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보카트호

 


1. 개요
2. 활동
2.1. 감독 취임
2.2. 2005년
2.3. 2006년
3.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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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제64대 감독 딕 아드보카트의 대표팀에 대해 다룬 문서.

2. 활동



2.1. 감독 취임


월드컵 예선은 무사히 통과하긴 했어도 저조한 성적표만을 받던 조 본프레레는 결국 자진사퇴로 한국서의 커리어는 막을 내리고, 이후 아드보카트는 2006 FIFA 월드컵 독일을 맡을 사령탑을 물색하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레이더망에 포착된다.
이회택 기술위원장을 필두로 하는 기술위원회에서 비공개로 7인의 후보를 압축했는데, 당초 언론의 예상으론 바비 롭슨,[1] 베르티 포그츠, 루디 푈러, 믹 매카시, 마르셀로 비엘사, 이안 포터필드,[2] 필립 트루시에,[3] 핌 베어벡[4] 등의 감독들이 하마평에 오르던 중에도 아드보카트의 이름은 거론되지 않는 편이었다.당시 예상 기사 아무래도 한창 UAE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재직하고 있기에 후보군에서 제외된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선임작업 말미쯤에 접촉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언론에서 유력후보로 급부상하게 되었으며, 2005년 9월 13일 오피셜이 나오면서 정식으로 부임하게 된다. 히딩크 - 본프레레 - 아드보카트 - 베어벡으로 이어지는 '더치 커넥션'의 중추를 맡게된 셈이다.
이 당시 아드보카트와 UAE 축구 국가대표팀 사이에 계약기간이 남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드보카트는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했다. 그리고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 진출이 확정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취임해 UAE 축협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2.2. 2005년


취임 직후의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2005년 10월 12일 서울에서 열린 이란과의 홈 친선경기에서 2:0 완승을 거두었고, 스웨덴을 상대로도 2:2 무승부를 거두었다. 전반 7분 안정환의 득점으로 1:0으로 앞서갔으나 1분 만인 8분에 토비아스 린데로스에게 실점당해 1:1이 되었고 후반 6분 수비수 김영철의 득점으로 다시 2:1로 리드했으나 후반 11분 마르쿠스 로젠베리에 실점을 내주면서 최종 결과는 2:2로 종료되었다.[5] 스웨덴전 무승부였지만 이란전이나 스웨덴전 모두 경기 내용이 나쁘지 않았어서 당시 유행하던 화장품 광고문구를 패러디해 '감독 하나 바꿨을 뿐인데.'라는 말이 네티즌 사이에서 회자될 정도.

2.3. 2006년


2006년 새해 첫 경기는 공교롭게도 바로 직전 지휘봉을 잡았던 아랍 에미리트와의 친선경기였는데 이 경기에서 0:1로 패했다. 믿지 못할 패배에 다들 어안이 벙벙. 대한민국을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켰지만 경질된 전임 감독 조 본프레레는 어떻게 UAE한테 다 패배할 수 있느냐며 아드보카트를 깠다(...). 이후 이어진 홍콩 칼스버그컵 등에서는 나름 나쁘지 않은 성과를 냈고[6] 특히 이 과정에서 조원희이호가 '''아드보카트의 황태자'''로 등극하게 되었다.
하지만 월드컵 직전 스코틀랜드에서 가졌던 가나와의 평가전에서 1:3으로 대패했다.[7] 경기 내용 또한 좋지 않아 본선에 대한 우려를 낳기도 했다.[8]

2.4. 2006 독일 월드컵




3. 평가


2006 FIFA 월드컵 독일 본선 출전팀은 '''굵은 글씨(볼드체)'''로 표시.
일시
장소
상대팀
경기결과
스코어
구분
비고
2005. 10. 12.
대한민국, 서울
'''이란'''
''''''
2 : 0
친선 경기

2005. 11. 12.
'''스웨덴'''
''''''
2 : 2

2005. 11. 16.
'''세르비아'''[9]
''''''
2 : 0

2006. 1. 18.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아랍에미리트
''''''
0 : 1

2006. 1. 21.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그리스
''''''
1 : 1
LG컵

2006. 1. 25.
핀란드
''''''
1 : 0

2006. 1. 29.
홍콩, 홍콩
'''크로아티아'''
''''''
2 : 0
칼스버그컵

2006. 2. 1.
덴마크
''''''
1 : 3

2006. 2. 8.
미국, 로스앤젤레스
로스엔젤레스 갤럭시
''''''
3 : 0
친선 경기

2006. 2. 11.
미국, 오클랜드
'''코스타리카'''
''''''
0 : 1

2006. 2. 15.
미국, 로스앤젤레스
'''멕시코'''
''''''
1 : 0

2006. 2. 22.
시리아, 알레포
시리아
''''''
2 : 1
2007 AFC 아시안컵 예선

2006. 3. 1.
대한민국, 서울
'''앙골라'''
''''''
1 : 0
친선 경기

2006. 5. 23.
세네갈
''''''
1 : 1

2006. 5. 26.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2 : 0

2006. 6. 1.
노르웨이, 오슬로
노르웨이
''''''
0 : 0

2006. 6. 4.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가나'''
''''''
1 : 3

2006. 6. 13.
독일, 프랑크푸르트
'''토고'''
''''''
2 : 1
2006 FIFA 월드컵 독일
조별예선 G조

2006. 6. 18.
독일, 라이프치히
'''프랑스'''
''''''
1 : 1

2006. 6. 23.
독일, 하노버
'''스위스'''
''''''
0 : 2
'''1승 1무 1패'''
'''조 3위'''
'''결과 : 총 20전 10승 5무 5패'''
비록 대표팀이 16강 진출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드보카트 감독에 대한 비판은 전임 감독들에 비해 많지 않았다. 대회를 준비할 기간이 충분하지 않았음에도 대표팀 전력을 제법 끌어올려 당시 기대치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와 비슷한 정도로 낮았던 대표팀이 사상 첫 원정 승리 및 종합적으로 1승 1무 1패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둔 것이 큰 이유였다. 무엇보다 어그로를 스위스전 심판인 오라시오 엘리손도와 당시 골을 기록한 선수인 알렉산더 프라이 가 끌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 이 대회 최종 성적은 17위였다. 16강 탈락팀 중 가장 성적이 좋았던 팀이었다. 지역예선에서 사우디에 척살당하고 양학으로 간신히 올라온 팀이 충분히 반등했다고 볼 수 있는 성적이었다.
하지만 '''월드컵이 개막하기도 전에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감독으로 부임하기로 사전 협상을 끝마쳤던 상황'''이었던지라 이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2010년대 들어 아드보카트가 월드컵 이후에도 국가대표팀 감독을 연임하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는 축빠들이 상당히 많은데 월드컵 성적 여하에 따라 대한축구협회와 추가 계약을 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니트와의 사전 협상을 진행해 월드컵 직후 러시아로 곧바로 날아간 선택을 한 건 아드보카트 본인이다.
가뜩이나 8개월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 파브를 비롯해 몇 가지 TV 광고를 찍어가면서 축구 외적인 돈벌이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 당시 언론에서도 아드보카트를 거스 히딩크 급의 지도자로 포장해주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대표팀의 16강 진출에 실패한 뒤 미리 계약한 대로 바로 러시아로 날랐기 때문에 전형적인 먹튀의 수순으로 비춰졌다. 더군다나 당시 알렉산더 프라이의 추가골의 빌미를 제공했던 이호를 비롯해 당시 대표팀에서 많이 까였던 김동진을 애제자로 데려갔던 터라 아예 세 명이 세트로 묶여서 까였다(...).
또한 전술적인 면에서도 비판을 받았는데 당시 조 최하위의 전력으로 평가되는 토고를 상대로 지나치게 수비적인 경기 운영을 펼쳤다. 특히 후반 40분 경부터 한국 진영 내에서 볼을 돌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응원하던 축구팬들에게도 까였고 그날 경기를 보러 온 관중에게도 심한 야유를 받았다. 결국 16강 진출을 다투던 스위스에 비해 골득실에서 밀리는 불리한 상황을 안고 스위스와의 맞대결을 가져 무조건적인 승리를 위해 무리한 경기 운영을 펼친 결과 오히려 스위스에 얻어맞았다는 분석도 있다.[10] 또한 비록 스위스전 당시 전체적인 판정이 스위스에 유리하긴 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스위스를 상대로 그다지 좋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주었던 것도 도마에 올랐다. 사실 당시 대표팀은 설령 프랑스에 졌더라도 스위스만 이겼으면 16강 진출이 가능했던 상황이었다. 즉, 결과적으로 보면 버려도 상관없었을 프랑스와의 경기는 나름 잘했음에도 불구하고[11] 정작 반드시 잡아야했던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인 것이 비판의 대상이다.
취임 이후 여러 평가전에서 당시 3백 체제였던 대표팀 수비를 4백으로 전환하기 위해 여러 조합을 실험해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으나 정작 월드컵 본선에서는 뜬금없이 3백으로 회귀했기에 평가전에서 헛되이 시간을 허비한 것이 이나냐는 팬들도 적지 않았다. 덧붙여서 아드보카트 본인이 국가대표팀에 발탁하고 적극적으로 기용해 황태자 소리까지 들었던 조원희를 정작 월드컵 본선에서는 전혀 기용하지 않았으며 그 대신 김동진-이영표 라인을 가동해 이영표의 능력을 극대화시켜 끌어내는 선택을 하지 않았던 것 또한 비판의 요소 중 하나이다.[12] 전체적으로 본선에서는 지나치게 소극적인 운영을 하다가 어느정도 신중하게 운영해야 할 스위스전을 다소 무리한 운영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거 자체부터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1] 워낙 지명도가 높은 초일류 감독이다보니 당시 여론에선 상당히 뜨거운 감자였다. 설문조사서 차기 국내감독 선호도 1위를 차지했을 정도. 마지막 커리어인 뉴캐슬 유나이티드 감독을 마치고 감독직을 이어가겠단 의지를 보였다는 인터뷰도 발굴되었으나, 실제여부는 불분명하다.[2] 당시 부산 아이파크 감독 재직.[3] 2002년 월드컵때 일본을 16강으로 이끌었던 그 감독 맞다.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까지 마다하면서 스스로도 한국 국대에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4] 그 유명한 히딩크호의 코치로 활동했던 분이며, 훗날 아드보카트호 수석코치로도 재부임하고 아드보카트호의 퇴진 이후로는 한국 국대 감독으로 승격하게 된다.[5]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에서 국가별 역대 전적을 참조했다. 출처[6] 칼스버그컵에선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승리했다. 물론 칼스버그컵의 특성상 크로아티아도 2군을 내보냈다고는 하나 스르나를 포함한 에이스 몇 명 빠진 것 뿐이고, 한국 역시 국내파로 구성된 멤버였다. 통곡의 벽 마토도 크로아티아 대표로 출전했다. [7] 월드컵 개최지가 독일인데, 전지훈련 캠프를 바다 건너 스코틀랜드에 차린 것에 대해 약간 잡음이 있었다. 아드보카트가 선호하는 국가에 일방적으로 캠프를 차렸다고...[8] 이 당시까지만 해도 국내의 축빠 및 언론에서는 가나의 전력을 크게 쳐주지 않는 분위기였으며 심지어 몇몇 축빠들은 가나의 전력을 '''토고보다 약간 나은 수준''' 정도로 평가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의 가장 큰 무기인 김남일-이을용-박지성 중원이 에시앙-문타리-아피아에게 철저히 밀리는 모습을 보이자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표시하였다.[9] 당시 명칭은 세르비아 몬테네그로[10] 다만, 당시의 토고처럼 승점자판기로 분류되는 팀과 첫 경기로 배정되면 불리한 점은 객관적으로는 조 최하위로 평가받더라도 실제로 이 팀이 진짜 승점자판기가 될지, 추후에 골득실을 따지게 되면 몇 골이 필요한지 첫 맞대결을 하는 입장으로서는 이 기준점을 잡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토고전에 수적으로 우세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전 이후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으며, 이에 따라 골득실은 나중 문제고 우선은 이기는데 집중을 하자는 전략으로 운영했다고 보여진다.[11] 톱시드팀 상대로 무승부를 기록한 자체는 엄청난 성과이긴 하지만, 경기 내용면에서는 졸전이나 다름없었다. 상대에게 수 많은 실점 위기를 맞았지만 1골만 실점하고 몇 안되는 찬스에서 동점골을 뽑아내는 등 눈에 보이는 내용에 비해 결과가 엄청나게 잘 나왔던 경기였다고 볼 수 있다.[12] 이영표는 오른발잡이로 헛다리 짚기 드리블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레프트백에 최적화된 선수이며 레프트백으로 활약한 덕에 유럽진출까지 가능했었다. 더군다나 좌측 미드필더 박지성과 호흡도 좋았기에 토고전 이후로 라이트백으로만 투입한 것은 분명 아쉬운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