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고기/금지 논란

 



1. 개요
2. 금지론
3. 금지 반대론


1. 개요


대한민국에서 제기되고 있는 개고기 금지 논란을 서술한 문서.

2. 금지론


※ 정확하게 표현하면 '개고기 생산·판매·섭취 금지론'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섭취만 금지되어도 생산과 판매는 설 자리가 없어지기에 금지론의 핵심은 섭취 금지에 있고, '개고기 생산·판매·섭취 금지론'이라는 표현은 너무 길기 때문에, 이하에서는 줄여서 '섭취 금지론' 또는 '금지론'으로 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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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시장 앞에서 개고기 반대 시위를 하는 동물보호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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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고기 판매점 앞에서 시위하는 전 동물보호단체 케어 대표 박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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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산시 시내버스 차내에 부착된 광고
우선 동물보호 단체가 얼핏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감정적인 주장을 하는 것은 '''그것이 은근히 잘 먹히기 때문이다.''' 개고기에 대해 반대하지 않거나 애견인이 아니라면 '개가 불쌍해서 먹지 않아야 한다면 소, 돼지는 불쌍하지 않다는 것이냐'는 식의 논리를 펼치는 게 보통이다.[1] 하지만 애견인이거나 개고기 섭취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주장이 먹힌다. 애견인들에게는 자신의 애완견이 누군가에게 먹힐 수도 있는 식량으로 취급된다는 것 자체가 공포다. 이것이 그저 심리적인 것이면 모르겠으나 실제로 개를 훔쳐가서 먹어버리는 사례가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12345[2]
특히 애완견에 애정을 쏟는 견주일수록 예방접종을 충실히 하고 잘 먹이고 관리하므로 훔쳐 먹어도 탈 날 확률이 적다. 걸리면 약간의 벌금을 내면 그만이다. 이런 인간들에 의해 계속 노려지는 입장인 것이다. 이런 입장이라면, 당연히 개고기 섭취에 대해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즉, 애초에 이런 주장은 개고기 섭취에 대해 긍정적인 사람들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이 아닌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특정 취약계층에 대해 지원하고 홍보하는 단체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니네가 돕는 계층이 불쌍하다고? 너희만 힘드냐? 다른 취약계층도 힘들다 왜 그런 취약계층을 돕지않느냐'는 말은 논리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민주주의 사회는 철저히 다수의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 하다 못해 내가 사는 지역에 혐오시설을 설치하지 말라는것도 따지고 보면 논리라고는 하나도 없지만 어쨌거나 주민들이 뭉치면 백지화 시킬 수 있다. 평소에 평균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해도 누가 이슈화를 시키냐, 얼마나 이에 대해 공감하냐에 따라 법이 바뀌기도 한다. 이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인터넷에서 비웃을 게 아니라 개를 먹을 권리에 대해 진지하게 나서야 한다. 그러나 개를 먹는 일 '따위'에 그렇게 진지하게 나설 이는 그렇게 많지 않으며[3] 실제로 중요하게 '개고기를 먹을 권리'를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내가 먹었거나 내 주위에서 먹은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비난받는게 싫을 뿐이다. 이런식이니 실제로 여론이 형성되기도 어렵다.
감정의 문제가 아닌 현실의 문제로 따져보면 개 도축 과정이 비위생적이고, 비인도적이므로 개고기를 금지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대한민국 법률상 개는 축산법과 식품위생법의 규제를 받으나, 도축, 유통 등에 있어서 각종 위생규제를 하는 축산물위생관리법의 규제대상에서는 빠져있는데다가, 대다수의 개농장은 축산법조차 지키지 않은 미신고 상태로 운영되고 있기에 위생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곳들은 건축법, 가축분뇨법 등을 당연스레 어기게 되며, 식용견들은 별도의 처리가 필수적인[4] 음식물 쓰레기를 그냥 사료로 주거나 분뇨 배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사육되게 된다.#
이에 대해선 '그러니까 개를 축산물위생관리법의 적용 대상 포함시켜서, 축산물위생관리법에 의한 체계적인 위생관리 규제를 받도록 하면 될 것 아니냐'는 반론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개고기에 대해 이런 조치를 취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단 한 곳도 없으며''' 한국의 개고기 소비량이 이를 고려해야 할 정도로 많은 것도 아니다. 전 국민이 평균적으로 하루걸러 하루씩 개고기를 먹고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는 사육장이 전 국토에 넘쳐난다면 타국이 어쨌거나 필요하다면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
대외적으로 국가 이미지가 나빠지고 개고기 섭취가 조롱거리로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개고기를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타국의 식문화를 조롱하는것은 옳지 않은 행위이지만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며 한국이라고 딱히 타국의 식문화를 존중하기만 하는것도 아니다. 개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은 '내가 먹지도 않는 개고기 때문에 타국 사람들에게 조롱받는것이 기분나쁘다'는 입장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

3. 금지 반대론


※ 이하의 글을 읽기 전에 이 문단의 제목이 개고기 찬성론이 아니라, 금지 반대론임을 인식하자. 그게 그거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그렇지 않다.

'''금지 반대론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특별하고 중대한 사유[5]가 없는 한, 타인의 식생활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간섭할 권리는 없고, 타인의 식생활은 찬/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다. 즉, 개고기를 먹든 안 먹든 그것은 각자 개인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지, 타인이 찬성 또는 반대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개고기 금지 반대론을 개고기 찬성론으로 표현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6]
아래에도 자세히 언급하고 있지만 금지 반대론자들 중에는 개고기를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사람도 많고, 앞으로도 먹어 볼 생각이 없는 사람도 많다.

▲ 개고기 금지론자 박소연에게 반론을 제기하는 진중권 (2013년, EBS 토론카페) 영상이지만 개고기 식용 대립 관련한 가능한 모든 주장과 반박이 다 나온다.
우선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초식동물이 아닌 이상 먹이사슬의 위쪽 동물이 먹이사슬의 아래쪽 동물을 먹는 건 '''자연의 섭리'''지 그걸 두고 '옳다, 그르다', '착하다, 나쁘다' 따위의 얘기를 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호랑이가 나쁜 동물이라서 육식을 하고, 토끼가 착한 동물이라서 채식을 하는게 아니다. 또한 먹이사슬의 아래쪽 생물 중 무엇을 먹을지는 개인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지, 타인에게 무엇을 먹으라 마라 할 권한은 없다. 다만, 멸종위기 종처럼 모든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특별하고 중대한 사유가 있다면 예외적으로 간섭할 수 있을 뿐이다.
이와 관련하여 개고기 금지론자들은 "개가 반려동물이라는 점"을 간섭 정당화 사유로 내세우지만, 그건 개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나 그런 것이지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인정하는 사유는 되지 못한다. 즉 개를 반려동물로 생각하지 않고 , 돼지, 생선처럼 '먹거리'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반려동물이면서 동시에 먹거리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의 시각만이 '옳다',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요컨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무엇을 먹을지 말지는 개인의 자유지 타인이 이래라 저래라 강요 및 간섭할 권한은 없는 것이다. 미니돼지 키우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한테 삼겹살 먹지 말라고 하지 않는다. 닭을 애완용으로 키우는 사람들이나, 물고기를 기르는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한테 치킨 먹지 말라, 물고기 먹지 말라고 안 하고.
자신의 소중한 반려동물이신 개가 누군가에게는 식량으로 보일 것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공포를 느낀다면, 그건 그 사람의 문제이지, 그 사람을 제외한 다른 모두가 개고기를 먹지 말아야 하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애초에 그런 식으로 논리전개를 하다보면 별의별 황당한 일이 다 정당화 될 수 있다. 자신이 동성애자에게 성적 흥분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끼는 호모포비아 남성을 위해 다른 모두가 동성애를 거부하게끔 만들어야 하는가? "개를 키우는 사람이 이 세상 어딘가에 개를 먹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서 느끼게 되는 공포심" 따위를 해소시켜주기 위해, 다른 모두의 개고기 섭취를 제한하자는 것은 말도 안되는 주장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애완동물이니, 반려동물이니 하는 것 자체가 동물보호와 반대되는 인간 본위의 이기적 개념일 수 있다. 아무리 '반려동물' 따위의 그럴싸한 단어로 포장해도[7] 본질적으로 인간이 동물을 인간의 이기적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것임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리학자이자 인류동물학자인 할 헤르조그 교수는 '''“인간이 동물을 반려동물이라 명명하는 것은, 동거하는 동물이 소유 대상이 아닌 듯 보이게 포장하는 언어적 환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일부 애견인과 동물애호가들은 인간에게 먹히기 위해 태어난 동물은 없다고 말하지만, 마찬가지로 인간의 애완용/반려용이 되기 위해 태어난 동물도 없다. 반려동물은 주체적으로 사는 권리를 빼앗기고, 인간에 의해 행동 반경과 먹어야 할 음식의 종류와 양, 활동의 내용과 범위를, 그리고 때로는 생존 기간까지 조정당하고 지배받고 있다. 심지어 인간은 동물을 애완용/반려용이라는 목적에 부합하게끔 또는 인간의 눈에 더 귀엽고 예뻐 보이게 하려고 품종개량하기도 하고 성욕을 잃도록 중성화수술을 시키기도 하고[8] 짖지 못하게 성대수술을 시키기도 한다. 따라서 '''따지고 보면 자연에서 자유로이 살던 동물을 인간의 기쁨과 행복을 위해 인간의 영역 안에 가둬 놓고, 애완동물/반려동물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기르는 것 자체가 인간의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도 있을텐데, 애견인들은 무슨 낯짝으로 동물보호 타령하며 타인에게 개를 먹지 말라고 강요한단 말인가?'''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또 애초에 "반려동물"의 잣대는 누가 정한 것인가? 소, 돼지나 닭도 반려동물로 키울 수 있다.
또 이러면 반려동물은 개가 일반적이라고 하고 소나 돼지와 닭이 반려동물로 키워지는건 흔한일이 아니여서 라고 하지만 이건 그냥 자기 주장을 일반화 시키는거지 정당한 근거가 아니다.
금지론자들 중에서는 '굳이 외국인들에게 놀림받거나, 욕 먹어가면서 먹을 필요가 있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9], 이는 결국 다른 나라의 문화적 가치관 강요에 굴복하자는 것으로, 이런 태도는 전형적인 문화사대주의이다. 게다가 어느 특정 국가나 특정 지역의 문화를 기준으로 삼아 다른 나라의 문화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것은 문화상대주의에 입각한 타 문화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태도이며,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비판받아야 마땅한 것이다. 입장 바꿔서 만약 그들이 자신들의 식문화가 타 문화의 가치관에 의해 조롱 받거나 먹지 말라는 요구를 받는다면 그들은 고분고분 따를 것 같은가?
심지어 한 술 더 떠서 개고기 금지론자들 중에는 "글로벌 시대에는 외국과 친하게 지내야 하는데, 서구 국가에 예의를 갖추는 차원에서라도 그들이 싫어하는 개고기 섭취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10][11] 그런데 그런 논리라면 예를 들어, 만약 종교적 이유로 소를 신성시하는 인도 국민들이 "한국 국민들은 신성한 소를 먹는 야만적인 행동을 중지하라"고 요구한다면, 뭐라고 답할 것인가? 분명히 인도 국민들과도 친하게 지내야 할텐데 말이다. 아마 개고기 금지론자들도 십중팔구는 "소는 너희에게나 신성하지, 우리에게는 신성하지 않다.", "다른 나라 국민들에게 무얼 먹지말라고 할 권한은 없다."고 하지 않을까?[12]
참고로 우리나라의 개고기 식문화를 비난했던 프랑스의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에 대해 대철학자이자 대문학가인 움베르토 에코는 "무식한 소리하고 있다"고 일갈한 바 있다. 그리고 진중권은 "서구에서도 교양있는 사람들은 브리지트 바르도와 같은 얘기를 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는 "유럽인들이 한국인들에게 개고기를 먹지 말라고 할 권리는 없다"고 논평한 바 있다.'''# 이처럼 모든 서구인들이, 혹은 모든 외국인들이 다른 나라의 식문화에 대해 자신들의 문화 기준으로 비난하는 건 아니다. 실제로 외국인들과 만나 대화해보면 한국의 개고기 문화에 대해 "그건 한국의 문화일 뿐, '옳다, 그르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개고기 금지론자들 중 상당수는 "과거처럼 먹을 것이 부족했던 때라면 몰라도, 지금은 다른 먹을 것도 많은데 왜 개고기를 먹어야 하냐?"고 주장한다.(정말 흔히 볼 수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런 논리면 "다른 먹을 것도 많은데 왜 꼭 소를 먹어야 하나?", "다른 먹을 것도 많은데 왜 꼭 생선을 먹어야 하냐?" 등의 반문도 가능하다.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맛있어서 개고기를 먹는 사람에게 "다른 먹을 것도 많은데 왜 개고기를 먹냐"고 따지면 그 사람은 황당할 것이다.
개고기 금지론자들 중 상당수는 "개고기를 먹지 않음으로써, 인간에게 잡아 먹히는 동물을 하나라도 줄여가자는 것이 뭐 그리 잘못됐냐?"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인간에게 잡아 먹히는 동물을 하나라도 줄여가자는 전제 자체에는 동의하는 사람이더라도, 왜 그 방법이 꼭 개고기 섭취 금지여야 하냐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나는 닭고기를 먹지 않음으로써 인간에게 잡아 먹히는 동물을 줄여갈 생각이다."라는 사람이 있다면 개고기 금지론자들은 그에게 뭐라고 할 것인가? "닭은 먹어도 좋으니, 제발 개를 안 먹는 방법을 택하라"고 강요라도 할 것인가? 또한 만약 어떤 사람이 "나는 소를 먹지 않음으로써 인간에게 잡아 먹히는 동물을 줄여가고자 한다."고 말하며 "당신도 소를 먹지 않는데 동참하라"고 강요한다면 개고기 금지론자들은 뭐라고 답할 것인가?
한편 개고기 금지론자들은 "소, 돼지. 닭은 맛있게 먹으면서 왜 개한테만 그러냐?"는 얘기를 하도 듣다보니, 아예 작정하고 소, 돼지, 닭을 일절 먹지 않고서 "우리는 소, 돼지, 닭 어느 것도 먹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 우리에게 소, 돼지, 닭을 들이 밀며 반박하지 말라"는 발언을 하기도 한다.[13][14] 하지만 그들은 다음의 두 가지를 간과하고 있다.
'''첫째''', 소, 돼지, 닭만이 동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이 맛있게 먹을지도 모르는 각종 생선, 오징어, 문어, 낙지, , 가재, 새우, 해삼, 조개, 전복 등도 모두 동물이다. 사실 도살 과정의 잔인성으로 따지면 수생동물의 도살과정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그나마 소, 돼지 등은 도살 규정이라도 있어서, 도살시 고통을 줄이고자 노력이라도 하지만, 수생동물에게는 그런 규정도 없다. 반면 몇몇 다른 나라에서는 수생동물 도살시에도 고통을 최소화해야 하는 규정이 있다.## 생선은 손질 과정에서 참수당하고, 배가 갈린다. 문어와 게는 산 채로 펄펄 끓는 찜통에 들어간다. 심지어 살아있는 채로 회떠지기까지 한다. 새우는 산 채로 소금 뒤집어쓰고 프라이팬에 올려진다. 낙지는 온 몸이 토막내어진다. '''그들이 진정 동물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단체라면, 그들의 주장에 일관성이 있다면 수산시장 앞에서 먼저 시위해야 하는 것 아닌가?'''[15] 하지만 동물보호단체들이 성남 모란시장 앞에서 개고기 반대시위하는 건 자주 볼 수 있지만 그들이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시위했다는 기사는 난 적이 없다. 그러니 동물보호단체에 대해 "자기 눈에 귀엽고, 예쁜 동물만 동물인 동물차별단체일 뿐이다", "실상은 개보호단체, 고양이보호단체, 또는 포유류보호단체일 뿐" 등의 비아냥이 나오는 것이다.
'''둘째''', 설령 그들이 소, 돼지, 닭 뿐만 아니라 어떤 동물도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라고 하여도, 타인의 식생활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강요할 권한은 어디에도 없다. 개를 먹고 싶지 않으면 자기만 안 먹으면 되는 것이다. 그들 자신들이 채식주의자라는 것은 단지 그들의 선택일 뿐, 그들에게 어떠한 특권도 부여해주지 않는다. 또한 식물은 생물로 분류되어지기에 다른 생물을 먹으며 생명을 유지하는 인간인이상 그 누구도 해당 문제로부터 자유로울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만약 으로써 개고기 섭취를 금지한다면, 이는 위헌소지가 다분히 있고, 결국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법률로써 제한하려면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 등을 위하여 꼭 필요한 경우여야 하며, 제한하더라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대한민국 헌법 제37조 2항)는 까다로운 헌법적 조건이 있다. 따라서 현재 동물보호단체가 주장하는 정도의 논리로는 설령 개고기 금지 법률이 제정되더더라도 위헌 시비를 벗어나긴 힘들 것이고, 결국 위헌이 나올 것이다.
개가 인간에게 기여하기 때문에 이들을 먹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그렇게 보면 인류 역사에서 어떻게 보면 개보다 더 큰 기여를 해온 소와 말은 완전히 무시 당하는 상황이 된다. 보통 태어나면 죽을 때까지 이용 당하기만 하고 늙으면 고기 신세로 전락하는 이들에게 더 집중 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은 기계의 효율이 더 좋아서 고기를 얻기 위해서 길러지는 것이 거의 전부이지만, 과거부터 지금까지 인류에게 기여해 왔다는 개고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생각해보면, 같은 논리로 소고기와 말고기를 반대하지 않는 것은 인류의 과거사를 무시하는 꼴이 될 것이다.
애초에 특정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주관적 가치관에 따라 다른 사람이나 다른 집단에 대해 '어떤 동물은 먹어도 되고, 어떤 동물은 먹지 말라'고 강요한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식문화는 해당 지역의 자연적 특성과 문화적 특성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소를, 누군가는 벌레조차도 친근하게 여기는 등 저마다가 주관적인 기준을 가졌는데, 누가 무슨 권리로 특정 동물은 먹어도 되고, 다른 동물은 먹어선 안 된다고 타인에게 강요할 수 있을까?
개고기 금지론자들 중 상당수는 '개는 인간과의 교감 능력이 높고, 충성심이 강하므로 다른 동물에 비해 특별 대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이는 인간과의 교감과 인간에의 충성심을 기준으로 생명의 가치에 경중을 판단하는 인간중심주의적 발상이다. 그러한 주장대로라면 '고양이는 주인에게 충성스럽지 않은 동물이니 도축해서 먹어도 될 동물이다'는 얘기도 가능하게 되는데, 그들은 또 거기에는 반대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일 것이 자명하다.
그리고 교감 능력으로 식용 유무를 판단하자는 주장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남긴다.
  • 인간과의 교감 능력을 식용 가능 여부를 정하는 기준으로 사용하는게 합당한가? 왜곡된 인간중심주의의 발로는 아닌가?
  • 교감능력의 정도는 어떻게 계량화 할 것인가? 계량화가 불가능하다면, 결국 인간 개개인의 느낌과 직감이 유일한 측정도구라는 것인데, 개에 대한 개개인의 느낌과 직감은 다르다. 그렇다면 어떤 개인이나 집단의 느낌과 직감을 측정도구로 정하는 것이 옳은가? 그것의 근거는 무엇이며, 애초에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느낌과 직감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있는가?
  • 설령 교감 능력의 정도를 어떻게든 계량화 했다고 치더라도 그 후엔 "얼마만큼의 교감능력이 있어야 식용불가능하다고 인정할만한가?"라는 문제점이 남아있다. 만약 교감 능력의 정도를 척도로서 사용한다면, 얼마나 교감능력이 좋아야 식용이 불가능한지 보편적이고 통상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는게 가능한가? 개를 식용금지 시켜야 할 만큼 개의 교감능력이 높다고 느끼지는 못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식용 금지시킬 정도의 교감능력이라고 느낀다는게 개고기를 식용 금지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는가? 만약 더 민감한 사람의 느낌과 직감을 판단기준으로 사용한다면, 가장 민감한 채식주의자의 기준을 채용하여 모든 고기 섭취를 금지시켜야 한다. 이것이 옳은가?
  • 교감능력은 개체에 따라 다른데 그렇다면 교감능력이 떨어지는 개는 먹어도 좋다는 것인가? 똑같은 논리로, 정신이상으로 교감능력이 떨어지는 인간은 식용 가능한가?
이처럼 교감능력 운운하는 주장은 사실 굉장히 인간 본위적인 이야기다. 게다가 충성심의 경우엔, 솔직하게 표현하면, "이 생물체는 우리한테 잘보이려고 아양을 잘 떠니까 먹지말자."라는건데 이게 도덕적으로 들리는가?
개고기 금지론자들 중 상당수는 는 지능이 높으므로 먹어선 안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그런데 개만 지능이 높은 건 아니다. 가령 과학자들에 의하면 문어는 지능이 매우 높은 동물이라고 한다. 그러면 문어도 먹어선 안되는가? 그리고 근본적으로 지능의 높고 낮음이 생명 가치의 높고 낮음까지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한낱 미물에 불과한 하등동물이라도 생명 가치까지 미개한 것은 아니다는 주장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극단적인 예이지만 만약 지능의 높고 낮음을 기준으로 먹어도 되는지 안 되는지를 결정한다면, '''지능이 여타 동물들보다 떨어지는 사람이 있을 경우, 그 사람은 식용으로 취급하여도 정당한가?''' 보편적인 상식과 도덕을 가진 이들 중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편 지능이 높고 인간과의 교감이 가능한 것은 , 돼지, , , 오리, 거위 등도 마찬가지다.[16] 특히 돼지는 개보다 더 영리하다. 애완동물로 돼지를 기르는 사람과 그의 애완돼지 사이에는 감정 교류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17]
승마 경기에 출전하는 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말도 지능이 매우 높으며, 인간과의 교감능력도 매우 뛰어나다. 그러면 말고기도 금지해야 하는가? 몇몇 국가에서는 원숭이도 먹는데, 원숭이는 개보다 지적능력과 교감능력이 훨씬 뛰어나다.[18]
소 역시 덩치 때문에 애완동물로 적합하지 않아 잘 드러나지 않는 것 뿐이지, 인간과의 교감은 개 이상으로도 가능하다. 경북 상주시의 의로운 소 누렁이와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 등의 사례가 이를 방증한다. 농부 출신 만화가인 아라카와 히로무는 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소는 겉보기에 둔하게 생겼지만 사실 머리가 좋은 동물입니다. 오래 키우다 보면 간단한 말쯤은 알아듣기도 하고, 목장에서 돌아왔는데도 도무지 축사로 안 들어가려고 하기에…… 소가 어디로 가나 따라가 봤더니, 산 속에서 다른 어미 소가 출산으로 꼼짝을 못하고 있더라…… 그런 일도 있을 만큼 동료애 또한 지극합니다. ……(중략) 머리가 좋다는 것은 다시 말해 팔려가서 고기가 되는 것도 다 이해한다는 이야기, 심지어는 가축 운반차에 실려가면서…… 우는 녀석들까지 가끔 있답니다!!"

-아라카와 히로무, 백성귀족에서

위의 말이 틀리지 않은 것이 식용으로 키우는 소들도 같은 우리 안에 있던 소 중 한 놈이 안 보이면 남은 녀석들이 눈치를 채고서 오랜 시간 끼니를 거르는 일이 있다. 그 만큼 소는 영리하다.[19]
타인이 기르는 개를 훔쳐서 개고기 시장에 팔거나 먹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개고기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물론 간혹 그런 사례도 있고 부도덕한 경우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고기를 금지해야 한다면 타인이 기르는 돼지를 훔쳐서 돼지고기 시장에 팔거나 먹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돼지고기를 금지시켜야 할 것인가? 과거 장애인 시설에서 기르던 닭 20마리를 훔친 사건이 있었는데, 이런 사건이 개 이외의 동물에서 절대 없다고 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일부의 범죄가 발견되었다고 해서 이를 전체의 문제로 전가시켜 금지시키고자 한다면, 마찬가지로 닭고기도 금지시켜야 할 것이다.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남의 애완돼지를 먹으려 들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개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역시 대부분 남의 애완견을 먹으려고 하지 않는다. 개고기는 반드시 남이 애지중지 기르는 애완견을 훔쳐야 먹을 수 있는 고기가 아니다. 개 절도 범죄를 개고기 금지의 이유로 드는 것은 전형적인 연쇄반응의 오류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애완동물 유기 문제 및 애완동물이 일으키는 피해 등을 근거로 애완견을 기르는 것 역시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게 된다. 게다가 절도 자체가 이미 범죄인데 이러한 범죄를 저지를 정도의 사람이라면, 개고기 섭취를 불법으로 규정해도 무시하고 개고기를 먹을 것이다. 또한, 그런 이유로 금지된다면 당장 금과 돈이 금지되어도 할 말이 없다.금과 돈은 매년 많은 절도가 일어난다.그렇다면 금과 돈도 금지해야하는가?
또한 일부 개고기 금지론자들은 유기견이 개고기로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며 개고기를 먹는 사람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절도범의 공범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펴기도 하는데, 이는 형법에 대한 어설픈 지식의 발로다. 이 논리대로라면 금 절도가 많이 일어나는 국가에서는 금을 구입하는 것 자체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장물 취득이므로 금 구입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가능하게 된다. 또한 이런 논리대로라면 유기견 문제의 근본원인은 개를 기르는 것에 있다며, 개를 기르는 것을 금지하자는 주장도 가능하게 된다.
개를 먹다 보면 결국 식인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좋게 포장해주면 일종의 관문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대마초 항목에서 나왔듯이 과학적인 실험에 의해 반증된 억측이며, 개고기 금지론자들이 이런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하는 것은 스스로의 주장을 약화시킬 뿐이다. 식인은 인간의 존엄성을 극도로 훼손하여 공동체의 존속을 위협하는, 인류 보편적 도덕률을 어기는 터부이기 때문에 금지되는 것이므로 절대로 짐승인 개를 먹는 것에 비교할 일이 될 수 없다.
인육 섭취가 금지되는 것은 결국 같은 종에 속하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반면 개와 인간의 생물학적 거리는 상당히 멀다. 생물 분류 단계인 '목', '과', '속', '종' 이 네 가지에서 인간과 다르며 목보다 반 단계 위의 세부 분류인 상목까지도 다르다.[20] 생물학적으로 영장상목으로 분류되어 로라시아상목인 개와 비교했을 때, 인간과 더 가까운 동물인 토끼는 아무런 저항 없이 식용으로 쓰이며, 마찬가지인 또한 실험동물로 잘만 쓰인다. 만약 개를 먹는 것이 사람을 먹는 것의 시작이라면, 소건, 돼지건, 오리건, 말이건, 양이건 간에 고기를 먹는 것이 개를 먹는 것의 시작이고, 달걀이나 우유 같은 동물성 음식을 먹는 것 역시 고기를 먹는 것의 시작이며, 그 다음은 식물 섭취가 나올 차례다. 이 막장 논리를 개에서만 끊어야 할 이유는 없다. 즉 이런 논리대로라면 어떤 생물의 섭취도 식인으로 연결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논리가 진행되면 결국 '섭생 자체를 하지 마라.'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 물만 먹다가 그냥 굶어 죽으라는 이야기. 그런데 물 안에도 우리 눈에 안 보여서 그렇지 엄청난 수의 미생물이 산다.
한 마리의 개에서 얻을 수 있는 고기의 양을 들어 개는 식용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물론 소와 돼지의 경우 도축 시 얻을 수 있는 고기의 양은 매우 많지만, 영양적 관점에서는 상당히 비효율적이다. 소고기나 돼지고기로 얻을 수 있는 열량은 그 고기를 얻기 위해 투입되는 사료에 비해 턱없이 낮다.[21] 그럼에도 소, 돼지 축산업이 쇠퇴하지 않는 것은 단순한 열량 외에도 단백질과 지방의 조화에서 얻을 수 있는 풍미, 곡물과는 다른 종류의 식감 등 차별화된 가치를 고기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개고기도 비록 얻을 수 있는 양은 적지만, 그 독특한 풍미를 위해 개고기를 소비한다는 논리가 취향의 영역에서 충분히 성립할 수 있다. 사실 투입 자원 대비 가장 많은 양의 단백질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곤충이다. 효율성을 따지고자 한다면 어떤 포유동물도 먹지 말고 오로지 메뚜기밀웜만 먹어야 할 것이다.
개고기 금지론자들 중에는 '개는 식용을 위한 품질 개량을 한 적이 없으니, 먹어서는 안 된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치기도 하는데, 이는 '식용을 위해서 품질 개량을 한 생물만을 먹어야 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일 뿐이다. 왜 굳이 개량한 생물만을 먹어야 하는가? 개량된 생물은 먹혀 마땅한 존재고, 개량되지 않은 생물은 존중받아야 할 존재인가? 우리는 개량되지 않은 자연산 광어를 먹어서는 안 되고, 개량된 양식 광어만을 먹어야 하는가? 심지어 원양에서 잡아오는 참치 같은 경우에는 품질개량이라는 것이 가능할 턱이 없다.
개고기 금지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개고기 혐오자들을 개빠로 몰아가며 린치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개고기를 혐오하거나 안 먹는 건 개인의 자유일 뿐이므로, 그런 사람을 개빠로 몰아가지 않는다. 개빠로 욕먹는 경우는 십중팔구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이나 최여진의 모친처럼 타인의 개고기 섭취에 대해 악의적으로 간섭하거나 먹지말라고 강요하며 비하하는 경우인데, 이런 무개념한 개빠짓은 단순한 개고기 혐오자들도 까는 경우가 많다.
개고기 금지론자들은 간혹 개고기를 고래고기와 비교하기도 하는데, 고래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고 고래잡이를 금지하는 이유는 '''멸종위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가 멸종위기 종인가?'''
어떤 생물을 '인(사람)' 또는 인에 준하는 존재로 다룰지, 아니면 '인간 외 생물'로 다룰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각자의 감수성과 같은 개별적이고 파편화되어 있는 태도가 아니라, 그 생물을 사람에 준해서 다뤄야 할 정도의 객관적인 징표, 특히 서로 간의 의사소통을 가능케 할 명확한 언어체계, 상호교섭을 가능케 하고 또 이행을 기대할 수 있는 정도의 사회성 및 지적능력 등이 있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이 관점에 의할 때 개는 '인(사람)'이 아니며, 사람에 준하여 다룰 정도의 객관적 징표들을 갖추고 있는 것 또한 아니다. 적어도 현재까지 개와의 의사소통은 지극히 제한적인 범위에서만 이루어지고 있고, 그마저도 서로의 행동을 이해하는 정도의 친밀성이 있을 때에만 가능하며[22], 개들이 인간과 대등한 교섭을 요구할 정도의 독자적인 사회를 이루고 운영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 개고기 금지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는 개고기를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사람도 많고 앞으로도 딱히 먹어볼 생각이 없는 사람도 많다. 즉 개고기를 먹고 싶어서, 개고기를 좋아해서 금지론자들의 주장에 반대하는게 아니라 그들 논리의 허점과 이중성을, 특히 그들의 동물차별적 행태를 지적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이다. 쉽게 말해서 개는 개고기 금지론자에게 예뻐보이니 개고기를 반대하고, 돼지와 소는 개고기 금지론자에게 맛있는 고기니 반대하지 않는것이다. 내로남불인셈.
재미있는 점은 '''개사료를 만들 때는 반드시 고기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결국 개고기 금지론자들은 살아있는 생명을 죽여서 자신의 애완동물에게 먹이면서 정작 개는 먹지 말자고 주장하는 이중잣대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개고기 금지론자들 중에 자신이 기르는 개에게 곡물사료만 먹이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데, '''그러면 동물학대다.''' 심지어 인간도 채식만 할경우 영양섭취에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개의 입장에서는 채식주의자인 주인에 의해 강제로 식물성 사료만 먹여진다면 매우 괴로울 것이다. 주인이 채식주의, 반려동물도 채식만? 동물학대 논란 - 18.07.07 파이낸셜뉴스 기사

[1] 그러나 이는 해당 주장을 하는 개빠들의 이중잣대를 지적하면서 펴는 논리이지, 정말 동물 자체를 먹지 말자고 하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2] 실제로 한국이나 중국의 경우 개장수가 밖에 키우는 개를 멋대로 잡아가는 것이 전통처럼 이어져왔다. 한국의경우 최근에는 많이 나아졌으나 아직까지도 개장수가 개를 훔쳐가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개장수가 데려간 개들은 펫샵에 팔려갈 강아지를 낳거나 보신탕집에 보내진다.[3] 물론 일부에서 개고기를 먹는 퍼포먼스등을 하기는 했다.[4] 돼지의 경우, 음식물 쓰레기를 사료로 쓰려면 가열처리를 통한 살균 등 조치를 취한 뒤에 급여하도록 법으로 명시되어 있다.[5] 예: '멸종위기 종', '인육', '의학적 이유로 인한 특정 음식 섭취 제한' 등[6] 찬/반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건데, 찬성론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7] 애완동물이라는 용어에 대해 동물을 장난감으로 보는 것이라는 비판이 가해지자 '반려동물'이라는 대체 용어가 나오게 된 것이다.[8] 이건 암컷 개들에 한해 4살 정도까지 임신이 되기 않으면 자궁 축농증이란 병이 생겨서 좀 필요하긴 하다.[9] 올림픽 같은 국제 대회가 열릴 때마다, 일부 서구 언론에서 한국의 개고기 식문화를 지적하는 경우가 있어서, 특히 국제 대회가 열릴 때면 나오는 단골 주장이다.[10] 실제 2013년에 방송된 EBS의 개고기 토론에서 개고기 금지 주장 측 패널이 한 얘기다.[11] 반박을 하자면 글로벌 시대에는 외국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고 하는데 그건 우리에게만 해당되는가? 앞서 말하는 '''그 외국'''에게도 지금은 글로벌시대이다. 그들이 우리에 예의를 갖추는 차원으로 개고기를 소비하는 것이 아예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면, 우리가 예의를 갖추기 위해 개고기를 금지하는것 또한 말이 되지 않는다. 저 말은 단순한 '''사대주의'''적 행동일 뿐이다. 심지어 우리보다 떨어지는 서양권 국가에게도 우리가 사대를 앞서서 하는 것이다.[12] 위의 동영상에서도 예의 운운하는 주장에 대해 아주 간결하게 반박하는데, 예의라는 것은 쌍방이 서로에게 지켜야 하는 것이지, 한 쪽이 무조건적으로 다른 쪽에게 맞춰주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예의를 지키고자 한다면 개고기를 싫어하는 국가 사람 앞에서 개고기 먹는 것을 삼가는 것으로 족하다. 왜 예의를 지키기 위해 우리의 식습관을 포기해야 하는가? 만약 그것이 예의라고 한다면 우리나라는 개고기보다 먼저 김치부터 금지해야 한다. 김치는 특유의 강한 냄새와 맵고 짠 맛으로 인해 서양인들에게는 거의 외국인에게 김치 먹이기에 가깝다. 그럼 그들에 대한 예의를 지켜 한국에서 김치를 금지해야 하나? 또한 예의 운운하는 논리대로라면 외국인들이 혐오하는 식품인 산낙지나 홍어도 금지해야 할 것이다.[13] 실제 2017년 초복, 모 개고기 반대 단체의 여성 시위자가 개고기 판매 상인에게 했던 말이다.[14] 당연하지만 채식주의자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 유명인이라도 되지 않는 한은 실제로 소고기나 닭고기를 끊었는지 어떤지는 알 수가 없다. 인터넷 댓글 등에서 나온다면 말할 것도 없고.[15] 이건 궤변 같은 게 아니라, 그들이 그렇게 떠받드는 소위 서구 선진국 중 한 곳에서는 이미 새우를 잡을 때 안락사시킨 뒤 유통하도록 하고 있고, 심지어는 통각 신경이 없는 일부 해양생물조차도 고통과 공포를 느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16] 가령 영화로도 만들어진 '워낭소리'에서 보여준 소 주인 할아버지와 소의 이야기를 통해 증명이 가능하다. 또한 도축장이나 우시장에서 소가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소 주인 역시 정든 소와의 이별에 슬퍼서 눈물을 흘린다. 구제역 사태가 발생했을 때 농민들은 키운 가축들을 생매장해야할 때에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기도 했다. 농촌에서 소를 키우는 농민들이 한결같이 하는 얘기가 '자식처럼 키웠다.'는 것이다.[17] 돼지를 애완동물로 기르는 경우는 개에 비해 극히 적다고 반론하기도 하지만, 소수인 것이 존중받지 못할 이유가 돼서는 안 된다. 소수 개체든 다수 개체든 모든 애완동물은 그 자체가 소유주의 삶의 파트너이다. 개체 수의 많고 적음을 기준으로 적은 개체 수의 애완동물이 갖는 가치가 폄훼되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마찬가지로 이 논리로 개고기를 먹는 사람이 적다는 것도 개고기를 금지해야 할 이유가 될 수 없음을 보일 수 있다.[18] 물론 우리나라는 원숭이를 거의 먹지 않고, 따라서 개고기 금지론자들도 원숭이고기에 대해선 아무 생각도 없을 것이므로 원숭이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 뻔하다.[19] 식객 소고기 전쟁에서도 소를 파는 사람이 이를 거론하며 난 그런 꼴 못보니 한 우리의 소를 다 사가라고 말한다.[20] 생물 분류에는 종, 속, 과, 목, 강, 문, 계, 역 의 8가지 단계가 있다. 그리고 아종, 상과, 상목 등으로 보다 더 세밀하게 분류할 수도 있다. 이미 종, 속, 과, 목 모두가 인간과 다르다는 것은 개와 인간은 생물학적 차이가 매우 크다는 뜻, 즉 생물학적 거리가 거의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만큼 멀다는 것을 의미한다.[21] 1파운드의 쇠고기를 얻기 위해서는 16파운드의 곡물이 필요하다.[22] 예를 들어 사람이 '왈왈왈왈'과 같은 어떤 특정한 소리냈을 때 그 소리의 의미를 모든 개들이 똑같이 이해한다든가 하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