숀 코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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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코틀랜드 출신의 배우.
'''초대 제임스 본드'''로 유명하며 또한 손꼽히는 미노년 배우이자 멋쟁이 대머리의 대명사이다. 덧붙이자면 미청년→미남→미중년(나이스 미들)→미노년의 황금 테크트리를 완성한 인물.
2. 활동
노동자 집안 출신으로 같은 시기의 대다수 영국인 배우들과는 달리 정식 연기수업을 받지 않았다. 우유 배달부를 시작으로 영국 해군에서 수병으로 복무하는 등 잡다한 직업을 전전하다 미스터 유니버스 중량급에서 3위를 차지한 것을 계기로 연기 인생을 시작한다. 다만 당시 연기는 눈에 띄게 뻣뻣하고 어색해 단역을 전전하며 빈곤한 생활을 보냈다.
그러다 007 제임스 본드역에 캐스팅된 것을 계기로 절치부심한 끝에 명배우로 각성,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의 어색한 당시 연기는 007 캐스팅 직전에 찍은 영화 《지상 최대의 작전》(1962)[1] 에서 볼 수 있는데 007 원작자 이언 플레밍은 이를 보고 고릴라 같다고 혹평했고 다수 평론가도 동의한 바 있다. 그러나 제임스 본드 역으로 연기력이 발전한 후인 64년의 히치콕 영화 《마니》에서는 같은 사람 맞나? 싶을 정도로 안정된 연기를 보여준다.
제임스 본드 역과 함께 주로 액션이 필요한 배역을 많이 맡았지만, 자신의 이미지가 007역에 묻혀간다고 판단, 고심한 끝에 배역을 거절하고 홀로서기에 나섰다. 국적불명의 이탈리아 영화나 C급 괴작 영화에 출연하는 등 어려움도 있었으나 《오리엔트 특급살인》으로 메이저 작품 복귀에 성공, 재기하게 된다.[2]
007 배역 거부 후 찍은 영화 중 가장 유명한 희대의 C급 컬트 SF 영화 《자도즈》(1973)의 예고편. 감독 존 부어만도 엑스칼리버로 칸 영화제 예술공헌상까지 받은 감독이다(...).
연기 도중 얼굴에 입은 부상으로 배우 생명이 위험에 처해 상처를 수염으로 가렸지만, 오히려 이후 그 수염이 그의 상징이 되었다. 넓어져만 가는 이마로 가발을 쓰거나 머리를 심는 등 노력을 계속했던 적도 있지만 결국 대머리 이미지를 밀어붙여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이런 이미지 변신 후 찍은 유명한 작품으로는 《더 록》, 《붉은 10월》,《장미의 이름》이 있다. 1987년 《언터처블》에서 케빈 코스트너를 돕는 노장 경찰 말론 역을 멋지게 소화해서 그 해 아카데미상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일부에선 《언터처블》에서 숀 코너리의 연기는 발연기라 불릴 만하며 오스카 수상 중 최악의 수상이라고 하기도 한다. 영화사 '''최고의 캐릭터 제임스 본드의 영화판 이미지를 구축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종의 공로상으로 받았다는 악평이 그것. 일단 그 당시 많은 평론가들이 공로상으로 간주했던 건 사실이지만 말론 경감은 흔히 말하는 '산전수전 다 겪은 현자' 캐릭터로 코너리의 연기는 '명품 조연'이라는 표현이 정확하게 들어맞을 정도로 일품이었다. 이는 '언터처블'에 대한 평론가들의 몇몇 평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의 연기는 '숀 코너리가 연기하면 숀 코너리가 그 배역이 되는 게 아니라 그 배역이 숀 코너리가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 쉽게 말해서 해당 배역으로 일단 코너리가 출연하면, 다른 배우가 같은 배역을 맡는 걸 상상하는 것조차 어렵다는 뜻. 연기가 일품인 것은 틀림없지만, '''배역이 배우에게 먹혀버린다'''는 것이다. 게다가 은퇴할 때까지 말투에서 스코틀랜드 억양을 완전히 지우지 못했다는[3] 약점도 있었다. 영화 《붉은 10월》에서 그가 맡은 마르코 라미우스 함장과의 싱크로율을 생각하면 그 말이 농담은 아닌 듯하다.
몇몇 평자들은 언터처블 대신 그가 출연한 시드니 루멧 영화들을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
영화 《반지의 제왕》이 한창 준비 작업에 있던 1999년 간달프역을 제의받은 적이 있다. 당시 뉴 라인 시네마는 영화수입의 10~15%를 출연료로 지불하겠다는, 지금 보면 엄청난 제의를 했다. 만약 숀 코너리가 출연에 응했다면 그는 '''4050억원을 받았을 것이다.''' 숀 코너리라 하면 제임스 본드라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그 당시 뉴스의 댓글도 재미있다. 코너리가 간달프를 하면 본드걸처럼 마법사 걸이 나온다든지... 하지만 코너리는 원작 소설도 읽었고 대본도 읽었지만 반지의 제왕 스크립트를 난해하다면서 이해할 수 없다고 했고 뉴질랜드에서 18개월이나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에 불만을 표시하며 거부했다. 그 직후인 2000년에 기사작위(Knight Bachelor)를 받았다.
2003년 《젠틀맨 리그》에 출연했으나 이 과정에서 감독인 스티븐 노링턴과 극심한 마찰을 빚었고 더 이상 연기를 하는 것에 환멸을 느껴 2006년에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스티븐 스필버그로부터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에 헨리 존스 박사 역으로 다시 나와달라는 제의를 받았고 은퇴 번복을 진지하게 고민했으나 스필버그와의 예술관의 차이와 은퇴생활의 즐거움, 그리고 헨리 존스 박사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조연이라는 이유 때문에 결국 포기했다. 이후 2005년 인터뷰에서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 대해서 멍청한 제작자들이 능력있는 배우와 감독들을 질식시키고 있다고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이에 대한 질문이 계속되자 2006년, 조지 클루니, 스티븐 소더버그, 숀 펜 등을 근면하고 창의력있는 인물들이라고 언급하면서 돈 벌 생각밖에 없는 멍청하고 게을러빠진 할리우드 영화 시스템의 희생자들의 예시로 제시했다. 젠틀맨 리그 제작 과정에서 한이 굉장히 많이 쌓인 듯.... 다만 2006년의 은퇴 선언 이후에는 그렇다고 해서 감독들이 자신을 다시 불러내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마피아들의 '거절할 수 없는 제안' 수준의 조건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영화 복귀 가능성은 완전히 끝난 것으로 보이며 2010년 8월 25일 80세 생일에 공식적으로 배우 은퇴를 재확인했다. 실사영화 마지막 연기는 위에서 언급한 젠틀맨 리그다. 2011년, 코너리의 친구인 마이클 케인은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코너리에게 새로운 영화를 제작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가 절대로 안 한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전했다. 더불어 케인은 코너리의 은퇴가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코너리에게 노인 조연 외에는 더 이상 시키려 하지 않아서 코너리가 실망한 것이 코너리의 중대한 은퇴 사유 중 하나라고 전했다. 코너리는 로맨스 연기를 좀 더 하고 싶었었다고...
다만 실사 연기 이후에도 성우 연기는 가끔 하고 있는데 2005년 그의 1963년 출연작이었던 007 위기일발이 게임화되자 제임스 본드 성우로 잠시 복귀했었다. 코너리 자신이 007 영화 중에서 위기일발을 자신이 제일 좋아하며, 손자들이 비디오 게임을 워낙 좋아해서 하기로 했다고. 2012년에는 애니메이션 미스터 빌리: 하일랜드의 수호자(원제: Sir Billi the Vet)의 주인공인 빌리의 성우를 맡기도 했다. 성우도 주인공 역만 맡은 걸 봐서 노인 조연 역할에 지쳤다는 설명이 설득력이 있긴 한 듯하다.
3. 은퇴 이후
은퇴 이후로는 한동안 인터뷰를 제외하고는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였다. 세금 문제 때문에 바하마에서 주로 거주하는 이유가 컸다. 세금문제는 지금도 코너리의 발목을 잡는 이슈인데, 2010년에는 스페인 마르벨라의 카사말리부에서 지방정부의 허락 없이 70여채의 호화 아파트를 건설하고 매각하고, 그 수익을 탈세한 혐의로 스페인 당국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결국 2015년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으나 이미지는 상당히 구겼다.
2013년에 돌연 알츠하이머설에 휩싸였다. 절친이라 불릴 만한 배우 마이클 케인이 인터뷰 도중 '숀이 요즘 기억력 감퇴로 고생한다'라고 언급했다며 독일의 언론 매체가 보도를 때린 것. 마이클 케인은 '(독일 언론 매체와는) 숀의 병세에 대해 다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며 매체가 자신의 발언을 왜곡해서 보도했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2014년에 스코틀랜드 독립 운동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2015년 2월에 건강해 보이는 모습이 미국 마이애미 공항에서 목격되었기에 알츠하이머설은 그냥 루머로 여겨지는 듯하다.
한동안 조용히 지내다가 2014년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때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운동의 열성적인 지지자로 전면에 나서서 독립 찬성 단체인 예스 스코틀랜드(Yes Scotland)[4] 에 기부하는 등 독립에 한표를 던지자고 호소하였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세금 문제 때문에 아내와 함께 바하마에서만 거주하고 있으며 영국에는 1년에 90일 정도도 안 있는다. 이 때문에 스코틀랜드 독립을 지지하고 나서도 스코틀랜드 귀환은 안 해서 구설수에 올랐고 독립 반대론자들은 스코틀랜드가 독립하거들랑 코너리를 끌고 와서 세금 뜯어내면 될 것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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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이러한 성향 때문에 위 사진과 같이 영국 국내의 여러 공식석상에서는 스코틀랜드의 전통복장인 킬트를 입고 참석하는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다. 목에 건 것은 2000년 받은 기사작위(Knight Bachelor) 목걸이.
2017년 9월 27일에 근황을 담은 사진이 공개되었는데 미국의 뉴욕에서 촬영했다. 연세가 있는 만큼 지팡이를 짚으며 산책을 하고 있으며 외신의 보도로는 간병인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한다.
3.1. 사망
2020년 10월 31일, 90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가족의 발표에 따르면 수면 중에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유족들의 인터뷰에 따르면 생전에 치매를 앓았다고 전한다.# 원인으로 심장질환, 폐렴이 겹쳐서 사망했다고 한다.#
4. 기타
소싯적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할 뻔'했던 적이 있었다. 스코틀랜드 아마추어 팀에서 축구를 잠시 했는데, 그 팀이 당시 맷 버스비가 주목하고 있던 팀과 연습 경기를 했다. 그 경기에서 숀 코너리는 월등한 체격과 날카로운 볼 감각으로 버스비 감독의 주목을 받았다. 허나 코너리는 버스비의 입단 제의를 거절했는데, 이미 그때 그의 나이가 23살이었기 때문. 당시 영국 프로축구 선수 급료는 지금과 비교해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고, 평균 선수 활동 기간도 30대 안팎일 정도로 짧았다. 그래서 겨우 7~8년 선수 생활을 하고 노후 걱정을 하느니[5] , 착실하게 배우 인생을 설계해 나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유명한 미국 퀴즈쇼 Jeopardy!에 나온적이 있는데, 거기서 깽판을 치고 호스트인 알렉스 트레벡에게 패드립까지 치면서 Jeopardy 레전드 에피소드가 되었다.... SNL이 이걸 소재로 Celebrity Jeopardy라는 스케치를 만들게 됐다. 코너리를 포함한 3명의 연예인들이 Jeopardy를 하는 내용인데 연예인들이 완전 멍청이로 나온다(숫자가 뭔지 모른다든가... 기본 덧셈 뺄셈도 못한다든가....). 여기서 숀 코너리 역할은 미국의 정성호라 볼 수 있는 성대모사의 신 대럴 해먼드('''Darrell''' Hammond)가 맡았다.[6]
키가 188cm, 당시 사람 중에는 매우 크다.[7] 007 역을 맡은 배우 중 180cm 이하인 사람이 거의 없긴 하지만 티모시 달튼과 함께 최장신. 한 때 보디빌딩을 했던 만큼 어깨도 엄청나게 넓은데, 그래서 수트 핏이 매우 잘 나온다.
MSX로 나온 메탈기어 2 솔리드 스네이크의 빅 보스의 얼굴이 이 사람 얼굴을 기본으로 했다고 한다.(PS2용 MGS 3 섭시스턴스에 부록으로 들어간 버전에서는 얼굴이 MGS 2의 솔리더스 스네이크와 비슷하게 변경되었다. 물론 설정상 빅보스가 오리지널. 초상권 문제일 듯.
2003년 뉴욕을 방문했을 때 8시간 동안 도시를 관람한 다음에 운전사에게 팁으로 5달러를 주었는데 8시간 부려먹고 팁이 5달러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분개한 운전기사 폴 먼로가 고맙지만 됐다고 팁을 거부하였다. 이 일이 기사화되면서 스코틀랜드 타입의 구두쇠라고 구설수에 올라 이미지를 구겼다.
한국어로 더빙할 때는 유강진 성우가 전담. 심지어는 케빈 코스트너판 《로빈후드》에서 카메오로 등장[8] 할 때도 유강진이 연기를 했을 정도. 다만 MBC에선 이규연 성우가 생전에 전담하였다. 사후에는 MBC에서도 유강진 성우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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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최후의 성전에 나오기 6년 전에 찍은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까지만 해도 이렇게 노안은 아니었는데 급격하게 늙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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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데카르트와 닮았다.
야심작 정열맨에서 김정열이 ’숀 리는 숀 코너리의 동생인가!!!’라며 통곡하는 씬이 있다(...).
3×3 EYES에 나온 마법사 요괴 마드무라이가 사람세계에 사람으로 숨어살때 이름이 바로 숀 코너리였다...극중 코너리(90년대 해적판은 코넬리)라고 부르다가 딸이 우리 아버지 이름이 숀이라고 하자 주인공 후지이 야쿠모는 숀 코너리? 그 늙은이가 장난치나? 라고 어이없어 했다.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에서 코노 에츠코의 상사이자 교열부의 부장인 타케하라 나오토의 이름 중 渚音 (나오토) 부분을 어머니가 숀 코너리를 좋아하여 음독하면 쇼온으로 읽도록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5. 논란
1965년 플레이보이와의 인터뷰에서 "여자를 때리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남자를 때리는 방식으로 때리는 것은 권장하지 않겠다."("I don't think there is anything particularly wrong in hitting a woman, though I don't recommend you do it in the same way you hit a man.")라고 발언한 바가 있다.[9] 뿐만 아니라 1993년의 인터뷰에서는 여자가 남자랑 언쟁하는 것을 두고 맞고 싶은 모양("They want a smack.")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 발언들이 문제되자 코너리는 문맥을 무시하고 선정적으로 인용한 것이라고 반박했지만 이후 그의 전처인 다이앤 클리엔토가 자신의 전기를 써서 코너리가 자신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학대했다고 폭로하면서 상당히 논란이 되었다. 코너리는 클리엔토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맞섰으나 기자들의 추궁을 우려하여 2006년 할리우드 페스티벌 참석을 취소했다. 이후 코너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여성을 학대하는 일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 자신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관련 링크 참조
6. 출연작 (국내개봉기준)
- 007 살인번호 (1962) - 제임스 본드 역
- 007 위기일발 (1963) - 제임스 본드 역
- 007 골드핑거 (1964) - 제임스 본드 역
- 007 썬더볼 (1965) - 제임스 본드 역
- 007 두번 산다 (1967) - 제임스 본드 역
-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1971) - 제임스 본드 역
- 007 네버세이 네버어게인 (1983) - 제임스 본드 역
- 지상 최대의 작전 (1962) - 플래너건 일병 역
- 바람과 라이온 (1975) - 라이슐리 역
- 머나먼 다리 (1977) - 로이 어쿼하트 역
- 대열차 강도 (1979) - 에드워드 피어스 역
- 장미의 이름 (1986) - 윌리엄 수사 역
- 하이랜더 (1986) - 후안 산체스 빌라 로보스 라미레스 역
- 언터처블 (1987) - 짐 말론 역
-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 (1989) - 헨리 존스 역
- 패밀리 비지니스 (1989) - 제시 맥멀론 역
- 붉은 10월 (1990) - 마르코 라미우스 함장 역
- 로빈 후드#s-(6.1.6) (1991) - 사자왕 리처드 역
- 프리시디오 (1991) - 콜드웰 중령 역
- 러시아 하우스 (1992) - 발리 스콧 블레어 역
- 떠오르는 태양 (1993) - 존 코너 경감 역
- 카멜롯의 전설 (1995) - 아서왕 역
- 더 록 (1996) - 존 페트릭 메이슨 역
- 드래곤 하트#s-3 (1996) - 드라코 역
- 어벤저 (1998) - 어거스트 경 역
- 엔트랩먼트 (1999) - 로버트 맥두걸 역
- 파인딩 포레스터 (2001) - 윌리엄 포레스터 역
- 젠틀맨 리그 (2003) - 앨런 쿼터메인 역
- 미스터 빌리: 하일랜드의 수호자(애니메이션) (2012) - 미스터 빌리 역
[1]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연합군과 독일군 양쪽의 처지에서 영상화한 작품. 무려 180분의 상영시간에 당대의 톱스타와 당시에는 무명이었지만 이후 톱스타가 되는 수많은 배우가 총출연한 전쟁영화의 걸작이다. 원제목은 'The Longest Day'로 '사상 최대의 작전'으로도 번역하는 예도 있다.[2] 여담이지만 그의 동생 닐 코너리도 숀과 매우 닮았는데, 007로 숀이 유명해지자 한 이탈리아 제작사에서 닐 코너리를 주인공 -그것도 007의 동생이라는 설정!-으로 기용하여 'OK 코너리'라는 3류 첩보영화를 찍었다. M역에 실제 007 시리즈에서 M을 맡았던 버나드 리, 본드걸로는 007 위기일발의 다니엘라 비앙키 등 007 시리즈의 실제 출연진들까지 조연으로 기용했지만 불행히도 닐은 형과 외모만 닮았지 연기력은 전혀 닮지 않았고 영화는 대 참패. 그래도 한국 KBS 명화극장에서 '암호명 테투안'이라는 제목으로 방영한 적이 있다.[3] 못하는 게 아니고, 스스로 스코틀랜드 출신임을 자랑스럽게 여겨서 굳이 고칠 노력은 안 한다고 볼수도 있다. 사투리 안 고쳐도 잘만 캐스팅되는데 뭐하러 고칠 것인가. 오히려 숀 코너리와 같은 스코틀랜드 출신 배우들의 영향으로 미국쪽에선 영국식 용인발음, 그중에서도 가장 뚜렷하고 개성있는 스코티시 악센트를 배우려고 하는 성우와 배우들도 많이 있다.[4] 스코틀랜드 독립 주민투표에서 투표 용지의 문구를 "스코틀랜드가 독립국이 돼야 할까요?(Should Scotland be an independent country?)"로 정했기 때문에 선택지의 Yes=독립, No=영국 잔류를 의미하게 됐다. 그래서 찬성 진영에서 자신들의 단체 이름을 Yes Scotland로 정했다. 반면 독립 반대 진영에서는 자신들의 단체 이름을 베터 투게더(Better Together)로 정했다. 단체명에 No를 집어넣는 건 부정적 인상을 줄 수 있어인지 그걸 피하고 보다 긍정적인 뉘앙스가 되게끔 작명한 듯.[5] 실제 이 시기 영국 축구는 은퇴 선수 생활 문제가 골칫거리 중에 하나였다. 축구 코치 자리는 한도가 있고, 급료는 영국 노동청에서 동결 시켜놓은 상태고, 선발 출전을 하지 않으면 보너스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프로선수들은 일찍 은퇴해서 다시 기술을 배우거나, 직업연수교육을 받았다. 이 당시 레전드 선수 중에 은퇴하고 목수나 배관공, 일러스터로 활동한 이들이 적지 않으며, 심지어 축구보다 인기가 많았던 크리켓 선수를 겸해서 활동한 선수들도 매우 많았다.[6] 대럴 해먼드('''Darell''' Hammond)와는 다르다.[7] 6살 어린 워렌 비티와 거의 같다.[8] 보통 이런 경우엔 무명 성우로 대충 때우는 편이다. 제작비 때문에...[9] 다만 저 당시의 미국은 인종차별은 물론이고 남자가 여성을 차별하는 것도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저걸 하필 인터뷰에서 말해서 문제가 커졌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