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이 카즈히사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이사 GM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No.99
이시이 카즈히사 (石井一久)
'''생년월일'''
1973년 9월 9일
'''국적'''
일본
'''출신지'''
지바현 치바시 와카바#s-4
'''출신학교'''
도쿄 학관 우라야스 고등학교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91년 드래프트 1순위
'''소속팀'''
'''야쿠르트 스왈로즈 (1992~2001)'''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02~2004)
뉴욕 메츠 (2005)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2006~2007)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2008~2013)
'''지도자'''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감독 (2021~ )
'''프런트'''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이사 GM (2018~ )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역대 감독'''
미키 하지메
(2020)

'''이시이 카즈히사'''
'''(2021~)'''

현직
1. 소개
2. 선수 경력
2.1. 일본프로야구 1기 시절
2.1.1. 야쿠르트 시절
2.2.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시절
2.2.1. LA 다저스 시절
2.2.2. 뉴욕 메츠 시절
2.3. 일본프로야구 2기 시절
2.3.1. 야쿠르트 복귀
2.3.2. 세이부 시절
3. 투구 스타일
4. 은퇴 이후
5. 기타
6. 연도별 성적


1. 소개


前 일본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야구 선수. 2021년부터 일본프로야구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이사 GM 겸 감독을 맡는다.

2. 선수 경력



2.1. 일본프로야구 1기 시절



2.1.1. 야쿠르트 시절


도쿄 학관 우라야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1년에 열린 일본프로야구 신인선수 선택회의에서 1순위로 야쿠르트 스왈로즈에 입단했다. 원래는 축구 선수가 하고 싶었는데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프로야구 선수가 됐다고.#
데뷔 첫 해부터 일본시리즈 3차전에 선발 투수로 오르는 등 큰 기대감을 얻었다. 1993년 8월 3일 한신 타이거스를 상대로 프로 첫 승리를 기록했고, 1995년부터 붙박이 선발 투수로 뛰면서 팀의 중심 투수로 성장한다. 1997년 시즌 중반에 어깨에 부상을 입어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합류해 재활 훈련을 받았고, 구단으로 복귀해 다시 뛰다가 9월 2일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전에서 무안타 4사사구를 기록하며 '''일본프로야구 역대 76번째 무안타 무득점 경기'''[1]를 기록했다. 해당 시즌에 야쿠르트 스왈로즈는 일본시리즈 우승을 일구어내고 이시이 본인도 일본시리즈 우수 선수로 뽑히는 겹경사를 맞았다. 1998년에는 탈삼진 1위, K/9 1위,[2], 2000년에는 최다 탈삼진상과 최우수 평균 자책점상을 수상했다.

2.2.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시절



2.2.1. LA 다저스 시절


소속팀 야쿠르트가 센트럴리그 우승과 일본시리즈 우승[3]을 차지한 2001년 시즌이 끝나고 MLB 도전을 선언하는데, 하필이면 9.11 테러가 일어나는 바람에 잠시 MLB행을 중단한다. 그러다가 2002년 1월 7일LA 다저스포스팅 시스템에 입찰해 단독 협상권을 따냈고, 결국 이시이는 LA 다저스와 3년 1230만 달러의 계약을 맺고 자유계약으로 입단하며 노모 히데오와 한솥밥을 먹게 됐다.
4월 6일에 열린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홈 경기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보여 5⅔이닝동안 2피안타 3볼넷 10탈삼진을 기록하며 승리 투수가 됐다. 시즌이 개막한 뒤로 처음 여섯 경기에서 5승 무패를 기록하며 4월 내셔널 리그 이달의 신인 선수로 뽑혔다. 전반기에만 11승을 올려 올스타전에도 뽑힐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6월부터 차츰 부진하기 시작하며 올스타전과 멀어졌고, 설상가상으로 9월 8일에 열린 휴스턴 애스트로스전에서 브라이언 헌터가 친 타구에 얼굴을 맞아 병원으로 이송돼 응급 수술을 받았다. 이시이는 두개골 균열 골절을 진단받아 뼛조각을 제거하고 작은 티타늄판을 이식했는데, 간발의 차로 큰 혈관의 손상과 과다 출혈을 피했다고 할 정도로 큰 부상을 입어 그대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그래도 내셔널 리그 올해의 신인상 투표에서 4위를 차지하며 좋은 인상을 남겼다.[4]
2004년 시즌에는 최희섭과 한솥밥을 먹게 됐다. LA 다저스는 디비전 시리즈에 나갔지만 이시이는 명단에서 제외됐다. 이시이는 2003년과 2004년 시즌에서도 초반부에는 잘 나가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퍼지는 문제점을 드러냈는데, 2002년부터 2004년까지의 기록을 살펴보면 올스타 브레이크 전에는 29승 15패 평균자책점 3.50을 기록하다가 올스타 브레이크 뒤에는 7승 13패 평균자책점 5.77을 기록했다. 또한 제구력에서도 문제점이 드러났는데 473이닝을 던지는 동안 305개의 볼넷을 허용했고,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내셔널 리그에서 볼넷을 가장 많이 허용한 투수 5위 안에 항상 들었다.
2004년 시즌이 끝난 뒤에는 LA 다저스와 뉴욕 양키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사이의 삼각 트레이드[5]로 랜디 존슨과 함께 뉴욕 양키스로 이적할 뻔했지만 LA 다저스가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고 트레이드 직전에 이를 무르는 바람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2.2.2. 뉴욕 메츠 시절


2005년 3월 이시이는 제이슨 필립스와 트레이드뉴욕 메츠에 입단하며 서재응구대성, 마쓰이 가즈오 등과 동료가 됐다. 그러나 왼쪽 무릎에 부상을 입으며 부상자 명단에 들기도 하고 마이너 리그로 강등되기도 하는 등 갖은 고생을 했다. 2005년 시즌에 3승 9패에 5.14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자 뉴욕 메츠는 12월에 이시이를 방출했다.

2.3. 일본프로야구 2기 시절



2.3.1. 야쿠르트 복귀


2006년 1월 20일 이시이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로 복귀했다. 복귀 이후 붙박이 선발 투수로 활약했으며, 2007년 5월 17일나고야 돔에서 열린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 일본프로야구 사상 48번째로 1500탈삼진을 달성했다.
2007년 시즌이 끝난 뒤 FA권을 행사했다.

2.3.2. 세이부 시절


2007년 11월 22일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2008년 3월 29일에 열린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경기에서 일본프로야구 통산 100승을 일구었다. 이 시즌에도 초반에는 다승왕 후보로 뽑힐 만큼 출발이 좋았지만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일본시리즈에서도 선발 투수로 올라왔으나 패전 투수가 됐고, 이후론 구원 투수로 등판했다. 결과적으론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긴 했다.
2011년 8월 7일에 열린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경기에서 통산 2000탈삼진을 달성했다. 특히 1967⅔이닝만에 이루어냈는데, 이는 당시 일본프로야구 최고의 속도였다. 다만 이 시즌에는 선발 투수로서 활약이 미진해 시즌 후반부터는 구원 투수로 기용됐다.
2013년엔 어깨 부상으로 고전했고, 결국 9월 24일에 선수 은퇴를 선언했다.

3. 투구 스타일



데뷔 시즌이던 1992년의 투구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활약하던 2008년의 투구폼.
선수 시절 초반에는 최고 156km/h에 이르는 패스트볼과 변화가 큰 슬라이더삼진을 잡아내는 전형적인 파워 피처였고, 후반에는 구속은 낮아졌지만 커브, 체인지업, 투심 등 다양한 구종들을 추가하며 기교파 투수로 변신해 삼진을 잡아냈다.
다만 불안한 제구력이 고질적인 문제점이었다. 일본프로야구 통산 폭투 2위(115폭투) 기록이 있으며, 다저스 시절 팀메이트였던 노모 히데오(일: 1990~1993, 미: 2003)와 함께 일본프로야구(1998, 99)와 메이저리그(2002) 모두에서 볼넷왕에 오른 투수라는 진기록을 갖고 있다.

4. 은퇴 이후


선수 은퇴 이후 구단 경영을 목표로 경영을 배울 목적으로 요시모토 흥업에 계약 사원으로 들어갔다. 계약 조건은 일반 고졸 직원과 같다고 한다. 동시에 후지 TV닛폰 방송에서 해설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2015년 4월 29일다저 스타디움에서 열린 LA 다저스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경기에서 시구를 했다.
2018년 9월 1일호시노 센이치의 후임으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GM으로 취임했고 2020년 11월 12일 1군 감독직도 동시에 맡게 됨에 따라 이사 GM 겸 감독으로 불리게 되었다.

5. 기타


이시이가 MLB 무대에서 활약하던 2000년대 초반에는 박찬호김병현, 김선우, 서재응 등의 한국인 선발 투수들도 많아서 이들의 비교 대상이 되곤 했다.
최훈의 MLB 카툰에서 이시이를 다룬 적이 있다.#
NPB로 돌아온 후에는 이승엽의 천적 투수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6]

6. 연도별 성적


  •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2
야쿠르트
12
28
0
0
0
-
4.18
23
4
17
22
13
13
1.43
1993
19
59 ⅓
3
1
0
0.750
4.70
48
8
38
66
32
31
1.45
1994
54
108
7
5
0
0.583
4.08
92
11
77
98
56
49
1.56
1995
26
153
13
4
1
'''0.765'''
2.76
112
14
77
159
49
47
1.24
1996
8
31
1
5
0
0.167
5.23
28
6
22
26
19
18
1.61
1997
18
117 ⅔
10
4
0
0.714
1.91
73
5
50
120
28
25
1.05
1998
28
196 ⅓
14
6
0
0.700
3.30
149
12
'''105'''
'''241'''
78
72
1.29
1999
23
133
8
6
0
0.571
4.80
123
16
'''71'''
162
75
71
1.46
2000
29
183
10
9
0
0.526
'''2.61'''
137
15
73
'''210'''
54
53
1.15
2001
27
175
12
6
0
0.667
3.39
135
18
82
173
74
66
1.24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2
다저스
28
154
14
10
0
0.583
4.27
137
20
'''106'''
143
82
73
1.58
2003
27
147
9
7
0
0.563
3.86
129
16
101
140
72
63
1.56
2004
31
172
13
8
0
0.619
4.71
155
21
98
99
97
90
1.47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5
메츠
19
91
3
9
0
0.250
5.14
87
13
49
53
59
52
1.49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6
야쿠르트
28
177 ⅔
11
7
0
0.611
3.44
177
16
59
170
82
68
1.33
2007
28
166 ⅔
9
10
0
0.474
4.16
156
'''21'''
49
163
'''90'''
'''77'''
1.23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8
세이부
25
135 ⅓
11
10
0
0.524
4.32
150
16
40
108
78
65
1.40
2009
22
130
9
9
0
0.500
4.32
113
18
67
131
71
62
1.38
2010
18
104 ⅔
9
6
0
0.600
3.70
105
10
34
93
50
43
1.33
2011
23
117
6
9
0
0.400
4.31
122
7
32
94
61
56
1.32
2012
24
132 ⅓
10
5
0
0.667
3.33
126
14
44
74
57
49
1.28
2013
7
5 ⅓
0
0
0
-
6.75
5
2
4
5
4
4
1.69
<color=#373a3c> '''NPB 통산'''
(18시즌)
<color=#373a3c> 419
<color=#373a3c> 2153 ⅓
<color=#373a3c> 143
<color=#373a3c> 103
<color=#373a3c> 1
<color=#373a3c> 0.581
<color=#373a3c> 3.63
<color=#373a3c> 1874
<color=#373a3c> 213
<color=#373a3c> 941
<color=#373a3c> 2115
<color=#373a3c> 971
<color=#373a3c> 869
<color=#373a3c> 1.31
<color=#373a3c> '''MLB 통산'''
(4시즌)
<color=#373a3c> 105
<color=#373a3c> 564
<color=#373a3c> 39
<color=#373a3c> 34
<color=#373a3c> 0
<color=#373a3c> 0.534
<color=#373a3c> 4.44
<color=#373a3c> 508
<color=#373a3c> 70
<color=#373a3c> 354
<color=#373a3c> 435
<color=#373a3c> 310
<color=#373a3c> 278
<color=#373a3c> 1.53


[1] 여담이지만 이때 1이닝 남겨두고 자진해서 내려가려고 했었다고 한다. 흠좀무[2] K/9이 무려 '''11.047'''개로 이는 2019년 센가 코다이가 경신할 때까지 규정이닝 만족 투수로서는 NPB 단일시즌 K/9 1위 기록이었다.[3]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의 구단 사상 마지막 대권 도전이었다. 킨테츠는 이후 2004년 해체되고 오릭스에 합병된다.[4] 이 해 내셔널 리그 올해의 신인상은 콜로라도 로키스제이슨 제닝스에게 돌아갔다.[5] 숀 그린+α(LAD) ↔ 랜디 존슨(ARZ), 랜디 존슨+이시이 가즈히사(LAD) ↔ 하비에르 바스케스+α(NYY)[6] 제구력 안 좋고 큰 변화를 보이는 슬라이더가 결정구인 파이어볼러 좌완이라 커리어 내내 좌타자들에 강한 모습을 보였다. 커리어에 분명 클래스 차이가 있지만, 투구 스타일이 이혜천처럼 좌타자들 괴롭히기 딱 좋은 형태였다. 메이저 진출 당시에는 '일본의 랜디 존슨'이란 설레발도 들어본 적이 있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