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비오 10세회

 

성 비오 10세회
{{{#black '''The Society of Saint Pius X'''[영어-1]
Priestly Fraternity of Saint Pius X[영어-2]
'''Fraternitas Sacerdotalis Sancti Pii X'''[라틴어]}}}
[image]
'''형태'''
사도 생활단[1]
'''창립자'''
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
'''창립년도'''
1970년
'''본부'''
스위스 멘칭엔[2]
'''총장'''
다비데 파글리아라니
(Davide Pagliarani)
'''링크'''
본부 홈페이지
한국 홈페이지
1. 개요
2. 교리
2.1. 새 미사에 대한 공식적인 교리
3. 현황
4. 한국 현황
5. 논란
5.1. 성당 무단 점거
5.2. 성범죄 은폐 문제
5.3. 기존 가톨릭과의 교리적인 충돌 문제
6. 용어나 번역
7. 관련 문서
8. 관련 링크


1. 개요


1970년 11월 프랑스인 대주교 마르셀 르페브르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정에 반발하여 설립한 전통 가톨릭 성향의 가톨릭 사제회이다. 창립자가 아님에도 단체 이름에 교황 비오 10세의 이름이 들어간 이유는, 교회에 대한 현대화 및 자유주의화 요구에 맞서 교회가 간직한 '불변의 진리'를 수호하고자 했던 교황 비오 10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서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가톨릭교회 내 개혁의 바람이 불자 당시 보수 성향 성직자였던 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가 가톨릭 전통을 여전히 간직하고 싶어하던 사제 및 신학생들과 함께 설립한 사제회로서, 성 비오 10세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하여 닥쳐온 교회 안팎의 변화에 맞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의 전통을 수호함을 내세우는 단체이다. 이들은 1969년 전례 개혁 전 트리엔트 전례만을 거행하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변화된 교리의 해석 '''일부''' 수용하지 않는다[3].
성 비오 10세회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일부'''이지만 '''교황청과 화해하지 못한 단체들'''이다. '''교황청과 온전히 일치되지 못한 단체'''라고도 한다[4][5].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상당수 또는 전부를 부정하지만, 그래도 현 교황교황청의 지도와 권위 자체는 인정한다[6][7][8][9].
성 비오 10세회의 7성사트리엔트 미사 중 세례성사, 고해성사, 혼인성사[10]는 교회법상 합법으로 인정되지만 나머지 성사와 미사성제 자체에 관해서는 여전히 교회법상 불법으로 판단되고 있다. 2009년부터 교황청 차원에서 성 비오 10세회의 미사와 7성사 참여 가/부에 대해서 딱히 이렇다 할 가이드라인을 발표하지 않다가 교황 프란치스코 때 일부 성사를 교회법상 합법이라고 인정했다. 이는 성 비오 10세회와의 원만한 대화를 고려해서 취하는 조치이기도 하다. 일부 사제 및 신학자가 성 비오 10세회를 포함하여 교황청과 화해하지 못한 전통 가톨릭 단체의 미사성제와 7성사 참여 가/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적이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 차원에서 내놓은 가이드라인이지 교황청 차원의 공식적인 가이드라인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교구한국천주교주교회의 차원에서 교황청과 화해하지 못한 전통 가톨릭 단체에 대해서 입장을 발표한 적은 아직까지 없다.[11] 교황청과 화해하지 못한 전통 가톨릭 단체 활동이 활발한 해외 교구의 경우, 일부는 이들 단체의 미사성제와 7성사에 참여하지 말라는 입장을 발표하기도 하지만 다른 일부는 이들의 활동이 활발함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침묵하고 있다. 싱가포르고아(인도)의 경우처럼 몇몇 교구는 침묵하는 선을 넘어서 교구장 주교가 이런 단체 간부에게 선물을 보내거나 이런 단체 행사를 위한 교구 시설 대관을 허용하는 등 묵인의 제스처를 취하기도 한다. 실제 교황청과 화해하지 못한 전통 가톨릭 단체에 대한 태도가 세계 어느 가톨릭 사목자에게나 동일하지는 않다.[12]
교황청과 화해했거나 교황청 허락 하에 창립된 전통 가톨릭 단체는 상당수 성 비오 10세회 출신에 의해 창립되었다. 이들은 새 전례의 유효성과 합법성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자체에 이견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공식적으로는 교회법상 합법적인 전통 가톨릭 단체 내에서도 새 미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일부 문서에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물론 교황의 통상 교도권 수행을 따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자면 교회법상 합법적인 전통 가톨릭 단체들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허용하거나 촉구한 여성 세족례와 일정 나이 미만 사생아에 대한 세례성사를 계속 거부하고 있다. 교황청과 좋은 관계에 있는 전통 가톨릭 단체들은 성 비오 10세회의 의의 자체를 부정(否定)하거나 가톨릭임을 부정하는 경우는 드문 편이며, 성 베드로 사제 형제회의 초대 총장상 비지이 신부처럼 성 비오 10세회를 비판하더라도 1987년까지의 성품성사나 2007년까지의 허락 없는 트리엔트 미사 봉헌 강행 등에 대해서는 두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성 베드로 사제 형제회는 2009년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성 비오 10세회 소속 주교들에 대한 파문 제재 철회를 환영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교회법상 합법적인 전통 가톨릭 성향 교회 언론 중에는 비교적 근래에 창간된 "Church Millitant"[13]처럼 성 비오 10세회에 일관되게 부정하는 논조를 가지고 있는 곳도 있지만, 그와 반대로 창간된지 오래된 "The Remnant"[14]처럼 성 비오 10세회를 일관되게 두둔하는 논조를 가지고 있는 곳도 있다. 일각의 오해와는 달리 교회법상 합법적인 전통 가톨릭 단체라고 해서 성 비오 10세회에 마냥 비판적인 것이 아니며, 교회법상 합법적인 전통 가톨릭 단체들의 성 비오 10세회에 대한 입장은 단일하지 않다고 해야 맞다[15]. 오히려 교회법상 합법적인 전통 가톨릭 단체 중 성 비오 10세회에 일관되게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단체는 소수이다.
"Church Millitant" 등 성 비오 10세회에 일관되게 부정적인 교회법상 합법적인 전통 가톨릭 성향 교회 언론도 프란치스코 교황과 교황청의 일부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등 '''전적으로 교도권에 순명'''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상당하다'''. 교도권에 대한 비판은 성 베드로 사제 형제회,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인적 직할 서리구 등 교회법상 합법적인 전통 가톨릭 단체에서도 종종 보이는 모습이다[16] 그리고 "Church Millitant"는 성 비오 10세회를 폭로하고 비판하기 위해서 교황공석주의자 주교인 도널드 산본 주교(Bishop Donald Sanborn)를 인터뷰 하는 등 스스로 내세운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행보를 보이곤 한다.

2. 교리


성 비오 10세회의 주장을 모두 압축하여 한 마디로 제시한다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전통이 옳으며 다시 교회는 그 전통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을 문제삼는 사람들이 지적하는 점은, 이들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한 주요 변화들을 거부한다는 점이다. 이 점 때문에 교회 내 자유주의자들은 성 비오 10세회를 특히 싫어할 뿐만 아니라 가톨릭 전통주의자들이 소중히 여기는 트리엔트 전례 자체를 불온시하는 성향이 있다.
성 비오 10세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공의회들의 가르침과 교리문답을 수용한다. 그리고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가르침을 중요시한다. 성 비오 10세회의 교리는 기본적으로 현행 가톨릭교회의 교리와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나 그 이외의 부분들에서,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 인하여 발생한 변화를 거부한다. 전례양식에 대한 것은 물론, 갈라진 그리스도교파나 다른 종교에 대한 시각변화 등을 단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때에 기존의 교리를 변화시키지 않는다는 선언이 있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사목적 공의회로서 개최되었기 때문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교리는 부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사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구원의 제1수단은 가톨릭교회이며 복음 전파의 필요성이 있음을 선언하였으나, 동시에 가톨릭교회만이 유일한 구원의 통로라는 폐쇄성에서 한 걸음 물러나 비가톨릭에 대해서도 친화적인 시선을 제시하였다. 이들은 이러한 변화에 대하여 반대한다.
이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결의된 상당수의 사항들을 부정하고, 그것이 가톨릭교회의 진정한 가르침에 위배된다고 이야기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현행 미사개신교화된 의식으로 매우 바람직하지 못하며, 라틴어 미사인 트리엔트 미사만이 옳다고 가르친다. 실제로 비오 10세회에서 가르치는 내용들은 거의 근본주의 뺨치는 수준으로, 한국에서 개신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타 종교에 포용적이고 유화적인 한국 가톨릭교회와는 달리 매우 배타적이고 보수적이다. 이 때문에 이 단체에서는 '''개신교는 그야말로 지옥행 급행열차'''를 탄 것처럼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17] 또한 현행 미사의 관습들 역시 신성모독급의 행위에 준하는 것으로 바라본다. 예를 들면 손영성체를 거부한다든지.
2차 바티칸 공의회와 전례 개혁 후, 트리엔트 미사가 공식적으로 폐지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내에 트리엔트 미사 자체를 불온시하는 경향이 가톨릭교회 내 상당수 교구수도회에 있어온 것은 사실이다. 그 점에 있어서 전통주의자들이 하는 항변도 일리가 있다. 그렇지만 성 비오 10세회에서 원하는 것은 트리엔트 전례의 유지 '''그 이상'''이다. 가톨릭 전통주의자들은 새 전례에만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과물인 교회일치주의, 주교단체주의, 타 종교와의 대화, 국가와 가톨릭교회의 분리[18]에도 부정적이다. 또한 공의회의 여파로 도입된 수도생활의 '현대화'에도 부정적이다.
성 비오 10세회 출신 가톨릭 전통주의자 중에는 프리메이슨 음모론 관련해서 '교황이 바꿔치기당했다'는, 가톨릭 신자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고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며 황당한 주장까지 하는 이들이 있지만, 이는 성 비오 10세회의 공식적인 주장이 아니다. 이들은 대부분 성 비오 10세회에서 나간 강경파 중에 많다. 성 비오 10세회 자체와는 관련이 없다. 일단 성 비오 10세회는 그들의 시각에서 볼 때 에큐메니즘이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 인해 나타난 오류 때문에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교황에게 반대한다고 주장하지만, 일단은 교황의 권위를 인정하기는 한다.
베네딕토 16세는 이들을 포용하려는 작업의 일환으로, 교황의 동의 없이 르페브르 대주교로부터 주교로 서품받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게 파문을 받은 성 비오 10세회 소속 주교들에게 파문을 철회해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파문을 철회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 인한 변화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였으므로 여전히 ''유효하나 불법적이며, 따라서 교회 안에서 아무런 직책도 받을 수 없는 주교'''로 남았다.
트리엔트 미사가 특별양식으로 선포되어 마음대로 봉헌할 수 있게 되고, FSSP가 존재하는 것도 이들을 포용하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현재 성 비오 10세회에 대한 가톨릭의 공식 입장은 '''일단 이단은 아니다'''라는 것이다.[19] 따라서 성 비오 10세회의 사제가 드리는 미사성사 역시 성사적으로는 유효하지만, 교회법적으로 불법이다. 성 비오 10세회는 지역 교구장 허가 없이 미사나 성사를 드릴 수 없다. 이처럼 유효하지만 불법적인 미사를 거행하는 사제와 이런 미사에 참례하는 평신도는 지역 교구의 재치권[20]을 어기는 것에 해당한다.
구성원 일부는 과도한 반유대주의 입장을 취한다.[21] 성 비오 10세회의 주교 중 한명이었으며[22], 베네딕토 16세가 파문을 풀어준 사람들 중 한 명인 윌러엄슨 주교는 '''나치 독일홀로코스트 만행에 대해서 "과장되거나 없었던 일"'''이라는 식으로 말하였다. 이 사실이 보도되면서 가루가 되도록 까였으며 베네딕토 16세의 체면도 먹칠이 되었다. 사실 윌리엄슨은 본래 성공회 신자였다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성 비오 10세회에 가입한 인물로서, 말하자면 주류 가톨릭, 곧 교황청과 완전히 일치하는 공동체에서 산 적이 거의 없는 인물이다.
구성원 일부는 과도한 이슬람포비아적 입장을 취한다. 설립자인 르페브로 대주교도 생전에 "어느날 카사블랑카에 우리의 어머니, 누나, 여동생들이 납치되어 있다면 그건 무슬림이 한 짓일 것이다."[23]라는 말을 지상파 방송에서 했다가 벌금을 무는 사건도 있었다. 그래놓고는 이슬람권 선교를 더 부르짖었다.
구성원 일부는 정치적으로 프랑스에서 왕정복고주의자이다. 구성원들은 신학적으로 프랑스 대혁명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이런 입장을 이해하려면 가톨릭교회프랑스 대혁명때부터 정치적으로는 세속 정부에게 탄압[24]받았고 사상적으로는 자유주의자들에게 공격받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가톨릭교회프랑스 대혁명부터 제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 자유주의, 민주주의, 국가와 가톨릭교회의 분리, 주교단체주의, 교회일치주의, 타 종교와의 대화 등 근대 사상의 결과물에 대해서 부정적 입장을 취했으며 공화정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을 취했다. 비록 왕정이 올바른 정치 체제이다라고 못박아두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성 비오 10세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도 가톨릭교회의 이전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다.
또한 베이사이드 성모 발현# 메주고리예 성모 발현에 큰 혐오감을 보이고#### 성모 발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물론 두 곳 모두 가톨릭에서 정식으로 성모발현으로 인정되지 않았지만, 대다수 가톨릭인들이 베이사이드에 부정적인 반면 메주고리예에는 많은 이들이 긍정적이지만 성 비오 10세회는 둘 다 부정적이다.[25]
성경은 불가타 라틴어 성경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의 번역 성경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성 비오 10세회 한국 홈페이지에 올라와있는 성경 구절이나 성경 강해, 미사 경문 등에는 전부 과거 한국 천주교에서 사용하던 성경 번역이 올라와 있다. 복음서의 경우 마두(마태오 복음서), 말구(마르코 복음서), 루까(루카 복음서), 요안(요한 복음서) 복음 전 버전이 업데이트 되어있다.

2.1. 새 미사에 대한 공식적인 교리


성 비오 10세회가 교황청과 현재까지 일치를 이루지 못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1969년 바오로 6세가 경문화한 새 미사에 대한 견해 때문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자국어 미사 인정과 동시에 기존 트리엔트 전례를 개혁해 만들어 낸 새 미사는, 1970년 대림 제1주일부터 봉헌되기 시작했다. 이 미사에서는 라틴어로 봉헌되는 미사를 자국어로 봉헌하도록 바뀌었고, 제대와 감실이 붙어있던 기존 구조에서 제대와 감실을 분리시켰으며, 사제가 청중을 보고 미사를 집전하도록 바뀌었다.
또한 과거에는 "제대 하나당 사제 1명이 미사 1대"라는 규칙이 있었기에 규모가 좀 큰 성당에는 중앙 제대 외에도 부속 제대가 여럿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새 미사에서는 이 원칙이 사라져서, 한 제대에서 여러 사제가 미사 1대를 공동 집전으로 드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성 비오 10세회는 이 새 미사가 '개신교 목사의 의견을 받아 만들었으며 가톨릭 교리를 뒤받침할 여러 전례가 사라진, 유효한 미사이기는 하나 흠결 있으며 영혼의 유익에 위험하다'는 주장을 하며, 새 미사를 받아들이길 거부하고 기존의 트리엔트 미사만 봉헌해오기 시작하면서 교황청과 갈라지게 된다. 197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교황청은 새 미사 전례를 정착시키기 위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트리엔트 미사를 봉헌하지 못하도록 했는데, 성 비오 10세회는 이 시기 이런 교황청의 지침에 반발하며 트리엔트 미사를 봉헌해왔다. 90년대 말 요한 바오로 2세가 "교구장 주교의 허락이 있다면 트리엔트 미사를 봉헌할 수 있다"고 허용된 뒤에도, 성 비오 10세회는 새 미사에 대한 견해에 있어 교황청과 합의를 보지 못했으며, 현재까지도 이는 계속되고 있다.
교황청에서는 90년대 말 트리엔트 미사 봉헌을 허용하면서 내세운 견해는 '새 미사와 트리엔트 미사 모두 유효하고 거룩한 미사이다' 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성 비오 10세회는 새 미사를 '유효하지만 흠결 있으며, 신자들은 흠결 있는 새 미사를 드릴 의무가 없으며, 트리엔트 미사만을 드려야 한다'는 견해를 내린 것이다. 교황청은 끊임없이 성 비오 10세회에게 "새 미사의 유효성과 합법성을 인정하라"고 권유했지만, 그 때마다 성 비오 10세회는 거부해왔다.

- 성 비오 10세회에서 공식적으로 설명하는 새 미사에 대한 견해
첫 번째 동영상에서 설명하듯, 성 비오 10세회는 "새 미사성체예수 그리스도가 실존한다는 믿음과 사제의 역할 등을 삭제했으며, 이로 인해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가톨릭 교회의 일부 교리를 믿지 않고 있다. 새 미사는 영혼들에게 위험할 수 있고, 가톨릭 교회는 평신도들에게 신앙이 위험하도록 할 수 없으므로 새 미사를 드릴 의무는 없다. 따라서 전통 미사만을 드려야 한다. 만약 전통 미사를 드릴 수 없다면 미사에 불참하고 묵주기도나 주일미사 경문 읽기 등으로 대신하라."는 견해를 내고 있다.

3. 현황


스위스 에콘의 성 비오 10세 국제 신학교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독자적으로 관구 체계와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스위스 에콘에 위치한 성 비오 10세 국제 신학교를 포함한 6곳의 신학교[26]에서 사제를 양성한다. 700여 곳 이상의 성당공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680여 명의 사제와 100여 명 이상의 수사와 100여 명 이상의 수녀가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다. 이외에도 성 비오 10세회의 지도를 받는 남녀 수도회와 평신도 단체들을 지도하고 있다. 미션스쿨도 여러 곳 운영 중이다.
[image]
스위스 에콘의 성 비오 10세 국제 신학교
성 비오 10세회에 종종 교구 성직자나 은퇴한 교구 성직자가 가입하는 경우가 있다. 이탈리아 비첸차 교구의 마시모 시비체코(Massimo Sbicego) 신부나 필리핀 산 페르난도 데 라 우니온 교구의 전(前) 교구장 살바도르 라소 라소(Salvador L. Lazo) 주교 등이 그런 사람들이다. 또한 성 비오 10세회에 가입하진 않았지만 이에 우호적인 교구 성직자와 은퇴한 교구 성직자도 없지 않다.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대교구의 보좌주교인 아타나시우스 슈나이더 주교 등이 그런 사람들이다.
2000년 8월, 성 비오 10세회 차원에서 대규모 로마 순례를 했다.
2000년 10월, 성 비오 10세회 교우 일부가 기존의 성모 기사회와는 다른 독자적인 성모 기사회(SSPX)를 설립했다. 이 성모 기사회는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성인의 원래 정신에 따라 활동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의해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성인의 정신이 '재해석'되어 왜곡되었기 때문에 독자적인 성모 기사회를 설립했다고 한다. 사실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성인은 살아 생전 당시 논의되고 있는 교회 일치 운동과 종교 간 대화에 부정적이었다.
2013년, 2012~2013년의 갈등을 거친 후 리처드 윌리엄슨 주교를 지지한 사제와 신자들은 서울 연신내역 부근에 성당을 새로 건립했다. 이 성당은 '성 비오 10세의 마리아 군대 성당'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리처드 윌리엄슨 주교파가 새롭게 창립한 사제회 중 한 곳인 성 비오 10세의 마리아 군대에서 운영하는 성당이다.
2013년 10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로마 외곽 동굴에서 수백 명을 학살한 나치 독일 전범 에리히 프리브케가 100세를 일기로 로마에서 죽었다. 이에 아르헨티나 정부는 그의 매장을 거부하고[27] 교황청은 '로마 안의 가톨릭 교회는 프리브케의 장례 미사를 집전하지 말라'고 금지령을 내렸다.
성 비오 10세회는 프리브케 가족들의 부탁으로 비공개로 프리브케의 장례미사를 집전하기로 했다. 그러나 프리브케의 변호사가 장례미사가 있다는 정보를 외부에 알렸고, 장례미사 집전은 일부 주민들이 포함된 반대 시위자들의 저지로 집전되지 못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많고, 고해성사로서 사적으로 참회했다지만 공적으로 참회하지 않은 사람이기에, 교황청에서는 장례미사를 금한 것이다.

2015년 2월, 팡주(Fanjeaux)의 도미니코 교육 수녀회[28] 수녀들과 수녀회 운영 미션스쿨 학생들이 로마로 대규모 성지순례를 갔다. 팡주의 도미니코 수녀회 학교들의 로마 순례
2015년 2월 20일~22일, 전북 김제공소에서 처음으로 성 비오 10세회 주관 피정이 진행되었다. 피정에는 성 비오 10세회 아시아관구장 칼 슈텔린(Karl Stehlin) 신부, 성모무염시태성당 주임 오노다 토마스 신부, 한국인 예비 신학생 그리고 성모무염시태성당 교우들이 참석했다.
2015년 9월 1일, 교황 프란치스코가 '자비의 희년' 기간 동안 낙태 여성이 진심으로 속죄한다면 모든 사제에게 낙태의 죄를 용서할 권한을 부여한다는 교서를 발표하면서 성 비오 10세회 소속 사제 또한 가톨릭교회의 다른 사제와 마찬가지로 낙태죄를 사할 권한을 갖는다고 밝혔다.
2016년 4월 2일, 교황 프란치스코바티칸에서 성 비오 10세회 총장상 베르나르 펠레이 주교와 비공식 환담을 가졌다. 이 비공식 환담에서 교황은 "성 비오 10세회는 가톨릭이라고 생각하고, 성 비오 10세회를 단죄할 생각이 없음"을 밝혔다고 한다.
2017년 8월 17일~23일, 성 비오 10세회 차원에서 대규모 파티마, 로마 순례를 했다.#
2018년 7월 11일, 성 비오 10세회 총회에서 새 총장상으로 이탈리아인 다비데 파글리아라니 신부가 선출되었다. 그는 앞으로 12년 동안 성 비오 10세회를 이끌어간다.
2019년 1월 19일, 교황 프란치스코가 1988년 이래 전통 가톨릭 업무를 맡아온 신앙교리성 산하 '하느님의 교회(Ecclesia Dei) 위원회'를 폐지하고 신앙교리성이 전통 가톨릭 업무를 직접 담당하도록 하는 자의교서를 발표했다.었다.[29]
[image]
미국 테네시 주 녹스빌(Knoxville) 교구장 리처드 스티카(Richard Stika) 주교와 성 비오 10세회 미국관구장 웨그너(Wegner) 신부의 만남
2020년 6월 16일, 미국 테네시 주 녹스빌(Knoxville) 교구장 리처드 스티카(Richard Stika) 주교와 성 비오 10세회 미국관구장 웨그너(Wegner) 신부와 만났다. 만남은 성 비오 10세회 미국관구의 한 소수도원[30]에서 이루어졌으며, 스티카 주교는 성 비오 10세회가 빠른 시일 내에 교황청과 온전히 일치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4. 한국 현황


'''성모무염시태성당(한국성비오10세회'''
[image]
'''기본 정보'''
'''위치'''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초구
'''종교'''
가톨릭
'''소속'''
성 비오 10세회 아시아 관구
'''신부'''
토마스 오노다[주임신부]
'''홈페이지'''
공식 홈페이지
전례개혁에 의한 새 미사 도입 이후, 한국에서 최초로 다시 트리엔트 미사를 봉헌하기 시작한 단체가 바로 성 비오 10세회이다.
1987년부터 한국사제가 방문하여 트리엔트 미사를 봉헌하기 시작했는데, 초창기에는 1년에 1~2차례만 봉헌하던 것을 1993년부터 정기적으로 봉헌하기 시작했다. 반면 한국의 유일한 합법적 트리엔트 미사 봉헌 단체임을 강조하는 전통라틴전례회의 경우, 2005년에서야 모임이 구성되었고 2007년에 이르러서야 트리엔트 미사를 봉헌하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도 1달에 하루 정도만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한국에서 봉헌되는 트리엔트 미사의 대부분은 성 비오 10세회에서 봉헌하는 셈이다.
[image]
성모무염시태성당에서 봉헌되는 트리엔트 미사
성 비오 10세회의 아시아관구 관할지역인 한국에서는 원래 서울 종로구 충신동 평범한 오피스 빌딩에 성당을 꾸리고 있었다. 종로구 충신동에 입주해 있었을 때에는 종종, 종로 거리에서 성체 거동이나 성모상 행렬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2012년 총장 베르나르 펠레이 주교와 교황청 간의 화해를 위한 움직임이 일면서 일부 사제들과 신자들이 제명된 리처드 윌리엄슨 주교와 함께 성 비오 10세회 밖에서 독자적인 공동체를 꾸리기로 하자, 그 여파가 한국에도 미쳤다. 당시 프랑스인 샤자르 신부와 일본인 오노다 신부 간의 대립과 신자들 간의 대립으로 성당 물품, 부지 소유권 및 아시아 관구 담당신부에 대한 순명 문제가 불거지면서 결국 공동체가 둘로 쪼개지게 된다. 그 후로는 성체 거동이나 성모상 행렬 대신 매년 절두산 성지순례를 하고 있다.###


성모무염시태성당[성당주소]
김제공소[공소주소]
원래의 성 비오 10세회 아시아 관구에서는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성모무염시태성당[31]전라북도 김제시에 위치한 김제공소[32]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까지 성 비오 10세회에서는 한국에 사제를 상주시키고 있지 않다. 일본인 사제 오노다 토마스 신부가 성모무염시태성당의 주임을 맡고 있고, 일본인 사제와 기타 여러 외국인 사제가 번갈아가며 방문하여 트리엔트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성모무염시태성당에서는 대개 매월 2주차, 4주차씩 격주로 목/금/토/일요일 미사를 집전하고, 미사가 없을 때에는 공소예절이 2015년부터 신자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김제공소에서도 1달에 2차례 신부가 방문하여 트리엔트 미사를 정기적으로 봉헌[33]하고 있다. 회보로는 월간 <치비타스>를 발행하고 있다.치비타스 한국 성 비오 10세회 유튜브 계정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성 비오 10세회에는 한국인 사제가 없다. 호주의 성 십자가 신학교에 한국인 신학생이 4명 있으며 필리핀에 한국인 예비 신학생이 1명 있고, 1명이 더 들어올 예정이다.#
2014년, 한국을 관할하는 아시아 관구의 신임 관구장으로 칼 슈텔린(Karl Stehlin) 신부가 부임했다.
2015년, 2월 17일 아시아 관구장 칼 슈텔린(Karl Stehlin) 신부가 방한해서 2월 20일~22일 김제공소에서 있은 피정을 지도했다. 피정에는 한국인 예비 신학생도 참석했는데, 그는 3월에 오스트레일리아의 성 십자가 신학교에 입학했다.
2015년, 11월 24일에 아시아 관구장 칼 슈텔린(Karl Stehlin) 신부가 다시 방한해서 27일부터 29일까지 서울에서 있은 피정을 지도했다.
2016년, 10월 28일부터 30일까지 아시아 관구장 칼 슈텔린(Karl Stehlin) 신부가 다시 방한해서 서울에서 있은 피정을 지도했다.
2017년, 5월 25일부터 29일까지 호주 성 십자가 신학교 교수인 로빈슨 폴 신부가 방한했다.
2017년, 10월 3일부터 8일까지 아시아 관구장 칼 슈텔린(Karl Stehlin) 신부가 방한하여 김제공소에서 이냐시오 피정을 지도했다.#

5. 논란



5.1. 성당 무단 점거


1977년 성 비오 10세회 사제들과 François Ducaud-Bourget 몬시뇰이 이끄는 평신도들이 성 니콜라 뒤 샤르도네 성당(Saint-Nicolas-du-Chardonnet)에 들어가 미사를 봉헌했으며, 그 이후에도 성당에서 나가기를 거부하여 (사실상) 현재까지도 성 비오 10세회가 운영하는 성당으로 남아있다.#
프랑스1905년 라이시테(laïcité)를 완전히 못박은 국가와 교회의 분리에 관한 법률로 인해 각 지자체들이 유서깊은 성당 건물들을 소유하고 있으며, 적절한 종파들이 이러한 건물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고 있다. Ducaud-Bourget 몬시뇰은 "성 비오 10세회로 대변되는 전통 가톨릭이야말로 1905년의 가톨릭 교회의 진정한 상속자"라며 이러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내세웠다. 프랑스 법원에서는 본회의 성당 점거를 불법이라고 판결했으나, 관계 기관은 성 비오 10세회를 강제로 내쫓기보다는 점거를 방치하는 것이 공공질서를 덜 해칠 것으로 판단하여 이들의 점거를 묵인해오고 있다.
성 비오 10세회 가톨릭 신자들은 1993년 생 제르맹 록세루아 성당(Saint-Germain l'Auxerrois)도 점거하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5.2. 성범죄 은폐 문제


스웨덴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인 Uppdrag granskning은 2017년 4월 5일 성 비오 10세회 소속 신부 3명과 신학생 1명이 각국에서 최소 12명 이상의 젊은 사람들에게 성폭력을 휘두른 사실을 보도했으며, 성 비오 10세회가 그 증거를 은폐하고 사목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한 사실을 폭로했다.# 다만, 이들 넷 중 세 명은 성 비오 10세회에서 추방당했다. 케빈 제러드 슬로니커(Kevin Gerard Sloniker)의 경우 2005년 성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교에서 퇴학당한 후, 2015년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신부 "P"의 경우, 2013년 바티칸과의 합의 하에 베르나르 펠레이 주교의 주재로 열린 교회 재판에서 유죄를 인정받아 수도원으로 은퇴하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판결에 불복해 성 비오 10세회를 탈퇴하여 윌리엄슨파 단체로 넘어가 활동하고 있다. "S" 신부 역시 성 비오 10세회에서 추방당해 윌리엄슨파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M"신부의 경우 프랑스에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5.3. 기존 가톨릭과의 교리적인 충돌 문제


우선, 전통 미사를 드릴 수 없을 때 미사에 불참하라는 것은 십계명의 제3계명인 '주일을 거룩히 지켜라' 에 위배되는 행동이다. 미사에 불참할 경우 묵주기도를 드리거나 공소예절, 또는 성경을 읽으라는 것은, 오직 '''물리적으로 미사참례가 불가능할 부득이한 때'''에만 한정된다. 가톨릭 교회법은 "주일이나 의무대축일 미사참례 의무는 (주일 당일)언제 어디서나 가톨릭 예식으로[34] 이루어지는 미사[35]에 참례하는 것으로 이행된다"(교회법 1248조)고 규정하는데, 세부적인 논쟁에 앞서, 그럼 바오로 6세 미사는 가톨릭 예식에 따른 미사가 아니란 말인가? 바오로 6세 미사도 트리엔트 미사 만큼이나 적법한 권위를 갖추어 공의회와 교황에 의해 반포된 권위를 갖춘 가톨릭의 미사다.[36] 가톨릭 예식에 따른 미사에 참례할 수 있는 상황이 충분히 되는데도 불참한 것은 명백한 대죄이다.[37]

"이 작업은 공의회의 정신을 따라 교회의 전통을 존중하고 의당 있어야 할 진보에 부용하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례 혁신은 “교부들의 준칙”을 엄격히 지키면서 진행된 전통 존중의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교서 「25주년」(Vicesimus quintus annus), 1988.12.4., 11항, AAS 81(1989), 901면, 『회보 』, 55호(1989),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참조.

미사가 영혼들에게 위험하다는 주장 역시 자의적인 기준이다. 바오로 6세 미사 경문에서 성체 현존 언급이나 사제의 역할 언급, 미사에서의 잦은 성호경 등을 간략화했다고 해서 가톨릭이 해당 중요 교리들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상식적으로, '''신자들의 교리 상식이 부족한 이유는 일선의 교리 교육이 부족해서이지,''' 미사 경문이 언급을 하지 않아서(?)라고 보는 건 논리성이 부족한 주장이다. 전례의 남용 및 오용 문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뭐든지 허용해도 된다'는 식으로 잘못 해석한 사목자의 잘못일 뿐이지, 바오로 6세 미사 자체는 가톨릭 역사상의 믿을 교리나 핵심 사항들을 부인하는 요소는 하나도 없다. 또한 사도들의 결정이나 다름없다고 여겨지는 적법한 보편 공의회의 결과와 교회의 가르침에 따른 새 미사에 불순명하는 것 역시도 큰 죄이다.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나의 선임자 비오 6세는 피스토이아 시노드의 이단들을 논박하였습니다. 그는 교구사제들이 가르치는 직무를 수행할 때에 신앙의 조목들 가운데 수록되어 있는 실체 변화에 대한 언급을 삼가는 일이 실제로 생겨나는 사례를 엄중히 경고하였습니다.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나의 선임자 비오 12세는 실체 변화의 신비에 관한 신중한 토의에 참가하는 자들에 의해 간과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설정한 합법적 한계들을 상기시키는 담화문을 발표하였습니다. 나 자신은 이탈리아의 국내 성체대회가 최근에 피사에서 개최되었을 때 나의 사도적 권위의 임무 수행으로써 교회의 신앙을 공적으로 또 엄숙하게 증언하였습니다."

-

바오로 6세, 회칙 「신앙의 신비」(Mysterium Fidei), 1965.9.3., 54항, AAS 57(1965), 764면.

"그러고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수동적으로 참례하던 관습에서 전적이고 능동적인 창여로 넘어가는 과정은 일부 사람들에게는 과도한 요구로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과연 전례 개혁 시초에 개혁에 대한 태도가 한결같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반대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새 전례서가 나왔을 때 무관심으로 받아들여 왜 변경하였는지 그 이유를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알아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과거의 전례 형식만이 신앙의 안전성을 보장해 주는 유일한 전례로 생각, 불행하게도 옛 전례를 배타적인 외고집으로 고수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교서 「25주년」(Vicesimus quintus annus), 1988.12.4., 11항, AAS 81(1989), 909면, 『회보 』, 55호(1989),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참조.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개신교 신자들이 관여했기 때문에 이에 따른 바오로 6세 미사도 오류가 있다는 주장도 문제가 있다. 성 비오 10세회 신자들에게는 충격적일 수 있겠지만, 가톨릭 세계 공의회에서 다른 기독교 교파를 초청하여 공의회에 참석시키거나 가톨릭 신앙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그들의 토론이나 의견을 듣는 것은 트리엔트 공의회 시기부터 존재했던 관례다! 트리엔트 공의회 13차 회기(1551년 10월)에서는 공의회에 참석해 의견을 내고 싶다고 밝힌 개신교 신자들에게 공의회 직속 안전 통행증까지 발급해주면서 참가해주기를 밝히기도 했고[38][39][40] 1869년에 개최된 제1차 바티칸 공의회 때도 정교회 주교들을 초청해 참석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정교회 측이 참가하지 않은 바 있다.[41] 즉, 비오 10세회의 주장대로 설령 개신교도들의 의견이 일부 반영된 일부 공의회 사안/미사전례 요소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요청하고, 합리적으로 받아들여 검토하고, 온전히 가톨릭의 것으로 만든 것은 그리스도의 대리권과 성령의 인도를 받는 가톨릭의 보편 공의회이며 가톨릭이 이것 때문에 2000년 전통의 교리를 수정한 것도 없는데다[42] 교도권 전통을 무시한 행위라고 치부하거나 잘못된 것으로 단정할 수도 없다는 것.
결론적으로 말하면, 일반적인 가톨릭 신자의 입장에서 바오로 6세 미사에 얼마든지 참례가 가능한 상황에서도[43] 성 비오 10세회의 트리엔트 미사에 고의적으로 참례하는 것은 교회법으로 금지된 불법 행위다.
성 비오 10세회는 바오로 6세 교황의 권위로 공포한 새 『견진 예식』의 유효성을 의심한다. 따라서 새 『견진 예식』을 받은 신자가 성 비오 10세회에 다니려면 견진성사를 조건부로 다시 받아야 한다. 최근의 견진성사 유효성 문제

6. 용어나 번역


성 비오 10세회에서는 현대 가톨릭 교회에서 널리 사용되는 용어나 번역을 사용하지 않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 전통적으로 사용되던 것들을 사용한다. 아래 대조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현대 번역어
'''사용되는 용어'''
현대 번역어
'''사용되는 용어'''
하느님
'''천주'''
세례자 요한
'''요안 세자'''
주님의 기도
'''천주경'''
사도 요한
'''요왕 종도'''
성모송
'''성모경'''

''''''
성령(聖靈)
'''성신(聖神)'''[44]

''''''
기도
'''기구'''

''''''
사도
'''종도'''

''''''
아침기도
'''조과'''

''''''
저녁기도
'''만과'''

''''''
''(부활)'' 삼종기도
'''''(희락)'' 삼종경'''[45]

''''''
천사
'''천신'''

''''''
묵주 ''(기도)''
'''매괴 ''(경)'' '''

''''''
은총
'''성총'''

''''''
신약성서의 경우, 마태오 복음서 가 '''마테오 복음'''으로, 마르코 복음서가 '''말구 복음''', 루카 복음서가 '''루까 복음''', 요한 복음서가 '''요왕 복음'''으로 번역된 1960년판 성서를 사용하며, 영어 성경은 DRB(두에-랭스 성경)을 사용하도록 권고한다.

7. 관련 문서



8. 관련 링크


성 비오 10세회 뉴스 사이트(영문)
한국 성 비오 10세회 공식 홈페이지
한국 성 비오 10세회 유튜브 계정
오노다 신부 블로그

[영어-1] [영어-2] [라틴어] [1] 사도 생활단에 대한 설명(주교회의)[2] 스위스의 칸톤(주)인 '''추크''' 지역에 있는 코뮌(마을)이다.[3] 하지만 성 비오 10세회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리를 아예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전통 신심과 반하는 '가르침'을 거부한다고 한다.[4] 가톨릭 교회법상 어떤 집단을 '이교(離敎)'로 규정하려면 2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렇지만 적어도 2009년 1월 파문철회 교령 후 교황청은 성 비오 10세회를 '이교(離敎)'라 규정하는데 필요한 조건, 즉 '교황에 대한 순종 혹은 교황에게 종속하는 모든 구성원과의 친교를 거부한 이들'에 있다고 판단하지 않고 있다.[5]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비의 희년 기간 동안 낙태죄를 범한 여성들에게 성 비오 10세회 사제로부터 합법적으로 고해성사를 받을 수 있다고 선포한 바 있다. 동년 교황청에서는 베르나르 펠레이 주교에게 성 비오 10세회 사제 중 한 명에 대한 교회법상 재판의 판사로 인정한 바 있다. # 또한 2017년 교황청은 성 비오 10세회에 운영 성당의 혼인성사를 교구사제가 참석하는 조건 하에 그 합법성을 인정한 바 있으며 실제로 독일에서 혼인성사가 그렇게 거행된 바 있다.[6] http://unavoce.org/resources/protocol-53999 [7] http://sspx.org/en/hawaii-six-case [8] 성 비오 10세회는 진정한 의미의 열교가 아니었다. http://www.unavoce-ve.it/11-05-91.htm [9] 성 비오 10세회는 열교라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이단을 두고 있지 않다. 올바르고, 정확하며, 엄밀한 의미로 열교라고 할 수 없다. 교황의 허락 없이 주교를 성성하는 것에 분파적인 태도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들은 교회 안에 있다. 교류는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는 충분한 교류, 더 완전한 교류 더 충분한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일 뿐이다. http://www.unavoce-ve.it/11-05-93.htm [10] 조건부.[11] 그러나 한국 천주교는 주교회의 중요 인사와 교구 대부분이 신학적으로 중도진보적 입장을 띄고 있으며, 전통라틴전례회의 사례를 보듯이 사제가 전통 미사를 봉헌하고자 할 경우 교구장의 눈치를 많이 봐야 한다. 이를 고려해 짐작해보면 한국 천주교 주교단은 이런 단체에 십중팔구 호의적이지 않을 것이다. 단지, 한국에서는 전통 가톨릭 단체의 활동이 워낙 미약한 편이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힐 필요성이 별로 없다고 할 수 있다.[12] 당장 개신교에 대한 태도만 하더라도 사목자에 따른 다양한 스탠스(대립, 묵인, 협조)가 있다.[13] https://www.churchmilitant.com/ 2012년 창간. 교회법상 합법적인 전통 가톨릭 성향 가톨릭 언론 중에서는 비교적 근래에 창간되었다.[14] https://remnantnewspaper.com/ 1967년 창간. 교회법상 합법적인 전통 가톨릭 성향 가톨릭 언론 중에는 가장 역사가 오래되었다.[15] 교회법상 합법적인 단체의 예로 자주 언급되는 성 베드로 사제 형제회도 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 및 성 비오 10세회의 1987년까지 행보에 대해서 '''불가피했다'''며 두둔하는 입장이다.[16] 단순히 비판에서 그치는 경우만 있는 것이 아니라, 프란치스코 교황의 여성 세족례 허용 권고에 관하여 합법적인 전통 가톨릭 단체 소속 사제들 또한 이를 따르지 않고 있는 등 통상 교도권에 불복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17]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가톨릭이 '''개신교바라보았던 시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18] '가톨릭 신자가 다수인 국가에서의' 국가와 가톨릭교회의 분리를 말한다.[19] 창립자인 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 본인 역시 자신은 별도의 교회를 만들지 않는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20] '교회를 다스리는 권한'을 얘기한다.[21] 사실 보수 가톨릭에서 반유대주의는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항상 어느 정도 있어왔다. 그러다가 교리적으로 유대인예수 그리스도 처형에 책임이 없음을 인정한 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서 반유대주의가 거의 사라지게 되었는데 이들은 알겠지만 2차 바티칸 공의회를 거부하는 집단이다 보니...[22] 2012년 10월 4일자로 성 비오 10세회에서 제명되었다. 제명 후에는 독자적인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23] 역사적으로 유럽인들을 무수히 납치해 팔았던 바르바리 해적 등을 염두해서 한 발언 같긴 한데, 전통적인 바르바리 해적이 이미 19세기에 소멸하였으므로 이런 말은 시대착오적이고 포비아적인 생각일 뿐이다.[24] 가톨릭교회에는 프랑스 대혁명이나 이후의 스페인 혁명 당시 순교성인들이 있다.[25] 단, 1981년 당시 초창기의 메주고리예 성모발현은 호의적으로 취급되지만 오늘날에도 일어난다고 주장되는 최근의 메주고리예 성모발현은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그 진실성에 의문이 제기된 바 있다. “The apparitions, the presumed current apparitions: the report has its doubts. I personally am more nasty, I prefer the Madonna as Mother, our Mother, and not a woman who’s the head of a telegraphic office, who everyday sends a message at such hour. This is not the Mother of Jesus. And these presumed apparitions don’t have a lot of value. This I say as a personal opinion. But, it’s clear. Who thinks that the Madonna says, ‘come tomorrow at this time, and at such time I will say a message to that seer?’ No.” #[26] 스위스의 성 비오 10세 국제 신학교, 프랑스의 아르스의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학교, 독일예수성심 신학교, 미국의 성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교, 아르헨티나성모 마리아 신학교, 오스트레일리아의 성 십자가 신학교[27] 프리브케는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 아르헨티나 남부 관광명소인 바릴로체로 도망쳐(나치의 남미 도주) 40년 이상 호텔 지배인으로 살다 1995년 이탈리아로 송환돼 재판을 받았다. 아르헨티나 정부에서 "인류의 존엄에 대한 모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다.[28] 성 비오 10세회의 지도를 받는다.[29] '하느님의 교회(Ecclesia Dei) 위원회'는 한국에서 '르페브르의 비오 10세 형제회원 재일치 위원회'로도 번역된다. 두 이름 다 해당 위원회를 지칭할 때 통용되는 이름이며, 해당 위원회는 2019년 1월 17일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자의교서로 업무를 종료했다.[30] 성 비오 10세회의 기본 활동 단위로 사제들이 상주하는 본당 옆에 위치하며, 성 비오 10세회 사제들은 여기에 살면서 본당 및 사제가 상주하지 않는 성당과 공소를 순회한다.[주임신부] [성당주소]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대로 55길 17[공소주소] 전북 김제시 금산면 수류7길, 97[31] 평범한 오피스텔 건물인 중추빌딩의 5층에 입주해 있다.[32] 김제공소는 김제시에 사는 일부 가톨릭 교우들의 요청으로 2013년 9월 문을 열었다고 한다. 공소가 위치한 금산면 화율리 일대는 19세기 말부터 이어진 전북의 대표적인 천주교 교우촌이라, 성 비오 10세회를 지지하는 신자가 있을 만한 곳이다.[33] 미사 시간표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34] 때문에 가톨릭식 예식이 아닌 정교회 성찬예배는 가톨릭 미사를 도저히 갈 수 없는 상황이 아닌 이상 고의적으로 참례하면 주일미사 의무를 충족하지 못하는 죄를 짓게 된다. 다만 예식만 동방 전례일 뿐 가톨릭에 온전한 일치를 이룬 동방 가톨릭 교회 전례는 물론 적법한 주일미사로 인정받는다.[35] 예배나 기도회가 아닌 미사여야 한다. 따라서 일반 개신교 예배나 성공회 감사성찬례에 고의적으로 참례해도 이는 죄로 간주될뿐더러 미사가 아닌 예배이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든 차라리 혼자 묵주기도를 할 망정 개신교나 성공회 예배로는 주일미사 의무를 충족할 수 없다.[36] 그래서 성 비오 10세 등의 교도권 비일치 전통 가톨릭 신자들은 이런 논리의 모순 내지는 인지부조화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현대 가톨릭의 단점들을 걸고넘어지거나, 교황이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정과정에 시비를 걸거나(상기한 개신교 신학자가 관여했다는 주장도 이런 맥락이다) 하는 식의 주장을 펼친다. 개중에는 극단까지 막나가 "가톨릭 교회가 프리메이슨의 꼭두각시가 되었다"(!)는 주장까지 하는 이들도 있다. 다만 비오 10세회에는 이런 극단적 주장은 공식적으로 배격하는 편.[37] 반면 가톨릭 교회에서는 성 비오 10세회의 미사라도 도저히 주변에서 바오로 6세 미사 참례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때는 가도 된다고 규정한다. 트리엔트 미사나 바오로 6세 미사나 가톨릭 예식의 유효한 미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 비오 10세회의 미사는 교회법상으로 불법적 성사 거행의 죄가 되는 불법적인 미사이기 때문에 '고의적으로' 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바오로 6세 미사 자체를 혐오하는 비오 10세회와는 달리, 트리엔트 미사 자체를 혐오스럽게 보는게 아니라는 것이 중요한 점.[38] 본 거룩한 공의회는...프로테스탄트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본 거룩한 공의회에서 앞서 열거한 항목들에 대해 결정을 내리기 전에 자신들의 의견을 들어주기 바란다는 의사를 표명했다..(중략)..본 공의회에서 자유롭게 자신들의 의견을 발표할 수 있고, 그 다음에 원하는 때에 이곳을 떠날 수 있음을 본 공의회가 공공연하게 보장해주기를 요청했다. 본 거룩한 공의회는 그들이 오기를 큰 기대를 가지고 수개월 동안 열망해왔다...(중략).[39] 또한 자유와 안전이 보장되는 가운데 이 세계 공의회에 올 수 있고, 체류할 수 있고, 자기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모든 항목들에 대해 서면으로나 구두로나 의견을 제출할 수 있고 발언할 수 있다. 그것에 대해 교부들이나 본 공의회가 선발한 인사들과 무례하거나 공격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대화하고 논쟁할 수 있기를 바란다..(후략) - 트리엔트 공의회 제 13차 회기, 안전 통행증에 관한 교령, 1551년 10월 11일. 《보편 공의회 문헌집》 제 3권 701p에서 발췌.[40] 다만 이때의 시도는 이후에 개신교 당사자들(독일 개신교 세력) 이 참석을 거부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41] 《보편 공의회 문헌집》제 3권, 801p, 제 1차 바티칸 공의회 해설.[42] 흔히들 오해하는 사실이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사목적 요소의 개혁을 추구한 공의회이지 교리를 수정하기 위한 공의회가 아니다. 이건 성 비오 10세회에서도 인정하는 부분.[43] 대한민국은 나라 전체가 여기에 들어간다. 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자면, 성 비오 10세회의 한국 내 유일한 성당인 '성모무염시태성당'이 있는 교대역 근처에는 불과 850m 거리에 교황청과 일치된 천주교 서울대교구 서초동 성당이 있고, 교대 방향으로 좀 더 나가면 서초3동 성당도 있다. 성 비오 10세의 마리아 군대의 성당이 있는 연신내역 주위에도 500m도 안가서 교황청과 일치된 갈현동 성당이 있다. 그리고 이들 성당에선 주일을 포함해 하루도 안 빠지고 매일매일 미사가 봉헌된다. 성 비오 10세회 김제 공소가 있는 전북 김제 화율리 일대에도 버스타고 20분만 나가면 교황청과 일치한 천주교 전주교구 수류성당이 있다. 여기서도 주일미사는 매주 일요일 봉헌된다. 따라서 대한민국에 거주/준거주하고 있는 한국인/외국인 가톨릭 신자가 (현 교황청과 2차 바티칸 공의회에 대한 고의적 반감을 가지고 교리를 무시하고 죄를 지으며 일부러 나가는 경우를 제외하고) 성 비오 10세회나 마리아의 군대 단체의 성당을 일반 성당 대신해서 나갈 어떤 교회법적, 교리적 근거도 찾을 수 없다.[44] 1996년까지는 한국 가톨릭에서도 사용했었다. 1997년에 기도서가 전면 개정되면서 현재와 같은 용어를 사용하게 된 것으로, 성신을 성령으로 대체하는 것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45] 특별히 부활시기에 외우지 않는 일반적인 삼종경을 말할 때는 "평시삼종경"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