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여자대학교
1. 개요
聖心女子大學校
Sacred Heart Women's University
천주교 성심수녀회 한국관구에서 세운 성심학교 시리즈[1] 중 하나였으나, '''1995년 가톨릭대학교에 합병'''되어 사라진 대학교이다. 현재는 '''전주 성심이 아닌 서울''' 성심여자중학교와 성심여자고등학교만 남아 있다.[2][3]
하지만 성심수녀회는 전 세계 41개국에서 교육 사도직을 하는 수도회인 만큼, '''성심학교는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수없이 많다.''' 바로 옆의 일본에도 세이신 여학원이 있고, 미국 뉴욕에도 Sacred Heart 여자중ㆍ고등학교가 있다.
2. 역사
1957년 성심수녀회는 재단법인 성심학원을 세우고 '''1964년 1월 강원도 춘천시 옥천동에 성심여자대학을 개교''', 초대 학장으로 바바라 니콜스 수녀가 취임하였다. 국어국문학과, 외국어외국문학과, 사회사업학과, 화학과, 가정학과, 음악과 등 6개 학과 140명의 학생을 인가받았으나, 절대평가제로 입학가부를 결정했던 당시의 입학규정에 따라 97명만 입학하였다.
1967년에는 외국어외국문학과가 영어영문학과와 불어불문학과로 분리되었으며, 식품영양학과가 개설되었다. '''1974년 경기도 부천시 역곡에 부천분교를 설립'''하여 3~4학년을 부천분교에서 수업받게 하였다. 1979년까지 5년 동안 수학과, 경영학과, 심리학과, 생물학과, 의류직물학과, 중어중문학과, 국사학과, 회계학과, 사회학과가 개설되었으며 1981년에는 대학원까지 인가를 받았다.
'''1982년 춘천 본교를 폐쇄하고 부천 분교로 통폐합'''하였으며, 춘천 본교 터는 성심자선병원을 운영하던 학교법인 일송학원에서 받아 대학을 세우게 되는데 바로 그것이 현재의 한림대학교이다. 1964년에 세워진 성심여대 본부 건물은 현재도 한림대학교의 공학관 건물로 쓰이고 있다.
'''1992년 성심여자대학교로 승격되어 종합대학'''이 되었으나, 재정난으로 대학 운영이 어려워진 성심수녀회에서 1994년 11월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운영하는 학교법인 가톨릭학원에 무상으로 넘겼다. 의과대학과 신학대학만 가지고 있어서 성장에 한계를 느끼던 가톨릭대학교는 성심여자대학교와 통합을 선언, '''1995년 1월 1일부로 통합'''하여 종합대학교인 가톨릭대학교로 출범하였다.
이에 따라 '성심여대'라는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이 되었다.
3. 여러 정보
성심학교의 '''초기 학풍은 그야말로 소수정예에 귀족 학교'''였으며, 이 학풍에 동감한 여러 고위층들이 성심학교에 딸을 입학시켰다. 1974년 부천 분교가 생기기 이전의 성심여대는, 소규모 학생들만을 모집하여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게 하였다.
성심학교가 대규모로 커져 귀족적 학풍이 조금씩 옅어지던 와중에도 많은 고위층 딸들이 다녔으며, 외동딸이 성심여대 출신인 정주영 회장은 1980년 부천 분교에 도서관을 무상으로 지어 기증하였다.[4]
그래선지 몰라도 성심여대 졸업생이 대부분인 '''가톨릭대학교 성심 동문회'''는 정말 자존심 높은 인간들이 있었다. 1995년 통합 당시는 '''"귀족적인 성심여대와 가톨릭대학교를 통합할 수 없으며, 남학생을 받아들이는 것은 격이 떨어지는 행동"'''이라거나 '''"1995년 가톨릭대학교/성심교정에 입학한 학생들부터는 우리 동문이라 인정할 수 없다"'''고 막말을 해대 어그로를 끌었다. 현재는 학교에서 성심 동문회에 대해 잘 대우를 해주고, 성심 동문회는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주고, 시험기간이 되면 간식을 주는 등의 여러가지 행사를 하고 있다.
성심동문회는 현재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 내에서 수익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바로 니콜스관 4층에 있는 까페씨유가 그것이다. 다솔관, 니콜스관, 마리아관, 비루투스관에서 수업을 듣다가 어디서든 10분 내에 까페씨유에 도달하여 커피를 마실 수 있기에 사람들이 들끓는다. 하지만 일단 교내 다른 카페에 비해 맛이 없고, 커피를 미리 추출하여 냉장고에 보관한다거나 좋지 않은 재료를 쓴다거나, 서비스가 정말 좋지 않다거나 하여 말이 많다. 동문회에 찍힌 단체에는 세미나실도 빌려주지 않았다가, 학보사에서 이점을 밝혀서 고쳐졌다. 동문회의 정을 생각해서 이곳을 이용해 줄 것을 동문회에서 홍보하고 있지만, 이 사실을 아는 학생들은 절대로 이 카페에 가지 않는다. 결국 2014년 경에 동문회는 카페에서 손을 뗐고, 카페씨유는 가톨릭 바리스타협회에서 운영하게 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1960년대 후반부터 성심수녀회에서는 수도권 지역에 성심여대를 유치하기 위해서 이곳저곳의 터를 알아보았다고 한다. 그 중에 후보지로 올랐던 곳이 바로 부천시 역곡과 현재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근처였다. 하지만 당시 테헤란로는 논밭만 있고 소가 농사를 지었던 깡촌이었기 때문에, 수녀님들은 토론을 거쳐 부천시 역곡에 새 학교 부지를 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테헤란로에 학교 부지를 정했더라면 아마 성심여대는 한국 최고의 여자대학교가 되었을지도!![5][6]
1980년대에 학생 시위가 절정으로 치달을 때 성심여대에서도 학생시위가 일어났는데, 현재의 니콜스관 앞에서 총학생회가 단식 농성을 했다고 한다. 낮에는 학생들의 주장을 절대로 인정할 수 없고 교섭에 응할 수도 없다고 나오던 수녀님들은, 밤이 되면 '''"여자는 단식을 하면 몸이 상한다"'''며 먹을 것을 싸가지고 와서 진심으로 학생들을 걱정하였다. 그래서 총학생회는 그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고 전해진다. 시대가 시대이기에 낮에는 단식 농성과 매정한 학교로 만나 싸웠지만, 밤에는 여학생들과 수녀들로 만나 서로의 고충을 이해하기에 바빴다고.
문학가 피천득이 성심여대에 한 학기 출강하기도 했다. 자세한 사연은 그의 수필인 인연 항목 참조.
4. 관련 문서
[1] 성심국민학교(여학교), 성심여자중학교, 성심여자고등학교, 성심여자대학교. 성심국민학교는 1982년 폐교되었다.[2] '''여기서 말하는 성심여자중ㆍ고등학교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에 있는 학교이다. 전주성심여자중학교와 전주성심여자고등학교는 천주교 전주교구 산하의 교육기관인 학교법인 해성학원에서 운영하는 학교로, 성심학교 시리즈와는 관련이 없다.'''[3] 사실 서울 성심여자중학교도 1970년대 중반에 폐교되었다가, 2002년에 재개교하였다.[4] 현재 이 건물은 비루투스관으로 쓰이고 있으며, 강의동으로 쓰인다. 그래서 건물이 낡아 햇빛이 새어도 못 부순다는 소문이 있다.(…)[5] 국민대학교도 강남구 대치동에 학교부지를 마련했으나 똑같은 이유로 지금의 정릉에 캠퍼스를 만들었으며, 단국대학교 또한 서초구 내곡동에 학교부지를 마련했으나 같은 이유로 학교 이전을 미루다가 결국 이전을 못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또한 강남구 자곡동에 학교부지를 마련해 추후 이문동에서 옮길 예정이었지만 해당 부지가 그린벨트로 묶여있고, 돈이 없어 옮기지 못하다가 강남보금자리주택지구로 지정되는 바람에 정부에 대부분 수용되고 말았다. 해당 부지에 대한 설명은 해당 대학교 항목 참조.[6] 반대로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똑같이 깡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거기다 교회를 짓자고 목사 이하 신자들이 깡촌이거나 말거나 그냥 무조건 "하나님의 뜻"이라며 박박 우겼고 결국 그 자리에 교회를 세웠는데, 그 이후 거기에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63빌딩, KBS, MBC 등 쟁쟁한 건물들이 마구 들어서기 시작하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급의 대박이 터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