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파스(2010년 태풍)
1. 개요
2010년 9월 한국을 내습한 태풍. 보통 강한 위력의 태풍들이 남해안으로 진입하여 상륙하는 반면 이 태풍은 이례적으로 서해안으로 북상, '''수도권'''을 관통하여 지나갔고 큰 피해를 입혔다.
태풍의 이름은 도구 컴퍼스의 일본어 발음을 그대로 쓴 것이다.
수도권 주민들 입장에서는 루사나 매미보다 곤파스가 더 피해가 컸다. 사실 수도권에는 그동안 태풍다운 태풍이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혔던 적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서해를 통해 우리나라로 상륙한 태풍은 곤파스 이전에도 재니스('95), 올가('99), 프라피룬('00), 에위니아('06) 등 여러 개가 있었으나 수도권에 이렇다 할 큰 피해를 준 태풍은 드물었다.[2] 일단 대부분의 태풍이 우리나라 접근 중에 전향하여 북동진하기 때문에 태풍이 서해로 진입하는 일이 많지가 않다. 그래서 대부분 우리나라에 태풍이 상륙할 때는 수도권이 직접 영향권에 들더라도 가항 반원에 들어가기 때문에 피해가 클 수가 없다. 또한 설사 태풍이 서해로 진입해 북상하더라도 서해(황해)는 평균수심이 100 m도 채 안 되는, 주변 바다에 비하면 연못(...) 수준의 수심이기 때문에 열용량이 극히 적어 태풍이 서해로 진입하면 세력이 급속도로 약화된다. 이 때문에 태풍이 수도권에 진입하더라도 상당히 세력이 약화된 채로 지나가는 것이 보통이다. 아예 수도권 근처에서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소멸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곤파스는 이전의 태풍들과는 달랐다. 최성기 당시의 중심기압이나 크기만 보면 3등급 수준[3] 으로 곤파스 자체가 강력한 태풍이라고 보기 힘들었으나 태풍으로서의 스탯을 오직 풍속 에 몰빵해서 비는 거의 오지 않았지만 '''바람은 무지 강했고'''[4] , 이동 속도가 무지 높았기 때문에 '''거의 전성기의 위력을 그대로 보존한 채로 상륙해서 수도권을 총알같이 관통했다.''' 때문에 수도권은 이례적으로 강한 태풍에게 직격탄을 맞게 되었고 처음으로 제대로 된 태풍 피해를 맞게 되었다. 남부지방 주민들에게 곤파스는 별다른 피해도 없었고 존재감도 옅은 태풍이었지만, 수도권 주민들에게는 루사나 매미보다도 더욱 기억에 남는 태풍이었다.
2. 진로
아래쪽의 표는 태풍의 진로를 표로 나타낸 것이다. 강조체는 최전성기 당시의 시각이며, UTC 0를 사용하는 런던 시간대를 기준으로 시각을 표기했다.
2010년 8월 30일 동중국해에서 발생, 오키나와를 휩쓸었으며 9월 2일에 한반도를 관통. 크기는 딱히 위협적이지는 않은 소형 태풍이지만 수년간 태풍다운 태풍이 없던 한반도를 제대로 직격한 태풍으로, 발생 초기엔 그대로 중국으로 가주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이게 남해상에서 변화구 마냥 제대로 커브를 그리면서 한반도 전역, 특히 서울을 비롯한 중부 지방을 그대로 쓸어버리게 되었다. 한반도를 남북으로 나누는 정 가운데, 그러니까 군사분계선 부근을 관통하였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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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태풍의 이동궤적
이동 속도가 시속 40 km 이상으로 굉장히 높다. 그 때문에 당초 9월 2일 정오에 태풍이 상륙할 것으로 기상청은 예측했지만 예측 결과와는 다르게 6시 35분쯤에 강화도 남동쪽 해안에 상륙했다. 그리고 10시 50분 고성 앞바다로 진출하면서 한반도를 완전히 관통했다. 과거 한반도를 직격했던 태풍 중 2002년 태풍 루사나 2003년 태풍 매미때보다는 피해가 적은 편이지만 경로가 경로인데다 하필 한반도에 걸쳐있는 지역이 위험반원쪽에 들어갔던지라 한반도에 끼치는 피해 반경은 훨씬 크다.
3. 기록
4. 참혹한 피해
하필이면 한 주의 한복판인 목요일에 상륙하는 바람에 많은 직장인들과 학생들에게 애로사항이 꽃피게 됐다. 당연히 한반도를 왕래하는 모든 국내/국제 비행기와 선박편은 모두 결항.
서울 기준으로 7시쯤에는 창문이 흔들대고 바람이 쐑쐑 지나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의 거센 강풍과 비바람이 불었다. 옷인지 비닐인지 날려서 전봇대에서 흔들리는 것은 기본, 일부 노후된 간판이나 시설물들이 떨어지는 사고도 빈번했다. 관악구에서는 지름 1 m가 넘는 줄기를 가진 보호수 느티나무가 말 그대로 부러져 나가기도 했다. 창덕궁의 천연기념물인 700년 넘은 소나무도 상당부분 꺾여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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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히어로즈 2군의 훈련장인 강진 베이스볼 파크 실내연습장뿐만 아니라 넥센 히어로즈의 홈구장인 목동야구장의 좌측에 큰 타구가 경인고속도로로 넘어가지 못하게 쳐 놨던 보호 펜스가 무너지면서 예정된 경기가 순연되기도 했다.
낙뢰와 강우로 인해 지하철 운행이 중단되는 사태도 속출했다. 일반열차 운행도 마찬가지. 하행선은 제대로 피봤으며, 안양에서 천안까지 버스만 타고 이동하는 사람까지 나왔다.
- 2010년 9월 2일 7시 30분경 지하철 운행 중단 구간
- 장애 발생 구간
심지어 화성은 수백건의 출동을 나가던 소방서 내의 전기까지 나가버려서 전부 핸드폰으로 통신하는 기이한 상황까지 발생했다. 아마 00:00~11:00까지 출동건수가 약 2~300 건에 달한 것으로 추정. 대부분의 공장들은 휴업했는데, 태풍 소멸 후 출근해보니 자재가 증발하기도 했다. 심한 경우 CCTV가 끊기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평택시 등지의 가로수 수백 그루가 쓰러졌고, 안양에서는 몇몇 가로수가 쓰러지는 건 물론, 신호등이 쓰러지고 몇몇 학교의 펜스가 박살나는 건 물론, 스티로폼 박스가 공중부양하는 기적을 선보였고, 안산 일부는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성남의 경우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성남시 신청사가 피해를 입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광명시에서는 골프연습장이 완전히 무너져 그 주변에 주차되어 있던 차량 4대가 피해를 입었다. 특히 태안군, 서산시 등 충청남도의 서해연안도시 일대는 장시간의 정전을 겪었다. 다른 충남 일원 지역들도 정전사태를 겪었지만 곧 복구됐다. 또한 정전이 일어난 태안, 서산 두 지역의 학교는 상당수 휴교조치되었다.
곤파스가 상륙한 9월 2일 서울/경기 지역의 유치원은 휴원하고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등교가 2시간 늦춰졌다. 그리고 이 날은 하필 201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였는데, 이건 불행인지 다행인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10] 초등학교, 중학교의 경우 점심때 즈음 학생들을 하교시키기도 했다. 전기가 끊겨서 아무것도 할수 없는 학교들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단선 탓인지 서울 내 케이블방송에서 CNN, NHK World Premium, 디스커버리 채널 등의 채널이 잡히지 않았다.[11]
강풍에 넘어진 가로수에 맞거나(길을 가던 시민이 쓰러진 가로수에 맞아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날아오는 기왓장에 맞거나, 감전 등의 이유로 인명피해도 잇따랐다.
기독교계[12] 에서는 태풍이 오기 직전 야심차게 준비한 '바이블 엑스포 2010'이라는 행사를 개막했다. 길이 135 m에 달하는 실물 크기의(물론 실물이 존재하느냐, 그리고 그 실물이 정말 135미터나 되느냐는 차치하고) 방주를 제작하였으며 25만 개의 도자기를 동원해 바벨탑을 쌓는 등 엄청난 공을 들인 행사였다. 그런데 태풍 곤파스가 강타하는 바람에 방주와 바벨탑을 포함해 대부분의 시설물이 파괴되어 총 90억 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그동안 수도권 주민들은 주기적으로 태풍에게 피해를 입는 남부지방에 비해 태풍의 피해를 별로 체감하지 못했지만, 곤파스에게 피해를 입은 이후로 태풍의 위험성에 대해 실감하게 되면서 이후부터는 태풍정보에 보다 귀를 기울이고 대비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오히려 부작용을 낳기도 하는데, 태풍이 올라와서 수도권 지역에 피해를 크게 주지 못하면 '''설레발''' 등으로 취급하며 태풍피해를 평가절하하는 것이다. 2012년의 볼라벤-덴빈-산바, 2018년의 솔릭, 2019년의 링링, 2020년의 바비에서 이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태도는 막심한 피해를 많이 입은 남부지방 주민들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으므로 자제하는게 좋다. 그리고 재난은 피해가 많든 적든 일단 대비하고 보는 게 상식이다. 마냥 가만히 있다가 두들겨 맞고 나서 후회하느니, 과잉대응이라도 미리미리 대처하는 게 훨씬 낫기 때문.(기록상으로는 링링이 수도권 서부 기준 무시할 세력은 절대 아니다. 서울에서는 기록상 링링이 탑이나 체감상으로 곤파스를 더 쎄게 맞은 사람이 많다.)
5. 기타
이 태풍 이후 9월 중순까지 9월 9~12일을 제외하면 한여름수준의 늦더위를 보였다.
추석 즈음과 합쳐져서 엄청난 채소, 과일값 폭등을 불러일으켰다. 추석 직전에는 배추 한포기에 1만원이 넘어갔으며, 추석 이후에는 포기당 1만 5천원까지 올라가 버렸다. 태풍 곤파스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2010년 추석을 전후해서 집중호우가 한바탕 쓸고 지나가면서 또다시 물난리가 나기도 했다.
이후 9년 뒤, 이와 비슷한 형태의 태풍이 등장하고야 만다. 경로는 완전히 딴판이었지만, '''위력과 강풍피해는 곤파스와 볼라벤을 압도하는 태풍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10년 뒤에 바비가 왔지만 바비는 만주로 갔다.
6. 관련 문서
[JTWC] [JMA] [1] 대한민국 한정[2] 사실 올가는 재산피해 역대 '''3위''', 재니스는 '''5위''', 프라피룬은 9위인 만큼 큰 피해가 없었다고 말하기에는 좀 어폐가 있다. 나무위키에 항목이 없는 태풍 재니스는 특이하게도 태풍이 상륙하기 전 중부 지방에 있던 비구름과 맞물려 폭우를 내리게 해 50명의 사상자를 내고 500억이 넘는 피해를 냈다. 정작 태풍이 중부지방에 상륙했을 땐 온대 저기압으로 변질된 상태로 통과해 우려했던 큰 피해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이 태풍은 특히 충청도에 피해를 크게 끼쳤다.[3] 한국에 태풍이 오기 위한 경로 상 4~5등급이였던 태풍이 한국에 열대폭풍~2등급의 세력으로 상륙하는 경우는 여러 번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것. 물론 3등급도 굉장히 강한 위력이다. '''1959년 당시 영남 지방을 황무지로 만들어버린 태풍 사라의 상륙 당시 세력이 3등급이었다. 상륙 직전 남해상에서 4등급으로 발달한 것은 덤이다.'''[4] 어디까지나 규모에 비해서다. 당연히 대한민국의 기존 네임드 태풍들과 비교하면 그리 강한 위력은 아니다.[5] 수도권에서 순간최대풍속 30m/s를 기록한 태풍은 극도로 드문 편으로, 2000년 태풍 프라피룬 강타 이후 '''10년'''만이다.[6] 10분 평균 풍속[7] 9월 1일~2일 누적[8] 그 결과 신도림역을 비롯한 주요 환승역은 헬게이트가 되었고 서울로 가는 도로는 죄다 막혀서 주차장이 되었다. 이렇게 된 경우는 2010년 1월의 폭설 사태 이후 처음이다.[9] 이 역시 사실상 안산선(금정역 이남의 구간)이 전부 당했다고 봐야 한다. 즉 안산에는 지하철이 1나노미터도 못 왔다. 안습. 다만 당고개~창동 구간은 거리가 짧아서인지 같은 지상임에도 중단되지 않았다.[10] 마이맥 강남대성학원에서는 곤파스 때문에 정전이 일어나서 13시까지 복구가 안되는 바람에 시험 시간을 조정해서 치렀다.[11] 단선탓은 아닌 것이 얘네 위성방송이다.[12] 태풍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기독교계에서 존경받는 대표적인 목회자 중 하나였던 옥한흠 목사가 이 날 오전 서울대병원에서 향년 71세의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