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종
"사람들은 누구나 FC 바르셀로나와 같은 축구를 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바르셀로나 축구는 바르셀로나 선수들만 할 수 있는 플레이다. 선수가 다른데 그들과 같은 축구를 할 수는 없다. 나는 유행이나 이상을 쫓기보다 현실에 맞는 축구를 하려고 한다. 한국 선수들과 함께 할 때는 그들이 지니고 있는 장점을 파악하고 그 부분을 극대화시킬 수 있도록 노력한다. 잘하는 팀을 보고 따라하려고 하지 않는다. 현실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전술을 만들어 내는 것이 내 축구 스타일이다."
2015년 1월 6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축구팬들과 전문가들의 비평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결과로 증명해낸 성과왕이자, FIFA U-20 월드컵 8강과 28년 만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안겼다. 차기 국가대표 감독 후보로 까지 거론 될 정도의 젊은 명장이었지만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준비하던 도중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으면서 2015년 2월 5일, 감독직을 사임하고 투병하다가 2016년 9월 26일, 향년 52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2. 선수 경력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유공 코끼리에 입단하여 8시즌 동안 196경기에 출장, 26골을 기록하였다. 1996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전력보강 선수로 이적하여 창단 멤버가 된 그는 2시즌 동안 38경기 6골을 기록하며 선수 생활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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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팀 창단 정규리그 1호골을 넣은 선수이기도 하다.
3. 감독 경력
선수 시절보다 유소년 전임 지도자로 일하면서 축구 팬들에게 더 알려졌다.[1] 2003년 대한민국 U-15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며 첫발을 내디뎠다. 2004년 U-20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를 맡았다가 2007년에는 U-17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어 이듬해 열린 아시아 축구 연맹 U-16 선수권 대회에서 준우승을 거두며 FIFA U-17 월드컵 티켓을 따냈다. 2009년 FIFA U-17 월드컵에 나선 이광종 감독은 알제리와 멕시코 등 난적들을 연달아 꺾고 대한민국을 22년 만에 8강에 올려놓아 주목받았다.[2]
2010년에는 대한민국 U-20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2010년 아시아 축구 연맹 U-19 선수권대회에서 4강 진출을 거두며 FIFA U-20 월드컵 티켓을 따냈다. 콜롬비아에서 열린 2011년 FIFA U-20 월드컵에서는 팀내 핵심 선수였던 지동원과 남태희의 출전이 무산되었지만, 백성동의 활약과 함께 16강에 진출시켰으며 스페인과의 16강전은 승부차기까지 가는 엄청난 혈전을 보였다.
이듬해, 2012년 아시아 축구 연맹 에이스 문창진의 활약으로 U-19 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문창진은 터키에서 열린 2013년 FIFA U-20 월드컵 직전 허리 디스크로 참가하지 못했다. 또다시 에이스의 공백이 있었지만 류승우가 완벽히 메워주었고, 권창훈도 가세하여 16강에 올랐고 16강전 대회 우승 후보였던 콜롬비아를 승부차기 끝에 승리하며 2009년 대회 이후 4년 만에 대한민국을 8강에 올려놓았다. 8강전에서 이라크와 3:3 극적 무승부를 거두고, 승부차기에서 아쉽게 4:5로 패하며 4강 진출에는 실패하였다.
2013년 말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을 지휘하는 대한민국 아시안 게임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어,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28년 만에 대한민국을 무실점 7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달성하는 지도력을 선보였다. 이 성과를 인정받아 10월 15일 파주 NFC에서 개최된 제 7차 기술위원회를 통해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까지 대한민국 올림픽대표팀을 이끌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이광종호 참조.
2015년 2월 5일 개인 사정으로 감독직을 사임하였다.## 정식적인 사임 이유는 개인 사정이지만 건강문제로 귀국한 뒤에 사임 발표가 된지라 단순한 건강 문제일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예상이었고, 그 예상대로 '''급성 백혈병'''으로 밝혀졌다. 이로써 이광종 감독은 기나긴 투병 생활을 시작할 수밖에 없게 됐고 그 결과 계약이 해지되어 사임. 바로 신태용 국가대표팀 코치가 감독에 올라 대표팀을 이끌게 되었다. 대한축구협회에서는 이광종 감독의 계약이 해지되었어도, 그가 세운 공적을 기려 계속 지원하겠다고 했다.# 또한 이광종 감독이 투병 생활에서 돌아오면 다시 전담 지도자로 복귀시킬 계획까지 세우고 있단다. 다행히 병세가 많이 호전되었다고 한다. 잠시 퇴원했다가 추가 치료를 받을 예정이라고.
5월 15일,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축구 대표팀 선수들이 단체로 성금을 모아 협회에 전달하기도 했다.#1, #2
10월 15일 제53회 대한민국 체육상 시상식에서 지도상을 수상하였다. 백혈병 투병으로 인해 이운재 올림픽대표팀 골키퍼 코치가 대리 수상하였다. 이후 인터뷰에서 현재는 수술 후 퇴원하여 요양 생활 중이며, 성원해주신 국민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 반드시 현장으로 복귀할 것이라고 말했다. # '''하지만'''
4. 사망
하지만 호전되는 기미도 잠시,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어 안타깝게도 2016년 9월 26일 새벽 유명을 달리했다. 향년 52세. 전날 세상을 떠난 메이저리그 투수였던 호세 페르난데스와 지금의 골프를 만든 전설 아놀드 파머의 연이은 사망 소식에, 국내외 스포츠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서울삼성병원 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되었다.
빈소에 심상민, 황의조 등 청소년 대표와 아시안게임 대표 선수들이 조문을 갔다. 또 고 이광종 감독과 친분이 있었던 윤정환, 조진호[3] , 최문식 등 K리그 감독들도 조문을 갔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도 애도를 표했다.
5. 코칭 스타일
전술적으로는 4-2-3-1을 베이스로 하지만 4-2-4과 4-3-3을 병행해 가면서 유동적으로 운영한다.[4] 사실 이건 기본 베이스가 4-2-3-1이다 보니 점유율 위주로 가져가지만 숏 패스를 주로 가져가는 스타일이며 원톱이 누구냐에 따라 경기력 편차가 심하지 않은데 김신욱을 쓰나 이용재를 쓰나 득점력이 답답한 건 변함이 없다(...). 그렇다보니 공격력은 수비력에 비해 다소 떨어져 선수 개개인의 능력에 의존하는 편인데 그것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대회가 2012년 U-19 아시아 챔피언십이다. 당시 역대 최악의 골짜기 세대라는 말을 들은 대표팀인데 문창진 혼자서 팀을 멱살잡고 끌어올려 우승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대회였다.
하지만 연령별 대표팀을 이끌면서 국제 대회에 최고의 선수로 전력을 구상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원하는 축구를 보여주는데도 한계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무리하게 감독 개인의 전술색을 입히는 건 선수들 성장에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감안해주는 것도 맞을 것이다. 실제로 이광종 감독은 인터뷰에서 팀을 제대로 평가하여 가장 잘할 수 있는 축구를 해야 한다고 한 바 있다.
그래도 이광종 축구의 최대 강점을 꼽자면, 경기력과 재미는 그다지인데 성적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 당장 이광종호 항목을 보더라도 연령별 월드컵 본선 진출은 당연한 이야기고 본선에서도 조별리그는 100% 통과했다. 이 때문에 경기력이 막장이라도 이광종 감독을 향해 쉽사리 비난을 보내지 못하는 것. 그래서 지면 배로 욕 먹는 건 당연한 사실(...). 게다가 덕장 스타일이라 팀내에서 잡음 한번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또한 강점으로 꼽히는 부분. 그리고 사실 그 재미없다는 경기 스타일도 은근히 볼 만한 측면도 있다. 굳이 비유하자면 복싱에서 아웃복서 둘 붙여놓고 지루한 경기 끝에 판정까지 갔을 때 매니아층과 일반 시청자들의 차이랄까.[5] 어떻게보면 본래 고질적인 골결정력부족에 시달리는 한국축구에 가장 잘 맞는 스타일이었다고 본다.
또한 그가 맡은 유소년 대표팀은 '''10번의 한일전을 치렀으나 단 한 차례도 패한 적이 없다.''' 그래서 별명이 '''축구계의 이순신'''이었다고...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도 답답한 경기를 하긴 했지만 일본에게 8강전에서 KO 펀치를 날렸다.[6][7] 그리고 인천 아시안 게임 직후 열린 U-19 대표팀 김상호호가 중국과 무승부에 그치고 일본에게 패해 AFC U-19 조별리그에서 광탈하게 되자 네티즌들에게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여담으로, 이렇게 화려한 한일전 전적 끝에 유소년 지도자들은 한일전이 있을 때는 이광종을 벤치에 앉혀 놓기만 해도 된다는 농담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후배인 정정용 감독은 2019년 FIFA U-20 월드컵에서 일본과 맞붙게 되자 경기 전에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을 그에게 기도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기도가 정말로 통했는지, 후반전에 0:0으로 맞서던 상황에서 일본의 결정적인 슈팅이 정말로 아슬아슬하게 골대를 맞고 나가면서[8] 대한민국은 일본을 물리치고 8강에 진출, 준우승까지 차지하며 U-20 월드컵 역사상 최고 성적을 거두게 되었다.
[1] U-17 대표팀부터 시작해서 3년 정도마다 다음 연령별 대표팀을 맡은 걸 보면 축협에서 작정하고 차기 국대 감독으로 육성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적이 좋으니 이광종 감독이 가르쳤던 U-17세대가 다음 연령별 대표팀으로 넘어갈 나이가 되면 이광종 감독도 같이 올라가는 식으로 해서 이광종 감독에게 한 세대를 맡긴 뒤 이 세대가 성인 대표팀에 승선할만한 나이가 되면 국대 감독으로 선임하려는 의도였던 걸로 보이지만 이광종 감독이 급성 백혈병으로 별세해버리면서 실현되지 못했다.[2] 참고로 이 당시 주축 선수들 중 현재 국가대표로 성장한 대표적인 선수들이 손흥민과 김진수, 윤일록, 이종호다. 당시 주전 수비수였던 임창우는 대회 직전 부상으로 탈락했다.[3] 그러나 1년 뒤 조진호도 심장마비로 안타깝게 사망하였다.[4] 4-2-3-1이 밸런스 잡기에는 쉽지만 단점도 있다 보니 4-2-4 형태로 배치해서 보완한다든지, 수세시에는 4-3-3로 전환한다든지 그런 것들인데, 일반적인 운영이다.[5] 일반 시청자들에게 최악의 경기 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던 메이웨더 vs 파퀴아오 경기도 복싱 매니아들에게는 상당히 볼 만한 구석이 있었건 승부로 평가 받았다.[6] 장현수의 PK 결승골로 승리했는데, 골이 안 터져서 그렇지 소위 말하는 가둬놓고 패는 일방적인 양상이었다. 더구나 일본 수비가 간신히 걷어낸 골이 있었던 것도 생각하면 공격도 그리 못한 수준도 아니다. 거기다 일본 아시안 게임 대표팀이 21세 이하로 한국 선수들보다 어리다고 하지만, 리우올림픽을 보고 손발을 상당히 오래 맞춰 온 팀이다.[7] 일본은 2007년 FIFA U-20 월드컵 이후 현재까지 대한민국이나 이라크 등에 번번히 발목 잡혀 자력으로 U-20 월드컵에 못 나오는 중이다. 결국 2017년에 대한민국이 개최국 자동 출전으로 나가게 되면서 출전 성공.[8] 이 때 독립 투사들이 막아 주셨다, 이순신 장군께서 막았다 등 각종 드립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