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스트 흐루베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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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의 은퇴한 축구선수이자 현 감독, 축구경영인이다. 현재 함부르크 SV에서 육성단장직을 맡고있다.
현역 시절 포지션은 센터 포워드이며 1982년 스페인 월드컵 때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출전했다. 히혼의 수치에 가담한 인물 중 하나이기도 하다. 2000년부터는 독일 청소년 대표팀 감독을 맡아 2009년 FIFA U-20 월드컵 당시 홍명보 감독과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축구 경기에서 신태용 감독과 대결한 적이 있다.[2]
2. 선수 시절
호르스트 흐루베쉬는 현역 시절 188cm의 장신답게 높이를 활용한 헤더의 귀재였다고 한다. 그래서 별명이 ''''헤딩 괴물''''(독일어 : Das Kopfball-Ungeheuer)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선수로서의 재능은 매우 늦게 핀 선수로 전형적인 대기만성형 선수였다. 24세까지 소규모 리그 팀을 전전하다가 1975년에 로트바이스 에센에서 활약한 이후로 커리어에 날개를 달았다.
로트바이스 에센에서 맹활약을 한 그는 함부르크 SV로 이적하였고 그는 이곳에서 분데스리가의 다득점 공격수들 중 한명이 되었고, 얼마 되지 않아 독일 국가대표팀에 차출되었다.
2.1. 국가대표 경력
흐루베쉬가 국가대표에 처음으로 소집된 건 유로 1980 때였다. 하지만 흐루베쉬는 첫 소집 당시엔 클라우스 피셔의 백업 멤버였기 때문에 그리 많은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고 그가 다리 부상으로 빠지게 되면서 그 때부터 국제 경기에 출전할 기회가 생겨났다. 유로 1980 결승전 벨기에전에서 흐루베슈는 2골을 터뜨리며 벨기에를 2 : 1로 꺾고 서독이 우승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후반 43분의 결승골은 그의 전매특허인 헤딩슛으로 넣은 것이다.
이 활약 덕에 2년 후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에도 차출되었다. 하지만 이 대회는 흐루베쉬의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컵인 동시에 흑역사인 대회이기도 했다. 바로 그 악명높은 히혼의 수치에 가담한 멤버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당시 중앙 공격수로 출전한 그는 전반 10분에 결승골을 넣었는데 서독과 오스트리아가 열심히 경기한 순간은 딱 그 10분이었고 그 이후로 80분 동안 서로 패스 연습만 하면서 놀았다.
하지만 이 경기 이후 흐루베쉬의 활약은 저조했다. 4강전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서독은 3 : 3으로 비긴 뒤 월드컵 역사상 첫 승부차기를 했는데 그 때 양팀이 각각 1명씩 실축해[3] 4 : 4로 비겨 서든데스로 이어졌다. 프랑스의 6번 킥커 막심 보시스가 먼저 찼으나 실축했고 뒤이어 서독의 6번 킥커로 흐루베쉬가 나서서 성공시키며 팀을 결승에 올리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결승전 상대는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오랜 천적인 아주리 군단 이탈리아였다. 서독은 이탈리아를 맞아 고전을 면치 못했고 알레산드로 알토벨리와 파올로 로시에게 골을 내주며 0 : 3으로 끌려갔다. 후반 37분에 파울 브라이트너가 간신히 1골을 만회했지만 거기까지였고 결국 이탈리아에 1 : 3으로 패배해 준우승에 그쳤다.
3. 감독 경력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
흐루베쉬의 지도자 경력은 별로 좋은 편이 아니다. 위 도표의 경력 사항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대부분 한 팀을 맡은 기간이 1년 이하다. 그런 점에선 선수 시절 각별한 친구였던 울리 슈틸리케와 많이 닮았다. 슈틸리케가 에리히 리베크 감독과 마찰을 빚은 후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에서 물러나고 후임으로 부임한 인물이 바로 흐루베슈인데 그도 별로 능력이 시원찮았는지 한참이나 나이도 어린 후배 루디 푈러에게 감독직을 뺏겼다.
슈틸리케가 독일 국가대표팀 수석코치 자리에서 물러난 뒤 연령대별 대표팀 감독을 전전했듯이 흐루베쉬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실상 슈틸리케가 걸었던 길을 흐루베쉬가 따라 걸었다고 보면 된다. 왜냐하면 슈틸리케의 후임자가 바로 흐루베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소년 대표팀 감독으로서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던 슈틸리케와는 달리 흐루베쉬는 청소년 대표팀이 의외로 자신과 잘 맞았는지 꽤 준수한 성적을 냈다.
3.1. U-20 대표팀 감독 시절
2009년 FIFA U-20 월드컵 출전권을 따낸 독일은 대한민국, 미국, 카메룬과 함께 C조에 속했다. 독일은 1차전 미국과의 경기에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이며 3 : 0 대승을 거두며 시원한 출발을 했다. 그러나 2차전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을 맞아선 고전을 면치 못하더니 결국 1 : 1로 비기고 말았다. 독일은 90분 내내 주도권을 쥐고 공격했지만 좀처럼 한국의 골문을 열지 못하는 답답함을 보였다. 1승 1무의 전적을 기록한 독일은 카메룬을 3 : 0으로 대파하며 2승 1무라는 준수한 성적으로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그러나 16강에선 연령대별 대회서 강한 모습을 보이는 나이지리아를 맞아 어려운 경기를 했고 결국 5골을 주고 받는 난타전을 벌인 끝에 3 : 2로 어렵게 이겼다. 8강전에서 독일은 브라질과 맞붙게 되었고 2005년 FIFA U-20 월드컵과 똑같이 또 연장 접전 끝에 브라질에 1 : 2로 패배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 대회에서 독일은 5경기 동안 11득점을 기록해 공격적인 축구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3.2. U-23 대표팀 감독 시절
호르스트 흐루베쉬는 이후 U-23 대표팀 감독으로 승격되어 독일 올림픽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축구에 출전했다. 이 대회에서 독일은 멕시코, 대한민국, 피지와 함께 C조에 속했다. 국가대표팀 동료이자 당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울리 슈틸리케가 한국-독일 전을 앞두고 흐루베쉬의 스타일에 대해 조언한 바 있다.#
1차전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팽팽한 접전을 벌였지만 디펜딩 챔피언 멕시코의 힘은 강력했고 결국 후반 7분, 오리베 페랄타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며 0 : 1로 끌려갔다. 하지만 6분 뒤 세르주 냐브리가 동점골을 놓으며 맞불을 놓았고 다시 접전을 이어갔지만 불과 2분 만에 로돌포 피사로에게 또 1골을 얻어맞으며 1 : 2로 끌려갔다. 패색이 짙어지던 독일은 후반 33분, 마티아스 긴터의 동점골로 2 : 2 무승부를 만들어 간신히 승점 1점을 챙길 수 있었다.
2차전 상대는 지난 대회 동메달리스트인 대한민국이었다. 양팀의 8강 진출 분수령이 될 경기였는데 독일은 이 경기에서도 전반 25분, 황희찬에게 선제골을 실점하며 불리한 경기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8분 뒤인 전반 33분, 또 다시 세르주 냐브리가 동점골을 터뜨리며 위기에서 구해냈다. 그리고 후반 10분, 다비 젤케가 역전골을 터뜨리며 드디어 첫 승을 거두는 듯했다. 그러나 불과 2분 후에 손흥민이 빠른 역습으로 동점골을 터뜨리며 다시 승부는 2 : 2 원점이 되었다. 팽팽한 접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후반 42분, 이슬찬의 크로스를 받은 석현준이 재빨리 밀어넣으며 재역전골을 터뜨려 스코어를 3 : 2로 뒤집었다. 패색이 짙어진 독일은 동점골을 넣기 위해 사력을 다했고 종료 직전 프리킥을 얻었다. 그리고 프리킥 찬스에서 세르주 냐브리가 골을 성공시키며 간신히 3 : 3 무승부를 기록하게 되었다.
3차전 상대는 대회 최약체인 피지였고 독일은 초반부터 피지를 두들기기 시작해 2경기 동안 침묵했던 와일드카드 닐스 페테르센이 5골을 터뜨렸고 막스 마이어도 3골을 넣어 2명이 해트트릭을 달성하는데 성공하며 10 : 0이라는 압도적인 스코어로 승리를 거두었다. 같은 시각 다른 구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에선 대한민국이 후반 29분에 터진 권창훈의 결승골로 멕시코를 1 : 0으로 제압했다. 그리하여 독일은 C조 2위로 8강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8강전 상대는 독일 성인 대표팀이 천적으로 군림하는 포르투갈이었다. 성인 대표팀에서는 독일이 포르투갈보다 압도적으로 우세하지만 U-23 대표팀은 얼마 전에 포르투갈에 0 : 5로 대패한 적이 있어 다소 불안한 예측도 있었지만 평가전은 어디까지나 평가전이었는지 이번에는 독일이 세르주 냐브리의 골을 시작으로 마티아스 긴터, 다비 젤케, 필립 막스가 릴레이로 골을 터뜨리며 2년 전 월드컵 때와 같이 포르투갈을 4 : 0으로 떡실신시켜버리고 4강 진출에 성공했다.
4강전 상대는 '''올림픽의 제왕''' 나이지리아였다. 1996 애틀란타 올림픽 금메달과 2008 북경 올림픽 은메달이라는 화려한 수상 이력을 가진 나이지리아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래서 독일이 이번 경기도 힘들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독일은 이 예상을 깨버리고 전반 9분만에 루카스 클로스터만이 선제골을 넣으며 앞서갔고 후반 44분에 와일드카드 닐스 페테르센이 쐐기골을 넣으며 2 : 0 완승을 거두어 1988 서울 올림픽 이후 무려 28년 만에 올림픽 축구에서 결승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결승전 상대는 바로 개최국 브라질. 불과 2년 전 열린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양국은 벨루오리존치에 위치한 미네이랑 경기장에서 맞붙었는데 이 때 독일이 브라질을 7 : 1로 박살을 내버리며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악의 비극인 미네이랑의 비극을 초래한 바 있었다. 그 때문에 두 팀은 이 사건으로 완전히 악연이 되어버렸다. 브라질 입장에서는 올림픽에서라도 이겨서 설욕하고자 하는 입장이었고 독일은 올림픽까지도 모조리 따내서 브라질의 오랜 숙원이었던 올림픽 금메달 획득을 무산시킴과 동시에 다시 한 번 브라질에 치욕을 안겨줄 생각이었다.
복수의 일념에 가득 찬 브라질은 초반부터 맹공을 퍼부었고 독일은 굳건한 수비를 바탕으로 역습을 통해 득점 기회를 만들어갔다. 마침내 브라질은 전반 26분, 주포 네이마르가 선제골을 뽑아내며 기선제압에 성공했다. 하지만 독일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후반 14분, 막스 마이어가 동점골을 뽑아내는 것으로 응수했다. 스코어는 1 : 1. 양팀은 계속해서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였지만 좀처럼 골이 터지지 않았다. 90분 정규시간에도 30분 연장전에도 승부는 가려지지 않아 결국 승부차기로 승부를 가리게 되었다. 하지만 승부차기도 4번 킥커까지 모두 골을 성공시키며 승부는 가려지지 않았다. 이제 승부처가 될 5번 킥커. 독일의 5번 킥커 닐스 페테르센이 먼저 찼으나 브라질 골키퍼 웨베르톤의 선방에 막혔다. 그리고 뒤이어 브라질의 5번 킥커 네이마르가 킥을 찼고 이 킥이 들어가면서 결국 브라질의 승부차기 5 : 4 승리로 끝이 났다.
하지만 올림픽 은메달도 매우 훌륭한 성적이었고 흐루베쉬로서는 지도자로서 나름 성공적인 경력을 보낸 대회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때 올림픽에 출전했던 율리안 브란트, 니클라스 쥘레 등은 성인 대표팀 감독인 요아힘 뢰프에게도 그 기량을 인정을 받아 2년 후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도 출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