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 슈틸리케/논란과 평가
1. 개요
울리 슈틸리케의 논란과 평가에 대해 다루는 문서.
2. 논란
2.1. 대표팀 감독 사임 후 인터뷰
슈틸리케는 2017년 해임된 직후에는 굉장히 상심했던 듯 언론접촉을 극히 피했고, 한국에 대한 언급도 자제했다. 하지만 2017년 후반에 톈진을 강등권에서 구원하면서부터 자신감이 생겼는지, 언론에 한국 국대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하더니, 2018년 중국 리그에서 어느정도 자리를 잡자 거의 독설이라고 할만큼 악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2018년 후반기에 팀이 다시 강등권으로 추락하고 자신이 혹평한 제자들이 조국을 대패시킨 카잔의 기적을 이루자, 그 이후에는 다시 한국팀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2.1.1. 채널 A
한국에서 해임후 국내 언론 접촉이 전혀 없었으나, 톈진을 잔류시킨 이후 자신감이 붙었는지, 10월 27일, 채널A와 해임후 처음 인터뷰를 가졌다. 국내에서는 언론접촉에서 스페인어를 사용하더니, 희한하게 영어를 사용하여 인터뷰를 했다. 채널A는 또 그걸 자막이 아니라 더빙을 깔았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2002년의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시절은 지났고 현실을 봐야합니다"'''며 고 한국 국민의 냄비근성을 비판했다. 또한 최근의 히딩크 재기용설에 대해 비판하며, '''"히딩크가 2002년 어떻게 준비한 줄 압니까? 당시 해외파는 단 2명이였고 나머지는 매일 훈련을 같이 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영국, 독일에서 18시간씩 날아와서 이틀 훈련하고 경기에 나갑니다. 시대가 변했고 같은 성공을 이루기 어렵습니다."'''며 히딩크가 와도 2002년같은 성공은 거두기 힘들다고 단언했다.#[1]
- 위의 발언에 대해 "면피성"이라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2002년 멤버였던 송종국은 2018년 한 방송[2] 에 나와서 간접적으로 슈틸리케의 발언을 뒷받침해 주었다. 당시에는 해외파들은 합숙이 불가능했지만, K리거(엔트리 확정전의) 국대대상 선수들은 전원 합숙하면서 월드컵에 대비한 훈련을 하면서 팀 경기가 있을 때만 소속팀으로 복귀해서 경기를 치뤘다고 한다. 그 이후에는 그렇게 하기가 불가능하기 떄문에 2002년의 조직력을 갖기가 힘들다고 증언.#
축협의 여러가지 병크도 지적했는데, 자신은 코치 두명을 바랬는데, 축협이 한명만 허용해서 아르무아만 데려왔다고 밝히고 있다. 작전코치를 맡았던 신태용은 자기 선택이 아니라 한국 축협(정확히는 이용수 추천)이 붙여준 것이라고.[4] 그러니까 자기 사단을 구축하지 못한 것은 위에서 지적한 이유(왕따설)와는 달리, 한국 축협 때문이라는 것이다.[5] 또한 축협이 장기적 계획이나 로드맵 없이 땜방식이고 주먹구구식의 운영을 한다는 점을 비판했다. 슈틸리케의 책임회피성 발언과는 별개로, 슈틸리케가 지적한 축협이나 한국 축구의 여러 문제점(얇은 선수층, 공격수 노쇠현상, 리그의 수비지향성)은 생각할 여지는 있는 듯하다.
분명 슈틸리케의 지적은 수용해야 될 부분이 적지 않다. 행정적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감독이 제대로 된 역량을 발휘할 수 없고, 현재는 히딩크 때와 환경적으로 많이 달라진 부분이 있어 그때만큼의 경기 준비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승률이 69% 가량 나오고, 아시안컵 준우승까지 했으니 슈틸리케 본인 입장에선 자신의 책임은 없다고 주장 할 수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승률 69%를 기록하는 동안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만한 비아시아권의 경쟁력 있는 상대는 스페인, 체코, 파라과이, 코스타리카 정도였다. 대부분의 상대는 아시아 팀이나 자메이카, 캐나다 등 세계 수준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으며, 월드컵 최종예선에선 중국, 카타르 등 당시 한수 아래의 전력을 가진 팀에게 패해 본선진출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즉, 슈틸리케가 거둔 성과를 일정 부분 인정해야 되지만 과연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말할만큼 슈틸리케가 선전하고도 그 가치를 인정 못 받았냐고 하면 그건 절대 아니라는 점이다. 분명, 슈틸리케는 아시아팀을 상대로 연전연승 및 아시안컵 준우승을 기록할 때 갓틸리케라는 별명도 얻었으며, 대한민국의 국대감독으로선 보기 힘든 3년 간의 재임기간을 거치며 나름대로 합당한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월드컵 본선을 코 앞에 둔 시점에서 여러모로 슈틸리케호는 불안했고, 히딩크 시절까지 갈 필요도 없이 최근 한국 축구에서 지역예선 통과조차 간당간당한 상황을 환상이나 꿈에 비유할 정도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자신의 실책에 대한 평가보다 한국축구의 구조나 팬들의 성향을 지적하는 행위가 강조된다면 면피성 발언임을 부정할 순 없고, 감독은 선수와 마찬가지로 실력과 필요에 의해 평가받고 대우받는 자리이기에 팬이나 환경의 문제와는 별개로 자신에 대한 평가 역시 관대할 수만은 없기에 슈틸리케의 발언에 대해 비판적 의견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여담으로 자신의 한국에서의 성적에 대해 승률이 70%라며 100점 만점에 70점을 줬다. 이 외에도 이런저런 면피성 발언은 참 많았으나 채널A가 대놓고 어그로 끌어보려고 판을 깔아준 것에 비하면 한국축구에 대한 비판수위는 그렇게까지 높지 않은 인터뷰였다.[6]
2.1.2. 풋볼리스트
2018년 1월 스페인 전지훈련지에서 축구전문매체 풋볼리스트와 다시 인터뷰를 가졌다. #1 #2 인터뷰의 속성상 자기 책임보다는 축협이나 상황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여전했다. 눈여겨 볼 점은 장현수를 매우 높이 평가했다.
2.1.3. 스페인언론
스페인 언론 아스(AS)와의 인터뷰에서는 한국에 가졌던 섭섭한 뒤끝을 유감없이 풀면서 "한국 축구 월드컵 전망 어둡다"고 비관적으로 이야기했다.
2.1.4. 독일언론
2.1.4.1. 빌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유죄 판결을 받을 희생양을 찾는 문화가 고정되어 있다. 축구에서는 감독이 항상 비판을 받는다."''' 참조
'''"한국에서는 끝이 안 좋은 일이 너무 많다. 물론 결말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나는 경질 당했고 내 후임자라면 누구든 내가 그렇게 나쁜 감독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수 있을 것이다. 난 승률이 67%였는데 쫓겨났다. 대한민국이 러시아에 갈수 있었던 승점 15점 중 13점은 나와 내 코치가 얻은 것이다. 비난받을 일을 하지 않았다.”''' 출처
2018년 6월 24일 독일 타블로이드 신문인 ‘빌트’와의 인터뷰에서 조국인 독일과의 경기를 앞두고 있는 한국 대표팀을 분석했다. 한국의 문화에 대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유죄 판결을 받을 희생양을 찾는 문화가 고정되어 있다. 축구에서는 감독이 항상 비판을 받는다”고 불만을 드러낸 슈틸리케 감독은 “독일에 가장 위협이 될 만한 선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의외로 장현수를 뽑았다.[7] 거기다 자신은 비난 받을 일은 전혀 하지 않았다면서 한국인들이 아직도 2002년의 향수에 빠져있으며, 당시의 한국은 홈에서 몇 달 동안 합숙한 덕분에 4위에 올랐다고 비평했다.'''"한국은 2002년의 향수에 빠져 있다. 당시 한국은 홈에서 몇 달 동안 합숙했고 4위에 올랐다. 이후 한국은 9회 연속 본선에 올랐지만 그 사이 수 많은 감독이 바뀌었다.”''' 출처
예전 소리아 발언과 이번 발언들을 보았을 때 슈틸리케는 자신의 실책은 인정하지 않고 섭섭한 감정만 드러내는 감독이며, '''지금의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을 이렇게 만든 책임에서 벗어나기 힘든 사람 중 한 명이다.''' 무엇보다 감독직은 '''항상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자리'''이다.
2.1.4.2. 키커
25일 독일 '키커'지와의 인터뷰에서도 또 다시 한국인들이 4강 신화에 갇혀있으며, 과거에만 갇혀있으면 절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비평했다. 하지만 '''막상 과거의 영광에만 갇혀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것은 독일이었다.'''[8]'''"한국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다. 현재 한국 축구의 모든 기준은 2002년 4강에 맞춰져 있다. 과거만 기억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출처
2.1.4.3. ZDF
또한 19일 독일 국영 방송 'ZDF'와의 인터뷰에서는 한국이 절대 세계 챔피언인 독일을 넘지 못하고 3전 전패를 할 것이라고 단언하였었는데 사실 경기전만 해도 2연패나 당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네티즌과 여론들은 모두 한국 축구에 등을 돌리고 수 많은 비판과 비난을 받았던 것은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였다. 그러나 슈틸리케의 예상과 달리 한국은 F조 조별리그 독일과의 최종전에서 보란듯이 디펜딩 챔피언인 독일을 2대0으로 꺾고 유종의 미를 거뒀다.'''"슬프지만 한국은 러시아 월드컵에서 3패를 받아들여야 한다. 세계 챔피언인 독일을 넘지 못할 것이다."''' 출처1 출처2
2.2. 영혼의 단짝, 아르무아
3. 평가
3.1. 본프레레 vs. 슈틸리케 (?)
여러모로 한국 감독으로서의 행태가 본프레레와 비슷한데, 본프레레보다 역량이나 성과는 훨씬 떨어진다. 슈틸리케는 부임 전 경력도 경질 12번을 당한 기록 밖에 없다. 그러나 본프레레는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아프리카 국가 최초 세계급 축구 대회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이밖에 수석 코치로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준우승의 경력도 있었다. 당장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준비를 앞두고, 대한축구협회의 외국인 감독 선임을 놓고 물망에 올랐던 인물 중 한 명이 본프레레였다.[9]
본프레레도 축구의 변방지인 아프리카-중동을 떠돌던 저니맨 감독이었으나[10][11] , 슈틸리케와 마찬가지로 외국인 감독 선호의 분위기에서 선임되었다. 무엇보다 히딩크를 시작으로 네덜란드인 감독을 쓰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으며, 이는 히딩크-본프레레-딕 아드보카트-핌 베어백으로 4연속 네덜란드인 감독이 선임된 이른바 '더치 커넥션'의 발단이기도 하다.
저니맨 감독이 대체로 그렇듯이 둘 다 스탭 없이 홀로 부임했으며[12][13][14] 자주 한국음식을 먹거나 K리그를 자주 참관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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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것도 디테일을 보면 다른데, 본프레레가 김밥으로 끼니를 때워가면서까지 전국을 누비며 K리그를 관람하고 선수를 발탁하는데 힘을 쏟았다. 그러나 슈틸리케는 수도권 팀의 홈 경기만 관람하였고 그렇게 많이 지켜봤음에도 뽑아서 활약한 선수는 없다. 이정협이 있지만 좀 하나 싶더니 곧바로 양아들로 전락했고, 폼이 극도로 떨어져서 기술위에서 뽑지 말라고 말린 곽태휘를 뽑았다가 카타르 전에서 패배의 원인을 제공했다. 이상한 듣보 선수를 뽑아다가 경기 막판에 투입시키는 면피용 교체카드로 쓴 적도 많다. K리그 경기를 많이 관람했다 할지라도 애초에 선수를 보는 안목이 워낙 떨어지고 고집이 강하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둘은 결국 본인의 능력 부족 탓에 한계에 부딪혔다. 물론 본프레레는 어쨌든 한국을 일찌감치 월드컵 본선에 올려놓았다가 중도에 잘렸기 때문에 후에 동정론이 일기도 했고[16] , 강팀과의 평가전 성적이 괜찮기도 했기 때문에 현재도 졸장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평이 엇갈리고 있다. 어쨌든 본프레레는 히딩크 때문에 국민들의 눈높이가 높아져있었던 것이 불운이었다고 볼 수 있으며, 히딩크의 기억이 희미해졌을 때인 2010년이나 2014년 월드컵을 앞두고 부임했더라면 좀 더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슈틸리케는 본선행 자체를 위기로 몰았고 전임 홍명보를 능가하는 최악의 감독이 될 듯 하다. 사우디에 2패했고 동아시안컵에서 졸전을 펼쳤던 본프레레든 공한증을 처음으로 깼던 허정무든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동아시안컵은 A매치에 공식대회가 아닌 친선경기(Friendly)로 기록되는 국가대항전이라 유럽파를 선발하기 불가능하여 국내파로만 진행한다는 변명거리가 있다. 뿐만 아니라 사우디에 2패한 것은 애초에 한국이 사우디를 시원하게 잡은 기억이 없을 정도로 본프레레 이전 대표팀들 또한 사우디에 약했기 때문이다. 2007년 AFC 아시안컵에서의 준우승을 끝으로 빠르게 침체됐지만 20년 가까이 중동의 맹주로 군림한 것이 사우디였다. 1994 미국 월드컵에서 아시아 국가 두 번째[17] 로 16강 진출에 성공함과 동시에, 94~06까지 4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아시안컵에서는 84~00까지 '''5회 연속 결승 진출 및 우승 3회'''라는 굉장한 실력을 보여줬었다. 지금이야 잇단 연패로 이란이 골칫거리지만 월드컵 예선과 아시안컵에서 20년 가까이 한국을 두렵게 만든 것이 사우디였다.
하지만 슈틸리케처럼 월드컵 최종예선이란 중요한 경기에서 조의 꼴지인 5위와 4위 팀에 아무 힘도 못써고 얻어터지다 패배한 것은 유래를 찾기 어렵다. 과거 중동 팀에 패하던 경기를 돌이켜 보면 중동 팀의 홈경기이며 상대 팀은 이란과 사우디처럼 아시아에서는 잘나가는 팀일 때 한국팀이 총공세에 나서고 중동팀이 10백 수비 전술을 들고나와 팽팽하게 경기가 전개되다 역습을 얻어맞고 선제 실점한 뒤 침대축구를 당해서 지는 패턴이 대부분이었다. 본프레레가 패배하던 시절의 사우디는 4승 2무 무패 조1위의 성적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지만 슈틸리케는 중동팀도 아닌 중국에 공격축구를 당해서 졌고 카타르에도 공격축구에 밀려 패배했다. 그가 대단한 공격수로 칭하던 세바스티안 소리아도 결장했는데도 말이다. 무엇보다 본프레레는 최종전을 앞두고, 쿠웨이트를 원정에서 4:0으로 대파하며 일찌감치 월드컵 본선 티켓을 따냈다.[18]
결과적으로 슈틸리케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역대 최악의 감독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연봉이라도 적으면 몰라도 본인 연봉 20억 원에 아무 도움도 안되는 말동무인 아르무아 코치 연봉 10억 원을 4년 동안 지불해서 얻은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120억 원만 날린 셈. 사실 슈틸리케의 몸값이 특A급 감독보다 싸기는 하지만 슈틸리케보다 비교도 안되는 커리어를 가진 일본 감독 바히드 할릴호지치와 비슷하니(약 25억#) 축협이 커리어가 희미한 감독을 터무니없는 연봉을 주고 데려왔다고 할 수 있다. 감독 커리어만 따지다면 슈틸리케는 전임 홍명보보다도 더 빈약하다.(할릴호지치는 유럽 리그에서 5-6위를 다투는 프랑스와 터키리그에서 오랜 기간 동안 감독을 맡은 바 있고 월드컵 16강 경험도 있다.) 슈틸리케는 기껏해야 유럽에서도 변방인 스위스 리그의 감독을 맡았다가 별 성과를 내지 못했으며 특히 한국에 오기 전에는 중동에서도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카타르 리그에서 열심히 팀을 강등시키고 있었다.
3.2. 슈틸리케 재평가론?
중국에서 의외로 선전하고 있던 모습을 보고 재평가를 해야한다는 일각의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매우 성급한 주장이다. 슈틸리케 축구 스타일이 중국에 맞아서 그랬든지, 아니면 축협의 병크에 절망해 본인이 태업을 했든지는 몰라도, 당장의 성적 부진은 감독이 책임 져야 하며, 유럽 클럽 기준으로 봐도 슈틸리케의 해임사유는 충분하다.[19] 굳이 재평가를 하려면 뭔가 국대에 슈틸리케가 남긴 긍정적인 구석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슈틸리케가 남긴 긍정적인 업적은 눈 씻고 찾아보기도 힘들다.[20] 슈틸리케가 지적한 축협의 병크나 얇은 선수층의 문제는 분명히 새겨들어야 하지만, 신태용호의 초반 부진[21] 에는 '''3년간 허송세월한''' 슈틸리케의 책임도 상당한 것이 사실이다.
경질 이후 신태용호 초기까지[22] 도 대표팀이 부진했기에 슈틸리케의 문제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재평가 여론이 있었지만, 4개월 넘게 지난 2017년 11월 평가전에서 콜롬비아와 세르비아와의 경기에서 일단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서[23] 재평가론은 쏙 들어갔다. 게다가 신태용호가 2017년 동아시안컵에서 우승하며, 2015년 이 대회에서 우승한 슈틸리케에 대한 재평가론은 소위 말하는 슈틸리케 빠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제기하지 않게 되었다. 또 2015년에는 아시안컵, 동아시안컵 모두 신태용이 동행했기 때문에 신태용 실질 감독설이 나오고 있다. 해설위원 출신 유투버가 아시안컵의 실질적인 지휘자는 신태용이었다고 주장하면서 이런 주장이 시작되었다.
일부 라이트팬들은 늘 그래왔듯이(...) 신태용호가 부진할 때면, 심지어 그 후임인 벤투호가 예상보다 부진할 때엔 '''"슈틸리케는 승률이 70%였다능!"''' 하며 비교우위론을 내세우지만, 알다시피 슈틸리케호는 39경기중 32경기를 아시아팀과 했고, 그 아시아팀들도 이란, 일본같은 전통강호들이 아니라 태국, 미얀마, 라오스 등 몇 수 아래 팀들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단순히 수치만으로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다. 신태용호는 2017년 11월까지 6경기를 치뤘지만 그중 가장 약한 상대가 우즈벡이었다. 그리고 이후에 우즈벡보다 약한 북한, 몰도바, 라트비아 같은 팀들은 이기기라도 했다.
하다못해 아시안컵에서 삐끗해긴 했지만 벤투호는 '''칠레, 우루과이, 콜롬비아,코스타리카''' 등 강팀을 이기거나 비겼을 뿐더러 슈틸리케가 2016년 그렇게 말아먹었었던 상대인 이란전에서는 '''1:1로 비겼지만 선제골도 기록했을 정도'''로 성적이 좋은 편이다. 그 2년 동안의 3패가 당시 아시안컵 챔피언이었던 카타르(0:1 패)와 세계 랭킹 3위 '''브라질'''(0:3 패) 그리고 북미의 강호 멕시코(2:3 패)[24] 3개 팀이었다. 반면 슈틸리케는? 그나마 마르첼로 리피가 이끄는 중국은 상대가 월드클래스 감독이라 그렇다 쳐도, 카타르에게 진 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특히 벤투 때의 카타르[25][26] 와 슈틸리케 때의 카타르는 전력 상 차이가 많이 났었다.
또한, 슈틸리케는 전술한 독일 언론 빌트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월드컵 최종예선 '''승점 15점중 13점을 자신이 따냈다'''며, 자신이 나쁜 감독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즉, 한국의 본선 진출을 사실상 자신이 이루어냈다는 뜻이며, 신태용호에 부정적인 일부 팬들도 이를 근거로 신태용을 깎아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애초에 슈틸리케가 경질된 이유는 중국, 카타르를 상대로 연패하며 최종예선 탈락 위기를 자초했기 때문이다. 본인이 이 두 경기를 잡아서 승점 6점을 확보했거나 최소한 카타르전이라도 이겼다면, 일찌감치 우즈벡을 따돌리고 조 2위를 확정지어 자력 진출이 가능했을 것인데, 그걸 못 했기에 경질된 것이다. 슈틸리케가 이렇게 부진하고 나가는 바람에 신태용 감독은 부임 직후 팀을 추스르지도 못하고 한국이 4연패 중인 난적 이란과 본선 진출을 위해 사력을 다해 덤비는 우즈벡을 연달아 상대해야 했다. 그리고 두 경기에서 무승부를 거둔 끝에 이란의 조력을 받아 겨우 진출하는 굴욕을 겪었다.
신태용 감독 부임 후 손흥민, 김신욱, 이근호, 이재성 등의 활용에 확 변화가 오고 새로운 중앙 수비 자원인 김민재를 기용하며 큰 효과를 얻은 것만 봐도 슈틸리케가 얼마나 무능력한 감독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게다가 신태용 감독이 오면서 카타르 중국에게 질 정도로 허우적대던 팀을 11월 평가전 상대인 하메스 로드리게스가 있는 랭킹 13위 콜롬비아, 랭킹 38위 세르비아, 3월 평가전 상대인 유로 16강의 돌풍이면서 독일이 있던 조에서 유럽 예선 2위를 한 랭킹 24위 북아일랜드, 지구상 최강 공격수인 레반도프스키가 있는 랭킹 6위 폴란드 등 강호들을 상대로 1승 1무 2패로 괜찮게 마무리했을 뿐만 아니라 경기 내용도 선전하게 해 허우적대던 팀을 빠르게 정비시켜 경력이 일천한 슈틸리케와 달리 아챔우승시킨 짬은 어디 안 간다며 재평가 받고 있다.
그리고 재평가가 될 수도 있었던 슈틸이 계속 등신 취급을 받는 이유 역시 슈틸리케 자신에게 있었다. 한국에서 짤리고 중국으로 건너간 뒤 틈만 나면 한국팀을 까면서 어그로를 팍팍 끌었고 러시아 월드컵 기간에도 한국은 아직 2002년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며 뒤끝의 끝을 보여줬다. 하지만 막상 러시아에 가니 어느정도 부진을 씻어내고 독일을 때려잡는 대이변을 일으키면서 독일한테 쳐발릴거라고 까던 슈틸리케에게 복수 아닌 복수에 성공했고, 이후 중국 리그에서도 팀 성적을 끊임없이 추락시키며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더구나 월드컵을 두 달 앞두고 일본과 불명예스러운 이별을 한 바히드 할릴호지치가 경질된 후에도 일본의 선전을 기원하는 인터뷰를 하면서 비교되어 더욱 비판받고 있다. 슈틸리케는 자신의 잘못에는 관대하고 남의 허물이나 불행에만 고소해 하는 소인배에 지나지 않는다.
3.3. 이미지 메이킹
울리 슈틸리케는 자기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에 능통하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송받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타입이라 부임 초기부터 상당한 쇼맨쉽을 보여주며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갔다. 사실 한국에서 슈틸리케의 이런 행동이 유독 두드러졌는데, 한국 부임 전에 워낙 여러나라에서 모가지가 많이 달아난지라 어차피 능력은 없는거 성적은 운에 맡길테니, 팬심을 사로잡는 일이 자기자리를 보존하는데 가장 필요하다는 것을 파악한 듯 하다. 그 결과 한국 국대 감독 사상 최장수를 역임하고, 정말 초라한 성적으로 쫓겨났음에도 포털 등지에는 이런 언론플레이에 능했던 슈틸리케를 옹호하는 라이트 팬들이 끈질기게 남아 있다. 팬심에 신경쓰는 것은 좋은데 정작 팀에는 그다지 신경 안 썼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는 자신의 이미지 때문에 경기가 끝나면 자신에게 어떤 댓글이 달렸는지 통역관에게 시켜 자신과 관련된 댓글들을 읽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댓글들을 참조해서 경기가 끝나고 인터뷰를 하기도 하며 이 때문에 간혹 앞뒤가 맞지 않는 발언을 하는 경우가 많다. 부임 초반의 슈틸리케는 돈만 받고 떠나는 외국인 감독이 되기 싫다, 어떠한 경우에도 선수들을 A급, B급, C급으로 나누지 않는다, 공격을 잘 하는 팀은 경기에서 이기지만, 수비를 잘 하는 팀은 우승을 차지하므로 수비가 더욱 중요하다[27] 등의 발언들을 했지만 이 중에 지켜진 말은 대부분이 없으며 모두 자신의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자신의 능력으로는 주워담을 수 없는 말을 뿌린 것에 불과했다. 특히 소리아같은 선수가 없어서 졌다고 발언해 논란이 됐던 이란전에서는 대표팀 버스에서 패배 원인이나 경기 후기, 선수들의 문제점을 공유하기보다는 통역관에게 시켜서 포털 기사의 댓글을 확인했다고 한다. 선수들이 자신의 발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다 불특정 다수가 생각하는 경기 및 인터뷰 반응을 살피는 일을 우선하고 또 중요시했다고 볼 수 있는 장면이며 이를 매 경기, 매 상황에서 했다는 것은 어처구니가 없는 일.[28][29]
매번 케이리그를 보러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케이리그에서 정말 제대로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주는 선수들보다는 활약이 적고 경험도 적은 그런 선수들을 주로 기용했는데, 이는 해당 선수가 포텐이 터져 경기를 잘 풀어나가면 자신에게 돌아올 '슈틸리케가 이 선수를 발굴했다', '명감독이다'와 같은 소리를 듣고 싶어서라는 의견이 많다. 또한 댓글들을 참조하다보니 기량의 정점을 찍고 이미 하향선을 타던 네임드 케이리거나 해외에서 제대로 된 활약을 보여주지도 못 하는 선수들을 기용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덕분에 이런 하향선을 타는 선수들은 각종 질타를 받기도 했다. 애초에 이런 선수들은 뽑지 말았어야 했지만 자신의 판단력이 없이 여론으로만 선수들을 뽑아 망한 케이스이다.
애당초 논리적 사고가 불가능하고, 지적능력도 미지수인 악플러들이 상주하면서 대중의 여과없는 감정을 분풀이식으로 배설하는 포털여론은 네이버 뉴스/댓글에서 보듯이 대중의 가장 몰상식하고 반지성적인 면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곳이며, 이런곳을 참고해서 팀을 운영했다는 것은[30] 슈틸리케가 감독으로 부적격자라는것을 바로 알려주는 것이다. 감독이라는 사람이 그런것들에 휘두릴정도면 더이상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3.4. 그외의 평가
- 홍명보 사퇴 후 새 감독을 뽑고 대표팀을 수습할 기술위원장으로 선출된 이용수가 슈틸리케를 전격 발탁했다. 2002년에 히딩크를 선임해 월드컵 4강 진출에 큰 공을 세운 사람이 왜 이번에는 쪽박을 찼는지 의문인데, 이용수 말로는 슈틸리케가 프레젠테이션을 잘해서 선정했다고 한다. 아래 어록에서 보이듯이 슈틸리케가 근사한 말을 잘하기 때문에 거기에 혹했을 수도 있겠지만 애당초 지도자 커리어가 엉망인데 프레젠테이션만 잘해서 뽑았다고 한다면 이용수의 사람 보는 안목도 참으로 한심하다고 해야할 듯. 비하인드 스토리로는 사실 이용수가 히딩크를 데려온 게 아니라 정몽준 회장의 오른팔이었던 외국어에 능통했던 가삼현 씨가 데려온 것이고, 이용수는 그냥 들러리였다고 한다. 2002 월드컵의 성공으로 이용수가 정몽준 당시 축협 회장에게 유학비와 성과금을 높게 불렀는데, 정몽준은 이용수의 무능함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3억을 부른 이용수에게 꼴랑 천만원을 주며 사실상의 조롱을 한다. 그 이후 이용수는 정몽준의 반대파인 허승표 라인을 타게 되는데, 사실 허승표도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을 축협회장으로 앉힌 공로로 고위직을 꿰찼지만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외국 출장가서 골프만 치다가 AFC 관계자들한테서 비아냥까지 들을 정도로 무능한 인물로 딱 이용수과다.[31]
- 한준희의 지적에 의하면, 유럽 클럽에서는 감독이 해고되어 잔여연봉(유럽 클럽은 감독도 주단위인 주급으로 지급)을 받는다고 해도, 계약기간 동안은 다른 팀을 맡지 않도록 계약하는 것이 관례라고 한다. 만약 잔여 계약기간 내에 다른 팀을 맡는다면 연봉은 지금 중단한다고.[32] 그런데 멍청한 축협은 슈틸리케에게 일시불로 잔여연봉을 지불하였고, 슈틸리케는 바로 9월부터 톈진을 맡으면서 이중으로 급여를 챙기게 되었다. 톈진 감독으로써 받는 급여는 박봉이지만 한국에서 받는 연봉 20억을 잔여기간동안 다 챙긴 셈이기에 텐진 감독수당은 사실상 보너스고 실질적인 연봉은 축협이 지급한다고 볼 수 있다. 슈틸이 "오퍼가 좋아서 협상도 안했다"할 이유가 있었던 셈.
- 'Using players in wrong positions and using out of form players. Nothing too complex. 해석하면 선수들을 잘못된 포지션에 위치시키고, 폼이 좋지 않은 선수들을 기용한다.' 한국의 슈틸리케 감독 선임 당시 카타르 축구팬의 트윗으로, 이 외에도 왜 이런 사람을 데려가냐는 등 강등 전도사 시절을 지켜본 카타르 팬들이 한국 대표팀을 우려하는 얘기가 몇 있었다. 결국 2016년에 이 트윗대로 이뤄지면서 슈틸리케에 대한 여론이 극도로 안 좋아졌고 결국 경질로 이어지게 되었다.
- 네이버 동영상 댓글에 어떤 축구팬이 위와같이 슈틸리케호의 참담한 미래를 예언한 바 있다. 무작정 까고 보는 게 아닌 슈틸리케의 경력을 근거로 그럴듯한 논리를 네세웠지만 당시(2015년)는 슈틸에 대한 우호적 여론이 지배적이어서 반대가 엄청나게 달렸다. 내용을 보면 슈틸이 1류 감독이었다면 초기 지도자 커리어에서 중소리그에서라도 뭔가 업적이 있어야 했는데, 이 양반은 은퇴하고 나서 환갑이 넘을 때까지 30년간 스위스나 중동리그와 같은 3류리그에서조차 우승경력이 전무하다. 명감독들이 대체로 시시한 리그에서 커리어를 시작하더라도, 지도력을 보여 팀을 우승시키고 상위 리그로 전직한다는 점에서 슈틸리케가 3류리그에서도 우승전력이 전무한 것은 무능하기 때문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독일 레전드였지만, 분데스 2부에서도 안쓰는 사람인데 무슨배짱으로 이용수가 이런 사람을 한국 감독으로 데려왔는지 모를 지경. 그동안 한국 감독을 한 외국인 감독중에서 가장 커리어가 형편없는 지도자이다.[* 사실상의 감독역할을 한 데트마어 크라머는 독일 국대와 바이에른 뮌헨을 맡은 바 있고, 아나톨리 비쇼베츠는 소련팀을 이끌고 호마리우가 있는 브라질을 꺾고 1988년 올림픽 우승을 이끌었다. 히딩크는 말할 것도 없고, 본프레레는 아래 참조 바람. 핌 베어벡조차도 빅리그보다 조금 못미치는 네덜란드 리그 소속인 페예노르트와 흐로닝언에서 감독을 역임했다. 심지어 현재 국대 감독인 파울루 벤투는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유로 2012 4강이라는 성적을 기록할 정도로, 히딩크 다음으로 커리어가 화려한 감독이다. 우리나라는 아니지만 북한 국가대표의 경우 욘 안데르센은 분데스리가 시절 2부리그에 강등됐던 마인츠를 1부로 승격시킨 업적이라도 있다. 하지만 슈틸리케는 처음에 선수시절 명성으로 스위스 국대를 맡았다가 그만 두었으며, 그 이후에는 중동에서도 UAE, 사우디, 이란보다도 한참 떨어지는 카타르 리그를 전전했다. 동북아로 치면, 태국 리그팀 쯤에서 감독하다가 한국 국대 감독이 된 셈.] 사실 1류 한국 감독의 커리어가 슈틸리케보다 좋으며, 이에 비교할 때 슈틸리케의 돋보이는 능력치는 결국 능력은 좋지만 커리어가 딸리는 한국 감독들과는 달리 선수 시절 후광으로 국대의 천둥벌거숭이들을 제압할 수 있다는 정도밖에 없다.라며 신나게 까는데, 2년 뒤 슈틸리케의 노답기질이 그대로 드러나면서 맞는 말이 되었다.
- 독일 대표팀이 한국팀에게 발리자 우리가 한국 대표팀을 너무 얕봤다며 자성론이 불거졌고, 독일 대표팀을 비판하는 목소리 중에선 전년도까지 한국 감독을 맡았던 슈틸리케에게 왜 자문을 구하지 않았는지 추궁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물론 슈틸리케의 자문이 얼마나 독일팀에 도움이 되었을지는 의문이지만 이런 점을 보면 독일 축구계에서 슈틸리케가 거의 잊혀진 존재라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3.5. 슈틸리케의 공과 과
슈틸리케의 과오는 수도 없이 잘 적혀있어서 언급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전부 사실이며 사실상 재평가론조차도 과거 미화나 단편적으로 기억 편집에 의한 착각 정도로 해석될 여지가 있을 만큼 슈틸리케의 과오는 분명하다. 하지만 슈틸리케가 과오만 있는 것은 아니며 과오가 커서 공로를 뒤덮었을 뿐이지 과오가 커서 있는 공로조차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라 구별해볼 필요는 있다.
슈틸리케의 공로를 짚어보려면 슈틸리케가 선임될 당시 상황을 먼저 고려해 봐야 한다. 당시 홍명보호의 의리축구가 실패했더라도 유종의 미라도 거두었으면 모를까, 과정에서부터 결과까지 모조리 금지어급의 전적을 달성하고 만다. 게다가 홍명보호의 의리축구가 발생하게 된 원인은 최강희호에 있다.[33] 의욕이 부족했던 최강희[34][35] 그런 최강희를 억지로 부임시킨 축협, 그런 최강희에 대항해서 코드가 맞지 않는 국내파를 깔아뭉개며 팀을 죽사발냈을 뿐만 아니라 선수 주제에 어떤 감독을 원하는지 대놓고 MB라는 마크로 대중들에게까지 공공연하게 드러낸 기성용과[36] 그 일파 등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에서 다시 없던 총체적 막장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기성용의 간택을 받은 홍명보가 부임하게 된 것이고 홍명보는 능력부족도 있지만 기성용과 그 일파의 간택을 받아서 부임한 모양새이니 1년이라는 시간제한 속에서는 그들을 배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기에 당시는 소위 말하는 의리축구를 배제하고 선수들을 공정하게 뽑아 선수들의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드는 감독이 이상적으로 꼽히던 상황이었다. 즉 기성용으로 대표되는 유럽파 선수들이 유럽이라는 타이틀을 바탕으로 대들지 못할 정도로 선수 시절의 명성이 높은 인물이 필요했고[37] 이런 인물은 차범근을 제외하면 외국인 감독밖에 없었다. 4년을 내다보고 긴 안목으로 더 나은 감독을 영입하지 못한 이용수와 축구협회의 과오는 있었지만, 슈틸리케 말고는 선수 시절 명성이 높으면서도 비교적 싼 몸값으로도 난파선 상태인 변방인 한국에 4년간 거주하면서 부임시킬 만한 감독을 찾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슈틸리케는 당시 한국 축구가 요구했던 감독의 역할을 그런대로 잘 수행한 편이었고 신태용의 보좌나 선수들의 정신무장 등으로 아시안컵 준우승 같은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댓글 확인이나 연탄 나르기 등 본인의 이미지 메이킹 측면도 있었지만 당시는 모범적 리더를 원했고 슈틸리케가 그렇든 그렇지 못하든 그는 그 기준에 맞게 노력했던 것이다.
이것이 슈틸리케의 공로다. 당시 의리축구의 추태 및 주요 선수들의 추문과 갈등이 계속 이어지면서 많은 팬들이 국가대표 축구에 학을 떼고 멀리했다. 실제로 2014 월드컵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전에선 상암에서 50000여명의 관중이 들어찼다. 그러나 2018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전에선 30000여명에 불과했다. 즉, 2014~2018 사이에 2/5나 되는 관중들이 날아가 버리는 말도 안 되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이 시기 한국 최고의 인기팀인 대표팀 축구인기의 하락을 설명할 수 있는 요인은 의리축구와 런던파의 난동 외에는 설명할 수 있는 요소가 없다. 슈틸리케가 들어와서 독일축구와 레알 마드리드 이미지메이킹과 언플을 사용해서 그나마 더 큰 추락을 막고 보존이 가능했던 것이다.[38]
다만 그는 능력의 한계가 분명했던 감독이고 최종예선에 가서 능력의 한계를 드러냈던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그를 선임했던 축구협회가 책임이 있는데 애초에 딱 이정도 역할 밖에 할 수 없는 인사를 선임했음에도 별 지원은 없이 오히려 전술적 역량이 있는 신태용을 연령별 대표로 빼서 문제를 키웠고, 문제가 터졌을 때 본인들의 과오를 깔끔하게 인정하여 빨리 슈틸리케를 경질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다.[39]
정리하자면 슈틸리케가 능력이 부족했던 것은 선임 때부터 알려져 있던 사실이었다. 단지 당시 한국 대표팀에 필요했던 감독은 감독으로서의 능력보다 '''선수 시절의 명성이 높은 감독'''이 필요했다. 조광래호, 최강희호, 홍명보호 모두 가장 큰 문제가 되었던 것은 선수단 분열, 포털 댓글을 무대로 한 여론전, 선수의 급을 나누고 편을 가르기, 감독의 리더십과 선수의 돌출행동 등이었다. 조광래호에서 촉발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국가대표 출신이자 K리그 레전드인 최강희, 대표팀의 황태자인 홍명보도 실패한 이상 차범근과 허정무 정도를 제외하면 한국인 감독 중에서는 선수들을 휘어잡을 만한 인물이 없었던 것이다.
저런 조건하에선 슈틸리케가 적합한 인물이었다. 기본적인 명성도 있고 포털 댓글 때문에 선임되었다는 것도 알고 있어서 포털 댓글 관리를 열심히 하는 등 매니저로서는 괜찮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전술적 능력은 애초에 한계가 분명했고, 축구협회가 처음에 신태용으로 보좌하게 한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신태용은 이광종 감독의 백혈병 발병 및 자신의 의지로 올림픽 대표팀으로 향했다. 슈틸리케는 결국 전술적인 능력이 부족한 상황에 직면했다. 이 상황에서 전술적으로 괜찮은 코치를 붙이건 해야 했는데 그러한 대책 마련에 소홀했던 것은 축구협회 잘못이었다.[40] 결국 슈틸리케는 매니저 역할을 수행했지만 성과가 나오지 않아 선수들조차도 신임하기 힘들어할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정말 직전의 상황에서야 결단을 내렸으니 이 부분은 자신의 능력에 솔직하지 못하고 책임을 지지 않는 슈틸리케, 밥먹듯이 네티즌을 선동하고 조종하던 선수단, 선수단의 선동에 당해 서로 편을 가르고 싸우던 네티즌, 눈치를 보면서 내몰리는 상황이 되고 만 마지막에서야 결단하던 축협 모두에게 책임이 다 돌아가는 원죄에 가깝다.
즉 팀을 관리하는 매니지먼트 능력은 분명 있는 감독이었고[41] 그 부분에선 유능함을 보였지만, 전술적으로는 무능한데다 독단적인 면도 있었다. 겉으로 초반에 신태용과 서로 상생하는 관계인줄 알았지만 전술논의 과정에서 상당한 마찰이 생겼다는것은 확실한것으로 보인다. 슈틸리케 경질후 후임이 신태용이 됐는데 슈틸리케호의 문제점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전술적으로 부재가 있지만 거기까지만 하겠다"로 슈틸리케를 우회적으로 저격했고 슈틸리케도 경질후에 해외에서 후임 감독이 된 신태용에 대한 기자에 질문에 덕담은 커녕 "더이상 신태용과 연락할 일은 없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기까지했다. 선수들이 알아서 세부전술을 아주 잘 짜서 돌리거나 유능한 수석코치가 전술을 전담하거나 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의외의 슈틸리케의 보수적이고 독단적인 면 때문에 해결이 쉽지 않았고 신태용 감독과 축구협회도 거기에 어떻게 손을 쓰지 못한 채 방치했다고 보는 게 맞을것이다. [42] 후일 톈진 터다에서도 이 문제점은 반복됐고, 관리는 잘 하지만 전술적으로는 무능했던 슈틸리케는 그 점을 보완해줄 선수단의 전술적 숙련도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낮아지고, 필요한 크랙도 충분히 데려오지 못하여 전보다 훨씬 약해진 상태로 시즌을 시작한 2020시즌 팀이 전면붕괴되는 와중에 아무것도 못 하고 결국 경질되는 신세가 되었다.
[1] 사실 해외리그 사정을 잘 모르는 팬들에게는 잘 알려져있지 않은 사실인데, 히딩크가 사실 첼시에서 2015-16시즌에 거의 흑역사라고 볼만큼 실패하고(근 10년이래 최악의 승률. 물론 전임 무리뉴가 팀을 박살내고 떠난 후 떠맡긴 했지만) 해임되었기 때문에 명예회복을 위해 다시 기회를 잡아보려고 안달이 나있다고 한다. 유럽 여러구단 뿐만 아니라, 중국 국대와 중국 슈퍼 리그의 여러 부자구단들(특히 상하이 상강)을 두드렸다고 한다. 다만 이제 히딩크는 고령인데다가 2010년대부터 보여준 실적부진으로 거의 지는 해로 인식되고 있어서 유럽팀은 물론, 중국조차도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으며, 중국 국대는 마르첼로 리피, 상하이는 안드레 빌라스보아스를 데려왔다.# 히딩크는 결국 유럽은 물론 중국에서도 외면을 받자 마지막으로 한국팀을 두드린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한국팀이 히딩크의 성공의 출발점인만큼 히딩크가 애착을 갖는게 당연하지만, 프로는 원래 돈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히딩크의 "보수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가려들어야 한다는 이야기. 히딩크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2009년에 첼시에서 팀 장악에 실패해 잘린 스콜라리의 땜방 감독으로 히딩크가 대성공을 거둔 것만 강조하지만, 냉정히 말해서 히딩크는 2010년대 이후에는 제대로 된 업적이 없다. 2012년 터키 감독으로 유로2012 본선진출에 실패했고, 2012-13년에 러시아 FC 안지 마하치칼라를 맡았을 때도 첫해는 러시아 프리미어리그에서 3위를 하는 등 잘 나가다가 둘째해는 시즌 초반에 (무책임하게) 중도에 자진사임했고, 히딩크가 떠난 후 팀은 강등되었다. 2015년 네덜란드 감독때도 유로2016 예선 부진으로 해임당했다. 터키 시절에는 재택근무를 하다가 대표팀 소집때만 터키로 오는 무성의한 감독으로 터키 언론으로부터 엄청난 비판을 받기도 했다.[2] 정봉주의 품격시대 1월 2일자[3] 해임후에도 한국팀 동향은 계속 관심있게 주시하는 듯, 이동국이 뽑힌 것은 알고 있었다.[4] 이 인터뷰에서 슈틸은 "신 감독이 나의 축구를 비난하는 데 대해 매우 놀랐지만 상황이 그렇게 만드는 것 같다”며 이해한다는 투로 이야기. 사실 신태용은 슈틸리케를 직접 비판하지는 않고 그냥 "작전이 부재했다"며 에둘러 말했을 뿐이다. 본인으로서는 2016년 1월 청대를 지휘하는 신태용을 응원하기 위해 휴가시간을 쪼개 카타르까지 갔는데, 신태용이 그런말을 하는 것을 듣고는 뒤통수 맞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듯.[5] 이는 한국축협이 분명히 비판받아야 한다. 중국팀의 리피는 10명(이태리인 9명, 스페인인 1명), 일본팀의 할릴호지치도 4명(보스니아인 1명, 프랑스인 3명)을 데려왔는데, 한국축협은 아르무아 하나만을 허용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 팀에 별 도움이 안되는 피지컬 전문 아르무아를 수석코치로 선택한 슈틸리케도 문제지만.[6] 사실 클럽들에서 해임된 감독들은 자신의 해임을 주도한 전임 구단주나 팬덤을 크게 비난하지는 않는 경향이 있다. 전임 구단이나 구단주를 지나치게 비난하면 본인이 다음 자리를 찾을 때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7년 10월 안첼로티는 바이에른 뮌헨에서 해임되자 트위터에 이를 비난하기는 커녕, "바이에른과 함께 한 것은 영광이었고 구단과 팬덤의 성원에 감사드린다"며 오히려 사의를 표한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본프레레 같은 경우 해임 되었을 때, 한국축협을 크게 디스했지만, 결과적으로 해가 되어서 다음부터 국가대표팀이나 왠만한 클럽을 맡지 못했다. 이런 현상은 야구에서도 마찬가지며, 김성근이 프런트와는 사이가 나빠도, 구단주는 욕하지 않거나 오히려 찬양하는 것과도 상통하는 바가 있다. 채널A가 슈틸리케의 어그로를 기대했다면 좀 잘못 짚은 것이다. 그래도 자신의 책임이 될 수 있는 부분을 모조리 선수, 협회, 팬에게 전가하는 과정에서 일부 비판처럼 보인 요소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니, 채널A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는지는 그들 자신만이 알 듯.[7] 물론 월드컵을 봤다면 아시겠지만 장현수는 대표팀 구멍 1순위었다.[8] 사실 축구에 대한 독일인들의 자존심은 어마어마했다. 축구 종주국을 자처하던 잉글랜드가 침몰하는 동안 독일은 2002년 월드컵 이후로 시작해온 세대교체가 완벽하게 되어있었고, 2010년 이후로 최소한 4강은 보장되었고, 2014년에는 여러가지 배경이 있었다고는 하나 축구 최강이라 불리던 브라질은 7대1로 꺾었다. 이 과정에서 독일의 자존심은 어느새 교만으로 바뀌었고, 산마리노와의 평가전에서 '이 따위 수준낮은 팀과 게임하는건 시간 낭비이자 부상의 위험성까지 가질 수 있다.'는 희대의 망언을 하고, 이겼다는 이유만으로 스웨덴 스태프들을 상대로 대놓고 조롱을 할 정도로 교만해져 있었다. 이 때문에 축구에 한해서는 전 세계가 독일의 패배를 벼르고 있었을 정도로 독일의 적이 가득했으며, 이번 카잔의 패배로 독일이 조별리그 꼴지를 했을 때도 직접적으로 연관있는 멕시코나 스웨덴 뿐만이 아니라, 유럽에서는 영국과 프랑스, 남미에서는 브라질과 같이 전 세계적으로 독일을 꼴좋다며 비웃을 정도였다.[9] 1순위는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프랑스를 우승으로 견인한 에메 자케, 2순위가 적장으로 한국을 0:5로 관광태웠던 거스 히딩크, 3순위가 본프레레였다. 그리고 4순위는 프랑스 월드컵에서 크로아티아의 돌풍을 이끌었던 미로슬라프 블라제비치 감독이었다.[10] 여기서 오해가 있을 수 있는데, 한중일이 포함된 동아시아 지역이 오히려 아프리카-중동보다도 더 변방이라고 볼 수 있으니, 이런 곳을 전전한다고 해서 일부 축구팬들처럼 국내감독보다도 역량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현재 일본 국대의 팀컬러에 큰 영향을 주었고 2002년 일본을 16강에 올린 필리프 트루시에나 한때 한국 국대감독으로 유력했던 브루노 메추도 아프리카에서 대부분의 커리어를 보냈다.[11] 물론 최근에는 아프리카 선수들이 조기에 유럽진출을 하고 중국, 일본의 자금력이나 큰 연봉은 아니라도 변방국가와 비교하면 안정적인 급여가 지불되는 한국이기에 동아시아에 대한 선호도가 올라간 편이다. 하지만 유럽 출신 감독에겐 어느 정도 언어가 통하며 세계적 수준의 선수를 지도할 수 있는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대표팀이 존재한다는 점은, 대우가 아닌 커리어를 쌓고자 한다면 동아시아에 비해 훌륭한 선택지인 건 부정할 수 없다.[12] 저니맨 감독들은 일단 구단의 큰 신임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프런트에서 추가 투자를 꺼려 자기 사단을 구축하지 못한다. A급 감독들은 자기 스탭이 있어서 히딩크는 한국에 부임하자마자 베어벡과 고트비를 데려왔고 이들은 둘 다 이후 각각 한국과 이란의 국대 감독을 했을 만큼 역량이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현 대표팀의 감독인 벤투도 마찬가지로 자기 사단을 꾸리고 있다. 슈틸리케도 별로 대표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 피지컬 아르무아를 데려오긴 했다. 그리하여 팬들에게 말동무라는 비아냥을 받기도 했다. 이 코치의 연봉은 10억 원으로 추정되고 있다.[13] 축협은 히딩크호에서 코치를 한 핌 베어벡을 본프레레 보좌역으로 다시 데려오려고 했으나, 그는 당시 J리그 퍼플 상가에서 잘려 놀고 있었으면서도 "본프레레를 잘 알지 못한다"며 고사했다. 이를 보면 본프레레는 네덜란드 축구계에서 그다지 신망이 없었고, 베어벡도 그 아래서 코치를 하는게 자기 커리어에 별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한 듯 하다. 이와는 달리 2005년 가을 딕 아드보카트가 부임하자 베어벡은 바로 한국으로 다시 왔다. 본프레레의 경력을 보면, 지도자를 네덜란드 2부리그팀인 MVV 마스트리흐트에서 시작했지만 그 이후 경력은 모두 아프리카-중동 임을 감안할 때, 네덜란드 축구계 주류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14] 슈틸리케도 본프레레와 마찬가지로 지도자로서 자국 축구계에서 왕따인 듯 하며, 본인은 그 이유를 라리가로 이적해 선수생활을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그 이후 독일 대표팀과 유스를 맡았을 때 이미 독일 축구계 전반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단순히 스페인 생활 때문에 왕따라면, 2000년대 초반 독일 대표팀의 스탭으로 합류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 애당초 슈틸리케를 축협에서 선임했을 때 슈틸리케의 커리어는 희미해도 그의 인맥으로 독일 축구의 여러 스탭들을 데려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높았지만, 그는 독일인은 커녕 아르헨티나인 아르무아 단 한명을 데려왔으며, 아르무아의 경력은 슈틸보다도 더 희미한 사람이었다. 전력분석원이나 작전코치도 한명 데려오지 못했다. 슈틸리케가 독일 축구계에서 왕따임을 알 수 있는 또다른 일화는 2016년 8월 24일, 서울에서 산둥 루넝이 FC서울과 아챔 8강전이 열렸을 때, 슈틸리케는 VIP석에서 직관했음에도 경기장에 내려와 산둥 감독 펠릭스 마가트와 전혀 만나거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가트와 슈틸은 1982년 월드컵 서독대표로 같이 나갔는데도 그런식이다. 물론 마가트의 성격이 워낙 독선적이라 슈틸과 개인적으로 사이가 나쁠 수도 있겠지만...[15] 이와 대조적으로 히딩크는 축협이 계속 권유했으나 K리그는 볼 필요가 없다면서 참관을 거부했다. 이는 2001년 5:0으로 계속 참패할 때 이야기로서, 축협내 히딩크 경질파들이 "히딩크가 K리그를 무시하면서 관전도 잘 안한다"고 직접 이야기 할때 불거진 이야기인데 코치들과 같이 참관했다는 이야기가 있었음에도 슈틸처럼 자주 K리그를 참관한 것은 절대 아니다. 당시는 해외 진출 선수들도 유럽파는 거의 없었고(안정환, 설기현), K리거들이 주력이었기 때문에 히딩크도 K리그에서 선수를 골랐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나간 듯 하지만...[16] 후에 아드보카트의 행태와 비교하면 본프레레는 자기가 맡은 한국 팀에 훨씬 애정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 딕 아드보카트는 순전히 경력을 쌓으려고 한국팀을 이용했는데, 한국 대표팀 감독에 선임될 당시 UAE 감독을 맡고 있었으나 본프레레가 경질되자 서명한지 두 달밖에 안 된 UAE 감독 계약을 파기하고 2005년 9월 한국에 왔다. 한국에 온 이유도 월드컵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쌓는 것이므로 월드컵이 끝나면 무조건 한국을 뜰 생각이었기 때문에 한국 대표팀을 맡고 있으면서도 열심히 유럽팀을 두들기고 있었다. 실제로 월드컵에 나가기 직전에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소속의 FC 제니트 상트페테르스부르크와 계약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중대한 대회를 앞둔 감독의 태도가 이런 식이면 문제가 된다. 물론 이런 마인드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단기계약이고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어 성적을 내면 되는 것이지 한국 대표팀에 모든 것을 바칠 필요는 없다. 다만 UAE를 박차고 월드컵 진출팀에 왔으면 이 대표팀을 이끌고 성적을 내서 자신의 몸값을 올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야망을 가졌어야했는데 이 양반은 '월드컵에 나가는 팀이 소방수로 나를 불렀으니 아직 난 죽지 않았다' 정도의 포부 밖에 없어서 이정도 위치에 만족하여 다음팀을 구했다는 것이다.[17] 첫 번째는 1966년 잉글랜드 대회의 북한[18] 한때 공한증에 빗댄 '공쿠증'이라는 말이 돌 만큼 과거 한국은 쿠웨이트에 힘을 쓰지 못했다. 그러나 본프레레 시절 아시안컵과 월드컵 예선에서 쿠웨이트를 연이어 대파하며 더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게 됐다.[19] 예를 들어 주제 무리뉴가 2020년 현재 맨유를 거쳐 토트넘를 맡아 선전하고 있지만, 그 3년전 첼시 FC 2기 시절의 3번째 시즌의 부진과 라이벌 팀 이적으로 무리뉴는 첼시팬들에게 거의 금지어 급이며 재평가 운운하는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20] 슈틸리케가 캐냈다던 이정협은 슈틸리케호 초반에만 반짝했을 뿐이다.[21] 2017년 9~10월 정도. 그 이후에는 빠르게 팀을 수습해 자기 페이스를 찾았으나 이근호, 권창훈, 김민재, 김진수, 염기훈의 부상으로 다시 주춤했다.[22] 정확히는 슈틸리케 경질 4개월 후인 2017년 10월까지.[23] 모로코(2군)전과 러시아전은 신태용이 적응 기간을 겪은 데다가, K리거를 뽑을 수 없어서 검증이 안된 해외파로 땜방한데다가, 새로운 포메이션을 실험하다가 참패한 것이다. 그 이후의 콜롬비아와 세르비아전에서는 K리거를 차출했고, 검증된 전술을 써서 선전했다. 특히 10월 평가전에서는 기존 풀백 자원들이 전원 국내파였던지라 고육지책으로 이청용을 풀백으로 돌려야했다...[24] 그나마도 코로나 문제로 수비가 메인이 못 되는 상황이었는데, 선제골까지 넣었으나 역전패 당한 것이었다. 당시 멕시코와 친선경기를 같이 치른 네덜란드, 알제리 모두 득점을 거두지 못하고 패배하거나 비기는 데에 만족해야 했는데, '''한국만 무려 2골을 넣었다.'''[25] 이 때 카타르는 아시안컵 '''우승'''을 했다. 일본마저 3:1로 꺾으며 벤투호를 비난하던 사람들을 숙연하게 만들었을 정도. 그리고 벤투는 불과 1년 반만에 맞대결에서 2:1로 설욕하였다.[26] 심지어 벤투가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리피가 이끄는 중국을 2:0으로 꺾었다.[27] 본인이 전설적인 수비수였으면서도, 대표팀의 수비는 항상 문제로 떠올랐으며, 본인이 짐을 싸게 된 직접적 계기가 된 카타르전도 축협조차 쓰지 말라고 권고한 곽태휘를 무리하게 기용했다가 참극이 빚어진 것이다.[28] 포털사이트의 특성상 온갖 좆문가들이 되도 않는 개소리를 늘어놓으며 서로 자기가 맞다고 싸우는 곳이다. 이전까지만해도 당장 군대나 가라고 욕을 먹는 선수가 다음 경기에서 반짝 잘 했다고 국대의 기둥, 국대의 희망이 되는 곳이며, 심지어는 한 경기의 전후반전 9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조차 느그흥과 우리흥을 오고갈 정도로 순간순간 보이는 것만으로 되도않는 개소리를 늘어놓는 곳이 포털 사이트다. 선수의 부진이 선수 기량 자체의 문제인 건지, 감독의 용병술이 잘못된 것인지에 대한 판단조차 하지 않으며, 선수도 사람이다보니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사소한 패스 실수나 볼컨트롤 미스 하나만 가지고도 방금전까지 골을 넣은 선수를 욕하는 곳이 포털 사이트인데, 전문적인 분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포털 사이트 댓글부터 우선적으로 확인했다는 것은 진정으로 문제점을 분석하고 이를 개선해 나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본인에 대한 대중의 평가와 명성에만 신경쓰는 졸장부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29] 반면 히딩크는 네덜란드가 월드컵에 진출하지 못한 것에 대한 한 마디를 부탁한다는 인터뷰에 '네덜란드가 월드컵에 진출하지 못한 것이 무슨 문제인가? 우리가 축구를 못했다는 것이 문제다.'라는 답변을 하며 순간의 명성보다 문제 해결이 중요하다는 핵심을 제대로 짚었다. 실제로 2002년 월드컵 직전 평가전에서 프랑스와 체코에 5대 0으로 털리고 나서 대중들이 히딩크를 '오대영'이라는 별명을 붙이며 조롱을 했고, 언론에서도 연신 히딩크를 두들겨댔으나 히딩크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월드컵 준비와 선수단 정비에만 매진했고, 이런 히딩크의 능력은 그간 놀려대던 언론을 단번에 닥치게 할 만한 결과를 가져왔다.[30] 슈틸이 의도했든지 안했든지 이런 쓰레기같은 댓글들을 읽으면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아예 읽지 말았어야 했다.[31] 김우중도 허승표의 무능에 학을 떼고 후에 협회장을 때려치면서 허승표와 신문선을 대차게 디스한다.[32] 한국 KBO리그도 마찬가지 관례가 있으며, 선동열이 삼성 라이온즈에서 해임되었을 때, 삼성측에서는 계약기간(5년인데 1년만 마치고 삼성그룹에서 이학수 라인 숙청당시 김응용과 함께 해임됨)동안 연봉을 지급하다가, 선동열이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 부임하자 중단한 바 있다.[33] 물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조광래에게도 책임이 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조광래호에서 의리축구의 시발점이 시작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게, 대표팀 선수를 국내파 vs 해외파 구도로 나누게 한 장본인이 바로 조광래이다. 인터뷰에서도 대놓고 "해외파에게 상처를 주어선 안된다"라고 하던가, 아스날 FC의 벤치만 달구면서 경기 감각이 떨어진 박주영을 계속 기용한다든가, 이청용이 부상으로 아웃되어서 소속팀인 볼튼에서 대표팀 차출이 안 된다 하는데도, 조광래 본인이 확인하겠다는 등의 해외파 편애가 지나치게 심했다. 즉 이미 의리축구가 서서히 진행이 되어가고 있는 상황 속에 최강희는 팀을 떠맡게 되었고, 해외파 vs 국내파 구도 갈등 봉합을 해결하지 못하고 의리축구가 진행되어가는 악순환을 끊어내지 못했다. 결국 이는 홍명보호에도 이어져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고 만다.[34] 이는 신태용호와 비교해서 더더욱 비판받는 부분이다. 신태용도 전임감독 슈틸리케의 최종예선 부진으로 월드컵 예선탈락의 총체적인 난국인 상황에서 사실상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감독직을 맡았지만, 부임 직후부터 4-2-3-1, 4-4-2, 3-5-2 등 다양한 전술을 실험하며 대표팀에 최적화된 전술을 찾고자 노력했으며, 최소한 어떻게 팀을 운영하겠다는 지향점은 보였다. 결과나 경기내용이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무기력했던 팀을 다시 정상 궤도에 올려놓았고, 경기력이 눈에 띄게 상승했다. 당장, 아시아팀인 중국, 카타르에게도 무너지던 팀이 콜롬비아, 세르비아 등 세계적 강호들과도 대등하게 맞붙는 팀이 되었다. 또한 7년간 이기지 못했던 라이벌 일본을 4-1로 떡실신 시켰고, 동아시안컵에서 최초로 북한을 이기기도 했다. 이와는 반대로 최강희는 비록 예선 전용 땜빵 감독이었을 지라도 형편없는 전술로 팀 컬러를 망가트리는 등 조광래 감독부터 이어진 한국축구의 문제점을 전혀 해결하지 못했고, 그럴 의지도 가지지 않았다. 비록 자신이 국가대표 감독을 할 생각이 없었다지만, 최소한의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책임도 지지 않고 결국 본선 진출만 했다. 게다가 기성용 SNS 논란 및 해외파,국내파 갈등을 겪어서 선수단과는 호흡조차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박살이 났던 최강희호에 비해 신태용호는 신태용 감독한테 안기거나 머리를 만지고 신태용 감독 역시 선수들과 스킨쉽을 하며 선수들과 관계가 좋았었다. 슈틸리케 감독이 위기에 빠진 그 순간에도 대충 뛰던 선수들이 신태용 감독이 위기에 빠지자 미친듯이 뛸 정도. 그리고 자국 리그를 비하한 홍명보와 달리 자국 리그를 극찬하며 팬들에게 월드컵이 끝나도 K리그를 사랑해 줄 것을 호소했을 정도이다. 그리고 이 결과 신태용호는 아쉽게 16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카잔의 기적이라는 월드컵의 대역사를 기록하게 된다.[35] 이는 최강희가 협회에 반 강제적인 결정 자체에 더 이상 끌려다니지 않기 위해서, 또한 자신의 커리어가 박살날 수 있는 국가대표팀 감독직의 부담감을 빨리 벗어나기 위해 '''월드컵 본선진출을 성공시키고 바로 전북으로 돌아가겠다'''라는 공식 기자회견을 하게 된 것이다. 뭐 책임론에 대해서 비판이 크다 하더라도, 어찌되었건 협회에 무능력하게 끌려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최강희로서는 옳은 결정일 수 있었다는 것. 하지만, 언급했듯이 본선진출이라는 목표달성만을 위해서 당장에 한국축구의 문제점들을 전혀 해결하지 못하고, 선수단과의 불협화음등이 너무 심각해져 최악의 수로 돌아오고 만다. 당장에 슈틸리케가 경질되고 급하게 감독직을 맡았던 신태용이 선수들과 사이가 좋고 한국축구의 문제점들을 개선해나가는 모습과 비교한다면 더더욱 실드가 불가능하다.[36] 당시 네이버나 다음 댓글은 그 일파의 게시물이나 행보 하나하나마다 기사가 올라와서 한국 축구사상 다시 없는 전쟁터가 벌어졌었고 그 일파는 의미심장한 게시물을 꾸준히 올리며 공공연히 조종하고 있었다.[37] 박지성조차도 방송에서 맨유 박지성과 QPR 박지성은 다르기 때문에 리더쉽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증언한 바 있다.[38] 그 외에도 최종예선 전 라운드의 데이터로 비교하자면, 동일 장소에서 경기한 건 수원 월드컵 경기장이 유일하다. 여기에서도 2014는 28000여명이 들어찬 반면, 2018은 24000여명이 들어찼다. 1/10이 감소한 셈이니 결코 적지 않다. 최종예선 들어가는 시기쯤해서 슈틸리케가 본격적으로 흔들렸다는 것을 감안하면 원래 2/5가 날아가야 하는 것을 슈틸리케가 어느 정도 선방해줬다는 의미가 된다. 물론 곧이곧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39] 실제로 이런 점 때문에 이영표는 조광래 감독은 조금 더 믿고 가야 했고, 슈틸리케 감독은 더 빨리 경질해야 했다고 비판했다.[40] 그러나 국가대표팀 감독급의 전술적 역량을 지닌 인물을 단지 코치로만 뽑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슈틸리케의 능력에 대해 축구계는 다 알고 있었을 테니까 매우 어려운 자리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41] 이마저도 논란이 있는 부분이다. 분명 초창기에는 감독으로서 이렇다할 성과가 없었음에도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직을 맡으면서 K리그 경기 관람을 꾸준히 하면서 취임당시 인터뷰에서조차 "소속팀에서 반드시 경기에 출전해서 경기 감각을 인정받아야 대표팀에 합류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선수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라고 하여 홍명보호에서 큰 문제로 지적받았던 의리축구를 하지 않을 것을 시사하여 당시 축구팬들에게 큰 기대를 가지게 하였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을 맡았을 때 "한국에서의 감독직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진정성 및 도전정신에 대해서 호의적으로 평가받는 부분도 분명히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렇다할 커리어가 없었음에도''',(물론 조광래호-최강희호-홍명보호로 이어진 최악의 흑역사가 어마어마했기에 그런것이 사실이었지만) 하지만 본격적인 월드컵 예선에 들어가면서 아시아팀 상대로 친선전 및 A매치 경기 우수, 아시안컵 준우승, 동아시안컵 우승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었던 전술적인 문제들이 나타나면서 점점 경기력과 성적이 좋아지지 않기 시작하자, "우리에게는 카타르 세바스티안 소리아와 같은 공격수가 없어 이런 결과가 나왔다"라는 희대의 망언을 하면서 팀을 관리하는 매니지먼트 능력조차 사실상 소멸되어 선수단 분위기는 박살이 나버리고 말았다. 오죽하면, 월드컵 최종예선 카타르전에서 2대3 패배후에 귀국한 대표팀 주장 기성용이 경기력과 관련된 기자 인터뷰를 받자마자 "감독님이 가장 첫번째로 책임을 지는건 축구에서 당연히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라는 인터뷰를 하였겠는가.[42] 현 대표팀 감독인 파울루 벤투와도 비교되는 부분이다. 벤투 역시 슈틸리케만큼은 아니어도 전술적인 부분이 뛰어난 감독으로 보긴 힘들지만, 벤투의 보수적인 이미지와 다르게 의외로 전술적인 소통에서 수용적인 부분이 있었고 이를 보좌해줄 코치진이 있었다는 게 결정적인 차이였다. 게다가 슈틸리케는 자신의 오랜 가까운 친구이자 및 경기전술적으로도 존재감이 미미하고 전문성이 검증조차 되지 않은 피지컬코치였던 카를로스 아르무아를 데려오는데 그쳤지만, 벤투 사단에 소속되어 있는 코치진은 모두 EFA 자격증을 갖고 있다. 경험과 커리어, 자격증 등 모든 면에서 검증이 된 전문가라는 점에서 슈틸리케와 벤투를 비교선상에 둔다는 거 자체가 벤투에게 엄청난 큰 실례이다. 무엇보다도 벤투는 당시 우승권에는 다소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유로 2012에서 포르투갈 대표팀을 4강에 올린 업적도 있을뿐더러, 코치진 역시 벤투의 능력을 인정하고 존중하였기에 오랜 시간동안 코치업무를 맡을 수 있는 것이다. 애초 감독의 그릇이 안되는 사람 밑에서 전문성 있는 코치진이 몇년동안이나 함께 동행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