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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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20대 국방부 장관
서종철
徐鐘喆 | Seo Jong-chul
'''
<colbgcolor=#ff0000><colcolor=#fff> '''출생'''
1924년 5월 26일
경상남도 양산군 동면 사송리#
(現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사송리 사배마을)
'''사망'''
2010년 11월 20일 (향년 86세)
서울특별시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본관'''
달성 서씨[1]
'''자'''
홍대(鴻大)
'''재임기간'''
제19대 육군참모총장
1969년 9월 1일 ~ 1972년 6월 1일
제20대 국방부 장관
1973년 12월 4일 ~ 1977년 12월 20일
제1-2대 KBO 총재
1981년 12월 11일 ~ 1988년 3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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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0000><colcolor=#ffffff> '''부모'''
아버지 서갑수, 어머니 순흥 안씨
'''배우자'''
정효기
'''자녀'''
아들 서정환, 서국환, 서진환, 서승환, 서주환
딸 서성림
'''친인척'''
손자 서배준
손녀 서지영
'''학력'''
육군보병학교 (졸업)
육군포병학교 (졸업)
육군대학교 (졸업)
'''종교'''
유교(성리학) → 불교 → 개신교
'''신체'''
185cm
'''경력'''
육군보병학교 교장
대통령비서실 안보담당 특별보좌관
제20대 국방부 장관
한국반공연맹 이사장
한국총력안보중앙협의회 회장
제1-2대 KBO 총재
신민주공화당 외교안보행정특보위원
자유민주연합 외교안보행정특임고문
'''군사 경력'''
'''임관'''
육군사관학교 (1기)
'''복무'''
일본제국 육군
1943년 ~ 1945년
대한민국 육군
1946년 ~ 1972년
'''최종 계급'''
대장 (대한민국 육군)
'''주요 보직'''
제31사단장
제25사단장
제6군관구사령관
육군참모차장
육군제1야전군사령관
'''참전'''
제2차 세계 대전
6.25 전쟁

1. 개요
2. 일생
2.1. 출생
2.2. 일본군
2.3. 대한민국 육군
2.4. 관료 시절
2.5. 기관단체장 시절
2.7. 별세
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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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육군의 전 군인.

2. 일생



2.1. 출생


1924년 경상남도 양산군(현 양산시) 동면 사송리 사배마을에서 아버지 서갑수(徐甲洙)와 어머니 순흥 안씨 사이의 2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달성 서씨이며 종교는 불교에서 개신교로 개종.

2.2. 일본군


일제강점기 말기 일본군 소위를 지냈다. 인터넷엔 소좌(소령) 출신이라고 잘못된 정보가 돌아다니는데 1945년 종전 당시에 21세인 사람이 소좌 계급일리가 없다. 황족이나 왕공족은 가능하겠지만 서종철은 황족은커녕 귀족도 아니다. 학병 출신으로 강제 징병되어 그 군속에서 초급 장교 양성제도인 일본육군예비사관학교를 졸업했고, 강제였기 때문에 친일인명사전에는 등재되지 않았다.

2.3. 대한민국 육군


1946년 육군사관학교(1기)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 1기로 입대하여 장교생활을 시작하였다.
6.25 전쟁 초기 수도지구방위 임무를 맡고 있던 연대장이었다.
1961년 박정희5.16 군사정변을 일으킬 때 당시 제6군관구사령부의 사령관[2]으로 자신의 사령부가 쿠데타 지휘본부로 쓰이자, 5월 17일 참모장 김재춘 대령을 통해, 쿠데타 참여를 권유 받아 쿠테타 세력에 참여하였다. 당시 박정희의 육사 1기 선배였다. 육군사관학교 교관 시절 가르쳤던 생도 중에 전두환노태우가 있었다.
박종규 대통령경호실장, 차지철 대통령경호실장과 유학성, 황영시 등과 같이 전두환, 노태우, 손영길, 김복동, 정호용 등이 결성한 군부 내 사조직 하나회를 후원하였다. 영남출신 장교들의 대부로 불렸다.
1966년 9월부터 1969년 4월까지 제1야전군사령부 사령관, 1969년 4월부터 9월까지 육군참모차장, 1969년 9월부터 1972년 5월까지 육군참모총장을 지냈다. 육군참모총장 시절 전두환, 노태우가 그의 수석부관이었다. 대장으로 예편하였다.

2.4. 관료 시절


[image]
이후 1972년 9월부터 1973년 12월까지 대통령비서실 안보담당 특별보좌관을, 1973년 12월부터 1977년 12월까지 국방장관을, 1978년 4월부터 1980년 5월까지 다시 대통령비서실 안보담당 특별보좌관을 지냈다.
국방장관 재직 당시였던 1975년 4월 9일. 인민혁명당 사건 '인혁당재건위' 사건 당사자들에 대한 사형 집행에 최종 사인을 했다. 당시 사형 집행은 불과 18시간 만에 집행되었으며,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 사건은 이후 무죄로 판명되었다.

2.5. 기관단체장 시절


1981년 3월부터 반공연맹(현 한국자유총연맹) 이사장을 지냈다. 반공연맹 이사장이던 1981년 12월 KBO가 출범하면서 초대 총재에 선출되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집권 세력들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기에 프로야구가 정치권의 입김에 더 이상 휘말리지 않게 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러한 위치에 있었던 덕에 프로야구 출범이 순조로웠다. 프로야구 출범 직전 정부에 신청한 야구장 조명탑설치, 보수공사 예산이 거부당하자 노태우 정무2장관한테 전화 한통으로 바로 해결한 사례도 있다. 이후 1983년 4월까지 반공연맹 이사장을 지냈고, 1988년 3월까지 한국야구위원회 총재를 지냈다.

2.6. KBO 리그 총재


KBO 출범 이후 초대 총재로 추대되었는데 KBO 리그 출범이후 정치권의 입김에 흔들릴수 있는 상황에서 기틀을 잡아준 총재로 평가받는다. 동대문야구장에서 펼쳐진 MBC 청룡-삼성 라이온즈의 개막전에서 전두환이 시구할 때 뒤에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전두환, 노태우와의 인연을 통해 야구계에 대한 정부지원을 이끌어 냈고 대기업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해 낼수 있게 했다. 1988년에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면서 KBO 명예총재직에 올랐다.
KBO 총재로서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였다.관련 블로그
재임기간은 1981년 12월 11일~1985년 4월 1일, 1985년 4월 1일~1988년 3월 27일.

2.7. 별세


2010년 11월 20일에 사망했다. 향년 86세.

3. 여담


키가 185cm로 엄청나게 컸다. 거기에다 풍채까지 좋아서 대구 달성 서씨 친척들 중에 전해오는 말로는 누가 봐도 장군 같았다고 하며 육참총장에 대통령실 보좌관, 국방부 장관같은 고위직을 지냈으면 자신의 가족이나 친척들을 군으로 불러들여 키워주면서 파벌 같은 것을 형성할 법도 한데 그러지도 않았기에 주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1970년대에 국방부 장관 재직 시에, 대구의 제2군 사령부(現 제2작전사령부)의 운전병 으로 꽂아줘서 편하게 군생활을 하던 당조카 하나가 있었는데 집안의 독자라 오냐오냐 커서 그런지 그것도 못 참고 맨날 징징대다가 어느 날 군용차로 사고를 내고 탈영을 하는 대형사고를 쳤다.
그러나 서종철 장관이 수습을 해준 덕에 아무 일도 없이 그냥 외출처리 되어 소대장 손을 잡고 그 날 밤에 원대복귀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탈영한 조카는 아무 대책도 없이 기차를 타고 집으로 와서 휴가 나왔다고 뻥친다음 속 편하게도 밥먹고 잠을 자고 있었다는데, 사실 그가 집에 도착하기 훨씬 전에 아들내미가 사고치고 탈영해서 아마 집으로 갈텐데, 뒷처리 해주러 사람들이 갈 거니까 혹시 집으로 오거들랑 어디 허튼 짓 하러 못 가게 밥이나 먹여서 붙잡아 놓으라고 연락이 갔다고 한다...
넷째 아들이 서승환 연세대학교 총장으로 박근혜 정부국토교통부 장관을 지냈으며, 배우 서배준과 그룹 샵 출신 배우 서지영은 그의 손자·손녀이다.[3]

[1] 감찰공 근중(近中)파. 달성 서씨 22세.#[2]수도군단[3] 두 사람 모두 차남 서국환(徐國煥) 소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