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정치
1. 개요
이라크의 정치에 대한 문서.
2. 역사
2.1. 이라크 왕국
2.2. 아흐마드 하산 알 바크르 정부
바트당이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고 바크르 정부가 수립되었다. 바크르는 대통령 자리에 앉았는데, 한국의 국가정보원장에 해당하는 정보부장을 후세인한테 넘겨줬다. 후세인은 이 때 정보부장을 하면서 경쟁 정치인들의 약점을 잡고, 농업부 장관을 하면서 이라크의 농지개혁을 성공적으로 시행한다. 그 이후 후세인은 농지개혁을 성공한 이후, 석유장관에 올라 영국 등 서방국가가 소유한 이라크 석유기업들의 국유화 조치를 했는데, 후세인은 석유기업들의 세세한 부분까지 파악하고 국유화 이후 소련, 프랑스, 폴란드 인민 공화국 등에 미리 석유 수출계약을 해놓았다. 때문에 영국, 미국 등이 후세인을 비난했지만 후세인은 비교적 손쉽게 국유화 사업을 마무리짓는다. 이로써 바크르 정부에서 석유장관을 한 후세인은 이라크 부통령에 취임했고, 이라크의 문맹률을 급격히 떨어뜨리고 대학 제도를 정비하여 이라크 교육 현대화를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각종 사업을 성공적으로 한 후세인을 보면서, '''군 경력이 하나도 없던 후세인'''한테 이라크 군부가 충성하며 바크르는 후세인에 의해 '''실각당했다'''.
2.3. 사담 후세인 정부
사담 후세인의 바트당 전당대회 자백문서 읽기 쇼.
이라크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계기. 능력 뛰어난 후세인은 정권을 잡으니까 타락하기 시작한다. 자기 심복들을 바트당 전당대회때 전당대회장에서 고문으로 조작한 자백문서 읽기 쇼로 '''모조리 토사구팽'''[1] 하고, 절대 권력을 손에 넣었다. 후세인은 이란 이슬람 혁명이 터지자, 이란에 비해 절반도 안 되는 국력인 이라크의 국력 현실에 위기감을 느끼고, 이란의 시아파 혁명을 차단하고 겸사겸사 영토도 늘리고 이란한테 전쟁배상금도 뜯으려고 이란-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 전쟁 초반에는 기습을 한 이라크군이 우세했지만, 이란군이 반격하고 기본적인 물량 차이가 워낙 압도적이어서 전쟁은 이후 이란군한테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후세인은 나라 멸망의 위기감을 느끼고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방국가나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모로코 같은 친미 성향의 아랍 왕국들의 군사 지원과 외교적 지지까지 받아내고, 이란 내에 폭탄테러를 일으키고 이라크 국경에서 싸우는 등 간신히 이란군의 반격을 저지했다.
후세인은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얻은 게 하나도 없자, 1990년 쿠웨이트를 침공해서 병탄했다. 그러나 미국 등 다국적군이 1991년 걸프 전쟁을 일으켜 침공하여 사담 후세인은 망했어요... 걸프 전쟁의 참패로 후세인은 정치적 위기에 몰렸지만 반발하는 인원들을 대숙청하여 권력을 유지했다.
그리고 2001년, 9.11 테러가 터지자 사담 후세인은 '''"미국이 테러를 당한 것은 알라의 천벌"'''이라는 개드립을 TV 방송으로 내보냈고 미국 조지 W. 부시의 '''분노 게이지를 폭발시켰다'''.
2.4. 이라크 전쟁
2003년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다. 그리고 이라크는 망했어요... 후세인은 조지 W. 부시가 자기를 죽이러 온다는게 명백해지자 대통령직에서 사퇴하고 이라크 전역에서 도피행각을 했으나 결국 미군에 잡혀서 교수형으로 처형되었다.
이후 미국은 이라크에 군정을 실시하다가 사실상 반속국인 이라크 정부를 만들었다.
2.5. 누리 알말리키 정부
2.6. 하이다르 알 아바디 정부
2.7. 아딜 압둘 마흐디 정부
2018년 이라크 국회 총선이 시행되었다. 여기서 무려 12개의 정당에 원내에 진입하며 연정 구성이 죄다 무산되었다. 결국 12개 정당 중 8개 당이 합의하여 무소속인 아딜 압둘 마흐디를 수상으로 세우고 신정부가 탄생했다. 2018년 5월 12일에 총선을 했는데 2018년 10월 25일 들어서야 내각 합의가 될 정도로 엄청 오래 걸렸다.
2019년 10월에 벌어진 대규모 시위에서 결국 사퇴를 밝힌다고 하며, 조기 총선도 치른다고 한다.#
3. 선거
사담 후세인 바트당 정부가 무너진 이후 미국 군정에 의해 의원 내각제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따라서 이라크는 국회 총선거가 실질적으로 정권을 좌우한다. 아직 나라가 안정기로 접어든게 아니다 보니 총선 일정이 비정기적이다. 원칙적으로는 4년에 한 번이지만 수상한테 의회해산권이 있어서, 일부 의원 내각제 국가들처럼 선거가 자주 열리는 편이다. 내각불신임결의로 인한 총선은 거의 없다.
2005년 미국에 의해 내각제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 지방선거 역시 시행되고 있다. 각 주 별로 시행하고 주 밑의 시, 군 단위 지방선거는 2020년부터 시행한다는데, 사상 처음으로 주, 시-군, 읍-면-동 단위까지 선출직으로 선출한다고 한다.
4. 입법부
[image]
이라크 신 국회의사당 조감도. 2019년 12월 준공 예정이다. 출처
사담 후세인 정부 시절 쓰던 이라크 국회의사당은 2003년 이라크 전쟁 때 미국 공군의 폭격으로 박살났다. 그리고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군정 때 임시의사당을 건축해서 2019년 9월 지금까지 사용중이다. 2011년 신 국회의사당을 건축하는 안건이 이라크를 통과했고, 2014년 건축 조감도가 나온 후 공사중이다. 이라크 내전으로 인해 바그다드가 ISIL한테 함락 위기도 겪는 등 공사가 순탄치 않았지만, 2017년 내전이 대부분 마무리되고 공사를 재개, 2019년 준공 후 입주 예정이다.
5. 행정부
사담 후세인 정부까지는 대통령 중심제였고 이 대통령을 이라크 국회에서 뽑았으나, 이라크 전쟁 이후로는 의원 내각제이다.
6. 사법부
7. 지방자치
나라가 혼란스러워서 지방자치제도가 유명 무실했다. 중앙정부는 지방을 통제할 능력이 없고 지방에서는 쿠르드족같이 강한 소수민족들도 있고 시아파, 수니파 갈등도 있어서... 이라크 지방정치는 이라크 전쟁 이후 혼란기를 오래 겪었지만, 2020년 4월 전국적인 새 지방선거를 시행할 예정이다. 이번 선거로 인해 제대로 지방행정도 안정화할 수 있을 지 지켜봐야 할 듯.
8. 기타
1958년에 군부 쿠데타로 폐지된 왕정의 복고를 주장하는 군주주의 운동도 소수이지만 존재하고 있으며, 후세인 정권 실각 후인 2005년에 왕정복귀와 1958년 군주제 폐지 이후 영국에 망명 중인 하심 구 왕가 직계 자손의 이라크 귀국 허용[2] 을 주장하던 하심 구 왕가의 방계 후손이 국회의원 후보자로 선거에 출마한 적도 있었다.
[1] 사담 후세인의 최측근이자, 바크르 대통령을 설득하여 사퇴시킨 아드난 함다니 재무장관까지 숙청해서 저승으로 보내버렸다. 그리고 후세인은 함다니의 유족한테 새로운 집을 만들어주고, 아드난 함다니의 여동생인 니달 알 함다니를 3번째 부인으로 맞이하는 기획력을 선보인다.[2] 혁명으로 왕정이 폐지된 이후 서방 등 국외로 도주한 팔라비 구 왕족들을 정치범 취급하며 귀국 시 사형과 같은 처벌을 현재까지 굽히지 않는 등 구 왕가가 모국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있는 이웃나라 이란과는 달리 이라크는 왕정 폐지 이후 쿠데타와 전쟁 등으로 정권이 여러번 뒤엎어지는 정치적 혼란을 경험한지라 구 왕가의 귀국의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있다. 일단 현재 이라크 정부는 망명 중인 하심 구 왕가가 귀국한다면 귀국 이후에도 처벌하지 않고, 구 왕가 사람들에 대한 신변 안전도 보장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