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문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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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현재는 4선 국회의원(제17대, 제19대, 제20대, 제21대)으로서, 지역구는 충청남도 홍성군 · 예산군이고, 소속 정당은 국민의힘이다.
2. 생애
1947년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에서 태어났다.1962년 중학교 졸업시험을 막 끝내고 상경해 서울특별시 성북구 삼양동(현 강북구 삼양동)에서 매일 새벽 물지게를 졌다. 신문배달과 학원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1년 늦게 한영고등학교 야간반에 다녀 졸업하고, 건국대학교 농과대학을 졸업하였다.
2.1. 정치 활동
건국대학교 재학 시절인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종로구 선거구에 출마한 신민당 유진오 후보의 선거운동을 도우며 정치에 입문하였다.
13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입후보해 낙선했고 이후 민주당 소속으로 14대 총선에 출마하나 낙선, 15대 총선에서는 통합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또다시 낙선했다. 그 뒤 한나라당으로 16대 총선에 도전하나 또 낙선하고 만다. 기존 버전에서는 당적을 바꿨다고 되어있는데, 1995년의 통합민주당이 법적으로 1997년 신한국당과 합당하여 만들어진 것이 한나라당이라 당적 변경이라 하기는 어렵다.[4] 다만 청양, 홍성, 예산 등 충남 내륙 군지역의 민주당계 기반이 '''2018년 현재'''까지도 매우 열악하다는 것[5] 을 생각하면 민주당계 정당 및 그 지지자들 입장에선 아쉬울 따름. 홍문표 개인으로서도 안습했던 것이 15대 총선까지는 충남에 기반이 없던 민주당 타이틀로 도전하다보니 지역의 보수세 및 지역정당의 벽을 넘기 어려웠고, 16대 총선에서는 그래도 네임드 보수정당의 타이틀을 얻었지만 역시 강력한 지역정당을 넘어설 수 없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후보로 충청남도 홍성군-예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마침내 4번의 낙선 끝에 당선되었다. 이때는 탄핵 후폭풍이 작렬하던 시기여서 전 충청권 지역에서 한나라당이 궤멸, 유일하게 한나라당으로 당선된 사람이기도 했다.[6]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정계에 복귀하여 자유선진당을 창당한 이회창'''이 하필 홍문표의 지역구인 홍성·예산을 선택하면서 처참한 격차로 낙선한다.[7] 사실 이회창이 딱히 홍문표를 노린 건 아니고 그냥 '''선영이 있는 예산에서 출마'''한 거였다. 이후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을 역임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자유선진당 서상목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2015년 7월 황진하가 새누리당 사무총장에 임명될 때 제1사무부총장에 임명되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황진하가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사무총장직에서 물러나자 사무총장 대행직을 수행하였다.
12월 27일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바른정당에 합류했다.
2017년 5월 2일 다른 비유승민계 의원들[8] 과 함께 홍준표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바른정당 탈당계를 제출하고 자유한국당에 입당원서를 제출했다. # 5월 6일 홍준표 대통령후보가 당무우선권을 근거로 복당을 지시한 것을 두고 당내 작은 내홍을 겪다가 정우택 당대표 권한대행이 최종적으로 이를 승인하였다. 5월 12일 마침내 동반 탈당한 11명의 바른정당 탈당파 의원들과 함께 복당 절차가 완료되었다.
2017년 7월 6일부로 자유한국당 사무총장에 임명되었다. 그 이후, 친홍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그간 당내 계파 정치에는 좀처럼 참여하지 않는 모습이었는데 상당히 의외로 보여지고 있다.
2018년 제7회 지방선거에서 홍준표 대표가 이끄는 자유한국당이 대패를 당하면서, 본인은 당의 지역조직 유지를 성공했음에도 사무총장직을 사퇴했다. 이후 홍준표 대표가 다시 당의 비주류로 밀려나고서 본인도 지역구 당협위원장 자리를 박탈당하는 등 친홍계에 참가 했던 보복 아닌 보복을 당했다.
2019년 교통위원장 자리를 이어 받을 예정이었으나, 이를 두고 위원장 자리를 내줄 예정이었단 박순자 의원이 갑자기 자리를 줄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자 결국 교육위원장 자리를 이어 받았다. 이는 홍 의원과 박 의원 둘 다 지역구에 가장 중요한 교통 현안이 있어서였는데, 각각 서해선 서울 직결 문제, 신안산선 착공 문제였다. 결국 박 의원은 위원장 자리를 당 징계까지 받아가며 지켜내 신안산선 착공을 추진했고, 홍 의원은 국회 토론이나 국토부 항의를 통해 서울 직결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내어 결국엔 윈윈으로 끝이 났다.
2020년 지역구 최대현안인 혁신도시 문제를 해결해냈다. 대표 발의한 균형발전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드디어 설치 근거가 생긴 것. 21대 총선에 출마한다면 큰 호재가 될 사안이기도 하다.
21대 총선 재출마를 선언했다. 하지만 본인 지역구의 당협위원장 자리를 아직도 되찾지 못했다. 후보 공천 기간이 다가오자 홍 의원이 컷오프 될거라는둥, 타 후보가 전략공천될 거라는둥 소문이 있었지만 경선 지역으로 분류된 후 개인기 하나로 경선에서 승리하며 결국 공천을 받아냈다.
21대 총선 홍성/예산 지역구 미래통합당 후보로 확정되어 더불어민주당 김학민 후보와 맞붙게 되었다. 본인이 사실상 멱살 잡고 끌고 온 혁신도시 업적 덕에 손쉽게 당선될 것으로 보인다. 이완구 전 총리, 조부영 전 국회부의장이 홍문표 의원 지지 선언을 했다. 이후 당선에 성공하면서 4선이 되었다.
지지부진했던 내포신도시에 충남혁신도시를 유치함으로써 대전의 장철민, 박영순 의원과 함께 큰 정치적 이득을 보게 되었다.
3. 기타
- 같은 당의 홍일표 의원이 그의 8촌 동생이다.
- 태어난 뒤로 주소지를 홍동면에서 단 한 번도 바꾸지 않았는데, 본인은 이를 자신의 가장 큰 자산으로 생각한다고...
- 비박계로 꼽힌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직전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 이한구의 공천관리 업무에 반발해 사무총장 황진하와 함께 공천심사에 불참하는 등 친박계에 반기를 들기도 하였다.# 사실 정치 경력을 보면 계파 정치인이 아닌 지역구 정치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 왔으나, 홍준표 당정 들어 친홍으로 참여하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홍준표 대표가 자신이 살려 놓은 당을 다시 처참하게 말아먹으며 함께 고개를 숙여야 했다.
-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찬성인 입장을 보였으나 대통령 3차 담화 이후 새누리당의 4월 퇴진 6월 대선 당론을 지지하고 있다. #
- 2016년 1월 27일,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슬픔을 겪기도 했다.
- 프로필 기준 신장이 180cm으로,[9] 1940년대 출생자인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크다. 노화로 인해 키가 줄었다고 감안해도, 요즘 웬만한 남성들과 비교해보면 큰 편.
> 홍준표 대표는
> 문재인 대통령
> 표창감이다
> 문재인 대통령
> 표창감이다
- 권성주 바른미래당 대변인이 홍문표란 이름을 가지고 삼행시를 지은 적 있다. 홍문표가 "유승민 후보가 나와서 문재인 당선을 도왔다", "바른미래당이 대구시장을 내서는 안 된다" 등의 발언을 한 게 계기가 되었다. 권 대변인의 센스를 잘 보여주는 논평이다. 바른미래당 논평
- 출신지가 농어촌인 홍성군에서도 가장 농업이 발달한 지역중 한 곳인 홍동면 출신에,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서인지 정치인이 된 이후에도 농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덕분에 초선으로 17대 국회의원 당선 이후 대표적으로 농기계 임대 사업이나, 농어업 면세유법 등 농어촌 친화 법안을 많이 추진 했다. 다만 면세유법 추진 당시엔 노무현 대통령이 반대하는 갈등이 있었는데, 이를 농민 36만 명의 청원을 받아내는 방식으로 해결 했다. 이 방식은 시간이 흘러 홍 의원이 3선 의원이 된 20대 국회 시절 지역구의 최대 현안인 혁신도시 문제를 해결할 때도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지역민들의 서명을 받은 후 모든 의원실을 방문하여 이를 보여주며 법안 통과 협력을 호소 하는 방식이었다.
- 2018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을 묻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선언문 전체가 공개되지 않았다며 정부를 비난했다. 진행자인 김어준이 '인터넷을 통해서는 선언문을 누구나 볼 수 있다'고 반문하자 이번엔 인터넷을 못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냐는 반박을 하며 김어준과 설전을 벌였다.
- 지역구의 최대 현안인 혁신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당 의원, 도지사와도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이 충남/대전권 혁신도시 문제는 이해관계가 복잡히 얽혀있어 충남, 대전권 의원, 도지사, 시장들은 혁신도시 유치를 여야 할것 없이 염원 하는 모습이었고, 정부와 여당 지도부는 이를 못 마땅하게 바라보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이낙연 지사는 '혁신도시를 늘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라고 발언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홍 의원이 국회에서 충남, 대전 혁신도시 설치 근거 법안을 대표 발의하고 여야 의원들을 설득하여 마침내 2020년 국회에서 통과시켜 유치에 성공해냈다.
- 대북관은 언젠가 통일이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우리 국민들이 북한의 인민들에게 수확 방식, 수로 개설 방법 등 농업 방식을 전파하는 교류를 통해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통일을 바란다고 한다.
- 2020년 5월 22일 YTN 라디오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에서 논란의 중심에 있는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당선자를 이완용보다 더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홍문표 본인은 차기 당권에 도전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 2020년 8월 15일 사랑제일교회의 전광훈 목사가 총괄한 8.15 광복절 문재인 정부 규탄 집회에 참여했다.
4. 이력
4.1. 학력
4.2. 경력
- 국회의장 정무수석 비서관(85.6~87.10)
- 88올림픽 홍보 전문위원
- 민주동우회 간사장
- 한나라당 제2사무부총장(00.8~03.11)
- 한나라당 정치개혁 특별위원회위원(01.4~01.11)
- 한나라당 운영위원
- 한나라당 재해대책위원회위원
- 수도이전문제특별위원회위원
- 한국농어촌공사사장
- 한나라당 최고위원
- 새누리당 충남도당 위원장
-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
- 국회 태안유류피해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
- (사)국민생활체육전국생활체조연합회 회장
- 대한하키협회 회장
- 아시아하키연맹 부회장
- 제20대 총선 새누리당 공천관리위 우선단수추천소위 위원장
- 제18대 대선 새누리당 충남선거대책위원장
- 자유한국당 사무총장
-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장
5. 소속 정당
정계 입문 시기로 치면 제21대 국회의원 중 최고참이나 낙선을 많이 해서 2004년에 국회의원이 되었다. 때문에 정계 입문 시기에 비해 국회 입성 시기가 매우 늦다.
6. 선거 이력
7. 둘러보기
[1] 홍성군·청양군 선거구의 제16대 국회의원이다.[2] 예산군 선거구의 제16대 국회의원이다.[3] 남양 홍씨 당홍계 34세손 '杓'자 항렬이다.[4] 사실 민주당계 인사이지만 이때의 합당으로 어쩌다보니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으로 들어간 정치인이 꽤 있다. 빈민운동의 대부 제정구 의원이나 해직기자 출신 민주화운동가 이부영 의원(다시 열린우리당으로 합류), 장광근 등등. 제정구 의원은 1999년 작고했고 이부영은 이후 탈당해 열린우리당 창당에 합류했으며 장광근은 한나라당에 남아 국회의원이 되었다.[5] 특히나 예산군은 IMF 사태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보수정당이 불리한 상황에서 선거를 치른 제15대 대선과 제19대 대선에서도 보수정당이 승리했을 정도로 민주당계 정당에겐 사지인 지역이다.[6] 1년 뒤 아산 재보궐에서 한나라당 이진구가 당선되어서 충청권 유일의 한나라당 의원 타이틀은 반납하게 된다.[7] 홍성군에서는 53% 가량 득표하면서 선전했지만 예산군에서 이회창이 77% 가량을 득표하면서 완전히 밀렸다.[8] 장제원, 박성중, 여상규, 박순자, 이진복, 이군현, 김성태, 김재경, 김학용, 권성동, 홍일표, 황영철, 정운천[9] 181cm인 김무성과 비교[10] 신민주연합당과 신설 합당[11] 개혁신당(1995년)과 신설 합당[12] 신한국당과 신설 합당[13] 자유한국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14] 원래 새누리당 소속이었지만 2016년 말 불거진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새누리당 탈당해 2017년 1월 바른정당을 창당에 참여했지만, 2017년 5월 2일 바른정당을 탈당한 후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