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호(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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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배우.
2. 상세
1999년 CF 모델로 데뷔했지만 듣보잡에 가까운 처지로 있었다. 1998년 까의 단역으로 데뷔했고 2000년, 다채롭고 절륜한 검열삭제 신으로 이름을 날렸던 영화 '미인'에서 주연을 맡아 아마도 이름은 이지현과 함께 알렸지만 영화 내용 자체는 그닥...[7]
잘생겼지만 연기 못하는 배우 중에서도 무명급인지라 활동 지속 여부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캐스팅[8] 된 드라마 두번째 프러포즈에서 캐릭터를 잘 소화해내어 연말 시상식에서 남자 조연상을 수상하며 연기자로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이후로 드라마에 자주 출연하며 코믹한 역할을 상당히 많이 맡게 된다. 특징적으로는 원톱 여배우와의 호흡이 상당히 좋은 편으로 환상의 커플, 내조의 여왕, 직장의 신 등 히트한 드라마 상당수가 그런 작품이 많다. 얼빵하거나 코믹한 연기가 상당히 잘 어울리는데 본인은 코믹한 연기보단 진지한 인물을 연기하는 것을 선호하는 듯하다. 특히 추노에서 조선 제일검 송태하역으로 인지도를 높이는 동시에, 근육질 몸매를 선보였다.
결혼한 2014년 이후로 코믹한 역할로 출연한 작품이 거의 없다. 실제로 겪어본 사람들 말로는 성실하고 정이 많은 성격 등 인간성은 괜찮은 사람이라는 듯.
연기자 활동을 하면서 예능인 천하무적 야구단에도 출연하여 팀의 투수 겸 4번타자로 활약했다. 유연성이 제로임에도 불구하고[9] 사회인 야구단에서 활동하면서 쌓은 실력을 바탕으로 절친 김성수와 함께 천하무적 야구단의 주전으로 활동했다.
3. 출연 작품
3.1. 영화
3.2. 드라마
4. 수상
5. 기타
- 흑역사가 있는데, 텐프로에서 접대부로 일하던 전 여자친구가 자살하여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오지호가 무명이던 시절 만나 그를 뒷바라지해주었으나, 막상 오지호는 유명세를 얻고 난 뒤 그녀와 헤어졌고[11] , 그 뒤 그녀는 그만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 게다가 오지호는 그녀의 장례식장에 문상을 오지 않았는데, 고인의 측근의 말에 따르면 고인이 죽기 전에 '무슨 일이 생기면 오빠에게 알려주라'는 문자를 남겼고, 이에 따라 오지호에게 그 사실을 알렸지만 오지 않았다고 한다.[12][13] 전 여자친구가 이별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 때문에 비판하는 사람들이 아직 있으며, 이 이후 방송활동도 비교적 뜸해진 편. 2007년 오지호 측의 입장이 담긴 기사
- 젊을 적에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는지, 어머니께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돈을 빌리던 적이 있다고 한다. 지금이야 뭐...
6. 관련 문서
[1] https://youtu.be/4pg3qzE2Qyo 키가 184.5cm인 박찬호와 키 차이가 많이 난다. 본인이 최근에는 약간 줄어 184.X라 언급.[2] 누나 1명과 남동생 1명으로 장남이다.[3] 1979년생이다.[4] 개명 전 이름은 오예준.[5] 2020년 7월 22일 컬투쇼에 출연해서 밝혔다.12분 20초[6] 現 연성대학교[7] 다만 흥행 실적에서는 절대로 망한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이익을 봤다. 10만 명 정도의 관객이 관람했는데, 당시 기준으로도 많다고 할 관객 수는 아니었지만 작은 수치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저예산'''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무릎팍에서 오지호 본인도 흥행은 성공이었다고 말했다.[8] 작가가 완강히 반대했으나 감독이 밀어붙였다고 한다. 촬영 직전에서야 겨우 캐스팅이 확정되었다.[9] 당시 넥센 히어로즈의 정민태 투수코치는 오지호를 보고 "이렇게 뻣뻣한 사람이 왜 야구를 하지?"라고 말할 정도였다. 투수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몸이라고.[10] 드라마에서 불렀던 김종국의 한 남자를 다시 부르는 특별무대를 한 적이 있다.[11] 진위여부는 알 수 없으나 오지호의 주장에 의하면 여자친구가 먼저 헤어지자고 통보했다고 한다.[12] 아마 세간의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13] 이것이 이기적으로 보일 수는 있으나, 만약 실제로 오지호가 장례식장에 갔다면 기레기들로 인해 유족이 피해를 봤을 수도 있다. 실제로 유명 연예인이 자살했을 때, 경쟁적으로 유명인 조문객을 취재하는 행태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아서 지금은 좀 자제하는 편이지만, 저 당시엔 그런 보도 윤리 개념이 없었다. 유족의 입장에선 매스컴에 거론이 안 되는 게 좋은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