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연성

 

1. 개요
2. 문학적 개연성
3. 예시
3.3. 현실을 이야기 할 때의 예
3.4. 그 외의 예
4. 개연성이 깨지는 비교적 흔한 예시들
5. 관련 문서


1. 개요


/ Plausibility[1]
전통적인 논리학에서는, '아마도 그럴 것이다.'라는 추상적인 가능성을 구체화하여 셀 수 있는 경우를 생각하여, 이를 '개연성'이라고 정의하였다. 수학적인 의미에서의 확률(確率), 또는 철학적인 의미에서의 확실성(確實性)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이 말은 문맥에 따라 '확률' 또는 '확실성'으로 해석해도 된다. 핍진성과는 구별된다.
한자가 특이한데, '개'는 뚜껑 개・덮을 개() 자이다. 이 한자는 예전에는 '대개 개()'자와 혼용되어 '대개', '아마도'와 같은 의미로 쓰였다. 따라서 '개연'이란 '아마도 그렇다'라는 의미.

2. 문학적 개연성


문장 속에서 A라는 설정이나 원인이 등장했는데 B라는 행동이나 결과가 나오는가를 따지는 말이다. 이러한 인과관계가 짜임새 있게 서술된 글을 '개연성 있는 글'이라고 한다. 흔히 말도 안 되는 인과관계가 등장하는 플롯을 두고 "개연성이 없다"는 평가를 한다.
작품에서의 개연성은 독자의 시선이 주체가 된다. 작가가 어떻게 상상의 날개를 펼치든 간에, 독자의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이며 독자의 눈에 비추어지지 않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아무리 숨겨진 설정을 미리 준비해놨다 하더라도 독자가 이야기를 보던 도중 이 실마리 자체를 눈치조차 채지 못한다면 개연성이 없다고 평론된다.
따라서 혼동하거나 착각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은데, 기본적으로 '''개연성은 현실성과 전혀 다른 성질을 갖고 있다.''' 역사적 사실이나 뉴스, 다큐를 이야기 할 때도 개연성은 충분히 고려해야 할 요소다. 개연성은 '''설명하는 방법과 인과'''에 더 밀접한 연관이 있다. 현실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그 세계관이 전제하는 설정 안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으며 앞뒤가 맞기 때문에' 납득이 되는 묘사라면 개연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며, 현실적인 이야기를 전달할 때에도 추후에 일어날 일을 설명하기 위해 그 일이 전제될만한 설명을 충실히 묘사해주거나 인과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개연성은 독자와의 약속이며, 암묵적으로 독자들에게 "다음 장면에 이러이러한 장면이 나올 수 있을 겁니다."라며 미리 약속하는 것과도 같다. 장르가 액션물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액션을 보여줘야 하고, 러브스토리라면 끝까지 러브스토리를 보여주어야만 한다. 물론 코믹액션러브스토리 같은 복합 장르라면 그러한 장르를 충실히 그려내야 한다. 사람들은 그런 기분을 구매하러 작품을 관람하기 때문에 개연성은 약속 안에서 독자에게 제공하기로 한 감정을 최대한 제공해야만 한다. 만약 중간의 내용이 부실해 독자들이 감정이입하지 못했다거나, 결말이 사람들이 기대한 방향성이 아니어서 자신이 원하는 감정을 이입하지 못했다면 다음날 평론은 분명 개연성부터 언급하게 될 것이다. 개연성은 작품에 있어서 핵심 주제이며, 반드시 지켜져야 할 약속이다.
지금까지 앞에서 설명한 것을 예시로 다시 정리하자면, 두 경우에는 이렇게 개연성이 적용되는 것이다.
  1. 마물에게 가족을 잃은 복수귀의 경우, 정말 아무 설명도 없는 상황에서 마물들의 편에 섰다면 개연성이 깨진다. 독자들은 상식적으로 복수귀를 보며 마물들에게 복수하는 장면을 떠올리지, 갑자기 마물 편에 빌붙는 장면을 떠올리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개연성을 챙기고 싶다면, 관련한 부연 설명으로서 "복수귀가 너무 감정적이고 무모하여 실패할 확률이 높다", "마물은 그런 사람들을 제압하고 통제할 만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2]"는 등의 내용을 필수적으로 구비해야 한다. 물론 이런 설명은, 중요한 장면을 보여주기 전에 끝마쳐져 있어야 한다. 장면이 이미 지나간 뒤에 뒤늦게 보여줘봤자, 독자는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 전설의 검으로 죽일 수 있는 마왕과 싸우는 용사가 아무 이유 없이 노송나무 봉을 들고 싸우다 죽었다면 개연성이 깨진다. 그러나 전설의 검을 들 수 없는 적절한 이유[3]를 넣는다면 개연성이 깨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다만, 그 용사는 주인공이 아닌 조연으로 두는 것이 좋을 때가 많다. 주인공이 마왕과 적대하는 용사인데, 무기 하나를 못 들어서 마왕에게 허무하게 죽는다는 장면을 떠올리는 독자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용사가 단순히 조연이었다면, 그 장면을 주인공과 이어붙여서 다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기에[4] 실망이 덜하다. 물론 그렇게 해도 왜 그냥 평범한 검 놔두고 노송나무 봉을 들었는지는 도저히 설명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여기에 또 개연성을 위해 추가 설정을 넣어야만 한다.
개연성은 단순히 작품 내에서의 논리를 따지지 않는다. 작품이 어떻게 보여지는가를 따진다. 앞뒤 이야기가 맞고 나름대로 흥미로울법한 구성으로 가득 차 있지만 재미없는 작품이 존재한다거나, 비현실적인 묘사로 가득 차 있지만 재미있는 작품이 존재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는 독자가 아닌 작가의 입장에서 따진 경우고, 후자는 독자들의 시선에서의 논리를 따진 경우라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작가가 창작을 할 때 개연성을 너무 공들여 신경 쓸 필요없이 독자의 눈에 최대한 자연스럽게 논리를 맞추면 되겠다. 하지만 큰 줄기에서까지 개연성의 법칙을 간과한다면 깊이를 내기 힘들어 독자들에게 혼란이 오고 이입이 되지 않기 때문에 작가 스스로 만들어 둔 큰 줄기상의 개연성이 무엇인지 신경쓸 필요는 있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앞뒤가 다소 맞지 않지 않다 하더라도 그것이 스토리텔링 기법에 전제하여 논리의 중요성을 감추면 작품의 질에 많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흔히 클리셰라 부르는 것들은 이러한 기법이 수도 없이 노출된 것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다만 너무 남발하면 진부함만큼은 감추기 힘들 것이다. 이 때문에 각종 창작물에서는 '''비현실적인''' 일들이 많이 나오지만, 작가의 설명과 독자들의 이입을 방해하지 않는 '''개연성'''이 충분하다면, 기본적으로 독자들이 수긍을 한다.
창작자의 입장에서 고증을 열심히 고려하면서 창작하다 보면 분명히 창작에 도움이 된다. 스토리가 그만큼 풍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개연성'이라는 말을 '그럴 듯하다, 있을 법하다'라고 핍진성과 유사한 것으로 풀이하면 고증 반영이 섬세할수록 현실성과 개연성이 크게 증가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고증 반영이 작품의 질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작품의 부피를 너무 늘리지 않는 선 안에서만 그리한다. 다시 말해 스토리 라인에서의 고증 반영은 스토리 라인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만 한해서 작품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뜻. 충분한 개연성을 담보할 수 있으면 고증 반영이 없어도 작품의 질은 우수할 수 있다. 반대로 스토리 라인에 직접 영향이 없음에도 고증 반영에만 집착하거나 고증 반영이 오히려 스토리의 개연성을 저해하면 고증이 잘 반영되었다고 해서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게임이나 소설, 애니메이션 등의 스토리를 평가할 때 개연성(떡밥 회수)을 먼저 언급한다. 한국에서는 떡밥#s-2.4을 잘 뿌려서 잘 회수하면 스토리에 대한 평이 좋아지고, 반대로 떡밥을 잘 안 뿌리거나 떡밥을 많이 뿌려놓고 회수를 못하면 평가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사실 이 나무위키 포함 한국 서브컬쳐 팬덤 전반이 떡밥 회수나 복선이 드러나는 것, 개연성이 맞는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강하며 사이다가 유행하게 되면서 이 성향이 더욱 심해졌다. 그래서 창작자가 여러 해석을 열어두기 위해서 은유나 상징으로 한 연출이나 문장을 보고 "떡밥이네" 하고 단정지어서 생각했다가 나중에 구체적인 설명이 안 나오면 "떡밥 회수를 안 했다." 라고 항의하는 경우도 많이 보인다. 애초에 떡밥이 아닌데 떡밥이라고 하고 과도한 기대를 품거나 작위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으므로 100% 신뢰하지 않을 필요가 있다. 재미가 있다면 개연성 좀 없어도 상관없지만 너무 없애면 겉만 진지한 개그 스토리가 되는 경우도 많고, 창작물을 더욱 즐기기 위해 개연성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때 그때의 연출과 전개가 아무리 뛰어나도 그것을 무시하고 작중에 표현된 바가 개연성과 어긋난다는 이유로 작품을 비난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렇게 개연성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다른 요소를 아예 무시하는 자세는 결코 좋지 않다. 그러한 그릇된 설정덕후[5]는 선술했듯이 개연성을 중요시하는 이 위키에도 수없이 존재해 떡밥#s-2.4 회수 안한, 복선을 밝히지 않은, 또는 개연성이 맞지 않는 작품 = 졸작으로 판정할 정도로 떡밥, 복선, 개연성 지상론에 빠진 문서가 많으며, 오히려 작품성은 좋은데 개연성 오류가 일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가루가 되도록 까이는 창작물들이 수없이 존재한다. 이 위키에서도 자주 보이는 표현이지만 얕은 지식과 작품의 몰이해로 별다른 설득력 있는 설명없이 툭하고 설정오류, 즉 개연성 오류를 설정 오류라고 잘못 알고 작성하고 가버리고 가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설정에 무리가 있는 부분이 자주 생겨 독자들이 개연성(혹은 설정) 오류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소한 부분 가지고도 오류라고 물고 늘어나는 '''오용·남용'''의 경우가 생긴다.
넷상엔 작품이 전개되는 중에 예상할 수 없었던 전개가 나오면 그때그때 개연성이 떨어진다, 개연성이 없는 쓰레기다라며 성토를 하는 독자들이 많다. 이런 태도는 지양하는 것이 올바른 작품 감상법이다. 개연성이란 것은 작품 전체를 놓고 판단할 문제기 때문이다. 추리하길 좋아하는 복선덕후, 설정덕후들이야 사전에 설명이 무조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사후 설명만으로도 작품의 개연성은 충분히 챙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용사를 보필하던 충신이 용사가 마왕을 쓰러뜨리고 난 후 본색을 드러내 새로운 마왕이 되고자 한다는 줄거리의 작품이 있다고 하자. 용사가 마왕을 쓰러뜨리기 전에 복선이나 설정을 깔아놓지 않더라도 이 충신이 왜 용사를 도왔는지, 이제까지 자신의 정체를 꽁꽁 숨긴 이유가 무엇인지, 어떻게 숨겼는지 등 설명을 차후에 충분히 하면 개연성을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배신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할 독자들에게 사후 설명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작품의 완결성 내에서 설명이 제대로 된다면 작품의 개연성은 깨지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순차적으로 서술이 되어있지 않다 하여 개연성에 대한 시비를 남발하는 것은 옳지 못한 자세다. 개연성에 대해 진지하게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다면 작품이 완결된 후 논하자. 그 이전에는 지나친 반전으로 몰입도가 떨어진다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 점은 선제작 후설정도 마찬가지이다. 선제작 후설정도 작품의 완결성 내에서 사후 설명을 충분하게 하면 된다. 선제작 후설정은 일단 컨텐츠를 만든 이후에 세부적인 사연이나 이야기를 더하는 행동으로, 문예에서는 스토리를 전개하고 넓히기 위해 개연성과 핍진성을 주는 행위인데, 이것도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예상할 수 없었던 전개 만큼이나 호불호가 크게 갈려 떡밥 미회수와 더불어 '창작자로서 해서는 안되는 것들 중 하나'라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있다.
독자, 시청자, 관객처럼 작품을 보고 즐기는 사람들은 작품을 보면서 추론, 공감한다. 사람들은 작품을 볼 때 '''이야, 내가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이런걸 이렇게 해볼 텐데. 어? 내 생각이 그대로 나오네. 공감되네''' 혹은 '''이야, 어떻게 이런 방식으로 일이 진행이 되지? 놀랍고, 갑작스럽긴 해도 설명이 딱딱 들어맞잖아? 난 왜 이런 추론을 하지 못한 거지? 재밌다!!'''라는 생각을 곧 잘 한다. 그러한 마음을 속 시원하게 잘 긁어주면 개연성이 높은 작품, 그러한 마음을 '''작품이 방해하면''' 개연성이 망한 작품이 되는 것이다. 물론 방해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라 개연성이 있어도 정말로 중요한 정보를 보는 이가 눈치채지 못할 만큼 편집과 구성이 엉망이라면 개연성이 있어도 망한 작품이 되기 좋지만 말이다.
'내러티브(narrative)'[6]의 주된 정의에 부합하기 위해서라도 개연성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주된 요소 중에 하나인데, 이런 개연성을 효과적으로 확립시키기 위해선 복선이 중요하다. "술 마시고 운전하다가 결국 일을 내버렸다."라는 전개를 예로 들자면, "술 마시고 운전하다가"라는 행동들이 훗날 일을 내는 복선으로 작용되어 결국 일을 내고야 마는 것이고, 이를 통해 이 전개의 개연성은 확립이 되는 것이다.
스토리 작가들 스스로도 구멍난 걸 알지만 다음 스토리 진행의 유연성을 위해 일부러 개연성에 문제가 있도록 만들어 놓고도 놔두기도 한다.
캐릭터들의 성격, 성향에 한정되었을 경우 캐릭터 붕괴, 줄여서 캐붕이라고 부른다. 입체적 인물이라면 의도적으로 제작 사이드에서 성격에 변화를 줄 수도 있지만, 그 개연성이 부족하거나 너무 극단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면 캐붕 취급을 받게 된다.
설정과 개연성은 분명히 다르다. 설정은 세계관을 지배하는 '''법칙'''이다, 현실의 물리법칙같은 것. 개연성은 할 법한 행동을 하지 않거나 할 리 없는 행동을 한다는, 어색함과 위화감 정도의 수준이다. 절대 '''법칙''' 수준까지는 되지 않는다.
소설 뿐만 아니라 만화나 영화를 비롯, 스토리(서사)를 다루는 그 어떤 창작물에서도 개연성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고,[7] 또 보다 높게 평가받는다. 개연성은 곧 논리와 직결되는 것이기에, 그 논리적인 부분의 차이가 차원이 다른 몰입감과 감정이입 등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물론 개연성을 의도적으로 파괴하는 장르도 존재한다. 바로 코미디인데 개연성을 잘 파괴하면 그 부조리함이 사람들에게 희극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개그는 개연성을 파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렇기에 코미디라는 장르 자체가 개연성을 미리부터 파괴한다는 약속이나 다름이 없어서 역설적으로 개연성을 성사시키는 셈이며, 따라서 장르가 코메디가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관객들은 별다른 설명 없이 매우 쉽게 받아들인다. 재미만 있다면 말이다.
또한 호러물도 개연성을 의도적으로 파괴하는 장르이다. 호러는 인간이 알 수 없는 영역을 다루는 본 장르의 특성상 개연성(떡밥 회수)이나 명확한 결말하고는 인연이 없을 수밖에 없는데 호러 작품을 평론할 때 개연성을 비판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개연성이 작품 평가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호러에서만큼은 예외라는 게 전혀 알려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이 위키에서는 호러 장르인 작품을 두고 떡밥 회수를 안 했다고 비판하는 경우도 많은데 떡밥의 회수를 안 하는 것은 호러의 기본적인 작법 중 하나이다. 작품이 끝났는데도 뭔가가 정체가 밝혀지지 않으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찜찜해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찜찜함을 이끌어내는 기법이자 장르가 호러다. 그런데 떡밥 회수를 안 했다고 뭐라고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단, 코미디호러물이 아닌 나머지 장르는 이와는 관계가 없다. 개연성이란 것 자체는 이 문서를 봐도 알겠지만 현대 창작물에서 중요할 수밖에 없는 요소가 맞다. 고등학교 수업만 들어도 고전과 현대 작품을 가르는 기준으로 우연성[8]이 들어가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상술했듯 온갖 세세한 것을 다 떡밥#s-2.4으로 몰아 회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좋은 자세가 아니나, 결국 미회수 떡밥이라면 분명 몰입을 저해하는 요소이므로 단점이 맞다. '미회수 떡밥'을 이용하는 기법은, 미회수 자체가 단점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미회수한 대신 넣은 다른 요소가 미회수로 인한 단점보다 큰 장점을 이끌어내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장점이 단점보다 크냐 작냐는 개인의 취향에 달렸기 때문에, '''유독 한국에서 거부감을 보인다.'''라는 것도 사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세세한 것' 자체도 사실은 독자의 판단 영역에 있다.
장르에 대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애초에 장르를 정해놓는 것 자체가 호불호를 전제한다. '그런 요소를 가진 장르 자체를 선호하지 않는다.'라는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개연성을 정말로 눈에 띄게 배제하는 일본의 코미디 요소인 '슈르'가 한국인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한국인들의 이해 수준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한국인들에게 그것이 개연성 파괴를 용인할 만큼 웃기지 않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나가지 않는 한 취향의 차이고 문화적 차이일 뿐인 것이다. 그리고 개연성을 의도적으로 파괴하는 장르(코미디, 호러물) 중 코미디 장르는 호러물보다는 비교적 개연성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선술했듯이 코미디 장르를 표방한 작품의 제작자와 독자의 국가가 다르면 유머 코드가 달라 해외 독자 기준으로는 웃기지 않아 코미디라는 장르로 보기에 힘들면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제작자와 독자가 같은 국가 기준으로도 작품이 처음 나올 당시 개연성을 희생해 웃기는 장면이 나올 때에는 장르가 코미디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그냥 지나갔지만, 시간이 지나 패러디가 제 구실을 못하자 자연히 그에 묻혔던 스토리의 단점들이 지적되면서 떡밥#s-2.4을 회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개연성은 커녕 서사를 파괴하고 재구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아방가르드 작품에도 개연성이 없다고 뭐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도 이 분야에 대한 무지에서 발생한다.
반대로 너무 개연성이 딱딱 맞아 들어가면 읽는 독자들 입장에서 약간의 위화감을 느낄 수도 있는데 사실 어느 사건이나 전개에서 온전히 논리적으로만 얘기가 진행되게 만드는 것도 쉽지 않으며, 상기한 대로 개연성이 깨진다고 하더라도 개연성의 척도가 작품의 매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진 않기 때문이다. 특히 작품은 때때로 독자와의 약속을 참신하게 깨트리고, 독자들은 그러한 이야기들을 좋아하니 어떻게 기발하게 개연성을 깨어 아이러니를 선물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그렇다고 개연성을 챙기지 않고 극적인 묘사에만 치중하다 보면 욕을 먹게 되는 건 마찬가지겠지만. 또한 개연성이 없다고 비판을 받았으나 실제 그 작품에 묘사된 것과 비슷한 사건이 현실에서 벌어지면서 재평가받는 경우도 있다.
일부 아마추어 평론가와 언론의 '''오남용''' 탓인지 관련성, 연관성의 동의어로 오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확률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성질'은 가능성(possibility)을 말한다.

3. 예시



다음은 개연성에 대한 몇 가지 예시들이다.

3.1. 데스노트의 예


데스노트의 핵심 요소인 데스노트는 완전히 비현실적인 존재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를 수긍한다. 만일 라이토가 L을 총으로 쏴죽이거나 때려 죽인다면 그 방법 자체는 현실적이겠지만, 개연성이 별로 없기에 이를 수긍하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을 죽이는 노트로부터 이야기가 출발하기 때문에 그 전제를 받아들인 독자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이 비현실적인 전제에 의구심을 품지 않는다.[9] 그러나 라이토는 작중에서 매우 냉철하고 이성적인 사람으로 묘사되기에 비이성적이고 과격한 방식을 동원하는데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품게되고 수긍하지 않는 것이다. 굳이 뒤끝없이 죽일 수 있는 노트가 있는데 총이나 둔기를 쓸 이유가 없는 것. 물론 노트를 쓸 수 없는 긴박한 상황에서 총이나 둔기를 쓴다거나 역으로 총이나 둔기로 죽여버림으로서 자신이 용의선상에서 빠져나가기 위한 간계라면 문제는 없다. 오히려 작중 더 큰 인상을 줄 수 있고, 그런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한 라이토의 심경 변화나 후회하는 모습을 그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캐릭터의 심경 변화를 약속하는 연출이라 볼 수 있는데, 만약 연출하지 않고 그냥 지나갈 경우 개연성이 깨지게 된다.
이번엔 데스노트에서 데스 만년필 같은 비현실적인 요소가 개연성을 해친다고 가정하자. 작품 특성상 이런 물건이 충분히 있을 법 하다. 그러나 만약 이 물건의 존재로 개연성이 깨지게 된다면 데스 만년필에 대한 설명이 독자들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상황으로 이해해보자. 가령, 류크가 1권에서 라이토 옆에서서 라이토의 정의 집행을 구경하던 도중 갑자기 아무 종이에다 이름을 써서 사람을 죽이고 데스 만년필에 대해 설명을 하고, 도중도중 데스 만년필의 존재가 드문드문 언급이 된 다음 마지막 최후의 장면에서 라이토가 죽기 직전 류크로부터 훔쳐낸 데스 만년필로 땅바닥에 경찰들의 이름을 적어 죽여버린다면 개연성이 깨지는 일이 아니다. "아, 데스 만년필을 갖고 있었구나!" 독자들은 이렇게 생각 할 테니까. 독자에 따라 반전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묘사 하나도 없이 최후의 장면에서 데스 만년필을 꺼내 경찰들을 일벌백계하고 갑자기 라이토가 데스 만년필에 대해 설명한다면? 독자들은 그 설정을 받아들일 수도 없을 뿐더러 터무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런 경우는 편의주의적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 봐야 할 것이다.
역설적인 경우를 생각해 볼 수 도 있다. 만약, 1권에서 류크가 한번 '''데스노트 이외의 사람을 살해할 수 있는 사신의 물건은 없다.'''라고 공언해 둔다면? 이는 작가가 독자들에게 앞 이야기를 위해 미리 던져놓는 정보로 작용이 되어 한번 이렇게 설정되었다면 끝까지 이 설정은 지켜야만 한다. '''스토리 라인에 영향을 미치는 물건이 부정될법한 설정이나 묘사의 존재감이 클수록 개연성도 크게 깨지게 된다.'''
개연성은 늘 앞으로 이어져 나아갈 이야기를 약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설정의 존재감이 작다면, 스쳐지나 갈 정도로 별 의미가 없다면 약속도 그만큼 작은 것이며, 독자들도 잊어버릴 확률이 크기 때문에 개연성은 그렇게 크게 깨지지 않는다. 데스 만년필이란 설정 때문에 독자는 쓸모없는 정보를 얻은 셈이긴 하지만 말이다.

3.2. 도라에몽의 예


온갖 판타지한 일은 다 일어나는 도라에몽에서도 어디로든지 문이나 대나무 헬리콥터처럼 뚱딴지 같고 참 말도 안 되는 물건 같더라도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도구가 나오고 진구와 친구들 얘기가 나오며, 가족과 친구들간의 갈등을 그려내고 어린이를 위한 교훈을 담아준다는 조건만 충족하면 개연성을 해치는 일이 아니다.
그러니 이번엔 현실적인 상황 설정으로 개연성이 깨지는 이야기를 만들어보자. 평소처럼 진구가 사고를 치고, 울며불며 도라에몽에게 달려간다. 도라에몽은 어떤 도구를 꺼내고, 진구는 그 도구로 장난을 친다. 이후 진구가 자신이 친 이 장난으로 인해 골탕을 먹고 돌아온다면 그건 충분히 도라에몽스러운 일일 테니 진구가 장난을 치고 있는 장면부터 끊어서 설명을 해보자.
진구가 도구를 사용하며 장난을 치던 도중 미래의 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만으로 시간경찰에게 잡혀간다. 미래의 판사는 진구 앞에서 도라에몽이 들고 다니는 미래 도구가 법률적으로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를 설명한다. 그러면서 특정 상황에 어떻게 위배되는가를 읊조리면서 진구를 변호하는 미래의 변호사 나루호도 류이치가 나오고, 그리고 진구를 고발한 검사 미츠루기 레이지가 등장해 역전재판보다도 현실적인 재판 상황을 만들어 나아간다고 설정해보자. 이건 전혀 도라에몽스럽지 않다.
물론 이런 팬아트들이나 외전적인 시도는 있을 수 있다. 어른들을 위한 도라에몽이 새롭게 그려지고, 해당 물건을 진지하게 고찰하는 법정 드라마를 그린다면 스핀오프 개념으로 새롭게 탄생시킬 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위의 예시를 이미 아동용임이 약속된 도라에몽이라는 프렌차이즈에선 약속되지 않은 전개다. 따라서 이 작품을 보는 그 누구도 뒷 내용이 법률이야기등 처럼 딱딱하고 무거운 이야기일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는다. 도구 사용으로 인한 오용이 설정중 등장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어린이를 타겟으로 한 가족&친구관계에 촛점을 맞춘 드라마 요소를 뒷받침 해주는 선에서 끝나야 한다. 현실적으로 충분히 있을만한 이야기를 했음에도, 작풍의 분위기를 꾸준히 이어나간다는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개연성이 깨진것이다.
이는 초보들이 설정놀음을 해선 안되는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독자들의 시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섣불리 "독자들이 이 부분을 이해 못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빠져 가볍게 넘어가도 될 법한 설정에 이야기를 달고 늘어트려 버리면서 이야기 스타일과 화법이 바뀌어버리게 되는 실수다. 사람들은 이야기 그 자체가 말하는 주제와 스타일에 관심이 있지 작가들의 치밀한 설정놀음엔 별 관심이 없다. 설명이 안되더라도 이야기 전반에 영향을 크게 미치는 요소가 아니면 설명을 생략해야 한다.

3.3. 현실을 이야기 할 때의 예


현실은 때때로 개연성이라곤 눈큼만치도 없을법한 일들이 곧잘 일어난다. 하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해당 사건의 당사자, 혹은 이야기를 관찰하는 사람 관점에서 느낄 수도 있는 감정이지 보통 특정 사건 자체는 그 사건이 일어날만한 확률을 충분히 충족할 만한 상황은 뒷받침 해주고 있다. 아무리 일어나기 힘들어 보여도, 최소한의 가능성은 충족시킨다는 것.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친다면 번개를 관찰한 사람 시점에선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운 일이겠지만, 이미 하늘에서는 수 시간 전부터 번개 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고, 갑자기 유성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유성을 본 사람에게 있어선 갑작스럽지만 유성 자체가 날아온 시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즉, 캐릭터에게 일어나는 일은 갑작스러워도 독자가 읽을 때 그 일이 개연성이 깨지는 상황으로 받아들이게 하지 않으려면 이런 전지적 시점에서의 관찰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복권을 산 남자의 이야기로 예를 들어보자. 만약 현실에서 A라는 남자가 재미삼아 복권을 하나 산다면 보통 당첨될 확률은 없다고 봐야 한다. 복권은 앞으로 올 현실을 확실하지 못하며, 가능성만 남겨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남자가 당첨이 된다는 현실은 반드시 존재한다.
여기서 이야기를 좀 더 황당무계하게 이어보자. 이 A라는 남자는 원체 소심해서 돈을 어디에 쓸지 고민했고, 한참을 고민한 끝에 결국 집을 사기로 했다. A는 높은 산 위 홀로자란 나무 옆 작고 아담한 집을 원했다. 그런데 A가 처음 이사 간 날 하필이면 날씨가 매우 좋지 않아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했다. 비가 심하게 쏟아지자 A는 이사도중 급하게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려 뛰어가는데 하필이면 남자는 저 멀리서 들리는 번개 소리에 놀라 넘어져 돌부리에 머리가 부딪혀 죽었다고 해보자. 결국 현실성이 매우 낮은 일화가 되겠지만 현실에 존재한다면 충분히 존재하는 이야기가 된다.
이 이야기는 확률 없는 일화를 겪은 남자의 이야기이며,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들을 때 확률성을 주제로 생각할 것이다. 따라서 이 설명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몇가지 단서를 듣고 이 남자가 번개맞아 죽을 것을 기대하며 들을것이다. 날씨도 안좋고, 하필이면 남자가 높은 산 위 홀로자란 나무 옆이란 단서를 들었으니 말이다. 사람들은 여기까지만 듣고도 복권과 더불어 확률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번개를 연상하기 쉽다. 그 반면 비가 오고 있어서 땅이 미끄러웠고, 소심한 남자라는 단서도 있었기 때문에 번개소리에 놀라 넘어져 머리에 돌이 부딪혔다는 결말도 충분히 가능해 사람들은 이 반전을 받아들이기도 어렵지 않다. A 입장에서는 갑작스레 150억 복권에 우연찮게 당첨되었다가, 갑작스레 친 번개에 넘어져 죽어 굉장히 황당무계하다 느끼겠지만, 이 이야기 전체를 보는 전지적 시점에서는 약속된 주제가 있기 때문에 황당한 이야기로 볼 수는 있어도 앞뒤가 안맞는 얘기라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만약 이 일화를 이렇게 요약해보자. "150억을 가진 남자가 번개소리에 놀라 자빠져 죽은 이야기". 몇몇가지 설명이 빠진 상황이다. 하지만 이렇게 짧게 축약한 설명은 전혀 개운하지 않다. 한 남자가 번개소리에 놀라 자빠져 죽은 이야기인데 왜 150억을 가진 남자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지? 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정작 중요한 확률이란 주제도 전혀 전해지지 않는다. 복권이란 정보가 150억이란 정보로 바뀌어 버리니 개연성에 전혀 도움 안되는 정보로 변질된 것이다.
현실 그 자체는 그 형태가 얼마든지 유동적이다. 그러나 최소한 특정 현실의 이야기를 상대에게 전달해야 할 때에는 관심 가져야 할 만한 이유를 화자가 충분히 파악한 뒤에 듣는 상대방에게 들려줘야 하는 주제를 파악하고, 그 주제에 합당한 정보들로 짜 맞춰 이야기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바로 현실성과 개연성의 차이며, 현실의 있는 일을 이야기 할 때에도 개연성을 신경써 줘야 하는 이유라 할 수 있다.

3.4. 그 외의 예


김성모 작품에는 전반적으로 개연성 깨지는 설정들이 별다른 전제설명 없이 도중도중 많이 등장하는 편이다. 사실, 상당히 흔한 사례다. 한국에서 작품을 철저하게 준비하고 큐 사인 들어가는 경우가 좀처럼 없고, 일단 저질러보고 나니까 인기가 있어서 연재가 시작되는 작품들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작가가 이전 설정을 잊어먹거나, 혹은 사건을 좀처럼 해결할 수 없어서 무리하게 전개하면서 생기는 일이다.
또한 작가가 미리 설명했다 하더라도 시간이 너무 오래지나면 개연성 없다고 받아들여지는 일도 종종 있다. 가령 1권에서 나온 설정이 한번의 언급 없이 현실시간 10년후 쯤 4~50권 쯤에 다시 등장하는데, 무척 중요한 요소로 등장했다 치자. 만약 이 작품의 팬덤이 충분하고, 팬들이 1권에 나온 그 설정을 계속 언급했다면 별 상관이 없지만 그리 운이 좋은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에 그 설정을 독자들이 잊어먹고 개연성 없이 받아들이기 좋다. 나중에 가서 1권을 다시 보면 "아, 여기서 나오기는 했구나"이럴 순 있겠지만 말이다.
20세기 소년의 예시
예를 들면 20세기 소년친구의 정체는 가츠마타이다. 그러나 언급된 지가 너무 오래되고 어떤 떡밥도, 복선도 없었기에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고 누군지 잊어버린 사람도 많았다.


4. 개연성이 깨지는 비교적 흔한 예시들


  • 정의감으로 마왕에 맞서던 주인공이 마왕에게 죽을 위기를 맞았는데 갑자기 내리친 번개에 마왕이 맞아 죽고, 주인공은 살아나며 갑툭튀한 번개에 여정 의미를 부여하며 이야기가 끝난다. - 고전적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예로, 주로 반공만화라든지 프로파간다 물에서 자주 등장하는 형식이다. 이런 경우 번개의 포지션은 특정 정치인이나 종교인이 되어 작품 내 정의를 상징하게 된다. 한국에선 김청기의 똘이장군이 대표적인 케이스.
전지전능한 캐릭터나 설정을 함부로 등장시키면 안 되는 이유인데 전지전능이 워낙 초월적인 개념이라 이야기에서 단순히 언급만 됐던 존재가 사실은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개입하고 있었다거나 모든 등장인물이 전지전능의 놀이감에 불과했다는 해석이 가능해져서 개연성에 엄청난 혼란을 주기 때문.
  • 이야기 내내 사람들을 괴롭혀 오던 빌런과, 그 빌런 세력에 심판을 내리던 주인공이 도시의 운명을 걸고 최후의 한판승부를 벌이는데 갑자기 등장한 히로인이 이 싸움에 아무 의미가 없다고 외치면서 빌런과 히어로가 화해하며 작품 내내 말해오던 의미와는 전혀 다른 의미가 스토리에 부여되고 끝이 난다. - 이야기 스스로 보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결말과 전혀 다른 의미와 상황을 부여하며 스토리가 갑자기 끝나는 상황. 초중반과 다르게 후반부에 과하게 의미 부여하려다 이도저도 아닌 결말이 나는 상황이다. 어른의 사정으로 검열 때문에 후반부 상황이 짤려서 이렇게 되어 당대에 평가받지 못한 명작들도 꽤 된다. 물론 아예 대놓고 이런 작품이 없는 건 아니다.[10]
  • 이야기 중반까지 계속 코믹스러운 일만 벌어지다 인물이나 사건의 성질 및 성격이 갑자기 바뀌고 점차 현실적인 시련이 닥치면서 엔딩 종장에선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있다. - 주로 희극성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영화에서 드라마틱하게 전개하려다 만들어지는 상황으로, 중반까지는 말도 안되는 재밌는 상황만 나오다 나중에 갑자기 극 전체의 의미가 전환되는 상황이다. 선생 김봉두인생은 아름다워에서처럼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무엇을 이야기할지 분명하고, 캐릭터성과 배경도 일관되게 연출되면 독자들이 작품과 함께 천천히 걸어가면서 비극을 받아들이며 명작이 될 수 있지만, 영웅 강철남처럼 계속 재미있는 이야기만 계속되다 뜬금없이 캐릭터성이 바뀌며 비극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더 많다. 안좋은 작품들은 이 뜬금없는 순간이 반드시 있다. 현실적인 상황에선 감독이 교체되었다든가 제작진이 교체되었다든가, 배급사의 요청 등을 이유로 이런 경우가 많다.[11]
  •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 두 남녀 주인공. 알고보니 이복 남매였고, 그를 극복하여 사랑을 선택하려 하나 더 자세히 알고보니 서로 배 다른 부모의 원수였다. - 매편 부여되는 의미가 달라지는 막장 드라마가 만드는 상황. 이야기의 중점적인 부분이 계속 바뀌어 매편 궁금하고 자극적이기는 하나, 개연성이 존재할 리 만무하다. 개연성은 주제와도 큰 연관성이 있다.
  • 최종회도 아닌데 주인공의 뜬금없는 하차. 사실 주인공 교체를 의도한 사항인 경우도 있지만, 작품 외적 요인(주인공 배우의 사망이나 건강 악화, 어른의 사정 등)이 개입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다만 이런 경우 아예 조기종영이라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 이 외의 문서들은 설정오류, 캐릭터 붕괴 문서 참고. 사실 개연성 오류 부분이 설정 오류 문서의 예시 문단에 써 있는 경우가 매우 많다.

5. 관련 문서




[1] 논리학에서는 'probability(가능성, 확률)'를 많이 쓰고, 문학이나 영화 분야의 플롯 비평에서는 'plausibility'를 쓴다.[2] 대표적으로 세뇌가 있다.[3] 예시: 전설의 검을 드는데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필요하다. 최강의 검은 순전히 가보로서 내려져왔을 뿐, 능력이 있어 받은 게 아니다.[4] 예시: 그 용사가 죽은 뒤, 어떻게든 주인공은 전설의 검을 회수한다. 그리고 전설의 비밀을 밝혀낸 뒤, 그 마왕과 싸워서 이긴다.[5] 설정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 중 개연성에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6] '서술' 혹은 '서사'로 번역한다.[7] 문학 뿐만 아니라 다른 법학이나 의학 기타 다른 분야에서도 개연성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개연성'은 그 자체로 '논리'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8] 물론 현실도 온갖 이상한 일들이 일어날 정도로 개연성이 없긴 하지만 그것을 얼마나 그럴듯하게 표현하느냐를 기준으로 고전 작품과 현대 작품으로 분류된다.[9] 또한 데스노트라는 물건이 파워 밸런스가 꽤 잘 맞춰져있어서 독자의 흥미를 끌기 좋다. 적인 L에게도 대항할 여지가 충분히 있기에 이를 통해 긴장감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데스노트가 무적이었고, 라이토가 L이고 니아고 간단하게 이겼다면 독자들은 어이가 없어서 읽는 걸 그만뒀을 것이다.[10] 대표적으로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알드노아 제로. 반대로 기동전사 건담 W같은 작품은 작중 히로인의 행동이 일관적이기 때문에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11] 위의 영웅 강철남 외에도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 나는 친구가 적다같은 라이트 노벨이 이런 예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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