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쉬(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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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 위치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초콜릿 회사이자 해당 회사의 초콜릿 제품군의 이름.
2. 상세
1894년 밀튼 스네이블리 허쉬(Milton Snavely Hershey, 1857년 9월 13일 ~ 1945년 10월 13일)가 '랭커스터 캐러멜 컴퍼니'의 자회사로서 허쉬 초콜릿 컴퍼니(Hershey Chocolate Company)라는 이름으로 설립하여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름이 바뀐 것만 봐도 알겠지만 '''원래는 캐러멜 만드는 회사였다.''' 밀크 카라멜로도 매우 유명해서 한때 영국에서 대량으로 주문이 들어와서 이걸로 창업 대출을 한큐에 상환했을 정도라고 한다.
흔히 Hershey's라고 알려져 있는 이 기업의 예전 사명은 2005년 4월까지 '허쉬 식품 주식회사(Hershey Foods Corporation)'이었으나, 이후 '허쉬 기업(The Hershey Company)'으로 개명하였다.
뉴욕과 라스베이거스에는 허쉬 초콜릿 월드라는 허쉬 특판장이 있는데, 자사의 각종 대표 브랜드[1] 들은 물론이고 한정 상품도 판다. 심지어 초콜릿을 믹스해서 파는 코너도 있다. 이와 얼마 되지 않은 거리에 마즈의 특판장이 마주해 있기도 하다.
펜실베이니아에는 아예 허쉬라는 마을이 존재한다. 이곳에 허쉬 초콜릿 월드 본점이 있고, 여기서 허쉬 초콜릿 제작을 관람차를 타고 견학 가능하다.
여담으로 롤러코스터 타이쿤 3 확장팩에 허쉬와 관련된 테마로 콜라보한 놀이기구와 상점이 등장한다.
3. 특징
3.1. 창립자 밀튼 허쉬
창립자 밀튼 스네이블리 허쉬는 메노나이트[2] 분파 출신 기독교 계열 신자라서 당시 자본가들과는 달리 매우 선량한 인물로,[3] 자사에 근무하는 근로자들에게 전기와 온수가 펑펑 나오는 집도 주고 극장이나 경기장 같은 여가 시설도 충분히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대공황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정리 해고는 최대한 피하려 했고 임금도 인상해 주려고 노력했다. 그 때문에 허쉬는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지상 낙원이라고 여겨졌다고. 게다가 원래부터 향토 기업가였기 때문에 생전에 그의 공장이 있던 마을에 그의 이름을 딴 도시가 생겼다.
하지만 밀튼 허쉬도 결국은 자본가다 보니 노조를 불허했고, 결국 임기 말년에 회사에서 대규모 파업이 일어났기도 했다. 그래도 밀튼 허쉬는 이런 일이 생기면 그냥 용역을 동원해서 다 때려잡던 다른 기업가들과는 다르게 여전히 폭력만은 엄격히 반대해서 어떻게든 협상으로 원만하게 해결을 보려 했지만,[4] 문제는 허쉬가 너무 잘 해주니까 노조가 허쉬를 만만하게 본 건지 무리한 요구 조건을 내세우면서 고압적인 자세를 유지해서 협상은 평행선을 달렸고, 그렇게 오랫동안 진척이 없다 보니 노조원들 중에서도 원래 파업에 참여할 의사가 별로 없었던 온건파 노조원들이 지쳐버렸고 허쉬에 우유를 공급하던 농민들도 파업 때문에 거래가 중단되어서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거기다가 노조가 공장부지 내에 있는 국기대에 계양되어있던 성조기를 내리고 노조 깃발을 내걸어서 전역군인회의 어그로를 제대로 끌었고, 결국 이 문제의 노조는 파업에 참여할 의사가 없었던 온건파 노조원들 + 장기간의 거래 중단으로 빡친 농민들 + 노조가 국기를 훼손해서 빡돈 전역군인회로 이루어진 연합군에게 공격받아 강제 해산되어 버린다.
비록 밀튼 허쉬 본인은 절대로 원하지 않았고 절대로 본인이 사주한 것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 폭력 사태에 큰 죄책감을 느꼈던 밀튼은 이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만다. 그래도 별세하기 몇 년 전인 1940년에는 허쉬에 공식 노동조합이 생기는 것을 보고 축하해 줬다. 다행히 이 사건 이후에도 허쉬의 복지 수준은 달라지지 않았고, 이후에도 사회복지 사업 참여에도 적극적이다. 그리고 밀튼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어도 부지런히 자선 활동을 계속했다. 밀튼 허쉬는 자녀가 없었기에 재산의 대부분을 자신의 이름을 딴 학교의 신탁 기금인 Milton Hershey School Trust에 기부했다. 그리고 아예 신탁 회사를 세워서 학교와 기업 양자를 다 관리하게 했다. 실제로 펜실베이니아에는 은근히 허쉬의 이름이 들어간 것이 엄청나게 많은데, 거의 대부분이 다 밀튼 허쉬가 관여한 것이다.
상기한 Milton Hershey School은 자녀가 없었던 허쉬 부부가 1909년에 고아원 겸 고아들을 위한 학교를 만든 것이 그 시작이다. 처음에 세워진 부지는 허쉬가 자랐던 농장의 부지라고 한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2천 명 정도의 재학생이 다니는 매우 거대한 규모의 기숙학교로 사회적,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 위주로 운영하고 있는 학교다. 대공황 때 고아가 된 소년이 이 학교 겸 고아원에서 교육받고 자라서 허쉬에 입사하여 이후 CEO가 된 훈훈한 사례도 있다. 그리고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운영되는 학교다 보니 당연히 학비는 없다. 게다가 위에 써놨듯이 실질적으로 이 학교의 최대 주주는 허쉬기 때문에 자금력도 엄청나다.
참고로 밀튼 허쉬는 1912년에 영국에서 일을 마치고 부인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일정이 앞당겨져 원래 타기로 했던 배가 아닌 다른 배를 타야 했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원래 타기로 했던 배가 '''타이타닉호'''였다는 것. 지금도 허쉬 박물관에는 당시 타이타닉호의 표가 전시되어 있다. 그야말로 착하게 살면 복이 온다는 말의 산증인이 따로 없다.
3.2. 군납 초콜릿
전시중인 미군에 납품되는 초콜릿 메이커로도 유명하다. 1937년 미군이 군용 비상식량인 D 레이션으로 초콜릿을 채용하기로 하면서 허쉬의 초콜릿 납품이 시작되었는데, 이때 미군이 제시한 납품 조건은 무게는 4온스로 만들어야 할 것, 고열량으로 만들어야 할 것, 상온에서 녹지 않아야 할 것, 맛은 삶은 감자보다 조금 나은 수준으로만 만들라는 조건이었다. 앞의 3가지는 당연하다지만 마지막 조건이 심히 괴랄해 보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너무 맛있으면 비상식량의 취지와 달리 평소에 다 까먹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 그래서 이 초콜릿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비상식량도 평소에 손댈 생각을 안 하게 하기 위해서 고의로 맛없게 만든 것이다.
1, 2번은 초콜릿의 기본적인 수칙이기 때문에 간단한 일이었고, 3번은 당시에도 있었던 잘 안 녹는 초콜릿 제조 기법들이 있었기에 그걸 응용하면 간단한 문제였다. 실제로 허쉬는 브라우니 같은 제과 방식을 본따서 초콜릿을 제조했고 실제로 단단한 강도와 보다 높은 내열성을 확보하는 데에 성공했다.[5] 그리고 마지막 조건을 맞추기 위해 오트밀을 섞어서 식감도 괴악하고 맛도 괴악하게 만들어서 주문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했다. 어쨌든 주문 조건은 완벽하게 맞춰 냈으니 미군도 만족하여 병사들의 테스트를 거친 후 1939년 D 레이션으로 채용한다.
그런데 너무 단단했는지 건장한 병사들도 평범한 초콜릿처럼 씹어 먹으려면 이가 부러지는 듯한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고, 잘 녹지도 않아서 총검으로 잘게 자르거나 단단한 물건으로 후려쳐 박살내고 입에 넣어서 조금씩 녹여 먹어야만 했는데 그나마도 잘 안 녹아서 기존 초콜릿보다 녹여먹기마저 힘들었다. 그리고 상기했듯이 맛도 끔찍해서 병사들은 이 초콜릿을 밞아 뭉갠 감자맛, 타이어맛, 히틀러의 비밀 무기(...) 등의 별명으로 열심히 까댔다고 한다. 그래도 녹이기만 하면 먹기는 쉬우니 환자들의 식사 대용으로 이용되기도 했다고. 또 카카오 함량도 높은 만큼 본래 취지인 칼로리와 기력 보충[6] 이라는 비상식량으로서의 능력은 차고도 넘쳤다.
미군 병사들의 악평과는 별개로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면서 엄청난 물량이 제조되었는데, 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에 총 30억 개가 제조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생겼다.(위키백과 링크)
이 D 레이션 초콜릿은 군용 물품이다 보니 소련에도 무기대여법으로 엄청난 양이 공급되었는데,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수세에 몰린 소련군이 최후까지 지급할 수 있었던[7] 유일한 식량이였다고 한다. 어쨌든 스팸과 더불어 제2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끈 양대 군납식품이다. 그 무용담(?)은 엄청난지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도 등장한다. 네덜란드에 입성한 부대원들[8] 이 동네 꼬마에게 초콜릿을 나누어 주는데 그게 바로 군납 허쉬 캔디바이다. 이 꼬마들은 유럽인임에도 불구하고 전쟁 중에 태어나서 초콜릿을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2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D 레이션 바는 미 육군 표준 레이션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베트남 전쟁을 거쳐 현재까지도 살아남았다. 베트남 전쟁 때는 '트로피컬 바'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걸프 전쟁 당시에는 중동 현지의 높은 기온 등으로 인해 새로운 레시피의 초콜릿이 요구되어, 트로피컬 바와 구분되는 '데저트 바'가 새로이 레이션에 편성되었다. 이 데저트 바는 시중에는 판매되지 않고 있다.
한국에도 6.25 전쟁 때나 직후에 미군들이 들어와서 많이 먹었는데, 그때 아이들이 미군들을 따라다니며 "기브 미 초콜릿" 이라고 하면 허쉬 초콜릿을 주었다.
3.3. 신맛
허쉬의 밀크 초콜릿은 특유의 시큼한 맛으로 유명하다. 사실 이것은 허쉬가 원치 않았던 결과물이었으나, 지금은 허쉬의 아이덴티티 그 자체로 자리잡아 버렸다.
원래 밀크 초콜릿은 스위스의 다니엘 페터의 고안과 우유를 농축하는 기술을 발명한 앙레 네슬레의 합작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인데, 이들은 당연히 이 기술을 대외비에 부쳤다. 허쉬도 처음에는 이 방식을 도입하려고 애썼으나 결국 기술을 빼오지 못해서 자체적으로 제조 기술을 개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방식은 특유의 신맛을 남게 하였는데, 그 원인은 허쉬의 방식으로 농축 우유를 제조하면 유지방 처리 과정에서 낙산(Butyric acid)이 생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럽 방식에 비해 미각적으로는 저급한 기술(다만 대량 생산의 측면에서는 이쪽이 유리하다.)이며 이 냄새가 초콜릿의 풍미를 심하게 망치기 때문에 유럽 사람들은 허쉬 초콜릿에서는 구토 맛(시큼한 맛)이 난다고 놀리고는 했었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수입산 유럽 초콜릿을 접하기 어려운지라 국산인 허쉬 초콜릿을 주로 먹다 보니 허쉬의 신맛에 익숙해지면서 미국 내에서는 오히려 시큼한 맛이 나는 것이 초콜릿의 스탠다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9] 후발 기업들의 경우는 허쉬와는 달리 제대로 된 유럽 기술을 도입하면서 시큼한 맛이 별로 나지 않았지만, 미국인들은 이미 허쉬의 신맛에 길들여질 대로 길들여진 터라 결국 후발 기업들도 멀쩡한 초콜릿에 별도로 낙산을 소량 첨가하서 허쉬처럼 신맛이 나도록 만들게 되었고, 오히려 허쉬가 자신들의 제조 방식을 영업 비밀로 만들어 버리는 아이러니한 일도 발생해 버렸다.
참고로 이 신맛은 밀크 초콜릿 제품군 한정이다. 허쉬의 제품일지라도 우유 함량이 적은 다크 초콜릿과 화이트 초콜릿 제품군은 신맛이 거의 나지 않는다. 하지만 2014년 즈음 제품군 전체를 리뉴얼했는데 신맛과 특유의 향이 확 줄었다. 기존의 맛을 좋아하던 사람들은 이제 어디서도 같은 맛을 느낄 수 없게 되었다며 크게 실망하는 중. 특히 포장지 하단에 띠가 새겨져있는 creamy 제품군은 사실상 유럽 초콜릿이나 다를 바가 없게 되었다. 참고로 제품군을 리뉴얼하면서 로고도 바꿨는데 정말 별 볼일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항목의 제일 위에 있는 게 바로 바뀐 로고이다. 기존 로고하고 크게 바뀐 것도 없고 특히 저 키세스 모양의 점은 그냥 사족이었다는 평가. 그래서 그런지 아직도 기존 로고를 쓰고 있는 제품들이 많다.
한국의 경우 국산 초콜릿들이 대부분 유럽식 농축법을 도입한 터라 신맛이 나지 않으므로 외국에서 허쉬 초콜릿이나 키세스 등을 먹으면 약간 이질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한국 사람들 중에서 맛에 민감한 경우에는 허쉬 초콜릿에서 시큼한 맛이 난다고 불평을 하는 경우가 있다. 다만 상술한 대로 전후 미군에게서 구호품으로 허쉬 초콜릿을 받아먹은 경험이 있는 노년층들은 오히려 요즘의 유럽식 초콜릿 맛을 낯설어하는 경우가 있다.
2019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판매 중인 대다수의 제품은 카카오버터가 아닌 식물성 유지를 사용하는 로컬라이징을 시전했다. 원래 초콜릿에는 체온보다 낮은 온도에서 녹는 카카오버터가 들어가야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초콜릿의 감촉을 느낄 수 있는데, 식물성 유지는 녹는 점이 체온보다 높으므로 그런 감촉이 없어 풍미는 떨어진다. 로컬라이징된 버전이 수입 과자점까지 점령하고 있지만 가끔 카카오버터가 들어간 외국 판매 제품을 병행수입해서 들어온 물건을 파는 곳도 있다. 한국에서 판매 중인 허쉬 제품 중 롯데에서 생산하지 않는 제품은 카카오버터를 사용중이므로 구매할 때 뒤의 원재료명에 카카오버터가 있는지 보고 구매하자.
참고로 코스트코에서 직수입해서 파는 허쉬 어소트먼트나 너겟은 미국산을 그대로 들여와서 파는 거라 식물성 유지가 들어가 있지 않다. 그래서 너겟은 입에 들어가면 살살 녹는다...
3.4. 대한민국의 허쉬 역사
대한민국에 처음으로 허쉬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6.25 전쟁때 미군들이 구호물자로 나누어 준 물량에서 비롯되었다.[10]
1984년 1월 해태제과가 라이센스로 대한민국내에서 최초 생산했고,[11] 1989년 국내 최초로 미국산 완제품 키세스를 해태제과가 수입 판매하였다. 1991년 11월 매일유업과 기술제휴로 초코드링크를 선보였다.
1994년 해태제과와 다시 5년 재계약을 하였으나 1995년 "유통기간 만료 제품 재사용 사건" 기사 이후 기술제휴 및 수입판매 권한을 96년 8월1일 매일유업으로 넘겼다. 매일유업은 베이커리 분야도 시도(국내에서 라이센스 제조)했었다.
2004년 9월 (주)오리온과 판매대행 계약을 맺었으나 2008년 유통기한 변조 사건으로 쫑났다. 다만 2007년 1월 아시아지역 생산 및 총판매권은 롯데제과로 교체된다.[12] 단 미국산 수입 허쉬 초콜릿 완제품은 한국로투스와 오리온이 국내 라이센스를 양분기사 하여 소유했었다.[13] [14]
2016년 한국 로투스는 본사 벨기에 로투스가 지분을 100% 전환하고 한국 로투스 베이커리로 사명을 바꾼다. 허쉬와의 초코릿 사업을 정리했으며 한국로투스가 독점 수입하던 너겟은 허쉬 말레이지아에서 제조하며 자이언트와 미니바는 롯데가 미국 본사의 제품을 수입 공급한다.
2020년 현재 한국 로투스(현 한국 로투스 베이커리즈홈페이지)는 허쉬의 제품을 취급하지 않고 있다. [15] 한국로투스가 독점 수입하던 너겟은 허쉬 말레이지아에서 제조한 제품으로 교체된다. 자이언트와 미니바는 롯데가 미국 본사의 제품을 수입 공급한다.
2017년 사드 문제로 인하여 중국 상하이에 있는 롯데 합작공장이 2018년 가동 중단되었다.기사
2018년부터 롯데가 상하이공장에서 제조 국내에 납품하던 제품은 허쉬 말레이지아사(Hershey Malaysia SDN.BHD)가 제조한 제품으로 교체되어 납품중이다. 롯데제과가 수입한다.
2020년 현재 매일유업이 유제품 제품군 '허쉬초콜릿 드링크' '허쉬초코쿠키앤크림' '허쉬 초코릿밀크' 등을 독점 생산 및 판매하고 있다.
허쉬 초코칩쿠키, 초코샌드쿠키, 허쉬 핫초코는 (주)미성패밀리 (업소 제과용 초코파우더와 초코칩,땅콩칩도 수입, 완제품 형태의 핫초코 분말 초코시럽 수입 )가 기술제휴로 국내에서 위탁 생산하여[16] 납품중이다. 허쉬 아이스크림바와 콘은 라보떼로 유명한 중소기업 라벨리에서 생산 판매했으나 2014년 계약 종료. 경기도 광주시에 위치한 (주)에버스톤으로 교체된다. 2014년 4월 에버스톤은 허쉬 아이스크림브랜드 한국 독점 판매권 라이선스 계약 체결을 한다.
그 외 2020년 한국 시내 번화가에 위치한 동남아와 개발도상국가에서 만든 저가 수입과자상에 가보면 허쉬와 기술 제휴 또는 콜라보한 제품이 보이기도 한다. 브라질 '바우두쿠( BAUDUCCO)'사와 허쉬가 콜라보레이션한 초코와플, 초코바, 초코비스켓.
한때 외환위기 시절인 90년대말~2000년대초 매일유업을 통해 허쉬 캐나다와 허쉬 멕시코에서 생산된 제품이 국내시장에 들어온 적도 있었다.(당시 환율 문제 때문인듯)
2020년 현재 허쉬 공식 한국지점은 '씨에스에이치 푸드 한국지점' 이다. 대표자 :마누엘 보시[17] (Manuel Bossi)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가,교보생명빌딩22층
인터넷 홈페이지
https://www.thehersheycompany.com/ko_kr/home.html
공식 수입 유통 판매사는 롯데제과, 미성패밀리, ㈜코스트코 코리아 [18] 3개사이며 기술제휴 생산사는 롯데제과, 훼미리 식품, 금촌베이커리, 희망그린식품, 매일유업, 에버스톤, 농심켈로그, 서주제과, 아이푸드, 흥양산업, SPC삼립, 청우식품 등 12개사이다.
2017년 6월 22일 농심켈로그와 콜라보레이션으로 '''초코 시리얼''', ‘허쉬 초코 크런치’를 출시했다.기사
2019년 2월 허쉬 초코 크런치 '발렌타인 에디션’ 을 카카오쇼핑을 통해 한시적으로 출시하였다. 2019년 4월 롯데에서 '허쉬 카카오 파이(Hershey's cacao pie)' 출시.
2019년 6월 '서주 허쉬 초코와플' 출시. (주) 서주제과와 (주)흥양산업이 생산.
2019년 9월 'SPC삼립'과 콜라보하였다. '허쉬초코호빵' 출시. SPC삼립 생산.
2019년 서주제과[19] 와 합작해 와플 및 웨하스 제품군 [20] 을 제조 출시한다.
2020년 1월 에뛰드하우스, 허쉬와 콜라보 컬렉션 출시.
2020년 4월 세븐일레븐과 콜라보 '허쉬초코앤밀크소프트콘' 에버스톤 생산, 편의점 세븐일레븐 판매.
2020년 '허쉬 초코 웨하스' '허쉬 민트 웨하스' 출시. (주)흥양산업이 생산.
2020년 SPC삼립과 허쉬 삼립 '오븐에구운허쉬초코도넛' '허쉬초코롤' '허쉬초코소라빵'출시. SPC 삽립(주) 생산.
2020년도 하반기에는 '허쉬 초코릿 칩 모찌 쿠키'를 청우식품이 미성패밀리를 통해 공급하고 있다.
3.5. TV CF
▲ 1980년, 1985년 김혜수 출연. 1990년대 TV 광고.
▲ 2014년 이시후와 김다예 출연.
4. 생산제품
- 허쉬초콜릿
- 허쉬 미스터 굿 바
- 허쉬 키세스
- 허쉬 리세스 - 땅콩버터, 초콜릿 제품군이다. 국내에는 기본형인 컵케익 모양 초콜릿, 초코바, 초코볼,초코칩이 발매되어 있다.
- 맥도날드 허쉬 리세스 맥플러리
- 허쉬초콜릿 드링크 - 이미지와는 다르게 상당히 싱겁다. 얼려서 먹으면 물맛(...)이 날 정도.
- 허쉬 브라운 카우 초코시럽 - 80년대 중반 해태에서 생산.
- 허쉬초콜릿 자이언트바
- 졸리 랜처 - 허쉬사의 대표적인 캔디브랜드. 일반적인 딱딱한 캔디와 과일모양의 젤리 등이 있음.
- 왓차마콜잇
- 트위즐러
- 아이스브레이커스
- 허쉬 스프레드 초콜릿
- 허쉬스 너겟 (한국에서 판매하는 허쉬 제품중 롯데에서 생산하지 않아 식물성 유지가 없고 카카오버터를 쓴다. 달라질 수도 있으므로 원재료를 확인하기 바람.)
- 허쉬 초코 슬러시 아이스 - 설레임과 유사한 형태의 제품.
- 허쉬 초콜릿 칩 싱글 쿠키
- 허쉬 초콜릿 칩 쿠키
- 허쉬 초콜릿 칩 모찌쿠키 - 청우식품 생산.
- 허쉬 초코크림 샌드위치 쿠키
- 허쉬 민트크림 샌드위치 쿠키
- 허쉬 오리지널 핫 초코 - 2가지가 있다. 미국산 수입 완제품과 미성패밀리가 원료를 수입해서 위탁 가공한 국내산. 판매원은 두제품 다 미성패밀리.
- 허쉬 초코 크런치 시리얼 - 농심 켈로그와 콜라보
- 허쉬 카카오 파이 - 롯데가 생산. 자사가 생산중인 가나 코코아파이와 거의 다를게 없는 맛 포장지만 다르다는 평도 있다. 초콜릿 코팅에서 허쉬냄새가 날듯말듯하며, 속은 단맛과 카카오향이 아주 아주 약간 더 난다
- 2019.08 기준 : 몽쉘과 같은 기준의 사르르 녹는 맛을 기대하면 큰일난다. 목이 막히는 퍽퍽한 스폰지케이크 맛이다. 허쉬 라는 브랜드 및 상품명에 낚이지말것
- 허쉬 초코 와플 - 전라북도 군산에 위치한 서주의 과자류 상표권자인 흥양산업주식회사가 라이센스 생산 판매하는 제품이다. 서주제과에서도 생산한다.
- 허쉬쿠키크런치바 - 아이푸드 생산. 롯데제과 판매.
- 허쉬 골드바 땅콩&프리첼 : 화이트크림과 여러 재료를 굳혀 초콜릿 모양으로 만든 것이다.
- 오븐에 구운 허쉬 초코도넛- SPC 삽립식품 생산.
- 허쉬 리치 초콜릿 케이크[영문명] - 초코빵 사이에 크림치즈를 넣고 초콜릿으로 감은 6봉입 제품.[21] 롯데제과 생산.
5. 위탁 판매 제품
[1] 국내 수입식품상에서 드물게 보이는 리세스 초코볼버전, 그보다 더 없다시피 한 졸리랜처 역시 잔뜩 보인다.[2] 기독교의 분파들 중 재세례파의 분파로, 재세례파의 비폭력주의는 따르되 현대 문명을 거부하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온건파 부류이다. 현대 문명조차 거부하는 재세례파가 아미시.[3] 이 때문인지 존 데이비슨 록펠러, 앤드루 카네기하고는 사이가 안 좋았다고 한다.[4] 이런 성품 때문인지 밀튼 허쉬는 러들로 학살를 매우 강렬하게 비판한다.[5] 여담으로 이 내구도 때문에 기존 기계를 못 쓰고 인력으로 일일히 프레스를 찍어야 했다고 한다.[6] 사실 인류 최초의 카카오 음식은 '초콜라토르'라고 하여 카카오 열매를 우린 물을 마시는 모양이었는데, 기력 회복에는 끝내줬지만 무지하게 쓴맛이었다. 이것을 유럽인들이 오랜 노력을 거쳐 설탕이나 우유 등을 첨가하는 여러 제조법을 개발하고 고형화시키며 현재의 초콜릿이 된 것. 그런 면에서 이 D 레이션은 초콜라토르의 현대적 버전으로 볼 수도 있겠다.[7] 일단 미국에서 양동이로 들이붓다시피 차고 넘치게 들어오는 데다가, 초콜릿이다 보니 다른 식량들과 비교해서 보관과 운송이 압도적으로 간편했기 때문이다.[8] 정확히는 데이빗 웹스터 일병(하버드대 출신이자 드라마상에서 제8화의 주인공이자 나레이터)이 준다.[9] 미국의 대배우인 진 해크먼이 이 허쉬 특유의 맛을 엄청 좋아한다. 본인 말로는 세계에서 유명하다는 최고급 초콜릿들을 다 먹어봤으나 허쉬가 제일 맛있다고...[10]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이진태가 동생 이진석에게 허쉬 초콜릿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이건 허쉬 측의 PPL. 양덕들은 여기서 1950년대에 존재하지 않았던 바코드와 성분 표시가 붙어있는 고증 오류를 발견했다.[11] 허쉬 사가 타사와 기술제휴한 최초의 사례.1994년 라이센스 재계약을 위해 방문한 'J.F 카' 허쉬 인터내셔널 사장에 의하면 기술제휴 생산은 해태가 세계 최초이며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둬 흡족하다고 했다.# [12] 롯데와 오리온과는 숙명적 라이벌인지, 같은해 펩시의 프리토레이도 오리온과 결별하고 롯데와 계약을 하게된다.[13] 허쉬 쿠키앤크림 초콜릿,허쉬 다크펄 제품은 롯데의 상하이 법인에서 생산(2018년 생산 중단)하고 한국로투스에서 수입해온다. 아무래도 국내 판매권이 한국로투스로 넘어간 듯 했으나 2015년 3월 기준으로 수입판매원은 '롯데제과주식회사'다.[14] 라이센스 제조 파트너사를 다각화 한다.[15] 자사의 제품 판매에 집중하기 위해 2015년에 허쉬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그전까지의 수입 물량은 2017년까지 시장에 재고가 남아있었는듯 함.[16] 4개사에 위탁 생산하며 판매는 미성패밀리가 한다. 허쉬초코샌드-훼미리 식품,허쉬 초코칩 쿠키-금촌베이커리,허쉬 초코릿칩 모찌 쿠키-청우식품,허쉬분말핫초코-희망그린식품.[17] 전직 이탈리아 '페레로로쉐' 아시아 책임자 영입.[18] 코스트코 코리아는 허쉬너겟을 비롯 다수의 허쉬 제품을 미국에서 직수입하여 대한민국 내의 코스트코 매장안에서 판매한다.[19] 전라북도 군산공장[20] 제품명 '초코와플', '초코웨하스' 등[영문명] RICH CHOCOLATE CAKE[21] 참고로 케이크 윗 부분에 잼(?)같은게 있는데 살구잼이다. 자허토르테에서 영감을 얻은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