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니우 올리베이라 주니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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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라질 국적의 축구 선수. 브라질에서는 그저 그런 수많은 축구 선수 중 하나였지만 K리그에 진출한 후 데얀 다미아노비치, 마우리시오 몰리나와 함께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평가받았으며, 전북 현대의 레전드로 팬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2. 커리어
브라질에서는 18세인 1999년에 프로데뷔를 했고 2003년에 K리그의 수원 삼성에서 김호 감독이 영입을 하여 '에니오'라는 등록명으로 K리그에 데뷔했으나 그다지 좋은 활약은 하지 못하고[1] 한 시즌만에 계약만료 후 다시 브라질로 돌아갔었다. 이후 브라질에서 3년동안 무수한 팀을 전전하다가 2007년에 당시 K리그 대구 FC감독이던 변병주의 스카웃을 받아 4년만에 K리그로 다시 복귀하게 된다. 당시 변병주 대구 감독의 전술은 수비는 전혀 돌보지 않고 무조건 '공격 앞으로'만 외치는 극단적인 형태의 공격 축구를 표방했는데[2] 에닝요는 당시 대구의 스트라이커였던 이근호와 좋은 호흡을 보이며 이 공격 축구의 선봉장이 되었다.
2008년 시즌 종료 후 대구와의 계약이 종료된 후 갈 곳을 찾다가 당시 전북 현대 최강희 감독의 부름을 받고 대구의 팀 동료였던 진경선, 하대성과 함께 전북으로 이적했으며 2009년에 25경기에서 7골 10도움이라는 준수한 성적으로 전북의 창단 이후 첫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2010년에는 전년도에 비해 약간 부진에 빠진 이동국을 대신해 팀의 주포가 되어 27경기 16골 7도움을 올렸으며 2011년에는 26경기 11골 5도움으로 팀의 두번째 우승을 이끌었다.
2010년 경남전에서는 K리그에서 135경기만에 40-40 클럽에 가입했는데 이는 역대 최단 기간에 세운 기록이며 외국인 선수 중에서는 2003년 수원의 데니스에 이어 역대 두번째로 가입한 기록이다.
2011년 11골 5도움으로 이동국 다음으로 높은 공격포인트를 기록했다. 특히 챔피언 결정전은 1,2 차전 합계스코어 4-2인데 혼자서만 3골을 넣으며 캐리했다. 전북팀에 대한 애정을 보이는 선수이며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당시 박원재 발을 밟은 알사드 선수에게 아무 제재가 없자 달려가 그 선수를 넘어뜨리며 복수하고 경고를 받았다. # 가슴을 맞았는데 다리를 붙잡고 넘어지는건 이뭐병?
2012년 6월 17일 대구전에서 도움을 추가하며 K리그 역사상 6번째로, 또한 177경기 역대 최단기록을 세우며 50-50 클럽에 가입했다. 이로써 30-30 클럽, 40-40 클럽, 50-50 클럽의 모든 역대 최단기록을 갈아치우는 위업을 달성.
2013년 4월 27일 포항전에서 도움을 추가하며 K리그 역사상 2번째 60-60 클럽 가입자가 되었다. 이번에도 역시 신태용의 342경기보다 월등히 빠른 207경기만에 60-60 클럽을 달성. 이제는 K리그 역사상 최초의 70-70 클럽을 향하고 있다. 득점은 이미 80골을 돌파했고 어시스트는 6개만을 남겨두고 있어 가입은 무난할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리옹과의 친선경기가 끝난 직후 중국 창춘으로 이적이 발표되었다. 이미 메디컬 테스트를 마쳤고 리옹전에 참가하지 않은것도 계약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로서 전북은 핵심 선수 한명을 잃게 되었다. 그의 자리를 레오나르도로 메꾸고 있기는 하나 에닝요만큼은 아니라는 평이 대부분.
2014년 다시 전북으로 복귀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결국 진짜로 전북으로 컴백하게 되면서[3] 2015시즌엔 다시 녹색 독수리 에닝요를 볼수 있게 된 전북 팬들이 기뻐하고 있다. 일단, 이승기의 입대로 공격 미드필더 자리에 마땅한 자원이 없었는데 에닝요가 다시 돌아오게 되면서 이승기의 자리를 에닝요로 메꿀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어시스트 6개 남은 70-70에 다시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입단식 사진(위의 사진)을 보고 타 팬들은 에닝요가 이제 나이 먹고 살쪘으니 이전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두바이 전지 훈련 기간 동안, '''5경기 4골'''을 넣으며 여전히 기대를 하게 만들고 있다. 애초에 위 각주만 봐도 2014 시즌에 못 해서 전북 온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였지만 막상 시즌에 들어서고 나서 팬들의 평가는 '''이제는 레오나르도가 에닝요보다 낫다'''. 아무래도 나이를 숨길 순 없는 모양이다.
2015년 7월 7일, 에닝요는 전북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짐을 싸서 클럽하우스를 떠났다. 이유는 시즌 개막 이후 17경기에서 1골 2도움을 기록하며 예전만 못한 기량으로 보이고, 전북은 에닝요의 기량을 믿고 컨디션을 끌어올리려고 배려를 해주었는데 에닝요는 자신의 부진한 모습에 계속 답답해했고 팀을 떠나는 것이 최강희 감독과 구단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여겨 구단도 에닝요를 설득하려 했지만 본인이 그럴 마음은 없는 것 같아 아무래도 상호 해지로 계약을 끝낼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전북과 상호 해지에 합의하여 7월 8일 광주FC전 하프타임에 작별식을 했는데 자신이 작성한 편지를 장내아나운서가 대독했고 끝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이며 전북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다.# '녹색 독수리'의 대체자는 전북에서 전성기를 함께 보낸 루이스로 확정되었다.
이후 팬들의 예상보다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브라질 2부리그인 세리B의 세아라 SC에 합류하였다. 그러나 세아라에서는 1경기만 출전했고, 결국 2016년 1월 19일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
3. 플레이 성향
윙과 공격형 미드필더를 모두 소화할 수 있으며 브라질 선수 특유의 좋은 개인기와 스피드가 돋보인다. 여기에 킥력이 좋아 크로스와 중거리 슈팅도 대단히 정교했으며 프리킥 능력은 리그 최정상급으로 리그 통산 총 17개의 프리킥 골을 성공시키며 수원 삼성의 염기훈과 함께 프리킥 골 공동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다만 더운 곳 출신이라 그런지 날씨가 추워지면 활약이 뜸해지는 경향이 있어서 K리그 기준으로 리그 초반인 3~4월달에는 조용하다가 날이 더워지는 5월부터 8~9월까지는 좋은 활약, 날이 추워지는 11월즈음가면 또 다시 조용해지는 경향이 있다.
4. 대한민국으로의 귀화 및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발탁설
귀화설이 본격적으로 나오게 된 것은 2011년 전북이 두번째 우승을 하고 2012년에 최강희 감독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대표팀에 에닝요같은 선수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선수가 없다.'라고 인터뷰를 하고 나서부터로 이후 에닝요 역시 대한민국 국적으로 귀화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고 밝혔고## 2012년 5월 8일에는 대한축구협회에서 에닝요의 특별귀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만약 특별귀화를 하게 되면 2012년 6월부터 시작되는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최종 1차 예선에서부터 에닝요가 태극마크를 달고 경기에 뛸 수도 있게 된다.
실력으로 따지면 역대 외국인 선수중 탑으로 현 한국 국가대표들은 가볍게 뛰어넘는 수준이고 이전에도 마시엘, 샤샤 등 K리그에서 특급 활약을 보인 외국인 선수들을 귀화시켜 대표팀으로의 발탁을 고려한 적은 몇번 있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간 것에 비하면 에닝요의 건은 협회와 대표팀 감독, 해당선수 모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주목할만하다.
다만 축구팬들의 반응은 크게 갈려 어떻게 외국인이 대표팀에 뛰게 하느냐는 반대하는 입장과 K리그에서 크게 활약하는 선수를 대표팀에서도 볼 수 있게 되었다며 환영하는 입장으로 나뉘고 있다. 그런데 일단 최강희 감독부터가 에닝요의 발탁을 상당히 크게 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귀화에 성공한다면 대표팀에 발탁될 가능성이 높다.
에닝요의 대표팀 발탁을 반대하는 이들은 에닝요가 한국에서 생활한지 5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하는 것을 보아 한국어를 배우려는 의지도 없고 한국에 대한 애착심이 별로 없어 보이는 것으로 보인다며 에닝요의 귀화에 대한 진정성에 의문을 가지고 있다.[4] 또 2012년 기준으로 31세라는 비교적 많은 나이 또한 에닝요의 대표팀 발탁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가 되고 있다.
결국 2012년 5월 22일, 대한체육회에서 에닝요의 특별귀화심사요청을 기각하여 에닝요의 대한민국 국적으로의 귀화와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 발탁은 사실상 무산되었다.
5. 기타
에닝요의 브라질 본가는 중산층으로 꽤 잘 사는 편이라 카더라. 에닝요의 아버지 역시 축구인으로 2006년 에닝요가 무리시 EC에 뛸 때 팀의 감독이었다. 처음 에닝요의 한국 귀화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때 집에서는 반대했는데 에닝요가 설득해서 허락을 받아냈다고 한다. 에닝요의 장인도 중소도시 시장이라고 하는데 에닝요의 부인이 본국으로 돌아갔을때도 한국에서 하던대로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자 정말 좋다며 자기 시에 도입해야겠다고 했다는 일화도 있다.(...)증거[5]
소속팀 전북 현대의 팬들로부터는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선수 중 한 명이며 전북 팬덤 내에서의 별명은 녹색 독수리. 2020년 3월 25일 업로드된 전북 현대 축구톡톡 - 다시 보고 싶은 선수에서 팬투표 3위에 선정되었다. 참고로 2위는 2017 K리그 MVP, 대망의 1위는 전북 역사상 최고의 용병이다.
성남에서 뛰던 호주 출신 외국인 선수인 사샤와 사이가 별로 안좋았다. 전북과 성남이 경기를 하면 에닝요와 사샤간에 시비가 자주 붙었다..
6. 관련 문서
[1] 다만 당시 수원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안양 LG 치타스와의 경기에서 안양 벤치에 캐논슛을 날리는 기행을 선보이면서 K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임팩트를 남겼다.[2] 2008 정규리그 26경기에서 2008 K리그 우승팀인 수원과 동률인 46득점이라는 무지막지한 공격력을 보여줬지만 실점부문에서 58점이라는 독보적인 실점률로 11위에 그쳤다.[3] 2013년에는 팀에 적응 못해 헤맸지만 2014년에는 팀내 최다골(9골)을 기록하며 활약했기에 못해서 쫒겨오거나 한건 아니다. 창춘이 치안이 불안해 가족이 불안해한다는 경기 외적 요소가 작용했다고 한다. 창춘구단과는 좋게 이별했다.[4] 에닝요의 귀화를 찬성하는 이들은 예전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던 브라질 출신 선수들인 루이 라모스와 와그너 로페스를 예로 들기도 하지만, 라모스와 로페스의 경우 귀화 시점에서 J리그에서만 10년 이상을 뛴 데다 일본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했고 은퇴 후에도 일본에 정착해서 살 만큼 일본에 대한 애착심이 강했다. 오로지 월드컵 출전만을 목표로 귀화를 추진한 에닝요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케이스.[5] 前 MBC 스포츠플러스 축구 캐스터 이명진의 트위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