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위 요구자/유럽/이탈리아
1. 개요
본래는 왕위 요구자/유럽 문서의 하위 항목이었으나, 분량이 방대하여 분리되었다. 본 문서는 이탈리아의 왕위 요구자를 다룬다.
2. 등재 기준
이 문서는 상위 문서인 왕위 요구자의 정의에 따른 이탈리아 지역의 현재 왕위 요구자들을 나열한 목록 문서이다.
- 해당 국가가 현재까지 존재하거나,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적법한 근거를 가지고 해당 작위를 주장한 사례가 있었던 경우
- 혈통을 통해 세습되는 왕위나 작위와 같이 만약 해당 정권이 존속했다면 해당 정권의 주권을 이어받을 수 있는 누군가를 특정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등재하며, 계승권을 실제로 주장하는지 아닌지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작위 이외에 영토에 대한 권리 주장
- 작위 소유자가 공식적으로 해당 작위를 포기, 또는 해체한 경우
- 식민국가나 피정복국가가 독립하고, 상대국이 해당 국가를 인정한 경우에 해당하면 등재하지 않는다. 토론 합의
3. 현재 왕위 요구자 목록
3.1. 나폴리 국왕
현 왕위 요구자들 중 조아킴 루이 나폴레옹 뮈라는 조아키노 1세[5] 의 후손이다.
3.2. 롬바르디아-베네치아 국왕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왕국은 오스트리아 제국의 구성국이었으며 1815년에 빈 회의로 세워졌다. 빈 회의로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1세가 기존에 프랑스 제1제국의 관할이었던 롬바르디아와 베네치아를 자국에 병합하면서 롬바르디아-베네치아 국왕 칭호를 새롭게 쓰기 시작하여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왕국이 성립되었다. 그러다가 1859년에 프랑스 제2제국과 사르데냐 왕국이 오스트리아로부터 롬바르디아를 강탈하여 2년 후인 1861년에 사르데냐 왕국의 후신인 이탈리아 왕국이 롬바르디아를 정식으로 자국에 병합하고 그로부터 5년 후인 1866년에 이탈리아 왕국이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 개입하여 베네치아까지 자국령으로 편입하면서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왕국은 멸망했다.
3.3. 만토바 공작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서 프랑스를 지지했던 만토바 공국은 1708년에 오스트리아군에 점령되어 결국 오스트리아에 합병되었다. 현재 만토바는 이탈리아령이 된 상태이며 현 공위 요구자 마우리치오는 페데리코 1세의 후손이다.
3.4. 모데나 레조 공작
3.5. 밀라노 공작
카를로스 1세가 아들 펠리페 2세에게 할양함에 따라 스페인 왕국과의 동군연합이 되었던 밀라노 공국은 1706년에 펠리페 5세가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으로 인한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밀라노 공위를 포기함에 따라 오스트리아 대공국과의 동군연합으로 바뀌었다. 훗날 이탈리아 전쟁에서 밀라노 공국이 프랑스에 점령되어 멸망하고 밀라노는 프랑스의 괴뢰국인 치살피나 공화국의 일부가 되었다. 현재는 스페인 보르본 왕가에서 명목상으로나마 다시 밀라노 공작 칭호를 쓰고 있으며 합스부르크-로트링겐 가문의 현 수장인 카를 폰 합스부르크-로트링겐 또한 밀라노 공위를 요구하고 있다.
3.6. 사르데냐 국왕
사르데냐 왕국이 이탈리아를 통일하면서 이탈리아 왕국으로 개편됐는데 어떻게 사르데냐 왕국의 왕위 요구자가 존재할 수 있냐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해당 왕위 요구자들은 흔히 알려진 사보이아 왕조가 아니라 그 이전에 사르데냐 왕국을 다스렸던 보르보네 왕조와 압스부르고 왕조의 왕위를 각각 요구하고 있다.
3.7. 시칠리아 국왕
스페인 압스부르고 왕조의 역대 국왕들은 나폴리 왕국, 사르데냐 왕국, 시칠리아 왕국의 국왕을 겸했으므로 압스부르고 왕조의 왕위 요구자인 도미닉은 스페인 뿐만 아니라 앞서 말한 이탈리아의 세 왕국 왕위도 요구할 수 있다.
3.8. 양시칠리아 국왕
양시칠리아 왕국이 멸망한지 약 100년 후 마지막 국왕 프란체스코 2세의 조카(정확히는 이복동생의 아들) 페르디난도 피오가 1960년에 사망하면서 왕가는 카스트로 계통과 칼라브리아 계통으로 분열되었다. 현재 카스트로 계통의 당주는 카를로스[10] 이며 칼라브리아 계통의 당주는 페드로이다. 유럽 왕실 대다수는 카스트로 계통을 지지하지만 스페인 보르본 왕가만큼은 칼라브리아 계통을 지지한다.
3.9. 에트루리아 국왕
에트루리아 왕국은 프랑스의 위성국이었으며 1801년에 프랑스와 스페인의 아랑후에스 조약으로 건국되었다. 그러나 불과 6년 후인 1807년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북이탈리아 전역을 프랑스 제1제국 영토로 편입시키면서 에트루리아 왕국이 멸망했으며, 이후 에트루리아 왕국 영토가 아르노 주, 메디테라네 주, 옴브론 주로 나뉘어져 프랑스의 행정구역으로 통합되었다. 현 왕위 요구자 카를로스 하비에르 데 보르본-파르마는 파르마 피아첸차 공국의 공위 요구자이기도 하다.
3.10. 이탈리아 국왕
1946년 이탈리아는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국을 세운다. 사보이아 왕조 사람들은 국외로 추방되었고, 입국을 불허했다.[20] 마지막 군주 움베르토 2세의 독자인 비토리오 에메누엘레는 1969년에 아버지가 국민투표로 "퇴위한 것"이므로 일방적으로 본인이 왕위 계승자임을 선포했다. 여기에다가 1971년에 결혼한 스위스 비스킷 제조업자 상속녀에게 귀족의 칭호를 내리기까지 한다. 두 눈 멀쩡히 뜨고 살아있는 움베르토 2세와 함께, 비토리오는 왕위 요구자가 되었다. 아버지가 죽은 1983년부터는 본인이 유일한 왕위 요구자임이 명확해진 듯 했고, 이탈리아로 돌아가려는 계획을 세운다. 여러 차례의 시도 끝에 2002년, 국제 사법 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이탈리아 정부는 왕족의 입국을 허용했고, 아들 베네치아 공작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와 함께 이탈리아에 귀국했다.
귀국 2년 후인 2004년, 당시 스페인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의 아들 펠리페 6세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가 친척인 아오스타 공작 아마데오를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사보이아-아오스타 가문의 아마데오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고손자로, 왕위 계승 2순위였던 사람이다. 폭행 사건의 원인도 왕위 요구자 관련 문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2006년 6월 16일에 비토리오 에마누엘레는 매춘 알선과 부패 혐의로 이탈리아 국경 인근에서 체포되었다. 체포 며칠 후 석방되었는데 비토리오의 가택연금이 풀리기 전인 7월 7일에, 아마데오가 본인이 '''비토리오의 뒤를 이어''' 사보이아 가문의 새로운 수장, 사보이아 공작이며, 비토리오는 결혼 후 왕위를 요구할 권리를 잃었다고 선포한다. 비토리오가 이탈리아로 돌아가기 위해 "이탈리아 공화국" 정부를 인정한 것이 이탈리아 왕가의 정통성을 해친다고도 주장했다.[21]
"사보이아 공작" 문제는 법정에 올랐고, 비토리오와 그의 아들 에마누엘레가 승소했다. 따라서 사보이아 공작 칭호는 오직 비토리오의 후손만 쓸 수 있으며, 그 외의 친척은 "사보이아"라는 성을 쓸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따라서 아오스타 분가의 수장 아마데오는 '사보이아-아오스타'성을 쓰도록 강제되었다. 물론 아마데오는 법원의 판결을 인정할 수 없고 계속해서 사실을 호소할 것이라고 밝혔다.[22] 한편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는 딸만 둘이고 아들이 없다. 그 때문에 2020년 1월 15일 사보이아 왕조 본가에서 살리카법을 폐지한다고 선언했다. 따라서 사보이아 왕조 본가와 사보이아-아오스타 가문 중 한 쪽에서 왕위 요구권을 포기하지 않는 한 사보이아 왕조 본가와 사보이아-아오스타 가문의 왕위 요구권 다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제1제국과의 동군연합이자 해당 국가의 괴뢰국이었던 이탈리아 왕국 또한 여전히 왕위 요구자를 배출하고 있다. 아버지인 샤를과 아들인 장-크리스토프는 서로 자기가 보나파르트 가문의 수장이라고 주장하며 다투는 중인데 자세한 건 왕위 요구자/유럽/프랑스 문서의 프랑스 황제 문단 참고. 부오나파르테 왕조 왕위 요구자들은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역사적 악연 때문에 이탈리아의 왕정복고파에게는 제대로 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위에서 설명한 사보이아 왕조의 왕위 요구자들에게도 정통성이 없는 침략자의 후손이라며 배척당한다.
3.11. 토스카나 대공
3.12. 파르마 피아첸차 공작
모데나 레조 공국, 토스카나 대공국, 파르마 피아첸차 공국, 교황령의 볼로냐 일대 지역은 1859년 이탈리아 통일전쟁 재개에 맞춰 혁명이 일어나 외국 지배자들이 모조리 축출되었으며 이후 중부 이탈리아 연방으로 통합되었다가 국민투표에 의해 사르데냐 왕국에 합병되었다. 이후에는 이탈리아 왕국이 세워졌다.
3.13. 폰테코르보 공작
폰테코르보 공국은 프랑스 제1제국의 괴뢰국이었으며 그에 따라 프랑스 제1제국의 붕괴로 함께 멸망했다. 현 공위 요구자 조아킴 루이 나폴레옹 뮈라는 나폴리 왕국의 왕위 요구자이기도 하다.
3.14. 피옴비노 공작
피옴비노 공국의 마지막 공작 안토니오는 1799년과 1801년에 프랑스군에 의해 공작 자리에서 쫓겨난 바 있다. 이후 1805년에 그가 죽으면서 피옴비노 공국은 프랑스에 의해 루카 공화국과 통합되어 루카-피옴비노 공국이 되었으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여동생 엘리자 보나파르트가 루카-피옴비노 공국의 여공작이 되었다.
현 공위 요구자 니콜로는 마지막 공작 안토니오의 후손이다.
[1] 이탈리아 정부에서는 전 왕가의 칭호를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2] 조아킴 루이 나폴레옹 뮈라의 아버지. 조상과 동명이인이다.[3] 안톤 마리아 프란츠 레오폴트 블랑카 카를 요제프 이그나츠 라파엘 미하엘 마르가레타 니체타스 폰 합스부르크-로트링겐[4] 조아킴 루이 나폴레옹 뮈라의 아들. 조상과 동명이인이다.[5] 그 유명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26명의 원수들 중 하나인 조아킴 뮈라다.[A] A B 카를 토마스 로베르트 마리아 프란치스쿠스 게오르크 바남 폰 합스부르크-로트링겐[6] 안톤 마리아 프란츠 레오폴트 블랑카 카를 요제프 이그나츠 라파엘 미하엘 마르가레타 니체타스 폰 합스부르크-로트링겐[7] 안톤 마리아 프란츠 레오폴트 블랑카 카를 요제프 이그나츠 라파엘 미하엘 마르가레타 니체타스 폰 합스부르크-로트링겐[8] 이탈리아 정부에서는 전 왕가의 칭호를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카를로] 카스트로 공작[페드로] 칼라브리아 공작[9] 페드로 후안 마리아 알레요 사투르니노 이 토도스 로스 산토스 데 보르본 도스-시실리아스 이 오를레앙[10] 딸만 두 명 있어서 2016년에 맏딸 마리아 카롤리나를 후계자로 정했다.[11] 이탈리아 정부에서는 전 왕가의 칭호를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비토리오] A B 나폴리 공작[아마데오] A B 아오스타 공작[샤를] A B 프랑스 황제, 베스트팔렌 국왕[장-크리스토프] A B 프랑스 황제, 베스트팔렌 국왕[12]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알베르토 카를로 테오도로 움베르토 보니파치오 아마데오 다미아노 베르나디노 제나로 마리아 디 사보이아[13] 아마데오 움베르토 이사벨라 루이지 필리포 마리아 주세페 지오반니 사보이아-아오스타[14] 샤를 마리 제롬 빅토르 나폴레옹[15] 장-크리스토프 루이 페르디낭 알베릭 나폴레옹[16] 베네치아 공작. 나폴리 공작의 아들.[17] 아풀리아 공작. 아오스타 공작의 아들.[18] 샤를 나폴레옹의 장남[19] 제롬 그자비에 마리 조제프 빅토르 나폴레옹[20] 왕이 베니토 무솔리니에게 협조하는 등 파시즘과 관련된 이유도 있었다.[21] 아마데오는 이탈리아가 아니라 스위스에 체재한다.[22] http://www.telegraph.co.uk/news/worldnews/europe/italy/7244567/Italian-aristocrat-cousins-fight-over-defunct-throne.html[23] 조아킴 루이 나폴레옹 뮈라의 아버지. 조상과 동명이인이다.[24] 조아킴 루이 나폴레옹 뮈라의 아들. 조상과 동명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