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MS 타이타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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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RMS[1] 혹은 (Tr)SS[2] Titanic[3] .
외래어표기법에 따르면 원칙적으로는 해당 선박의 한국어 표기는 타이'''태'''닉.
건조 당시 세계 최대의 여객선이었지만,[4] 1912년의 최초이자 최후의 항해 때 빙산과 충돌해 침몰한 비운의 여객선.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여객선이자 침몰선일 것이다. 2012년 4월 15일로 침몰한 지 딱 100년이 되었다. (1912년 기준) 하도 거대해서 별명이 '''불침선(The Unsinkable)'''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결국..., 사실 리버풀에 있는 타이타닉 박물관에 가보면 타이타닉의 진실이라는 코너에 불침선 이라는 명칭은 그 당시 언론들이 신문에 근거없이 써재낀 내용이라고 밝혀져 있다. 불침선이라는 명칭은 후에 언론에서 만든 용어이며, 타이타닉 호 침몰사건 이전에 이 거대한 배를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선장이 그렇게 불렀다는건 더더욱 아니다.
침몰한 지 100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침몰선'''이다. 사망자 수는 1위는 아니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의 영향도 있고, 후술하겠지만 당시 최첨단 기술에 대해 기대감이 컸던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한데다가, 근대 사회에서 들어서자마자 얼마 안된, 그리고 유명인사들이 여럿 희생된 대참사이기 때문에 가장 유명한 침몰선이 됐다. 또한 이 사건을 기점으로 여러가지 안전 조약들[5] 이 생겨났으니 더더욱 그렇다.
1.1.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침몰선
타이타닉은 역사적으로 유명해질 수 밖에 없었는데, 일단 타이타닉보다 많은 사망자를 낸 사고는 40건이 넘지만 전함 침몰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저 중 거의 전부가 2차대전 관련 침몰인데 이 역시 비극이지만 전쟁피해라 해상사고와는 다르다.[6] 수천만이 죽어가는 전쟁 중이 아닌, 평화로운 시기에 갑자기 천명 이상이 죽었으니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9.11 테러의 희생자는 다른 전쟁에 비하면 적은 숫자지만, 평화시 대도시 한복판에서 일어났기에 더욱 충격을 준 것처럼.
물론 타이타닉은 (전근대와 근대, 현대를 모두 통틀어서) 평화시기에 일어난 사고 중에도 사망자 수 7위[7] 에 불과하다.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1) '''기록'''이 너무나 상세히 남아있었다. 2차 대전 당시 침몰한 "레닌"은 민간 화물선이었고 4천명 이상 사망자가 났을거라 추정되지만 기록이 부실해 그 추정치가 천명 미만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반면 타이타닉의 기록은 매우 상세하다.
2) '''유명인들'''이 다수 탔다는 점. 아래에도 나오듯이 세계적인 부자와 명사, 귀족들이 탑승해있었으며, 이들 상당수가 목숨을 잃었다. 특히 탑슬객 중 존 제이콥 애스터는 애스터 가문의 일원이자 세계적인 부호로 이 사람만 죽었어도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릴만한 사람이었고 [8] 그 외에 메이시 백화점의 소유주나 귀족도 있고, 심지어 선장도 유명했다. 평화시기에 일어난 해상사고론 부두 근처에서 1917년에 폭발사고가 일어나 2천명 이상이 죽고 9천명 이상이 다친 화물선 성 몽블랑이 있지만, 이 사건의 피해자는 선원들 뿐이어서 그다지 화제가 되지 않았다.
3) 영국 배였고 피해자들은 '''미국인들과 영국인들'''이 대부분이었다. 1912년 당시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중 하나였고, 미국은 한창 떠오르는 부유한 국가였다. (전근대와 근대, 현대를 모두 통틀어서) 평화시기 최대 사망자수를 낸 해양사고는 87년에 유조선과 충돌하며 4천 386명의 사망자를 낸(생존자 24명) 필리핀의 여객선 "도냐 파즈호 침몰 사고"였지만, 이 이름을 아는 이도 별로 없다. 안타깝지만 언론에서 필리핀 사고에 주목하는 정도와 미국/영국의 사고에 주목하는 정도는 차원이 다르다. 당장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이 전부 서방세계에 위치하기에 당연한 일.
4) '''배도 유명'''했다. 당시 타이타닉은 세계 최대 규모, 최첨단 기술, 초호화 등 온갖 수식어를 달고 언론의 주목을 받던 배였다. 대륙간 이동이 현재와 비교할 수도 없이 드물던 시기에, 2등석 티켓 가격이 다른 웬만한 배의 1등석 가격일 정도로 호화롭고 고급스러운데다 거대하기까지 한 배니 엄청난 주목을 받은 것. 이런 대단한 배가 빙산에 충돌해 엄청난 사망자를 냈으니, 화제가 될 수 밖에 없었다.[9]
5) '''첫 항해'''에 침몰했다. 20세기 쯤 오면 웬만큼 허접한 배라도 첫 항해에 침몰하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타이타닉은 웬만한 배가 아니라 당시 서구권에 그 정도 규모의 배에선 매우 드문 침몰 방지 격벽 시스템까지 적용된 배였다. 이 배의 안정성을 믿고 위에 언급된 부자들이 타고, 구명보트까지 줄일 정도. 그런데 그런 탄탄한 배가 첫 항해에 침몰했으니 충격적인 것.
6) '''스토리'''가 많다. 다른 대형사고를 보면 알겠지만, 저 정도 규모의 배가 저 정도 많은 피해자를 낸 경우 대부분 폭발이나 어뢰 격침이다. 즉, 뭔가 할 시간도 없이 바로 죽는 경우가 많아 사고 외에 다른 얘기거리가 별로 없다. 그런데 두 시간에 걸쳐 침몰하면서 탑승객들이 온갖 행동을 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기에 침몰 직전까지 연주한 밴드, 승객들을 위로하며 기도해준 목사, 품위있게 죽음을 맞이한 벤자민 구겐하임, 탈출을 포기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죽음을 택한 스트라우스 부부 등 지금까지 이어지는 일화들이 남아있는 것.
7) 마지막으로 이런 유명세가 갖는 부수효과로 '''대중매체'''가 엄청나게 많이 다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97년작품 이전에도 관련 논픽션 책[10] , 다큐멘터리, 라디오드라마, 영화 등 타이타닉을 주제로 한 많은 작품이 나왔고, 97년 이전에도 서구권에서는 가장 유명한 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실제로 같은 영국 배란 것 외엔 딱히 연관점이 없고, 퇴역 후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박물관 및 호텔로 활용되는 퀸 메리 호에도 96년 당시 한 구석에서 타이타닉에 대한 정보와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될 정도. 유명하니까 드라마, 영화 등에 계속 나오고-> 이것 때문에 더 유명해지고->또 매체에 나오고,하는 순환이 수십년간 계속되면서 불멸의 유명세를 얻은 것이다.
1.2. 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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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적: 영국
모항: 리버풀(Liverpool)
선급: 올림픽급(Olympic class)
소유주: 화이트 스타 해운(White Star Line)
선박 제원 #
- 총 톤수: 46,328 GRT[11]
- 배수량: 52,310t
- 전체 길이: 269.1m
- 전체 폭: 28m
- 최대 속도: 23노트 (43㎞/h)[12][13]
- 굴뚝 수: 4 (단, 끝의 하나는 환기 및 접이식 의자 창고용[14] )
- 마스트 수: 2
- 통신 시스템: 밤에는 3,200km까지 연락 범위 확대.
- 무선호출 부호: MGY
- 재질: 강철
- 기관: 스카치식 보일러 24기, 보조 5기, 레시프로 4기통 엔진 2기, 증기터빈 1기, 혼성 3축, 프로펠러 3기[15]
- 출력: 46,000HP(설계) – 59,000HP(최대출력)
- 최대 탑승 가능 인원: 3547명 (승선객, 승무원 모두 포함)
- 선실수
- 1st-class(1등실) 416
- 2nd-class(2등실) 162
- 3rd-class(3등실) 269
- cabin area(전용실, 갑판실 등) 40
2. 건조
20세기 초 조선업계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던 할랜드 & 울프 사의 회장인 피리 경이, 런던 메이페어의 저녁 식사 모임에서 화이트 스타 라인사의 이즈메이 사장에게 3척의 대형 여객선의 건조 계획을 말한 것이 타이타닉 호 건조의 발단이었다. 설계는 토머스 앤드루스가 맡았다.
화이트 스타 라인사는 블루리본[16] 으로 불렸던 북대서양 여객선들의 속도 경쟁에는 별로 관심을 나타내지 않고 느긋하고 쾌적한 여행에 중점을 두는 회사였다. 하지만 타이타닉은 속도부터 설비의 호화로움까지 모든 것에 중점을 두어 설계되고 있었다. 안전에도 신경을 써 설계에 방수구획을 도입하였다. 선체는 방수 격벽에 의해 16개의 구획으로 구분되었고 그 중의 2구획(선수의 경우 4구획)이 침수해도 침몰에 이르지 않는 구조였다. 게다가 격벽은 제어실의 원격 조작으로 즉시 폐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방수격벽은 처음부터 엉터리였는데, '''격벽을 상부갑판까지 올리지 않았다.''' 아시아의 범선들은 안전과 침몰 방지를 이유로 격벽을 최상부 갑판까지 올렸다. 아랍 상인들이 타고다니던 다우선 같은 배들은 아시아 지역의 많은 암초 지대 때문에 웬만하면 격벽이 상부갑판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 나라의 판옥선만 봐도 격벽이 갑판까지 충분히 올라와 있다. 반면에 서양은 갤리선 시절부터 방수격벽은 커녕 노잡이 공간 확보를 이유로 격벽이 없었다. 또한 격벽이 있으면 통행이 불편했었다. 그게 그대로 20세기까지 이어졌으니... 당시 서양은 제대로 된 방수격벽이라는 것이 없는 상태였다. 만약 이 방수격벽을 상부갑판까지 끝까지 올렸으면 어찌저찌 뉴욕에는 갈 수 있었다.
물론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방수대책의 도입으로 타이타닉 호는 실제로 지금 기준으로도 안전한 설계상의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특정 구역이 완전히 밀폐되는 구조가 아니라 E 갑판의 긴 복도(스코틀랜드 로드)를 통해 구획 모두가 연결되어 있어서 3구획(선수의 경우 5구획) 이상의 구획이 침수되어 배가 선수 쪽으로 기울 경우 해수면 아래에 잠긴 선체를 넘어 들어온 해수가 이 복도를 통해 도미노처럼 다른 구획까지 유입되어 차례 차례 침수될 수도 있는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다.[17] 그렇기 때문에 아시아 지역의 범선들보다 부족한 부분인 격벽 구조를 개선하지 못하고 만들어졌는데... '''실제로 최초 항해 때 이런 재앙이 발생했다.'''. 타이타닉 호 침몰 후에 올림픽 호와 브리타닉 호의 격벽이 보완되었다.
타이타닉 호는 올림픽 호와 거의 동시에 건조가 개시되어 대계단이나 식당의 장식, 식사의 메뉴나 객실의 서비스 등이 거의 동일했다고 한다. 영화 타이타닉에서는 마치 타이타닉 호가 전무후무한 초대형 선박인 냥 연출했지만[18] 실제로는 올림픽 호(1910년 10월 20일 진수)가 이 함급의 네임쉽으로서, 타이타닉 호(1911년 5월 31일 진수)와 브리타닉 호(1914년 2월 26일 진수)라고 하는 2척의 자매선과 함께 올림픽 급(Class)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타이타닉 호의 사진으로도 종종 올림픽 호의 사진이 사용된다.
타이타닉 호와 그 자매선들이 최초로 배 안에 수영장을 설치해 놓은 여객선들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최초로 배 안에 수영장을 설치해 놓은 여객선은 1906년에 건조된 아드리아틱 호이다.
2.1. 설계의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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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이 타이타닉 호, 왼쪽은 자매함이자 타이타닉이 속한 올림픽 급[19] 의 1번선 올림픽 호다.
그러나 앞서 항로에 투입된 올림픽 호에서 발생한 문제점을 타이타닉 호의 설계에 반영한 결과 몇 군데 달라진 부분은 있었다. 예를 들면 A 갑판의 1등실 전용 산책용 갑판(Promenade) 앞부분에 유리창이 설치되었는데 이는 북대서양의 추운 바람으로부터 승객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이 점은 외관상으로 두 자매선을 구분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위 사진은 전술한 유리창이 설치되기 전의 모습. 그 밖에도 올림픽 호는 B갑판의 창가 전체에도 산책용 갑판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타이타닉 호의 설계도에서는 산책용 갑판 대신에 창가 전체에 1등 선실을 새롭게 마련하도록 변경되었다. 그 결과 1등실의 수가 올림픽 호보다 더 많아졌고 전용 산책용 갑판에 면한 스위트룸이 도입되었다.
자매선이니만큼 애초의 중량은 거의 비슷하게 설계되었지만 이상의 이유로 타이타닉의 객실 수가 증가, 최종적으로 타이타닉 호의 등록톤수는 올림픽 호의 45,324톤보다 1,004톤 커진 46,328톤으로 늘어났다. 타이타닉 호가 올림픽 호를 넘어 당시 세계 최대의 여객선이었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그러나 타이타닉 호가 지금까지도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것은 그 크기 때문이 아니라 어두운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탓이다. 일례로 타이타닉의 침몰로부터 불과 1년 뒤에 진수된 독일의 대형 여객선 임페라토어는 총톤수 53,000톤에 길이 276m라는 규모를 자랑하며 세계 최대 여객선 랭킹을 갈아치웠으나[20] , 둘 중 어느 쪽이 더 유명한지는 자세히 알아볼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21]
수에즈 운하에 이 배가 너무 커서 안 들어가 확장 공사를 해야 했다는 말도 있지만 이 말은 확실한 과장. 수에즈 운하의 확장은 당시 선박의 대형화 추세 때문이지 타이타닉 호 한 척의 통행 때문은 아니었다. 애초에 타이타닉의 노선은 영국-프랑스-미국이라 수에즈 운하에 갈 일은 전혀 없었다.
2.2. 층별 구조
총 11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 보트 갑판 - 최상층으로 구명보트들은 모두 여기에 나열되어 있었다. 맨 앞쪽에는 선교와 조타실이 있었으며 상선사관 숙소와 바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중앙계단의 최상층과 체육관이 연결되어 있었다. 넓은 산책로를 가지고 있었으며 1등실, 2등실, 상선사관 등 저마다 산책로의 영역이 정해져 있었다. 1등실 산책로의 경우 외관을 잘 볼 수 있게 하기 위해 구명보트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는데 이때문에 참사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다만 외관상이란 이유는 말이 많았다. 애초에 당시 해양법 기준에서 권장하는 구명보트보다 더 많은 구명정이 싣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설치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 A갑판 - 산책 갑판이라고도 불렸다. 거의 모든 영역이 1등실 전용이었고 1등실 객실들과 라운지, 흡연실, 독서실, 그리고 야자수 코트가 놓여져 있었다. 산책 갑판이라는 이름답게 A갑판에는 기나긴 산책로가 놓여져 있었는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앞쪽의 산책로에는 유리창이 설치되어 있었다.
- B갑판 - 선교루 갑판이라고도 불렸다. 객실은 모두 1등실이였으며 2개의 특별 객실들은 전용 테라스 및 산책로를 보유하고 있었다.[22] 또한 1등실 전용 레스토랑과 카페도 있었다. 이 갑판에는 선두와 선미 위쪽도 포함되어 있는데 선미는 3등실 산책로로 쓰였지만 선두는 지금도 그렇지만 안전문제상 선원 외 출입금지였다. 그러니까 97년판 영화에서 그 유명한 "나는 세상의 왕이다!" 하는 장면과 "날고 있어!" 장면은 페이크(…) 다만 실제로 가봤다는 생존자의 이야기도 있긴 한데, 당연히 선원 눈을 피해 슬적 들어갔다 나온 정도다. 영화에서처럼 선장 이하 선원들이 가만 놔둘 가능성이 적었을 것이다.
- C갑판 - 배에서 선두, 선미와 분리되는 지점이자 하얗게 칠한 곳이 시작하는 지점으로 3등실의 산책로로 쓰이고 선두와 선미로 각각 이어지는 요갑판과 이어져 있었다. 선두는 주로 선원들의 숙소로 쓰였고 선미는 3등실 전용 휴게실과 흡연실이 있었다. 그 사이에는 1등실 객실들과 2등실 도서관이 있었으며, B갑판 내용에서 설명한 특별실이 2곳 있었다.
- D갑판 - 3개의 넓은 공공시설이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1등실 대합실, 1등실 식당과 2등실 식당이 있었다. 3등실을 위한 트인 공간도 있어 밤만 되면 신나는 연회가 열렸다. 1등실, 2등실, 3등실 객실들과 화부들의 숙소가 있던 곳이기도 했다. 방수격벽이 위치해있던 가장 높은 갑판이기도 했다.
- E갑판 - 1등실, 2등실, 3등실 모두의 객실들과 선원들의 숙소가 차지하고 있었다. '스코틀랜드 로드' 라고 불리던 아주 긴 복도가 있어 선원들과 3등실 승객들이 오고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복도때문에 물이 선체 안으로 골고루 퍼져 침몰을 가속화시켰다.(...) 영화에서 잭과 로즈가 익사해 죽을뻔한 곳이다. 영화에서의 잭은 E갑판의 선실에 갇혀있었다.
- F갑판 - 객실은 3등실이 대부분이었지만 2등실 객실과 선원들의 숙소도 있었다. 3등실 식당은 여기에 있었다. 또 1등실 승객들을 위한 수영장과 터키탕도 있었다.
- G갑판 - 수면 위에서 가장 낮은 층으로 선원들과 3등실 승객들의 객실이 있는 가장 낮은 갑판이었다. 1등실 승객들을 위한 스쿼시 코트도 있었으며 음식물, 우편 저장소도 여기에 있었다. 대다수의 영역이 보일러실이 있는 최하 갑판과 겹쳐있어 선미와 후미가 각각 따로 떨어져 막혀있었다.
- 최하 갑판 - 주로 창고가 대부분이었다.
- 탱크 톱 - 보일러실과 기관실이 위치해 있었다.
3. 출항과 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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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4월 10일, 영국의 사우샘프턴(Southampton)으로부터 타이타닉호는 첫 항해를 시작했다. E·J·스미스 선장과 승무원과 승객을 합쳐서 2,200명 이상이 승선하였다. 배가 항구를 떠날 때 실수로 '''정박되어 있던 뉴욕 호(위 두번째 사진에서 왼쪽 선박)의 정박용 밧줄을 끊어버려 둘이 충돌할 뻔했던 사건'''(!)이 발생했다. 프랑스의 셸부르(Cherbourg)과 아일랜드의 퀸즈타운(Queenstown)[23] 에 기항한 후 미국의 뉴욕 항구로 향했다.
출항 당시 '''쌍안경 보관함의 열쇠가 인계되지 않아서''' 배 안에 있는 쌍안경을 꺼낼 수 없었다. 때문에 견시[24] 들이 쌍안경을 사용하지 못했고 육안으로 위험요소를 확인해야 했는데 사고 초기에는 이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되었으나 나중에 사상 최악의 참사에서 실제로 동일한 환경 속에서 당시 쌍안경을 사용하여 실험한 결과 이것조차도 무용지물이었다. 실험 결과 그냥 검은 원만 보였다고 한다. 애당초 당시의 차가운 공기 때문에 시야 확보가 어려웠고 칠흑같은 밤에 파도도 없어서 빙산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여러 악조건이 겹쳤기에 쌍안경을 사용하지 못했던 것은 그 많은 악조건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고 볼 수 있다. 거기다 탐조등을 설치하지 않아서 빙하를 발견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출항 오전부터 빙산이 돌아다닌다는 위험한 소식이 선박 사이의 무선통신으로 경고하고 있었으며 적어도 타이타닉 호는 4월 14일 6통의 경고를 통신으로 받았다. 그러나 화이트 스타 직원이 아니라 마르코니 사 파견 직원들인 타이타닉 호의 통신사 2명은 승객들의 통신 발신 업무에 쫓기고 있었고 이 계절의 북대서양의 항해에는 자주 있는 일이라고 여겨서 경고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다가 화물선 캘리포니안 호가 무전을 보낼 때에는 더 이상 참지 못한 통신사 필립스가 "'''닥쳐요! 지금 그쪽이 통신을 방해하고 있다고요!'''" 라고 일침을 놓았다. 문제는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당시 가장 가까이 있었던 배가 캘리포니안 호였는데, 1명뿐인 통신사가 취침중이라 무전 수신을 못 해 구조하러 오지 못했다. 이 설에 따르자면 겨우 통신사의 불친절함 때문에 1,500여명이 사망한 참사가 일어난 것이 되는데 사실 이 주장에 대해서 사건 직후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두한 에반스는 '그런 정도 문제 가지고 화를 낸 건 아니다' 고 증언한 바가 있다. 애초에 통신장비를 갖춘 선박의 통신사는 24시간 근무를 하도록 되어있었고, 당연히 혼자서 24시간 근무가 가능할 리가 없었기 때문에 통신사를 1인만 탑승시킨 캘리포니안 호가 규정을 위반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당시의 해운 관행상 이런 경우는 흔했기 때문에 캘리포니안 호만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이때문에 캘리포니안 호의 선장이 비난받기도 한 적이 있다. 당시 에반스는 '''빡쳐서 무전을 끄고 잔 게 아니라 그냥 고된 근무로 피곤해서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던 것'''이었다. 타이타닉 호의 통신사는 24시간 근무했지만, 둘이 12시간씩 교대로 항해 내내 근무하느라 피로가 심했다고 한다.
3.1. 탑승인원들
3.1.1. 승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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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타이타닉호의 승선권
승객들은 총 '''1317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 1등실 - 총 329명. 부유한 승객들이 주로 타고 있었으며 급한 사정보다는 즐기려고 승선한 승객들이 많았다. 객실은 최상층인 보트 갑판부터 갑판 E(상갑판)까지 설치되어 있었으며 호화 호텔 수준이었고 개인 목욕탕이 있었다. 선내 식당과 별개의 고급 레스토랑, 체육관, 수영장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 특별실 - 총 4개의 객실이 있었으며 50피트 규모의 전용 테라스 및 산책로의 존재로 1등실과는 별개의 추가 요금을 징수했다.
- 2등실 - 총 285명. 중산층 승객들이 주로 타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1등실만은 못해도 다른 배들의 1등실에 견줄 만한 많은 편리한 시설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객실은 갑판 D부터 갑판 F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흡연실(갑판 B), 레스토랑(갑판 D), 도서관(갑판 C), 상점(갑판 E)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일부 파견직 선원 또한 2등실에 탔다.
- 3등실 - 총 710명. 가난한 승객들이 주로 타고 있었으며 영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 각지에서 아메리칸 드림으로 미국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얻기 위해 이주 목적으로 승선한 승객들이 많았다. 승객은 영국인 다음으로는 아일랜드인이 많았고 유럽 각지는 물론 중동인(주로 오스만 제국 레반트), 중국인도 있었다. 객실은 2등실과 마찬가지로 갑판 D부터 갑판 G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시설은 1등실과 2등실만 못하고 엔진이 가동되는 소리가 울려퍼졌으나 다른 배들에 비해서 비교적 상당히 좋은 대우를 해주었다.[25] 배에 탑승하기 전에는 검역을 걸쳐서 전염병이나 이/벼룩을 확인했다.[26] 여자와 남자는 배의 앞머리와 뒷머리에 각각 따로 떨어져 승선했으나 가족 단위일 경우 같이 승선할 수 있었다.
3.1.2. 선원
선원들은 총 '''885명'''이 타고 있었다. 이건 요즘 여객선도 마찬가지지만 크게 갑판부(Deck department), 기관부(Engineering department), 양식부(Victualling department)[27] 세 부서로 나뉘어져 있었다. 물론 월급과 대우도 직종에 따라 달랐다.
배의 총 책임자는 선장 에드워드 스미스.
- 갑판부 - 총 66명. 배의 운항을 책임지는 부서. 총 책임자는 수석항해사 헨리 와일드. 상선사관들 중 항해사(선장 이하 7명)들이 여기에 속했다. 조타수 위주로 구명정을 몰도록 정당 1~2명씩은 태웠기 때문에, 제일 생존률이 높았다.
- 기관부 - 총 325명. 배의 동력을 책임지는 부서. 총 책임자는 기관장 조셉 G. 벨. 상선사관들 중 기관사(25명)들이 여기에 속했다. 가장 숫자가 많은 직책은 배에 끊임없이 석탄을 집어넣는 화부들(176명)이었다고 이중 13명이 대장을 맡았다. 기관사는 항해사들과 달리 전부 사망했고, 화부들은 화부장 배럿을 포함한 여럿이 보트 노잡이 증원으로 태워지거나 아예 항해사 한 명이 보트 한 척에 여럿을 몰아 태우기도 해서 생각보다 많이 살아남았다.
- 양식부 - 총 431명. 배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서로 숫자가 제일 많았다. 총 책임자는 사무장 토머스 매카울리. 제일 많은 직택은 객실 승무원 즉 스튜어드(322명)였다. 마르코니사에서 온 통신사(2명)도 갑판부가 아니라 여기에 포함되었는데 주고받는 통신 대부분은 운항 관련이 아니라 승객들의 것들 대신 주고보내주는 것이었기 때문.
- 이 세 부서에 속하지 않은 나머지 선원들은 타 회사에서 온 파견직으로, 레스토랑/카페 점원(69명)[28] , 우편 점원(5명), 악단(8명)[29] , 그리고 조선업체에서 보증으로 탑승한 관계자들(9명)[30] .
3.2. 화물
나중에 영화 등에서 소재로 써먹은 도시전설과는 달리 타이타닉의 화물은 평범했고 엄청나게 값나가는 보물이나 초고가의 보석 등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배에 엄청난 초갑부나 귀족, 유명인사들이 타고 있어서 이런 소문을 부추겼지만, 이런 귀족들이 타이타닉을 탄 것은 대부분 이민하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이동이나 유람 목적이었기에 (집으로 돌아가는 미국인들이 많았다) 그들의 비싼 재산은 집이나 은행에 있지 배에 가득 실려있을리가 없었다. 현대인들이 보통 해외여행을 떠날 때 특별히 이유가 없는 이상 고가의 재산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것과 같다. 보험회사에서 집계한 바에 따르면 타이타닉에 실려있던 화물중 가장 값나가는 물건은 프랑스 화가 조셉 블론델의 그림 한 점이었는데 소유자는 당시 화폐로 10만 달러, 오늘날 가치로 2백만달러의 보상금을 청구했다고 한다. 그외에 또 고가 물품으로는 페르시아 시인인 오마르 하이염의 시집 <루바이야트> 보석 세공판본이 있었는데 오늘날 추정 가치로 잘해야 1억원 미만이라고 한다.
3.3. 불길한 징조?
우연인지 운명인지 많은 사람들이 출항하기 전 불길함을 느꼈다고 한다. 어떤 선원은 자기 아내가 화이트라인사 로고가 새겨진 뜨개질을 하다가 엉켜버렸는데 이에 아내가 불행한 징조라면서 말려 가지 않았다고 한다. 수석 항해사 헨리 와일드는 출항 전 가족에게 뭔가 불길하다는 편지를 남겼는데 이게 그의 생애 마지막 출항이 되었다.
그리고 침몰 전 배와 한참 떨어진 스코틀랜드에서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던 제시라는 여자아이가 꿈에서 큰 배가 침몰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월리라는 사람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을 봤다고 한다. 소녀가 꿈에서 보았던 일은 실제로 일어났고, '''윌리스''' 하틀리가 이끄는 악단은 가라앉는 배에서 생애 마지막 연주를 했다.
또 출항하던 날 갈매기가 단체로 배를 쫓아왔다고 하던데 이는 뱃사람들에게 안 좋은 징조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다른 배와 아슬아슬하게 충돌할 뻔한 일도 있었다. 승객 르네 해리스가 이 상황을 보면서 타이타닉호에 오르려 할 때 웬 낯선 사람이 다가와서는 "당신은 삶을 사랑합니까?"라고 물었다. 해리스가 그렇다고 하자, 낯선 사람은 가면서 "나쁜 징조군. 셸부르에서 내리시오. 나는 그렇게 할거니까" 라고 했다고 한다.[33]
그리고 항해 와중에 석탄 저장고에 원인불명의 화재가 나기도 했다.[34] 문제는 불붙은 석탄을 처리하기 위해선 계속해서 보일러에 집어넣는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에 타이타닉호는 전속력으로 항해하게 되었다.[35] 결국 빙산에 전속력으로 충돌하고 만다. 또한 이 화재로 격벽들이 약화되어 빙산과의 충돌때 버티지 못하였다.
또 특기할 만한 것은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1912년)가 일어나기 14년 전인 1898년 모건 로버트슨(Morgan Robertson)이란 작가가 쓴 단편 소설 <무용지물(Futility)>이 이 배의 침몰을 예언했다는 사실이다. 로버트슨의 그 소설 내용이 "''''타이탄'''' 이란 초호화 여객선이 대서양으로 첫 항해에 나섰다가 빙하와 충돌하여 대형 인명사고를 낸다" 는 것이었는데 이 소설에 나오는 탑승객 숫자와 구명 보트 수, 출발 항구, 사고 원인과 사고 지점, 배의 규모와 사고 시기가 14년 뒤에 실제로 일어난 타이타닉호 사건의 그것과 '''매우 유사했다'''.(다만 일부 내용이 소설 출간 이후 개정되기는 했다.) 그런데 작가인 로버트슨은 자신이 예측한 것이 아니라 자신은 그저 선박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소설을 꼼꼼하게 썼을 뿐이라고 했다고 한다.
4. 침몰
5. 침몰선 발견
1985년, 미국 심해탐험가 로버트 밸러드(Robert Ballard)는 미 해군이 1960년대 바다에서 감쪽같이 증발한 두 척의 미 해군 원자력 잠수함인 USS 스콜피온과 USS 쓰레셔를 찾아내 준 대가[36] 로 협조해 준 덕에, 뉴펀들랜드로부터 680km 떨어진 곳의 수중에서 최초로 타이타닉호 잔해를 심해카메라로 촬영했으며, 미국과 영국 학자들의 노력으로 심해 잠수정을 이용한 선체 파편 인양 작업이 성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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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심 약 4,000m에서 발견된 두 동강난 선체는 각각 600미터 떨어져 있었으며, 약 20% 정도[37] 가 침몰 과정과 그 후의 과정에서 유실되었다. 배의 앞쪽 부분은 비교적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뒷쪽 부분은 선체가 여기저기 찢어져 있어서 훼손이 심했으며, 잔해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배의 모든 굴뚝은 침몰 과정에서 유실되었고[38] , 망루가 선교루를 향해 쓰러지며 선교 지붕을 박살내 조타실이 노출돼 있었다. 신기하게도 옷은 발견되었으나 유해는 한 구도 발견되지 않았는데, 아마 조류로 인해 흩어졌거나 70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바닷물의 유기물에 녹아 없어진 듯하다.
선수는 침몰 뒤 15에서 30도 정도의 각도를 유지하며 해저 바닥을 향했고 선수 앞부분이 진흙 바닥에 처박히게 된다. 이때 선수의 약 20미터가 진흙 속에 파묻히게 됐다. 선수의 형태는 비교적 온전한 상태였다.
허나 선미는 파손이 심각했다. 어찌나 심했는지 로버트가 "처음 발견했을 때 배가 아니라 철무더기 같다' 라고 했을 정도. 선미는 시속 80km의 속도로 빠르게 가라앉았는데 거기에 반시계방향으로 회전까지 하고 있었다. 침몰하면서 물이 차곡차곡 차올랐던 선수와 달리 선미는 부러진 부위가 바닥을 향했기 때문에 빠르게 물이 침투하면서 고압수가 선미 내부를 터진 풍선처럼 심하게 훼손시켰다. 거기에 빠른 속도와 선미의 회전은 주위에 소용돌이를 일으켰고 배의 구조물과 각종 물건이 찢겨지듯 훼손되는 결과를 낳았다.
처음에는 모두 다 기뻐했지만 누군가 시계를 보고서 "그러고 보니까 침몰했던 시각 20분 전인데"라고 하자 분위기가 싹 바뀌어 하나같이 침묵했다고 한다. 발라드는 배를 발견하고 한동안은 그 사실을 언론에 알리지 않았으며, 참사에서 죽은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추모비를 세웠다. 또 배에서 '''단 한 개의''' 유물도 건지지 않았다.
1993년 9월에는 미국 조선 전문가 윌리엄 가츠키(William Gartzke)가 당시 기록을 근거로 타이타닉 호 침몰 참사를 미리 막을 수 있었던 인재(人災)로 해석하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생존자들은 배가 빙하와 충돌하는 순간 엄청나게 크게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고 순식간에 가라앉았다고 증언했는데 그 소리는 저급 강철판이 만들어낸 대재앙의 신호였다는 것이다. 윌리엄은 건져올린 선체 파편을 연구한 결과 충돌시 휘지 않고 부서지는 질이 낮은 강철판을 사용한 것으로 판명되었으며 고급 강철판을 사용했다면 침몰을 막았거나 침몰시간이 지연되어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실 타이타닉은 '''당시 기준으로는 최고급 수준의 강철판'''으로 지어졌다. 단지, '''당대 제강기술의 수준 자체가 현대보다 너무 낮았을''' 뿐이다.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한계. 당시로서는 아무리 날고 기어도 기술의 한계로 그 이상 좋은 강철판을 만들 수 없었다.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황의 함유량이 많아 저질 취급받을 물건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기술이 발달한 미래의 시선에서 볼 때 이야기고, 건조 당시에는 그것이 곧 최고급 강철판이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강철판은 황이 많이 섞인 것 때문에 낮은 온도에선 휘어지기보단 부숴져버리게 된 것. 당시 한국어판 뉴턴에 이와 관련된 기사가 실렸다.
침몰로부터 100년이 지난 2012년 기준으로 가라앉은 배의 대부분이 부드러운 뻘 바닥에 파묻히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2019년엔 한 해저 탐사팀이 다시 한 번 타이타닉호 침몰 장소를 방문했는데기사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형체를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됐다고 한다. 바닷물 속에 107년이나 있었으니 금속을 먹는 박테리아와 염분에 의한 부식 + 심해 해류의 영향으로 이렇게 되었다고. 발견 초기엔 형태가 그나마 남아있던 선장실은 완전히 사라졌고 한쪽 갑판 전체가 무너져 내렸단다. 전문가들의 추정으론 약 10년 뒤인 2030년경 즈음엔 현재 남아있는 부분들마저도 파괴되면서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이는 '''지극히 당연한 자연적 과정이다.'''
2020년에는 배의 일부분을 해체해서 유물들을 인양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유족들이 반대하고 있다.#
여담으로 인양에 관한 이야기도 있는데, 수심 약 4,000m라는 심해에 있는데다 대서양의 가혹한 해류+날씨 때문에 현대 기술력으론 불가능하다. 만약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치더라도 위에 언급된 부식으로 선체가 극도로 약해진터라 올리는 도중 작살나 다시 바다에 빠질 가능성이 높으며, 인양작업에 들어갈 천문학적인 비용을 부담할 개인 혹은 기업이 있을지도 미지수다. 특히 사고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의미에서 위에 언급된 탐사대들도 최소한의 조사에 필요한 샘플 이외에는 인양하지 않았을만큼 본격적인 인양은 금기시 되는 모양새라 타이타닉은 완전히 풍화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영원히 대서양 바닷속에 잠들어 있을 것이다.
6. 타이타닉 자매선들의 운명
타이타닉의 자매함 올림픽호와 브리타닉호 역시 최후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브리타닉호는 원래 타이타닉호보다도 화려하고 안전하게 만들어질 예정이었지만...건조되자마자(위에도 있듯 1914년 2월 26일 진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징발되어 활동하던 중 1916년 독일 제국 해군이 설치한 기뢰를 건드려 침몰하였다. 폭발 위치는 우현 2구역과 3구역 사이였고 폭발로 인해 일부 격벽에 손상이 생겨 선수부를 기점으로 6구획이 침수 되었다. 타이타닉 침몰 이 후 보안된 격벽은 선수부 기점으로 6구획 침수까지는 부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되어있다. 하지만 그때 당시 간호사들이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어놓았고 선수가 물에 잠기면서 열린 창문을 통해 다른 구획으로 물이 들어와 결국 침몰하게 되었다. 다만 구명보트를 제대로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타이타닉과는 달리 대부분은 살 수 있었지만 하필이면 '''스크루가 계속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에'''[39] 구명보트 한 대가 빨려들어가 30명 가까이가 왼쪽 스크류에 갈려 사망했다. 이 때 바다에 뛰어들어 운좋게 살아남은 생존자 중 하나는 간호사 바이올렛 제솝인데 이전에 타이타닉 호에도 승무원으로 탑승해 살아남았다. 약 1,060명이 탑승하여 1,030명이 생존했다.
이 바이올렛 제솝은 올림픽 호에서도 승무원으로 일한 바가 있는데, 그 때는 올림픽 호가 영국 해군 방호순양함인 HMS 호크(Hawke) 함을 들이받았다. 조사 결과 올림픽 호의 크고 아름다운 배수량이 수압차를 만들어서 그보다 크기가 작은 순양함인 호크 함이 끌려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올림픽 호의 선장은 공교롭게도 타이타닉과 함께 순직한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이었는데, 사고가 선원들이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이 원인으로 결론나서 딱히 커리어에 흠집이 나거나 배상 책임 등을 지진 않았으며, 여전히 그가 선장을 맡은 배만 타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명성을 유지했다. HMS 호크는 1차대전 초기에 U보트에 격침됐다.
이 올림픽호는 후에 병력/물자 수송선으로 징발되어 1차대전에 참전하는데, 독일 해군의 유보트(SM U-103)를 '''선체로 들이받는(!) 충각 전술로 격침'''시키는 희한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의 상선이 군함을 침몰시켜버린 유일한 기록이다. 전후 올림픽호는 다시 호화 여객선으로 돌아왔으나 항공기의 발달로 호화 여객선의 시대는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었다. 특히 올림픽호는 제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해서 호화 여객선의 주요 기관이 터빈기관으로 바뀌고 있는 가운데 구식 왕복엔진을 주 동력원으로 한 탓에 속력이 느렸고 배 또한 1910년 건조 당시부터 끊임없는 사고로 인한 선체 노후화가 있어 결국 1934년에 퇴역, 35년에 고철로 처리되었다.
타이타닉 자매선들의 선사 화이트 스타 해운도 잦은 사고와 대공황으로 인한 경영악화로 1934년 경쟁사였던 큐나드 라인(Cunard Line)으로 인수되었다. 이게 와전되어서 화이트 스타 해운이 타이타닉 침몰이란 사건 하나로 순식간에 망했다는 속설이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화이트 스타 선사는 타이타닉에 들어 둔 꽤 큰 보험으로 금전적 손해는 그리 많이 보진 않았다.
올림픽 호가 귀부인의 '''저택'''이 되었다가 2000년에 크루즈 선사로 유명한 로열캐리비안 사가 구매하여 자사의 크루즈선인 밀레니엄호의 '''부속 레스토랑'''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배 자체로서의 올림픽이 아니라 1934년에 배가 폐함 처분될 때 철거된 올림픽 호의 인테리어 파트, 특히 부설 레스토랑의 목제 내벽을 가리키는 것[40] 이 아니면 1969년에 퇴역해서 장기간 수상 레스토랑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아일랜드에서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타이타닉과 올림픽 호의 1, 2등실 승객용 셔틀 선박인 SS 노매딕의 이야기가 복합된 착오이다.
7. 재건?
7.1. 타이타닉 2의 건조
CNN 보도
2013년 2월 27일자 이후로 언론에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타이타닉 2가 만들어져서 항해할 예정'''이라고 한다. 호주의 억만장자인 클라이브 파머가 소유한 블루 스타 해운에서 중국 국영조선회사인 창장조선항운그룹에게 타이타닉2의 건조를 맡겨 중국의 진링조선소에서 건조할 예정이며 배는 2016년까지 완성되어 예전에 타이타닉이 항해했던 사우스햄프턴-뉴욕 노선을 운항할 예정이라고 한다. 혹시나 이게 블루 스타 해운에서 타이타닉하고 외관만 같은 배를 만들 뿐인데 괜히 언론에서 타이타닉2라고 설레발치는 거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위에 링크된 기사에 포함된 동영상의 54초 부분의 뒤를 잘 보면 정중앙에 블루스타 라인이라는 회사 이름과 함께 좌우 양쪽 사이드에 '''TITANIC II'''라고 선명히 적힌 글씨를 볼 수 있다.
사실 현대에는 타이타닉보다 더 큰 호화 여객선이 많이 존재하고 속도 면에서도 당시와 달리 항공기에 상대가 되지 않으므로, 타이타닉 2가 만들어진다면 옛날 타이타닉과 똑같게 생겼다는 점에서 호기심에 타보는 승객을 위한 크루즈선 형태로 운영하게 될 것이다.
일단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재현 가능한 일이긴 한데, 이 일을 벌인 클라이브 파머가 정치 및 경제적으로 깽판을 쳐놓은게 수습이 안 되고 있어 예정대로 인계받아 진수 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일단 영어 위키백과의 해당 문서에 따르면 2019년 5월에 발표된 2027년 까지의 건조목록 중에 타이타닉II와 동일한 스펙의 배는 없다고 한다.
7.2. 타이타닉 테마파크 건설
중국 우창선박중공업그룹이 쓰촨성 쑤이닝시 다잉현에 실물 크기의 타이타닉호 건조를 시작했다. 10억 위안이 투입되었으며, 현재 건조중이다. 항해에 나서지는 않고 물가에 고정되어 테마파크로 운영될 계획이다.
8. 타이타닉과 관한 도시전설
거의 모든 대형 사건들이 그렇듯 타이타닉도 몇 가지 괴담과 음모론이 존재한다. 예를 들자면...
가장 유명한 괴담 중 하나는 불행하게 생을 마감한 이집트 공주의 미라가 발견되었는데 이상하게도 그걸 소유하거나 관련된 사람들이 차례로 사망해나가다가 어느 고고학자에 의해서 '''어느 여객선'''에 실려갔는데 그 여객선이 바로 타이타닉이라는 것. 물론 실제로는 그런것 없다.
보험사기 음모론, 즉 타이타닉호가 모양이 비슷한 올림픽호랑 바꿔치기했다는 음모론도 있다.
그밖에 선박 번호 390904를 거울로 뒤집어 보면 'NOPOPE' 가 되며 이는 아일랜드 선박 노동자들이 가톨릭에 대한 반감으로 꾸민 짓이라는 음모론도 있고는데 웃긴 건 정작 아일랜드인들은 가톨릭이 대다수이다.
타이타닉에서 죽은 부자들이 연방준비제도 창건을 반대했기에 꾸며진 일이라는 설도 있다. 그리고 여기서도 프리메이슨 음모론이 빠질 리가 없다.
물론 괴담과 음모론이 다 그렇듯이 근거는 별로 없다.
9. 각종 문화/매체에서
사실 이러한 선박 사고는 예나 지금이나 알음알음 터지고 있지만 타이타닉 침몰 사건이 유독 많은 주목을 받는 이유는 그 선박과 사고 자체의 특수성에서 기인한다.
선박 자체도 당시의 기준으로는 최첨단+최고급+최대급에 디자인도 뛰어난 함선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던 선박이었는데 그 관심이 식기도 전인 첫 항해에 침몰해 버린 데다가 배의 규모가 큰 만큼 피해의 규모도 큰지라 세간에 널리 알려지면서 많은 인지도를 확보한 까닭이 크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 사건이 문화/기술적으로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당시 20세기 초의 서구 사회(특히 대영제국)에 큰 충격을 준 것도 있고 여러 선원과 승객과 영웅담 등 항해와 침몰 과정에서 생긴 일들이 상당히 극적이기 때문에 역사상 가장 유명한 침몰선이 되었고 각종 문화와 매체에 등장하거나 오마주되어왔다.
9.1. 공식 영상화
이 사고는 너무나 유명하고 극적이어서 그런지 영상화도 많이 되었다. 카메론판 타이타닉이 제일 유명하지만 그 전에도 타이타닉을 무대로 한 여러 명작 영화들이 제작되었고, 이후에도 타이타닉에 대해 다룬 매체들은 수도 없이 넘쳐난다. 관련 다큐나 타이타닉 침몰을 이야기의 일부로 다루고 지나가는 작품들까지 소개하면 너무 많아지므로 직접 관련된 영화와 드라마만 간단히 소개한다.
1. 타이타닉에서 구출되다 (Saved from the Titanic. 1912.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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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 침몰사건의 생존자이자 1등실 승객이었던 여배우 도로시 깁슨(Dorothy Gibson)이 주연과 각본을 담당해 제작한 무성영화다. 사건 당시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출연했다고 한다. 사고 며칠 후 부터 촬영에 들어가 2주동안 제작해 사고 한달만인 1912년 5월14일에 개봉되어 타이타닉 침몰을 소재로 한 최초의 영화가 되었다. 영국 개봉시 제목은 "타이타닉의 생존자(A Survivor of the Titanic)"였으며 독일 개봉시의 제목은 "Was die Titanic sie lehrte (What the Titanic Taught Her)"이었다.
필름보존에 대한 인식이 약하던 시절이어서 안타깝게도 필름들이 훼손되었고 1914년 3월, 스튜디오 화재로 마지막 필름마저 유실되어 지금은 볼 수 없다.
감독 Étienne Arnaud (에티엔 아르노)
각본 Dorothy Gibson (도로시 깁슨)
출연 Dorothy Gibson
Alec B. Francis
Julia Stuart
John G. Adolfi
상영 시간 10 분
2. 밤과 얼음 속에서 (In Nacht und Eis. 1912.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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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의 침몰을 다룬 무성영화다. 1912년 여름에 촬영을 해 겨울이 되어서 시사회를 열었다. 타이타닉이 침몰한 시기가 1912년 4월이었으므로 이 영화 역시 사건 직후에 촬영이 개시되어 그해 겨울에 개봉한 것이다. 한때 이것도 실전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 영화가 대박을 치고 난 1998년에 독일인 수집가가 본인의 컬렉션에서 재발견해 다시 세상에 나왔다고 한다. 영제는 "In Night and Ice" 현재 YouTube에 무료 공개되어 있다.
감독 Mime Misu
출연 Waldemar Hecker
Otto Rippert
Ernst Ruckert (Anton Ernst Rickert)
음악 Joel McNeely
상영시간 35분
3. 애틀란틱 (Atlantic, 1929.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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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의 여객선 애틀란틱호의 침몰을 무대로 한 재난영화다. 원래 타이타닉 침몰 영화로 제작이 시작되었으나 화이트 스타와의 소송때문에 배 이름을 애틀란틱으로 바꿨다고 한다. 타이타닉 침몰을 다룬 영화중 최초의 유성영화인데 특이하게도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버전과 무성영화 버전이 제작되었다고 한다.
4. 타이타닉 (Titanic, 1943.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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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프로파간다'''영화다. 연출은 당시 기준에서 좋지만 반영 프로파간다 영화이기 때문에 영국을 폄하하고 독일을 띄우기 위해 대놓고 왜곡되거나 편파적으로 나오는 부분이 많다. 주인공이 1등 항해사인 독일인(물론 영화상 설정)으로 나오며 타이타닉이 큐나드와의 속도경쟁으로 침몰되었다고 왜곡되었다.
이 영화를 찍은 감독 헤르베르트 셀핀(Herbert Selpin)은 당대 독일에서 성공한 감독이었는데 이 영화를 찍은 후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파울 요제프 괴벨스에게는 이 영화와 감독이 탐탁치 않았고 이후 미운털이 찍힌 감독은 감옥에 갇힌 후 자살을 가장한 처형을 당하고 만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영화는 훗날 '''소련에서도''' 방영됐다(!) 서구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어서라고. 또 한 가지 사실은 이 배의 배경이 아르코나 호(SS Cap Arcona)에서 찍어졌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후에 죄수선으로 쓰였다가 공습으로 격침당하여 무려 '''5000명'''이나 죽는 해양 참사로 기록된다. 타이타닉보다 무려 4배나 더 많이 죽었다. 1958년도판 영화도 이 영화에서 나온 장면을 일부 첨부하였고 카메론 또한 참조하였다.
5. 타이타닉 (Titanic, 1953.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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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라 스텐윅주연의 멜로드라마 스타일의 영화다. 제26회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했다. 시네코리아에서 DVD가 출시됐다.
6. 타이타닉호의 비극 (Night to Remember, 1958. 영국)
문서 참조.
7. SOS 타이타닉 (S.O.S. Titanic, 1979.미국)[image]
극장이 아닌 TV방영을 위해 제작된 최초의 타이타닉영화다. 재미있게도 타이타닉 침몰사건을 다룬 영화 중 최초의 컬러영화이기도 하다. 1979년 ABC-TV방영당시 2부작 144분이었으나 유럽 개봉판은 103분으로 일부 스토리가 삭제된채 개봉되었으며 출시된 DVD도 이 편집버전이다.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타이타닉(영화)에서 스파이서 러브조이(Spicer Lovejoy)역으로 출연한 데이비드 워너(David Warner)가 이 영화에서 실제 2등석 생존자인 로렌스 비슬리(Lawrence Beesley)역으로 출연했다. 카메론의 영화가 타이타닉영화로서는 두번째 출연이었던거다.
8. 타이타닉 (Titanic, 1996. 미국, 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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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CBS 2부작 미니시리즈 드라마다. 유명해지기 전의 캐서린 제타존스가 출연했다. 의상디자인과 사운드에서 좋은 평을 받았으나 스토리와 연기는 평이 좋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EBS에서 세계명작드라마로 한차례 방영되었고 지금은 없어진 캐이블채널 '홀마크TV'에서 몇차례 방영하기도 했다.
9. '''타이타닉(영화)''' (Titanic, 1997. 미국)
제일 유명한 작품. 제임스 카메론 감독. 문서 참조.
10. 타이타닉(Titanic, 2012. 영국, 캐나다, 헝가리)
침몰 100주년을 맞아 방영된 4부작 미니시리즈드라마. 1~3부에서 각각의 인물들의 독립적인 이야기로 진행되다가 4부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모이는 구성을 하고있다.
11. 타이타닉: 피와 강철(Titanic: Blood and Steel, 2012. 캐나다, 아일랜드, 프랑스,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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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의 건조과정을 소재로 한 12부작 드라마다. 위의 4부작 드라마와 함께 침몰 100주년을 맞아 기획된 대작드라마인데 특이하게도 타이타닉 건조과정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소재로 하고있다. 리벳의 불량문제, 위험한 작업환경과 임금문제로 인한 아일랜드 노동자들의 소요사태, 노동조합과 여성참정권 문제, 당시 철판의 한계 등 타이타닉 건조를 둘러싸고 정치인, 사업가, 노동자, 사회운동가들의 이야기가 중심인 드라마. 20세기초의 급격한 사회변화에 관심있다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 다만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 역사적 사실에 어긋나는 묘사가 많아 방영당시에 비판을 받기도 했다.[41] 국내에서는 케이블채널인 CNTV에서 2014년에 방영했다.
9.2. 뮤지컬판
브로드웨이판 뮤지컬도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카메론판 타이타닉은 아니고, 공식 영상화 항목에서 전술한 옛 영화인 타이타닉호의 비극(Night to Remember, 1958)을 각색한 것이라고 한다. 1997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이 올라왔고, 그 해 토니어워즈에서 5개부문 수상하는 등 전체적으로 좋은 평을 받았다.
최근에 라이센스 뮤지컬이 한국에서도 공연했었는데, 샤롯데씨어터에서 2017년 11월 10일부터 2018년 2월 11일까지 성황리에 공연을 끝마쳤다. 라이선스 수입은 지킬 앤 하이드, 맨 오브 라만차 등으로 유명한 OD컴퍼니.
자세한 건 해당 문서로
9.3. 문학작품에서
- 미국의 해양 모험 소설가 클라이브 커슬러는 1970년대에 "타이타닉을 인양하라" 라는 소설을 썼다. 미국의 전략미사일 방위계획에 꼭 필요한 '비자니움' 이라는 광석이 소련 영토에서만 채굴되는 것이라 구할 길이 없었는데 알고 보니 타이타닉 호의 화물 중에 다량의 비자니움이 있더라... 는 설정으로 미국은 타이타닉을 인양하려고 하고 소련은 방해하는 해양 첩보전을 다뤘다. 영화화도 되었는데 결말에서는 인양에 성공하여 위에 고스트 버스터즈 2의 엔딩처럼 타이타닉을 무사히 뉴욕 항에 입항시키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 소설이 나올 때만 해도 타이타닉이 쪼개지지 않았다고 알고 있었으니 가능했던 장면. 그리고 망했다(...) 전체 영상
9.4. 컴퓨터 매체 관련으로
- Titanic : Adventure Out of Time이라는 어드벤쳐 게임도 있다. Cyberflix사에서 제작했으며 1996년에 출시되었다. 주인공은 영국의 비밀요원으로서 타이타닉에 있었던 물건들[42] 을 회수하는 임무를 맡았지만 실패하고 몸만 살아서 나왔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중 집이 폭격을 받자 타임 슬립하여 1912년 4월 14일 오후 9시 30분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들 세 가지를 입수하면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PC게임으로 정발되었지만 영어판으로만 나왔다. 타이타닉의 재현도는 상당히 좋았으며 어떠한 물건을 손에 넣고 탈출하냐에 따라 엔딩이 갈리는 멀티 엔딩을 채택했다(총 9개).
- 위의 어드벤처 게임이 아닌 상당히 안좋은 해적판도 있다. TITENIC이라는 게임도 존재한다. 이름에서 보다시피 게임화도 아니다. 패미컴의 해적판 게임이다. 이 게임의 제작진 중 몇몇은 마스터 파이터 2, 소마리를 제작한 해적판 게임 제작진으로 추정된다. 타이틀까지도 원작 포스터를 그대로 베껴 그렸는데 정작 잭과 로즈가 갑판에서 격투활극을 찍는 해괴한 내용의 액션 게임이 되어버렸다.[43] 또한 이 게임을 제작한 제작진들은 이 게임의 포맷을 복붙해서 해리 포터 게임이랍시고 역시 패미컴 해적판 게임을 내놓았다.
- Titanic: Honor And Glory : 현재 언리얼 엔진 4를 통해 VR로 게임이 개발 중에 있다. 인테리어, 구조, 그리고 사건의 진행과정 등 고증에 엄청나게 신경을 썼기에 해외 타이타닉 커뮤니티들에선 가장 완벽한 타이타닉 컨텐츠로 평가받고 있다. 게임 외적으로도 타이타닉 침몰사건을 편집없이 실시간으로 보여준 2시간 41분짜리 유투브 동영상은 2019년 10월기준 조회수 5천만을 넘길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이 외에도 HMHS 브리타닉, SS 애틀란틱 등 다른 유명 선박관련 컨텐츠도 제공하고 있다.
9.5. 비공식 영상
타이타닉 2라는 괴작도 나왔지만 이건 카메론 감독이 만든 영화의 정식 후속작이 아니고 어사일럼(영화사)가 만든 것. 할리우드에서 히트친 영화들을 속전 속결로 후다다닥 대충 베껴 목버스터 영화로 만드는 곳이다. 예)퍼시픽 림→애틀랜틱 림, 트랜스포머→트랜스모퍼, 나는 전설이다→나는 오메가다, 드래곤볼 에볼루션→드래곤 퀘스트(게임 원작 절대 아님!!), 스피드 레이서→스트리트 레이서, 데스 레이스→데스 레이'''서''', 파라노멀 액티비티→파라노멀 엔티티,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터미네이터스, 타이타닉→타이타닉2. 이름을 살짝 바꾸는 게 아니라 2편이라고 쓰는 건 처음인데 아마 타이타닉은 영화 타이틀로서의 고유명사가 아니라 배의 이름이니까 상관없다고 둘러대는 데 성공한 것 같다. 참고로 이 타이타닉 2는 엄청난 저예산답게 CG나 연기들이 역시나 '''괴작'''이다.
그리고 타이타닉 3D 재개봉에 편승했는지 2012년 4월 25일 다시 국내 개봉했다. # 충격과 공포.
9.5.1. 애니메이션 제작?
- 애니메이션 영화도 있기는 한데 뭔가 아니라는 평들이 많다. 이탈리아 애니메이션 회사 Mondo TV[44] 에서 1999년에 만든 <타이타닉의 전설>이라는 애니메이션인데 사실 타이타닉이 침몰할 때 죽은 사람은 없다고 나온다. 다람쥐 얼굴을 한 거대 문어가 타이타닉을 도와 사람들도 살고 쥐들도 살고 같이 가라앉으려 했던 선장도 살았다는 역사적 왜곡까지 집어넣고 있다. 거기에 난데없이 고래 보호 캠페인을 강조하며, 타이타닉 호가 가라앉은 것도 불법 고래잡이를 한 사람들 때문이라는 인간비판 내용을 집어넣어놨다. Nostalgia Critic도 사정 없이 깠다 더불어 이 애니는 북한에서 하청했고 북한 쪽 사람이 공동감독까지 했다! 또한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 회사 한신 코퍼레이션이 참가했다. 참고로 이 괴작을 기획힌 Mondo TV 사는 90년대 초~후반에 디즈니 짝퉁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로 유명했으며 일본의 타츠노코 프로덕션, 북한의 조선4.26만화영화촬영소에 하청을 자주 맡기는 편이다.
- 그 외에도 2000년에 또 이탈리아에서 <타이타닉 : 전설은 계속된다>라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NC는 이 2000년판 영화를 먼저 리뷰했다. 앞의 물건보다는 조금 나으나[45] 랩을 하는 개가 나오고 뱅크샷이 빈번하게 사용되는 등[46] 여기도 만만찮게 미쳐있다. 이 영화는 2012년 6월 기준으로 드디어 IMDB에서 평점 1.4로 최악의 영화 1위를 찍었다.
- 더욱 더 경악스러운 건, 거대 다람쥐얼굴 문어가 등장하는 버전의 1999년산 타이타닉은 2004년에 속편이 나왔다는 거다. NC는 이 역시 리뷰했고, 앞의 둘보다 '훨씬 더 끔찍하다'고 평가했다. 내용은 대충 3년 전 침몰한 타이타닉호를 찾아가다가 아틀란티스에 간다는 내용인데... 참고로 원 제목은 'tentacolino'로, 저 거대 문어에서 따온 이름이다. 근데 정작 거대 문어는 잘 나오지도 않는다. 내용에서 지적할 문제점이 한 둘이 아닌데, 가라앉은 타이타닉호를 탐사하러 가는 인원이 타이타닉호에 탔던 남녀 주인공이랑 개 한마리, 쥐 두마리다. 거기다 분명 1편은 마차나 타고 다니던 시절인데 작 중 3년 후 시점인 2편에서는 잠수함이 개발될 정도로 기술이 발달해있고, 무엇보다도 아틀란티스가 나온다. 결말은 그냥 어느 새 발견해서 고쳐놨다는 타이타닉호를 아무도 모르는 비밀 섬에 세워놓고, 불사신이 된 남녀 주인공은 그 곳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정 보고싶으면 한 번 보자. NC의 세 번째 타이타닉 애니메이션 리뷰.(무자막).
9.6. 타 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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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날 운치 있는 여행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선주가 보험사기를 위해 침몰시키고자 계획한 배였기 때문에[47] 일부러 역장을 내려 운석에 직격당해버렸고 거기에 천사 로봇의 영향으로 승객들 대부분이 몰살당한 상태로 결국 지구로 낙하하기 시작한다. 만약 지구에 낙하하면 초대규모 핵융합 폭발로 인해 광대한 영역이 생명체가 살 수 없는 환경이 된다. 결국 닥터의 활약으로 버킹엄 궁전 상공을 크게 가로지르며 불시착. 지구에 대피령을 내리자 애완견을 데리고 도망치시는 엘리자베스 2세님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타이타닉 관련자들은 이번 화를 영 좋지 않게 생각했다. 특히 마지막으로 살아있던 생존자인 밀비나 딘 여사는 이 에피소드를 고인드립이라며 이 에피소드에 항의하기도 할 정도였다고.
- 고스트 버스터즈 2에선 타이타닉이 무사히 미국으로 온다. 물론 유령선으로... 밤중에 갑자기 나타나서 실제 타이타닉 호 목적지이던 미국뉴욕 항구에 도달하여 유령들이 가득 내려오자 사람들이 건물 안에서 창문을 통해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본다. 이들은 항만 선창 직원들이었는데 이때의 대꾸가 걸작; "뭐..못 온 것보다 낫네(Well, it's better late than never.)". KBS 토요명화 방영당시에는 더빙으로 "와,정말 오랫만에 도착했네!" 그리고 뉴욕시경에게 타이타닉이 77년만에 미국에 도착했다고 연락한다. 하지만 더 이상 안나오는것을 보면 이미 잡은것으로 추정된다.
- 다운튼 애비에서 크롤리 가문의 후계자 겸 사위가 될 예정이었던 사촌 패트릭이 타이타닉호 침몰사고로 사망하면서 이야기가 벌어진다.
- 극장판 애니메이션 흑집사 Book of the Atlantic에서는 호화 여객선 캄파니아 호가 등장하는데 배의 굴뚝이 3개라는 것만 제외하면 타이타닉 호의 외장을 그대로 본떴다. 작중의 몇몇 장면, 3등실 승객들의 연회나 선수에서 두 사람이 양팔을 벌리는 장면 등은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타이타닉을 오마주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침몰 과정은 실제와 다르게 묘사되었다. 즉, 빙산과 충돌하면서 선수 우현이 파손된 것까지는 동일하지만 선미가 먼저 가라앉아 선수가 하늘로 치솟았고, 언더테이커가 배에서 탈출할 때 데스사이드를 휘둘러 배가 절반으로 갈라졌다.
- 카카오에서 개발한 캐릭터 니니즈 중 공룡인 죠르디는 원래 ‘타이타닉 충돌로 빙산이 깨져 깨어났다’라는 고인드립성 설정이 있었으나, 초창기 니니즈 캐릭터들의 폭력성이 비판을 받자 운석 충돌로 빙하가 깨진 것으로 수정되었다.
- 콜 오브 후아레즈 : 건슬링어에서도 짤막하게 언급이 되는데,[48] 달튼 형제(밥, 그랫, [49] )를 잡기위해 둘이 숨어든 늪지대에 좌초된 증기선 [50][51] 에 들어가지만 형제의 함정에 걸려 불타는 증기선속에 갇혀 탈출하던중 언급된다. 모두들 거대한 배라고 감탄하고 혹시 침몰하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잭만이 냉소적으로 "그 배는 침몰할리 없어 " 같은식으로 말하는데 1년후...
- 블랙옵스4 좀비모드 맵 중 "절망의 항해" 맵의 배경이 타이타닉이다.
10. 기타 이것 저것
- 이 사건은 세계의 보험역사에도 의미가 있는데, 선박사건 최초로 보험에 가입한 생존자와 사망자에게 금액을 보상한 사례이기 때문#1#2 당시 보상금액만 해도 엄청났을 것이란 추측도 가능하다.
- 여러모로 유명한 배다보니 다수의 프라모델 회사에서 킷을 판매중에 있다. 국내의 대형할인매장 완구코너에서 타이타닉 프라모델은 쉽게 볼 수 있을 정도. 그중에서도 국내 기업인 아카데미과학서 내놓은 킷이 전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데, 전세계에서 타이타닉 프라모델을 꾸준히 내놓으면서 퀼리티도 준수하게 뽑아내는 업체는 여기뿐이라[52] 현재도 해외에 많이 수출중인 효자상품. 심지어 영화 타이타닉의 대히트 바람을 타고 수출을 많이한 영향으로 수많은 기업이 줄도산한 IMF를 흑자로 이겨낸 전설이 있다.
- 술자리 게임으로 타이타닉이란 벌칙게임이 있다. 냄비에 맥주를 채워 바다를 만든 후 접시를 띄워 그 안에 소주를 돌아가며 붓는데 마지막으로 접시에 소주를 부어 가라앉힌 사람이 냄비의 소맥을 전부 마시는 것이다. 당연히 큰일날 짓이므로 함부로 먹이진 말자.
- 뮤지컬 헤드윅에서 설정상 주인공 헤드윅이 공연하는 장소는 리버뷰 호텔로 이 호텔은 실제 타이타닉 호의 생존자들이 묵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때문에 뮤지컬 내용 중 타이타닉의 유령들(??)에게 윽박지르는 헤드윅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영화는 뮤지컬과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나오지 않으며, 작품이 리뉴얼된 후로는 설정이 바뀌어 뮤지컬에서도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 가끔 양덕후계 커뮤니티에서 자기가 지지하던 히로인이 끝내 선택받지 못하면 타이타닉처럼 침몰했다고 표현하는 사람이 있으나 자주 쓰는 표현은 아닌 편. 유일한 예외로 S.S.Kuroneko는 그녀의 최후를 기리기 위해서 반공식적으로 채택된 그녀와 그녀의 지지자들을 나타내는 말이다.
- 스쿨홀릭<뫼비우스의 띠>에서 쭈니군이 타이타닉 드립을 치다가 신쌞한테 걸려 뒤로 나간다. 근데 뒤로 나가자마자 포세이돈호드립을 친다.
- 중국의 한 완구회사에서는 타이타닉 영화에 편승하기 위해서 타이타닉 모형을 변신 로보트 장난감으로 만들어 팔아 먹은 적이 있다. 구글 이미지검색에서 Titanic-bot이라고 검색하면 해당 사진들이 쫙 나오며. 양덕들 사이에서 최악의 짝퉁 장난감을 언급할때 한번씩은 언급되기도 한다. 심지어 개량판까지도 있다.
- 타이타닉의 침몰일은 공교롭게도 김일성의 출생일과 일치하는데, 북한에서는 이를 자본주의가 침몰하고 위대한 령도자가 탄생한 날로 결부짓기도 했다.
- 타이타닉 침몰이 4월 15일, 세월호 침몰이 4월 16일이라 우연의 일치가 되었다. 시차까지 합치면 똑같은 날이다. 물론 공통점은 많은 사상자가 나온 침몰사고라는 것 뿐 사건의 원인과 경과에는 차이점이 많으며, 특히 선장들의 행태는 달라도 너무 달라서 더더욱 비교가 되었다.
- TITANIC:SHOCKING TRUTH라는 영상에서 타이타닉과 올림픽의 이름이 서로 바뀌었다고 한다.(침몰선 영상에서 M,P철자가 발견됨))
[1] Royal Mail Steamer(왕립 우편 기선). 아니면 그냥 Royal Mail Ship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당시에는 여객선의 우편 배송이 상당히 흔했고, 여객선이나 화물선이라도 우편선 업무를 겸한다면 RMS로 분류되는 것이 가능했다.[2] Steamship의 약자. TrSS는 Triple-screw Steamship의 약자. 타이타닉호의 구명보트에는 S.S. Titanic이라고 적혀 있는걸 볼 수 있다.[3] 배의 이름은 그리스 신화의 거신족 티탄에서 따온 명칭이다. 영어 단어로써 '거대하다'를 뜻하기도 한다.[4] 물론 세월이 지난 현대에는 타이타닉보다 훨씬 큰 크루즈선이 많이 존재한다. 로열 캐리비안 크루즈의 오아시스 오브 더 시즈가 그러하다.[5] 대표적으로 '솔라스 조약(SOLAS)'이 있다.[6] 예를 들어 전함은 아니지만 41년에 독일 어뢰에 격침된 병원선 아르메니아는 5~7천여명으로 추정되는 사망자를 냈지만 이는 전쟁의 참혹함을 알려주는 케이스로 여겨진다. 위에 언급된 "빌헬름 구스틀로프"는 역사상 가장 많은 9천명 이상 사망자를 냈지만 이는 소련 측의 공격에 따른 것이었다.[7] 전 역사상 기록된 평화시기에 일어난 선박 침몰사고 중 사망자 1위는 도냐 파즈호 침몰 사고(1987년 필리핀, 4,386명 사망), 2위 중앙 대서양 허리케인(1782년 영국, 약 3500명 사망), 3위 SS 키앙야(1948년 중화민국, 2,750~3,920명), 4위 SS 몽블랑호(1917년 캐나다, 약 2,000명 추정), 5위 쥴라호(2002년 세네갈, 1,864명), 6위 텍싱호(1822년 청나라, 약 1,600명 사망) 다음으로 7위이다. 그 중 20세기만 한정한다면 4위지만. [8] 실제로 66년에 폐간된 New York Journal-American이란 신문은 사고 당시 소식을 전하며 피해 규모로 애스터가 죽었고, 1800여명의 사망자 (실제 규모랑 다르게 잘못 전달됨)도 나왔다고 전할 정도.[9] 타이타닉이 실제와 달리 "불침선(unsinkable)"란 수식어를 얻은 것도 언론의 오버 속에 나온 것이었다.[10] 특히 난파된 타이타닉을 최초로 발견한 로버트 발라드 박사의 탐사기를 다룬 책이 유명하다.[11] 선박의 등록톤수. 1GRT = 100ft³ = 2.83168466m³[12] 참고로 이 속력은 부산에서 LA까지 약 7일 정도면 도착할수 있다.[13] 길이와 폭, 속도의 미터 단위 표기는 피트 단위 및 마일 단위의 환산이기 때문에 인용 매체에 따라 소수점 단위의 차이가 존재함.[14] 사실상 장식용이다. 그래서 영화나 일러스트에서는 마지막 굴뚝에 연기가 안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증기선 시절에는 굴뚝이 많으면 더 힘세고 있어보이기에 이런 디자인을 주로 사용했었다. 요즘도 이러는 선박이 많은데 대표적으로 디즈니 크루즈의 앞 굴뚝은 가짜다.[15] 현대의 비슷한 배수량의 선박들이 보통 메인엔진 1기, 보조엔진 1기로도 타이타닉과 비슷한 속도를 낸다는 점을 떠올리며 20세기 내연기관의 발달에 감탄하도록 하자. 사실 타이타닉호가 처녀 항해를 떠난 지 26년 후(1936년)에 경쟁회사인 큐라드 라인에서 발주해서 처녀 항해를 한 RMS 퀸 메리(RMS Queen Mary)호만 해도 160,000shp 마력이다.[16] Blue Riband, 대서양 정기 여객선들의 속도경쟁 정점으로 최단시간내에 대서양을 횡단하는 여객선에게 부여하는 상이었다.[17] 토마스 앤드류스는 방수격벽을 B갑판까지 올리는 설계를 제안하였으나 이중선저와 같은 발전된 기술, 그리고 그 기준으로는 법규를 지킨 구명보트를 올렸다는 이유로 기각되었다고 한다.[18] 크기가 거의 비슷한 올림픽 호를 없는 것 취급했기 때문에 여주인공 로즈가 칼에게 "왜들 난리인지 모르겠네요. 모리타니아 호(RMS Mauritania)와 별 차이도 없어 보이는데요"라고 심드렁한 반응을 보인다. 실제로 모리타니아는 올림픽급들이 만들어지기 전 세계 최대의 선박으로, 3만톤대라 5만톤대였던 올림픽/타이타닉과는 제법 덩치 차이가 난다. 올림픽 호는 1910년 진수되면서 세계 최대 타이틀을 뺏어오고, 1년 후에 타이타닉에게 뺏긴 것. 문제는 저 때 로즈가 대사로 실제 기존의 세계최대선박이었던 올림픽을 언급할 경우 실제로 타이타닉과 별 차이가 나지 않으므로 확연히 더 작은 모리타니아로 대체하고 올림픽에 대한 건 생략한 것으로 보인다.[19] 타이타닉은 올림픽 급의 2번째 선박이다. 3번선이 바로 브리타닉.[20] 그 뒤로도 독일은 1차대전 발발 직전까지 타이타닉보다 거대한 여객선들을 연달아 취역시키며 세계 최대 여객선 보유국의 자리를 굳혔다.[21] 당시는 위에 언급된 모리타니아가 진수 6년만에 세계최대 여객선의 타이틀을 올림픽에게, 올림픽은 또 자매선 타이타닉에게 1년만에 타이틀이 넘어가는 등 계속 기록이 바뀌고 있었다. 단거리 달리기 기록은 경신되어왔지만, 우사인 볼트나 칼 루이스같은 레전드를 제외하면 거의 매대회 조금씩 경신되던 기록과 선수들은 대부분 세월이 지나면 잊혀진다. 타이타닉도 저 사고가 아니었다면 당대에나 유명했지 지금까지 이름이 남을 이유도 없을 것이다.[22] 이러한 특별실은 C갑판에도 2곳 더 있어 타이타닉호 전체에 4곳이 있었다. 1등실에 전용 테라스가 달려 추가요금을 징수했으며 21세기로 치면 에티하드 항공 A380 항공기의 일등실 ‘더 레지던스’에 버금가는 위치였다. 1997년 영화 타이타닉에서 로즈 일행이 탑승한 객실이 단순한 1등실로 알려져 있는데, 잭과 춤춘 걸 들킨 다음날 전용 테라스에서 부부싸움을 하는 장면을 통해 특별실임을 알 수 있다. [23] 1921년 아일랜드가 영국으로부터 자치권을 얻으면서 이름이 "코브(Cobh)"로 바뀌었다.[24] 배에서 선교나 마스트 등에서 직접 눈으로 배 주변을 감시하고 특이사항 등을 살피고 보고하는 당직 근무의 일종 혹은 그 당직을 서고 있는 인원.[25] 다른 배들은 아예 식당이 없거나 다 같이 방을 써야 되는 경우도 많았다. 생존자 중 이 배의 거주 환경이 자신들이 살던 집보다 훨씬 나았다는 증언을 한 3등실 승객도 있다.[26] 영화 타이타닉에서도 칼과 로즈가 승선할 때 1등실 승객용 현문 밑에서 3등실 승객들이 선의에게 일일이 이나 벼룩이 있는지 검사를 받고 있는 장면이 나오고, 잭과 파브리지오가 가까스로 타려고 할 때 6등항해사 무디가 검역은 통과했나요 (Have you been through the inspections)?라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에 잭은 받았다고 뻥을 치고 "어쨌거나 우린 이 없어요. 둘 다 미국인이거든요."라고 추가로 뻥을 친다. (파브리지오는 미국인이 아니다) 미심쩍은 상황이지만 바로 출발해야 하는 지라 무디는 둘을 태워준다.[27] 지금은 사무부나 승무부로 불린다[28] 선내 식당과는 별개로 주인장을 포함해서 이탈리아인과 프랑스인이 대부분이었다. 단 3명밖에 살아남지 못했다.[29] 전부 끝까지 연주하다가 사망했다. 이 중 단장인 월리스 하틀리만 그의 바이올린과 함께 시신이 발견되었다.[30] 첫항해에서 배에 이상이나 추가사항이 있는지 점검 목적으로 파견. 배의 설계자인 토머스 앤드루스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승객이면서도 선원으로 취급받았다. 전원 사망.[31] 3명 사망[32] 서양에서는 꽤 최근까지 "여자를 배에 태우면 재수가 없다"는 미신이 있어서 여성들이 배에 근무한 역사 자체가 짧다. 현실적으로는 범선시대의 뱃일은 굉장히 힘든 일이라 자연히 체력요건이 되는 남성만 타다보니 여성이 범선에 타는 것이 굉장히 상례를 벗어난 특이한 상황이었고, 그런 상황에서 생긴 미신이다.[33] 위 '출항과 항해' 문단에서 보듯 타이타닉호는 프랑스의 셸부르와 아일랜드의 퀸즈타운에 기항하고 뉴욕으로 향했었다. 하지만 해리스는 내리지 않았다. 타이타닉이 침몰하자 마지막 구명선에 올라 살아남았지만 남편을 잃었다.[34] 석탄은 자연발화가 쉬운 물질이다. 가열된 석탄과 함께 일하던 환경이었으므로 발화하기도 쉬웠던 것이다.[35] 1997년 영화판에서는 유럽 대륙을 완전히 벗어나 대서양에 들어선 뒤 스미스 선장이 배의 성능을 보자며 전속력 항해 지시를 내리는 것으로 나왔다.[36] NGC에서 관련 다큐를 방영해준 적도 있다.[37] 굴뚝, 두동강난 부위, 선미의 대부분의 선체, 가구 등[38] 1번은 경적만 남았고, 2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으며, 3번과 4번은 선미 옆에 흩어져 있다.[39] 당시 선장이 배를 좌초시켜 침몰을 막아보려 시도했기 때문인데 침수가 빨라 성공하지 못했다.[40] 현재 영문판 위키백과에 해당 내용이 기재돼 있으나 선사가 다르며 또한 귀부인의 저택 관련은 '''출처 필요'''라는 조건이 부기돼 있다.[41] 타이타닉이 건조된 곳은 원래 올림픽이 지어진 곳이며 시기적으로도 오류가 있다. 또한 올림픽호가 HMS 호크와 충돌했을 때 충돌위치는 우현(Star Board) 후미이고 작중에서도 그렇게 언급되었다. 그러나 정작 영상에서 충돌 위치는 선수의 좌현쪽으로 나왔다.[42] 오마르 하이염이 지은 시집 루바이야트와 다이아몬드 목걸이(세르비아 비밀결사단인 검은 손의 자금으로 쓰일 것이었다), 아돌프 히틀러가 그린 그림(뒤에는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통해 프랑스의 마지노선을 우회하는 진로가 그려져 있다.), 볼셰비키의 명단이 적힌 공책.[43] 또한 잭과 로즈의 동작 중 몇몇은 KOF 시리즈의 쿠사나기 쿄와 아사미야 아테나의 모션을 몇몇 유용했다. 아마 패미컴으로 낸 KOF 해적판의 데이터를 손질한 게 아닐까 싶다.[44] 메탈리온, 유후와 친구들, 로보트레인의 이탈리아 배급을 담당했다.#[45] 여기선 최소한 침몰은 한다. 그리고 바로 위에서 NC가 씹은 타이타닉의 전설 리뷰에서 이 애니도 잠깐 언급하는데, 차라리 이 애니가 조금 더 낫다고.[46] 71분으로 재편집된 영미권 버전 한정이다. 84분 오리지널에서는 뱅크샷은 나오지는 않으나 그에 만만찮은 작붕과 광기가 들어가 있다.[47] 위에 설명된 음모론에서 따왔을지도 모른다.[48] 주인공 사이러스 그리브즈가 술집에서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털어놓는 때가 1910년도인데, 1년후 타이타닉이 완성된다.[49] 에멧만 줄처진 이유는 이전 스토리에서 형들이 도망칠 시간을 벌기 위해 체포되었다.[50] 늪지대에 증기선이 있었다느 말에 모두 뻥이라고 까대지만 술집 주인 벤이 몇년전 홍수로 자초된것일거라고 말하며 덧붙인다.[51] 꽤 오랜 시간 방치된 것으로 보인다. 게임 진행 중 엔진실을 지나가다 보면 엔진이 다 뻘겋게 녹슬어 있다.[52] 타이타닉 침몰 100주년 기념판은 일부갑판 재질을 플라스틱이 아닌 목재로 내놓은 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