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화
[clearfix]
1. 개요
후한 말, 삼국시대 촉한의 장수다. 본래 이름은 요순(廖淳)이며,[2] 자는 원검(元儉)이다.
삼국지 내에서 장수한 걸로 유명한 인물로 촉한의 건국부터 멸망까지 지켜본 인물이다. 사실 내민, 여대, 사마부 같이 100세 가까이 생존한 게 사서에서 확인되는 인물들도 있지만, 인지도가 낮아서 으래 요화가 장수의 대명사로 꼽히곤 한다.
2. 정사
양양기구기에 따르면 양양군 중려현 사람으로 집안은 면수 남쪽에서 대대로 고관을 지낸 가문이었고 대충 한중 공방전 직후 쯤에 촉에 임관했다. 이후 형주에서 전장군 관우 휘하로 주부(主簿)에 임명되었는데 형주가 함락될 때 오에 포로로 잡혔다. 하지만 병으로 죽었다는 소문을 가장하여 감시의 시선을 피했으며 노모를 모시고 밤낮으로 달려 오를 탈출해 때마침 오를 치기위해 자귀로 나온 유비군에 합류했다. 유비는 매우 기뻐하며 요화를 의도(宜都) 태수로 삼았다.[3]
이릉대전에서 촉 2세대 무장들이 떼죽음 당하는 와중에도 무사히 살아남았다. 유비 사후에는 제갈량의 참군(승상 참군)이 되었고 후에 독광무(督広武)에 임명되었다. 점차 관직이 올라 우거기장군 가절, 영 병주자사에 이르고 중향후(中鄕侯)에 봉해졌다. 과단성있고 강직하다고 칭해져 관위(官位)가 장익(張翼)과 나란히 하고 종예보다 앞섰다.
제갈량 사후 음평태수 등을 역임했다. 238년 9월, 음평에서 옹주자사 곽회가 보낸 광위태수 왕윤(王贇), 남안태수 유혁(遊奕)의 장병을 격파하고 둘을 죽였다. 이때 곽회는 '왕윤, 유혁 등이 분병하여 산의 동서를 둘러쌌고, 포위하여 적의 외면을 함락시켰으니, 격파하는 건 아침 아니면 저녁의 일입니다.'라고 자신했지만 조예는 부정적인 입장이었는데 결국 조예의 예상대로 되었다.
연희 12년(249)에 강유에게 부절을 주어 또 서평으로 출정했는데 이 일 있기 바로 전에 곽회 및 하후패와 조수에서 싸우고 이민족 수장 치무대의 항복을 받았다. 강유는 위에 패배해 달아난 강인들을 거둬들이고 요화에게 석정산에 성을 쌓아 적과 대치하게 했는데 곽회는 숫적 우세(비의 시대엔 강유에게 북벌병력을 1만밖에 주질 않았다.)를 이용해 하후패를 보내 강유를 추격하게 하고 자신은 요화를 공격하니 강유는 별수 없이 달려와 요화를 구원하고 퇴각한다. 이때도 음평태수였던 것으로 보아 꽤 오래 봉직하고 있던듯하다.
249년에 등애는 곽회와 함께 촉의 편장군 강유를 막아냈다. 강유가 퇴각하자, 곽회는 그 기회를 틈타 다시 서쪽으로 강인을 공격하려는데 등애가 말했다. "적군은 아직 멀리까지 가지 못했으므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응당 병사들을 나누어 의외의 일에 대비해야 합니다. 등애의 예상대로 3일 만에 돌아온 강유는 요화에게 백수 남쪽에 진을 세우고 등애를 견제하게 하고 본인은 북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강유군의 진로를 예측한 등애가 미리 요지를 선점하고 지키는 바람에 퇴각해야 했다.
개인적으론 강유의 북벌에 대하여 비판적인 견해를 가졌다. 한진춘추에 이르길 경요 5년(262)에 강유가 군을 이끌고 적도(狄道)로 출병하자 요화가 말했다, "전란이 끊이지 않으면 스스로를 불태운다고 하더니 백약(伯約-강유의 자)을 두고 하는 말이로구나. 지모가 적보다 뛰어나지 않고 역량도 적으면서 용병이 끊이지 않으니 어찌 스스로를 보존하리? 시경에서 말하는 ‘不自我先, 不自我後’라는 것이 바로 지금의 일을 가리키는 것이로다” 하지만 그럼에도 강유의 북벌에 계속 보조를 맞추었다. 263년엔 강유가 요화에게 음평교두를 맡겨야 한다고 유선에게 표를 올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후 검각에서 강유, 장익, 동궐과 함께 종회의 위군을 방어하였다.
264년 봄, 촉한 멸망 후 종예와 함께 낙양으로 옮겨지던 중 길에서 병사했다.
최후에는 우거기장군, 영병주자사, 중향후에까지 이르렀다. 분명 촉한 군부의 중신이었지만 기록이 미비한 촉한 인물답게 열전을 남기지 못했고 종예전의 말미에 더부살이로 약간의 기록만이 남아있고 그외 곽회전, 강유전 등에 기록이 조금식 남아 있어 삼국지연의로 얻은 인지도에 비해 알려진 정사의 내용은 매우 미비하다.
3. 삼국지연의
삼국지연의에선 떠돌아 다니다 두원과 함께 동료 500명을 규합한 도적단의 소년 우두머리로 나온다. 때마침 관우와 함께 하북으로 가던 유비의 두 부인(미부인과 감부인)을 확보하게 된다.[4] 유비의 아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요화는 무사히 돌려보내기로 결심했지만 두원은 가지자고 깝쳤다. 이에 요화는 두원을 죽이고 두원의 목을 바치며 관우의 휘하에 들어가기를 청했으나, 미부인과 감부인에게 거절당한다. 이유인 즉 '''황건적 잔당을 끌고 다니면 유비의 이름이 더러워지기 때문'''이라고. 비슷한 이유로 나중에 만나는 배원소와 주창 역시 합류할 수 없었지만 주창은 간절하게 부탁한 덕택에 합류할 수 있었다.
연의에서 요화가 황건적으로 등장하게 된 이유를 기록들이 베껴지고 옮겨지는 과정에서, 冠族(관족)을 寇族(구족=도적집안)으로 오기가 되었던 게 있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하는 경우도 있다. 구족보다는 관족이 맞을터 '대대로 도적질을 해먹던 집안이었다.'는 좀 아니지 않을까(...).
유비가 입촉하러 형주를 떠나자 유비 휘하에 들어가 나름대로 활약하게 된다. 소위 1류 장수들에게는 못 미치나 상당한 무용과 지략을 가진 인물로 등장하여 약방 감초처럼 크고 작은 작전에 시크릿 캐릭터처럼 들어간다. 연의 한정으로는 사마의를 추격해 죽이기 직전까지 가기도 한다. 다만 이 부분에서 살짝 폄하된 부분이 나온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요화가 추격하고 있는데 사마의가 자신의 투구를 던져놓고 반대쪽으로 도망갔다. 요화는 투구가 떨어진 쪽으로 쫓아갔지만 놓친다. 이후 제갈량이 그에게 상을 내리자 위연이 "투구나 주워왔는데 퍽이나 큰 일이다"라고 빈정거렸지만 제갈량은 무시했다. 다만 혼자 남았을 때에는 요화가 아니라 관우나 조운 같은 장수였으면 사마의의 수작을 알아채서 잡았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촉한의 인재 부족을 한탄한다. 요화를 잘 쳐줘야 B급 무장 취급한다는 말. 관우, 조운에 비하면 누가 B급 아니겠느냐마는...[5]
오의 공격으로 형주가 함락되자 맥성에 있는 관우의 원군을 요청하기 위해 상용의 맹달, 유봉에게 가서 눈물로 호소했으나 맹달이 고심하는 유봉에게 관우는 네가 양아들이 되는걸 거부했는데 네가 관우를 숙부라고 생각하여 도와준다고해도 관우가 너를 조카라고 인정할까?라며 유봉을 꼬드겼고 끝내 관우의 원군요청을 거부한다. 결국엔 성도까지 가서 원군을 요청하지만 이미 맥성은 함락되고 관우는 죽고 만다. 이 후 유비가 관우의 복수전을 시작하려 할 때 "먼저 유봉과 맹달부터 죽이고 가십시오"라고 바람을 넣는 씬도 있다. 이 일로 유비는 유봉을 미워하게 되고 결국 죄를 묻고 참수한다. 맹달은 반대로 위에 귀순하지만, 나중에 사마의의 행보가 두려워 촉으로 귀순하려고 밀서를 했으나 촉에서 같이 귀순했던 신탐,신의 형제에게 오히려 배반을 당하여 참수당한다.
정사에서는 촉이 망한 뒤 낙양으로 이동하다 중간에 병으로 죽었는데, 연의에서는 촉한이 망하자 근심걱정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1년 뒤 사망하였다. 연의에선 삼국지의 처음과 끝을 계속 지켜본 사나이. 사실 삼국의 통일은 280년이 되었기 때문에 끝을 봤다고 하기엔 뭐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섬기는 촉한의 멸망은 지켜봤다.[6]
[image]
이름없는 장수였으나 북벌 때부터 점점 성장해가더니 제갈량 사후에는 강유와 힘을 합쳐 30여년간 위에 대적하게 된다. 그로 인해 중국 속담에는 '''촉한에 대장이 없으면 요화가 선봉에 선다'''[7] 라는 말이 있다. 이를 본다면 노익장의 별명은 응당 황충이 아니라 요화에게 주어져야 한다.
4. 나이 논란
정사만 따지면 나이 관련해서 그렇게 심하게 논란이 생길 인물은 아니었다. 그런데 삼국지연의에서 도적단의 우두머리로 나오고 하필 노란두건을 한데다 관우가 요화를 황건적의 잔당으로 지레짐작하면서 나이 논란이 시작되었다.
황건적의 난이 184년에 있었고, 적어도 그 때 20세 쯤이라고 가정해도 100살 가까이 살았단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화라는 동명이인이 두 명 있었다는 일명 '요화 분신설'까지 제기되었다. 연의에서 관우와 엮다 보니 산적이 되었고 하필 복색 때문에 황건적 잔당으로 오인당하면서 본의 아니게 장수하게 된 것이다.
사실 연의를 기준으로 잡아도 동명이인설이 나올 이유까진 없었다. "황건의 잔당"이라는 말도 여러 각도로 해석해 볼 수 있기 때문. 황건적의 잔당들과 어울리다 보니 그들의 무리 속에 들어가게 되었을 뿐, 황건란 당시부터 황건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볼 수도 있고, 황건란 당시엔 어린 아이였으나 황건적 잔당 무리 속에서 성장한 후 관우와 만났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연의에서 도적으로 등장하게 된 경위로 배주의 관족冠族(=고관)이라는 부분을 구족寇族(=도적)으로 잘못 알아봐서 황건적 출신이 된 것이 아니냐는 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더구나 연의 본문에서 요화가 황건적이라는 말은 전혀 없다. 요화는 그저 자체적으로 무리를 모아 일어난 독자적인 도적이었을 뿐이며[8] 단지 노란 두건 차림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관우가 요화를 황건적의 잔당으로 지레짐작하고 나중에 진짜 장각 휘하의 무장이었던 배원소, 주창이 등장하면서 이들과 혼동을 한 이들이 요화를 배원소, 주창처럼 장각 시절부터 활동한 황건적으로 오인해 오해를 키운 것이다.
그리고 연의에서 요화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소년이라고 했는데 오관육참 당시 요화를 10대의 나이로 보면 요화는 264년에 80세를 전후한 나이로 사망했다는 계산이 나오니 딱 정사에 나오는 요화의 나이와 일치해 전혀 논란이 생길 일이 없다. 그저 요화가 90세가 넘도록 장수했다거나 요화가 두 사람이었다는 설은 연의 본문조차 제대로 살피지 않은 이들에 의해 생긴 낭설일 뿐.
그러나 실제로 오래 산건 사실이다. 촉서 종예전을 보면 258년 종예가 요화에게 "우리들의 나이가 이미 70을 넘었는데…(후략)…"고 말한다. 요화가 촉한이 멸망한 이후 낙양으로 가던 도중 병으로 사망했으니 적어도 189년생으로 76살은 산 셈이다. 잘하면 제갈량보다 연상일지도 모른다. 90을 훌쩍 넘기며 장수한 사섭이나 여대, 사마부, 내민만큼은 아니지만 요즘 기준으로도 충분히 장수했다.
5. 요화와 주창의 관계설
주창과 초반 행적이 거의 같으며 관우 아래에서 성장했다는 점, 그리고 주창이 연의 한정의 가공인물이라는 점 때문에 요화가 주창의 모델이라는 나그네의 가설도 있다.
하지만 이는 근거가 없는 주장이며, 실제 기록을 참조하면 충분히 반박할 수 있다.
요화는 정사 삼국지에서는 형주의 호족 집안 출신의 자제로 기록되어 있으며, 나름대로 지방 명문가 출신으로 무난하게 관리 생활을 하다가 관우의 죽음과 오나라의 형주 점령 이후 노모를 모시고 유비군에 귀순하면서 유비를 감동시켜 두각을 드러낸 인물이다. 이는 삼국지연의에서 '황건적으로 나왔다가 관우에게 감회되어 동료가 되는 줄거리'와 전혀 다르다. 그러므로 요화의 기록이 '황건적에서 관우의 부하가 되는' 주창 이야기의 원형이 되었다고 볼 수 없다. 요화는 실존인물이지만 연의 속 행적의 대부분, 특히 초반의 행적은 삼국지연의의 창작이다.
주창의 경우도 '원형'이 요화와는 무관하다. 주창의 창작 시기는 상당히 오래되어서, 삼국지연의 이전의 작품에도 등장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다른 작품의 주창은 삼국지연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화관색전의 주창은 서천의 장수로 등장한다. 즉, 주창의 모습 역시 대부분 연의 저자의 창작에 기반한 것이다. 오히려 본래 주창은 '신장 관우'의 보좌역으로 설정되었기 때문에 그 역시 '신장'에 가까운 풍모를 보이지만, 삼국지연의에서는 도적&일반장수 수준으로 격하되었다.
따라서 요화가 주창의 모델이라는 설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나그네는 요화가 실존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실제 정사 삼국지는 참조하지 않고 황건적에서 귀순했다는 부분까지 정사에 있다고 착각해서 이런 주장을 펼친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요화와 주창의 이야기가 삼국지연의에서 비슷한 것은 그저 '''우연'''일 뿐이다. 그저 연의에서 작가가 그렇게 썼기 때문에 만나는 장면이 비슷하게 보이는 것뿐이다. 또한 당시 기록을 보면 도적으로 살다가 일약 등용되어 출세한 인물이 적지 않으므로 이게 별로 특별한 묘사도 아니다.
6. 미디어 믹스
6.1.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image]
관우와 처음 만나는 장면은 생략되었고 어느 새 관우 휘하에서 형주를 수비한다. 유봉과 맹달에게 원군요청을 거절당하고 관우 사후에는 이들에게 앙심을 품고 계속 성도에 머물면서 유봉과 맹달에 대한 처벌을 건의하기도 하고 유봉이 전투 패배하고 상용성까지 잃자 유봉의 아비이자 자신의 주군이 있는 유비 앞에서 노골적으로 유봉을 비난한다.
6.2. 삼국지 시리즈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전 시나리오에 등장하며 꾸준히 활약한다.
능력치는 통솔력과 무력이 70대 중반에 지력이 60대, 정치력이 40대 후반에 매력이 60대 중반인 B급 무장. 엘리트 무장이 많은 유비 진영인지라 존재감이 별로 없지만, 최후반부 시나리오에서는 주력이 된다. 대신 수명이 매우 길어서 육성이 가능한 몇몇 시리즈에선 대기만성형 에이스로 활용이 가능하다. 사실 요화가 진정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시점은 최후반부가 아니라 첫 시나리오인 황건적의 난이다. 장각 형제를 제외하면 머리 나쁜 잡장들 밖에 없는 황건군에서 통솔력, 지력, 매력이 어느 정도 받쳐 주는 요화는 인재 등용과 전투 모두 다른 황건 장수들보다 잘 하는 귀중한 인재다.[9]
우금, 한당, 고순 등과 마찬가지로 이전 시리즈에선 계속 무력 70 미만의 안습한 능력치였다가 삼국지 7에 들어서서야 겨우 재평가를 받았다. 활약은 별로 없는데 무력이 꾸준히 80을 넘어갔던 뇌동, 오란, 우금(牛金) 등을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의 저평가였다.
삼국지 3에서는 그냥 잡무관으로 나온다. 하기사 우금, 한당도 능력치가 낮은 편이니. 근데 그마저도 이름이 '''시나리오 별로''' 제각각이다. 초반에는 '''유화'''로 나오고 후반부에는 '''여화'''로 나온다.
삼국지 6의 첫 시나리오 <황건적의 난>에서는 13살의 어린 나이에 장각의 부하로 나온다. 거기다 완의 태수다. pk의 마지막 시나리오인 <제갈탄 궐기>에서는 86살의 엄청나게 장수한 노인으로 나온다. 항상 과소평가되는 삼국지 시리즈에서도 특히 6편은 능력치가 아주 형편없지만 꿈만큼은 의협이라 부하로 삼을 경우 어지간해선 절대 배신을 하지 않는다.
삼국지 8에서의 능력치는 무력 74/지력62/정치력 48/매력 66. 사실 능력치로만 보면 무력을 제외하면 별볼일이 없다. 그러나 삼국지 8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전법이 괜찮게 배치되어 있는데 돌격 3, 교란 3, 난격 2가 있다. 어중간한 네임드들도 이렇게 밸런스 잘 잡힌 경우는 의외로 몇 없다. 무력이 무식하게 높은 장수들은 돌격 계열만 레벨이 높아 상대가 산에 있으면 활용도가 떨어지고 지략형들은 교란, 기습 계열만 높게 설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부하 장수로 전장에 나갈 시 쓸데없이 궁병, 계략계 전법이 있다면 태수나 군주가 궁병으로 편성하는 만행을 저지르는데 이런 일도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전투에 필요한 전법 3개만 딱 갖춘 상태고 아주 낮은 능력치는 없어서 굳이 견문 노가다나 명사나 결혼을 이용하여 새로 스킬을 습득하지 않아도 자기 밥벌이할 성능은 나와준다. 무력형이라 치안이나 전쟁으로 따로 수련을 안해도 무력이 금방 80을 넘기고 오래 진행하면 90대 가까이까지 올릴 수 있기 때문에 별다른 수련 없이도 전장에서 꽤 활약해준다. 여기에 돈을 모아서 상한잡병론을 사서 힐러 역할을 겸한다든지, 저렴한 무기라도 사면 정말 어지간한 명장 안부러운 성능으로 성장한다.
게다가 수명 때문에 죽는 일이 없어서 길게 잡고 키워줄 만하며, 어느 시나리오에서든 등장하고 유비쪽 세력은 웬만해선 시작하자마자 써먹을 수 있다는 점은 큰 메리트. 여남에서 나오는 황건당 출신 장수들 중에선 제일 쓸 만하다. 주창의 경우는 지력이 무려 30이라 계략에 너무 취약하다.
군주로 플레이 시 직접 키우기 답답하면 원군으로 자주 등장시켜주는 게 좋다. 중반 시나리오가 아니라면 자주 나타나는데, 꾸준히 쓰다보면 돌격과 교란 모두 4이상은 금방 찍게 되고 메인으로 써먹지는 못하더라도 원군이나 후방에 잡세력 정도 맡기기엔 정말 부족함이 없는 장수가 된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5/무력 76/지력 67/정치력 47. 황건난부터 검각 공방전까지 전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유일한 무장이다. 보병 전법은 숙련도 300에 2단계인 분투까지 가지고 있고 기병과 노병 전법은 숙련도 200에 1단계인 돌파와 제사까지 가지고 있다. 그 이외의 병법으로는 책략계 병법인 매도가 있다. 공성 전법은 없지만 적성이 있고 숙련도 200이라 제사 달고 공성전 몇 번 따라다니다 보면 금방 익힌다. 무엇보다도 궁합이 75로 유관장 형제와 똑같기 때문에 병법연쇄가 잘 터진다. 군웅할거 시나리오에서 초반에 요화를 얻어 유관장요 4분투 + 전주(교사)를 세팅하면 초반 야전 최강 부대가 완성된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0/무력 71/지력64/정치력 49/매력 65에 특기는 일제, 역공 2개 뿐. 멍청이들이 가득한 황건군이나 인재 자체가 씨가 마른 최후반 시나리오 촉이 아니라면 효용도는 낮은 편이다. 능력치는 초기 시대에는 후방 치안 담당을 시켜먹기 좋고 삼국정립 이후에는 전방에서도 써먹을 법 하지만 저놈의 특기가 문제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3/무력 76/지력 64/정치력 49/매력 66에 창병, 극병 적성 A로, 황건적 중에서는 지력, 정치력, 매력 모두 장씨 3형제 다음가는 4위이며 통솔력과 무력도 비교적 준수한 편이다. 특기는 혈로로 반장, 마충에게서 관우를 포로로 잡지 않게 할 수 있다. 물론 포박 특기를 가진 무장이 없어도 낚시용으로 이용해도 좋다. 장합, 여대와 함께 전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셋뿐인 인물이다.
삼국지 12에서는 유봉과 맹달에게 원군을 지원받기 위해 맥성에서 목숨을 걸면서 말을 탄 채 오의 포위망을 뚫고 나가 상용으로 가는 모습이 일러스트로 나왔다. 전법은 창병격봉인. 촉나라가 창병이 많고 특기가 하나도 없어서 좀 애매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전반기에나 통하는 소리다. 후반기에 삼국의 장수진이 모두 붕괴할 때 쯤이면 탄원+경험+관직+보물로 능력, 특기 모두 먼치킨이 된 요화가 전장을 휩쓰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오나라 장수진으로 1대1은 답이 없고, 위나라는 창병이 사마사,등애, 왕기, 손례가 희망인데 요화의 전법은 창병격봉인. 창병인 등애를 완벽히 봉인한다. 등애가 복병신속을 쓴다고 해도, 전법 포인트도 저렴한 창병격봉인을 빠르게 한 번 더 걸어주면 복병이 풀리므로 등애는 완전봉인. 왕기의 전군병격도 왕기 본인과 다른 창병들도 봉인. 전반기에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면 긴 수명으로 후반부에 대활약하는 완벽한 대기만성형 장수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3/무력 76/지력 69/정치력 49. 특기는 훈련 2, 순찰 2, 신속 1이고 전수특기는 훈련이다. 전법은 전법 포인트 4의 공격지휘로 공격력 2단계, 사기 1단계를 올려준다. 본편에서는 언제나 그렇듯이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마는 수준이지만, DLC 영걸전 마지막 시나리오인 영걸몽환에서는 핵심급 장수로 부상한다. 주인공 강유의 결사지휘가 너무 병력 코스트가 심하다 보니, 대체재로 저렴하고 코스트가 없는 요화의 공격지휘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허나 PK에서는 결사지휘 병력 소모율이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팍 줄어버려서 다시 존재감을 잃었다. 생년은 170년에 몰년이 264년이라 95살까지 살 수 있고 이는 96살까지 살 수 있는 여대보다 딱 1이 낮은 수치지만 여대와 달리 비자연사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115살까지는 살 수 있다. 황건적의 난 시나리오로 시작하면 100년 플레이가 이론상은 가능하다는 건데 20년만 넘어가도 슬슬 질리는 본작의 특성상 큰 의미는 없다. 또한 반동탁 연합 시나리오 때 소패에서 재야로 등장하기 때문에 전투요원이 부족한 도겸군으로 플레이 한다면 등용을 해서 전투용으로 써주자.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73, 무력 76, 지력 62, 정치 49, 매력 65로 전작에 비해 지력이 7 하락했다. 개성은 산전, 혈로, 강건, 주의는 왕도, 정책은 장사강화 Lv 3, 진형은 봉시, 장사, 전법은 분전, 철벽, 견제, 친애무장은 관우, 관평, 장익, 종예, 혐오무장은 맹달, 유봉이다.
6.3. 영걸전 시리즈
삼국지 영걸전에서는 왕보, 조루와 같이 등장. 레벨 40 전차대로 나오며, 역사와는 달리 관우가 죽으면 이후 사망처리 되어서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관우가 살아도 이후 별동대를 파견하지 않으면 요화는 등장하지 않는다.
삼국지 공명전에서는 아군 중 유일한 산적계로 활약한다. 초반에 키우기가 험난하나 보조책략으로 공방 버프를 주는 게 가능하기 때문에 키워놓으면 나름대로 쓸 만한 인물. 장안공성전에서 하후패와 인접 시 일기토로 사망하는 이벤트가 있지만 버그 때문에 오반처럼 이후에도 계속 살아 있다.
삼국지 조조전에서는 촉군 적병계로 등장하지만 스토리 비중은 없다. 가상모드에서는 맥성 구원전에서 우군으로 1번 나오고 사망하기 때문에 사실모드에서만 싸울 수 있다.
[image]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에서도 등장한다. 생몰년도가 길다보니 강유전까지 촉 관련 연의에 여기저기 많이 나오는 장점이 있다. 전화위복 및 방어력 보조 효과가 존재하기 때문에 적병계 장수 중에선 가장 튼튼하다. 특히 연의 제갈량전(하)에서는 산지가 많은 전장 특성상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다. 이외에도 섬멸전/경쟁전에서는 방어적인 컨셉으로 출진시키는 유저들이 간혹 있다.
6.4. 진삼국무쌍 시리즈
1편부터 참전한 터줏대감 클론 중 하나다. 보통 출전하면 연의가 반영되는 덕에 참전 스펙트럼이 무지막지하게 넓은 무장 중 하나다. 농담이 아니고 황건의 난과 종회의 난이라는 양 극단에 출전한 경력이 있는 무장은 요화를 빼면 전무하다. 다만 스펙트럼이 넓은 것에 비해 주 전장은 관우 관련 전투로 한정되있는 아쉬움을 사지만 그래도 넓은 스펙트럼빨로 자주 볼 수 있는 무장중 하나다. 최근에는 정사 파트가 많이 반영된 탓인지 황건의 난엔 더이상 얼굴을 비추지 않는 등 아쉽게도 초반부 참전 스펙트럼은 좁아졌다. 사실 출전하면 그게 이상하긴 하지만(...).
진삼국무쌍7에서는 왕평과 함께 관흥, 장포와 참전 무장 자리를 두고 경쟁했으나 결국 나오지 못했다. 다만 장수라는 아이덴티티가 있고 이런 식으로 경쟁을 했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등장을 원하는 여론이 높다는 것이니 후속작에 등장할 확률은 높은 편이다. 7편 내에 요화의 참전을 예고하는 듯한 떡밥은 꽤 많은데, 우선 진나라 스토리에서는 가장 대사가 많은 촉 클론 중 한명이다. 특히 조양 전투에서 크게 활약하는데 어떻게든 하후패를 지켜야된다는 대사와 함께 강화 상태로 나온다. 조양 전투에서 강화 상태가 되는건 장익, 호제도 마찬가지지만 요화의 대사가 더욱 길면서 인상을 크게 주고, 요화는 진창 전투 촉군 시나리오의 총대장이던 학소와 같은 위치에서 강화 상태가 되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띈다. 요화의 참전 떡밥은 맹장전에 와서 더욱 심화되는데, 위나라 외전 시나리오인 여인 수색전에서 장비가 뜬금없이 요화를 언급하기 때문이다. 장비가 요화가 가져온 술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실제로 장비와 요화 사이에는 아무런 접점도 없었음을 감안하면 정말 뜬금 없이 언급된 것. 요화에게 술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는것도 아니다. 요화 대신에 마초, 방통[10] 등 무쌍무장을 언급했다면 더 자연스러웠을 대사를 굳이 장비랑 아무 상관도 없는 요화를 넣은 건 어떻게 봐도 참전 떡밥을 푸는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위나라 외전의 관우 관련 전투, 진나라 외전의 종회의 난 관련 전투들에서 비중과 대사를 챙긴다.
만약 등장한다면 정사 반영시 번성전, 연의 반영시 관우 천리행이나 황건적의 난 시점부터 시작해 촉한 멸망까지 거의 모든 시나리오에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주창이 유일한 8편의 촉 진영의 신규무장으로 참전하여 아쉽게도 8편 역시 참전은 빗나갔다. 그러나 이번작에서 무려 요화 이벤트를 구현한 부가임무의 추가로 왕평과 함께 차기 참전을 기대하게 만든다. 심지어 이번작에서 오랜만에 황건의 난에도 참전하면서 참전 스펙트럼 역시 다시 넓어질 여지를 남겼다.
그리고 그 인기를 반영한 것인지 진삼국무쌍 BLAST에서 왕평과 나란히 참전했다. 등급은 노멀. EX 무기는 열격도다. 일러스트를 보면 알겠지만 촉한 멸망까지 살아남은 이미지를 반영한듯 황충같은 노익장 이미지로 등장했는데, 황충이 동네 어르신 같은 정감있는 이미지라면 요화는 옆동네 희대의 모신을 닮은 경험 많고 카리스마 넘치는 장군의 느낌이다. 이후 레어 버전도 추가되었다. 그냥 추가하긴 미안했는지 레어버전 무쌍은 차별화시켜주었다.
정식으로 등장한다면 삼국지 중반인 유비의 형주 시기부터 시작해 촉한 멸망까지 꾸준히 등장하게 될 것은 확정이다.
6.5. 삼국전투기
요화(삼국전투기) 문서 참조.
6.6. 84부작 삼국지
[image]
요화를 잘 표현해 냈다. 상용에 상처투성이 얼굴로 가서 구원군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한다. 또 관우가 죽은 뒤, 뒤늦게 성도에 가서 유비에게 원군을 간절히 요청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간지.
6.7. 화봉요원
367화에서 등장. 화타를 수행하던 요형님이라는 인물이었으며, 곧이어 주유, 제갈량, 방통이 화타를 북쪽으로 가지 못하게 하여 남형주에 머무르게 하기 위한 계략의 감시역으로 붙어있었다. 이미 제갈량의 부하였던 것이다. 이로 인해 곽가의 병세는 날로 악화되기만 하였고, 결국 죽음에 이른다. 이후 제갈량과 유비군에 합류했는지, 장판의 싸움 때도 등장. 서서와 함께 조조군의 남하를 막는다. 이후 적벽대전에서도 요원화와 함께 채모를 암살했다고 본인이 직접 유비에게 보고한다.
[1] 밑에 나오는 종예의 말에서 상하한을 잡으면 180 ~ 189년.[2] 위서 명제기에서는 잘못써서 요돈(廖惇)이라 적혀있다. [3] 육손전에서는 보광, 조융, 부융 등과 함께 각각 별독(別督)으로 임명되었다고 나온다. 요기서는 초명인 요순(廖淳)으로 기재.[4] 이때 관우는 조조의 작별인사, 그리고 오관육참장 때문에 뒤처져 있던 상태였다.[5] 184년 유비가 거병한 이래 관우와 조운에 비견될 공적을 쌓은 촉한의 장군이라고는 장비, 위연, 강유 뿐이다..[6] 정사에서 삼국지의 시작과 끝을 지켜본 인물은 사마의의 아우 사마부다. 이 사람은 후한 영제대 태어나 사마염의 서진 건국까지 지켜보고 272년 사망했다.[7] '호랑이 없는 굴에는 여우가 왕' 이라는 말과 비슷한 문맥[8] 두원과 콤비로 나왔는데 하필이면 배원소와 주창이 또 콤비로 나와서 헷갈리기 딱 좋다.[9] 다만 10처럼 장수 등용이 무척 쉬운 작품에선 예외다.[10] 연의 기준으로 장비와 큰 접점이 있는데다 ex어택이 술 마시고 불을 뿜는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