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롤스
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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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알려진 롤스의 사진.
40년 동안 '정의' 한 주제만을 파고든 20세기의 위대한 정치철학자 중 하나이며 이미 고전의 반열에 든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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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윤리학자이자 정치 철학자이다. 20세기 중반까지 언어적, 개념적 분석에 치중하는 분석 철학(analytic philosophy)이 유행하던 영미 철학 지형에 『공정으로서의 정의(1958)』와 『정의론 (1971)』[3] 이라는 걸출한 정치철학 텍스트를 발표하면서 윤리학, 정치철학과 같은 규범적 논의를 부활시킨 일등 공신이라는 평을 받는다. 실제로 롤스가 정의론을 발표한 후 롤스의 프로젝트를 옹호하는 로널드 드워킨 같은 걸출한 자유주의 법철학자도 주목받게 되었으며, 자유지상주의 진영의 로버트 노직, 공동체주의 진영에서 마이클 샌델, 마이클 왈저, 찰스 테일러,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가 각각 정의론에 대한 의미 있는 비판을 내놓으면서 소위 자유주의-공동체주의 논쟁의 불을 지핀다. 이 논쟁은 원래 영미권, 그중에서도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된 논쟁이었음에도 후에 분석 철학자이자 신실용주의파(neo-pragmatist)였던 리처드 로티, 독일을 대표하는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위르겐 하버마스도 참가했을 정도로 서구 지성사의 메인이 되는 논쟁이므로 롤스의 파급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보통 롤스라고 하면 『정의론』만을 떠올리는 게 보통이고 실제로 롤스의 저서 중에서 이 책이 가장 중요하긴 하다. 그러나 후기 롤스[4] 의 저서인 『정치적 자유주의(Political Liberalism, 1993)』와 『만민법(The Law of Peoples, 1999)』도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나 전공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텍스트. 나올 때마다 영미 정치 철학계에서 논쟁의 중심이 되었고, 그만큼 영향력이 컸음을 뜻한다.
2. 롤스의 정치 철학
롤스의 정치 철학을 설명할 때는 전기 롤스와 후기 롤스를 나누어서 설명하는 게 일반적이다. 물론 일반인들한테는 전기 롤스만이 알려져 있지만. 『정의론』, 그러니까 전기 롤스에서는 주로 공리주의적 정의론의 약점을 지적하고, 그 대안으로 의무론적 성격과 계약론적 성격을 띠는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제시하는 데 치중한다. 그러면서 등장하는 이론적 장치가 흔히 들어 익숙할 원초적 입장, 무지의 베일이고 거기서 도출되는 정의의 두 원칙이 ① 평등한 자유의 원칙과 ② 차등의 원칙이다.
후기 롤스, 특히 『정치적 자유주의』에서는 『정의론』에서의 구상을 이어가면서도, 거기서 제시한 정의론이 어떤 인간 본성에 대한 특정한 가정[5] 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입헌민주주의의 정치제도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것으로, 서로 다른 철학적, 종교적, 형이상학적 신념을 지닌 시민들 간의 '중첩적 합의'를 통해 자신의 정의론을 정초할 수 있다는 점을 논증한다.
2.1. 전기 롤스
『정의론』의 1절에 나오는 유명한 말. 이 한마디로 자신이 공리주의에 사회 정의의 문제를 전적으로 맡기는 것에 반대한다는 점을 명백히 한다. 그렇다면 롤스가 말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롤스는 정의를 내용에서 찾기보다는 공정한 절차에 의한 합의에서 찾는다. 공정한 절차를 보장하기 위해 롤스가 도입한 장치가 원초적 입장(original position)이다. 원초적 입장은 일종의 사고 실험 장치이자 사회 구성원이 정의의 원칙에 합의하기 위해 수용해야 할 도덕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6] 원초적 입장을 특징짓는 조건은 크게 두 가지다.'''모든 사람은 전체 사회의 복지라는 명목으로도 유린될 수 없는 정의에 입각한 불가침성을 갖는다.'''
1.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 인간 사회에 관한 일반적 사실법칙은 알고 있으나, 이러한 지식이 아닌 자신의 자연적 재능, 사회적 지위, 인생 계획, 자신의 가치관 등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는 인지적 조건.
2.합의의 당사자들은 타인의 이해 관계에 대해서 상호 무관심한 합리적 존재라는 동기적 조건.
3.최소 극대화의 원칙: 무지의 베일로 씌운 인간에게 상위층 하위층 신분 중 누구 신분 계층에게 몫의 극대화를 선택해라 가정한다면 대부분 인간은 상위층보다는 하위층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으로 몫의 수준이 낮은 하위 등급을 극대화시키는 선택을 한다는 원칙
원초적 입장에서 사회 구성원들은 롤스가 말하는 정의의 두 원칙에 합의하게 된다.
제1원칙은 한마디로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 언론·집회의 자유, 선거의 자유, 공직 및 개인 재산을 소지할 자유 등 보통 헌법상의 기본권에 해당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유를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원칙이다. 롤즈는 합의자들이 자유인이자 시민이기 때문에 기본적 자유권에 근본적인 이해 관심을 갖고 있다고 얘기한다. 따라서 이러한 권리를 축소하는 것은 아무리 많은 떡고물이 떨어져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이리하여 기본적 권리의 평등한 보장을 보증하는 제1원칙이 원초적 입장에서 합의되며, 제1원칙이 2원칙에 우선하게 된다.'''제1 원칙''': 평등한 자유의 원칙
각자는 모든 사람의 유사한 자유 체계와 양립할 수 있는 평등한 기본적 자유의 가장 광범위한 전체 체계에 대해 평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제2 원칙''': 차등의 원칙과 공정한 기회 균등의 원칙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은 다음 두 가지, 즉 (a: 차등의 원칙) 그것이 정의로운 저축 원칙과 양립하면서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 이득이 되고, (b: 공정한 기회 균등의 원칙) 공정한 기회 균등의 조건 아래 모든 사람에게 개방된 직책과 직위가 결부되게끔 편성되어야 한다.
제2 원칙은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의 허용 범위를 설정하여 부정의한 불평등의 확산을 규제하는 원칙으로, 그 사회의 최소 수혜자, 즉 가장 약자인 자에게 가장 많은 분배의 이익이 돌아가도록 할 때에만 불평등을 허용한다는 말이다. 즉 약자를 배려하는 한에서 성장과 발전이 용인될 수 있다는 의미. 이 차등의 원칙 덕에 처음에는 사회주의와 고전적 자유주의 양쪽에서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롤스의 자유주의는 순수하게 자유만을 주장하는 고전적 자유주의와도 구별되며, 자본주의적 시장 경제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회주의와도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좀 지나자 롤스의 기획이 오히려 자유를 내세우면서도 분배 정의와 평등의 문제를 적절하게 조화시키려는 대담하면서도 대단히 체계적인 시도임이 알려지면서 양 진영에서도 롤스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졌다고 한다. [7]
하지만 제2 원칙의 도출 과정은 처음 정의론이 출간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숱하게 논란이 되어왔다. 간략한 논증은 원초적 입장을 특징짓는 원칙 3으로 소개된 최소 극대화의 원리에 의거한다. 즉, 내가 손흥민으로 태어날 수 있지만, 능력 없는 히키코모리로 태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니, 히키가 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안전성을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심각하게 위험 회피적인 논증은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롤즈를 배운 아해들에게 "무지의 베일 쓴 인간들은 왜 모험을 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비단 고딩뿐만 아니라 수많은 정치철학자들이 차등 원칙을 공격해왔다. 하사니, 공병호, 로버트 노직 등이 유명하다.
이에 대한 롤스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원초적 입장에서의 합의는 갬블과는 차원이 다른 엄청난 중요성을 갖고 있단 것이다'''. 평범한 도박에서는 올인하고 다털려서 알거지 돼도 다음이 있다. 나중에 돈벌고 다시 배팅해서 운좋으면 거하게 딸 수도 있는 것이다. 반면 사회 구조의 합의는 그런 게 없다. 한 번 망하면 끝이다. 그냥 쭉 그렇게 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운좋은 놈에게 몰아주는 원칙을 합의하고 무지의 베일 뙇 하고 걷어봤더니 유전병을 줄줄 달고 있는 노답이더라, 이러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비참한 환경 속에서 살아야 한다. 만일 애 낳으면 그 애도 똑같이 살다 가게된다. 개선할 방법은 전혀 없다. 따라서 이렇게 중대하고 비가역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 원칙의 합의 과정에서 위험한 모험을 감행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는 게 롤스의 설명이다.
이것과 관련된 두변째 답변은 '''공약의 부담'''에 의거한 논증이다. 공약의 부담이란 '''만일 약속을 한다면 그 약속의 내용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위험한 원칙에 합의하고도 결과가 안좋았을 때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겠냐는 거다. 물론 자기가 선택한 일이고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살아가긴 할 테다. 하지만 운좋은 놈들의 이득을 위해 본인이 희생하고 있다고 사는 내내 불평과 한탄을 쏟아낼 것이다. 합의된 정의 원칙에 대한 존중은 찾아볼 수 없고 반항적이게 될 게 뻔하다. 이러한 논리로 롤즈는 차등원칙의 가장 유력한 경쟁 후보인 사회적 최소치를 보장하는 공리주의'도 거부한다. 노답으로 태어나도 최소한의 돈을 받아먹을 수 있으니 불평은 덜할 것이다. 반항적이거나 사회를 뒤엎고싶은 충동도 별로 없을 듯하다. 하지만 사회적 최소치를 근근이 받아먹으면서 결국 "이 사회는 행운아들을 위한 사회구나"하고 체념할 것이다. 정의 원칙도 진심으로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롤스는 소위 복지국가가 차등 원칙이 구현된 사회의 이상에 부적합하다고 비판한다.
반면 차등 원칙이 구현된 사회는 그런 문제가 없다고 롤즈는 주장한다. 차등 원칙은 최소 수혜자(운이 나빠서 분배의 몫에서 가장 적게 가져가는 사람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한에서만 최대 수혜자의 이익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즉 손흥민이 돈을 더 버는 건 히키코모리에게 무조건 이득이 된다. 이러니 차등 원칙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 그럼 "운 좋고 잘 타고난 최대 수혜자는?"이라고 물을 수 있는데 롤즈의 답변이 걸작이다. '''"그들은 이미 잘 타고난 데서 이득을 얻었으며, 재능을 개화시키고 개화된 재능을 발휘하여 남보다 우월한 돈을 벌어들이기를 장려하는 사회 원칙에 의해 또한 이득을 얻는다."'''[8]
결과적으로 행운아도 불운아도 모두 이득을 보기 때문에 진심으로 정의 원칙을 존중하게 된다는 게 롤스의 논지다.
이런 측면에서 롤즈는 차등 원칙이 재능의 분포를 사회의 공동 자산으로 삼는 합의라고 말했다. 부족한 재능과 천재적 재능이 협력하여 창출한 사회적 부를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이득을 위해 분배하기 때문이다. 물론 공동 자산이라는 말은 이런 재능의 수직적 차이 뿐만 아니라 다종다양한 재능의 협업을 얘기하기도 하지만.요런 장점들 덕에 롤즈는 나중에 가선 차등 원칙의 가장 큰 덕목은 호혜성에 안정성이요, 사회적 우애를 증진하는 것 어쩌고 하는 휴머니즘적인 논지를 전개하기도 했다.
2.2. 후기 롤스
전기 롤스와 후기 롤스를 나누는 분기점은 보통 1985년에 롤스가 발표한 논문 「공정으로서의 정의: 형이상학적이 아니라 정치적인(Justice as Fairness: Political not Metaphysical)」으로 본다. 그리고 이를 1993년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집대성한다.
두 텍스트에서 롤스는 『정의론』의 논의가 정의에 대한 포괄적 교설(comprehensive doctrine)과 순전한 정치적 구상을 명확히 구별하지 않는 인상을 준다는 점을 인정한다. 포괄적 교설은 쉽게 말하면 개인이 갖고 있는 종교적, 철학적, 도덕적 신념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갑은 기독교적 신념을 가지고 있고 을은 불교적 신념을 갖고 있다면 둘은 서로 다른 포괄적 교설을 갖고 있는 것이다. 롤스는 입헌민주주의 사회에서 각 개인들이 서로 다른 포괄적 교설을 갖는 것을 하나의 거부할 수 없는 사실로 인정한다. 즉 롤스는 다원주의를 인정한다. 롤스는 이러한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특정한 포괄적 교설을 정치제도로서 강요하는 정치철학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았다. 그 대신 서로 다른 포괄적 교설들이 중첩되는 지점에서 중첩적 합의(overlapping consensus)를 도모해야 한다. 한마디로 사회 구성원들이 기독교를 종교로 갖든 불교를 종교로 갖든, 핵심적인 헌법상의 기본권들과 정치제도에 대해 대강 비슷한 이미지를 그리기만 하면 '정치적 자유주의'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후기 롤스에서 강조되는 점은 여전히 옳음의 좋음에 대한 우선성이다. 정치적 자유주의는 특정한 좋음(선)에 대한 선호를 토대로 하는 게 아니라, 옳음의 범위 안에서 시민들이 좋음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한다. 물론 핵심적인 헌법상의 기본권과 정치제도에 대해서는 중첩적 합의를 이루어야 하므로,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길가는 아무나 잡아패도 된다"와 같은 '좋음'을 추구하는 것은 옳음의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시민들에게 일종의 의무(폭력을 행사하지 말라는)로 요구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기부를 많이 할 거야"와 같은 좋음은 물론 옳음의 범위 안에 있을 테니 허용될 것이고, 또한 그것은 의무로서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기부를 하든 말든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으로 남겨놓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샌델 등의 공동체주의들과 확연히 대비된다. 공동체주의자들은 특정한 좋음을 미덕(virtue)이라 하여 시민들이 이러한 미덕을 갖출 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편이기 때문. 샌델과 같은 경우에는 교육이나 지역 사회 등의 영역에서 시민들이 미덕을 적극적으로 배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아가기도 한다. 거칠게 말하면 롤스의 경우에는 정치를 도덕과 '분리'하려는 데 반해, 샌델의 경우에는 정치를 도덕화하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주요 저서
- 정의론
- 정치적 자유주의
- 만민법
4. 여담
- 대중들의 인지도와 학계에서의 위상 모두 높았던 롤스지만, 정작 본인은 학문 활동을 제외하면 가족들과 주로 시간을 보냈으며 학과장, 총장, 학회장 같은 사람들한테 주목받는 자리는 극구 사양했다고. 현실 정치에 대해서도 웬만하면 노코멘트했다고 한다.
- 영국에서 『정의론』을 주제로 한 뮤지컬이 공연된 바 있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철학-정치학-경제학부(PPE)의 학부생들이 극본을 쓰고 같은 대학의 음대생이 곡을 썼다고 한다. 줄거리가 꽤나 괴악한데, 1971년[9] 하버드 대학 교수 롤스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이 정치 철학에 흥미를 잃고 윤리적 상대주의에 빠진 학생을 보고 고민하다가, '공정(Fairness)'라는 이름의 아리따운 여성에게 반한다. 그런데 갑자기 하버드대의 물리학자들에 의해 타임 볼텍스가 열리고 '공정'이 거기에 빨려들어간다! 롤스도 그녀를 구하기 위해 타임 볼텍스에 뛰어든다. 도착한 곳은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피레우스. 그곳에서는 플라톤과 소크라테스가 정의에 관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렇게 시간여행을 하면서 롤스와 공정은 차례로 홉스, 로크, 루소 등을 만나고 우여곡절 끝에 좌절과 역경을 겪지만, 도중에 칸트를 만나 의무론적인 힘을 얻고 여기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무지의 베일'을 구상해내 정의론을 완성하게 된다. 악당으로 등장하는 아인 랜드와 로버트 노직의 방해를 이겨내고 마지막에 롤스와 공정이 포옹을 하면서 극이 마무리된다. 여러모로 이쪽 분야 전공자나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웃음을 금할 수 없는 괴악한 센스와 훌륭한 고증을 자랑한다. 자세한 내용은 위키백과 참고.
-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교적 쉽게 설명해주고, 무지의 베일을 소재로 한 실험까지 다룬 다큐멘터리 EBS 다큐프라임 - 법과 정의 2부가 있다. 롤스의 정의론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면 시청을 권장한다. 또한 다큐 중간중간 위에 서술된 정의론 주제 뮤지컬 영상이 삽입되어 있다.
- 『정의론』을 하루에 10분씩 읽으면 명상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주장만 놓고 보면 개드립처럼 들리지만, 위 주장을 한 사람(변호사 겸 법학박사)이 롤스의 숭배자이기 때문에(정의란 무엇인가 문서 '기타' 항목 참조) 진담으로 한 말이다.
- 2017년 수능에서 전체 이의 제기 중 1/4이 존 롤스 관련한 한 문제에 몰렸다.
5. 관련 문서
롤스의 이론이 빚지고 있는 가장 주요한 선대 철학자. 그 방대한 『정의론』에서도 인물 중 가장 많은 인용 횟수를 자랑한다. 그 다음 가는 인용 횟수를 자랑하는 인물들은 아리스토텔레스와 존 스튜어트 밀.
상술한 공동체주의의 주요 논자 중 하나. 한국에서는 『정의란 무엇인가』 때문에 대중 정치 철학 저술가로 이름이 높지만, 학계에서는 롤스 자유주의 기획에 대한 중요한 비판자 중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 이 내용이 담긴 텍스트가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Liberalism and the Limits of Justice, 1982)』. 한국에서는 『정의의 한계』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지금까지 광범위한 지지를 받아왔던 롤스의 정의론을 현실적인 삶과 동떨어진 곳에서의 추상적인 정의론이라고 비판하고, 공동체의 문화적 특수성과 차이를 고려한 다원적 정의론을 추구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정의론에서 논의하는 복합적 평등론은 현대의 다원적이고 복합적인 사회에 대한 공동체주의적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롤스가 평생 관심을 가진 주요 토픽.
롤스가 『정의론』에서 주요 논적으로 삼고 있는 이론이다.
『정의론』에서 시민 불복종이라는 주제를 의외로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다루고 있다.
[1] 영어 발음은 [rɔːlz\](롤즈)이다. 황경식 前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가 롤스의 사회정의론 국역본을 최초로 펴내면서 롤스의 이름을 "롤즈"로 표기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용례의 표기 원칙 제6장에 "어말의 -s[z\]는 ‘스'로 적는다."라는 조항이 있기 때문에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인 William James[d͡ʒeɪmz\]를 "제임스"로 표기하는 용례에서와 같이 현행 교과서와 EBS 교재상에서는 "롤스"라는 표기가 통용된다. 덧붙여 학계의 인명 표기가 외래어 발음에 들어맞지 않는 경우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정치 철학자인 Michael Walzer[ˈwɔːlzər\](월저)의 경우는 철자에 이끌린 "왈저"나 "왈쩌"로 표기된다.[2] 수능 윤리에 있어 칸트와 함께 순위를 오르내리는데, 칸트는 오지랖이 넓어서 그런거고, 내용면에서는 이쪽이 훨씬 난해하고, 문제도 어려운데다, 오지랖도 좁은 편은 아니어서, 많은 문과 학생들이 생윤을 고를지 다른 과목을 고를지 고민하게 하는 최대의 변수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혹시라도 이 본문을 읽고 이해가 도무지 안 된다고 생각되면 진지하게 다른 과목을 고민해보자. 물론, 여기 있는 내용이 모두 생윤 교과서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이만큼 어려운 것도 아니긴 하지만, 실제로 수능에서 문제도 어렵게 나오는데다 개념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신중한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 임고생이라면 그런 거 없고 여기 있는 모든 내용을, 훨씬 더 자세하게, 원문 텍스트와 함께 다 알아야만 한다...[3] 국역본에는 오역이 너무 많아서 원문 읽기를 권장한다. not을 빼먹고 번역한 게 몇 군데인지 셀 수도 없다.[4] 학자들은 보통 『정의론』의 롤스를 전기 롤스, 『정치적 자유주의』 이후의 롤스를 후기 롤스로 나눈다. 왜 그렇게 나뉘는지는 후술.[5] 롤스는 이를 포괄적 교설(comprehensive doctrines)이라고 부른다.[6] 롤즈에 대한 비판 중 일부도 이러한 원초적 입장이라는 가정의 합리성에서부터 비롯된다.[7] 이러한 제 2원칙이 분배와 관련되어 있기에, 경제학이 사회 후생의 논의 과정에서 롤즈의 이름을 많이 접하게 된다.[8] 롤스는 잘 타고나면 더 많이 벌어야 한다는 원칙이 자연적으로 정당화되지 않는다고 여겼다. 재능은 자연적 사실이지만 재능으로 벌어들이는 부의 분배는 사회적 규칙이라는 것.[9] 『정의론』이 처음 출간된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