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 캘러웨이
1. 소개
前 뉴욕 메츠 감독. 현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투수코치.
현역이었을 때 한국프로야구 현대 유니콘스, 대만프로야구 퉁이 라이온즈에서 뛰었으며, 팬들 사이에서는 '캘선생'으로도 불렸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었던 선수 가운데서 은퇴 후 가장 크게 성공한 케이스로 꼽힌다. 스캇 쿨바 역시 은퇴 후 크게 성공한 케이스.
2. 선수 시절
2.1. 데뷔 이전
야구 명문 '저먼타운 고교' 출신이다. 당시 155km/h의 강속구를 보유한 파이어볼러로 활약하면서 3년 간 21승 1패라는 먼치킨급 성적을 기록했다. 2학년 때 69이닝 동안 156개의 삼진을 잡은 기록도 있다고. 그러나 고교 졸업반 시절에 찾아온 팔꿈치 통증 때문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지명을 포기하게 되었고 대신 미시시피 대학에 야구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팔꿈치 통증으로 결국 과거의 강속구를 포기했다. 대신 다양한 구종과 제구력으로 승부하는 기교파 투수로 변신했고 MLB 신생 팀이었던 탬파베이 데블레이스에 지명되었다.
2.2. 메이저리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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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탬파베이 데블레이스가 7라운드에서 지명하면서 프로에 입단했다. 마이너리그에서 숙성을 거쳐 1999년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고 승리투수가 되는 기쁨을 누렸으나 그후에 인상적인 피칭을 보여주지 못했고 2001 시즌 후 애너하임 에인절스로 트레이드되었다. 2002 시즌 후반기에는 애런 실리의 부상으로 땜빵 5선발로 뛰기도 했으며 6경기 나와서 2승 1패의 성적을 올렸다. 그해 에인절스가 우승을 차지하면서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도 손에 넣었다.
2003 시즌 후 방출되었고 텍사스 레인저스로 팀을 옮겼으나 부상으로 수술대에 오르면서 시즌을 날렸다. 이후 FA를 선언했으나, 오퍼가 마이너 계약뿐이었기에 2004 시즌이 끝나고 아시아 무대를 밟는다. 여담으로 국내 야구의 희망이자 레전드 '''박찬호와 함께 한솥밥을 먹던 시기이기도 하다.'''
2.3. 한국프로야구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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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니콘스 시절.
2004년 팀의 1선발 에이스로 뛴 마이크 피어리[1] 를 대신하여 현대 유니콘스와 계약했다.
당시 팀의 투수 맏형 정민태, 2선발 김수경, 신인왕 오재영이 동반부진하던 2005 시즌 197 1/3이닝을 소화하면서 16승 9패로 다승 2위, ERA 3.97로 무너져가던 팀의 에이스 역할을 해 줬고 재계약에 성공했다. 하지만 현대 유니콘스는 캘러웨이 덕에 7위를 하면서 최하위는 면했지만[2] , 구단 커리어에 있어서 가장 나쁜 성적을 기록했다.
2006 시즌에는 자신이 개발한 너클포크 등의 변화구를 새로이 장착했다. 166 1/3 이닝 동안 14승 7패 2.87로 역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현대의 마지막 가을잔치의 1등 공신이 되었고 플레이오프 1차전 선발 투수로도 등판했다. 2006 시즌이 끝나고 재계약하면서 2007 시즌에도 한국에서 뜀이 확정되었다.[3]
그러나 2007 시즌 전부터 잔부상으로 우려를 샀다. 예상대로 시즌 초부터 무너져내렸고 부상 탓에 선발 로테이션에서 자주 빠지기도 했다. 결국 부상 공백이 길어지자 8월 19일 임의탈퇴 형식을 통해 방출되었고 2승 6패 4.18의 성적을 남긴 채 한국 무대를 떠났다. 임의탈퇴 처리되면서 한국 무대에서 볼 일은 사실상 사라졌다.
2.4. 대만 프로야구 시절
2009년 퉁이 라이온즈와 계약했다. 11경기 동안 7승 3패 3.17을 기록하면서 호투했으나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고 이내 방출되었다. 그리고 대만에서의 활동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3. 코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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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투수코치 시절.
2009년 은퇴 후 12월부터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마이너리그 클래스A 팀인 레이크 카운티 캡틴스의 투수코치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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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투수코치로 승격되었다! MLB 중계를 보다 익숙한 이름을 보고 놀라는 팬들도 있을듯?
2013년 시즌 후반기부터 우발도 히메네즈를 살려내면서 좋은 코치라는 소리를 듣더니, 2014년 현재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코치로 불리고 있다. 투코로서의 활약상
그리고 캘러웨이의 최대 역작이라고 할 수 있는 코리 클루버가 킹 펠릭스를 제치고 '''사이 영 상을 수상'''하면서 캘러웨이의 가치는 나날이 상승하고 있는 중이다. 또한 대니 살라자르, 트레버 바우어, 조시 톰린 등 어딘가 영 미덥지 않거나 설익은 투수들도 예전보다 나아지게 했으며 그 결과 2016년 월드 시리즈까지 팀이 진출하는 데에 큰 공헌을 했다. 2017년에도 BA순위에 언급조차 된 적 없었던 마이크 클레빈저가 2~3선발급으로 키워내는 등 본인이 원히트 원더가 아님을 증명해냈다. 또한 17년 인디언스는 팬그래프(fwar) 기반으로 했을 시 그렉 매덕스, 존 스몰츠, 톰 글래빈의 1990년대 애틀란타를 뛰어넘는 수치를 보여주는 역대 최강의 마운드로 평가받는데 캘러웨이는 인디언스 피칭 디벨롭먼트 시스템의 중추핵이다. 2017년이 계약 마지막해로 많은 구단이 군침을 흘리고 있는데, 본인이 매니저 역할을 맡기 원한다면 인디언스로써는 재계약할 방법이 요원해보인다. 그리고 2017년을 마지막으로 캘러웨이는 많은 인디언스 팬들의 아쉬움 속에 인디언스를 떠나게 된다.
2019년 뉴욕메츠에서 해임된 뒤, 2020 시즌부터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의 투수코치로 부임하게 되었다. 트라웃이 중심인 타선에 비해 에인절스는 투수진이 매우 참혹하다 보니 투수코치로써의 경력이 화려한 캘러웨이에게 맡겼다. 에인절스의 신임 사령탑인 조 매든 감독을 보좌하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지난 2016년 월드시리즈 당시 상대팀으로 맞붙었던 적이 있었던 두사람의 만남이 되었다. 결국 이적생인 딜런 번디와 유망주 앤드류 히니 이외에 답이 없는 선발과 등판하면 불을 화려하게 불태워 더 답이없는 중간계투 투수진을 보여주며 서부지구 4위로 시작하며 중반까지 최약체로 평가받던 시애틀보다 순위가 지쳐지다가 가까스로 3위를 차지한 에인절스에서의 첫 시즌은 그야말로 대실패로 끝났다.
4. 감독 시절
4.1. 뉴욕 메츠
테리 콜린스 감독의 은퇴로 공석이 된 뉴욕 메츠의 신임 감독으로 2017년 10월 22일자로 그가 선임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4] 계약 기간은 3년이라고 한다. 그의 투수 조련 경력을 볼 때 메츠 프런트의 의도는 당연히 선발 4인방의 육성으로 보인다. 감독 선임 직후 메츠는 캘러웨이와 인연이 있는 마이크 나폴리와의 FA 계약, 제이슨 킵니스와의 트레이드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캘러웨이가 클럽하우스 리더를 원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아드리안 곤잘레스를 영입하면서 클럽하우스 리더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리고 시즌 초반 뉴욕 메츠가 선발진의 약진과 함께 상승세를 타자, 캘러웨이 매직이 아니냐면서 많은 메츠 팬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캘러웨이의 메츠가 좋은 성적을 내면서 그와 인연이 있는 한국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여러 기사들이 나오고 있다.MLB 뒤흔드는 '동태탕 마니아' 캘러웨이[5] 감독이 되기까지KBO투수 시절의 추억캘러웨이 매직 하지만 맷 하비 이슈와 함께 제이콥 디그롬이 부상으로 이탈하고 급기야는 5월 9일 신시내티 레즈와의 경기에서는 라인업 제출 실수로 인한 부정위 타자 이슈까지 나오면서 어느덧 18승 17패로 승패마진 +1까지 떨어진 상황. 지난 시즌 뉴욕 메츠의 상황을 그대로 맛보며 극한직업을 5월부터 경험하고 있다.그 이후에도 하락세는 계속되어 전반기를 마쳤을때는 '''NL 꼴찌'''로까지 떨어졌다.시즌 초반 11승 1패로 시작하던 게 무색할 정도.
2018년 시즌만 보면 그를 떠나보낸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메츠의 감독으로 부임한 캘러웨이 본인 모두에게 루즈루즈로 남아버린 시즌이 되었는데, 인디언스는 그가 떠난 뒤 2017년까지의 철벽불펜이 무색하게 2018년에 급격하게 투수력이 약해진 모습을 보이고 있고, 캘러웨이 본인 또한 2018년 시즌은 감독으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2019년 9월 24일에 기존에 쓰던 36번이 뉴욕 메츠의 레전드 좌완 투수 제리 쿠스만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면서 등번호를 26번으로 변경했다.
2019년 8월 말부터 팀은 연승가도를 달리며 포스트시즌에 대한 희망이 생겼으나 이내 다시 내려앉으면서 결국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고 2019년 10월 3일 결국 '''경질되었다.''' 캘러웨이는 계약대로 라면 2020년까지 뉴욕 메츠의 감독을 할 예정으나 결국 투수진은 갈릴 대로 갈리고[6] 팀은 내려앉으면서 코치 시절 좋은 평가를 감독을 하면서 다 날려먹었다.[7]
어쨌든 1971년 이후 48년만에 메츠 감독으로서 감독 마지막 해 승률을 5할로 끝낸 첫 인물이 되었다.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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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음식에도 잘 적응했고, 특히 동태찌개를 중독 수준으로 즐겨먹었다. 본인은 동태탕으로 알고 있었다고. # 삭발에 동참하거나 가족들과 함께 한국식 이름[8] 을 정하는 등 한국 생활에 훌륭하게 적응하는 모범 용병 중 한 명이었지만, 끝은 좋지 못했다. 현대 유니콘스의 재정 악화로 인한 연봉 지급 문제[9] 때문에 구단과의 마지막이 안 좋았다고. 팀 동료들과 구단 식구들에게 인사 없이 떠났다고 한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 부부 사이[10] 에 아이가 생기지 않아 고민이었는데 당시 현대의 마무리투수였던 조용준의 덕분에(?) 아이를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조용준은 인삼 매니아였는데 친하게 지내던 캘러웨이에게 '체력에 좋다'면서 '''인삼 드링크'''를 강추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쓴맛을 참아가며 억지로 인삼을 먹었지만 체력 회복에 효과[11] 를 보면서 꾸준히 먹게 되었고, 이후 인삼드링크의 효험 덕에(?) 한국에서 2세를 얻게 되면서 조용준을 아이의 대부로 삼겠다고 했고 나중에 가서는 먼저 조용준에게 인삼 드링크를 달라고 조를 정도로 완전히 인삼 마니아가 되었다는 후문이 있다.기사 이후 미국으로 스프링캠프에 갔을 때 아내 안나가 조용준을 보면 항상 대부라고 부르고 인사를 했다는 것을 보아 진짜 대부가 되었는지 아이를 갖게한 은인이라서 대부라고 하는 것인지 모르나, 어쨌든 대부로 대우하는 듯.[12]
2005년과 2006년 KBO 올스타전에 출전하기도 했다. 당시 한국 역대최고 데뷔시즌을 장식하던 류현진과 맞대결을 하기도 하엿으며 2005년에는 올스타 행사중 열린 투수 최고 슬러거부문에 참가하여 1등을 차지했다.
취미는 사냥과 노래다. 컴퓨터에 1000곡이 넘는 팝송을 갖고 다녔다고 하며 한국에 온 후에는 부인과 노래방을 종종 찾았다고 한다.
유독 '''삼성 라이온즈''', '''KIA 타이거즈'''에게 무지막지하게 강했다. KIA 상대로는 선발 7연승을 거두었고, 통산 삼성전 '''8승 0패'''! 하지만 캘러웨이에게는 기나쌩 이미지는 별로 없고 삼나쌩 이미지가 월등히 강한데, 우선 당시 삼성과 현대가 강한 라이벌 관계였던데다, 캘러웨이가 있던 3년간 KIA는 848을 찍던 '꼴아 고양이즈(...)' 시절인데 반해 삼성은 '''114를 찍었는데도''' 캘러웨이만 만나면 작아졌기 때문. 이 때문에 '''더스틴 니퍼트'''에게 계속 털릴 때에도 삼성 팬들은 '''그래도 캘러웨이 때 보단 낫지''' 라고 자기위로를 할 정도였다. 요런 기사가 뜨기도 했다.
캘러웨이가 한창 잘 나갈 때, 동명의 골프용품 업체 캘러웨이의 실적이 올라갔다는 말이 있다. 캘러웨이를 자사 모델로 섭외하려다가 불발되었다고 한다.
강정호가 신인일 때, 캘러웨이와 한솥밥을 먹은 인연으로 미국에서 따로 만남을 가진 듯 하다.[13]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2016년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여 시카고 컵스와 3~5차전을 펼치러 리글리 필드에 왔을 때 현지 중계를 하러 정병문과 허구연이 갔는데, 허구연이 그에게 던진 질문에는 저게 뭔가 싶은 내용도 있었다.
2019년 스프링 트레이닝 기간 닭 요리를 해먹다가 닭이 덜 익어 배탈에 걸렸다고 한다.
박명환야구TV에서 조용훈이 자신의 물건보다 작다는 드립을 쳤다.
6. 논란/사건사고
6.1. 성추문 연루
한국 시각 2월 2일, 성추문에 연루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엠스플뉴스] 또 불거진 MLB 성추문…이번엔 '前 현대' 캘러웨이 코치 내용에 따르면 캘러웨이가 몇몇 여성들에게 5년에 걸쳐 다수의 음란성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한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즉각 성명문을 발표하며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으며, 그가 거쳐갔던 뉴욕 메츠, 현 소속팀인 에인절스 역시 모두 유감을 표하며 사무국의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성명문을 발표했다. 특히나 뉴욕 메츠는 제레미 포터 前 뉴욕 메츠 단장이 비슷한 구설로 인해 취임 한 달만에 해고당한 일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골머리를 앓게 되었고, 더군다나 모 매체에선 캘러웨이의 이러한 행각을 2018년에 이미 알고 있었다는 보도를 내며 당사자 못지 않게 논란이 되고 있다.
일단 캘러웨이 측은 "서두르는 것보다는 구체적으로 답변할 기회를 원한다", "자신의 모든 행동은 상대와 합의된 것이었으며, 내 아내도 그들의 주장에 관해 알고 있다" 라는 다소 미심쩍은 부인하는 입장을 내놓은 상태지만, 사무국과 각 구단이 성명문을 발표해 버린 상황에다 워낙 증인들의 증언이 많고 구체적이라, 캘러웨이에게 불리한 상황이다. 만약 사실로 밝혀진다면, 투수코치에서 내려와야하는 것은 물론, 더 이상 MLB에서 지도자 생활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결국 에인절스는 캘러웨이에게 정직 처분을 내렸다.
7. 연도별 주요 성적
8. 관련 문서
[1] 피어리가 메디컬 테스트를 거부하였다.[2] 최하위는 의외로 KIA 타이거즈 였다.[3] 유니콘스 외인 최초로 3년 연속 뛰었다. 브룸바는 2007년 컴백[4] KBO 리그를 거친 외국인 선수 출신 최초의 메이저리그 감독이다.[5] 이 칼럼을 쓴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는 현대 유니콘스 빠돌이 출신이다. [6] 사실 캘러웨이는 메츠 감독 임기 내내 불펜을 틈만 나면 멀티이닝으로 굴리기로 유명했다.[7] 사실 뉴욕 메츠의 아쉬운 성적때문인지 전부터 경질 찬성 여론이 높기는 했다. 선수 육성에는 재능이 있지만 감독으로서는 영 별로라는 평.[8] 휴식일에 이태원을 자주 찾았다. 외국인들에게는 이태원은 그 자체 유명한 곳이다 그리고 자기 이름도 이태원으로 정했단다. 아예 '''이태원'''으로 불러달라고 했을정도였다.[9] 캘러웨이가 현대에 잔여연봉과 수술비용을 요구했다고 한다.[10] 결혼 4년차 정도 되었다 라고 언급[11] 먹어보면 알겠지만 쓰면서도 달달한 느낌을 아는 사람들은 자주 먹는다.[12] 박명환야구TV 에서 조용준이 직접 인증을 했다. 최근에는 김선신 아나운서가 LA에서 활동 중인 류현진의 소속 팀의 돈 매팅리 감독에게 홍삼을 선물로 줬는데 늦둥이를 가진 일화도 있다.[13] 이 기사가 나온 시기인 2015년은 마침 내셔널 리그 중부지구와 아메리칸 리그 중부지구의 인터리그가 잡힌 시기이기도 했다. 강정호는 06년, 07년 1군에서 캘러웨이와 함께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