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교리
나는 이 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이에게 증언합니다. 누구든지 여기에 무엇을 보태면, 하느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보태실 것입니다.
또 누구든지 이 예언의 책에 기록된 말씀 가운데에서 무엇을 빼면, 하느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거룩한 도성에서 얻을 그의 몫을 빼어 버리실 것입니다.
요한묵시록 22장 18~19절
1. 개요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의 교리를 서술한 문서.
2. 상세
신천지의 교리는 주로 요한계시록을 중심으로 한 성경풀이가 주를 이루고 있다. 교주 이만희는 '계시록의 진상', '계시록의 실상' 등의 책을 썼다. 요한계시록 풀이 찬송을 자체적으로 만들 정도. 한국 개신교계에서 신천지를 사이비 종교로 간주하고 있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신명기 4장 2절 등에서도 명하는 말을 가감하지 말고 지키라고 선언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요한계시록이 말씀을 가감하지 말라는 선언을 가장 강력하게 하는 것은 맞다.
요한계시록 뿐 아니라 이만희의 저서 '천지창조' '예수 그리스도의 행전'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성경 전반과 4복음서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을 적어놨다. 이만희의 지시가 금과옥조로 지정되며, 이를 총회에서 각종 교육자료에 제작하여 신도들에게 확대 재생산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요한계시록을 결과론적으로 대입하여 그 외 나머지 성경분야에서 근거와 뼈대를 만든다는 점에서 신천지식 논리[1] 가 확대 재생산되며 신도가 스스로 신천지의 논리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해놨다.
이 외에도 철저하게 성경풀이를 중심으로 성장한 교단이라 성경의 실생활 적용에 대해서는 상당히 엄격하다. 위에 언급된 세례 요한의 격하 문제도 그렇고, 보통 주기도문에 들어있는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에서 '대개'는 구절에 없다는 이유로 쓰지 않으며[2] , 사도신경은 성경에 나와있지 않은 기도라서 아예 안한다. 요한계시록에 사단에 비유된 짐승 혹은 부정적인 짐승으로 묘사되는 용, 뱀, 개, 돼지 등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교리상으로 부정적인 짐승은 그냥 상징적인 비유에 불과하기 때문에 먹거나 길러도 상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점에선 예수님이 선언하신 자유율법보다는 오히려 율법에 얽매여진 모습이 강하므로 신도들의 통제나 자기들의 교리나 통제력에 맞게 입맛대로 성경말씀을 취사선택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즉 기복신앙의 대형교회의 안티테제라는 명제가 적확하다고 볼 수 있다.
3. 형성 과정
자기네한테 유리한건 아무거나 가져다가 쓰는건 여타 사이비 종교와 별반 다를게 없다. 몇 년 전 남사고의 경전에 '신천지'라는 글자가 들어있는 것을 인용해서 '신천지는 과거 예언가도 예언했었다!'라고 한 흑역사가 있다.[3]
전체적으로 볼 때, 처음 들었을 때 '그럴 듯하네'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1950년대에서 80년대까지의 모든 신흥종교의 교리를 죄다 모아왔기 때문이다. 입문적인 교리는 신흥종교 중에선 그나마 논리적인 통일교 또는 신천지 창립 84년 당시 한창 날리던 JMS를 베껴서 이것저것 변형시켰기 때문에 타당하게 들리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교리에 깊이 빠져들수록, 천부교 계통의 도저히 봐줄 수 없는 또라이 기질이 보이기 시작한다. 천부교 계열이 얼마나 또라이인지는 문서를 참조해보면 안다. 그렇기에 말은 그럴 듯 하게 하지만, 실상을 보면 가히 원시신앙에 가까운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 이 두 교리를 이것저것 조합했기 때문에 두가지 교리가 서로 하나되지 않아 끊임없이 교리에 모순이 생기고, 교리가 바뀌는 것이다.
4. 성령관
'''삼위일체의 부정''' 이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신천지는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기독교가 아니다. 현재 그들의 보혜사(파라클레토스)가 이만희라고 한다면 그들은 삼위일체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위일체를 숭배하고 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위일체, 육위일체도 될 수 있는 것이다.[4]
이미 그들은 후술할 내용에서 또다른 보혜사(영의 보혜사, 육의 보혜사)와 성령을 구별지어 설명하고 있다. 이를 계1:1로 계시의 말씀을 종들에게 전달하는 사도요한 격 사명자로 이긴 자(계3:12,21) 새요한이라 지칭하고 있다.[5]
이러한 성령관은 성자의 영이 예수와 교주에게 시대에 따라 선택하였다고 주장하는 JMS 교리[6] 와도 비교할 만하다.
4.1. 성령을 가장한 유령관
그들은 성령을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아니라 성령의 글자를(Holy Spirit) 그대로 푼 '''성스러운 영혼'''이라고 본다(뒤에 후술할 '보혜사'와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성령인 하나님은 기독교에서 예수님, 하나님의 다른 위격이자 같은 실체의 하나님이다. 우리에게 임하시는[7] 존재이지 절대로 정령, 유령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 성경에 대해서 잘 모르는 한국 기독교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샤머니즘을 기독교에 삽입해서 신도들을 현혹시키는 것이다.
또한 설교자들은 설교중에 '성령이 하늘에서 깃들어서 사람이 나오는데' 라는 표현을 쓴다. 그리고 영혼이 자기들 식으로 신천지를 믿지 않는 악한 길에 빠지면 악령이 되고 신천지를 믿으면 비로소 성령이 된다고 한다. 이는 조로아스터교, 영지주의, 신토에서 볼 수 있는 영혼관이다. 인간의 영혼과 성령이 같은 종류의 영이지만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하는 말이다.
4.2. 보혜사 해석의 오류
결론적으로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ν)는 증거하고 변호하는 자, 대언자라는 뜻이다.[8] 즉 '하나님 앞에서 한 영혼을 의롭다고 증언할 수 있는 이'가 파라클레토스로, 성경에서는 보혜사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지칭하고 있고, 요한복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떠나고 나면 또 다른 보혜사, 바로 성령이 올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도행전 방언 사건 전까지 사도들과 제자들이 성령 간구를 한 것과도 이어진다.
이 말은 성경에서 다양하게 사용되었는데 보혜사라고 번역된 부분도 있고 대언자라고 번역된 부분도 있다.
이런 주장 때문에인지 이만희가 하는 말이 곧 대언이며 대언하니까 보혜사라고 말해도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설교 영상이 돌아다니는데, 문자 그대로 가당치 않은 소리다. 파라클레토스는 단순히 말씀을 선포하고 전하는 존재가 아닌 성부 하나님 앞에서 성도를 위해 옳다 함을 친히 간구하는 존재다. 죄인일 수 밖에 없는 인간을 의롭게 하는 존재들로, 첫 보혜사는 성자 하나님인 예수 그리스도, 나중 보혜사는 성령 하나님인 것이다. 즉, '''인간은 파라클레토스가 될 수 없다'''. 신천지는 몇몇 구절을 뽑아 보혜사를 격하하는 셈이다.
4.3. 보혜사 성령과 오순절 성령
요한 복음서 14장에서 예수는 사도들에게 '보혜사'(공동번역에서는 협조자, 가톨릭 번역에서는 보호자) 성령을 보내겠다고 약속한다. 개신교를 비롯한 일반적인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약속한 이 보혜사 성령이 오순절날 다락방에 모인 신도들에게 내림으로써(사도행전 2장) 그 약속이 이루어졌다고 해석한다.
하지만 신천지에서는 사도행전에서 오순절날 신도들에게 강림한 성령은 예수가 약속한 보혜사 성령이 아니고, 구약 요엘서에 예언된 성령이라고 주장한다. 즉 요엘서에서 예언한 성령과 예수가 보내주겠다고 한 성령이 서로 다른 성령이라는 것이다. 신천지의 주장에 따르면, 구약에서는 성부가 요엘 선지자를 통해 오순절 성령을 약속했고, 신약에서는 성자가 사도들에게 보혜사 성령을 약속했다고 보는 것이다. # 이런 식의 풀이는 신천지 특유의 '말씀의 짝 교리' 및 기독교복음선교회의 구약-신약-성약의 시대 구분과도 맞물린다.
이것이 말이 안 되는 이유는 원문 성경을 보면 나온다.
[출처] 여기서 ἄλλον(알로스)는 '''같은 종류이지만 다른'''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3D 프린터로 두 개의 똑같은 제품을 만들었다고 하자. 처음 만든 것과 나중에 만든 것은 똑같이 생겼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다른''' 물건이라고 구분할 수 있다.[9]
고로 이때 성경에서 사용한 보혜사(파라클레토스)는 이전에 왔던 보혜사랑 완전히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보혜사가 인간이라면 성경에 그 다시올 보혜사에 대한 예언과 단서가 조금이라도 나왔어야 하지만 성경을 아무리 뒤져 봐도 찾아볼 수 없다.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은 영상을 소개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rTTjw6dpNcc
4.4. 보혜사가 곧 오늘날의 이만희 총회장이라고 주장함
결국 이 모든 것은 보혜사 성령이 이만희라고 주장하기 위한 것이다. 이 결론을 내기 위해 육화된 보혜사 성령이라는 개념을 도입해서 예수께서도 육으로 오셨으므로 보혜사 성령도 육으로 오시지 말란 법이 없으며 예수 재림을 대비하기 위해 14만4천 무리를 뽑아 인침받게 하려고 하나님이 다시 육화된 보혜사 성령인 이만희를 보내셨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이만희는 이긴자, 대언자이며 예수 재림까지 영원히 우리와 함께 있을 보혜사 성령(육화된 성령)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육화성령론에 대해서는 '''일용할 양식=영적양식=예수님의 살과 피=하나님의 말씀=진리'''이므로 '''예수의 육=육화된 성령=진리=오늘날의 이만희'''라고 개념을 줄줄이 사탕식으로 엮는다.[10]
그러나 이 주장은 성서적으로 명백한 거짓이다.
- 마태복음 28:9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 고린도전서 2:10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 요한1서 5:6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참고로 이렇게 자신을 보혜사 성령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신천지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준신적 권위를 부여하면서도 적그리스도라는 공격은 교묘히 피해가려는 기독교 계열 신흥종교의 단골 패턴 중 하나이며, 그리스도란 말이 안들어갔어도 기독교라면 인간이 성령을 자칭하는 것 또한 적그리스도로 봐야 마땅하다.[12]
5. 성경의 비유풀이
비유풀이, 짝교리라고도 하는 신천지의 성경해석 방식이다. 신천지가 성경을 가르치는 주요 방법중 하나로, 성경을 흐름과 문맥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각 단어 각 문장을 일일히 분해해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동이다. 그들은 성경이 비유로 써져있으며 이를 제대로 해석하는 법이 무척 중요하다고 가르친다.[13]
비유풀이는 본질적으로 신천지가 가지고 있는 종교관을 각 성경 구절별로 대응시키는 작업이다. 신천지 말씀방[14] 과 센터에서 초중반에 배우는 것이 이것이다. 비유풀이 방법은 성경의 구절을 따와 거기에 어떠한 단어 하나가 무슨 비유를 담고 있는지, 그 단어가 다른 성경의 어떠한 구절과 연계되는지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런 비유풀이의 효과는 비유로 이루어진 단어를 성경의 구절로 해석한다는 독특함과 마치 퍼즐처럼 딱딱 들어맞는 신통함이다. 이는 JMS의 비유풀이와 비슷할 것 같지만 JMS의 비유풀이는 서로간의 연결이 안된다. 그러나 신천지는 단어간의 연계와 단어와 문맥을 입혔으므로, 성경을 보는 관을 형성하게 된다. 이 점에서 얼핏보면 뭐가 문제인가 싶지만 성경의 단어와 문맥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자르고 붙여 자신들이 말하고자 하는 방식을 은연중에 내포(세뇌)하는 것이다.
말씀방과 센터에서 비유풀이의 방식을 배우고 나면 신천지에 대해 배우는 속도가 훨씬 빨라진다. 2-3달 과정을 수료하면 단순한 성경 비유풀이에서 본격적인 신천지의 교리를 배우게 된다. 비유풀이를 수료한 후의 교리수업은 대강이렇다. 1. 성경이 비유로 되어있다는 의미는 그 구절을 범인이 이해할수 없게 하기위함이다. 2. 이런 구절들을 이해하기 위해 하나님은 비유풀이자를 보내셨다. 3. 현교주는 특정한 시기에 성경의 비유를 풀어 모두를 새천국으로 이끄신다. 그후 교리공부는 중점적으로 교주 이만희의 영적인 신비로움과 힘에 대해 초점을 맞추게 된다. 결국 비유풀이는 교주의 영적인 힘과 능력을 역설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에 불과하다.
비유풀이 방식은 신천지에게 관심을 갖게 하는 주요한 방법이 된다. 신천지는 비유풀이에 사용되는 단어들을 그림과 도표로 만들어 한눈에 들어오게 꾸미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은 입교자들이 신천지에 쉽게 다가가고 흥미를 쉽게 가질수 있게한다. 신흥종교 연구가인 노길명 고려대 명예교수는 신천지의 교리는 성경을 단순명료하게 해석하여 입교자들의 흥미를 돋운다고 분석하였고[15] , 상당수의 탈퇴 신도들 역시 초기에는 신천지인 것을 모르고 흥미로운 성경 공부라고 생각하였다고 증언한다.
또한 신천지 에서는 특히 예언서를 상징과 비유로 해석하여 궁극적으로는 신약의 예언서인 요한계시록을 해석, 이를 바탕으로 하는 독특한 종말론을 주장하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계시록에서 말하는 종말이라는 게 세계가 우직 쾅쾅 하는 게 아니라 기성 교단, 즉 지금까지 존재하는 기독교 교단들이 전부 다 망하는 걸 종말이라 하는 것. 물론 일반적인 종말론의 이미지를 가진 기존의 해석과는 달리, 교인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식으로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 따라 신천지 교인들은 144,000명을 모으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으며, 그 목표를 위해 '''학업포기, 가출, 이혼, 가정파탄''' 등을 겪는 경우도 많다. 물론 신천지는 부정하지만.
태초의 뱀과 하나님의 마지막 싸움 아마겟돈을 장막성전의 몰락과 결부시켜서 아마겟돈의 스케일이 무진장 작다. 신천지의 또 다른 특징이 이것인데, 신천지에 있어서 요한계시록은 신천지가 어떤 교단에서 떨어져 나오고, 누구와 분쟁해오고, 결국 오늘에까지 이르렀다라는 그들의 역사를 예언한 책이라고 본다. 따라서 아마겟돈 전쟁 역시 전 세계 단위로 벌어진 스펙타클한 전쟁이 아니라 과천 소재의 장막 성전의 교단에서 벌어진 일이라 가르친다. 이쯤되면 세계가 망하는게 아니라 과천이 망하고 하늘의 새 예루살렘이 과천에 내려와서 하나님이 과천 시장하신다는 수준의 이야기가 되는데, 신천지에서는 과천을 성지라고 한다. 과천에 있는 청계산을 시내산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대표적인 예다. 청계산의 '''계'''를 시내 溪로 해석한 것. 하지만 시내산은 원 성경에서 시나이 산으로 표기되어 시내와는 아무 관계도 없음을 알려준다.
그러면서 성도들에게는 144,000명은 하늘의 영을 입어 죽지 않는 몸이 되어 왕 같은 제사장이 되고 영세토록 요한계시록의 예언의 성취를 증언한다고… 그런데 그 약속의 성취라는게 장막 성전에서 이만희 교주가 두들겨 맞으면서 내가 옳다고 외치던, 묘한 정신승리 선언에 가까운 이야기.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시는 시대가 열리면 모든 사람들이 계시록 예언의 성취에 대한 증거의 말씀만을 들으며 살아간다는 게 어째 좋은 시대인지 아리송하지만 신천지 교인은 그런 날이 오기를 소망하고 있다. 참고로 계시록 예언의 말씀을 듣는 이유는 그게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은 생명이시기 때문에 오래 살려면 말씀을 들을 수밖에 없단다. 그러니까 오래살기 위해 교주 이만희가 죽도록 얻어맞으면서 정신 승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수천 년을 산다고… 오래살아도 그게 뭔 재미인지 도통 이해불가.
세례 요한에 대한 평가가 매우 짜다. 요한복음을 보면 세례 요한이 죽음 전 감옥에서 예수를 원망하는 듯한 말을 했으며, '세례 요한은 인간 중에서는 가장 크지만 천국사람에 비하면 그가 가장 낮은 자가 된다'는 식의 예수의 하마평을 들었기 때문이다.[16] 정확히 무슨 내용인지는 들어봐야 알겠지만[17] 표현하자면 '옛날에 엘리야 선지자가 광야에서 까마귀가 가져다 주는 음식을 먹었기에 엘리야 후에 몇백 년 뒤에 등장하는 세례요한이 타락했다.'라는데 대체 뭔 소린지(…).
신천지의 주 포교 타깃은 기성 교단 신도들, 특히 기성 교단에서 열심히 종교 활동을 하면서 교리에도 관심이 많은 신도들이다. 종교적 열성이 강하고 교리에 관심이 많은, 그러면서도 종교적 지식은 부족한 사람일수록 신천지식 성경 공부 포교에 걸려들기 쉽기 때문이다. 신천지의 비유풀이 교리는 성경에 나오는 '동방의 의인'을 '한국에서 태어난 의인'으로 해석하는 등 매우 자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지만, 성경에 대한 지식이 없는 신도들은 이렇게 단순한 말장난에도 현혹되기가 쉽다. 때문에 기성 교단 내에서는 부흥 위주의 활동 뿐만 아니라 신도들의 교리에 대한 관심도 충족시켜주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18] 신천지에서 빠져나와 신천지 관련 상담사로 활동하는 신현욱 목사 역시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에서 이러한 점을 지적한 바 있다.
6. 신천지가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계시록 구절들
오른쪽에는 '정통 해석' 이라고 표시되어 있으나, 모든 교회가 저렇게 딱 100% 떨어지게 같은 생각을 가진 것도 아니니 지극히 통상적인 해석에 가깝다. 여기서 말하는 '정통 해석'은 한국 장로회의 주류 해석이라고 보면 된다. 12장의 '해를 입은 여인'에 대해서 가톨릭은, 아래의 아이의 정체(그리스도)와, 11장의 마지막에 기록된 계약궤(언약궤)와의 연계 등의 이유로, 이 여인을 성모 마리아로 해석한다. 동시에 교회로 보는 해석이 함께 공존한다.[19]
애초에 요한계시록은 비유로 이루어진 예언서이기 때문에, '''종말이 오기 전까지 확실한 해석은 존재하지 않는다.''' 장로회에서조차 해석이 여러개가 달리는 부분들이 존재하는데, 신천지식 해석은 말 그대로 교주 이만희를 신격화하기 위한 끼워맞추기식 해석에 불과하다.
6.1. 시대 구분
모세 때부터 예수 출생 전 '구약'을 '육적 이스라엘', 예수 시대 이후부터 신천지 창설 이전까지를 '영적 이스라엘'[20] , 그리고 신천지가 창설된 이후의 시기를 '새 영적 이스라엘'이라 칭한다.
복잡한 개념이긴 하지만 간단히 예를 들자면 구약때는 제사 등등 하나님에게 정성을 표하는 방법이 육적인 재물로 이뤄졌었기 때문에 육적 이스라엘이라 칭하고, 신약때는 육적인 제사가 없어지고 기도 같은, 비(非)물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에 대한 성의표시가 이뤄지기 시작했고, 비유된 말씀의 상당부분이 풀어지지 않은채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에 이 시기를 영적 이스라엘이라 칭했으며, 현대에 들어 성경을 풀이, 해석하여 성경의 비유를 깨기 시작한 신천지가 있기 때문에 현재의 시대는 새 영적 이스라엘이라 칭한다.
근데 신흥종교 공부 좀 한 사람이면 분명히 통일교와 JMS가 주장하는 구약, 신약, 성약교리를 베낀 것도 모자라 한 차원 낮추었다고 설명하었다. 그러나 신천지의 교리를 뜯어보면, 신천지가 배도-멸망-구원 교리와 창조(선민배도:언약)와 재창조(구원의 역사:새언약), 선천세계 - 후천세계(종말이 2번있음) 교리를 언급하면 후술될 결론처럼 교묘히 비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화히는 구약과 신약의 내용의 연결성을 분절 및 단절을 시켜 속이기 쉽게 그리고 정리하기 어렵게 해놨다.
JMS의 경우 구약-신약-성약을 아예 3단계로 구별지어놨다. 그러므로 예수교가 아님을 명확히 차별한다. 그러나 신천지의 경우 앞서 언급한 교리를 간단히 JMS식으로 풀이하자면 구약과 신약, 신약과 성약(재림 : 신천지에서는 예수 재림의 역사로 치환)으로 2가지로 구별지었다. 더 쉽게 정리하자면 2박 3일로 구별하자면, 통일교와 JMS는 둘다 1일 2일 3일로 구별하지만 신천지는 1일 2일 3일이면서도 1박(1-2일) 2박(2-3일)로 시대구분을 묶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신천지는 계시록의 인맞는 시점, 예수 재림의 시절 등 천년왕국의 언급도 계시록의 논쟁을 자기 편한대로 취사선택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최대한 속이기 위한 장치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결론적으로 제사 방법을 기준으로 육적 이스라엘을 구분하면서도, 새 영적 이스라엘을 도출하기 위해 성경 비유를 끌어들인다. 차라리 성경 비유가 풀리기 전후로 나누는 것, 즉 구약과 신약 구분을 폐기하는 것이 간명해 보이는데도 이런 개념을 제시하는 것은 구약과 신약, 두 구분에 익숙한 기존 성도들의 배경에 스며들기 위해서 임이 너무나 명확해 보인다. 교리부터가 성도 빼가기를 위한, 즉 기존 개신교인을 타게팅한 매우 괘씸한 교리.
시대 구분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부활과 승천으로 대표되는 사역을 불완전한 것처럼 호도한다. 아울러 신천지는 그 자리를 비유풀이라는 명목으로 대신하려는 속셈을 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이미 예수교가 아니다.
이 내용의 추가적인 보충설명은 배도-멸망-구원의 교리 허구성을 보고 싶다면 4:11를 보기 바람. 그렇다면 재림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구약과 신약의 나눠짐(결과만 보고 싶다면 24:04부터)과 신약의 결과물, 이것 또한 결과만 보고 싶다면 26:25을 참고. 마24장의 견해, 논란의 중심에 선 영상 논란에 관련된 보충영상, 보시면 아시겠지만 주재림의 때도 언급하고 있다. 다음을 참고하길 바란다.
6.2. 성경 오독
6.2.1. 개요
신천지에서 사용하는 성경은 개역한글판으로, 그 이후로 나온 번역들은 오류가 많아 개역한글이 가장 하나님의 뜻에 맞다고 주장한다. 참고로 현재 대부분의 개신교 교단에서 쓰는 성경은 개역한글판 이후 버전인 개역개정판.
개역한글판 성경은 어디까지나 중역 성경이므로 신천지의 주장은 오류라는 이야기도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개역한글판 역시 히브리어와 코이네 헬라어 원어를 직접 번역한 성경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영어 킹 제임스 성경과 대역 구도, 즉 장, 절, 단어 등이 대응되는 구도로 번역을 하게 되어 중역이라는 오해가 발생한 것. 물론 개역한글판에는 현대 언중이 잘 모르는 어휘들이 실려 있으며 일부 비문 및 번역의 개선을 요하는 부분들도 있는 게 사실이긴 하다.
그럼에도 개역한글 성경은 반 세기 가까이 많은 한국 기독교회에서 사용해 온 성경이다. 즉 개역한글판 자체에 심대한 오류가 있다기보다는 이를 자신들의 논리를 위해 멋대로 오독하고 있는 신천지의 문제가 더 크다.
신천지에서 개역한글판을 고수하는 이유는, 이미 잘 꿰맞춘 억지 논리를 개역개정판이나 기타 판본에는 적용하기 어려워서, 즉 설정 붕괴 방지를 위해서일 가능성이 높다.
6.2.2. 원어에 무지한 문자주의
신천지 강사가 개신교 성경에 나오는 천사 "그룹"을 group이라고 했다가 망신을 당한 사건도 있는 걸 보면 신학은 공부했는지 의문이다. 개신교 성경에 나오는 그룹은 '''케루빔'''을 뜻하는 말이다. 케루빔이 원래 발음과 다소 동떨어진 그룹으로 변형된 건 cherubim에서 남성형 복수 어미인 -im을 생략했기 때문. 개역성경의 어휘 중 음역된 고유명사들을 보면 원어가 어떤 언어든 간에 곡용 어미는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거기에 무성 파열음을 옮길 때 거센소리 글자(ㅋ, ㅌ, ㅍ) 대신 예사소리 글자(ㄱ, ㄷ, ㅂ)를 쓰고, 'e'는 'ㅡ'로 옮겼을 뿐이다. 성경/번역/한국어 표기 문제도 참고하자.
6.2.3. 이만희의 발언
이만희는 개역개정은 틀렸고 개역한글이 옳다고 주장하며 창1:2의 근거로 들고 있다. 개역개정은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개역한글은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즉 이 둘의 차이점은 하나님의 영과 하나님의 신의 표현차이이다. 즉 신(神)을 영(靈)으로 해석하였다는 점만 가지고서 개역개정의 틀림을 증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이만희가 성경에 대한 무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우선 하나님의 영으로 해석된 부분이 히브리어로는 루아흐 엘로힘, 헬라어로는 프네우마(프뉴마)로 되어 있다. 루아흐는 바람, 숨, 호흡, 영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하나님의 숨결, 하나님의 영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영(靈)이라는 단어는 영체, 영혼, spirit, ghost 이런 뜻이고 신(神)이라는 단어는 신(god), ghost, 귀신 이런 뜻을 가지고 있고 사실상 둘이 비슷한 뜻이다. 자세한 내역은 5:58초부터 시청해보자. 앞선 내용에 대한 후속내용도 언급하고 있다. 0:15초부터 시청해보자. 결국 이 동영상의 언급처럼 신천지는 개역한글만 보고 원문을 제대로 보지 못한 자의적인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를 신천지에서 반증을 한답시고, 일본을 격하하는 이만희의 성향에 따라서 신천지에서 이런 대답도 유추할 수 있다. 하나님의 영(靈), 하나님의 신(神)의 논란에서 하나님의 영(靈)은 일본식 번역인데 이는 친일파가 번역했기 때문에 신(神)이 맞는 것이다라고 헛소리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철학(哲學)이라는 한자어 용어를 일본인 학자가 최초로 정리한다고 해서 무조건 다른 용어를 고집할 것인가? 이 항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원 뜻을 제대로 표현 하게되면 그 이상의 논쟁은 결국 소모적인 논쟁임을 알 수 있다. 당장 여기를 살펴보자.
정리하자면, 창세기 1:2에 언급된 표현에서는 하나님의 영(靈)으로 하나, 하나님의 신(神)으로 표현하나 차이가 없다. 또한 빙자라는 의미에 대해 비유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빙자라는 개념설명을 제대로 간과하고 있다. 빙자(憑藉)라는 뜻은 '남의 힘을 빌려 의지함' 또는 '~을 통하여'라는 뜻이다. 즉 신천지는 본인들이 고집하는 개역한글의 텍스트 내용과 뜻조차 제대로 모른다고 할 수 있다.
첨언으로, 이런 중의적인 의미에서 다음과 같은 예시를 들 수 있다. 하나님의 신(神)을 하나님의 신(身)으로 잘못 알면 크게 오용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신천지가 성경을 풀이하는 짝교리식으로 창세기 1장 2절 하나님의 신(神)을 하나님의 몸[신(身)]이 수면에 떠 계셨다. 이러면서 마태복음 14장 22절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시다, 즉 성경에는 짝이 있다는 점을 이러한 논리로 전개할 수도 있다. 이는 한자와 한글의 번역을 통한 전형적인 성경오역이다.
이렇게 오역을 할 수 있는 부분은 후술될 영생과 이만희의 발언뿐 아니라 다음과 같은 것도 있다. 하늘(Sky)과 천국(Haeven), 공중(空中)과 하늘(天), Deus(하나님)과 Dominus(주님)의 용법과 용례 등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에 따른 중의적인 의미를 제대로 해석하려면 원어나 다른 번역의 성경으로 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게 새로 번역된 성경이 교리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은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의 현지화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7. 영생관
신천지에서는 예수의 영이 재림하여 이만희에게 임하고, 12사도의 영이 재림하여 12지파장에게 임하고, 순교자 144,000명의 영이 재림하여 신천지 신도 144,400명의 육신에 임한다고 설명한다.
신천지는 개역한글의 위 구절을 두고 '목 베임을 받은 자'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한 자'는 서로 다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한 자들'이 신천지 교인들이고 이들은 육신의 사망을 겪지 않고 살아서 '목 베임을 받은 자들'의 영을 덧입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개역한글이 아닌 다른 판본으로 보면 설득력을 잃는다.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하니
요한계시록 20:4, 개역한글판
즉 신천지의 해석과는 달리, '목 베인 자'와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은 자'는 서로 같은 대상을 지칭하는 말이다. 또한 개역한글에서 '살아서'라고 한 것은 사실 '살아나서'라는 뜻으로, 신천지에서 말하는 것과는 달리 죽지 않고 영생한다는 뜻이 아니다. 헬라어 사본에서도 관계대명사 οἵτινες를 통하여 같은 대상으로 지칭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ἔζησαν의 원형인 ζάω (G2198)는 '살아나다' 보다는 그냥 '살다'라는 표현에 가까운데, 앞 문장의 영혼들(ψυχὰς)을 지칭할 뿐 아니라 계시록은 물론 신약 다른 대목에 언급될 때에도 (예: 로마서 14장9절) 죽었다 살다는 용도로 쓰이기 때문에 그 앞에 '죽지 않고'라는 어구가 내포됐다고 해석될 여지는 없다.
8. 사도신경 거부
신천지는 사도신경을 거짓된 것으로 보고, 사도신경을 쓰는 교단들을 이단이라고 비판한다. 신천지 측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 예수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에 의해 고난을 받은 것이다.
: 라틴어 사도신경을 보면 'sub Pontio Pilato', 즉 본디오 빌라도 '아래에서' 고난을 받았다고 되어 있다. 이는 본디오 빌라도 통치 아래에서 고난을 받았다는 것이며, 실제로 한국 가톨릭과 한국 성공회에서 쓰는 사도신경에서는 이를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에서'라고 분명히 표현하고 있다.
- '거룩한 공회'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죽게 만든 유대인들의 산헤드린 공회를 믿는다는 뜻이 된다.
: 여기서 '공회'는 산헤드린 공회가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교회를 일컫는 말이다. 역시 라틴어 원문으로는 'et (credo) sanctam Ecclesiam catholicam'[21] , 즉 그리스도교회를 가리키는 말임이 분명하며, 한국 가톨릭, 성공회, 그리고 개신교 새번역 사도신경에서도 교회(보편교회) 또는 공교회라고 번역하였다.
- 사도신경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 사도신경#s-4.5 참고.
'''우선 '사도신경'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신앙을 고백하기 위해 만든 것이지 '주기도문'처럼 예수가 기도하라고 가르친 것은 아니다.'''[22]사도신경을 안 쓰는 것 자체만으로는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침례교에서는 사도신경을 쓰지 않으며, 외국에는 소위 '정통' 교단 중에도 사도신경 외의 자체적인 신앙고백문을 만들어 쓰는 교단도 있다. 신천지의 문제는, 위와 같이 근거가 희박한 주장들을 가지고 사도신경을 쓰는 교단들을 비방한다는 점에 있다.
또한 신천지 교인들은 '사도신경에서 영생을 믿는다고 고백해놓고 왜 신천지는 영생을 주장한다는 이유로 이단으로 몰고 가냐'라고 반박하기도 하는데, 신천지의 영생관은 바로 위 문단에서 보이듯이 주류 기독교의 시각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9. 모략 전도
신천지에서는 전도를 위해서라면 거짓말이나 악행도 좋은 일이라고 가르친다. 대표적으로 로마서의 아래 구절을 인용한다.
이렇게만 보면 마치 바울 사도가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거짓말을 해도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한 것 같지만, 사실 이는 문장부호를 쓰지 않는 개역 성경의 특징을 교묘히 이용하여 왜곡한 것이다.7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8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
로마서 3:7~8 (개역한글)
즉 로마서 3장에서 바울 사도는 거짓말로 전도하는 이들을 비판하는 것이지, 거짓말로 전도하라고 권유하는 것이 아니다. 개역 성경은 인용구도 큰따옴표 없이 그대로 썼기에 문맥을 잘 살피지 않으면 신천지처럼 해석하게 된다. 물론 코이네 그리스어 사본(SBLGNT, Textus Receptus 등)에도 따옴표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여기도 "그런 말을 한다고 하면서 우리를 비방하는 사람들"은 언급된다.
뿐만 아니라 개역 성경에서 '모략'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구절을 가지고 야훼도 모략을 쓴다거나 야훼가 모략을 쓰라고 가르쳤다 해석하지만, 사실 이 구절들에서의 '모략'은 '계획', '책략' 등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
한국어의 '모략'에는 속임수를 쓴다는 부정적인 뜻 말고 가치 평가가 들어가지 않은 '계략, 책략'이라는 뜻도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예문인 '신부님, 저번 난리도 이 두 분의 모략과 용력이 아니었더라면 아마 진압이 어려웠을 겁니다.'만 봐도 알 수 있다. 가톨릭 성경이나 새번역 성경, 그리고 개역한글을 기반으로 번역한 개역개정에서도 보다 적절한 어휘로 번역되어 있다. 또한 이 구절에 사용된 히브리어 원어인 עֵצָה (H6098)는 상담, 충고, 계획, 분별력 등의 의미를 갖고 있다.
10. 결론
제 3자가 보기에 왜 신천지에 수만명의 사람들이 빠질까? 많은 사람들이 간다는 것은 결국 교리적인 우수성이 있지 않을까? 라는 호기심이 있을 수 있다.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요한계시록의 성과가 자기 본인만 알고 자기들만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주장만 들으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생각하겠지만, 일반 대중이 듣기로 처음 호기심으로 얼핏들으면 그럴싸한 신천지식 논리로 자신의 궁금증을 연쇄적으로 일으키기 때문이다. 신천지만의 방식대로 말씀방과 센터 그리고 교회입교를 거쳐 반복적으로 신천지가 내세우는 근거만을 지속적으로 듣다보면 자기도 어느새 총회장의 발언마다 아멘을 열창하는 본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신천지의 교리적 우수성, 탁월성, 우월성이 증명된 것일까?
신천지 교리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그리스도 계통에서 신자가 느껴지는 복잡한 교리에 비해 극도로 직관성과 단순함에 있다.
성경의 복잡하고 어려운 부분을 자신들의 시각으로 쉽게 정리를 하니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기 좋다. 당장 총회장이라는 사람도 길고 복잡한 거 싫어하는 성격이다. 그리고 신천지에 와서 꾸준히 반복 & 재교육을 시행한다. 센터 재청강과 교회의 각종 교육을 통해 자기들이 배운 것을 반복 & 확대재생산한다. 궁극적으로 신천지가 하는 행동을 하늘역사에 이바지 하기 위해서, 또는 성경에 근거한 행동으로 정당화한다.
정당화 대목 중에서 최고봉은 뭐니뭐니해도 실상교리이다. 우리에게는 실상이 있다는 것이다. 신천지가 성경에서 요한계시록 예언이 증험되고 성취되었다고 주장하는 실상(1966년부터 1984년까지 장막성전 흥망과 이삭교회와 청지기교육원 설립과정, 1984년 신천지 창립부터 지금까지의 행보)을 신천지가 주장하는 대로 검증을 하려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진실규명과 그 사실을 증언한 총회장의 발언에 대한 진위여부, 그리고 1984년 신천지 창립 이후로 총회장과 신천지가 했던 언행과 행동에 대한 진위여부와 분석도 같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식언을 하지 않으신다는 총회장의 말과 서적, 설교 상의 발언과 이후 발생된 사건들을 조합해볼 때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23]
축약하자면 신천지는 종이 위에 성경구절을 적지만, 행동으로는 성경에 위배대는 행동을 정당화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성경과 행동의 사이에 교육(지식)과 믿음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천지가 주장하는 교리적 우수성, 탁월성, 우월성에 대해 면밀히 분석해야 된다.
10.1. 신학적 분석
성경기본 상식이라면서 가르치는 내용 중에 정작 신학의 발전사에 대해 모두 부정을 한다. 사도들의 전승 이후로 그리스도계통의 신학이 지금까지 오기까지 많은 일이 있음에도 불과하고 이를 단순히 주석으로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신학의 발전사에선 그리스도교를 지키기 위한 수많은 노력이 있었으나 신천지에서는 이를 깡그리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제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현재 이스라엘, 소아시아, 중동 지역에서 일어났으므로 그들의 사고나 입장이 전혀 배제되기 어렵다. 거기에 대해서 신천지에서는 2천년 뒤인 지금 모든 예언과 계시의 비밀이 풀렸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 주장은 시공간적, 언어적 관점에서 비난함이 마땅하다. 당대 전달하였던 원문에 대한 번역 의지가 없다. 신천지가 내세울 논리를 예상하자면, 결국 "그래서 예수를 죽였나? 봉함이 풀린 계시 말씀에 입각하여 총회장이 받아먹은 개역한글판이 가장 중요하다."고 언급할 수 있다. 이를 드라마틱하게 대유하여 구한말 시절, 어느 조선 사람이 한국에 선교하러온 서양선교사들에게 "자신은 단군의 후손이다."라고 지칭하자 서양선교사들이 생각하길 "이들이 단지파의 후손이구나"라고 말하는 것보다 논리적 비약이 심하다.
더군다나 총회교육부장(2019 現 요한지파장)이 '반증에 대한 재반증'이라는 교육에서 "개역한글이 성경의 전달역사를 감안했을 때 가장 원문의 뜻을 잘 전달했다"고 교육 당시 증언하였다. 심지어 개역개정과 개역한글의 오류를 창1:2 하나님의 신을 하나님의 영으로 번역했으므로 틀렸다고 총회장께서 직접 설교시간에 인증했을 정도이다. 번역은 반역이고 100% 정확한 번역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조금이라도 독자들에게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수천년동안 노력했다. 번역을 언어나 시기별로 개정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하다못해 불경의 전파과정에서도 이런 예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신천지에서는 심지어 자신들도 오역하는 개역한글판 만을 고집하고 있다. 이렇게 주장을 하면 신천지에서는 한글성경이 필요없다고 주장할 지 모르나, 이는 억측에 지나지 않는다.
신천지는 신명기 28장의 내용을 인용하여 예언의 말씀처럼 실상이 일곱갈래로 갈라졌다고 언급하면서 교회가 역사적으로 분열되고 반목함을 대비하여 신천지가 맞다고 교육하기도 한다. 신학의 역사에 대해 잘 모르면 수긍을 할 수 있으나.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입증하고 그걸 행동양식으로 삼기 위해 발생하는 입장차이에서 시작된다.[24] 그러나 기독교가 예수님과 사도들의 신앙 이후로 근 2천년동안 이어온 와중에 행한 구습과 실수를 단순히 이제 40년도 안된 집단의 해악과 단순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하다못해 신천지는 한기총의 근원인 대한예수교 시절의 흑역사를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더군다나 칼빈의 생애와 사상까지 부정하기에 이른다. 이 영상처럼 칼빈이 살인자라는 비판은 근거가 약하다. 그런데 신천지는 10당5락한다는 한기총에 비해 돈문제가 깨끗하다는 말을 하면서 정작 매년 수천억의 헌금을 거둬들이고, 점용하는 점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1] 다만 신론이나 삼위일체론에서 여호와의 증인 교리를 차용한 흔적이 장막 단위 설교 영상에서 목격되는 등 그들 고유의 이론적 기원을 갖는다고 보긴 어렵다.[2] 신천지는 개역한글판 성경만 사용하는데, 개역한글판의 주기도문에는 '대개' 가 없으며 공동번역 성경 등의 다른 번역본도 대부분 마찬가지.[3] 이미 개신교가 아니라고 인증한 천부교에서 하던 짓이다.[4] 삼위일체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하나님이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모든 것이 하나의 실체로 연합되어 있지만 셋의 위격이 다르기 때문에 아버지는 하늘에 있고 아들은 완전한 하나님이자 완전한 사람이 되어 땅에 내려오는 것이 가능하다는 교리이다. 그러므로 현현하는 상황을 기준으로 설명하는 양태론과 삼위일체를 혼동하는 것을 주의.[5] 물론 이는 신천지 주장이며, 다른 곳에서는 이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6] 정명석이 '자기는 재림주가 아니다'라고 법정증언한, 2009년도부터 내세우는 교리임.[7] 다른 데에 있다가 나에게로 오시는.[8] 원어 상에서 서술하자면, '파라'는 '옆에서', 그리고 '클레아'는 '증언하다', '대변하다'라는 뜻이다.[출처] 신천지 바로알자![9] 신천지인들이 해석하는 대로 하려면 "다른" 인 heteros(헤테로스)이다. 캔과 인간처럼 '''"완전히 다른 종류"''' 라는 뜻으로 알로스와 구별해서 사용한다.[10] 이렇게 명시와 비유를 구분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연결지어 해석하는 것이 신천지 교리의 특징이다. 하지만 금방 거짓이라는 것이 들통나는게 결국 이만희의 살과 피를 먹으면 그것이 영적 양식이라는 결론에 이르러야 하는데 이만희는 명색이 자칭 성령이요 진라라는 자가 자기가 살잘리고 피뽑혀서 죽을까봐 두려운지 그러한 결론까지는 말하지 않고 있다. 그야말로 뻔하디 뻔한 웃기는 모순인것.[11] 신천지 신도수->그 중 인침받은 자->평화법을 제정해야 인침받음(???)[12] 한기총 회장 출마를 선언했었던 김풍일(=김노아) 목사도 한때 보혜사를 자칭하는 적그리스도 짓을 하다가 경고를 받고 최근 철회한 바 있다. 출처[13] 은혜로교회 피지섬 신도 감금사건의 주범인 신옥주에 대한 평가 중 하나가 신천지와 유사한 비유풀이식 성경관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비유풀이하면 신천지라고 기독교계에서는 굳게 인식하고 있다.[14] 구 복음방[15] 신천지를 주의합시다! <1> 및 신천지를 주의합시다! <3> - 가톨릭평화신문.[1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마태복음 11:11. 하지만 이건 세례 요한이 낮다는 게 아니라 천국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문맥상 예수가 요한을 낮춰 말하는 어투로 말한 것은 아니다.[17] 세례요한이 처음에는 예수더러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다가, 나중 옥에 들어가서는 구원자가 당신이냐고 물어본 내용을 가지고 하나님이 떠나서 눈이 멀었다고 주장한다. [18] CBS TV 특집 대담 '이단 신천지, 끝나지 않은 싸움' - 노컷뉴스, 2016년 4월 6일.[19] 창세기의 요셉의 꿈[20] 물론 이스라엘은 아직 있으므로 이건 헛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으나, 이러한 영적 선민 개념은 기존의 천주교와 개신교에서 해석하고 받아들여 중세부터 근현대까지 과거 야훼가 버렸던 말 그대로 육적인 개념의 선민들의 나라인 이스라엘의 후손격인 유태인들을 탄압하는 논리로 쓰였다. 따라서 이 부분에 한해서는 기존의 신천지만의 주장이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21] 저 sancta catholica는 가톨릭 교회라는 말이 아니라 그냥 보편적인 혹은 공적인 교회라는 뜻이다. 참고로 'ecclesia'는 바로 다음에 나오는 '성도의 교제'(apostolica ecclesia, 개신교 이전 버전에서는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이다.[22] 교회에서 하는 기도 또한 하나님께 신앙을 고백하는 말이다. 신천지의 논리대로라면 기도는 무조건 성경에 써있는 것만 따라 읊어야 한다는 소리와 다를 바가 없다.[23] 이 점은 소위 실상(1966년도부터 1984년 당대 역사적 사건과 그 때를 경험한 총회장의 증언과 행동 그리고 1984년 창립이후 신천지와 신천지 총회장의 설교와 교육 및 저술한 서적 등과 비교한 총회장들의 증언과 행동 및 제반사항들)을 연구한 사람들이 오류점을 한두가지 지적한게 아니다. 다른 블로거나 유튜버들 인터넷에 대단히 많은 자료가 게재되어 있다. 오죽하면 신천지 실상은 모 유튜버가 언급하길 "신천지는 과거의 자료에 대항해 매번 변명을 해야 될 것이다. 과거의 언행과 행실이 자료로 남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신천지가 한기총을 비난할 때 얘기하는 것과 같은 격이다.[24] 그 입장으로 카톨릭과 개신교처럼 교리적 차이점도 분명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