는 대조적으로 제대로 내린 올 1월이라고 볼 수 있겠다. 주로 서해안을 중심으로 눈이 많이 내렸고, 영동을 제외한 전국적으로도 6일, 12일, 28일에 눈이 강하게 쏟아졌다.[320]
그리고 기상청의 전망으로는 2~4월은 평년보다 높을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을 하고 있다. 1월 31일~2월 1일에 다시 이상 고온이 왔고 이후 2~4일에 다시 급락해서 한파가 찾아왔으나 심하지는 않았고 5일 이후로 다시 올라 8~9일의 약한 추위를 빼면 이상 고온이 이어지고 있으며 2월 15일까지는 이상 고온 현상이 이어졌다. 특히 12~14일에는 서풍으로 전국적으로 12~18°C의 기온이 찾아왔다.[321] 그러다가 16일 이후 한기가 꽤 강하게 남하해 17~18일에는 서울 -10~11℃로 2월 중순치고 상당히 강한 한파가 왔으나 19일부터 크게 올랐으며 20일에 다시 초이상 고온이 시작되었으며 이 이상 고온은 3월 1일 정도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보이며 20일에는 전국적으로 13~20도까지 올라서 매우 강한 이상 고온이 왔는데 21일에는 아예 매우 기록적이라 극값에 대부분 이름을 올렸다. 서울은 17.4도로 4월 중순 수준, 경상도쪽에는 22~25°C 안팎의 5월 날씨를 보였다. 일교차가 컸으나 최저기온도 상당히 높았다. 22일에도 전국이 최저기온 영상권, 최고기온 10도를 넘고 영남은 20도를 넘기도 했다. 이후 23일에는 약한 한기남하로 약간 추웠으나 24일 오후부터 풀려 10도 이상을 보였다. 그러나 20~22일의 초고온 수준은 아니고 3월 시작부터 또 한번의 한기남하 이후 다시 고온으로 바뀔 전망이다. 하지만 3월의 날씨는 2월 23일 기준 시일이 멀어 불확실하다.
종합하자면 2020-21 시즌 겨울은 조건이 역대급으로 한파가 올 조건이었고 실제로도 21세기 가장 낮은 서울 극값인 영하 18.6도를 2001년과 함께 경신하기는 했으나 결국 1월 중하순부터는 이상 고온의 힘을 꺾지 못하고 예상했던 것보다 월평균기온이 높고 기온변화가 유난히 커 그 해기차로 인해 지난 2년간의 겨울과 달리 영동을 제외하고 전국적으로 특히 서해안 지방에 눈이 매우 많았다. 그러나 똑같이 전국적으로 강한 한파가 있고 눈도 많이 내린 2012~2013년, 2017~2018년 겨울에 비하면 이 겨울은 하위호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겨울과 전반적으로 기온이 비슷한[322] 2015~2016년 겨울보다는 눈도 더 많았고 한파도 더 강했기 때문에 확실히 2015~2016년 겨울보다는 상위호환이긴 하다.


[1] 기준이 1981년~2010년(괄호안은 1971~2000년) 이므로 일제강점기 겨울들은 서울의 열섬 현상을 감안하고 볼 필요가 있다.[2] 그래도 당시 개화기에 한국에 정착한 서양의 선교사들이 기상관측을 했고, 일제 세력들도 식민지 수탈 목적으로 기상관측을 하긴 했다.[3] 대한민국 기상청에서 직접 운영하고 데이터를 제공하는 국가 기관의 사이트다. 그 중 종관기상관측은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각지의 기본적인 날씨데이터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다. 지역과 날짜를 선택하면 각 지역의 일 최저기온, 일 최고기온, 일 평균기온, 최심신적설, 심지어는 지면온도와 같은 기상청 본 사이트에서는 나오지 않는 희귀한 것까지 모든 기상요소를 선택할 수 있다. 모든 요소를 결정하면 해당 일자들의 수치가 나타난다.[4] 다만 1963년 1월에 사소한 오류가 있다. 서울의 월평균기온이 -9.1°C 로 나와있다. 그러나, 기상청 날씨누리 사이트에 직접 들어가서 확인해보면 -9.2°C 로 나온다. 이상함을 느끼고 작성자가 직접 계산해본 결과 -9.2°C 가 맞다.(모든 달 평균기온은 소수점 둘째 자리에서 반올림하기 때문이다. 예시로 1981년 1월은 월평균기온이 실제로는 -7.03 °C인데 0부터 4 까지의 수는 버림하므로 기상청 자료에서는 -7.0°C로 기록되어 있다.) 기상자료개방포털도 국가기관에서 운영하는 사이트인데 왜 이런 오류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 밖에 2020년 12월도 날씨누리가 -0.4°C, 기상자료개방포털이 -0.3°C로 두 기관 사이에 값이 다르게 나왔다.[5] 위에서 설명했듯이 해당 사이트는 기상청에서 운영하는 국가 부속 사이트로, 한반도의 기상 관측 데이터와 통계자료를 다양하고 심도깊게 정리해놓은 사이트다. 그 중에서도 해관기상관측자료 페이지는 한반도의 공식 기상관측이 시작된 1904년 이전자료를 담고 있다. 즉 일제에 의해 1883~1904년 인천,부산,원산에서 기상관측이 임시적으로 진행되었는데 그 당시의 희귀자료를 담은 것. 19세기 후반~20세기 극초반 한반도 기후를 살펴보는데 사실상 유일한 소스다(!). PDF로 다운받아서 일별로 감상 가능. 여담으로 숫자가 이상하다 싶은 것은 화씨(℉) 단위이니 적절히 눈치채고 섭씨로 변환해서 봐야 한다.[6] 기록을 보다보면 섭씨로 표시된 기록의 경우 소숫점 단위가 대부분 0이나 5밖에 없음을 인지하게 될 것이다. 이는 오류는 아니고, 아주 과거에는 기온 측정에 있어 소숫점을 지금처럼 0.1 단위로 측정하는게 아닌 0.5 단위로 어림잡아 측정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를 들어 -16.5℃ 라고 해도 실제로는 정확한 값은 알 수 없으나, 약 0.2 정도 이내의 위아래 오차 범위 내 -16.3℃ ~ -16.7℃ 사이값 중 하나가 된다. 이 점에 유의하면서 자료를 열람하기 바란다.[7] 1908~1936년 제공. 북한지역 선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북한의 자료 작성에 유용. 이상하게도 기본 설정은 모든 숫자가 소숫점 없이 정수로만 나와있는데 "부가기능설정" 에서 소숫점을 설정하면 소숫점이 뜬다.[8] 1908~1936년 제공. 북한지역 선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북한의 자료 작성에 유용. 마찬가지로 "부가기능설정"에서 정수의 데이터값을 소수 단위 표기로 바꿀 수 있다.[9]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는 일본에 대한 일기도만 제공하니 주의.[10] 의외라 생각할수도 있는데 당시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 해상교통의 요지인 항구도시는 서울 이상으로 매우 중요했다. 목포 이후 부산,인천에서도 같은 해에 공식 기상관측을 시작했다. 서울은 약간 더 늦은 1907년, 대구는 1908년, 강릉은 1911년에 시작되었다. 대전은 한참 늦은 1969년에 시작되었다.[11] 반면 일본 도쿄는 1885년 1월 평균 0.6°C 로 월평균기온 역대 최하위권을 기록한것을 볼때 한기남하의 축이 일본쪽으로 치우친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일본이 가까워보이지만 동서로 꽤 긴 나라라서 한반도와 도쿄간의 동서 직선거리는 1000km 가 넘어 꽤 멀다.[12] 1위는 1936년 4월의 10.5°C[13] 1912년 11월도 1904년 이후 공식 기록중에서는 압도적으로 낮은 1위인데, 그 기록보다 0.7°C 나 더 낮다는것은 놀라운 기록이다.[14] 비슷한 시기에 이상 저온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 교토는 11월 말에 최저 -3°C가 사흘이나 기록된 것을 볼때, 교토와 기온 차가 기본적으로 많이 벌어지는 서울은 11월 말에 최저 -10°C 이하의 기온이 며칠씩이나 기록되어 월평균기온까지 급격하게 낮아졌을 확률이 있다. 위도에 비해 그렇게 춥지 않은 그 하코다테에서도 11월 말에 최저기온이 -12.1°C로 측정되어 역대 가장 낮은 11월 기온을 기록된 것으로 볼때, 이미 11월 말부터 한파가 심상치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증명하고 있다.[15] 일 최저기온이 -12°C 이하인 날을 한파일수로 정의한다. 반대로 폭염일수는 낮기온 33°C 이상. 한파일수와 폭염일수를 셀때는 특보와는 다르게 체감온도와 기온 급락 사례를 거르고 오로지 기온 요소로만 판단하는것이 흥미롭다.[16] 아무리 추운 11월일지라도 서울이 영하 두자릿수를 기록하는 것은 굉장히 드물며 매우 기록적인 것이다. 공식적으로 기록된 서울의 11월 역대 최저기온은 1970년 11월 30일의 -11.9 °C이다.[17] 정황을 보았을 때 28일도 전날처럼 비슷하게 추웠던 듯 하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인의 입장에선 경악을 금치 못할 다음날의 멘트도 이런 맥락으로 나온 듯.[18] 2021년 기준으로, 서울이 -9°C 면 28년만의 11월 최저기온이 된다. 근데 저 당시에는 -9°C 가 추위가 많이 풀린 수준이라는 것이 기후의 차이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19] 21세기 기준 2001~2002 겨울, 2004~2005 겨울, 2006~2007 겨울, 2007~2008 겨울, 2008~2009 겨울, 2013~2014 겨울, 2014~2015 겨울, 2016~2017 겨울, 2019~2020 겨울. 총 9해.[20] 다만 소빙하기가 이어졌던 1800년대 중반(185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이정도 사건은 흔했을것이고, 더한 적도 많았을것으로 추정된다.[21] 비슷하게 강한 라니냐를 보였던 1917년 1월의 인천 월평균기온을 생각해보자. 무려 -8.0 °C로 관측사상 역대 최저이다.[22] 우리나라에서야 서울 영하 7도 정도는 매년 겨울철마다 기록하는 최저기온이지만 일본은 2018년 1월에 도쿄 최저기온 영하 4도 기록만으로도 "엄청난 한파" 라며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게다가 일본은 다른 날에도 거의 최저기온이 영하권이었으며, 영하 4도 이상을 기록한 날이 많았다. 비슷한 환경이 갖춰진(?) 겨울인 1917년 1월의 도쿄 최저기온과도 비교해보았을 때 1893년 1월이 확연히 낮은 기록이다.[23] 정확히 비유할 사례를 찾기는 힘드나, 2019년 1월~2월 초 한국은 이상 고온이 찾아왔지만 일본 도호쿠와 홋카이도는 상당히 추웠던 사례를 생각해보면 될 듯 하다.[24] 여러가지 말이 많고 의문점이 드는 겨울인건 사실이다. 이에 대한 이유를 추측해보자면 1893년 1월이 1945년 1월 같은 스타일의 겨울이었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1945년 1월은 평균기온만 보면 -7.8°C 로 순위권에 들 정도로 매우 낮다. 그렇지만 월 최저기온 기록은 -19.1°C 로 영하 20도는 기본이던 일제시대 겨울에 비하면 크게 기록적인 수준이 아니었다. 즉 1893년 1월도 아침 최저기온 -10°C 이하의 추위가 계속 이어져서 뮈텔주교가 계속 일기에 기온을 적었고, 다만 1945년 1월 처럼 기록적인 수치는 없었다는 추측이다. 사실 도쿄의 -7.1°C 기록이 단일 기록으로서는 매우 낮은게 사실이지만, 막상 월평균기온 자체는 2.6°C 의외로 기록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1900년 1월이 1.6°C 로 더 낮을 정도다. 인천도 1900년 1월이 -6.1°C 로 더 낮고. 즉, 일본과 한반도 둘 다 추운 겨울을(평균이 기록적이지는 않은) 보내다가 한번 한기가 정말 강하게 왔는데 그때의 한기가 유난히 일본쪽으로 치우치는 시나리오라면 가능하다.[23] 뮈텔 주교의 일기에서는 1895년 2월 2일 -22°C로 1891~1895 기간중 가장 낮았다고 하지만, 그 말은 반대로 생각해보면 1893년도 -21°C 정도는 갔을 수 있다는것이다. 엄청 기록적이지는 않지만 이것도 분명히 강력 한파이다. 허나 기록적인 혹한이 없이 그냥 꾸준이 추운정도였다고 쳐도 일기를 매일 적을 정도였다면 인천이 최소 월평균 -6~-7°C 정도는 되었어야 하는데 이상한 점이 많다. 사실 우리는 뮈텔주교가 어떤 기준으로 일기를 작성했는지 알길이 없다. 그의 기준이라는 것이 계속 바뀌지 않고 일정했을지도 의문이고. 여러모로 답답하다.[25] 1904년 공식적인 기상 관측시작이래 인천의 2월 역대 최저기온은 1913년 2월 9일 -18.4℃ 이다. 즉 -18.3℃ ~ -18.7℃ 사이의 오차범위가 있긴 하나 2월 역대 최저기온과 비슷하거나 더 낮은 그야말로 기록적인 한파가 닥친 셈.[26] 원산의 공식적 2월 역대 최저기온은 1920년 2월에 기록된 -19.2℃[27] 단 차이점은 2017년 12월과 달리 1896년 12월은 큰 추위는 없고 그 대신 1~2월은 2018년보다 더 추웠다.[28] 1위는 1913년 2월 9일 -18.4℃, 2위는 1910년 2월 2일 -18.0℃, 3위는 1910년 2월 1일 -17.3℃, 그리고 공동 4위가 1931년 2월 11일과 1897년 2월 7일 -17.0℃. 다만, 1897년 인천은 소숫점 단위를 어림잡아서 0.5 단위로 기록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오차범위가 -16.8℃ ~ 17.2℃ 사이로 -17.0℃ 보다 약간 높을수도 혹은 약간 낮을 수도 있다.[29] 이를 공식기온이라고 간주할 경우 원산의 2월 역대 최저기온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2월 원산의 공식 역대 최저기온은 1920년 2월 -19.2℃ 에 불과하다.[30] 이상 저온/사례 문서에서도 나와있듯, 홋카이도를 제외하고 한반도보다 한파의 영향을 덜받는 일본도 열도 전역에 걸쳐 4월 평균기온이 다른 해보다 낮게 나왔다. 옆나라 전체가 이랬으니 하물며 한기의 영향을 다이렉트로 받는 한반도는...[31] 인천의 역대 최하위 월평균기온은 1917년 1월의 -8.0 °C이다.[32] 이때는 최저기온을 더 가까운 쪽으로 맞춰서 영하 n.0 °C, 영하 n.5 °C 단위로 끊은 것 같지만 모두 영하 11도 이상의 기록을 보여 아마 계속 영하 두자릿수를 밑도는 강력 한파가 지속되었을 것으로 보인다.[33] 1917년도 1900년 1월에 맞먹는 강한 초순 한파를 보였으나 2일에는 -9.5°C였다.[34] 1945년 1월과 공동 기록되었으며 지금까지도 1월 월평균 최저 5위에 속한다.[35] 실제로 1918년 1월 인천의 월평균기온이 -6.0°C 였고, 서울은 -7.5°C 였다. 비슷하게 인천 -6.1 °C 기준으로 수학적으로 대응시켜도 1900년 1월 서울은 -7.6°C 이고 당시의 기압계 조건에 따라 좀 더 낮은것 또한 가능하다. 다른 예시로 2011년 1월 인천이 -5.6°C 일때 서울은 -7.2°C 였다.[36] 다만 인천의 월평균기온 어림값 -6.8 °C를 수학적으로 대응시켜서 표기된 기록보다 0.7 °C가 낮다고 할 때는 0.0 °C로 -0.1 °C인 1922년하고 비슷하다.[37] 실제로 한반도의 기상관측은 세계적으로 볼때 역사적,정치적 이유등으로 가장 늦은편이다. 미국,유럽,오세아니아는 말할것도 없고 인도도 동부에 위치한 도시 콜카타에서 1816년 기상관측이 시작되었다. 한반도와 가까운 일본도 1875년 도쿄에서 공식적인 기상관측이 시작되었고, 중국은 일본보다 더 빨라서 1841년에 베이징에서 관측이 시작되었다. 아프리카 대륙조차도 1800년대 기상관측이 시작된곳이 많다. 이렇게 늦은 기상관측은 한반도의 기후데이터 제공에 한계를 주어서, 기후 역사학자들이 한반도의 과거기후를 연구하는데 있어 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단순히 추위가 좋고,말고를 떠나 학술적으로도 큰 단점으로 작용하는 것이다.[38] 12월 -3.9°C, 1월 -3.5°C. 12월은 1935년, 1937년, 2005년과 기온이 같아서 매우 추웠지만 1월은 삼한사온의 패턴이 확실하다 보니 (일제감정기 치고) 따뜻했다.[39] 현대 지구 온난화와 서울의 열섬 현상을 감안해도 3,4월의 평균기온은 평년보다 약 1도 낮은 편이다.[40] 기상자료개방포털에서 이날 30일 일 최고기온은 -1.6°C 으로 나와있지만 그건 전날이 따뜻해서 이제 막 기온이 떨어지는 과정에서 새벽 0시경에 기록된것일 뿐이고, 실질적인 낮 최고기온은 -14~-15°C 사이일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특이하게 추운데 구름도 많아서 햇빛도 없어 한낮의 추위로서는 역대 최강 체감 추위를 보였을듯 하다.[41] 서울의 기온 타임라인을 볼때 아침이 아니라 밤 24시가 다 되어서 기록한것으로 추정된다.[42] 이는 서울의 기상관측 사상 가장 늦게 내린 눈 기록이었으나 2020년 4월 22일에 기록이 깨졌다.[43] 다만 대구광역시는 이 때에도 36~38 °C를 넘어가는 등 매우 더웠다.[44] 이는 이례적으로 최저기온이 빨리 떨어져서 그런 것으로, 9월도 중하순 대부분이 한자릿 수를 기록했으며, 10월 중순부터 영하로 떨어지며 11월에는 2020년 1월보다 평균기온이 낮았을 정도이다. 그 영향으로 서울의 가을철(9~11월) 평균기온이 모두 하위 1위를 기록하며 강한 저온현상을 보였다. 자세한 내용은 이상 저온/사례 문서 참고.[45] 정확히는 -9.9°C[46] 2월 중순을 코앞에 두고 일평균기온 -15.9°C 라는 수치는 대단한 것이다. 12,1월을 다 합쳐도 이거보다 낮은적은 1915/1/13(-19.2°C), 1915/1/14(-18.0°C),1916/12/26(-16.1°C), 1923/1/2(-16.1°C),1931/1/10(-18.9°C),1931/1/11(-17.4°C),1936/1/17(-16.4°C),1959/1/5(-16.4°C),1986/1/5(-16.4°C)로 관측사상 7해 밖에 없었다.[47] 현재 치고는 12월~1월 상순은 평년 수준이었다.[48] 바람도 엄청나게 불어서 최대풍속이 9.2m/s를 기록하여 체감온도는 무려 -34℃까지 뚝 떨어졌다.[49] 가장 뜨겁다는 14~15시경이 이정도면 사실상 이 날 서울의 "낮 최고기온"(일최고기온이 아님)은 -14°C 대로 추정된다. 이러한 한낮인데도 기온이 낮아지는 현상은 최근 사례로는 2020년 11월 19일과 비슷하다.(그러나 이때는 초이상 고온에서 평년으로 내려가는 시기이다.) 그리고 2014년 12월 1일에도 한낮에도 계속 기온이 떨어졌다. 그 밖에도 2016년 12월 22일이 있다.[50] 21세기에는 아침 최저기온이 -16.3°C 이어도 언론에서는 춥다고 난리를 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당시 한파의 위엄이 드러난다.[51] 2위는 후술할 1931년 1월 10일의 -18.9°C. 1931년 1월은 전반적으로 따뜻하지만 갑작스럽게 1915년 버금가는 엄청나게 강한 한파가 잠시 찾아온다.[52] 아침 최저가 아니라 일 최저기온인 이유는 이 역시 서울의 경우처럼 아침이 아니라 24시가 다 되어서 기온이 떨어지는 과정에서 찍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서울이 -20~-23°C 정도로 매우 추워도 바다에 붙어있는 인천 특성상 인천의 최저기온은 -20°C 가 안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23~24시 사이경에 이미 -20.6°C 를 찍었다는건 정말로 놀라운 일이다.[53] -20.6°C 는 인천의 역대최저 3위 기록이다[54] 1위는 1931년 1월 11일의 -21.0°C[55] 1월 12일과 함께 역대 3위 최저기온 기록[56] 이는 대구 일 최저기온 역대 최저 3위. 1~2위는 모두 1923년 1월 한파때 기록되었다[57] 대구 일평균기온 역대 최저 1위[58] 어찌보면 2001~2002년 겨울의 정반대라고 볼 수도 있다. 1914년 12월과 1915년 1월 상순은 (일제감정기 치고) 평년보다 조금 높았고, 1월 중순에는 혹독한 한파, 이후에도 낮은 편이였고 3~4월에 이상 저온을 보였으며, 2001년 12월과 2002년 1월 상순에는 평년보다 조금 낮았고, 1월 중순에는 엄청난 이상 고온 현상을 보였고, 2~4월에도 평년보다 1~3도 높다는 점이 서로 반대되는 점이다.[59] 비공식적으로 1월 30일 북한 혜산군에서 -42°C까지 떨어졌다는 기록이 있다.[60] 1위는 후술할 2001년 1월 한파 참고.[61] 겨울철 동태평양 평균 수온이 최대 2.6 °C 이상 높아 슈퍼 엘니뇨로 평년보다 매우 따뜻했지만 1월 중하순에 강한 한파가 와서 서울은 21세기에서 기록된 기온 중에 역대 최저 2위인 -18.0 °C를 1월 24일에 기록했다.[60] [62] 2010년대 이후 모든 달로 따져도 서울의 낮 최저기온 최고기록은 기록적인 한파가 닥쳤던 2018년 1월 26일의 -10.7°C 에 불과하다. 3월을 하루 앞두고 이렇게 낮은 최기온을 기록한 것은 경악할만한 일이며 동년 1월 13일에 기록한 최고기온 -16.3°C과 비교해도 불과 -4.7°C밖에 차이나지 않는다.[63] 1892년~1893년 겨울과 함께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북반구 전체에서 강한 라니냐가 발달한 기간으로, 이는 1916년 4월에 등장하여 다음해인 1917~1918년 겨울까지 이어져서 기록적인 한파를 남긴 뒤 1918년 2월에 물러갔다. 라니냐 강도로 보면 1892~1893년보다는 못 미치지만 엇비슷했다. 또한 정확한 기온자료를 알 길이 없으나 1892~1893년 겨울도 동지 이후로 추위가 급격히 심해졌다고 기록이 되어있다.[64] 1917년은 1월 월최저 평균기온 -14.4 ˚C로 역대 최하위, 1936년은 일최저기온 -10 ˚C 이상인 날이 3일으로 역대 최하위, 1963년 1월은 월평균기온 -9.2 ˚C로 역대 최하위다.[65] 1916년 12월 16일 -8.5 ˚C까지 떨어지긴 했으나 24일까지 영하 두자릿수 이상을 기록한 적은 없었다.[66] 특히 그 전에 있었던 1915~1916년 겨울은 그때 당시에 비하면 2019~2020년 겨울만큼 심한 이상 고온 현상을 보였다. 이는 열섬 현상이 없는 일제강점기 시대에 지금까지도 서울 1월 평균기온 상위 6위로 평년보다 굉장히 높은 기온을 보였다. 1971년까지는 아예 1월 평균기온 1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서울의 평균기온은 12월 0.8˚C, 1월 0˚C, 2월 0.8˚C로 고온현상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3월에는 꽃샘추위가 심해서 전년도(1915년) 12월이랑 2월보다 월평균기온이 낮은 기현상이 발생했다.[67] 아마 이는 새벽 7시 사이 해 뜨기 직전에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다. 기상청의 시간별자료에서는 누락되어있지만 오전 6시 -18.5 °C라면 기온 하강이 더욱 진행되어 해 뜨기 직전 약 오전 7시경에 -19 °C 기록을 기록한 듯.[68] 12월 낮 최고기온으로는 역대 최저 1위이다.[69] 운산군 -37.6 °C는 그렇다 쳐도 황해도 지역인 신계군에서 -31.4 °C는 의아할 수 있는데, 신계군은 강원도 이천군과 접하고 있으므로 철원군과 비슷한 기후를 보이는데다 일제강점기임을 감안하면 그렇게까지 이상하지는 않다. 또 아마도 두 지역이 산으로 둘러싸이다시피 한 지역이고, 그전에 내린 눈이 태양열을 반사해서 기온이 더욱 떨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70] 12월 26일이 가장 한파가 강했으므로 아마 26일에 기록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1916년 12월 26일 6시 일기도를 보면 중강진과 같은 북부 내륙 지방에 -35 °C 기온선이 보인다.[71] 이는 아마 1월 8일이나 22일 두 날 사이에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전국적으로 한파의 강도가 이날에 가장 강했으므로 이를 추측해보는 것이다.[72] 후술할 1917~1918년 겨울 때는 1917년 12월 월평균기온 -17.8 °C, 1918년 1월 월평균기온 -20.9 °C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때는 라니냐가 서서히 풀릴쯤인 1월 하순부터 한파가 점점 풀려 기온이 올라갔는데 이것이 없었다면 1917년 1월처럼 영하 23.3도에 준하거나 심하면 그 이하를 기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서울만 봐도 최저기온 기록은 1918년 1월이 더 낮다. 1917년 1월 22일에는 -21.1 °C, 1918년 1월 3일 최저기온 -21.8 °C[73] 오후 2~3시가 기온이 가장 높긴 하지만 12시도 못지않게 높은 편이다. 그럼에도 기습한파가 찾아와서 영하 두자릿수 이상을 기록했다는 점이 마치 1월의 추위를 연상시킨다.[74] 인천의 낮 최고기온 기록은 월 상관없이 1915년 1월,1931년 1월 다음 역대 최저 3위이다. 12월에 이런 낮기온을 보였다는 점이 경이롭다.[75] 2위와 1위는 모두 1927년 12월 29, 31일이 기록하였고, 자세한 내용은 후술할 1927년~1928년 한파를 참조하자.[76] 북한은 역시나 말할 것도 없이 훨씬 추워서 평안북도 초산군에서 비공식적으로 -36.7°C의 기록이 관측되었다. 중강진도 1917년 12월 최저기온 -33.8 °C를 기록하여 독보적이다.[77] 이때는 열섬 현상 같은 거도 없었다는 것을 감안해도 추웠으며, 1981년~2010년 12월에 비하면 평년보다 6.1℃ 낮은 값이며 역대 최하위이다! 그나마 12월이 춥기로 악명이 높았던 2012년 12월도 평균기온이 -4.1℃로 조금 못 미치는 기록을 보여주었다. [78] 서울은 1944년 12월과 함께 공동으로 기록되었다.[79] 현대에 와서도 이상 고온에 속한다. 또한 100년 후인 2017년~2018년에도 후술하겠지만 한파가 찾아왔는데, 기온 자체는 1917~1918이 훨씬 낮으나 한파의 길이는 2017년~2018년과 비슷했다.[80] 통계청 참고자료에 따르면 1917년 12월 평양의 월평균기온-10.8°C를 기록하고 최저기온은 -24.3°C를 기록했다고 한다. 현재는 강원도 산간 지역도 월 평균기온이 영하 두자릿수로 내려가는 것은 쉽지 않은데 1월도 아닌 12월에 이와 같은 기록을 경신했다는 점에서 경이로움을 감추지 못한다.[81] 실제로 라니냐의 강도는 1917년 1월이 가장 강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11~12월 들어 다시 낮아졌다. 슈퍼 엘니뇨로 평년보다 매우 높았던 2015년 12월하고는 정반대 관계이며 이후 급속도로 약화해서 1918년 2월에 정상 범위로 돌아온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즉 원래 추운 겨울이 예상되었는데 매우 기록적인 라니냐까지 겹치면서 1917년 12월의 비현실적인 한파가 닥친 것으로 보인다. 또한 1918년 1월은 1917년 12월에 종속되어있는 경향이 강하다. 9일 이후부터는 추위가 점차 약해졌으며 1월 말까지 이렇다할 기록이 없고 2월 초에는 오히려 이상 고온 현상까지 일어났다. 2월 중순 들어 다시 추위가 오긴 했지만 2월 말은 아예 대놓고 고온을 기록했다. 지금 기준으로도 꽤 높다.[82] 특별히 추운 겨울까지는 분명 아니다. 하지만 1919년 2월 5일 -18.3°C 기록은 역대 2월 4위 기록에 해당하는 만큼 의미가 크다.[83] 여담으로 1918년 가을 들어서 스페인 독감이 조선에서 대유행을 하였는데 재작년인 1916년부터 이어져온 한파까지 겹치며 더욱 힘든 삶을 보냈을 듯하다.[84] 이는 서울의 역대 최저기온 3위이다. 90년 후에는 중부지방에 폭설이 내렸고 100년 후에는 정반대로 초이상 고온을 보였다는 점이 흥미로운 사실이다.[85] 평년 신의주의 기온과 비슷하다.[86] 약간 2012~2013 겨울하고 겹치는 점이 있어서 비교해보면 12월부터 2월까지 매우 추운 날씨와 1월 말에 잠깐 따뜻해졌다가 2월에 들어 다시 추워졌다는 점 등이 겹치지만 1919~1920 겨울이 최저기온이 훨씬 낮고 1월 평균기온 -6.8°C로[85] 1월 중심으로 추웠다는 것과 2012~2013년은 12월 중심으로 훨씬 더 추웠던게 2012~2013 겨울과 대조된다.[87] 이후 1920~1921년은 비교적 따뜻해서 덜 낮은 평균기온을 기록했지만 12월 말과 1월 초중순 사이에 반짝 한파가 있었다.[88] 2위가 1917년1월, 1963년1월의 -12.1°C 이다. 1922년하고 1.5°C 차이이니 얼마나 압도적인지 보여주는 대목.[89] 2010년~2011년 겨울하고도 비슷하다. 어디까지나 서울 기준이고 1922년이 좀 더 춥고 오래 지속되었다는 세부적인 차이점이 있지만 평균기온이 1922년 -7.8°C, 2011년 -7.2°C로 어느정도 비슷했고, 크리스마스 쯤 시작된 한파가 1월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고 1월 중순 즈음에 가장 추웠으며, 2월이 되자마자 물러갔다는 대략적인 진행이 비슷하다.[90] 23일이라는 말도 있고 24일이라는 말도 있다.[91] 2010년 1월 4일처럼 최심적설량은 아니지만 문제는 1,2월이 아닌 3월에 이와 같은 폭설이 내렸다는 것이다.[92] 이정도면 1월 한달 최저기온 영하 30도 이상 오르는것도 극히 드문 장기한파가 이어졌다는 소리이다. 매우 경이로운 기록인 셈이다.[93]1909년 이전에는 월평균기온이 기록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띄엄띄엄 관측되었을 가능성이 크다.[94] 반대로 2016년 1월 23일~25일 한파처럼 북한과 남한의 기온차이가 상대적으로 적은 추위도 있다. 당시에는 한기의 중심이 남한에 위치한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북한보다는 중부가, 중부보다는 남부가 상대적으로 그 지역의 기록적인 한파인것을 볼때(예시로 제주도는 2016년 1월 24일 93년만에 1월 최저기온 기록을 경신) 그렇다.[95] 다만 역대 가장 낮은 기온은 아니다. 1929년 2월 1일의 -28.5℃가 떡하니 1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96] 이는 1970년 11월 30일 -11.9℃, 1947년 11월 27일 -11.8℃ 이후 현재까지도 11월 역대 최저기온 3위이다.[97] 이는 11월 평균기온 역대 최저 3위이다. 참고로 1981년~2010년 11월 평균기온은 7.2°C이다. 열섬 현상이 없던 당시 상황도 고려해도 여전히 평년을 2~3도 밑도는 날씨였던 것이다.[98] 수상당량비는 1mm당 적설의 비를 의미한다. 기온이 낮고 습도가 낮을수록 수상당량비가 커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예를 들어 수상당량비가 15 라는 의미는 1mm의 강수량이 15mm=1.5cm 의 눈으로 내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통 -5℃ 이내의 낮은 온도에서는 수상당량비가 15 이상에 달한다. 예시로 2010년 1월 4일 중부지방 폭설때 -6℃ 안팎의 낮은 기온에서 눈이 내렸는데 당시 서울의 하루 강수량은 14.2mm 밖에 안되지만 총 25.8cm 의 눈이 내려 수상당량비가 18.2에 달했다.[99] 급격한 한기 확장으로 인해 한낮에도 기온 상승이 거의 없다. 이 날 실질적인 낮 최고기온은 -13℃대 였을것으로 추정된다.[100] 아무리 추운 한파여도 -16℃ 이하는 자정이 다 되거나 새벽이 되어서 나오는 기온인데 해가 지자마자 오후 6시에 -16℃ 이하가 나왔다는것은 놀라운 일이다. 기온 떨어지는 페이스가 엄청나게 빠른 것[101] 1916년 12월 26일 -16.1℃ 와 함께 서울 역대 일평균기온 최저 공동 7위. [102] 1931년 1월, 1915년 1월, 1917년 1월 한파 다음으로 가장 추운 기록이다.[103] 대구 기준 1915년 1월, 1931년 1월 한파 다음으로 가장 낮은 최고기온이다.[104] 1월 역대 5위의 최저기온 기록이다.[105] 서울 역대 최고 2018년 8월 1일 39.6℃, 역대 최저 1927년 12월 31일 -23.1℃로 62.7℃, 대구 역대 최고 1942년 8월 1일 40℃, 역대 최저 1923년 1월 19일 -20.2℃로 60.2℃.[106] 이 기록으로 대구도 서울만큼 역대 최고,최저의 격차가 60℃ 이상 벌어진다.[105][107] 이 추정대로라면, 대구에 무려 51.0cm 가 쏟아진 1953년 1월 18일 다음으로 규모가 큰 폭설이다. [108] 같은 날, 서울은 대구에 비해서는 훨씬 적지만 6.0mm 라는 상당한 강수량이 기록되어 있다. 서울 역시 대설이 내렸을 것이다.[109] 갑자기 확 따뜻해진것으로 보아 온난종관형 저기압이 지난것으로 추정된다.[110] 물론 2000년대~2010년대 겨울에 비하면 추운 편이다.[111] 앞서 말했듯이 사실 현대 서울의 겨울은 어느정도 열섬 현상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렇다는 말은 일제강점기 당시의 기온이 더 낮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112] 이후 1923년 12월에서 1926년 3월까지의 겨울은 평년 수준이거나 좀 더 추운 정도에 그쳤다.[110] 하지만 후술할 1926~1927~1928년 겨울에 전대미문한 최저기온을 기록하며 큰 한파가 왔다. [111][113] 특히 강릉에서는 최저 -4.7°C, 최고 0.8°C에 일강수량 69.3mm의 기록이 남아있다. 기온이 낮은 편이라 거의 눈으로 왔을 것이며 영동 지방에 많은 폭설이 내렸을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물론 개인의 생각일 뿐이라 맹신하지는 말자.[114] 이후 3~4월은 눈에 띄는 꽃샘추위는 없었다.[115] 1위는 후술할 1933년 한파 참조[116] 서울의 기온으로 보아 1월 초는 고온현상이 강했다고 가정했을 시에도 평균기온 -11 ℃의 기록을 경신하였다. 여러모로 얼마나 대단한 한파였는지 보여주는 셈이다. 서울도 -5.2°C 를 기록해서 일제강점기 치고도 약 1°C 낮은 편이었다.[117] 이날 철원에서도 비공식적으로 -31°C를 기록했다는 정보가 있고 횡성군에서도 비공식 기록으로 -29.8°C까지 떨어진 기록이 있다.[118] 하지만 비공식적으로 1928년 1월 13일 자성군 -38.7°C의 기록이 있다. 혹서혹한의 고장인 중강진이 있는 동네라 그리 비현실적이진 않은 기록이다. 사족이지만 아마 1927년 12월 말~1928년 1월 초의 한파의 강도를 생각한다면 영하 40도 이상은 가볍게(...) 기록했을 것으로 보인다.[119] 시간대별로 보면 알겠지만 낮 최고기온은 이보다 훨씬 낮을것으로 보는것이 타당하다. 1월 9일 밤 12시가 다 되어서 -14.2°C 를 기록했으므로 10일 0~1시 사이 새벽경에 근처에서 잠시 올라 10일의 일최고기온 -13°C 을 찍은듯하다.[120] 14시가 이정도니 이날 실질적인 낮 최고기온은 -16°C 대일것으로 추정된다. 이정도면 1915년 1월 13일과 동급수준이다.[121] 1위는 앞서 서술한 1927년 12월 31일의 -23.1°C[122] 3월 1일 -10.7°C[123] 3월 1일 최고기온 1.6°C.[124] 가장 낮은 날은 3월 8일의 5.7°C였다.[125] 최저기온은 -1°C.[126] 하지만 1931~1932년 겨울은 따뜻했다.[127] 1931년의 한파는 따뜻하다가 갑자기 한파가 들이닥치는 경향이 컸으며, 1월 11일 -22.5°C 이후 조금씩 한파의 기세가 누그러지나 싶더니 2월 5일부터 추워져서 2월 8일 다시 -17.8°C를 기록했다. 그 이유로 월평균기온은 생각보다 높지만 최저기온은 평년보다 훨씬 낮았다. 물론 4월의 이상 저온 현상으로 서울 월평균기온 8.8°C로 역대 최하위를 기록하긴 했으나 서울 기준 월평균기온 1월 -3.9°C는 한파가 제대로 왔다 하면 월평균기온 -4.5°C 이하를 기록하는 일제강점기 1월 치고는 조금 높은 편이다. 그러나 2월 -2.7°C는 일제감정기 2월이라는 걸 감안해도 평년보다 낮았다.[128] 참고로, 이 해 여름에는 극심한 폭염에 시달렸다. 어쩌면 그 전조 증상일수도...?[129] 여담으로 2021년 1월 하순의 초고온이 이 기록을 깨는지 많은 주목이 있었지만 13.9 °C로 14도를 넘지는 못했다.[130] 이 정도도 한파의 범위에 들어가지만, 한파가 제대로 왔다 하면 -20˚C 이하를 기록하는 일제강점기 서울의 겨울치곤 상당히 높은 편이다.[131] 물론 최저기온은 1931~1932년 겨울이 더 낮은 편이다.[132] 한파는 가끔씩 찾아오고 1월 초에 역대 기록을 갈아치울 만한 이상 고온 현상이 찾아왔다는 점에서 2019~2020 겨울과 비슷했다.[131] 2019년 12월-2020년 3월 이상 고온 문서 참조.[133] 그리고 그 이후 1932년에는 유의미한 폭염이 보이기도 했다. 폭염/사례 문서 참조.[134] 당장 이상 고온으로 손꼽히는 2019~2020 겨울도 강계시는 2월 5일 -27˚C를 기록했고 2017년~2018년 한파 및 폭설 당시에는 1월 25일 -29.5˚C까지 내려갔다.[135] 물론 그쪽이야 현재까지도 한파가 제대로 왔다 하면 영하 30도 근처로 내려가서(...) 그렇게 놀라운 기록은 아니지만 1931~1932 겨울이 춥지 않다고 볼 수 없다. 더군다나 12월은 현대의 12월 평균기온에 비하면 낮은 편이다.[134][136] 또한 중강진이 유독 1933년에 추위가 강해서 1917년 1월도 넘지 못한 월평균기온 -25.3 °C 기록을 1933년 1월에 세우고 만다. 이는 중강진의 월평균기온 역대 최저 2위 기록이며 후술할 1981년에 양평군만 유독 추워서 대한민국 지역에서 역대 기록들을 경신한 것과 비슷하다. 아래는 1월 13일 오전 6시 일기도의 일부이다. 중강진 혼자서 -40 °C 이하를 기록한 것이 눈에 띈다. [image][137] 하지만 그 해 여름은 비교적 서늘했다.[138] 4월에 고온현상이 일어났다는 것만 빼면 앞서 말한 1931년과 비슷한 양상을 보여주었다.[139] 1981~2010년에 비하면 평년 수준[140] 지금도 심한 한파로 기록된 2005년 12월과 동일한 수치이며, 1907년 12월과도 같은 수치이다.[141] 역대 1월 평균기온 최저 3위이다.[142] 2012~2013이 -2.9도로 그나마 가장 가까이 갔다.[143] 심지어 중강진은 1936년 1월 월평균기온 -25.3 °C로 역대 최저 3위 기록을 세웠다.[144] 쇼와 6년(1931년) 11월 11일 -22°C를 기록했다고 하는데 이는 오타이다. 1931년 1월 11일에 서울은 -22.5°C를 기록했다. 그리고 서울의 최저기온이 쇼와 2년(1927년) 1월 31일에 기록되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그해 12월 31일에 -23.1°C를 기록했다.[145] 평균기온 기준으로 9.1°C.[146] 이후 1936년 12월~1937년 2월과 1938년 12월~1941년 12월까지의 겨울은 그럭저럭 평년 수준 겨울이 찾아왔다.[147] 이 강추위 때문인지, 서울의 11월 평균기온이 5.9°C로 꽤나 낮게 기록되었다. 최근의 사례인 2012년, 2017년 11월보다 겨우 0.3~0.4°C만 높다.[148] 최저기온은 절대 영하 10도를 벗어나지 못 했고, 최고조차 영하 3도 이하인 날씨가 한달이나 지속된 것이다.[149] 하지만 그 뒤에도 4월 15일까지도 0도를 기록한 날이 있었고, 심지어 영하로 떨어진 날도 있었으며, 5월에는 4~6일에는 3~5도까지 떨어지고, 6월 초에는 최저 10.2°C, 11~13도를 계속 유지하는 등 이상 저온은 끈질기게 계속되었다. 이로 인해 1940년은 뒤끝이 강해서 9월까지 이상 저온이 이어졌다.[150] 이후 1941~1942년 겨울, 1943~1944년 겨울, 1945~1946년 겨울은 한파는 있었으나 앞서 서술한 비현실적인 한파보다는 심하진 않았다.(물론 현대의 겨울에 비하면 춥다는 점은 명심하자.)[151] 하지만 이는 통계 오류 혹은 온도계 오작동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같은날 서울은 -15.5°C, 전주는 -12.6°C를 기록했다. 그런데 광주 기준으로 동년 1월 12일에 -18.2°C가 또 나왔으며 40년대에 -17°C이하가 여러번 나온 것으로 봐서 관측을 처음 시작한 1939년 5월 1일부터 1945년까지 유난히 낮은 기록이 많으며 광주광역시 관측소 온도계가 추운 날씨에 오작동을 일으키는 것 같다. 반면 1946년 이후의 기록은 광주관측소도 신뢰성이 높으며 정상적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152] -5.7°C > -6.1°C[153] 1944~1945 겨울의 최저기온은 -19.1°C이며, 1935~1936 겨울은 -20.1°C이다. 그리고 1936년 3,4월 평균기온은 각각 -0.2°C, 9.1°C를 기록했고, 1945년 3,4월은 각각 2.3°C, 11°C를 기록했다.[154] 1935~1936 겨울과 비교하면 겨울 평균기온은 1944~1945가 더 낮으나[152] 겨울철 최저기온이랑 3~4월 평균기온은 1936년이 더 낮았다.[153][155] 다만 1945년 여름은 더웠고, 1945~1946 겨울은 그다지 크지 않은 한파가 지나가면서 따뜻한 편이었다.[156] 1944~1945년 한파는 2017~2018년 한파도 한 수 접고 들어갈 정도로 규모가 2017~2018에 비해서 비교불과급으로 크다. 2017~2018보다 약 4도가량 낮다.[157] 평균기온은 서울 기준으로 12, 1, 2월 각각 -4.3°C, -3.9°C, -5.3°C이며 1월은 당시 치고는 평년 수준이지만 2월은 역대 최하위를 기록했다.[158] 다만 12월과 2월은 평년 수준에 가까워서 2019~2020의 기록을 넘지는 못했을 것이다. 물론 예상일 뿐이지만 열섬 현상 없는 1949~1950 당시의 겨울이 70년 후인 2010년대에 왔다면 고온 현상이 2019년~2020년을 능가했을 수도 있다.[159] 최근들어 많은 비가 내리며 이상 고온 현상을 보인 2020년 1월 7일도 서울의 (일최다강수량) 46.3mm를 기록하여 1950년 1월 30일 기록에 약간 못 미쳤다.[160] 한파의 진행은 1949~1950년이 좀 더 빨랐으나 서울 최저기온이 -18°C로 같고 평소보다 고온이었지만 갑자기 한파가 닥쳤다는 점에서 2015~2016년 겨울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161] 최저기온 시각이 24:00 으로 되어있다. 즉 아침에 기록한 것이 아닌 밤 12시경에 기록된 것[162] 눈으로 인한 태양빛의 반사도. 알베도가 클수록 흡수 복사열이 적어져서 기온하강이 심해진다.[163] 대한파가 약간 풀릴지라도 -10°C 이하가 계속되어 사실상 계속 한파였다.[164] 못 믿겠으면 몇 주 이상 장기한파가 이어진 1917년 12월~1918년 1월,1936년 1월~2월, 1940년 1월,1944년 12월~1945년 2월, 1947년 12월, 1963년 1월, 1977년 1월,2011년 1월 등의 일별 강수량과 적설량을 살펴보라. 간혹 폭설이 내리기도 하지만 강수일수가 적고 흔치 않다.[165] 역대 1월 최다[166] 일별로는 1월 1일 5cm, 1월 3일 2.3cm, 1월 4일 4.8cm, 1월 5일 0.2cm, 1월 13일 9.8cm, 1월 14일 2.4cm, 1월 15일 5.5cm, 1월 20일 2.4cm, 1월 21일 9.1cm, 1월 26일 18.9cm[167] 그 날 새로 내린눈을 의미한다[168] 5cm 이상 최심신적설[167]을 기록한 날[169] 1위는 2010년 1월 4일 25.8cm, 2위는 1969년 1월 28일 25.6cm[170] 자세한 내용은 폭염/사례 문서 참조.[171] 광복 이후 역대 최저기온 2위이다. 3위는 후술할 1986년 1월이고, 1위는 후술할 1970년 한파에 있다.[172] 광복 이후가 아닌, 1907년 기상관측 이래로 따져도 역대 5위에 해당하는 값이다. 심한 혹한이 널리고 널린 일제강점기 왠만한 한파보다도 낮았던 것. 1~4위는 1915년,1931년 두 해가 전부 싹쓸이 했다.[173] 여담이지만 위 신문자료를 들어가보면 이때 당시에도 기상청(당시 중앙관상대)가 욕을 먹고 있다(...) [174] 1962년 12월에도 한파가 있긴 했지만 앞뒤년도에 비하면 그나마 양반이었고 평년보다 높았다. 12월 31일에야 최고기온 -5.5°C, 최저기온 -11.5°C를 기록하여 한해 가장 낮은 기온을 기록했을 정도다. 12월에 고온현상이 있어서 1월은 전달보다 무려 10도 이상 떨어지게 되었다.[175] 악명높은 추위를 기록했던 1917년 1월보다도 살짝 낮고 역대 최하위 기온이다. 다만 1917년은 최저기온이 -21.1℃로 1963년 1월의 -18.4℃보다 더 낮았다. 기상자료개방포털에서는 -9.1도로 되어 있으나 실제 값은 -9.15도이므로 소수점 둘째 자리에서 반올림하는 월평균기온 특성상 -9.2도가 된다.[176] 이정도면 서울의 평균기온과 맞먹는다.[177]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 겨울은 1921~1922, 1984~1985, 2010~2011년 등이 있다.[178] 평균기온은 서울 기준으로 12, 1, 2월 각각 -2°C. -4.6°C, 0.1°C로 12월과 1월은 다소 추웠으나 2월은 포근한 편이었다.[179] 여담으로 저기 윗동네윗동네의 윗동네인 중국 헤이룽장성의 모허 지방에서는 무려 월평균기온이 -35.3 °C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보였다. 즉 중강진, 삼지연시, 개마고원 일부 지방의 최저기온에서나 볼법한 -35 °C 기록이 월평균기온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반도에서는 아물 기록적인 혹한이 올지라도 절대로 근접조차 불가능한 수치다.[180] 12월 24일 ~ 1월 18일까지[181] 평균기온은 서울 기준으로 12, 1, 2월 각각 -3°C. -4.4°C, -2.4°C[182] 다만 그럼에도 역대 1위까지는 기록하지 못했다. 1917년 12월 하순이 -10.7 °C로 압도적으로 낮았기 때문.(...)[183] 12월 -5.7°C, 1월 -7.8°C, 2월 -4.9°C[184] 단, 1935~1936년 겨울은 12월이 -3.9°C 인 대신 1월 -8.8°C, 2월 -4.4°C 등 1월이 엄청나게 추워서 겨울 평균기온이 무려 -5.7°C 로 역대 최저 2위에 달해 사실상 1967년~1968년 겨울이 깝칠 레벨은 아니긴 하다(...) 다만 3달 연속 -4°C 이하인 점이 대단한 기록일 뿐.[185] 이는 서울의 12월 역대 최고기온이다.[186] 몇 번의 작은 한파 이후 금세 이상 고온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였다가 말일인 31일에 기온이 급격하게 내려갔다는 점에서 2019년 12월하고도 공통점이 있으며 공교롭게도 달력 모양도 같았다.[187] 서울의 평균기온이 3.1˚C로 역대 12월 평균 3위이다. 특히 7~9일에는 서울의 최저기온10˚C 이상을 연속 기록했다. 9일은 최고기온이 17.7˚C를 기록하고[185] 이후 11일에도 14.5˚C를 기록했으며 13일까지 최저기온조차 영하로 떨어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후 14~16일, 22~23일에 잠시 영하 7~9˚C로 떨어지는 한파가 있긴 하였으나 금세 이상 고온으로 돌아갔고 12월 30일까지 평년 수준이거나 고온을 유지하다가 31일에 기온이 -11˚C로 급격하게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186][188] 사실 이건 지금 기준으로 본거고, 오히려 그 시대에서는 평년보다 높은것이다. 1960년대 서울의 1월 평균기온은 -4.2°C 였으므로. 즉 반대로 말하면 한파가 와도 한기가 약해 평년보다 따뜻한 1월이었다. 다만 2월의 -2.7°C는 평년보다 낮은 것이다.[189] 아예 신문 첫페이지부터 대문짝하게 걸어있는 것을 보면 분명히 기록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40년도 더 된 일이지만 2010년 1월 4일 당시에도 대대적인 폭설보도가 있었다.[190] 1969년 1월 1일[191] 1970년 1월 5일 -20.2˚C[192] 대전은 -14.2°C로 1월에도 뚫지 못하는 기록이 나왔다.[193] 이해 12월은 8~9일의 반짝 한파를 제외하곤 말 그대로 큰 추위가 없던터라, 하룻밤 사이에 크게 뒤바뀐 날씨에 사람들이 크게 당황했을 것이다. [194] 이후 대관령은 3월 초에 다시 한파가 맹위를 떨쳐 3월 4일에 최고기온 -12.2°C를 기록하는데, 정확히 1년 전인 1976년 3월 4일에는 최저기온 -12.1°C를 기록하였다. 이후에도 한파가 완전히 가시지 않아 4월에 영하를 기록한 날이 은근히 많았고, 급기야 5월 16일-4.7°C, 23일에 -2.1°C를 기록하였다. 24일에 곧 기온이 큰폭으로 오르며 한파가 완전히 끝났다.[195] 우연찮게도 10.26 사건과 그로 인한 혼란이 집중된 1980년에 이상 저온이 특히 집중된 경향이 보인다. 당시 시국도 혼란스러운 와중에 날씨까지 을씨년스러웠으니 더욱 어수선했을 것이 뻔하다. 1980년 기록은 이상 저온/사례 문서를 참고할 것.[196] 2020년 11월 중순의 압도적인 초이상고온과 정확히 반대된다고 볼 수 있다.[197] 심지어 장기한파로 악명높은 1945년 2월 초의 -8.5 °C조차도 경신해버렸다.[198] 물론 1984년이 더 낮긴 하지만 하순의 이상 고온 현상으로 인한 것이며 중순까지는 1984년보다 더 추웠다.[199] 사실 6월은 평년 수준이었다.[200] 2월 25~28일[201] 영상 업로드 날짜를 보면 2017~2018년 겨울 한파가 가장 심했던 1월 27일에 업로드되었다. [202] 1942년 1월 5일 김화군 -33.4°C가 있으나 김화군 자체가 거의 북한 땅에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비공식 기록이다.[203] 최대풍속 2.5m/s로 계산하면 무려 체감온도가 -42℃까지 내려갔다.[204] 사실 일제시대부터 철원, 양평, 홍천, 대관령/평창 등의 내륙지역 관측소가 존재했다면 이보다 더 낮은 온도도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양평군 이외에도 많은 지역에서 -30℃ 이하의 기록을 가질 수도 있다. 1700년대나 1800년대부터 측정했다면 그때는 더 추웠던 시기이기에 -35℃ 이하도 가능할 수 있어 보인다. 일제시대에는 1981년 1월보다 훨씬 혹독한 추위도 많았기 때문이다. 당장 1981년 만큼 강력하지는 않았던 2001년 한파만 봐도 안흥이나 평창, 홍천, 연천에서 비공식으로 -30도를 깨는 기록들이 속출했다. 20세기 초반부터 관측소가 있었던 항구도시나, 일부 대도시와는 달리 대부분 지역의 관측소들은 1960년대 중반 이후에 생기기 시작해서 1963년의 기록도 찾아볼 수 없다. 특히 강원도 지역은 1970년대 이후에 많이 생겼다. 그나마 가장 빠른게 1966년 1월에 개시한 춘천 관측소다. 재밌는 사실은 춘천 관측소의 최저극값은 개시된지 고작 3년 뒤인 1969년 2월 6일의 -27.9°C 이고, 1월 극값도 관측 개시 바로 1년뒤인 1967년 1월 16일 -25.6°C 이다. 이처럼 철원, 인제 등 다른 내륙지역들도 더 빨리 관측을 시작했다면 더 낮은 기온 기록을 가질 수 있었음을 시사하는것이다. 2010년대 이후 처럼 진작 내륙지역에 AWS까지 많이 있었다면 이 보다 더 낮은 기록이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205] 심지어 5일만 더 빨랐더라면 기상관측 최초로 12월에 -30℃ 이하가 나타날 수도 있었다.[206] 이는 불가능한 수치는 아니다. 1933년의 중강진 -43.6 ℃ 기록은 어떻게 나왔는지 알 수가 없지만 최근 사례만 봐도 반사율(알베도)로 전라남도와 같은 남부지방 내륙지역의 기온이 크게 떨어진 2021년 1월 6~8일 폭설과 한파가 있다.[207] 최저기온 평균은 북한삼지연시와 비견될 만하다. 참고로 이달 삼지연시의 최저 평균기온은 -24.7℃로 보기만 해도 충격적인 값이 나왔다. 최저기온이 -20℃ 위로 올라간 적이 단 2번(29일, 31일)밖에 없었을 정도이다. 또한 이때 일기도를 보면 양평만 유독 추웠던 것으로 나오는데 1933년 1월 13일 중강진이 -43.6℃로 유독 추웠던 것과 비슷하다. 최근 사례로는 2020년 2월 6일 대관령 혼자서 -24.0℃까지 떨어진 것과 비슷한 모습이다.[208] 이는 1963년 1월 -9.2°C 이후 서울 1월 월평균기온 역대 최저였으나 후술할 2011년 1월에 기록이 깨졌다.[209] 그런 점에서 2012~2013 한파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평균적으로 2012년~2013년은 12월이 더 추웠고 1980년~1981년은 1월이 더 추웠다. 한파의 강도로 보면 1980~1981년이 더욱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2012년 12월은 서울 최저기온은 -14.5℃였지만 평균기온이 -4.1℃로 21세기 가장 낮은 12월 평균기온을 기록하며 풀리지 않고 다음해 1월 말까지 이어졌으며, 1980년 12월은 -3.8℃로 약간 높지만 최저기온은 29일 -16.2℃로 더 낮았고 1981년 1월 평균기온은 무려 -7℃를 기록했다(...)[208][210] 2월 말 추위의 위력이 얼마나 강력했으면, 한기가 영향을 미치는 지역과 거리가 멀어서 어지간히도 영하로 잘 안 내려가는(81년 1월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의 하치조 섬까지 2월 26일에 -0.3°C, 27일에 -2°C까지 급강하했다.[211] 1위는 1980년 2월의 -8.8 °C이다. 비슷하게 1월 하순도 -7.1 °C로 하위 12위를 1941년과 공동 기록하며 상당히 추웠다.[212] 특히 9일~11일에는 고온이 매우 심했다. 9일 최고기온 14.5 °C, 11일 최고기온 13.1 °C.[213] 고온과 저온의 대결로 결국 월평균이 -0도대 중~후반으로 아주 살짝 낮았던 걸 보면 마치 2018년2020년 12월을 연상시킨다.[214] 2017년 12월비슷하다.[215] 지금까지도 여전히 서울의 광복 이후 역대 최저기온 3위에 해당된다.[216] 최저기온은 -24.4˚C를 기록했다(...) 대관령의 평균기온조차 -9.9˚C로 거의 -10˚C에 근접하였다.[217] 다만 이는 서울 도심의 열섬 현상이 심화된 것이 주요한 원인으로, 열섬현상이 비교적 덜한 도심 외곽 김포공항의 경우 2010년대까지도 여전히 영하 20도 안팎의 기온이 기록되고 있다.[218] 여담으로 2021년이 이와 비슷한 경향을 따라가는듯 보였으나 결국 하순의 압도적인 이상 고온으로 인해 월평균은 거의 평년과 비슷했다.[219] 단 1986년은 3~6월은 평년에 가깝고 12월은 이상 고온을 보여서 1980년보다는 높았다.[220] 11월 최초로 -20℃ 이하가 나타났을 수도 있었다.[221] 대체로 1월은 이상 고온이 심하였지만 1998년 1월처럼 반짝한파가 존재하기는 했다. 그러나 12월, 2월은 추울때도 있었다.[222] 2016년 1월 24일 최저기온 -18℃를 기록한 것이 가장 근접한 기록이었다. 이후 2021년 1월 8일 서울이 -18.6 °C를 기록해서 2001년과 같은 값이 나왔다.[223] 이는 공식적으로 기록된 철원의 역대 최저 기온이기도 하다.[224] 비공식 기록이라 하지만 일 최저기온의 경우 새벽이나 아침에 기록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햇빛의 영향을 많이 받는 일 최고기온에 비해 주변 환경의 영향을 덜받는다. 안흥 근처에 공식 관측소가 있었더라면 -30℃ 이하가 찍혔을 것이다.[225] 이들 외에도 평창 대화면에서 -30.4℃, 홍천군 내면도 -30.8℃로 -30도를 돌파했다.[226] 그 전의 기록은 1981년, 1986년 1월 5~6일의 -25℃[227] 단 11월은 고온현상도 있다보니 평년 수준이였다.[228] 2013년 12월과 비슷한 형태이다.[229] 21세기 이후 이보다 더 낮은 기온을 기록한 달은 2001년, 2011년, 2016년, 2018년, 2021년 1월 뿐이다.[230] 3월 5일, 6일 합하면 누적 강수량 70.2mm[231] 3월 5일, 6일 합하면 누적 강수량 60.0mm[232] 1980년의 12월 28일 결빙 이후 더 빠른 18일에 결빙이 되었다.[233] 다만 2004년 1월은 평균기온 자체는 낮지 않았다.[234] 2005~2006년 겨울도 추웠지만 1월은 이상 고온이 심했다.[235] 최심신적설량 25.8cm으로 역대 1위를 달성했다.[236] 단 이 기록이 나온 철원 정연리는 원래 평강군 남면에 속했으나 6.25전쟁 이후 남한 철원으로 편입된 지역이다.[237] 그로 인해 2월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1.7℃ 높았다.(1971년~2000년 기준 평균기온 -0.3℃)[238]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는 4월 초까지이고 전라도는 14일에도 눈이 왔으며 눈 날림까지 포함하면 수도권 일부 지역은 4월 말까지 왔다.[239] 평균기온 기준으로 1931년 8.8°C, 1926년, 1936년 9.1°C, 1923년 9.3℃, 1911년 9.4°C, 1915년, 2010년 9.5°C 순.[240] 풀리는 도중이라 이때까지는 이상 저온이었다.[241] 이는 21세기 1월 평균기온 역대 최저값이기도 하며 해방 이후 기준 앞서 서술한 1963년 1월의 -9.2℃ 다음으로 역대 최하위이다. (3위는 1981년 1월 -7℃)현대에는 그나마 도시화가 진행되어 기온이 그리 낮지 않지만 만약 일제강점기 때 이와같은 추위가 한반도를 찾아왔다면 어떻게 될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진지하게 따져보자면 열섬에 의한 기온상승효과는 낮보다 아침이 훨씬크다는게 알려져있다. 아침은 약 2~3°C 상승하며 낮은 1°C 의 상승을 보인다. 따라서 월평균은 대략 1.5~2°C 하강, 1917/1,1963/1 이랑 비슷한 대략 -9°C 정도의 값을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최저 평균기온은 -9°C 를 넘어 진짜로 -10.5℃가 나왔다!)[242] 이 달 신의주는 월평균기온이 무려 -9.4℃에 달해 1907년 관측사상 서울의 1월 월평균 최저치(1963년 1월 -9.2℃)보다 더 낮았다. 그리고 최고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갔던 적이 단 이틀(8일 0.1℃, 14일 0.3도)밖에 기록되지 않았다.[243] 31일까지의 적설량 1위는 고창군 40.5cm, 전라도 대표 지역 광주광역시는 29.2cm.[244] 앞서 설명했듯이 1922년은 평균기온도 0.6˚C 차이로 서로 비슷했다. 최저기온은 1922년 쪽이 훨씬 더 추웠지만.[245] 1922년, 1963년, 1985년 1월과 양상이 비슷하다. 전년 12월 후반에 급작스럽게 한파가 찾아온 것, 1월 내내 혹독한 한파가 기승을 부렸다가 2월에 물러간 것[244], 2월에 추가적인 한파가 찾아온 것이 공통점이다. 차이점은 1985년이 2011년보다 한낮에 기온이 영상으로 오른 날이 조금 더 많았다는 것, 1922년은 평균기온과 한파의 양상이 비슷했지 최저기온은 2011년보다 더 낮았고 2월 초중순까지 조금 더 오래 지속되었다. 2월 한파는 1922년은 2월 초중순에, 1985년은 2월 하순 초에, 2011년은 2월 중순 초에 찾아왔다. 1963년은 2월 전반이 평년보다 살짝 추웠던 편이다.[246] 이상 저온이 찾아온 9월 말~10월 초~중순 제외[247] 특히, 11월 초에는 서울 낮기온이 26˚C까지 오르는 등 9월에나 볼 법한 초가을 날씨가 나타났다.[248] 철원 -29.2°C[249] 2017년 11월 15일~2018년 3월 2일[250] 이는 21세기 가장 낮은 12월 평균기온 기록이며, 당시에도 엄청난 12월 한파로 기록된 2005년 12월의 -3.9°C보다도 낮다.[251] 3,4일 각각 -20.3°C, -20.5°C[252] 흔한 오해 중 하나인데,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면 모든 계절이 전체적으로 따뜻해지는 것이 아니고 겨울은 오히려 추워질 수 있다. 우리나라 겨울 날씨에 큰 영향을 끼치는 대륙성 고기압을 가두는 제트기류가 전체적으로 따뜻한 온도 탓에 힘이 약해지게 된다. 그래서 차가운 공기가 우리나라에까지 내려오게 되는 것이다. 자세한 건 폭염 항목 참조.[253] 3월은 이상 저온이 심하지 않았지만 3월 1~4일, 12~15일, 29~31일의 저온현상이 있어서 중서부지역을 중심으로 이상 저온을 보였다. 하지만 2013~2014 겨울은 별로 큰 한파가 없었다.[254] 오죽하면 이런 짤방까지 만들어졌을 정도였다.[image][255] 이런 현상은 이미 1910년 11월 30일과 12월 1일, 1944년 11월 30일과 12월 1일에도 발생한 전적이 있다. 최저기온은 1910년의 경우, 11월 30일: 5.2˚C, 12월 1일: -6.8˚C였으며, 1944년의 경우, 11월 30일: 4.9˚C, 12월 1일: -9.2˚C였다. 게다가 한파가 오기 전, 며칠동안 날씨가 따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1944년의 경우, 그대로 1945년 2월까지 지독한 한파가 이어져 겨울철 평균 최하의 온도가 기록되었지만, 2014년의 경우, 해를 넘기니 추위가 어정쩡하게 찾아왔다가 그대로 끝났다. 1910~1911년 겨울은 1944년~1945년 겨울만큼은 아니어도 엄청 추웠다. 이외에도 1954년 11월 30일과 12월 1일의 사례도 있다.[256] 1월도 한파가 있었으나 평년 수준의 추위였다. 2019년 1월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전반적으로 2019년 기후가 2015년 기후와 겹치는 점이 많기도 하다.)[257] 2005년~2006년, 2018년~2019년 겨울과 양상이 비슷했다. 12월에는 평년과 비슷하거나 낮은 날씨가 나타나 이른 한파가 찾아왔지만, 해를 넘기면서 1~2월에 이상 고온 현상이 심했다는 점. 2010년대 들어와서는 이 기간에 미세먼지도 심각해졌다. 특히 2014년, 2015년, 2019년도 1~3월 초에 미세먼지가 심했다.[258] 이정도면 서울의 평년 1월 아침 최저기온이다.[259] 2016년 10월 31일~11월 2일, 11월 22~28일[260] 특히 2016년 12월 21~22일 사이에는 비가 내리는데 남해안, 제주도에는 많은 양의(30~80mm, 최대 강수량 120mm) 비가 내렸다. 충남 및 남부지방은 최대 20~60mm, 수도권은 10~40mm. 이는 겨울비로서는 드문 일.[261] 서울에서 영하 10도 이하를 기록한 적이 없다.[262] 1월인데 개나리가 활짝 핀 사례도 있다.[263] 웃기게도 서울보다 위도가 한참 높은 삿포로도 같은 날에 -6.6°C를 기록했다.[264] 이후 1~2월은 편차는 약했지만 한파 자체는 여전히 심했다.[265] 전국적으로도 이 달의 편차가 -1.7도로 가장 낮았으나 2020년 7월이 이보다 편차가 더 낮았다.[266] 2014년 12월에도 이와 비슷했다.[267] 실제로 천안의 겨울철 기온을 확인할 때에는 신방동이 더 좋다. 병천면은 주변에 산이 많기 때문에 이와 같은 영하 21도의 기록이 나온 것이다.[268] 거의 3월 초순에 해당하는 기온이었다. 영상권 수준이였으나 문제는 따뜻했는데도 사람들은 외출하기가 꺼려했다. 뭐 때문인가 했더니 다름 아닌 미세먼지다.[269] 철원군 김화읍에서도 같은 온도를 기록했다.[270] 일부 지역에서는 대낮에 습도가 5%~10%로 나오기도 했다. 웬만한 사막보다도 더 건조한 습도.[271] 남극은 이때가 여름이라는 것을 감안해야겠지만 무엇보다 남극 대륙은 연중 영하를 유지하는 빙설 기후이다. 철원과 같은 지역이 남극보다 낮은 기온을 기록하기도 했다.[272] 북한에게는 남한보다도 더 기록적인 한파겨울이었던것으로 보인다.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에서 기록된 2017~2018 겨울 최저기온은 2월 5일 -40.1℃량강도 삼지연시에서 기록되었다. 이는 1987년 1월의 기록 -40.0°C 을 경신한것으로, 1973년 북한의 기후통계가 존재하는이래 처음 발생한 공식 -40°C 아래로 보인다. (참고로 그 유명한 2010~2011년, 2012~2013년도 십의 자리 수가 4를 기록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무려 일 평균기온-28.4℃로 앞서 서술한 홍천군의 비공식 최저기온과 같았다. 삼지연은 1월 26일에는 아침 최저기온 -39.3°C, 낮 최고기온 -23.2°C 를 기록하여 일평균기온이 -31.3°C 에 달하기도 했다. 1월 23일에는 낮 최고기온이 -27.2°C 에 머무는등 상상하기 힘든 한파였다. 또한 동해에 위치하여 따뜻한 함경북도 청진은 아예 대놓고 기록적이어서 1월 24일 최저기온 -22.0°C, 최고기온 -12.6°C, 일 평균기온 -17.4°C 를 기록했다. (청진은 2001년 1월 14일 -19.2°C, 2011년 1월 15일 -13.9°C, 2013년 1월 3일 -15.6°C, 2016년 1월 24일 -14.0°C 등 21세기 이후 한번도 최저기온 -20°C 을 못찍었다. 그런데 2018년 1월 24일은 -22 를 찍은것이다. 얼마나 압도적인 한파였는지 체감이 되는가?)[273] 20~23일 제외[274] 4~6월에는 평년보다 0.5~1도 높은 수준에 그쳤지만 조기 종료된 장마와 덥고 습한 북태평양 고기압 세력과 태풍 종다리가 일으킨 푄 현상 등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7월 중순부터 최악의 폭염이 시작되어서 앞서 서술한 홍천군41℃로 기상관측 이래 역대 최고기온을 기록하여 2018년 한 해 동안 한반도의 기온차이는 무려 81.1℃의 차이가 나며(북한 삼지연시 2월 5일 최저기온 -40.1℃) 한반도 기상역사에 한 획을 그을 해로 남게 되었다(...)[275] 서울은 2월보다 무려 10도나 높았다. 사실 과거에 2월이 추운해는 그걸 이어받아 3월도 추운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 해는 좀 특이한 경우이다. 아마도 그 폭염의 전조 증상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여담으로 기상청은 3월까지도 평년 이하로 예보했는데 정 반대로 초고온이 일어난 것이다.[274][276] 11월 22~24일, 29~30일 포함, 12월 19~22일 제외[277] 3월 12~14일, 3월 29일~4월 2일, 9~10일 포함.[278] 해를 넘기면서 이상 고온 현상이 찾아왔지만 그래도 2월 19일까지 겨울이라 부를 수 있을만한 날씨가 지속되었고 3월 일부와 4월 초에는 꽃샘추위가 있었다.[279] 여담으로 최저기온 -10도 이하이자 일평균기온이 -5도 이하가 3일만 지속되어도 언다는 얘기도 있다. 이 경우시 12월 7일에 서울의 최저기온이 0.4℃만 내려갔어도 2017년보다 더 일찍 결빙하게 되지만 이는 지금으로써는 틀린 말이다. 대표적으로 2012년은 11월부터 저온이었고 12월 8일~12월 11일까지 4일 연속 -10°C 안팎의 한파가 이어졌으나 얼지 않았다. 게다가 12월 7일에 최저기온이 약간 더 내려간다 해도 12월 1~4일까지는 평년에 비해 지나치게 이상고온이여서 한강물 수온이 높기에 결빙은 어림도 없다. 그리고 2017년은 11월 중순부터 평년을 크게 밑도는 추위가 찾아왔고 이 역시 4일동안 지속된 뒤에 얼었다. 그러나 2013년 12월은 -10도 이하도 없고 조건도 안맞았는데 한강이 결빙했는데 이때는 12월 중하순에 2주동안 -7~-9도의 장기한파가 있어서 얼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10°C 이하가 3일 지속되며 언다는것은 과거 수십년전 이야기고 2010년대 이후에는 4일 이상 지속되어야 언다는 경향성이 드러나므로 2018년 12월 9~10일에 한강물이 얼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것이 타당하다. 참고로 2018년 12월 7일의 최저기온은 영하 9.6도이다.[280] 2014년 12월~2015년 2월의 겨울과 날씨가 비슷했다. 12월에는 대체로 추워서 평년보다 일찍 결빙했지만 결빙 이후 그날 바로 녹고 미세먼지와 이상 고온이 찾아왔다는 점. 다만 2018년 12월은 2014년과 달리 12월 1~4일과 6일, 16~23일, 25일이 평년보다 높았기 때문에 2014년 12월보다 약 2도가량 따뜻했다.[281] 2019년 1월 서울 평균기온이 -0.9°C로 전달인 12월보다 0.3°C 낮긴 했으나 전년도 12월의 최저기온이 약 4℃가량 더 낮아 체감상 12월을 더 춥게 만들었다.그러나 거꾸로 생각하면 2018년 12월은 최고기온이 10도를 넘긴 날과 일평균 기온이 5도를 넘긴 날이 6일이였지만 2019년 1월은 그런 날이 없었다.[282] 참고로 2018년 12월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조금 낮았지만 이상 고온과 강한 한파가 주간 단위로 찾아오면서 평년과 비슷하거나 조금 낮은 기온이여도 사실상 이상기온이였다.[283] 지금까지 이렇게 말했는데 가뭄 얘기가 많이 없다는 것에 의아할 수 있는데, 이는 2018년 한반도 폭우 사태로 많은 물을 저장하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284] 다만 이건 4월의 월별 평균이지 일별로 따지면 2014년, 2015년, 2017년, 2018년에도 이상 저온이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 4월에는 평년보다 1°C 넘게 낮아서 월별로는 더 강한 이상 저온 현상을 보였다.[285] 4월의 저온현상을 뒤로하고 6월 초중순, 8월 29~30일을 제외하고는 평년보다 모두 기온이 높은 축에 속한다.이상 고온 현상은 2019년을 넘어 2020년 4월 3일까지 이어지고 만다.[286] 11월 14일, 19~20일, 25일, 29일, 12월 2~3일, 5~6일, 21일, 31일~1월 1일, 2월 4~7일, 16~18일, 3월 5일, 14~16일. 심지어 1월은 1일에 조금 추운거 말고는 한파가 아예 없었다.[287] 자세한 내용은 2019년 12월-2020년 3월 이상 고온 문서 참조.[288] 특히 틈만 나면 한파가 기승을 부리는 1월이 이상 고온 현상이 제일 심해 서울 기준 최저기온이 고작 -6.5°C에 불과했다. 결국 전국 1월 평균 기온이 2.8°C를 찍으면서 압도적인 1월 평균 기온 1위를 가져갔다. [289] 단, 이상 고온의 기세가 약해졌다 뿐이지 2월 2일까지는 여전히 평년보다 고온이었다.[290] 대전과 서남부는 2월 3일부터 5일까지[291] 특히 15일에는 낮 기온이 16°C 안팎을 기록하는 등 4월 초에 볼 법한 날씨가 나타났다. 그러나 16일 이후로 눈이 와 기습 한파가 나타나 평년보다 낮은 날씨가 찾아왔다.[292] 3월 6일까지[293] 2019년 5월부터 평년보다 낮은 달이 하나도 없었다. 한편 2019년은 2015년 다음으로 두번째로 저온현상이 적었다. 2015년과 전반적인 기후도 비슷한 편이었다.[294] 특히 오히려 하순 들어 뒷북 꽃샘추위가 심각하여 21~23일에는 낮 기온이 10°C 안팎에 머무는 등 3월 초중순에 볼 법한 날씨가 나타났다. 22일에는 낮 기온이 8°C10°C 미만이어서 완연한 봄날씨는커녕 2월 하순의 늦겨울 수준인(!!) 평년보다 5~12°C 나 낮은 초이상 저온이었는데, 이게 환절기에 일어났으니 망정이지 한겨울에 일어났다면 2016년 한파 및 폭설 사태2017년~2018년 한파 및 폭설 사태가 재현될 뻔했다. 그리고 다음 해 1월에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면서 기록들을 갈고 있다.[295] 5월도 특이했는데, 5월 초순에는 강한 이상 고온 현상으로 초여름 날씨를 보이다가 갑자기 5월 19일, 설악산에서 최저 기온이 -1.7°C까지 떨어져 눈이 내렸다! 그 외에도 비가 3일에 한번 오는 꼴이 되어 상대습도도 71.4%로 6월 수준에 가까웠으며,(단 부산울산 지역은 강수량이 매우 적었다.) 전체적으로 불안정한 날씨를 많이 보였다. 그로 인해 5월 역시 수도권쪽에는 저온현상이 잦았다. 다만 6월은 이상 고온이 찾아왔지만 7월은?[296] 12월 10~11일, 26~28일, 1월 13~15일, 20~27일, 31일, 2월 1일, 5~7일, 10~14일, 19~22일 제외)[297] 1998~1999년 겨울을 예시로 들 수 있다.[298] 2010~2011년(특히 2011년 1월), 2012~2013년, 2017~2018년 3개를 꼽을 수 있다.[299] 다만 11월 초중순에 알 수 없는 이유로 급상승해서 -1.0도까지 올랐지만 16일부터는 다시 낮아졌다.[300] 실제로 2010~2011년도 2011년 1월이 평년보다 높다고 10월 22일에 전망했다가 실제로 높기는 커녕 거의 한달 내내 최고기온 영하를 기록하는 강력 한파가 닥쳤으며, 2011~2012년에도 2월이 평년보다 높다고 전망했다가 2월 초반에 강한 추위가 나타나서 서울 영하 17도까지 내려간 사례도 있다. 아예 2020년 10월 22일자 발표된 3개월 전망에는 오히려 비슷이거나 높다는 말이 있으나 앞서 말했듯이 이도 신뢰성이 있지 않다. 그리고 2020년 9월 하순 당시에 11월은 평년보다 비슷하거나 낮아 초겨울 한파를 보인다고 분석했는데 정작 11월 13~19일에는 같은해 1월을 능가하는 초이상 고온 현상이 기승을 부렸다.[301] 전날인 14일에도 -20.6℃로 전국 최저였다. [302] 이 전날 -18.5도로 더 추웠다.[303] 사실 한파일수가 없는 해가 더 특이한 것이다.[304] 이것도 새벽에 기록된 최고기온으로, 낮 최고기온은 한 술 더떠 -8.4°C였다.[305] 기상자료개방포털에는 -0.3 °C라고 나와있으나 이는 오류이며 -0.35 °C이므로 반올림한 값인 -0.4 °C가 맞다.[306] 6일에 1차 한기가 남하한 후, 발해만 저기압 후면으로 바로 2차 북극발 한기가 뒤이어 온 셈. 한기이류 첫날부터 서울은 -16.5°C 로 스타트를 끊은 것인데 이렇게 첫날부터 극단적인 기온을 보인 추위는 2001년 1월 14일(-16.7°C) 이후 20년만에 처음이었다. 2001년 1월 당시에도 12~13일 강한 한기가 남하한 후 더 강한 한기가 14일에 남하하는 형태였다는 점에서 유사하다.[307] 최고기온은 0시경에 -8.4°C를 기록했다.[308] 이날 설악산에선 비공식적으로 -29.4°C가 관찰되었다.[309] 저런 타이틀이 전혀 과장이 아니다. 국내의 한 기상카페에서 전국을 대표하는 13개의 대도시끼리 2001년과 2021년 한파기록을 비교했는데, 2021년이 과반수 넘게 우위를 점했다! 비교글 링크 이는 2001뿐 아니라 2011,2016,2018을 비교해도 2021년이 과반수 우위를 점하기에 2021년 1월 초순 추위가 21세기 최악의 한파라고 말해도 어떠한 과장도 아닌것이다.[310] 해당 지역은 한파 직전인 6일 오후 공식 관측소보다 훨씬 많은 10cm 가 넘는 대설이 내렸기 때문에 알베도가 더욱 강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311] 2001년 1월 15일 -18.2°C 이후 최저기록[312] 신방동 관측소는 사라졌지만 그나마 시내와 가까운 성거읍 기준으로도 -19.1°C를 기록했다.[313] 비공식도 경상남도는 2013년 1월 4일에 북상이 -19.7°C를 기록한게 최저다. 그나마 경상남도에서 가장 높다는 지리산 AWS도 869m로 지리산 꼭대기가 아니라 중턱에 있다. 천왕봉에도 관측소를 설치한다면 -20°C이하로 충분히 떨어질 수 있다. 또한 지리산 천왕봉이 남한에서 내륙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 인지도를 고려한다면 산 정상의 날씨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문제점도 있다. [314] 해당지역 역대 4위[315] 1933년 1월 27일 -17.1°C, 1961년 2월 1일 -16.6°C 다음으로 낮은 기록[316] 구 관측소였던 완산 관측소가 산에 가깝게 있는데 비해 신 관측소는 산과 떨어져서 여름에는 낮게, 겨울에는 높게 뜬다는 것이 차이점이다.[317] 참고로 1931년 1월은 서울이 -22.5°C 를 기록한 바로 그 겨울이다. 남부 곳곳에서는 그때에 버금가는 추위가 찾아온 것.[318] 구 관측소 기준 -13.4°C[319] 예보와 달리 실제로는 도쿄가 최저 -1.5°C를 기록했다. 부산과 가까운 대마도가 1월 8일에 최저 -7.1°C를 기록하긴 했다.[320] 예외로 영동은 툭하면 폭설이 찾아온다는 말이 무색하게 강릉 기준으로 아예 1월 적설량 0cm를 기록했다(...). 지난 12월에도 13일에만 적설이 기록되었다.(물론 울릉도에는 폭설이 찾아왔다) 그 영남 조차도 6일에 눈이 쌓였고 이외에도 가끔씩 눈이 왔을 정도인데도. 그나마 2월에는 영동에 눈이 많이 내릴 것으로 기상청은 전망하고 있...기는 무슨 2월에도 0cm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321] 사실 2021년 1~2월 자체가 서풍이 잦았다.[322] 차이점이라면 2015~2016 겨울은 12월~1월 초중순에는 온화했으나 한파가 늦게 찾아와 1월 중하순에 강한 한파가 기승을 부렸으며 2020~2021 겨울은 2015~2016 겨울에 비하면 한파가 더 이른 시기인 12월 중순~1월 상순에 찾아오고 1월 중순 이후로는 전반적으로 고온을 보였다는 차이가 있다. 오히려 1949~1950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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