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t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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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리치몬트 그룹에 속한 프랑스의 하이엔드 명품 브랜드이다.
보석, 시계 등 잡화를 주력 상품으로 생산하는 브랜드이며, 핸드백이나 패션 제품도 생산을 한다. 특히 보석 세공에 있어 큰 족적을 남긴 브랜드로 인비저블 세팅이라는 보석 세팅법을 개발하고 당시로서는 세공이 어려웠던 백금을 주얼리에 적용하는 등 보석의 역사에 있어 영향력을 가진 브랜드이다.
현재 매출 기준으로도 3대 명품 시계 브랜드[1] (롤렉스, 까르띠에, 오메가)이자 4대 명품 보석 브랜드[2] (까르띠에, 반클리프앤아펠, 불가리, 티파니)에 모두 포함되니 여러모로 대단한 브랜드이다.
2. 국내 매장
'''시계류만 판매하는 매장은 정식 매장이 아니며 보석과 시계 모두 다루는 매장이 정식 부띠끄이다. 매장은 정식 부띠끄만을 언급한다.'''
시계 매장은 비교적 많은 편이지만 보석까지 함께 판매하는 곳은 매우 적다. 3대 명품 중 하나인 루이비통[3] 보다 매장 수가 훨씬 적을 정도로 매장이 많지 않으며, 입점기준 또한 까다롭다. 귀금속 업계에서 까르띠에의 위상을 생각하면 매장 입점 기준이 그만큼 높다고 볼수도 있다. 서울특별시,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성남시에만 운영중이고 호남권, 충청권엔 아직 진출하지 않았다. 백화점 기준 전국 11개의 매장이 있으며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서 복층 매장을 운영중이고 여러 백화점에서 상당히 큰 매장, 좋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사실 시계나 주얼리 매장은 의류나 잡화 브랜드에 비하여 큰 규모를 차지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복층을 할당한다는것은 중요성을 매우 높게 보는것이다. 실제로 명품 시계/주얼리 브랜드 중 복층 매장을 운영하는 브랜드는 까르띠에가 유일하다
대한민국 매장으로는 롯데백화점 (본점, 잠실점),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판교점, 무역센터점, 대구점),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타임스퀘어점, 센텀시티점, 대구신세계),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등에 입점해있다. 면세점은 주로 롯데와 신라 면세점 매장에 입점해있다. 현대백화점 면세점에 공사중이며 2020년 오픈한다. 청담동에 아시아 최초로 까르띠에 메종을 선보이며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으나 샤넬에게 건물을 매각 후 바로 옆[4] 옆 건물로 이전하여 까르띠에 메종 청담으로 다시 오픈했다.[5]
3. 역사
까르띠에 설립자인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화약동 제조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손기술이 좋았던 그는 1847년 아돌프 피카드의 보석세공 견습사로 일을 시작하게 된다. 당시 몽고트로이가 31번지의 보석 작업장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이것이 까르띠에 최초의 시작. 견습일을 하던 중에 그의 사장 아돌프가 갑작스럽게 죽자 견습생이였던 그는 자기의 스승의 회사를 인수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 ‘메종 까르띠에’로 이름을 변경한다
까르띠에가 설립된 곳인 프랑스가 프랑스 혁명 이후로 사회가 안정되고 파리 곳곳에서 호화스러운 파티와 무도회가 열렸다. 호화로운 파티에 참석하는 귀족들의 치장을 위해 주얼리가 필요하게 되었고,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까르띠에가 발전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나날히 발전해가는 도중 프랑스 황제의 사촌이던 마틸드 공주가 까르띠에를 방문했고 그의 작품에 매료되어 공주의 입소문으로 입소문을 타게 되어 인지도가 큰 지금의 까르띠에로 발전하게 되었다. 마틸드 공주의 후원으로 당시 파리 상류층의 중심부 이탈리아 대로로 사업장을 옮겼다.
1874년 루이프랑수아 까르띠에는 아들 루이프랑수아 알프레드에게 일을 가르치며 대를 잇게 한다. 1898년 알프레드는 자신의 첫 번째 아들인 루이와 동업을 시작한다. 1899년 까르띠에는 현재로 치면 청담동 명품 거리와 같은 명품 거리 뤼 드라 빼 13번지에도 사업장을 열었고, 세 형제 중 사업 능력이 가장 뛰어났던 첫째 루이가 뤼 드라 빼 매장을 관할하게 되었다. 이후 알프레드는 자신의 세 아들들에게 회사를 맡기며 세계적인 회사로의 도약을 준비한다.
1902년에는 뉴욕과 런던에도 지점을 열게 되었다. 두 줄로 된 흑진주 목걸이와의 교환으로 얻은 뉴욕 5번가의 모트 플랜트 빌딩은 훗날 까르띠에 인터내셔널사의 본부가 된다. 이미 이시기에 까르띠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보석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었다. 영국의 왕자가 "보석상의 왕이요, 왕의 보석상"이라고 칭송한 것은 유명한 일화. 왕위 대관식에서 쓰일 왕관 제작도 맡았다. 왕관을 만든다는 것은 최고의 보석사로 인정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1904년 에드워드 7세는 영국 왕실의 공식적인 보석상으로 인정했다. 이와 같은 유명세와 인정은 스페인, 포르투갈, 루마니아, 이집트 왕실, 올리언즈 일가, 모나코 왕국, 알바니아 왕실까지 이어졌다.
루이를 비롯한 세 아들들은 최고의 상품성을 유지하기 위한 아름다운 보석을 찾아 세계 곳곳을 다녔다. 러시아, 페르시아 지역, 인도 세계를 돌아다니며 발견한 아름다운 보석은 곧 까르띠에 상품이 되었고, 당시 제작된 쥬얼리 중 몇몇은 오늘날까지도 까르띠에를 대표하는 디자인으로 남았다.
남다른 감각을 자랑하던 루이 까르띠에는 수 많은 유산을 남겼다. 이전까지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던 백금을 이용한 디자인으로 보석계에 혁신을 가져왔고, 보석상으로 시작했지만 손목시계 제작으로도 매우 유명하다. 1904년 친구인 산토스 듀몽에게 선물하기 위해 2년간에 걸쳐 디자인한 산토스시계는 시계 제조 역사상 최초의 현대적인 디자인의 손목시계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까르띠에가 시계로도 알아주게 만든 장본인. 1917년 최초로 만들어진 탱크 워치는 매우 유명한 디자인이며, 미스테리 클락, 폴딩 버클 등의 특허 상품도 대표작.
4. 컬렉션
4.1. 주얼리
4.1.1. 저스트 엥 끌루
보이는 것과 같이 못에서 영감을 받은 주얼리 컬렉션이다. 러브 브레이슬릿을 디자인한 알도치풀로가 1970년대에 디자인한 주얼리 컬렉션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하여 출시한 디자인이다.
이 외에도 브레이슬릿, 링, 네크리스, 이어링의 종류가 있다.
4.1.2. LOVE
이 컬렉션은 말그대로 사랑[7] 에 관련이 깊은 컬렉션이다. 브레이슬릿의 경우 착용하는 법이 특이한데 착용하지 않을경우 2개로 나누어져 있어 서로 맞게 겹친 다음 특수 스크류 드라이버로 나사를 잠구는 식으로 착용한다. 이 착용법에는 서로의 사랑을 봉인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의미의 맞게 결혼 예물이나 커플들이 많이 사용한다.
이 외에도 브레이슬릿, 링, 네크리스, 이어링의 종류가 있다.
기본 구성 상 문제인지 탈부착이 힘들고 자주 분리되어서 비효율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매장 직원들도 풀로 붙이라는 등의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
4.1.3. 아뮬레뜨 드 까르띠에
보석에 따라 상징되는 희망이나 소망, 맹세가 존재한다. 아뮬레뜨 드 까르띠에는 각각의 보석이 갖는 상징을 기초로 행운을 부르는 주얼리이다.
이 외에도 브레이슬릿, 링, 네크리스, 이어링의 종류가 있으며 각각의 보석에 따라 많은 제품이 존재한다.
4.2. 시계
까르띠에는 시계 브랜드로서도 매우 유명하며, '''세계 최초로 현대적 손목시계를 만든 브랜드'''이다.[8] 헤리티지가 매우 중요한 시계 시장에서 이러한 상징성을 가졌다는 점에서 시계 분야 내에서의 까르띠에의 위상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인지도 높은 예물 시계 브랜드 TOP 3에 해당되는 롤오'''까'''의 한축이며, 매출 역시 롤렉스, 오메가에 이어 3위에 위치한다.
전차에서 영감을 받은 '''탱크''', '''세계 최초의 손목시계'''로 인정받은 '''산토스''', 2000년대에 출시한 남성용 시계 '''발롱 블루''' 등 주옥같은 모델들이 많다. 주로 다이얼에 로마자 인덱스를 새기는 편이며, 외형과 마감 면에서 뛰어난 품질의 제품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단, 무브먼트의 내구도는 다소 낮은 편이다. 까르티에는 2년에 한 번씩 자사의 오버홀 서비스를 받을 것을 권하고 있으며, 오버홀없이 계속 사용할 경우 실제로 (심할 경우) 대략 5-7년 정도 주기로 이상이 발생하는 경우가 잦다. 오버홀 가격은 본사 기준으로 최저 50만원, 평균 70만원(2010년 기준) 정도의 공임을 받으므로 유지비가 많이 드는 편이다.
4.3. 가죽제품
까르띠에의 가죽 컬렉션은 쥬얼리, 시계를 잇는 주력 컬렉션이며, 특유의 스타일이 반영된 것으로 유명하다. 구성은 핸드백이나 백, 지갑, 벨트 라인 및 기타 가죽 소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갑 라인이나 가방 같은 경우 구찌나 프라다, 펜디와 경쟁 카테고리적 성격이 짙은 라인이라는 인식이 있다. 이러한 인식은 가죽제품의 매력과 한계성에서 동시에 기인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4.4. 향수
향수도 만드는데 'Baiser Volé(베제 볼레)'라는 향수 광고에 이병우가 작곡한 영화 장화, 홍련의 OST인 '돌이킬 수 없는 걸음'을 삽입해 한국에서도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전속 조향사인 마틸드 로항이 향수 컬렉션 전체를 담당하고 있다.
5. 기타
[1] 매출이 아닌 역사나 인지도, 기술력으로 3대 시계는 파텍 필립, 바쉐론 콘스탄틴, 오데마 피게[2] 백화점 주얼리 3대 브랜드는 반클리프앤아펠을 제외하고 까르띠에, 티파니앤코, 불가리[3] 백화점 기준 전국 21개의 매장 운영중[4] 페라가모[5] 맨 위 사진의 건물로 7살 10살 어린이 건물주로 유명세를 탄 건물이다 #[6] 경첩을 이용하여 착용할 수 있다.[7] 관습에서 벗어난 사랑을 의미한다.[8] 사실 최초의 손목시계라는 언급은 틀린 것은 아니지만 논란이 많은 부분이다. 기네스북에서 인정받은 최초로 손목에 착용하는 시계의 개념을 제시한 브랜드는 파텍 필립이며, 브레게도 1810년에 손목에 착용하는 시계를 개발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등 손목시계의 정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까르띠에는 손목에 착용하기 위해 만든 시계를 최초로 만들었고 다른 브랜드는 시계를 손목에 얹기도 했다 정도로 거의 정리됐다. 둘 다 최초라고 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9] 쉐항목과 마찬가지로 고유명사 취급되면서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