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권

 


'''제주 유나이티드 FC 역대 주장'''
김은중
(2010~2011)

'''최원권'''
(2012)


오승범
(2013)
'''대구 FC 수석코치'''
'''최원권
(崔源權 / Choi Won-Kwon)'''
'''생년월일'''
1981년 11월 8일 (43세)
[image] 서울특별시
'''국적'''
[image] 대한민국
'''신체 조건'''
175cm / 70kg
'''학력'''
동북중학교 (1994~1997)
동북고등학교 (1997~2000)
'''직업'''
축구선수 (풀백, 미드필더, 윙어 / 은퇴)
축구코치
'''소속'''
'''선수'''
안양 LG 치타스/FC 서울 (2000~2010)
광주 상무 (2009~2010 / 군 복무)
제주 유나이티드 (2011~2013)
대구 FC (2013 / 임대)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2014.1~2014.7)
대구 FC (2014.8~2016)
'''지도자'''
대구 FC (2016 / 플레잉코치)
대구 FC (2017~2020 / 코치)
대구 FC (2021~ / 수석코치)
'''국가대표'''
27경기 0골(대한민국 U-23 / 2003~2004)
4경기 0골(대한민국 / 2003~2004)
'''별명'''
보거스[1]
'''종교'''
개신교
1. 개요
2. 선수 시절
3. 국가대표팀 활약
4. 지도자 시절
5. 논란
6. 이야깃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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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국적의 前 축구선수이자 現 대구 FC 코치이다.

2. 선수 시절


어릴 적에는 야구선수가 되고 싶었으나 초등학교 4학년 때 체육시간에 축구시합을 하다가 축구부에 발탁되어, 축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축구 명문 동북중, 동북고에 진학하다 보니 각종 대회에서 준우승 내지는 3위권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는데[2] 준우승을 하고도 혼났었다고...
대학으로 진학하지 않고 2000년 안양 LG 치타스에 입단하여 K리그에 데뷔했다. 2000년 4월, 수원 원정경기[3] 여담인데 그 당시 최원권의 첫 슛을 막은 선수는 김병지선수였다. 그 해 아디다스 컵을 포함하여 4경기를 뛰는데 그쳤고, 2001년에서야 리그에서 14경기를 뛰며 경기 출전횟수를 늘리기 시작하였다.
주로 윙어로 활약하였으나 풀백으로 주 포지션을 변경[4]하여, 2001년 K-리그 준우승에 기여했다. 22경기 출전해 4도움을 기록했다. 이 시기에 안양은 슈퍼컵, 리그컵에도 우승했다. 2002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5] 준우승, K-리그에서는 준우승을 했는데 20경기에 출장해 2도움을 기록하였다.
2004년 안양 LG 치타스서울특별시로 연고를 이전하고 구단 명칭을 변경한 FC 서울에서 계속 활약하였다.
2006년 3월 25일 제주전에서 프로 통산 도움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2008년 K리그 준우승에 기여한 후 광주 상무로 입대하게 된다. 제대 후 제주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게 되므로 FC 서울에서의 마지막 시즌이다. 안양/서울에서 168 경기에 출장 3득점, 14도움을 기록했다.
잘 알려지진 않았으나, 2005년 포항 스틸러스트레이드되었으나, 선수 본인의 반대와 포항 코치진에서의 반발로 무산되었다고 한다. 당시 포항에는 오범석도 있어서 최원권이 간절하진 않았던 듯.
2009년 군 복무를 위해 광주 상무에 입대하여,주 포지션인 풀백 역할 뿐만 아니라 중앙 미드필더로도 뛰며 멀티 플레이어로서 활약하였다. 전반기에 광주 상무가 1위로 치고 나갔으나, 곧 DTD를 시전하였다. 광주에서 50경기 8골 5도움을 기록하는 등, 주전 선수로 활약하며 제대했다.
제대 직후, 2011 K리그를 앞두고 제주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게 되었다. 세부 계약 조건은 알려지지 않았다. 2012시즌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일본 팀과의 연습경기에 지지 않아, 박경훈 감독의 방울뱀 축구가 좀 더 완숙해진 것 같다는 인터뷰를 했다. 한동진, 마철준을 제외하면 고참이 없는 등, 젊은 선수들이 제주의 주축이 되어잇기에, 팀을 잘 이끌어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image]
2013시즌 출전 기회가 줄어들자 대구FC이진호와 맞임대로 임대이적했다. 대구 FC 입단 당시 표정이 좋지 않아 대구팬들에게 별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하였다. 결국 최호정과 로테이션으로 출전하게 된다.
7월 13일 토요일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원정경기에서 우측 윙백으로 선발출장했다. 0:1로 뒤진 상황에서 이양종의 공을 사이드라인을 따라 몰고 가면서 송창호가 동점골을 넣게 만드는 기점 역할을 하는 등, 공수에서 노련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후반 42분에도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중거리 슛을 날렸지만 아쉽게도 골은 들어가지 않았다.
7월 16일 화요일 성남 일화 천마와의 K리그 클래식 19라운드 경기에 왼쪽 윙백으로 출장했다. 익숙지 않은 포지션이었지만, 빠르게 공을 가져가는 템포에서 우세한 모습을 보여주며 활약했다. 팀은 1:0으로 승리하며, 시즌 첫 승을 거두었다.
7월 31일 수요일 전북 현대와의 20라운드 경기에 왼쪽 윙백으로 선발 출장했다. 아무래도 왼쪽으로 포지션을 옮기게 된 듯 하다. 초반엔 전북을 밀어붙이는 듯 했지만, 결국 0:1로 패배한다.
8월 3일 토요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K리그 클래식 21라운드에선 우측 윙백으로 선발출장했다. 비가 와서 수중전이어서 양팀 다 힘든 경기였지만, 결국 0:1로 패배하고 말았다. 이 패배로 팀은 3승 6무 12패를 기록하게 된다.
8월 11일 일요일 전남 드래곤즈와 22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우측 윙백으로 선발 출장하였다. 이 날은 지루한 공방 끝에 양팀이 1:1로 비겼다.
8월 25일 수원 삼성과의 K리그 클래식 24라운드 홈 경기대구 스타디움에서 치루게 되었다. 경기 시작전 대구 FC의 LTE 축구와 수원 삼성의 블루 타카의 맞대결이라며 선전했지만, 대구는 0:2로 패배했다. 최원권은 왼쪽 윙백으로 선발 출전했지만, 후반 시작하고, 부상으로 인해 이준희와 교체되었다.
대전 시티즌과의 25라운드 원정경기에서 우측 윙백으로 선발출장했다. 지난번의 부상이 심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단기간에 너무 많은 경기에 출전하고 있어 체력 저하가 우려된다. 송창호, 황일수, 한승엽의 골을 앞세워 3:1로 승리했다.
2014년 초 경주 한국수력원자력으로 이적한다. 이적 기사가 나지 않은 듯. 조용하게 이적했다. K리그 클래식에서는 모르겠지만 K리그 챌린지에서는 활약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평이 많다. 7월 31일 대구 FC로 다시 이적하였다.
2015년 키프로스 전지훈련에 합류했다. 노병준과 함께 대구FC의 고참으로서 챌린지에서 베테랑이 사는 법이라는 제목의 인터뷰를 했다.
2016년 플레잉코치로 합류하였다. 선수로서 출전한 경기는 없이, 그렇게 마지막 시즌을 조용히 보내며,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3. 국가대표팀 활약


2003년에 올림픽 하계 대표팀 예비명단에 포함되었다. 본인 말로는 프로 계약 때보다 더 기뻤다고.[6] 2004년 당시 올림픽대표는 대한민국의 8강 진출을 이끌었다.
2003년 12월 4일 동아시아 축구선수권 대회에서 A매치 데뷔를 가졌다. 다만, 활약상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리그에서의 활약과는 다르게 국가대표팀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좁은 시야를 보여주었다. 오만과의 경기 에서 골문 앞에 안정환이 있었으나, 오만 선수에게 날아갔다. 다행히 오만 선수의 자책골로 당시 경기에 첫 골이 들어갔다.
다만, 이 이후로 국가대표팀에 소집 된 적이 없다.

4. 지도자 시절


2016 시즌부터 플레잉 코치로서 팀에 합류한다. 2군 리그인 R리그에서 유망주들을 지도하면서 코치 수업을 하고 있는 듯 하다.
2017 시즌을 앞두고, 선수 커리어 은퇴를 선언했다. 향후 구단 행적을 보니 은퇴식은 따로 없었던 것 같다. 노병준대구 FC포항 스틸러스 두 곳에서 일주일 사이에 2번의 은퇴식을 가진 것에 비하면 조촐한 모습.
5월 21일 경기도 안산시에서 열린 그리너스 FC 축구 클리닉에 KFA 1급 지도자 교육생들 중 하나로 등장했다. 축구클리닉은 초등학교 저학년, 고학년 및 중·고교생과 성인 등 각각 4개 연령별 맞춤형으로 실시됐다. 흥미를 위해 놀이를 접목시킨 기본기 교육 시간을 포함해 자세교정을 포함한 밀도 높은 수업이 진행됐다.

5. 논란


2020년 5라운드 성남전 종료 후 개인 SNS에 심판을 비난하는 게시물을 올리면서 논란이 일렀다.
이에 한국프로축구연맹이 SNS를 통해 심판을 비난한 대구FC 최원권 코치에게 300만원 제재금을 부과했다.[7]

6. 이야깃거리


  • 성격이 더러운 편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축구 팬들 중에서는 마음에 안들어하는 사람들이 제법 된다. 사실 플레이 스타일로 보았을 때 윙백보다는 플레이 메이커로 놓는 게 어울려 보인다고 한다. 혹자는 이관우를 윙백에 배치해 놓으면 어떻게 될 거 같냐는 말까지 했다. 최원권은 리그에서 윙백 자리에서 뛰고 있기 때문에 그냥 일단은 그 자리에 익숙한 것이라고.
  • 자신과 절친한 후배인천 유나이티드의 서성철의 여동생이 논현동 고시원 살인 사건으로 희생되자, 구단 홈페이지에 서성철이 다음 아고라에 쓴 청원 글을 올려 팬들의 관심을 촉구하였다.
  • 2012년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던 당시, 결혼에 골인하였다, 아내와는 선수와 팬의 관계로 교류하다가 결혼에 성공한 케이스다.
  • 300경기 출장이 목표라고 한다. 2013시즌까지 총 274경기에 출장했다.
  • 은퇴 후의 목표는 축구하는 선교사라고 한다. 그라운드의 기도하는 축구선수 라고. 선교사는 목표이고, 축구는 좋아하는 거니까 두 개를 다 하고 싶다고... 인터뷰에서는 태국[8]을 에로 들며 메이저 대회에 나가지 못하니 그곳에서 선수를 키워 K리그에 역수출해보고 싶다고 한다.

[1] 보거스는 내 친구의 그 보거스다![2] 우승을 한 번도 못했다고 한다. [3] 지지대 더비였다. 당시 교체 투입되었으나 결과는 5-4로 패배했다.[4] 이 당시 감독은 짐작할 수 있다 시피 조광래이다.[5] 지금은 AFC 챔피언스 리그로 이름을 변경했다.[6] 그때 최태욱, 이천수 , 조재진 등을 친해졌고 스스로를 치킨패밀리라고 불렀다고 한다.[7] 징계기준 제2조 (가)항에 따르면 공식인터뷰 뿐만 아니라 SNS 등 대중에게 공개될 수 있는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도 경기의 판정이나 심판에 관한 부정적 언급 또는 표현을 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다[8] 다만 태국도 최근 투자를 거듭해 동남아시아에서는 강호로 자리 잡았고, J리그와 협약을 맺어 선수 교류를 추진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