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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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의 저명한 원로 배우이자 프로듀서로 20세기를 대표하는 영화배우 중 한 명이다. 젊은 시절부터 188cm의 큰 키와 개성적이고 섹시한 외모, 패션 센스로 유명했고, 현재까지 할리우드 영화를 포함해서 115편이 넘는 영화에 주연 및 조연으로 출연했으며 기사 작위도 받았다.
9할이 상류층 귀족 계급인 영국 연예계에서 연기력과 능력만으로 노동 계급 출신으로 위대한 배우의 자리까지 올라간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 하다.[5] 그러나 정작 본인은 보수주의적인 정치관을 가진 듯.
2. 특징
런던 서민층 특유의 코크니 억양이 특징적이다. 배우 본인이 직접 시연하는 마이클 케인 억양[6] 하지만 오만한 영국 장교역으로 나온 줄루(1964)나 상류계급으로 출연한 최근의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를 보면 귀족적인 발음도 잘 한다. 하지만 후자의 마지막 등장 장면에서는 고상했던 말투를 벗어던지고 코크니 억양으로 You dirty little fucking prick! (스포일러 주의)이라는 사자후를 발함으로써 올드팬들을 감동시켰다.
어시장 짐꾼과 청소부의 아들로 태어난 노동 계급(Working Class) 출신이며, 부계 쪽으로는 아일랜드 혈통을 이어받았다. 마이클 케인 특유의 반쯤 감긴 눈은 어릴 적 눈병을 앓아 얻은 것인데, 무표정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준다는 평을 받고 있다. 외모와 표정 등의 묘한 분위기가 미국의 선배 명배우 로버트 미첨과 닮았다.
영국에서 1944년 교육법으로 제정된 초등학교 졸업생 대상의 중등학교 입학 및 영재발굴의 일환으로 만들어지는 11플러스의 첫 대상자이기도 하며 이 시험에 통과하였다.
3. 활동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영화사의 사환 등으로 일하다가[7] '''6.25 전쟁에 알보병으로 참전한 이력'''으로도 유명하다. 1951년 영국 육군에 징집되여 서독의 이제르론에 주둔하던 중 파병부대에 지원하면 빨리 제대시켜주겠다는 제안에 혹해서 1952년부터 주한영연방군 로열 퓨질리어 연대 소속 사병으로 6.25 전쟁에 참가했다가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인터뷰에 의하면 남양주 근처의 골짜기로 정찰을 나섰다가 얼어붙은 논 위에서 중공군에 포위당해서 4명의 분대원 모두가 전사하거나 포로가 될 위기에 처했는데, 퇴로를 미리 차단하려고 하던 중공군의 허를 찔러 일부러 적진을 향해 전력질주한 덕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고. 이 경험은 훗날 강렬한 트라우마로 남아 그의 인생 전체를 규정하다시피했고, 그런 인연 때문인지 영국에서 만들어진 유일한 6.25 전쟁 관련 영화인 <한국의 언덕>에 출연하면서 자문 역할을 맡기도 했다.
군 복무가 끝난 이후 그는 영국으로 돌아와 배우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고 극단에서 무대감독 보조로 일하기 시작했다. 원래 쓰려고 했던 예명은 '마이클 스코트'였는데, TV 시리즈에 캐스팅 제안을 받고 영국 배우노동조합에 가입하려고 보니 거기에 이미 마이클 스코트란 배우가 등록되어 있었다. 그래서 케인의 에이전트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 30분 안에 이름을 생각해내라고 했다. 당시 그는 런던의 시네마 메카 레스터 광장에 있었는데, 거기서 케인이 아주 좋아하는 배우였던 험프리 보가트가 주연으로 나온, 태평양 전쟁기 미 해군 소해정을 배경으로 한 영화 케인 함의 반란(1954)이 상영되고 있었고 그리하여 '마이클 케인'이라는 이름이 탄생했다.[8]
그가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게 된 것은 역사/전쟁 영화인 줄루(1964)와 세태 코미디 영화인 알피(1966)를 통해서였다.[9] 이후 국제 첩보국[10] 에서 인기를 얻었고, 이탈리안 잡(1969)에서는 코크니 출신의 젊은 범죄자 찰리 크로커, 겟 카터(1971)에서는 런던의 갱스터 잭 카터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 시기에는 공군 대전략(1969)을 위시한 2차대전 영화에도 위관급 장교역으로 종종 출연했고, 이것은 70년대 들어서는 독수리는 내리다(1976)와 머나먼 다리(1977) 등에서의 강인한 영관급 야전 지휘관 역할로 이어졌다. 80년대 들어서는 그의 전성기가 열린다. 1980년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드레스드 투 킬에서 예상을 깬 반전의 역할로 주목받았고, 1983년에는 드라마 리타 길들이기로 골든글러브 최우수 남자배우상과 전미배우조합상을 동시에 받았으며, 마침내 1987년에는 한나와 자매들로 그의 첫번째 오스카상을 받게 되고 2000년에는 사이더 하우스로 그의 두번째 오스카상을 쥐게된다. 그 후로는, 오스틴 파워의 아버지 역,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에서 브루스 웨인의 집사 알프레드 페니워스 역 등의 조연으로 활약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마이클 케인은 크리스토퍼 놀란과 인연이 깊어서, 배트맨 비긴즈(2005) 이래 프레스티지(2006), 인셉션(2010), 인터스텔라(2014), 테넷(2020)을 위시한 거의 모든 놀란 영화에 출연해서 화제가 되었다.[11] 놀란은 인터뷰에서 명배우인 케인을 존경할뿐더러 영화의 성공을 불러오는 '행운의 부적'으로 간주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조연상(1987,2000) 2회 수상,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2회, 영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전미비평가 협회 남우주연상, 전미 배우조합 남우조연상 수상같이 수상 경력도 굵직하여 2000년에는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Knight Bachelor)도 받았다. 다만 1987년에 우디 앨런이 감독한 영화 한나와 자매들에 나와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처음 받을 때 '''졸작 죠스 4'''에 나오느라고 시상식에 나가지 못했다. 그러나 그렇게 찍은 영화가 흥행과 평에서 쫄딱 망한 탓에 사람들은 되려 케인을 안타깝게 여겼고,[12] 2000년에는 라세 할스트롬 감독 영화인 사이더 하우스 룰스로 13년 만에 아카데미상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당연히 시상식에 나가 상을 받았다.
노동 계급 출신으로 별다른 정식 연기 공부 없이[13] 바닥에서 시작해 한 국가의 국민성을 대변하는 위치의 배우로 올라섰다는 점에서 숀 코너리와 흡사하다. 러디어드 키플링 원작의 걸작 모험영화 왕이 되려던 사나이(1975)에서 공연하기도 했던 이 두 사람은 실제로도 막역한 친구 사이다.
저서 <명배우의 연기수업(원제 'Acting in Film: An Actor's Take on Moviemaking')>은 케인의 연기 인생과 연기 노하우, 그리고 배우로서의 행동 지침 등이 세심히 쓰여 있는 책이다. 혹시 영화배우를 꿈꾼다면 <명배우의 연기수업>을 꼭 탐독하는 것도 좋다. 이명세 감독은 "배우를 꿈꾼다면 무조건 읽어라!"라고 할 정도로 강추했던 서적이다.
나우 유 씨 미 2 촬영 이후인 2015년 12월 이후 은퇴를 계획 중이라고 했다. 연기에 임할 때마다 '오스카 상을 수상하거나' 혹은 '돈을 벌거나' 둘 중 하나였다고 하는데 오스카상도 이미 2개나 수상했고 돈도 충분히 벌었기에 더 이상 연기에 욕심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의 비밀 프로젝트에는 자신도 참여할 것이라 밝힌 것을 보면 꼭 그런 것만 같지도 않았는데... 덩케르크(2017)의 초반에 무전기에서 들리는 영국 공군 장교의 목소리로 카메오 출연했고, 이것은 영국 본토 항공전을 다룬 걸작 공군 대전략(1969)에서 케인이 맡았던 역할에 대한 오마주라고 한다.
4. 여담
그만큼 연기 베테랑이라는 것인데, 그의 말에 따르면 스스로 컴퓨터와 같이 대사를 잊은 적이 없다고 한다.
왠지 네이버 검색창에 뜨면 사망설이 뜬다. 아마 "마이클 고프"와 혼동되는 듯하다. 마이클 고프 역시 배트맨에서 알프레드 역을 맡았고 이름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2017년 초 마이클 케인 시한부 설이 보도됐으나 오보로 밝혀졌다. 암이 무서워 몸 관리 삼아 다이어트를 했다는 인터뷰가 암 때문에 살이 쪽 빠진 걸로 오역돼 버렸다. 기사
현재는 다크 나이트의 알프레드 등 젠틀한 역할을 맡는 배우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젊은 시절에는 출세작 알피(1966)의 바람둥이 코크니 청년 역할에서 보듯 섹시한 나쁜 남자의 매력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젠틀한 영국 신사와는 정반대의 순도 100% 잉글랜드 양아치 이미지가 강했고 그에 걸맞는 무시무시한 냉혈한 깡패나 총잡이 역할도 자주 맡았다. 겟 카터(1971)는 바로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그 시절의 포스가 워낙 엄청났던지라[14] 젊은 시절을 기억하는 올드팬들에게는 젊었을 적이라면 알프레드가 빌런 잡고 다녔을 것이라는 드립도 종종 나왔다. 채널 해협 너머 알랭 들롱이나 장 폴 벨몽도랑 유사한 이미지를 어필했던 배우다.
또한 노동 계급 출신으로 다양한 인생 경험을 한 경력 때문에 젊은 시절에는 한 성깔 했으며 이와 관련된 일화도 많다. 본의 아니게 촬영현장에 4시간 지각했는데 상대 배우가 되갚아준다며 다음 날 똑같이 4시간을 지각한 사태가 있자 조용히 찾아가서 '낮잠 잘 수 있어 좋았으니 내일도 그렇게 해달라'며 융통성있게 일처리를 할 줄 아는 지혜도 있었다. 그런데 나름 성질을 부리면서도 자기보다 후배거나 나이가 어리면 절대 화를 내지 않았는데 자기보다 아랫사람에게 화를 내는 것은 매우 부당한 일임은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
노동 계급 출신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보수당 지지자이다. 노동당 정부의 높은 세율 정책때문에 영국을 떠나 미국에서 장기간 거주하였으며 마가렛 대처 정부가 들어서서 감세를 하자마자 바로 영국으로 귀국하였다.
영국식으로 이름을 잘못 발음하면 "My Cocaine'이 된다.[15]
상당히 동안인데 현재 할리우드에서 상당히 나이가 많기로 유명한 모건 프리먼과 잭 니콜슨보다 놀랍게도 4살이 더 많다. 1933년생인 마이클 케인과 비슷한 연령의 한국 배우로는 1934년 11월생인 이순재가 있다. 참고로 이순재가 고등학교 1학년생이던 시기에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영국군 신분이던 마이클 케인은 1952년 주한영연방군 소속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이순재 외 생존인물 중 비슷한 연배의 유명인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 진 해크만(2명 모두 1930년생)[16] 브리짓 바르도(1933년생), 알랭 드롱(1935년생), 우디 앨런(1935년생), 신구(1936년생), 엄앵란(1936년생), 송해(1927년생), 이회창 (1935년생), 전두환 (1931년생), 고은(1933년생) 등이 있다.
오드리 헵번과 함께 있는 모습으로 마이클 케인이 겨우 4살밖에 어리지 않다!
[1] 2016년 7월에 그의 예명을 진짜 이름으로 아는 공항 보안요원들 때문에 겪던 일들을 견디다 못해 결국 본명을 마이클 케인으로 바꿨다고 한다.[2] 전 이름은 모리스 조셉 미클화이트 주니어 (Maurice Joseph Micklewhite Jr.).[3] 인도계 기아나인으로 1967년도 미스 월드 기아나 출신 배우[4] '''6.25 전쟁 참전용사'''.[5] 이러한 예시로는 게리 올드만 등이 있다. 특히나 영국 영화계는 노동계급 출신이 거의 없다. 반대로 영국 음악계의 경우 노동계급이 7할 이상으로 많다.[6] 본인이 지금도 그런 억양을 쓴다는 게 아니라 코미디 프로에서 자신의 억양을 따라하는 개그맨들을 묘사한 것이다. 예시 김영철의 하춘화 모사개그를 하춘화 본인이 패러디하는 것과 비슷한 모양새이다.[7] 이때의 그는 동네를 쏘다니는 껄렁껄렁한 아이들 중 한 명이었다고 한다.[8] 동생이자 같이 배우 생활을 잠깐 같이 했던 스텐리 케인(Stanley Caine)도 형을 따라 성을 바꾸었다. 동생은 2013년에 백혈병으로 사망. 생전에 형과는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고 한다.[9] 다만 줄루에서는 19세기의 영국군 장교역을 했는데 거만하게 오른손이나 뒷짐지고 다니는 손도 못 쓰는 연기자라는 평을 들었다. 나중에 마이클 케인의 회고에 의하면 '''찰스 황태자'''의 거만 떠는 모습을 참조했다고 한다.[10] 1965년 작. 원작명 The Ipcress File. 007 시리즈가 점점 판타지로 직행하는 것에 실망한 초기 제작진들이 뭉쳐서 만들었다. 사실적이면서도 굉장히 독특한 분위기를 가져서 007을 능가하는 60년대 최고 첩보영화로 꼽히기도 한다. 마이클 케인은 주인공 해리 파머를 3편까지 맡았다. 두꺼운 안경을 쓴 범생이같으면서도 은근히 불량함이 넘치는 첩보 요원 역할이다.[11] 후술되지만 덩케르크에서는 목소리로만 출연했다.[12] 그러나 정작 케인 본인은 하나도 신경 쓰지 않는 태도를 보여줬다. 한 인터뷰에서 "'''그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들리는 말로는 끔찍하다더군요. 하지만 (출연료로) '''그 영화가 지어준 집은 아주 멋졌어요.'''"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다른 인터뷰에서도 “일단 위대한 역할들을 찾는다. 위대한 역이 오지 않으면 적당한 역할을 구한다. 적당한 역이 오지 않으면, 집세를 낼 수 있는 역을 구한다”며 작품을 고르는 기준을 밝힌 바 있다.[13] 제임스 매커보이 항목에도 적혀있지만 영국 영화/연극계는 로열 블러드 중심으로 흘러가는 곳으로 유명하다.[14] 사실 나이가 든 지금도 어느 정도 이런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 젊은 깡패들을 쏴죽이고 다니는 퇴역 군인 할아버지로 나오는 해리 브라운이 대표적이다.[15] My Cocaine을 제대로 읽으면 마이클 케인의 억양으로 "마이클 케인"이라고 읽는 것과 발음이 같다. 바로 위에 마이클 케인 억양 영상에서도 본인이 마이 코케인이라 발음한다. 참고로 미국식 발음은 "클"부분이 "ㄲ"에 가깝고 l 발음 부분이 뒤의 케인부분과 구별이 가기 하기 때문에 해당이 되지 않는다.[16] 숀 코너리는 2020년 타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