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의 묵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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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반적으로 가톨릭과 정교회에서는 '요한 묵시록'으로, 일부 교파[2] 를 제외한 대부분의 개신교에서는 '요한 계시록'으로 부르고 표기한다. 묵시(默示)란 '직접적으로 드러내 보이지 않고 은연중에 뜻을 나타내 보임'이라는 의미이므로, 묵시록이란 '묵시한 내용을 적은 글'인 셈이다.20 '''아멘. 오소서, 주 예수여!(Amen. Veni, Domine Jesu!)'''
요한계시록 22:20 (공동번역 성서)
원어인 코이네 그리스어 '아포칼륍시스(ἀποκάλυψις)'는 '드러냄, 계시, 벗김.'의 뜻을 가진 명사로, '드러내다, 나타내다, 폭로하다.'는 뜻인 동사 '아포칼륍토(ἀποκαλύπτω)'에서 유래했다. 이의 번역인 '묵시(계시)'는 '예언'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말이다. 성경의 맥락에서 '예언'은 원칙적으로 '신탁'이라는 뜻이며, 미례예지라는 좁은 뜻이 아니다. 반면 '묵시(계시)'는 환시적 성격이 강하며, 이는 역사의 신비를 전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묵시'와 '계시'라는 번역어를 비교하자면, '묵시'는 '신탁(=예언)'과의 혼동을 방지하는 대신 조금 더 어려운 말이고, '계시'는 쉽지만 '신탁(=예언)'과 혼동하기 쉽다.
요한 묵시록은 결코 비밀스러운 책이 아니지만, 관련 배경 및 성경 전체(구약-신약 모두)에 대한 폭넓은 지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유대의 묵시 문학의 정수로,이사야, 예레미야, 에제키엘, 다니엘 등 예언서와 더불어 풀이와 해설에 이론이 많은 책이다. 단일한 해석을 고수하는 것이 우려되는 이유이기도 하다.요한 묵시록은 결코 '비밀스러운' 책이 아니다. 당시 독자들은 이 책의 묵시문학적 상징 세계를 잘 알고 있었다. 요한 묵시록이 그들에게서 거둘 수 있었던 성과는, 그 교회들의 시대·상황·문학적 환경 등을 알아야만 비로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슈테판 슈라이버Stefan Schreiber, "요한 묵시록", 마르틴 에브너Martin Ebner/슈테판 슈라이버Stefan Schreiber (Hrsg.)., 《신약성경 개론》Einleitung in das Neue Testament (분도출판사 2013), 874쪽
때문에 과거부터 자기 임의대로 해석하여 그릇된 종말론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나왔고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다.[3] 예를 들자면, 조만간 종말이 닥치니 전 재산을 다 교주에게 갖다 바치라거나, 아래처럼 예수의 재림을 얘기하는가 싶다가 뜬금없이 "내가 그 예수다" 한다거나. 그러다가 사이비 혹은 이단이 되는 테크를 타는 거다. 재밌는 점은, 자의적인 해석을 내건 사람치고 계시록 후반부의 '''이 예언의 말씀을 가감하지 말라'''는 구절을 가르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묵시 22:18-19).[4][5]
구약이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강림(초림)을 약속한 책이라면,[6] 신약, 그중에서도 특히 요한묵시록은 세상 마지막 때에 있을 예수의 '''재림'''을 약속한 책이다. 묵시록 22장 전장의 내용은 이 예수가 언제, 어떻게, 어떤 일 이후에, 어디에 임하여 어떤 일을 하는가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의 골자는, 세계 말일에 사탄과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부패한 세계를 심판하여 끝나고, 그리스도가 세상의 주권자로 통치하는 새로운 천년왕국 시대를 열게 되며, 그리고 천년 왕국 시대 이후, 최후의 심판인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이 있게 되고, 그 이후 오게 될 영원한 하느님 나라에 대한 내용이다. 창세기 1장이 천지창조라면 요한의 묵시록 22장은 새 하늘 새 땅의 지상 임재로 장엄하게 마무리되는데, 성경의 완결을 알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또한 완전히 끝을 맺는 문장으로는 예수가 '''그렇다. 내가 곧 가겠다.'''며 기독교 인들에게 전하는 최종적 메세지를 담고 있다. 거기에 '''아멘. 오소서, 주 예수여! 주 예수의 은총이 모든 사람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라는 요한의 마지막 말과 세계에 퍼진 기독교도들에게 남기는 축복의 말까지 성경을 마무리 짓기에 손색없는 문장들이다.
또한 상당히 많은 작가들의 영감의 중심이 된 글이기도 하다. 마태오의 복음서에서도 또한 예수의 재림과 그 징조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기도 하다. 이 "재림"이란 단어 덕분에 세상에는 수많은 자칭 재림예수가 등장한다.
내용이 굉장히 센세이셔널하기 때문에 이를 모티브로 해서 영화를 만들기도 한다. 오멘, '세븐사인', '리핑'...기독교인들에게 먹히기 좋은 소재가 많다. 소설 소재로 두고두고 써먹히는 묵시록의 붉은 용, 666, 짐승, 묵시록의 4기사, 하르마게돈(아마겟돈)등이 여기서 나왔다.
2. 해석론
나는 이 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분명히 말해 둡니다. '''누구든지 여기에 무엇을 덧붙이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을 벌하실 때에 이 책에 기록된 재난도 덧붙여서 주실 것입니다.'''
'''또 누구든지 이 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에서 무엇을 떼어버리면 이 책에 기록된 생명의 나무와 그 거룩한 도성에 대한 그의 몫을 하느님께서 떼어버리실 것입니다.'''
이 모든 계시를 보증해 주시는 분이 "그렇다. 내가 곧 가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오소서, 주 예수여!
주 예수의 은총이 모든 사람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요한 묵시록에서는, 성경의 말씀에 자신의 생각을 기반으로 하느님의 말씀에 더하거나 빼는 것을 강력하게 금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된 지식이 없다면 묵시록, 나아가서는 성경의 전체 내용을 하나 하나 보고 자신의 생각을 더하거나 몇몇 구절을 이해하지 못하고 빼서 단정해 버리게 되는데, 이것은 매우 위험한 행위이며 하느님이 아니면 확실한 해석은 없다고 본다.하느님께서 하늘 아래서 하시는 일은 아무도 알 수 없음을 깨달았다. 아무리 찾아도 그것을 알 사람은 없다. 이런 일을 안다고 장담할 현자가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을 참으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공동번역성서, 전도서(코헬렛) 8장 17절
앨런 F. 존슨이 편집한 묵시록에서는 다음과 같이 본다. 해설자들의 성경 주석에 의하면 크게 4가지 해석 방법이 있는데, 사도 요한을 기점으로 하여 미래주의적 해석, 과거주의적 해석, 역사주의적 해석, 상징주의적 해석이다. 상징주의 → 역사주의 → 미래주의, 과거주의로 해석 방법이 바뀌어 왔기 때문에 주석도 많고 이해하기 어려워졌다.
- 미래주의적 해석
- 과거주의적 해석
- 역사주의적 해석
- 상징주의적 해석
어찌됐든 요한 묵시록을 읽을 때에는 누가 화자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화자가 갑자기 바뀌어 있는 경우도 허다하고, 집중해서 제대로 읽지 않으면 도대체 누가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게 될 수도 있다. 심지어는 누가 말하는 건지를 찾다가 숫자에 집착하는 등의 오류를 범하고, 정말로 중요한 뉘앙스를 누락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요한 묵시록에 대한 수많은 오해, 그리고 이런 오해를 곧대로 믿는 사이비를 양산한 중대한 원인이기도 하니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3. 내용
3.1.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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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자체가 '''요한'''묵시록이기 때문에 보통 저자는 사도 요한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요한이 실제 '사도 요한'이라고 명시된 내용은 없으나 전승들과 묵시록의 내용들로 미루어 저자가 사도 요한일 것이라고 여긴다. 전승에 따르면 이 책은 사도 요한이 서기 90년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기독교 박해 때문에 파트모스(밧모) 섬에 유배되어 있을 때 그가 미래, 즉 예수 재림 때에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하느님의 계시를 통해 이상과 환상(비전)으로 본 것을 기록한 예언서라고 한다.
사도 요한이 파트모스에 유배생활을 했다고 알려졌고, 본 책에서도 저자 스스로가 파트모스에 있다고 썼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요한묵시록 본서에 '유배'라는 표현이 있다고 알지만 사실 본문에서 '유배'되었다는 표현은 없다. 그저 '하느님 말씀과 예수의 증거' 때문에 파트모스에 왔다고 썼을 뿐이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저 구절을 그리스도교 신앙 때문에 유배 왔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가 계시를 받을 줄 알고 일부러 한적한 곳을 찾아 파트모스 섬에 짱박혔다는 의미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설대로라면, '하느님 말씀과 예수의 증거'라는 말은 요한 묵시록 그 자체를 가리킨다. 도미티아누스 황제 시기에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며, 전승에 의하면 요한이 서기 96년(도미티아누스가 죽고 네르바가 황제가 된 해)에 파트모스에서 풀려나 이후 에페수스로 가서 요한서신(요한1~3서)을 쓰고 트라야누스 황제 제위 초에 사망했다고 한다.
다만 예언서니까 앞으로 일어날 일들만을 다루었다고 멋대로 단정해버린다거나, '당시의 예언서니까 초대 교회의 일(로마시대의 기독교 박해)만 다루었겠지'[8] 라는 식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책이 말하는 '앞으로 일어날 일'은 ''''저자'의 입장에서''' 앞으로 일어날 일이다. 그래서 이 책이 '로마 제국의 그리스도교 박해와 심판'을 다루었다고 해석하는 쪽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가톨릭에서도 이렇게 가르친다.[9] 하지만 이러한 로마제국의 박해와 연관지어 해석하려는 쪽에서는, 요한 사후~테오도시우스 시대때의 국교화 이전 사이의 시기가 아니라 주로 1세기 시기의 박해로만 한정해서 해석하려는 경향이 크다. '학술적-사료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하려는 쪽에서 이러한 식의 해석을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신학적에서 성서비평학을 수용하면서 성서로서 다루는 경우에도 현재적인 측면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경우는 많다.
그러나 가톨릭에서도 이 책을 '로마의 신자 박해'만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아직도 성취되지 못한 예언[10] 도 있고, 이미 성취된 것으로 해석되는 일부 예언마저도 '특정 시대를 초월하여 일어날 일을 지나치게 과거의 벌어진 일로 제한시킨다'는 수많은 신학자들의 반박[11] , 갑론을박과 해석이 존재한다. 저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박해는 과거에도 당시에도 일어나던 일이였으며 또한 미래에도 일어날 일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묵시록의 내용을 과거의 일만으로 볼 것인가, 미래에 대한 메시지로 볼 것인가 하는 두 관점에서 어느 것에 무게를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해석이 다양하게 갈린다.[12][13] 확실이 알아두어야할 것은 이런 식의 해석 논쟁들이 비단 묵시록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성경 전반에 걸쳐있다는 것이다. '''묵시록이 성경 목록 안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마술서가 아니라는 말이다.'''
요한 묵시록과 다른 요한 문서들의 문체나 종말론에 대한 입장 등이 다르다는 점을 근거로 저자 역시 사도 요한이 아니라 후대의 다른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설도 있으며, 성서비평학에서는 이쪽이 다수설이다. 이는 고대에도 알려져 있었던 쟁점으로 초기 교회의 교부들 중 상당수가 사도 요한이 저자라는 데 부정적이었을 정도이며, 요한묵시록이 정경에 포함되는 과정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던 큰 이유이기도 하다. 학술적으로는 묵시록의 저자 요한을 '파트모스의 요한'으로 따로 구분하기도 한다.
3.2. 1~3장
이 책을 순서대로 읽어보면 1장에는 요한이 이 묵시록을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를 소개하고 있고, 2~3장에 걸쳐서는 (소)아시아[14] 의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내용이 실려있다. 이 교회들의 위치의 공통점은 로마 황제의 직속령에 속한 교통의 중심지이며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도시들이고 각각의 거리가 비슷비슷하다는 것이다.
일관적으로 7번에 걸쳐 '대상이 되는 교회 - 예수를 나타내는 수식어 - 예수가 교회의 상황에 대해 잘 안다는 선언 - 칭찬 혹은 질책 - 주로 회개를 촉구하는 지시 - 지시를 지켰을 경우 하느님 나라에서 내릴 언약 - 귀 있는 사람은 들으라는 강조' 순으로 되어 있다. 이 중에서 칭찬만 받는 교회는 스미르나와 필라델피아, 칭찬과 질책을 같이 받는 교회는 에페소·페르가몬·티아티라, 질책만 받는 교회는 사르디스와 라오디케이아이다. 각 도시의 특성에 따른 비유법이 볼거리. 하느님의 천사에 의하여 전해지는 메시지를 통틀어 가장 경계하고 있는 것은 당 로마 제국에 타협하는 니콜라오파와 거짓 예언자, 영지주의 즉 이단 교리다.
- 에페소(에베소) 교회
에베소 교회에 대해서는 사도행전 19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의 에베소는 소아시아 서부의 중심지로 경제적으로 부흥된 상태였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에베소는 발전의 이유를 아르테미스 여신 숭배로 돌려왔고, 당시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히던 아르테미스 신전에 수많은 참배객들이 몰려왔으며, 은감실, 즉 은으로 만든 아르테미스 신전 모형이 지역의 특산물이었다. 이를 사도 바울이 지적하면서 지역의 은장색, 즉 장인 무리들과 분쟁이 발생하게 되는데, 에베소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르테미스 신앙을 포기하고 회심하면서 은 오만을 불사르는 일이 있다.
- 스미르나(서머나) 교회
- 페르가몬(버가모) 교회
- 티아티라(두아디라) 교회
- 사르디스(사데) 교회
옥한흠 목사가 2007년, 한국교회 평양대부흥100주년 기념대회 설교에서 한국 교회의 현실을 비판하며 인용했던 성경 구절이기도 하다.#
- 필라델피아(빌라델비아) 교회
- 라오디케이아(라오디게아) 교회
묵시록은 에페소 교회는 믿음에 대한 열정을, 스미르나 교회는 인정받지 못하고 비난을 받음에도 올곧은 믿음을 버리지 않은 의지, 페르가몬 교회는 악의 중심지에 놓여있음에도 굽히지 않았음을, 티아티라 교회는 신앙에 대한 순수한 태도[19] 를, 사르디스 교회는 악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속에서도 올바른 신앙을 지켜낸 자들이 있음을, 필라델피아 교회는 작은 능력을 가졌음에도 올바른 신앙을 지켰음을, 즉 잘 모르고 연약하나 치우치지 않고 올곧게 있음을 칭찬한다. 심지어 라오디케이아 교회 또한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으나 '''들을 귀가 있다'''[20] 는 것으로 칭찬하고 있다.
한편, 묵시록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 모두가 문제를 가지고 있는데, 라오디케이아 교회는 대놓고 꾸짖는 내용만 나오듯 완전히 그릇된 길로 가있으며, 사르디스 교회는 교회의 무리가 악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음을, 티아티라 교회는 이제벨에게 속아 넘어가있으며, 페르가몬 교회는 무리 안에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와 "니콜라스 당"의 자가 있음을[21] , 에베소 교회는 니콜라스 당을 지지하는 자들이 있으며 '''첫 사랑을 버렸음'''을, 스미르나 교회는 눈앞에 놓은 고난을 두려워 함을 지적받으며, 심지어 필라델피아 교회도 "미약한 상태"에 있음을 지적받는다.
3.3. 4~7장
4장부터 이 세상의 마지막 날과 최후의 심판, 새 땅, 새 하늘을 묘사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어느 때인가 세상에는 예정된 심판의 날이 올 것이고, 그때 메시아가 재림하여 합당한 자와 합당치 않은 자를 가려 천국으로 올려보낸다고 한다.
5장에서 6장까지, 어린 양은 어좌의 앉은 이에게서 봉인된 두루마리를 받아 그 일곱 봉인을 차례로 뜯고, 묵시록의 4기사를 시작으로 7번의 천재지변을 일으키는 장면이 묘사돼 있다.
- 첫째 봉인을 떼자 나타나는 기사는 하얀 말을 타고 활을 들고 있다. 그는 화관을 받고는 더 큰 승리를 거두려고 나아갔다.
- 둘째 봉인을 떼자 나타나는 기사는 붉은 말을 타고 나타났다. 그는 큰 칼을 받고, 사람들이 서로 죽이고 죽게 하면서 땅에서 평화를 거두러 간다.
- 셋째 봉인을 떼자 나타나는 기사는 검은 말을 타고 손에 저울을 들고 있다. 이 기사가 지나가는 자리는 풀 한 포기 남지 않는 기근이 일어난다. 이때의 물가는 1데나리온=밀 1되=보리 3되.[22]
- 넷째 봉인을 떼자 나타나는 기사는 푸르스름한 말[23] 을 타고 나타나며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손에 든 게 아무것도 없지만 그의 뒤에는 저승이 따르고 있었으며, 지나가는 자리에는 온통 시체뿐이다. 전술한 4명의 기사들은 칼부림, 굶주림, 흑사병, 들짐승을 동원해 지상의 4분의 1을 죽일 권한을 받는다.
- 다섯째 봉인을 떼자 하느님의 말씀 때문에 순교한 사람들이 모여서 "지상을 심판해서 우리의 피를 갚아주는 것을 언제까지 미루실 것인가!!"라고 외치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순교자의 수가 더 찰 때까지 더 쉬고 있으라는 분부를 받는다.
- 여섯째 봉인을 떼자 큰 지진이 발생하며 태양이 검게 변하고 달은 피로 물들며 별들이 땅으로 떨어지는 모습은 대혼란을 야기하는 장면이다.
3.4. 8~13장
7장에서 선택된 이들 모두가 세이프존에 안착하자, 8장에서는 어린양이 마지막 일곱째 봉인을 뗀다. 반 시간의 침묵 뒤, 나팔을 들고 나온 일곱 천사가 향으로 의식을 치른 뒤 차례로 나팔을 분다. 그러자 또다시 7번의 재앙과 기적이 일어난다.
- 첫째 천사의 나팔: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진다. 땅의 3분의 1, 나무의 3분의 1, 푸른 풀이 모두 타 버린다.
- 둘째 천사의 나팔: 불타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진다. 바다의 3분의 1이 피가 되고, 생명이 있는 바다 피조물들의 3분의 1이 죽고, 배들의 3분의 1이 부서진다.
- 셋째 천사의 나팔: 횃불처럼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3분의 1과 샘들을 덮치는데, 이 별 이름은 '쓴 흰쑥'이었다. 물의 3분의 1이 '쓴 흰쑥'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그 쓴 물을 마시고 숨진다.
- 넷째 천사의 나팔: 해 3분의 1, 달 3분의 1, 별들의 3분의 1이 타격을 받아 그 3분의 1이 어두워졌고 낮과 밤이 3분의 1의 빛을 잃어버렸다. 또한 독수리 1마리가 하늘 높이 날면서 "불행하여라, 불행하여라, 불행하여라, 땅의 주민들! 아직도 세 천사가 남았다!"고 외친다.
- 다섯째 천사의 나팔: 하늘에서 별이 하나 떨어져[24] 지하로 통하는 구렁을 열자 용광로처럼 연기가 솟아 대기가 어두워진다. 그리고 연기에서 머리에 금관을 쓰고 사람 얼굴에 긴 머리카락, 사자 이빨을 지닌 메뚜기들[25] 이 나와 '하느님의 인장'이 찍히지 않은 사람들만 골라 5달 동안 죽지 않을 정도로 괴롭힌다. 그런데 이 괴로움이 전갈에 쏘였을 때 느끼는 고통이라고 한다. 메뚜기들이 섬기는 군주인 '지하의 사자'는 히브리어로 '아바돈'이며 그리스어로는 '아폴리온'이다.
- 여섯째 천사의 나팔: 큰 강 유프라테스에 묶여 있던 4천사와 2억의 기병대가 풀려나와[26] 마귀들을 섬기는 사람들의 3분의 1을 사살한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전혀 뉘우치지 않았고 우상 섬기기도 멈추지 않았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요한은 지팡이 같은 잣대를 받고 하느님의 성전과 제단을 재고 그 안에서 예배하는 이들을 센다. 거기 속하지 않은 바깥의 이민족들이 성전을 42달 동안 짓밟을 것인데, 하느님은 두 증인을 내세워 1,260일 동안 어떻게든 예언하게 할 것이라고 한다. 그들이 예언을 마치면 지하의 짐승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큰 도시의 길바닥에 버려져 그들 때문에 괴롭힘을 당한 주민들에 의해 훼손을 당할 것이지만, 사흘 반이 지나면 부활해 승천한다. 그 동시에 큰 지진이 일어나 도시 10분의 1이 무너지고 7천 명이 죽는다. 그제야 주민들은 하늘을 두려워 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 두 증인에 대해서는 엘리야 · 모세, 즈룹빠벨 · 여호수아, 베드로 · 바울로, 보편교회 · 지역교회 등 여러 해석이 난무하지만 확실한 건 없는 상황.
- 일곱째 천사의 나팔: 하늘에서 큰 소리가 들려와 세상 모든 나라가 하느님 나라가 되었음을 선포한다. 어좌 앞에 있던 24명의 원로들이 하느님을 경배하여 엎드리며 "하느님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상을 주고 땅을 파괴하는 자들을 파멸할 때가 왔습니다!"라고 말하자, 하늘에서 하느님의 성전이 열리고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승리'를 선포하는 계약의 궤가 나타나면서 천둥 번개와 함께 지진이 일어나고 우박이 떨어진다.
- 바다의 짐승: 머리 일곱 달린 첫 번째 짐승은 용에게서 42달 동안 하느님을 모독할 권한을 받는데, 용은 일곱 머리 중 크게 다친 하나의 머리를 치유해 사람들이 그 짐승과 용을 따르게 한다. 성도들과도 싸워 이길 수 있고, 모든 민족을 다스릴 권한이 주어졌으며, 살해된 어린 양의 생명의 책에 이름이 없는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경배할 것이라고 한다. 이 짐승은 대체로 로마 제국 및 그 군사력을 상징한다고 한다.
- 땅의 짐승: 어린양처럼 뿔이 둘 있고 용처럼 말을 하는 두 번째 짐승은 첫 번째 짐승이 하는 모든 일을 다 해 보여서 사람들이 첫 번째 짐승을 경배하게 하고, 불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게 하거나 첫 번째 짐승의 상에 숨을 불어넣어 사람들을 공포스러운 경외감을 조성하는 등 큰 표징들을 일으켰다. 리용의 성 이레네오는 이 짐승을 '첫 번째 짐승의 시종'이라 일컬었다. 또한 모든 사람들에게 오른손이나 이마에 666이라는 표를 받게 하고, 이 표를 거부하면 경제활동을 할 수 없게 탄압했다. 세계의 부가 대부분 자본주의인 현재를 기준으로 보면 이는 곧 죽음을 뜻한다. 또다른 주장에 따르면 이 짐승은 대체로 로마의 미신에 굴복하라고 가르쳤던 거짓 예언자를 상징한다고도 한다.
3.5. 14~19장
14장에는 사람들이 혼란에 빠진 동안 시온 산 위에 어린 양과 144,000명의 선택된 선량한 사람들이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채 서서 새로 배운 노래를 부른다. 또 세 천사가 차례로 나와 하느님을 찬미하고 바빌론의 몰락을 알리며 사람들에게 경고를 한다. 요한은 "주님 안에서 죽는 이들은 행복하다"고 기록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렇게 환시는 끝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7개의 재앙이 아직 더 남았다. 천사의 경고는 곧 심판의 시작을 알리는 효시인 것이다.
요한은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금관을 머리에 쓰고 손에 낫을 든 채 흰 구름 위에 앉아 있는 걸 본다. 천사가 그에게 수확할 때가 됐다고 알리자 그는 땅에 낫을 휘둘러 곡식을 거둔다. 불에 대한 권한이 있는 또 다른 천사가 날카로운 낫을 들고 나와 포도송이를 수확해 도성 바깥에 있는 '하느님 분노의 큰 포도 확'에 넣었고, 그것을 밟았더니 피가 뿜어나왔다.
요한은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본다. 불 섞인 유리 바다 위에 용 '사탄'의 무리와 싸워 이긴 사람들이 서서 하느님을 찬미하고 있었다. 일곱 천사는 '하느님의 분노가 담긴 금 대접'을 받고 나와 차례로 쏟는데, 이것이 요한묵시록 16절의 내용이다.
- 첫째 천사가 땅에 쏟은 대접: 짐승의 표를 지닌 사람, 짐승의 상에 경배한 사람들에게 고약하고 지독한 종기가 생긴다.
- 둘째 천사가 바다에 쏟은 대접: 바다가 죽은 사람의 피처럼 되어 바다의 모든 생물이 죽는다.
- 셋째 천사가 강과 샘에 쏟은 대접: 물이 피가 되고, 물의 천사가 모세의 노래를 부른다.
- 넷째 천사가 해에 쏟은 대접: 사람들이 불에 타버리지만 회개하지 않고 원망만 한다.
- 다섯째 천사가 짐승의 왕좌에 쏟은 대접: 짐승의 왕좌가 어둠으로 변하고 괴로움을 참지 못한 사람들이 혀를 깨물지만, 회개하지 않고 원망만 한다.
- 여섯째 천사가 유프라테스에 쏟은 대접: 강물이 말라 해 돋는 쪽의 임금들을 위한 침입로가 마련된다. 용과 짐승과 거짓 예언자가 더러운 세 개구리의 영을 통해 임금들을 하르마게돈으로 불러모아 '하느님에 대적하기 위한 군대'를 꾸린다.
- 일곱째 천사가 공중에 쏟은 대접: 어좌에서 "다 이루어졌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천둥 번개와 함께 여태까지 일어났던 것보다 더 강력한 지진이 일어나 도시와 마을들이 무너지고, 산과 섬이 모두 사라지며, 하늘에선 무거운 우박들이 떨어진다. 하지만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고 원망만 한다.
탕녀를 로마 제국으로, 짐승의 머리들을 로마의 권력자로 해석하는 쪽의 주장에 따르면, 이는 로마 제국이 스스로를 좀먹어 멸망함을 뜻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건 다 하느님의 계획대로라고 한다. 대탕녀 바빌론이 죽으면, 천사들이 나타나 바빌론이 무너졌음을 선포하며 하느님을 찬미하는 긴 노래를 부른다.
19장에서는 어린 양의 혼인 잔치가 이어지고, '성실하고 참되신 분'이라고 불리고 '하느님의 말씀'[29] 이라는 이름을 지닌 이가 흰 말을 타고 온다. 전쟁의 격렬함을 상징하는 피에 젖은 옷을 입고, 적국의 왕을 상징하는 작은 왕관을 머리에 많이 쓰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쨌든 이 모습은 완벽한 승리자의 모습이다. 희고 깨끗한 옷을 입은 하늘의 군대가 그 뒤를 따르고 있었고, 천사가 새를 모아 죽은 적들의 살을 파먹게 한다. 짐승과 거짓 예언자는 붙잡혀 산 채로 유황불에 던져진다.
3.6. 20~22장
20장부터 21장까지는 2번의 부활을 통한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묘사한다.
- 천 년 통치: 천사가 용 '사탄'을 붙잡아 결박해 지하로 던진 뒤 봉인하는데, 그 기간이 딱 천 년이다. 순교자들의 영혼들은 다시 살아나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을 다스리지만 나머지는 천 년 동안 부활하지 못한다. 이 '천 년'의 의미에 대해서는 초대 교회 시대부터 많은 학설이 있었다. 천년왕국 문서 참고.
- 새 하늘 새 땅: 천 년 뒤에 사탄이 잠시 풀려난다. 그는 땅의 네 모퉁이에 있는 '곡(Gog)'과 '마곡(Magog)'의 민족들을 꾀어 어마어마한 전투를 모의한다. 이 군대는 곧 도성을 포위하지만 곧 하늘에서 내려온 불에 의해 삼켜진다.[30] 사탄은 일찍이 짐승과 거짓 예언자가 던져진 그 유황불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받는다. 이후 죽은 모든 사람들이 어좌 앞에 서서 생명의 책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고, 죽음과 저승, 그리고 생명의 책에 이름이 없는 모든 사람들이 불속에 던져진다. 그 뒤 요한은 원래 있었던 하늘과 땅, 바다는 모두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이 나타나는 것을 본다. 그곳에는 죽음과 슬픔, 울부짖음, 괴로움이 모두 사라졌으며, 하느님의 거처가 사람들 가운데에 있게 된다고 한다. 하느님은 요한에게 이 모든 것을 기록하게 한다. 천사는 요한에게 어린 양의 아내가 될 신부를 보여주는데, 그것이 바로 빛나는 예루살렘 도성이다. 그 밖에도 낮과 밤이 없이 빛나는 도성에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 같은 것들을 보여준다.
이러한 전반적 내용이 미래에 일어날 어떤 일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보는 쪽에서는, 요한 혹은 정체불명의 요한계 교회 인사가 박해로 약해진 신자들 마음을 북돋고자 썼다고 보기도 한다. 신자가 아닌 사람이 보기엔 그냥 세계멸망일지언정, 신자들에게 희망을 북돋워주는 박카스 같은 내용이라는 주장.
4. 등장 개념 및 해석[31]
4.1. 가톨릭 교회의 해석
요한묵시록을 보면 보통 ‘무섭다’, ‘두렵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느님께서 머지않아 반드시 일어날 일들을 알려주신 계시’(묵시 1,1)가 요한묵시록인데, 그 계시의 내용이 마치 재앙처럼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무서운 심판과도 같은 일들을 묘사하고 있고, 또 그 이들이 머지않아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하니 두려운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울 수 있다.묵시록의 내용은 대강 이렇다. 하늘에서 봉인을 일곱 차례 뜯는 장면이 나오는 6장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살해하고 평화가 사라지며(4절), 흉년과 굶주림과 흑사병 등이 일어난다(6-8절). 또 일곱 번의 나팔을 부는 8장에서는 우박과 불이 땅에 떨어지고(7절),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며, 강들에 독성이 퍼져 그것을 마시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일 등이 벌어진다(8-11절). 12장에서는 사탄이라고도 불리는 용이 나타나서 영인을 괴롭히는 내용이, 13장에서는 두 짐승이 나타나서 신앙인들을 박해한다. 16장에서는 하늘에서 일곱 대접을 땅에 쏟는데, 이 때에도 우주적인 재앙이 벌어진다.
그런데 요한묵시록은 우리에게 공포심을 안겨주기 위해 쓴 책이 아니다. 요한묵시록 전체에서 '''‘행복합니다(makarios, 헬라어 μᾰκάριος)’'''라는 말이 일곱 번 나오는 것만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1,3; 14,13; 16,15; 19,9; 20,6; 22,7; 22,14). 성경에서 일곱이라는 숫자는 충만함을 상징한다. 그러니 요한묵시록의 저자는 이 책이 ‘재앙의 책’이 아니라 축복으로 가득한 ‘행복의 책’임을 분명히 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묵시록의 내용 자체가 전반적으로 재앙을 묘사하고 있는지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어둠 속에 살아가는 것이 익숙한 박쥐에게 있어서는 빛이 재앙이 된다. 그러나 햇빛을 따라 살아가는 해바라기에게 있어 그 빛은 축복이 된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이를 요한묵시록과 같다고 본다. 하느님을 충실히 섬기는 이들에게는 이 책이 축복이 되지만, 하느님과 맞서 대적하려는 이들에게는 이 책의 내용이 심판처럼 느껴질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마치 에덴동산에서 죄를 지었던 아담의 반응과도 같은 이치이다. 그는 죄를 지은 이후에 하느님께서 저녁 산들바람 속에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 두려워하였다(창세 3,8). 그가 죄를 짓지 않았다면 그 소리는 그에게 반가운 소리였을 것이다. 신자들도 마찬가지이다. 하느님을 충실히 믿고 따르려는 ‘마음’만 있다면 요한묵시록을 두고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본다.
4.2. 666
짐승의 수를 가리키는 666이 무엇인지는 요한묵시록이 정경으로 확정된 이래 오래된 떡밥. 집필자 요한은, 지혜 혹은 통찰력이 있다면 이것의 뜻을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초대교부 이레네오 등 많은 사람들은 이것의 뜻을 전혀 알지 못했고, 이후에도 정확한 뜻이 밝혀지기는 커녕 추측만 난무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요한묵시록의 판본에 따라 616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일부 성서학계에서는 666이 네로 황제를 가리킨다는 학설이 널리 퍼졌다. 네로 황제의 이름을 구성하는 문자를 숫자로 해석하면 666으로도, 616으로도 풀이할 수 있기 때문. '네로 황제'를 히브리어로 옮기고 n=50, r=200 등으로 숫자를 바꾸면 666 또는 616이 된다. 요한묵시록을 1세기 로마제국 시대라는 시대적 상황의 산물이라고(혹은 산물일 뿐이라고) 여기는 쪽에서 주로 주장하는 내용이다.
종교개혁 시기에는 개신교에서는 교황을 666, 가톨릭에선 마르틴 루터를 666으로, 서로 적그리스도라고 비방했다.
음모론으로 바코드가 666을 가리키며 이것을 사람들 몸에 심을 거라는 설이 제기된 바 있으며. 휴거론자(혹은 세대주의자)들은 이 표가 베리칩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최근에는 정맥인증이 666을 가리킨다고 주장되고 있다.
원자력 발전소 음모론으로 전 세계적으로 원전 666기 건설에 도달하면, 향후 100년 내에 잦은 고장과 전쟁, 알 수 없는 기상이변으로 통제 불능이 되어 전 지구적 핵겨울이 된다는 설이다. 그리고, 기존 원전, 현재 건설 중 원자력 발전소의 합은 507기다.(현재는 조금 줄어들었다)
4.3. 144,000명
666과 더불어 12×12×1,000=144,000도 좀 유명하다. 지상의 사람들 중에 딱 잘라 요만큼만 하늘로 올려보낸다고 하는 커트라인이라는 설이 있지만, 사실 그것은 성경 등 히브리 문학에 의외로 자주 쓰이는 숫자다. 히브리 문학은 수신학(Theomatics)이라고 하는 숫자와 연관된 어구들을 연구하는 학문이 존재하는데, 12라는 숫자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와 '''완전수'''[32] 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1,000을 곱하는 이유 또한 1,000이라는 숫자가 '많음'이라는 뜻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144,000은 실제 수라기보다는 '완전하다' 또는 '매우 많다'는 것을 뜻하는 표현이다.[33]
문맥적으로 따져 봐도 커트라인 운운은 상징주의를 비롯한 신약성경의 주된 메세지를 깡그리 무시하는 의견이라고 많은 신학자들한테 까인다. 요한묵시록 7장을 보면 단 지파를 빼고 레위 지파를 넣은 '''12지파에서 12,000명씩'''이라고 했기에 '''12×12,000=144,000'''이 맞다.
게다가 144,000명이 등장하는 바로 그 구절(요한묵시록 7장 4~8절) 뒤에 '''"그 뒤에 나는 아무도 그 수효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인 군중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모든 나라와 민족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자들로서... (후략)"'''라는 구절이 있는데(요한묵시록 7장 9~17절), 즉 문자적으로 봐도 144,000명보다는 훨씬 많은 사람이 구원받을 거라는 말이다. 한마디로 어떤 식으로든 구원받는 자들의 총 수는 144000+@. 전 세계 통틀어서 144,000명만이 구원받고 나머지는 다 멸망한다는 말은 신빙성이 제로인 것.
많은 조건부 종말론 종교에서 이 144,000명 떡밥을 애용하기도 한다. 기존의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여러번 거짓된 종말론으로 혹세무민해오다가 92년 휴거사태(다미선교회)를 마지막으로 날짜로 사기 치는 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신천지등이 이쪽으로 갈아타면서 지금은 사이비 교주들이 주장하는 종말론의 대세가 된 상태. 결국 명심할 것은 요한묵시록은 '''겁을 주려고 쓴 글이 아니라 희망을 주려고 쓴 글'''이라는 것. 물론 하느님을 진실로 믿는 신도들에게 '희망'이라는 것.
그리스도교에 일반적으로 퍼져 있는 영혼불멸 교리와 일반적 천국 교리를 부정하는 여호와의 증인의 경우에는 하르마게돈 전쟁에서 생존한 수많은 참 그리스도인 신자들은 태초 에덴동산의 아담이 그러했듯이, 회복된 지상 낙원에서 살 것이고 인침을 받고 선택된 144,000명은 '적은무리'로서 하늘로 올라가 예수와 함께 왕노릇하며 낙원이 된 지상을 다스린다고 본다.
4.4. 황충
무시하고 넘어가기 쉽지만 요한묵시/계시록을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개념이다. 이 황충은 요한묵시/계시록과 깊은 연관성이 있는 일부 구약 예언서를 제외하면 요한묵시/계시록에만 등장한다. 하느님의 구원의 논리가 "죽일 기계"로도 묘사되고, "양날의 검"으로도 묘사되는 이유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한 가지 중요한 건 십자가 사건 이유로 구원을 얻지 못하고 죽든, 구원을 향해 나아가든 어쨌든 "일단 죽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조금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으나, '''종파를 불문하고 기독교 교리에서 기본적으로 인류 전체가 대죄 상태에 있다'''[34] 고 하는 것을 생각하면 의외로 당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요한묵시록이 근미래의 제3차 세계대전을 예언한다고 주장하는 유사종교학적 해석의 경우 보통 황충을 MBT에 대한 은유라고 해석하는 케이스도 있다.[35]
세부적 해석에 심각한 문제[36] 가 있지만, 아가서를 그리스도의 축사로 본 워치만 니[37] 의 "그리스도의 축사로써의 아가서" 개념을 차용하여 아가서를 해석할 때 "왕"의 곁에 있는 "화자들"이 '''밤의 두려움으로 인해 검을 찼다.'''[38][39][40] 고 하는 것과 이 황충으로 대표되는 온전해진 구원의 법의 작동구조와 큰 관련이 있으니 참고할 것.
가톨릭이나 정교회 쪽은 묵시록의 내용이 그들 나름대로 이미 정립되어 있기 때문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데에 비해, 만인제사장을 주창하는 개신교에서는 모든 목사나 신학박사들의 입장이 똑같지 않다. 당연히 지극히 비현실적이고 비유적인 내용들 뿐이니 이해하기도 어렵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비기독교인 위키러들이라면 '''기독교 교리 중 한 축을 이루는 '종말론'에 관한 부분''' 정도로만 이해해도 무방.
성경에서는 종말이 언제 어떤 형식으로 오는가?' 하는 '종말'의 문제(종말의 시기)는 오직 하느님만 아는 것이라고 못을 박는다. 누군가가 요한묵시록에 나오는 종말의 정확한 시간에 관해 올바로 풀이할 수 있다거나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설레발을 친다면 무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 기독교계의 흔한 면피성 변명인 일부 이단 수준이 아니라 진짜 이단이다. 즉 상대해 봐야 피곤하고, 어이는 안드로메다로 날려보내는 해로운 종류일 확률이 아주 높다.
굳이 해석을 하려고 한다면 다른 요한묵시록만이 아닌 다른 성경과 연계해서 어느 정도까지의 해석과 설교는 가능하다. 하지만 그래봐야 앞에서 언급한 총론적 종말론의 수준 정도가 정석이지, 그 이상으로 제멋대로 해석하는 건 잘못된 행위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 맞다.
새 하늘과 새 땅의 경우를 예로 들면, 특정 장소를 주장하는 집단부터[41] 시작해서 지금의 지구를 리모델링하지 않을까 하는 설, 지구를 부수고 새로 만들어 버리는 새로운 지구설, 지금 지구를 사용하기는 하되 녹여서 사실상 새로 만들어 버리는 용융설 등등... 이론이 다양하다.
2006년에 그림으로 보는 요한계시록이 나왔다. 본격 진 예수무쌍에, 가톨릭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성경침례교 계열 말씀보존학회[42] 에서 출판된 책이기 때문에 가톨릭을 신랄하게 깐다. 저자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창녀를 가톨릭으로 해석하였는데, 사실 가톨릭을 창녀의 전부 혹은 일부라고 보는 견해는 19세기 서구에서도 꽤 존재하였다.
정말 많은 사람이 쉽게 간과하는 사실인데, '''정작 요한묵시록에 적그리스도라는 단어는 한 글자도 나오지 않는다.''' 흔히 묵시록의 짐승이라고 칭하는 존재는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을 말한다. 요한 서신(요한 1서,2 서,3서)에서 적그리스도라는 호칭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는 그 당시 교회를 위협했던 영지주의파를 위시한 가짜 기독교인들을 가리킨 것이다. 이렇듯 이미 1세기부터 적그리스도라고 불리는 대상은 존재하였으므로 이것이 과거 역사 어느 시점의 혹은 미래의 어떤 세계적 특정인물을 가리키는 것이란 주장은 옳지 않은 것이다.
여하튼 기록된 내용의 임펙트와 성경의 제일 마지막 페이지란 점, 미래의 예언을 담은 점 등 기독교의 중요 연구대상인 것은 확실하다.
5. 정경 논란
이 책은 신학적으로는 요한 자신이 겪은 모든 환상을 남김 없이 드러내려고 썼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야말로 완전히 '환상'을 묘사하고 있는 내용이라서, 초기에는 정경에 포함되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논란이 많이 있었다.
초기 기독교 교회에서는 종말론적 분위기가 널리 퍼져있었기 때문에 마치 1990년대 말기에 휴거 드립에 따온 책자, 영화 등이 널리 퍼져 있었듯이 많은 묵시문학류가 존재했고 널리 읽고 있었다. 위경 가운데 하나인 '베드로의 묵시록'처럼 사도의 이름을 따와서 적은 문서도 많았다.
비기독교적 접근을 시도하는 쪽에서는, 요한묵시록이 그저 당대에 존재했던 여러 묵시록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이러한 묵시록들의 목적은 물론 현대의 기독교인들이 666을 소재로 한 영화를 보는 것처럼, 센세이셔널한 내용으로 정신적 고양과 종교적 각성을 위한 것이었고 따라서 종교적으로는 상당한 가치가 있는 문서였다고 보지만 이러한 시대적, 역사적 사료로서의 의미 그 이상은 없다고 주장한다.
당시에 존재했다던 그 여러 '묵시록'들은 자칫 말세적 분위기를 조장하여 반사회적인 행동을 부추기게 될 우려가 많았다고 보기도 한다. 결국 요한묵시록 이외의 다른 묵시록들은 여러가지 논란 끝에 모두 위경으로 처리되었으며, 당시에만 해도 요한묵시록 역시 정경으로 포함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논쟁이 있었다. 그리고 후대에는 요한묵시록 만으로도 문제거리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게 되었다.
실제로 잘못 해석해 사회에 혼란을 가지고 오게 되면 그날로 해석을 잘못한 사람은 물론 그 말을 믿은 여러 사람들의 인생을 종치게 만든다. 절대로 자기 잘난 맛에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 워낙 떡밥이 많다 보니 해석하는 방법이 실로 무궁무진하며, 실제로 신천지 등 이단 종파에서 가장 많이 인용하는 성경이 요한묵시록이다. 이러한 종파의 중요 특징은, 요한묵시록에'만' 집착한다는 것이다. 전체 구-신약 성경 내의 다른 구절과 서로 통하는 내용인지 연관지어서 봐야 함에도 성경의 전체 66책 중 묵시록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매우 등한시한다는 것이 특징. 정통을 자처하는 일반적 교회들(특히 개신교)에서조차 목회자 혹은 교회 분파들에 따라 해석이 천차만별인 경우가 허다하다. 일치된 해석교리를 가지고 있는 쪽은, 보편적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진 가톨릭 교회 정도. 그래서 이따금 자기 멋대로 풀이하는 설교자들 때문에 문제가 생기곤 한다. 그야말로 '''주화입마 걸리기 딱 좋은 책'''이다. 자칫하면 요한계시록 스스로가 그토록 경계한 '거짓 예언자'가 될 수 있다.
다른 건 그렇다 치고, 앞에서도 나왔지만 '''이 말씀을 가감하지 말라'''라는 말만이라도 기억해두자. 가감하지 말라는 말은 더하거나 빼지 말라는 뜻이다. 성경 내용에 이단적인 내용의 주석을 붙여 잘못된 교리를 합리화하거나 성경 외에 다른 경전을 계시록이나 성경과 동일시하는 태도를 보이지 말라는 뜻과 더불어 요한 묵시록에 적힌 예언을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나 헛소리처럼 취급하지 말라는 뜻을 동시에 가진다. 한편으로는 여기도 두 가지의 해석이 있는데, "이 말씀"이 요한 묵시록만을 의미한다는 해석과 신구약 성경 전체를 의미한다는 해석이 있다.
6. 그 외 참고사항
- 광야아트센터(※ 압구정로데오역 4번출구)에서, 요한계시록의 2~3장을 각색하여 뮤지컬로 제작했다. 버가모 교회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마니또르, 어머니, 옥수수박이 각각 우상숭배자로 등장한다.
7. 대중문화
워낙 상징성이 강한 경전이라서 여러 작품들의 모티프가 되었다.
- 666 - 그리스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아프로디테스 차일드의 마지막 앨범. 앨범 내 수록곡 전체가 요한묵시록의 내용을 기반으로 한 컨셉 앨범이며, 작곡자 겸 키보디스트 반젤리스의 초기작에 해당한다.
- 악튜러스
- 오멘
- 엑스맨 아포칼립스:이 작품의 메인빌런인 아포칼립스가 여기서 모티프를 한 것이며 묵시록을 모티프로 만들어진 빌런답게 자신의 부하들이자 직속 4천왕들인 묵시록의 4기사들을 데리고 다닌다.
- 세븐 사인(1988) - 데미 무어가 주연한 영화. 바로 본경의 7개의 상징을 이용하고 있다.
- 장미의 이름 -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살인 사건이 바로 묵시록의 7상징을 따라 이뤄진다.
- 휴거 - 시한부 종말론이 기승을 떨칠 때인 1990년 제작된 괴작 한국영화. 유튜브를 보면 찾아볼 수 있다.
- 세상이 끝나는 날(End of Days) -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주연한 영화. 조금 먼저 나왔던 퇴마록 영화판과 스토리가 매우 비슷하다.
- 종말의 세라프 - 점프SQ에서 연재되는 만화/ 코단샤에서 연재되는 소설(과거편). 세계관의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작중에서 등장하는 요한의 4기사와 종말의 세라프 등이 그 예. 참고로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이 세라프의 힘을 가진(또는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실험체들이다.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세라프는 제 2나팔로 추정된다.
- 디스 이즈 디 엔드 - 요한 계시록과 기독교적 종말을 소재로 한 디 인터뷰의 세스 로건식 미국식 병맛 코미디영화.
- 조니 캐쉬가 죽기 1년 전
라는 노래를 만들었는데, 내용이 요한계시록이다. - 스타크래프트 - 묵시록급 핵 미사일
- 세인트 영멘에서는 요한이 쓴 호러 소설(...)로 분류된다. 엄청난 베스트셀러인지라 2000년이 지났음에도 팬 사인회를 열고 있다. 특히 미카엘이 '나의 바이블'이라고 할 정도로 팬이다. 세율은 낮아도 인세도 받는 모양. 요한의 환상을 적었다는 부분에서 모티브를 따왔는지 홍차[43] 를 마시고 환각증세에 걸리면서 보이는 것들을 글로 옮긴 것으로 묘사된다.
- 퀄리디아 코드 - 쓰레기와 금화의 퀄리디아에서 성경 관련 내용들이 나온다.
- 폴아웃 3 -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인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는 요한묵시록 구절을 인용하였다.
- Supper's Ready - 제네시스(밴드)
- 진 여신전생 시리즈 : 트럼페터(나팔수), 마더 할롯(대탕녀 바빌론), 라이더 형제들(화이트라이더, 레드라이더, 블랙라이더, 페일라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